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우화] 축구 이야기 - 비정규직과 시장경쟁력

[우화] 축구 이야기 - 비정규직과 시장경쟁력
정규환 메일보내기
1. 지금은 2020년 봄철
 
지금은 2020년 봄철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람들 축구, 참 좋아하지요. 팍팍하고 고단한 삶에서 그 애틋한 단잠마저 반납하고 티비 앞에 앉아 아드레날린 분비의 기복을 가파르게 실험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곧 프로 축구 봄철 개막전이 열리면 다들 생업이 축구 경기 관전으로 바뀌는 열중의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갈 테지요.
 
제가 하려는 축구 이야기는 가공이 아니고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다만, 축구를 지금처럼 로봇을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숨이 턱에 닿도록 생고생하며 직접 발로 뛰어 하던 시절 얘기인지라 실화가 아니라 우화로 들리겠지요. 세월의 이끼가 두툼하게 끼면 인간이 신이 되고 사실이 신화로 둔갑하게 마련이니 독자께서 실화에서 나온 이야기를 우화로 읽은들 전혀 해될 일은 없습니다. 이 우화라는 옷이 좀 허술해서 속살이 언뜻언뜻 비치겠지만 이 이야기를 옮겨 쓴 저 자신이 냉정히 따져 봐도 소재가 워낙 황당한지라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현명하신 독자 여러분의 아량을 기대할 따름입니다. ― 채록자 정규환
 
2. 문명국의 축구 팀
 
이 나라에서도 여느 문명국답게 축구 경기가 성행했습니다. 당연히 전국에 축구팀들도 엄청나게 많았지요. 경기 규칙과 경기장 규격 등등 지구촌 다른 나라들과 하등 다를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속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정말 억! 하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올 한 가지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차이점이 있군요. 그게 아주 이상야릇해요. 경기장에서 뛰는 출장 인원의 숫자는 어김없이 11명인데, 그 중 5~6명은 정식 계약선수로서 구단과 고용 조건 등을 정하는 일정한 절차를 밟아 계약을 맺으므로 땀의 대가를 꼬박꼬박 받아갑니다. 하지만 다른 5~6명은 구단주나 감독 또는 정식 계약선수들 가운데서 누가 이런저런 연고로 선을 대어 불러다가 동일한 유니폼을 입혀서 경기장에 발을 들여놓게 된 선수들입니다. 게다가 이 파출선수들 가운데 대다수는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축구장을 총총히 뜹니다. 정식선수들은 탈의실에 들어가 샤워하고 자기 사물함을 열어 옷도 갈아입고 차도 마시고 잡담도 나누는데, 파출선수들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요?
 
이들은 또 다른 경기장으로 갑니다. 이들에게는 들어갈 탈의실도 개인 사물함도 없습니다. 운동 가방에 소지품을 서둘러 담아 넣고 이동하기에 바빴습니다. 구경꾼보다 바람이 차지한 자리가 더 많은 경기이건, 대형 스타디움에 에이 비 씨 디 석 가릴 것 없이 관람석을 빼곡히 채운 채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방송 화면 앞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경기이건 상관없이 성분이 전혀 다른 두 계급의 선수들이 함께 경기장을 누빕니다. 이따금 호사가들이 여론 동향을 파악한답시고 관람객과 티비 시청자들한테 과연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물으면 더러는 알고 있다고 하고, 또 더러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하면서 실없는 소리로 남 구경하는 데 훼방 놓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다지요, 아마. 또한 이마에 기름이 반지르르 흐르는 신수 훤한 신사와 귀부인들은 그냥 그런 줄 아쇼 하면서 못 들을 것 들어 귀를 더럽혔다고 잠시 양미간을 찡그릴 듯 말 듯 합니다.
 
3. 두 계급
 
3.1 귀족과 노예
그런데 이 나라에 이렇듯 희한한 관행이 고상한 제도 문물의 기반으로서 정착한 것이 건국의 아버지들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남의 나라 종살이를 하다가 어찌어찌 해서 나라 살림을 다시 제 손으로 챙기게 되면서 축구도 다른 나라에 못지않게 잘해보자는 의욕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 당시에는 축구장 규모도 작았고 변변한 축구장 숫자도 몇 되지 않았거니와 경기장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들 수도 상당히 적었지요. 그렇지만 축구에 대한 전국민의 열의는 결코 오늘날에 못지않았더랬습니다. 문제는 축구선수인데요. 나라 재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였으므로 선수들에게 억대 연봉 어쩌고 하는 것은 화성 여행가는 이바구나 마찬가질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지금’(다시 말해서, 이 나라가 지구촌 연대기에서 자취를 감추기 불과 수년 전)하고 확실히 다른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그 때에는 축구선수 11명 전원이 모두 정식 계약선수였다는 점, 경력 차이에 따라 연봉액수에 얼마간 차등은 있었다지만 ‘지금’처럼 반수는 고대나 중세 시대의 세습귀족 대우를 받는 반면, 다른 절반은 노예 같은 처지에서 빛 좋은 개살구마냥 유니폼만 같은 것을 입고 지내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지는 않았습니다. 또 그 때는 한 시즌 또는 한두 해가 지나면 정식선수로 기용되는 게 상례였습니다.
 
물론 축구는 고도의 두뇌 플레이가 필요하면서도 공사 현장의 인부처럼 땀을 흘려야 하는 노동도 겸하여 수행하는 특수한 전문직이라는 것을 누가 모를까요. 그런데 축구선수는 특수전문직 지식노동자로서 살아가는 데 기업 임원들처럼 거액이 전혀 필요치 않다는 것도 다들 잘 압니다. 축구선수의 전문성을 염두에 둘 때 축구선수가 자신이 수행하는 직능의 계발 외에 다른 잡기나 외도에 한눈 팔 겨를은 전혀 없다고 할 것입니다. 축구선수는 일반 시민들도 다 하는 주식투자나 아파트 청약 등 이른바 재테크에 참여하거나 골프 치러 다닐 시간과 정력이 따로 있을 수 없지요. 이런 말 자체가 우습군요. 축구처럼 고난도 기예와 엄청난 운동량이 결합하여 이뤄내는 최상급 운동경기, 아니 예술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뭐가 부족해서(또는 남아돌아서) 염의없이 다른 데 신경 쓸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이런 사람들이 먹고 사는 데 전전긍긍하도록 방치하거나 강요해서야 축구 선진국을 지향하는 나라의 면목이 도무지 서지 않을 테지요.
 
그렇습니다. 과연 이 나라 축구선수들은 생계비에는 전혀 부족함을 느끼지 못할뿐더러 이 나라보다 훨씬 더 앞섰다는 다른 축구 강국들의 선수들보다 오히려 연봉액수를 더 많이 챙겨주는 특이하게 정착된 제도의 수혜자로 살고 있으니 우린 이 훌륭한 제도를 이해하고 칭찬해줄 수도 있을 것 같군요. 물론, 이 고액 연봉수령자들은 11명 가운데 절반뿐이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전국 방방곡곡의 팀마다 참말이지 인간적으로 너무도 싼 값으로 ‘때우고’ 있었기 때문에 참, 뭐라고 말하기가 민망하답니다. 조금 에둘러 말하자면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는 이 반수의 선수 아닌 선수들은 스스로 “우린 축구경기장의 유령”이다, “우린 그림자 인생”이다 합니다. 글쎄, 유령에게 그림자나마 있나요?
 
3.2 빵으로 읽는 풍속사
지구촌사를 펼쳐보면 당연히 이 나라도 시장경제를 금과옥조로 삼는 자본주의 국가였답니다. 그런데 경기력 향상을 위해, 체력 향상을 위해 머리 쓰고 땀 흘리고 이 악물고 죽자고 뛰어봤자 노력의 대가를 제대로 주지 않으니 이게 무슨 얼어죽을 놈의 선수랍니까. 하긴 당시 풍속사에 기록하기를 훈련이나 연습 도중 휴식 시간에 구단에서 제공하는 간식도 정식선수들에게는 사람 손으로 구운 빵이지만 다른 절반에게는 공장에서 기계가 찍어내어 가판대에서 무인판매하는 빵이었다고 하네요. 선수도 아닌 것이 선수 행세를 한다니 식용개도 이런 사실을 안다면 하품이 절로 나올 것입니다.
 
4. 장관과 시민의 대화
 
4.1 축구 산업의 경쟁력, 시설 확충에 건다!
그런데 앞에서 ‘때우다’에 따옴표를 한 연유는 이렇습니다. 축구를 중시하는 만큼 이를 관장하는 정부 부처가 있기 마련이지요. 이 나라 각료들 가운데서도 이 부처의 수장은 단명하기로 유명하답니다. 무슨 놈의 장관이 철따라 바뀌질 않나, 어떤 인사는 한 이틀 집무실 의자에 앉았다가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이 요직에 오른 장관이 방송에 나와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발설을 했습니다.
 
“다른 경기 종목들의 경기력 향상은 이제 수준급인 것으로 보인다. 이제 획기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부문은 바로 축구 종목이올시다. 축구의 경쟁력을 강화하여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유능한 인재들을 배출해야 한다. 산업체 임원들이 평가하기를 우리나라 축구 경기를 관전하고 나간 사람들 가운데 데려다 써먹을 가치가 있는 인재는 26%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 축구는 산업과 직결되어야 한다. 관람객과 티비 시청자들도 기업들이 요구하는 뛰어난 실력과 창발력을 갖추도록 양성해야 하고 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뛰는 축구선수들 중에는 큰 호수 건너 축구 강국의 유력한 신문과 잡지에서 거명되는 지구촌급 선수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축구의 경기력 향상을 통하여 국가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우리 축구의 수월성(우수성을 뜻하는 여울목 건너 인접국식 표현으로서 이 나라 각료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임)을 끌어올리려면 축구 경기장과 축구에 관련된 설비와 건물 등에 대한 평가를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국립 축구평가단을 만들어야 한다. 평가를 철저히 계속하면 축구팀들 사이에 경쟁이 붙어 우리 축구를 개혁시킬 수 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체육관, 기숙사, 운동장 등등 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축구 종목에 국가 예산이 더 배정되도록 해야 한다. 물론 평가단 운영에 필요한 예산도 배정할 것이고.”
 
장관 얘기를 듣고 있던 시민이 질문을 했습니다.
 
4.2 우리 인생은 경기장 입장권 구매의 연속
“장관님하고 직접 대화를 나누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저도 축구에 대한 열성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사람이지요. 제게도 정기관람권을 끊어서 각각 족구와 농구 경기를 관람하러 다니는 자식이 하나씩 있습니다. 얘들도 정기관람권 유효기간이 끝난 다음엔 축구 경기를 볼 수 있는 정기관람권을 끊어야 됩지요. 그런데 몇 곳 안 되는 공중 돔 축구 경기장 입장권에 붙은 프리미엄이 워낙 높아서 이 어린 것들이 용돈은 아예 쓸 엄두도 못 낼뿐더러 여기에다 돈을 더 보태려다보니 잠까지 줄여가며 사설 족구장과 농구장에 출입해야 되지 뭡니까. 도대체 왜 이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가요? 그건 그렇고 오늘은 축구 얘기가 주제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4.3 시설은 사람에 앞선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그런데 장관님 말씀을 듣잡고 있자니 아리송하네요. 제가 잘 몰라서 여쭙겠는데요, 축구 경기도 사람이 하고 축구 경기 관전도 사람이 하는 것이지요? (장관은 너무도 당연한 말에 그냥 듣고만 있습니다.) 헌데 어째서 장관님께서는 운동장이랑 시설 얘기만 하신다요? 제가 알기론 우리나라는 전국적으로 축구팀에서 뛰는 선수 11명 가운데 절반은 정식선수가 아니어서 축구 명부에 올라 있지도 않고 또 나라 ‘운동경기인력자산부’(식량자급부, 에너지부, 아파트부, 재정부, 자동차부, 외교부 같은 이 나라 행정 부처 이름임)에서도 선수로 치지 않는다면서요?
 
풀통 들고 축구시합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고, 운동장 주차 안내 도우미도 하고, 어린이 축구교실 코치도 하고, 스포츠용품 배달사원, 족구, 농구, 축구 등 구기 종목 잡지사를 위해 스포츠 강국 기사를 오려다 붙이는 생업도 마다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또 파출선수의 신분증만 가지고는 밑바닥 생활의 최후 저지선 저쪽으로 후딱 넘어가기 십상인 까닭에 근래에는 스타디움에 자장면, 건강음료를 배달하는 오토바이 배달원 등도 즐거이 하고, 시즌 오프에는 새 경기장 건설 현장의 막노동을 부업으로 삼는 사례들을 아는 사람 한둘만 건너면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정말 이게 사실입니까? 축구는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 11명으로 채워야 하는 게 축구의 기본인데 어찌 이런 일이 꿀꿀이죽마저 달게 먹던 울 아버지 어린 시절도 아닌 여적 때까지 마냥 지속될 수 있는 겁니까? 우리나라도 엄연히 지구촌 축구연맹에 가입한 회원국일 텐데요. 고매하신 장관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푸실 건지 듣고 싶구먼요.”

4.4 경기력 유연화 정책
무표정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던 장관님이 답변을 시작합니다. “알파 리그 소속만 해도 200개 팀들이 다들 정식선수를 쓰지 않고 파출선수들로 때우고 있다는 사실을 저도 압니다. 그게 어때서요? 저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습니다. 다른 각료들도 저와 동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지구촌에서 유행인 신착취즘 정치경제 신조를 우리나라가 백안시해서야 쓰겠습니까? 운동경기력 유연화를 극대화해야 됩니다. 물론 유연화가 극에 달하면 자체 중량을 못 이겨내어 뭉개져 내려앉겠지만 말입니다. 이건 여담이구요. 좌우지간에 이 파출선수들을 전부 정식 계약선수로 쓸 수는 없습니다. 안 그래도 한 십년 전에 제 전임 장관 시절에 축구팀 창단을 아주 쉽게 만들어줬기 때문에 우리나라 인구 대비 축구팀이 과도하게 많아지는 실책을 저질렀지요. 그 양반 다시 유턴해서 자신이 엎지른 물을 담아보겠다고 나름대로 애썼는데, 이제 제가 축구 팀 수를 확 줄이려고 합니다. 관중석이 썰렁하게 빈 채 경기를 진행하는 부실한 팀들이 많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파출선수들을 정식선수로 썼다가는 구단주들은 거덜이 나고 말겁니다. 운동경기인력자산부는 전통적으로 축구 팀 구단주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온 미덕을 아주 중시합니다. 제가 들어서서 그 미덕을 일거에 내팽개쳐버리게 할 수는 없지요. 우리나라는 전통을 소중하게 지켜야 합니다. 일부 불한당들이 운동경기부 마피아 운운하며 이 끈적끈적한 밀월 관계의 실상이랍시고 사실을 쬐금 들춰내는 기사가 나오게도 했지만 가끔 터지는 이런 돌발 사태에 우린 그냥 입 꾹 다물고 모르쇠로 넘겨버리는 것을 또한 자그마한 미덕으로 돌본답니다. 자, 그럼 청취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요 정도로 하고.
 
4.5 찰리 채플린의 교훈
하여튼 고등운동경기법이니 정식선수니 하는 그런 난처한 얘기는 그만 합시다. 운동경기가 주특기인 전임 장관들께서는 전혀 문제로 여기지도 않았거나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갔던 것인데 이제 와서 내가 무슨 열성에, 솔직히 인력자산에 대해 무슨 철학이 있다고 나서겠습니까. 다만 제 신조는 축구 경기는 산업이라는 겁니다. 맨땅 축구장을 개선하여 인조잔디 구장으로 바꿔가면서 수입 천연잔디 구장의 숫자를 꾸준히 늘려가는 게 중요합니다. 기업도 설비 투자가 가장 중요한 것과 매한가지라고요.
 
일하는 인력의 행복권? 그런 것 따지다가 설비 투자는 어느 천년에 합니까. 찰리 채플린 영화도 못 봤습니까? 컨베이어 시스템이 중요하지 그 앞에 서서 나사 조이는 사람이 중요합니까. 보세요, 채플린이 컨베이어 위주로 따라가잖습니까. 사람은 환경에 맞춰가게 마련입니다. 지구에 출현한 무수한 생물종 가운데 바퀴벌레와 인류는 환경 적응에서 쌍벽을 이룬다고 합디다. 우리나라 산업은 잘 해가고 있는데 운동경기 부문이 낙후되어 있어요. 당연히 산업을 모범으로 삼아야지요. 그러려면 여러 가지 운동 기구와 설비, 관람객 기숙사, 경기력향상 연구소 등등 시설 확충이 필요하겠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예산은 좀 더 많이 배정되면 좋고요.
 
아 참, 축구장 입장권 구매의 추첨 방식은 계속 심사숙고해서 땜질해 나갈 것을 국민 앞에 약속드립니다. 그렇지만 축구선수는 현재식으로 그냥 돌리겠습니다. 아까운 예산을 인건비로 낭비할 수는 없다구요. 천한 것들 싼 값으로 때우면 되지 뭣 하러 임금을 올려줍니까. 첫째도 설비 시스템, 둘째도 설비 시스템이지 인력은 우리가 아주 여유작작할 때가 혹 도래한다면 그 때 가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을까나, 하나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4.6 축구 꿈나무들의 연수행
허리끈을 질끈 더 동여매야지요. 저야 축구장만한 평수의 성채에 살면서 재산이 자고나면 표나게 불어나는 처지이지만 우국충정으로 이 쇠가죽 허리띠 하나를 20년째 매고 다닌답니다. 좀 자화자찬 같지만 사회 지도층으로서 도의상 의무를 저 나름대로 실천하고 있다고 할까요. 우리가 축구 경기를 구경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딥니까. 분수를 알아야지요.
 
정식선수들이야 사회적 지위가 있으니까 물가 인상률도 고려해서 계속 연봉을 올려줘야 하구요. 파출선수들이야 참고 뛰다가 지쳐서 경기장 밖으로 나가 벌렁 자빠지면 큰 호수 건너로 축구연수 다녀온 인력자산에서 약간 명씩만 뽑아서 정식선수로 쓰면 되거든요. 국내 선수 육성? 그런 것은 대충 하는 시늉만 유지하면 그만입니다. 축구 꿈나무들이 스스로 알아서 큰 호수 건너 축구 강국에 가면 거기서 연수시켜 보내주잖습니까.
 
그 꿈나무들이 달고 오는 패찰이면 그냥 보증수표로 치는 겁니다. 구단이 할 일은 연수증 받고 돌아와 줄서서 기다리는 걔들 중에서 하나둘 선발하여 채용하는 패거리 고용 시스템만 잘 유지하면 됩니다. 사실 구단주들에게 무슨 검증 능력이 있겠습니까. 그저 전통적으로 우리한테 강국이니까 무조건 신용하는 거지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구요. 강국 것은 좋은 것이여! 알겠습니까?
 
4.7 삭은 그물로 고기잡이
우리 썩어문드러진 현실을 무시하고 괜히 고상한 체하는 이상주의자들이 축구팀의 정식선수 비율을 100% 채우라고 성화를 부리지만 그게 어디 한꺼번에 될 일입니까. 고약하고 불량한 것도 세월이 많이 흘렀으면 유구한 겨레국가의 전통으로서 고이 계승해야지요. 우리나라는 전통을 소중하게 지켜야 합니다.
 
한때 도끼와 푸줏간 칼로 인민을 개, 도야지처럼 취급한 지도자들도 있었다지만 이제 찬연한 역사의 동록이 켜켜로 내려앉은 마당에 새삼스럽게 뒤돌아보고 삿대질하면 뭐 하겠소, 배은망덕하게시리. 다 소중한 우리 전통이잖습니까. 건전한 역사 인식은 현실을 직시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봅니다, 흠흠.
 
그물코가 여기저기 터져나가고 그물 벼리마저 삭았더라도 조상의 유업이 소중한 줄 아는 어부는 그 그물을 깁거나 벼리를 갈아치우겠다는 못된 망념의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하물며 이 그물을 잘게 썰어 뱃밥을 만들다니요, 그런 망종이 어디 있습니까. 할아비가 아비가 그 그물로 제 놈을 먹여살렸는데 말씀입니다.
 
우리나라 축구장 상당수가 쓰레기 매립장 부지 위에 건립된 연원 때문에 썩은 냄새가 솔솔 피어오른다, 내부가 부실하다 하면 그 위에다 장중한 건물과 최신형 설비들을 가져다 콱 덮어씌우면 그만입니다.
 
4.8 공복 윤리 강령의 대원칙 ― 쇠털 같은 세월 마냥 고다
사실 우리 운동경기자산부에서 전국 축구팀의 정식선수 비율을 앞으로 5년 동안 해마다 2.5%씩 높이겠다고 발표했다지만 실상 이 비율은 적자 운영에 가까운 부실 팀들을 정리해나가다 보면 그냥 저절로 달성되는 비율입니다. 마냥 고(go)다 그겁니다. 안목에 따라선 국민을 우롱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고, 뭐 그렇습니다.
 
그리고 정식선수는 아니지만 일반 관람객들 눈으로는 좀체 식별이 어렵도록 유니폼의 등번호를 정식선수와 유사한 십수 종류 글자체로 써서 붙이게 한 파출선수들도 선수등록 명부상 차별 없이 정식선수로 인정해주고 있으니 정식선수의 비율을 높이는 문제는 돈 적게 쓰고도 서서히 쉽게 해결될 걸로 봅니다.
 
구조정리 나고 사람 났지, 사람 나고 구조정리 났습니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기구와 설비만 잘 갖추도록 독려해주면 그 안에서 인력자산이야 그럭저럭 꾸려나가게 되어 있다니까요. 이렇게 하다보면 언제 잘릴지 모르는 제 자신의 임기도 역대 장관의 평균 수준은 채우지 않겠습니까? 허허.”
 
5. 공약(空約)
 
방송을 마치면서 장관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방송에 나가지 않았지요. “내 전문 분야는 산업인데 왜 운동경기인력자산부에 왔을까? 사실 나 자신 알다가도 모르겠어. 참, 총통은 총통후보 시절에 핵심 선거공약으로 파출선수 문제를 해결해보이겠다고 강변하던 것이 내 기억에도 생생한데 어찌 된 거지? 크크 그걸 믿냐? 바보들아!”
 
우화는 끝났습니다. 아, 축생들 앞에 눈물 나게 아름다운 나라!
 
정규환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 성공회대 분회장
Copyright 2004 ⓒ prometheus All right reserved.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