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우연의 일치일까
- 티코
- 2019
-
- 후보비방죄 집행유예 16주년
- 티코
- 2019
-
- 오랜만의 만나샘 저녘 예배
- 티코
- 2019
-
- 사람이란 존재
- 티코
- 2019
-
- 잔인한 성 프란시스 인문과정
- 티코
- 2019
11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임동님의 [신자유주의의 폭력성] 에 관련된 글.
청소년드라마에서 신비스런 이미지로 개성있는 연기를 펼쳐온 고XX 연기자가
대마초를 햇다는 뉴스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나.. 그것도 잠시뿐 오히려
그녀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누가 그랬던가.. 대마초를 하는
사람은 혁명가에 준한다고....그만큼 시대를 앞서가는 존재. 그에 반해 오랜 세월
훈육대상(사실 대한민국의 유치원~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자율적으로 스스로 배우
기 보다 무슨 동물원에 있는 한마디의 동물을 키워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
지나칠까??)의 시절을 거치면서 거세되다시피한 용기의 부족에 따른 순응적인 자세..
그게 대마초를 쉽게할 수 없게 만들긴 했다.. 물론 대마초 불법, 담배 합법이라는 부당
한 이분법에 순순히 승복하지 않고 온갖 유혹을 이겨내며 그것을 입에 대지 않는건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지만..
그러나 대마초가 타인에게 피해를 덜 준다, 담배가 자신과 남에게 피해를 준다..라는 단순한 등식으로 문제점을 논하기엔 왠지 시대가 서글프다는 생각이 든다. 유해하다고 불법이고 무해하다고 합법이지는 아니지 않나? 그렇게 따지면 어떤 온갖 문제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배
기독가스에 대한 규제는 대폭 강화되었어야 했다.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식품 첨가제와 같이 현실에서 사용하는 수 많은 상품들(특히 화학물질)에 대해 법은 충분히 제고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자의적으로 터무니 없이 낮은 기준치를 적용해 그것이 안전한지 확실한 검증도 없이 시판을 허가하는건 왠지 소비자를 생체실험 대상자로 밖에 여기지 않는 듯 하다..... 하긴 현대사회 들어 온갖 질환이 생겨나고 늘어나는걸 감안하면 이런 말하는것도 사치일듯 싶다. 물론 그렇게 해서라도 환자가 생겨야만 제약자본은 살을 찌우겠지만서도..쩝-.-
<볼리바리안 혁명> 민중이 주인되는 베네수엘라
얼마전인 2005년 5월 1일 대한민국 입장에서 보면 지구 반대쪽에 위치한 베네수엘라에서 매우 놀라운 선언이 있었다. 전세계 노동자가 거리로 나선 5월 1일 노동절,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의 노동절 집회에 모인 베네수엘라 국민들을 향해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는 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라고 선언했다. 전세계가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광풍속에 신음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주의"로 나가자는 국가 지도자의 자신감에 찬 선언이 나온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1999년 우고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래로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만들어온 “볼리바리안 혁명” 과정을 살펴보면 이러한 “사회주의” 선언은 절대로 놀라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귀결점임을 알 수 있다.
최근에 이남 진보진영에서도 안드라데 마르셀로가 만든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수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다큐멘타리를 통해서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건설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의 모습들을 접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으며 베네수엘라의 혁명과정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동안 제한된 외신들을 통해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대한 왜곡된 정보만을 접한 사람들이 진실을 깨닫고 연대와 지지의 마음을 보내고 있다. 노동자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는 이남의 진보진영은 21세기에 진행되고 있는 진정한 혁명인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에서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 지면을 빌어서 베네수엘라의 혁명과정을 설명하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들을 언급하겠다.
볼리바리안 혁명의 걸어온 길
베네수엘라는 세계 5위의 산유국이다. 어떻게 보면 축복받은 나라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석유를 실제 소유한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계급 사회인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국가가 부유하다는 것과 국민들이 잘사는 것과는 항상 별개의 일이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베네수엘라에서는 미제국주의와 국내 보수세력들이 한통속이 되어서 국가전략산업의 민영화, 퇴직금 제도 및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에 따라 급격하게 사회양극화가 진행된, 즉 잘사는 소수는 더 잘살게 되고, 못사는 대다수는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베네수엘라는 그 모순이 1989년 2월에 한꺼번에 폭발하게 된다.
모순이 한꺼번에 폭발한 이 사건은 "카라카소(Caracazo)“ 라 불린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아서, 페레즈 대통령이 집권하게 되고 무자비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한 결과로 교통비는 며칠만에 두배로 오르고 모든 물가가 엄청나게 올라 버렸다. 격분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상점을 약탈하고 폭동을 일으켰는데 페레즈 대통령은 군대를 동원해서 수천명을 학살하면서 이 폭동을 진압한다. 이전까지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 정치가 가장 안정된 국가로 평가되었다. AD와 COPEI 라는 두 당이 번갈아 집권을 하면서 소위 미국식 양당정치가 확립되었고, 1950년대 이후로는 남미에서 흔히 일어나는 쿠데타 같은 것도 없이 안정된 정치상황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이었을 뿐이었다. 실상은 AD, COPEI 로 대표되는 보수적인 정당들이 1958년에 Punto Fijo 협약을 통해 기만적인 보수대연합을 실시해서 번갈아 가면서 정권을 나눠먹고 수십년간 민중들은 정치에서 소외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계속된 모순들은 카라카소 민중봉기를 통해서 한꺼번에 터져버렸고, 기존의 보수 정치세력들은 민중들에게 총탄을 퍼부으면서 그들의 반민중성이 폭력적으로 드러나버렸다.
이전부터 군부내에 MBR-200 (볼리바르 혁명운동 200)이라는 혁명세력을 조직하고 있던 우고 차베스(당시 중령)는 이러한 상황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1992년 2월에 페레즈 대통령 정부를 전복하려는 구데타를 시도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쿠데타는 실패하게 되고 차베스를 포함한 주도세력들은 감옥에 갇힌다. 얼마 후 페레즈 대통령은 부패혐의로 탄핵을 당하게 되고 새로 대통령에 당선된 라파엘 칼데라는 1992년 쿠데타를 시도한 사람들을 석방하게 된다.
석방된 차베스는 군부 내의 혁명세력과 진보적인 시민세력을 규합하여 MVR (제5공화국운동) 을 창당하고 1998년 대통령 선거에서 56%에 이르는 역대 최다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AD와 COPEI 두 보수정당이 번갈아 가면서 집권하던 베네수엘라는 차베스가 이끄는 MVR에 의해서 새로운 정치지형이 형성되었다. 차베스는 당선되자마자 공약으로 내걸었던 제헌의회를 소집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국민투표를 통해서 제헌의회 소집을 승인받은 후 제헌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를 통해 131명의 제헌의회 의원을 선출했다. 제헌의회 의원 중 반대파측 의원은 6명밖에 안될 정도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제헌의회를 통해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이라 불릴만한 ”볼리바리안 헌법“을 만들게 된다. 대통령 소환제를 포함한 수많은 권리를 민중들에게 부여하는 이 헌법을 통해 베네수엘라는 이전의 제4공화국 틀을 벗어던지고 국명도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으로 바꾼 제5공화국으로 들어서게 된다.
새로운 헌법을 만든 후, 이 헌법에 의거해서 2000년에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주지사 선거 등 모든 선거를 한꺼번에 새로 치렀으며, 사법부도 새로 구성을 하게 되었다. 차베스 진영에서 모든 선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고 차베스는 다시 임기 6년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국회의원의 과반을 차베스 측에서 장악하게 되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제헌의회 전술의 진정한 위력이라 할 수 있다. 1999년에 차베스가 대통령이 됐을 때는 이미 한 해 전인 1998년에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 상황이었고, 보수세력이 절대다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제헌의회를 통해 의회, 행정부 및 사법부 등의 국가기구를 접수하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1998년에 형성된 보수적인 의회가 사사건건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을 것이고 결국 혁명은 제대로 추진될 수 없었을 것이다.
차베스는 70년대의 칠레의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이 보수적 의회에 발목잡혀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결국은 피노체트의 반동 쿠데타에 의해 실패한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차베스는 선거에 참여하면서 지속적으로 제헌의회 전술을 강하게 주장해왔고 대선에 당선된 후에 실제 그것을 실행함으로써 선거를 통한 제헌의회 전술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헌법과 새로운 선거를 통해서 판을 새로 짠 혁명세력은 헌법에 근거한 새로운 개혁법안들을 준비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작업들은 진척이 잘 되지 않고 지지부진했다. 그 이유는 MVR 결성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MVR은 1999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급히 결성된 정당이었으며, 차베스를 대통령으로 지지하는 누구나 MVR 로 받아들였다. 그러다보니 MVR 내에는 혁명세력도 있지만 기회주의 세력도 적지 않게 들어와 있었다. 이들은 제헌의회 헌법 제정과정이나 개혁적 법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드러내었다. 차베스는 결단을 내리고 2001년 11월 10일 비상대권(헌법에서 보장한 대통령의 권한으로 의회의 승인하에 1년동안 대통령이 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사용해서 49개의 개혁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지지부진한 개혁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법안에는 토지에 관한 법률, 어업에 관한 법률, 탄화수소에 관한 법률(석유산업에 대한 민중통제를 강화하는 법률), 소액금융에 관한 법률, 협동조합에 관한 법률 등 민중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MVR 내의 기회주의 세력들은 차베스 진영을 뛰쳐나가서 반대파에 합류하게 됐다. 또한, 차베스는 PDVSA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의 이사회에서 기존의 타락한 이사들을 한꺼번에 해임시켜버렸다. 이로써 국가의 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우리로 치면 삼성과 현대를 합친 정도라고 할까) PDVSA 는 진정한 민중들의 소유가 될 기초를 마련한 것이었다. 베네수엘라의 과두지배세력들은 베네수엘라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당한 것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반격의 준비에 들어갔다. 워싱톤의 미제국주의자들과의 공모하에 차베스를 몰아낼 보수반동 쿠데타가 2002년 4월 11일에 일어났다. 그러나, 군부내의 혁명세력과 민중들이 일심단결해서 쿠데타 세력을 대통령궁에서 몰아내고 섬에 갇혀있던 차베스를 구출해왔다. 쿠데타가 일어난지 48시간만에 상황은 역전되었다. 민중들은 총칼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더 이상 보수반동 세력들이 베네수엘라에서 주인행세하도록 놔두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반혁명세력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보수세력과 결탁한 CTV(베네수엘라 노동자 연맹)가 차베스 퇴진을 내걸고 전국적인 총파업을 벌였다. CTV는 이전부터 보수정당인 AD당의 지도하에서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받아들이는데 들러리나 서는 어용노조였다. 특히 PDVSA 의 노조가 주축이 되어서 진행된 이 파업은 2달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차베스는 파업에 적극가담한 PDVSA 직원 18000명을 해고시킴으로써 CTV를 무력화시켰다. 노조안팎의 진보적인 인사들은 썩을대로 썩은 CTV의 대안으로 UNT를 결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반혁명 세력의 공세에 대처하는 과정 속에서 ”볼리바리안 서클“을 위시한 일련의 자발적인 민중조직들은 그 폭과 깊이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들은 MVR 의 지도를 받지도 않으며, 정부에게 지원금도 받지 않는 진정한 자발적인 민중조직이다. 그들은 지역차원에서 주변 이웃들에게 볼리바리안 헌법에 대해서 교육하고 함께 협동조합을 구성하는 등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의 기초를 닦는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반동보수세력들은 쿠데타와 총파업 외에도 남은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바로 ”볼리바리안 헌법“에서 국민들에게 보장한 대통령 소환투표이다. 차베스 진영에서 만든 민주적인 헌법을 보수반동세력들이 무기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반대파들은 대통령 소환투표 요건을 맞추기 위해서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가짜 서명으로 반려되는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요건을 맞춘 반대파는(가까스로 요건을 맞춘 서명 조차도 불법으로 점철된 상황이었음) 2004년 8월 15일의 역사적인 소환투표일을 앞두고 결전의 날을 준비해갔다.
한편, 차베스 진영에서는 2003년 4월에 매우 중요한 일련의 ”미션(Mission)“들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이 프로그램들은 빈민가에서 병원을 개설해서 무료로 치료를 해주고, 문맹을 퇴치하고, 빈민들에게 무상으로 중등 및 고등 교육 및 대학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시중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생필품을 제공했다. 각 미션들은 대중들로부터 열렬하게 환영받았으며 볼리바리안 혁명 과정에 새로운 동조자들을 얻었다. 이런 미션들이 가능했던 것은 PDVSA에 대한 통제력을 확실하게 민중진영으로 가지고 오게 되면서, 거기서 나오는 재원들을 민중들의 이익을 위해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차베스는 소환투표에 대응하기 위해서 민중들이 스스로 조직해 줄것을 요청했다. 이에 호응하여 선거전투단위(UBEs)라는 형태로 조직된 수많은 사람들이 혁명과정을 수호하기 위해서 일터와 삶터를 넘나들며 소환투표에 반대할 것을 선전하고, 사람들을 조직해 들어갔다. 혁명과정에는 동조하지만 그때까지 소극적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조직화 하고 정치적 활동을 하는 첫 발을 내딛었다. 수천명의 무명용사들이 각각 모래 한알로써 기여를 했다. 베네수엘라 민중들은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단련되었다. 그들은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한 사람의 당당인 인간으로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2004년 8월 15일의 역사적 소환투표는 200만표의 압도적인 차이로 차베스의 소환이 부결되는 성공을 낳게 되었다. 잇다른 반혁명세력의 공세를 민중의 단결된 힘으로 돌파한 베네수엘라는 앞에서 언급한 다양한 미션들과 대토지 소유자들의 토지를 몰수하는 법안 등 지속적인 개혁조치들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2005년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서 ”21세가 사회주의“로 나아가자고 선언함으로써, 그동안 미진했던 핵심산업들과 은행들에 대한 국유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미제국주의에 맞서는 혁명
베네수엘라의 혁명과정인 “볼리바리안 혁명(Bolivarian Revolution)"은 스페인에 맞서서 남미를 해방시키고 남미의 통합을 시도했던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것이다. 차베스가 베네수엘라의 혁명을 시몬 볼리바르를 따르는 ”볼리바리안 혁명“으로 이름지은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스페인은 물러갔지만 미제국주의는 지금도 남미를 자기의 뒷마당 쯤으로 여기면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남미의 민중들을 착취하고 억압하고 있다.
차베스는 이러한 상황에서 남미국가들이 미제국주의에 맞서서 단결해야 진정한 해방을 이룰 수 있다는 판단을 가지고 있다. ”볼리바리안 혁명“ 이라는 이름에는 그와 같은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다. 차베스는 당선 이후 지속적으로 반미 외교를 펼치고 있다. 취임 후 미국의 반대에도 이라크 후세인 대통령을 방문했고, 부시 정권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비판했다. 최근에는 이란을 방문해서 이란 핵개발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했으며 IAEA 총회에서 이란에 대한 안보리 결의안 회부에 대해 베네수엘라 대표만이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얼마 전 유엔정상회의에서는 강력한 반미연설로 참석자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베네수엘라 석유판로가 미국에만 너무 집중되어 있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인도, 중국등으로 판로를 다변화함으로써 미래의 불안요소를 사전에 방지하고 있다. 쿠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과도 관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특히 쿠바와 지속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베네수엘라는 쿠바에 석유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쿠바는 그에 대한 답례로 베네수엘라의 무상의료제도인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에 쿠바의료진을 13000명이나 파견한 상황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최근에 대사관 설립에 합의를 했고, 조만간에 에너지 관련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역내 자유무역을 통해서 남미시장을 장악하려는 미국의 FTAA에 대항해서 남미의 진보적인 세력들을 모아서 ALBA (미주지역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를 추진하고 있다. ALBA는 단순히 자유무역하자는 경제공동체를 넘어서 연대의 정신에 기반한 정치적인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으며 명백하게 미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ALBA 추진의 일환으로 차베스 대통령은 “페트로카리브”, “페트로아메리카” 등의 석유동맹을 결성 및 추진하고 있다. 석유라는 자원을 통해서 역내의 에너지 공동체를 추진하고 있으며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역내 국가들에 저렴하게 제공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CNN 등이 남미의 소식을 미국의 입맛에 맞게 왜곡하는 것에 대항해서, 아랍의 알 자지라 처럼 남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방송국인 텔레수르를 만들어서 전세계에 방송하기 시작했다.
미제국주의가 콜롬비아에 미군을 주둔시켜 베네수엘라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자위력을 강화하기 위해 러시아 등에서 무기를 도입하고 200만명의 예비군을 창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핵에너지 개발을 통해서 에너지 문제와 함께 자위력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최근 남미국가들에서 잇따라 좌파정권들이 집권하면서 사면초가에 몰린 미제국주의에게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이러한 시도들은 눈에 가시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나 단결된 남미의 민중들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이겨내고 민중이 해방되는 참다운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위치하고 있다.
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베네수엘라
“나는 매일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며 내 마음 속에는 한점의 의심도 없습니다. 이전부터 수많은 지식인들이 말해왔듯이, 우리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사회주의를 통해서만, 평등과 정의가 살아있는 진정한 사회주의를 통해서만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민주주의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강요하는 방식의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
2005년 초에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사회주의 선언을 하면서 일련의 혁명적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다. 그 중에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국가 기간산업의 국유화 및 은행에 대한 정부의 통제 강화이다. 얼마전 9월에 차베스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광업을 국유화 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존의 외국자본들에게 허가해 준 채굴권을 모두 취소하고 이후에도 다시 채굴권을 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국영 철강회사를 설립해서 직접 광물들을 개발할 것을 천명했다. 이전에는 제국주의 자본가들이 베네수엘라에 들어와서 석유 뿐만 아니라 광물까지도 자신들의 돈벌이 수단에 사용했고, 베네수엘라 민중들은 전 국민의 80%가 빈민일 정도로 가난에 찌들은 상황이었다. 우고 차베스의 광업 국유화 선언은 더 이상 베네수엘라의 소중한 자원들이 몇몇 자본가들의 배나 불리는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고, 민중을 대변하는 정부에서 직접 통제를 행사해서 민중들의 이익에 맞게 사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또한 국영 철강회사를 설립하기 위한 재원은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를 이용하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것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정부가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를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이러한 것은 은행에 있는 돈들이 초국적금융자본들이나 투기자본들의 돈놀이에 활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민중들의 이익에 필요한 곳에 쓰겠다는 의미이다. 경제야 말로 가장 정치적인 부분이다. 국내외 자본가들이 정부의 시장통제가 경제를 망친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자신들이 맘대로(노동자를 맘대로 짜르던, 환경오염을 시키던, 산업재해를 증가시키든 상환없이) 돈벌이를 하는데 방해놓지 말라는 정치적 의미에 다름 아닌 것이다.
얼마전에는 토지개혁법에 입각해서 전체 농지의 80%를 유상 및 무상으로 몰수해서 빈농중심의 협동농장에 나눠주겠다고 선언했다. 1.5%의 인구가 토지의 80%를 소유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농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으며,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이 땅을 생산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놀림으로써 국가 차원에서도 손실이 심했다. 그리고,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베네수엘라의 상황에서 식량주권을 위해서도 토지개혁은 절실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토지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으며, 외국회사들이 소유한 토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차베스 대통령은 법 집행을 위해서 군대도 동원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직장을 직접 통제하는 실험이 진행중이다. 유럽 사회민주주의식으로 주식 좀 받고 이사회 몇자리 차지하는 식이 아닌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공장통제 방식의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사회주의 방식이고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하겠다. 이에 관한 BBC 방송의 뉴스가 있어서 직접 번역해서 옮겨본다.
차베스, 직장에서의 민주주의를 요청하다.
2005년 8월 18일 화요일
Iain Bruce - BBC
알카사(Alcasa) 3번라인의 주조실은 열기와 소음이 너무 심하다. 이 곳은 Puerto Ordaz 남동부에 있는 두 개의 큰 알루미늄 공장 중 하나이다. Puerto Ordaz 는 베네수엘라에서 기초산업시설이 모여있는 곳이다.
이 곳은 노동자 참여경영(co-management) 이라는 새로운 실험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노동자 참여경영을 “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중요한 단계로 얘기한다.
전기공으로 일하는 Alcides Rivero 씨는 노동자 참여경영(co-management)이 37년의 회사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가 통제권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산과 기술에 대한 문제를 결정하는 것도 우리 노동자들이고, 우리의 관리자를 선출하는 것도 바로 우리 노동자들입니다.”
인사과에서 일하는 Marivit Lopez 씨는 노동자들이 2006년을 대비해서 “참여예산”을 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각 부서의 노동자 평의회에서 기존의 제안을 토론하고 수정해서 회사의 요구에 제대로 들어맞는 예산을 만듭니다.”
현대 사회주의 (Modern Socialism)
노동자 평의회는 알카사(Alcasa)의 노동자 참여경영 실험에서 핵심적 부분이다.
3번 창고에서 진행되는 회의에서, 각각의 팀에서 선출된 사람들이 화이트보드에 각종 통계자료와 도표들을 쓰고 있다.
대표자들은 각 부서의 기술적 문제점들에 대한 가능한 해결방안들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순수한 알루미늄을 분리해내는 graphite anode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방법같은 것들이다.
전체 생산과정을 총괄하는 사람에 따르면, 노동자 참여경영의 목적 중 하나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장벽을 허물고, 생산을 설계하는 사람과 실제로 생산을 하는 사람이 달랐던 상황을 넘어서는 것이다.
알카사(Alcasa)의 대표로 임명된 Carlos Lanz 씨(이전에 좌익 게릴라 지도자였음)는 성과가 이미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주적으로 계획을 세우니까 다소 뒤쳐진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이 11%나 증가했다.”
Lanz 씨는 베네수엘라의 노동자 참여경영은 지분의 일부를 노동자에게 떼어주고 이사회에서 노동자에게 몇자리 내어주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식과는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베네수엘라의 노동자 참여경영은 노동자들이 공장을 통제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하나의 단계입니다.”
노동자의 개입
이제까지 베네수엘라의 노동자 참여경영 계획은 Alcasa 같은 국영기업과 이미 파산해버린 두개의 작은 민간기업에 국한되서 실시되었다.
올해 초 정부는 제지회사인 Venepal 과 밸브회사인 Valvulas를 접수했다. 이 회사들은 국가가 51%의 지분을 가지고 나머지 49%를 노동자가 (협동조합을 조직해서) 소유한 상태로 재가동해서 노동자 참여경영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노동절 때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그 자신이 더 나아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노동자 참여경영을 실시하는 민간기업들에게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 법안이 의회에 제출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가의 개입
대통령의 선언에 기업인 대표들은 혼란스럽고 걱정에 사로잡혔다.
베네수엘라 미국상공회의소의 Tony Herrera 씨는 베네수엘라 정부의 노동자 참여경영 제안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에 대해서 국가가 더욱 통제하겠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전부터 베네수엘라의 문제점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길이 좋은 의도들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려고 많은 시도를 해왔고, 결과는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베네수엘라 경제인 연합 Fedecameras 의 회장인 Albis Munoz 씨는 노동자 참여경영을 베네수엘라 회사들에 법률로 강제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독일의 기독교 민주당이 발전시킨 방식의 노동자 참여경영(사용자, 노동자, 소비자들 간에 자유로운 협상을 통한 전략적 제휴)은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알카사(Alcasa)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그것과 달라보인다.
Marivit Lopez 씨는 새로운 생산방식(사회주의를 의미함)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혁명적 노동자 참여경영”이라 부르는 것을 더욱 밀고 나가야 한다고 열정적으로 말했다.
정부의 지원 하에, 그녀와 알루미늄 회사의 사람들은 지역의 다른 국영 산업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자 참여경영을 조직하는 방법”에 대해서 교육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혁명이 성공한 원인
베네수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유는 다양하게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핵심적이고 중요한 요인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몇가지 원인을 언급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군부 내에 확고한 혁명세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지난 시절의 수많은 변혁적 시도들이 좌절됐던 결정적 원인들 중의 하나가 제국주의와 결탁한 국내 보수 반동 군인들의 쿠데타이다. 당연히 베네수엘라에서도 2002년 4월에 이러한 반동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군부 내의 혁명적 세력들이 민중들과 일심단결해서 물리쳤다. 차베스 자신이 군인 시절에 MBR-200 이라 불리는 혁명조직을 건설했고 그 역량이 지금껏 혁명과정을 수행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둘째,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999년 대선 승리후 제헌의회 소집을 통해서 국가기관을 한꺼번에 접수했다는 점이다. 이미 이 글의 앞쪽에 자세히 언급을 했으니 더 얘기하지는 않겠다.
셋째, 민중들이 정치적으로 각성하고 스스로 조직화되었다는 점이다. 차베스는 2000년에 MVR(제5공화국운동)의 우경화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혁명속의 혁명”을 수행할 것을 민중들에게 요청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MVR에는 내부에 기회주의 세력들도 존재한다. 차베스는 이전의 MBR-200의 정신을 계승하고 민중들이 "볼리바리안 서클“로 스스로 조직할 것을 요청했다. 이 조직은 2003년 현재 220만명의 사람들이 가입되어 있으며 지역 및 직장에서 볼리바리안 헌법을 학습하고 협동조합 결성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그리고, 보수반동 쿠데타, 총파업, 소환투표 등 세 번의 위기를 돌파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조직의 폭과 깊이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넷째, 기회주의와 타협없는 단호한 민중독재(PT독재)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49개 개혁법안 통과시에 보수반동세력 뿐만 아니라 MVR 내부의 기회주의세력들도 반대했지만 차베스는 비상대권(헌법에서 보장한 대통령의 권한으로 의회의 승인하에 1년동안 대통령이 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발동해서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CTV가 2달간 총파업을 진행했을 때 차베스는 불법적 파업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고 파업에 적극 가담한 PDVSA의 직원 18000명을 해고 시켰다. 이 인원은 PDVSA 전 직원의 절반에 가까운 수이다. 이것을 통해서 보수 야당인 AD당의 지도를 받으며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들러리나 섰던 CTV가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었고 민주노조인 UNT가 탄생하게 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베네수엘라의 혁명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주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세계 혁명역량의 약화로 인해서 자본주의(제국주의)가 신자유주의라는 외피를 쓰고 전세계 민중들을 말려죽이고 있다. 이러한 엄혹한 시기에 베네수엘라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혁명은 이남 민중들에게도 많은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남 진보세력들이 앞으로 토론하고 연구할 중요한 과제이다. 필자도 나름의 고민이 있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며 앞으로 많은 사람들과 토론해보고 싶다. 다만 민주노동당이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번 고민해볼 내용에만 한정해서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다.
최근에 이남에서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개헌논의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정치권, 시민단체 및 학계에서 토론회 및 발표회 같은 것이 진행되면서 분위기를 잡아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니 내각제니 하면서 이리 재고 저리 재는 모습들이 가관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대연정이니 소연정이니 하면서 그러한 판을 짜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논의의 중심에 민중들은 없다. 개헌을 한다고 해도 어차피 기존의 국회의원들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법안 만들고 통과시킬 것이기 때문에 개헌이라는 상황조차 그들 보수 정치권의 손안에 있다. 그들은 2007년 대선을 이러한 기만적인 개헌논의로 판을 짜들어가면서 어떻게든 집권을 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의 진보진영, 특히 민주노동당은 베네수엘라를 좋은 사례로 삼아, 이러한 기만적인 개헌논의를 폭로하고 제헌의회를 소집하는 것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2007년 대선에서 선거공약으로 제헌의회 소집을 고민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말을 남기겨 글을 마무리 한다.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빈민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입니다.”
|
||||||
안데스 산맥의 해발 2640m 고원 위에 있는 이 도시의 도로는 일요일마다 7시간 동안 자동차 아닌 사람 천국이 된다. 간선도로의 자동차 통행은 금지되고 온통 걷고 달리는 사람들, 자전거 이용자와 롤러스케이트·인라인스케이트 이용자들이 그곳에 넘쳐난다. 이때마다 150만명의 시민이 몰려나와 ‘속도’가 사라진 텅빈 공간을 느릿한 산책과 달리기로 채운다고 한다. 이름하여 1982년부터 내려온 ‘사이클로비아’란 도시 전통이다.
보고타는 일요일마다 ‘차 없는 도시’
‘사람이 1순위, 자동차는 2순위’를 꾀하려는 교통정책들은 보고타에서 자주 눈에 띈다. 가장 붐비는 평일 출퇴근 시간대엔 시 전체 자동차의 40% 가량이 달릴 수 없다. ‘피코 이 플라카’라는 강력한 부제운행 체제가 모든 개인 자동차 소유자에게 월~금요일 중 이틀씩 차를 몰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차 없는 날’ 풍경은 또 얼마나 색다른 감동을 세계인들에게 전해주었던가. 2000년부터 보고타에선 한해 중에 하루를 잡아 ‘차 없는 날’을 선포하고 거의 모든 시민이 이날 자동차를 집에 두고 걷거나 자전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또는 시가 공식 허가한 일부 버스와 택시를 타고 직장과 학교를 오가거나 쇼핑을 하러 다닌다. 2000년 2월24일 첫 행사의 참여율은 무려 98%였다. 이날은 ‘교통사고 사망자 없는 날’이기도 했다.
박용남(52)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이 최근 낸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시울 펴냄)는 자동차 우선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이라면 쉽게 상상하기도 힘든 색다른 세계 도시들의 풍경을 보여준다. 보고타 외에, 지난 2000년 <꿈의 도시 꾸리찌바>(녹색평론사)에 소개된 브라질의 녹색도시 꾸리찌바와 핀란드 헬싱키, 일본 오이타현 등이 이 책에서 다뤄진 녹색교통의 도시들이다. 신행정수도와 여러 도시 개발계획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는 요즘의 이 땅에서도 한번쯤 제대로 보고싶은 녹색 사례들이기도 하다.
지은이의 관심은 도시 개발과 계획 가운데에서도 무엇보다 교통정책에 쏠려 있다. 그리고 자동차를 우선하는 지금의 우리 문화에 대해 ‘코페르니쿠스 같은 인식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대전환’이라 함은 낡은 생각에서 새로운 생각으로 확 바꾸라는 건데, 낡은 것이란 도로만 더 많이 더 넓게 건설하면 교통혼잡이 해결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이고(허리띠를 늘린다고 비만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새로운 것이란 인간 존엄성이 살아 있는 녹색도시가 지속가능한 살 길이라는 얘기로 요약될 만하다.
자동차 문화는 도시 자체를 퇴행시키고 빈부에 따른 삶의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그의 얘기는 이렇다. 도시의 자동차들이 계속 늘어나면 길을 넓히고 주차장을 세우느라 대규모 공공투자를 해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대다수 시민들의 통행은 더 어려워지고 교통혼잡과 대기오염은 가중한다. 다시 더 많은 도로와 시설이 필요하다. 간선도로, 주차장, 고속도로, 육교, 지하도…. 불법주차는 불가피해지고 쾌적하게 걷기는 힘들어진다.
|
||||||
자동차 소유 않고 빌려쓰기 제안
자동차 문화에 대한 지은이의 비판은 매우 강하다. 그는 인간을 소외시키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자동차를 일러 “자동차는 도시의 암세포다”(136쪽)라고 비판하며, “자동차에 중독된 사회”(160쪽)에서 벗어나고 “자동차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다.
그가 오랜 동안 살펴온 세계의 여러 녹색도시 사례들을 바탕으로, 지은이는 이 책의 또다른 중심인 제2부에서 ‘작은 행성을 위한 교통모델 찾기’에 나선다. 무엇보다 차량 통행과 도로를 줄여나가는 도시개발, 대중교통을 우선하고 걷기를 장려하는 도시개발, 걷기나 자전거 타기만으로 웬만한 도시 생활을 다 할 수 있게 주요 공간을 모으는 고밀도의 도시개발로 나아가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또 개인별로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협회(협동조합)에서 자동차를 빌려 쓰는 ‘자동차 공동이용’(카 셰어링)의 작은 실천들도 제안한다. 1987년 처음 시작된 자동차 공동이용은 현재 유럽과 미국, 캐나다, 일본 등지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도 자세히 다뤄
지은이는 준공영제를 포함한 버스체계 개편사업을 펼친 서울시 정책과 관련해선 “서울시의 간선급행버스 시스템은 우리나라에서 대중교통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아주 의미있는 사례”라고 평가하면서도 “아직 국제사회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을 결코 아니다”라며 지속적인 개선을 촉구했다.
이 책은 거창한 세계 차원에서 일어나야 할 녹색 프로젝트를 주창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역에서 이뤄지는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꾸리찌바 전 시장 레르네르가 했다는 말은 지은이에게 큰 울림을 던졌다. “만약 당신이 우주가 되고자 한다면 당신의 마을을 노래하십시오. 이것은 문학에서 진리이고, 음악에서도 진리입니다. 그리고 도시에서도 역시 진리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마을을 알아야만 하고 사랑해야만 합니다.”(73쪽) 세계 각지에 흩어져 이뤄지는 작은 실천들이 거대 도시, 그리고 우리 지구호의 운명을 조금씩, 그리고 끝내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여기에 담겨 있다.
자동차 의존형 도시문화에 대한 경고와 대안 찾기를 시도하는 이 책은, 일그러진 우리 공동체의 삶을 회복할 만한 또다른 작은 실천들의 사례로서, 시민 기금을 모아 자연과 역사유물을 보존하자는 운동인 ‘내셔널트러스트’와 공동체가 통화의 통제권을 갖게 하자는 ‘지역화폐’ 운동에 관해서도 자세히 다뤘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어슐러 휴스/영국 런던메트로폴리탄대학 교수 |
|
||||||
“가난은 한갓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라는 시의 일부다. 삶의 남루에도 불구하고 인간됨의 위엄은 훼손될 수 없다는 메시지가 자못 울림이 있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던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도, 가난에 대한 꽤 낭만적인 헌사에 바쳐진 듯했다.
그러나 산 체험으로서의 가난은 사실 혹독하다. 가치나 지향이 사라진 가난의 혹독함은,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절규와 함께 강림한 비극이다. 가난에 단련될 수 없는 구체적인 인생들에게, 가난에 대한 성찰적 물음은 죄다 ‘개똥철학’에 불과하다. 게다가 ‘돈’ 본위의 사회가 되어버린 오늘 날, 가난은 ‘무능의 증거’로 규탄된다. ‘부자 아빠’가 노골적으로 예찬되는 세계에서 가난한 나의 사랑, 행복, 타고난 마음씨는 물론이고, 천국 따위는 도대체가 낯선 은하계인 것이다. 설화 속의 흥부가 다시 태어난다면, 그와 놀부 사이에서 갈등했던 ‘제비’는 오늘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가난은 신자유주의라는 지배적 시스템의 측면에서도 규탄되지만, 그것의 모순을 지양하려는 대안적 시스템에서도 곧잘 ‘제거’의 대상으로 떠오르곤 한다. ‘민중의 수사학’으로 무장된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조차 ‘가난’을 악의 상징으로 규정하는 일을 우리는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가난의 반대편에 있는 ‘부’야말로 ‘선’이라는 이야긴데, 이러한 관점은 가치론적으로 보자면, 결코 올바른 시각이 아니다.
우리는 ‘가난’과 ‘부’의 문제를 물질적 차원에서 보는 일과 가치론적 차원에서 보는 일, 그리고 공동체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잘 구분해야 한다. 대원칙은 ‘가난’과 ‘부’가 그 자체로 옹호되거나 규탄되어야 할 상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난과 부, 그 자체를 양극화하여 규탄하거나 옹호하는 시각은 오히려 초점이 빗나간 논의를 이끌어내기 쉽다. 부자 아빠를 예찬하면서 가난한 아빠에 대해 무능의 딱지를 씌우거나, 부자 아빠들의 정체야말로 가난한 아빠에 대한 착취에 기반하고 있다는 시각은 선동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는 주장이지만, 이는 물질적 양극화 못지않은 인식론적 편견을 불필요하게 확대재생산 한다.
가난과 부의 가치평가 문제에서 중요한 사항은 ‘경쟁조건의 평등성’과 이에 따른 ‘분배구조의 형평성’, 개별적 필요를 과잉 초과하는 부의 사회환원을 통한 사회구성원 공통의 이익과 복지의 증진 문제이다. 이러한 사실과 함께, 가치론적 차원에서 ‘가난의 철학’을 정립하려는 노력에 대해서도 우리는 좀더 섬세해지고 성숙해져야 한다. ‘자발적 가난’에 대한 지식인의 담론이 자주 공허한 지적 허위의식으로 전락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와 무관하게 비움을 통해 삶을 채울 수 있다는 사색은 인간들이 지속해왔던 오래된 성찰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명원/서울디지털대 문예창작학부 교수
자립형 소농 10만명을 기르자
농산업 본래의 태생적 저부가치성, 농산물 유통시스템의 전근대성, 비교열위의 대외경쟁력, 소농 중심 생계형 생산기반 구조, 가용 노동력 급감, 노령인구 점증, 전통 농경문화 훼손, 농민의 자구의지 상실 및 생존 무력감 만연 등으로 농촌공동체는 골다공증을 앓고 있다.
관료적이고 전근대적인 기존의 대책으로는 실패의 악순환 고리만 더 길어질 게 뻔하다. 정부는 오로지 가해자이고, 농민은 순전히 피해자라고 할 수는 없다. 무책임한 양비론으로 심판이나 보자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 같이 고민해보자는 진심이다.
경남 창녕군 영산면 구계리는 우리 농촌문제의 훌륭한 표본이다. 마을 주민 중 60% 이상이 65살 이상의 이른바 노인이다. 홀로 사는 독거노인도 적지 않다. 빈집은 이가 빠진 듯 거슬린다. 산골 다랭이논에 기대는 벼농사는 연간소득의 10분의 1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소득 절반 이상을 태풍피해복구 공사판에서 품을 팔아 충당했다. 농촌경제가 아니라 조경회사나 인력송출회사의 매출구조다. 전형적인 저부가가치 작물인 단감 농사는 하던 농사니 계속 하고 있다. 마을 뒷산을 타고 다니며 산나물이나 송이버섯을 따서 팔아야 먹고 살 수 있다.
이런 마을에 정부에서 농촌개발사업을 시범적으로 시행해보겠다고 나섰다. 수십억원의 사업비를 써야 하는 정부도, 개발의 마스터플랜을 그려내야 하는 개발사업자도 난제일 것이다. 마을사람들도 그저 좋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업비를 차라리 돈으로 나눠주면 어떤가. 다른 마을처럼 어설프게 개발하느니 그대로 놔두는 게, 더 농촌스럽고 친환경적일 게 아닌가” 하는 자조와 우려가 무성하다. 정부의 사업목적이나 개발업자의 자세가 틀렸다기보다, 농촌의 입장과 조건이 그만큼 어렵다고 목청을 높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농촌과 농업의 처지를 아무 대책 없이 방치할 수는 없다. 어쨌든 농촌·농업지원책은 자꾸 기획되고 시행되어야 마땅하다. 농촌은 국가공동체의 존립기반이고, 농업은 국가안보의 보루이자 국민의 생명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세상사 문제의 핵심이 대개 사람이듯, 해법의 본질도 사람으로부터 찾는 게 좋을 것이다. 오늘날 농촌의 문제나 현상을 웅변하는 가장 현저한 장면이 무엇인가. 농촌경제의 노동력, 농촌공동체에서 물심일체의 생산성과 창조성을 책임져야 할 청장년층의 부재 아닌가.
‘자립형 10만 농군’을 길러내자. 대도시에 기형적으로 집중돼 결국 도시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는 청장년층을 농촌으로 이주, 분산시켜내자. 농촌에서, 농업을 생업현장이자 삶의 터전으로 삼도록 기회를 만들어주자. 그들에게 천지사방에 놀리고 있는 농토를 경작하게 하자. 살 집도 빌려주고 영농·생계자금도 지원해주자. 농산물은 우선 정부에서 제값쳐서 팔아주자. 이른바 ‘자립형 소농 10만 농군’이 우리 농촌을 지탱하고 살아간다면, 문제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겠는가.
그리고 ‘현재의 농촌마을 중심의 하드웨어’가 아닌 ‘미래의 자발적 농민 중심의 소프트웨어’로 틀을 새로 짜자. 그렇게 새로운 정책과 사업의 패러다임으로 다시 해보자. 속도와 개발 일변도의 계량적 성장 이데올로기가 행복을 선물한다는 착각에서 이제 깨어나자. 그래서 유기적이고 연기적인 생태공동체와 생명중시 이데올로기가 사람사는 세상을 보장한다는 제 정신으로 다투어 돌아가자. 스스로 먼저 마음을 놓치지 않으면, 세상에 ‘이미 때가 늦었다’는 말은 없다.
(정기석 생태공동체마을 기획자 )
지구의 미래와 소농의 부활
현대사회가 농업중심의 자급적 생존방식을 버리고, 공업사회를 지향해오는 과정에서 농사마저도 화폐증식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실제로 진짜 농민이라고 할 수 있는 ‘소농’이 거의 소멸 직전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구의 생태적 미래를 생각할 때, 공업화의 전략으로는 더이상 나아갈 길이 없다는 것, 즉 농업중심의 순환사회가 아니고는 장기적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대규모 경작지를 근거로 기계화와 화학물질에 의존하는 ‘현대적 농법’으로는 이러한 순환사회를 이룩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급속히 사라져가는 소농의 존재를 되살리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문명사회의 지속적인 생존여부를 결정하는 사활적인 문제임에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소농은 자연과 땅을 가장 효과적으로 다루어왔고, 그렇게 함으로써 다양한 자연의 자원을 지속가능하게 관리하여 왔으며, 다양성이 풍부한 농사체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왔다. 자급적 집약농업인 소농의 공적 가치는 제3세계는 물론, 미국 등 선진국에서조차 다시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땅에 뿌리박은 지혜
그러나, 소농의 운명이 중요하다는 것은 반드시 생태적 위기에 관련해서만이 아니다. 소농은 참다운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다는, 흔히 간과되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쓰노 유킨도는 이 책에서 이와 관련해서 퍽 흥미로운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말기, 당시 그는 시골의 중학생으로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이 전쟁에서 일본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자기 할아버지를 비롯한 마을의 어른들이 모여서, 일본은 반드시 진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애국적인 감정에 꽉 찬 순진한 소년의 항의에, 그의 할아버지는 손자의 어리석음을 나무라면서, 자기가 지금 쓰고 있는 전정(剪定) 가위는 20년 전쯤에 미국여행에서 돌아온 어떤 사람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인데, 20년이나 사용한 가위가 아직도 새것이나 다름없이 말짱한데, 이 정도로 튼튼한 강철과 용수철을 이미 오래 전에 만들 수 있는 미국이 전쟁에서 일본에 패할 리 없다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
이 일화가 갖고 있는 함축은 의미심장하다. 지금 우리의 핵심적인 비극은, 이러한 사물의 핵심을 뚫어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소농의 몰락과 더불어 우리사회에서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소농은 식량안보와 국토보존이라는 측면에서만 보호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소농을 살리는 문제는 우리의 인간다운 삶 전체의 운명과 직결된 문제이다. 작은 땅에서 땅을 사랑하고, 이웃들과의 연대와 협동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생존조건 때문에 소농은 거대자본과 국가기구에 예속된 지식인, 전문가, 관료들에게는 절대로 기대할 수 없는 자주적 정신과 협동적 자치의 삶의 원천이 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땅에 뿌리박은 자주적 지혜를 철저히 외면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진보라고 믿는 어리석은 미신에서 지금 우리는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목차 | |||||||||
머리말|농업의 영속성과 소농의 의의
|
ⓒ 이명옥 |
살면서 보면, 애초에 좋은 얼굴을 타고났으면서도 왠지 인상에서 경망스럽고 거만하며 조잔한 사람을 보게도 되고, 반대로 얼굴은 비록 잘 생기지 못했으나 인품이 남달리 넉넉해 뵈는 사람을 보게 되는 때도 있다.
그렇게 잘생긴 얼굴이 아니면서도 좋은 얼굴로 평가받는 분을 꼽으라면 대표적으로 민족의 지도자이신 백범선생님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추앙해 마지않는 선생님은, 국민적 필독서가 되고있는 백범일지에서 술회하기를 젊어서 평범하게 살 때에는 결코 좋은 얼굴로 주목받거나 평가받지를 못했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선생이 마침내 민족지도자가 되니 이구동성으로 호상(虎相)을 지녔다며 평가를 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세파에 시달리다보면 독특한 자기만의 고유한 인상을 지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인상이라는 것이 아무렇게나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즉, 무언가 목적의식을 가지고 치밀하게 인생설계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를 못한 사람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 살아온 모습이 그대로 그려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면 마땅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좋은 얼굴, 좋은 인상에 대해 생각해 보는 때가 있다. 우선 떠오르는 게 좋은 얼굴 만들기로 경계를 삼을 것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의미다. 인간관계 속에서 마냥 곱게 적응하기는 어려운데, 이때 튀어나와 정을 맞으면 그저 상처 입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선 좋은 얼굴을 가꾸자면 모난 모서리를 없앨 필요가 있다. 모난 3면체의 물체가 점차 닳고 닳아 4면체, 5면체, 6면체, 8면체로 차츰 바뀌어져 마침내는 둥근 원(圓)이 되듯이. 전에 정부의 어느 산하단체에서 새 천년을 맞으면서 한강변에 '천년의 문'이란 원형상을 세우겠노라고 발표했다. 그 기사를 읽은 나는 어쩌면 서울에도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자유여신상과 같은 명물 상징물이 하나 생기겠구나 생각했다.
단지 미적인 아름다움을 기대 해서가 아니라, 원형이라면 그것이 모든 것을 포용하고 아우르는 상징물로서 보는 사람에게 좋은 반면교사적 느낌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지만, 애석(愛石)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좋은 원석(圓石) 하나쯤 가져보는 걸 소망한다. 그것을 가짐으로서 참 애석의 깊이를 알며 느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 최상의 감상안(鑑賞眼)을 요하는 원석을 가장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또한 초보자들이다. 그러니까 이처럼 초보자와 대가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원의 계념이요, 세계인 셈이다. 가꿔가는 얼굴도 마치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돌의 모서리가 닳고닳아 차츰 원석이 되어가듯, 좋은 얼굴 가꾸기도 실로 그런 지난한 노력 끝에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수년 전, TV진품명품 시간에 백범선생의 글씨가 한 점 소개되었다. 수전증을 앓아 썩 잘 써진 글씨가 아닌데도 감정인은 그윽한 눈길을 보내며 하는 말이 '선생님의 인품이 느껴진다'하였다. 그러면서 보통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어 후한 값을 매기는 것이었다. 그건 두말할 것도 없이 선생님의 얼굴의 값이며, 인품의 값이었다. 또한 좋은 인상을 만들어간 그간의 노력의 보상이었다.
좋은 인상을 만들 바에는 기왕이면 여유까지를 지니면 어떨까. 그런 인상이면 사람을 껴안고 따르게 하는 포용력도 자연히 갖추게 되리라.
링컨 대통령에 대한 일화이다. 어느 날 링컨 대통령이 값싼 3등 객실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못생긴 한 할머니가 만면에 웃음을 띄며 대통령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이것을 받으십시오" 할머니가 내미는 것은 무슨 증표였다. " 이것이 무엇입니까" 대통령은 긍금하여 물었다. 그러자 노파는 천연덕스럽게, "이것은 며칠 전 내가 어떤 사람에게 받은 거라우. 자기보다 못생긴 사람을 만나면 주라고 해서 여짓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운 좋게 오늘 당신을 만났지 뭐유."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 그래요. 잘됐군요." 대통령은 성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넉넉한 웃음으로 노파의 무례를 거부감 없이 받아 주었다.
아마, 그때 보여주었던 링컨 대통령의 인상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최상의 것이 아니었을까.. 백범선생님의 인상이나, 링컨 대통령의 인상은 저절로,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어디 보통 범인들이 흉내나 낼 수 있는 것인가. 어디서 그런 인품의 사람을 만나면 참 행복할 것 같다. 마주칠 때는 얼굴에 대한 미추 따위는 하나도 문제가 되지 없으리라.
어디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운수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은데, 운 좋게 한번 그런 얼굴을 만나볼 수는 없을까. 요즈음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답시고 말은 하면서 자기 사익이나 돌보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돼서인지 훌륭한 인품의 어른들이 한없이 그리워만 진다.
댓글 목록
돕
관리 메뉴
본문
자동차는 도시의 암세포이자 지구 전체에 퍼진 암세포라고 생각해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