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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초 합법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임동님의 [신자유주의의 폭력성] 에 관련된 글.

청소년드라마에서 신비스런 이미지로 개성있는 연기를 펼쳐온 고XX 연기자가

대마초를 햇다는 뉴스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나.. 그것도 잠시뿐 오히려

그녀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누가 그랬던가.. 대마초를 하는

사람은 혁명가에 준한다고....그만큼 시대를 앞서가는 존재. 그에 반해 오랜 세월

훈육대상(사실 대한민국의 유치원~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자율적으로 스스로 배우

기 보다 무슨 동물원에 있는 한마디의 동물을 키워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

지나칠까??)의 시절을 거치면서 거세되다시피한 용기의 부족에 따른 순응적인 자세..

그게 대마초를 쉽게할 수 없게 만들긴 했다.. 물론 대마초 불법, 담배 합법이라는 부당

한 이분법에 순순히 승복하지 않고 온갖 유혹을 이겨내며 그것을 입에 대지 않는건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지만..

그러나 대마초가 타인에게 피해를 덜 준다, 담배가 자신과 남에게 피해를 준다..라는 단순한 등식으로 문제점을 논하기엔 왠지 시대가 서글프다는 생각이 든다. 유해하다고 불법이고 무해하다고 합법이지는 아니지 않나? 그렇게 따지면 어떤 온갖 문제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배

기독가스에 대한 규제는 대폭 강화되었어야 했다.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식품 첨가제와 같이 현실에서 사용하는 수 많은 상품들(특히 화학물질)에 대해 법은 충분히 제고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자의적으로 터무니 없이 낮은 기준치를 적용해 그것이 안전한지 확실한 검증도 없이 시판을 허가하는건 왠지 소비자를 생체실험 대상자로 밖에 여기지 않는 듯 하다..... 하긴 현대사회 들어 온갖 질환이 생겨나고 늘어나는걸 감안하면 이런 말하는것도 사치일듯 싶다. 물론 그렇게 해서라도 환자가 생겨야만 제약자본은 살을 찌우겠지만서도..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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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바리안 혁명

진우님의 [영화 "볼리바리안 혁명"] 에 관련된 글.

<볼리바리안 혁명> 민중이 주인되는 베네수엘라

 

얼마전인 2005년 5월 1일 대한민국 입장에서 보면 지구 반대쪽에 위치한 베네수엘라에서 매우 놀라운 선언이 있었다. 전세계 노동자가 거리로 나선 5월 1일 노동절,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의 노동절 집회에 모인 베네수엘라 국민들을 향해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는 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라고 선언했다. 전세계가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광풍속에 신음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주의"로 나가자는 국가 지도자의 자신감에 찬 선언이 나온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1999년 우고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래로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만들어온 “볼리바리안 혁명” 과정을 살펴보면 이러한 “사회주의” 선언은 절대로 놀라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귀결점임을 알 수 있다.

 

최근에 이남 진보진영에서도 안드라데 마르셀로가 만든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수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다큐멘타리를 통해서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건설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의 모습들을 접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으며 베네수엘라의 혁명과정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동안 제한된 외신들을 통해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대한 왜곡된 정보만을 접한 사람들이 진실을 깨닫고 연대와 지지의 마음을 보내고 있다. 노동자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는 이남의 진보진영은 21세기에 진행되고 있는 진정한 혁명인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에서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 지면을 빌어서 베네수엘라의 혁명과정을 설명하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들을 언급하겠다.

 

 

 

 

볼리바리안 혁명의 걸어온 길

 

베네수엘라는 세계 5위의 산유국이다. 어떻게 보면 축복받은 나라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석유를 실제 소유한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계급 사회인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국가가 부유하다는 것과 국민들이 잘사는 것과는 항상 별개의 일이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베네수엘라에서는 미제국주의와 국내 보수세력들이 한통속이 되어서 국가전략산업의 민영화, 퇴직금 제도 및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에 따라 급격하게 사회양극화가 진행된, 즉 잘사는 소수는 더 잘살게 되고, 못사는 대다수는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베네수엘라는 그 모순이 1989년 2월에 한꺼번에 폭발하게 된다.

 

모순이 한꺼번에 폭발한 이 사건은 "카라카소(Caracazo)“ 라 불린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아서, 페레즈 대통령이 집권하게 되고 무자비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한 결과로 교통비는 며칠만에 두배로 오르고 모든 물가가 엄청나게 올라 버렸다. 격분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상점을 약탈하고 폭동을 일으켰는데 페레즈 대통령은 군대를 동원해서 수천명을 학살하면서 이 폭동을 진압한다. 이전까지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 정치가 가장 안정된 국가로 평가되었다. AD와 COPEI 라는 두 당이 번갈아 집권을 하면서 소위 미국식 양당정치가 확립되었고, 1950년대 이후로는 남미에서 흔히 일어나는 쿠데타 같은 것도 없이 안정된 정치상황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이었을 뿐이었다. 실상은 AD, COPEI 로 대표되는 보수적인 정당들이 1958년에 Punto Fijo 협약을 통해 기만적인 보수대연합을 실시해서 번갈아 가면서 정권을 나눠먹고 수십년간 민중들은 정치에서 소외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계속된 모순들은 카라카소 민중봉기를 통해서 한꺼번에 터져버렸고, 기존의 보수 정치세력들은 민중들에게 총탄을 퍼부으면서 그들의 반민중성이 폭력적으로 드러나버렸다.

 

이전부터 군부내에 MBR-200 (볼리바르 혁명운동 200)이라는 혁명세력을 조직하고 있던 우고 차베스(당시 중령)는 이러한 상황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1992년 2월에 페레즈 대통령 정부를 전복하려는 구데타를 시도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쿠데타는 실패하게 되고 차베스를 포함한 주도세력들은 감옥에 갇힌다. 얼마 후 페레즈 대통령은 부패혐의로 탄핵을 당하게 되고 새로 대통령에 당선된 라파엘 칼데라는 1992년 쿠데타를 시도한 사람들을 석방하게 된다.

 

석방된 차베스는 군부 내의 혁명세력과 진보적인 시민세력을 규합하여 MVR (제5공화국운동) 을 창당하고 1998년 대통령 선거에서 56%에 이르는 역대 최다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AD와 COPEI 두 보수정당이 번갈아 가면서 집권하던 베네수엘라는 차베스가 이끄는 MVR에 의해서 새로운 정치지형이 형성되었다. 차베스는 당선되자마자 공약으로 내걸었던 제헌의회를 소집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국민투표를 통해서 제헌의회 소집을 승인받은 후 제헌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를 통해 131명의 제헌의회 의원을 선출했다. 제헌의회 의원 중 반대파측 의원은 6명밖에 안될 정도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제헌의회를 통해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이라 불릴만한 ”볼리바리안 헌법“을 만들게 된다. 대통령 소환제를 포함한 수많은 권리를 민중들에게 부여하는 이 헌법을 통해 베네수엘라는 이전의 제4공화국 틀을 벗어던지고 국명도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으로 바꾼 제5공화국으로 들어서게 된다.

 

새로운 헌법을 만든 후, 이 헌법에 의거해서 2000년에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주지사 선거 등 모든 선거를 한꺼번에 새로 치렀으며, 사법부도 새로 구성을 하게 되었다. 차베스 진영에서 모든 선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고 차베스는 다시 임기 6년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국회의원의 과반을 차베스 측에서 장악하게 되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제헌의회 전술의 진정한 위력이라 할 수 있다. 1999년에 차베스가 대통령이 됐을 때는 이미 한 해 전인 1998년에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 상황이었고, 보수세력이 절대다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제헌의회를 통해 의회, 행정부 및 사법부 등의 국가기구를 접수하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1998년에 형성된 보수적인 의회가 사사건건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을 것이고 결국 혁명은 제대로 추진될 수 없었을 것이다.

 

차베스는 70년대의 칠레의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이 보수적 의회에 발목잡혀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결국은 피노체트의 반동 쿠데타에 의해 실패한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차베스는 선거에 참여하면서 지속적으로 제헌의회 전술을 강하게 주장해왔고 대선에 당선된 후에 실제 그것을 실행함으로써 선거를 통한 제헌의회 전술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헌법과 새로운 선거를 통해서 판을 새로 짠 혁명세력은 헌법에 근거한 새로운 개혁법안들을 준비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작업들은 진척이 잘 되지 않고 지지부진했다. 그 이유는 MVR 결성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MVR은 1999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급히 결성된 정당이었으며, 차베스를 대통령으로 지지하는 누구나 MVR 로 받아들였다. 그러다보니 MVR 내에는 혁명세력도 있지만 기회주의 세력도 적지 않게 들어와 있었다. 이들은 제헌의회 헌법 제정과정이나 개혁적 법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드러내었다. 차베스는 결단을 내리고 2001년 11월 10일 비상대권(헌법에서 보장한 대통령의 권한으로 의회의 승인하에 1년동안 대통령이 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사용해서 49개의 개혁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지지부진한 개혁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법안에는 토지에 관한 법률, 어업에 관한 법률, 탄화수소에 관한 법률(석유산업에 대한 민중통제를 강화하는 법률), 소액금융에 관한 법률, 협동조합에 관한 법률 등 민중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MVR 내의 기회주의 세력들은 차베스 진영을 뛰쳐나가서 반대파에 합류하게 됐다. 또한, 차베스는 PDVSA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의 이사회에서 기존의 타락한 이사들을 한꺼번에 해임시켜버렸다. 이로써 국가의 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우리로 치면 삼성과 현대를 합친 정도라고 할까) PDVSA 는 진정한 민중들의 소유가 될 기초를 마련한 것이었다. 베네수엘라의 과두지배세력들은 베네수엘라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당한 것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반격의 준비에 들어갔다. 워싱톤의 미제국주의자들과의 공모하에 차베스를 몰아낼 보수반동 쿠데타가 2002년 4월 11일에 일어났다. 그러나, 군부내의 혁명세력과 민중들이 일심단결해서 쿠데타 세력을 대통령궁에서 몰아내고 섬에 갇혀있던 차베스를 구출해왔다. 쿠데타가 일어난지 48시간만에 상황은 역전되었다. 민중들은 총칼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더 이상 보수반동 세력들이 베네수엘라에서 주인행세하도록 놔두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반혁명세력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보수세력과 결탁한 CTV(베네수엘라 노동자 연맹)가 차베스 퇴진을 내걸고 전국적인 총파업을 벌였다. CTV는 이전부터 보수정당인 AD당의 지도하에서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받아들이는데 들러리나 서는 어용노조였다. 특히 PDVSA 의 노조가 주축이 되어서 진행된 이 파업은 2달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차베스는 파업에 적극가담한 PDVSA 직원 18000명을 해고시킴으로써 CTV를 무력화시켰다. 노조안팎의 진보적인 인사들은 썩을대로 썩은 CTV의 대안으로 UNT를 결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반혁명 세력의 공세에 대처하는 과정 속에서 ”볼리바리안 서클“을 위시한 일련의 자발적인 민중조직들은 그 폭과 깊이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들은 MVR 의 지도를 받지도 않으며, 정부에게 지원금도 받지 않는 진정한 자발적인 민중조직이다. 그들은 지역차원에서 주변 이웃들에게 볼리바리안 헌법에 대해서 교육하고 함께 협동조합을 구성하는 등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의 기초를 닦는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반동보수세력들은 쿠데타와 총파업 외에도 남은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바로 ”볼리바리안 헌법“에서 국민들에게 보장한 대통령 소환투표이다. 차베스 진영에서 만든 민주적인 헌법을 보수반동세력들이 무기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반대파들은 대통령 소환투표 요건을 맞추기 위해서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가짜 서명으로 반려되는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요건을 맞춘 반대파는(가까스로 요건을 맞춘 서명 조차도 불법으로 점철된 상황이었음) 2004년 8월 15일의 역사적인 소환투표일을 앞두고 결전의 날을 준비해갔다.

 

한편, 차베스 진영에서는 2003년 4월에 매우 중요한 일련의 ”미션(Mission)“들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이 프로그램들은 빈민가에서 병원을 개설해서 무료로 치료를 해주고, 문맹을 퇴치하고, 빈민들에게 무상으로 중등 및 고등 교육 및 대학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시중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생필품을 제공했다. 각 미션들은 대중들로부터 열렬하게 환영받았으며 볼리바리안 혁명 과정에 새로운 동조자들을 얻었다. 이런 미션들이 가능했던 것은 PDVSA에 대한 통제력을 확실하게 민중진영으로 가지고 오게 되면서, 거기서 나오는 재원들을 민중들의 이익을 위해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차베스는 소환투표에 대응하기 위해서 민중들이 스스로 조직해 줄것을 요청했다. 이에 호응하여 선거전투단위(UBEs)라는 형태로 조직된 수많은 사람들이 혁명과정을 수호하기 위해서 일터와 삶터를 넘나들며 소환투표에 반대할 것을 선전하고, 사람들을 조직해 들어갔다. 혁명과정에는 동조하지만 그때까지 소극적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조직화 하고 정치적 활동을 하는 첫 발을 내딛었다. 수천명의 무명용사들이 각각 모래 한알로써 기여를 했다. 베네수엘라 민중들은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단련되었다. 그들은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한 사람의 당당인 인간으로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2004년 8월 15일의 역사적 소환투표는 200만표의 압도적인 차이로 차베스의 소환이 부결되는 성공을 낳게 되었다. 잇다른 반혁명세력의 공세를 민중의 단결된 힘으로 돌파한 베네수엘라는 앞에서 언급한 다양한 미션들과 대토지 소유자들의 토지를 몰수하는 법안 등 지속적인 개혁조치들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2005년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서 ”21세가 사회주의“로 나아가자고 선언함으로써, 그동안 미진했던 핵심산업들과 은행들에 대한 국유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미제국주의에 맞서는 혁명

 

베네수엘라의 혁명과정인 “볼리바리안 혁명(Bolivarian Revolution)"은 스페인에 맞서서 남미를 해방시키고 남미의 통합을 시도했던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것이다. 차베스가 베네수엘라의 혁명을 시몬 볼리바르를 따르는 ”볼리바리안 혁명“으로 이름지은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스페인은 물러갔지만 미제국주의는 지금도 남미를 자기의 뒷마당 쯤으로 여기면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남미의 민중들을 착취하고 억압하고 있다.

 

차베스는 이러한 상황에서 남미국가들이 미제국주의에 맞서서 단결해야 진정한 해방을 이룰 수 있다는 판단을 가지고 있다. ”볼리바리안 혁명“ 이라는 이름에는 그와 같은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다. 차베스는 당선 이후 지속적으로 반미 외교를 펼치고 있다. 취임 후 미국의 반대에도 이라크 후세인 대통령을 방문했고, 부시 정권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비판했다. 최근에는 이란을 방문해서 이란 핵개발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했으며 IAEA 총회에서 이란에 대한 안보리 결의안 회부에 대해 베네수엘라 대표만이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얼마 전 유엔정상회의에서는 강력한 반미연설로 참석자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베네수엘라 석유판로가 미국에만 너무 집중되어 있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인도, 중국등으로 판로를 다변화함으로써 미래의 불안요소를 사전에 방지하고 있다. 쿠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과도 관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특히 쿠바와 지속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베네수엘라는 쿠바에 석유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쿠바는 그에 대한 답례로 베네수엘라의 무상의료제도인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에 쿠바의료진을 13000명이나 파견한 상황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최근에 대사관 설립에 합의를 했고, 조만간에 에너지 관련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역내 자유무역을 통해서 남미시장을 장악하려는 미국의 FTAA에 대항해서 남미의 진보적인 세력들을 모아서 ALBA (미주지역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를 추진하고 있다. ALBA는 단순히 자유무역하자는 경제공동체를 넘어서 연대의 정신에 기반한 정치적인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으며 명백하게 미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ALBA 추진의 일환으로 차베스 대통령은 “페트로카리브”, “페트로아메리카” 등의 석유동맹을 결성 및 추진하고 있다. 석유라는 자원을 통해서 역내의 에너지 공동체를 추진하고 있으며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역내 국가들에 저렴하게 제공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CNN 등이 남미의 소식을 미국의 입맛에 맞게 왜곡하는 것에 대항해서, 아랍의 알 자지라 처럼 남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방송국인 텔레수르를 만들어서 전세계에 방송하기 시작했다.

 

미제국주의가 콜롬비아에 미군을 주둔시켜 베네수엘라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자위력을 강화하기 위해 러시아 등에서 무기를 도입하고 200만명의 예비군을 창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핵에너지 개발을 통해서 에너지 문제와 함께 자위력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최근 남미국가들에서 잇따라 좌파정권들이 집권하면서 사면초가에 몰린 미제국주의에게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이러한 시도들은 눈에 가시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나 단결된 남미의 민중들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이겨내고 민중이 해방되는 참다운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위치하고 있다.

 

 

 

 

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베네수엘라

 

“나는 매일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며 내 마음 속에는 한점의 의심도 없습니다. 이전부터 수많은 지식인들이 말해왔듯이, 우리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사회주의를 통해서만, 평등과 정의가 살아있는 진정한 사회주의를 통해서만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민주주의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강요하는 방식의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

 

2005년 초에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사회주의 선언을 하면서 일련의 혁명적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다. 그 중에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국가 기간산업의 국유화 및 은행에 대한 정부의 통제 강화이다. 얼마전 9월에 차베스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광업을 국유화 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존의 외국자본들에게 허가해 준 채굴권을 모두 취소하고 이후에도 다시 채굴권을 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국영 철강회사를 설립해서 직접 광물들을 개발할 것을 천명했다. 이전에는 제국주의 자본가들이 베네수엘라에 들어와서 석유 뿐만 아니라 광물까지도 자신들의 돈벌이 수단에 사용했고, 베네수엘라 민중들은 전 국민의 80%가 빈민일 정도로 가난에 찌들은 상황이었다. 우고 차베스의 광업 국유화 선언은 더 이상 베네수엘라의 소중한 자원들이 몇몇 자본가들의 배나 불리는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고, 민중을 대변하는 정부에서 직접 통제를 행사해서 민중들의 이익에 맞게 사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또한 국영 철강회사를 설립하기 위한 재원은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를 이용하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것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정부가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를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이러한 것은 은행에 있는 돈들이 초국적금융자본들이나 투기자본들의 돈놀이에 활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민중들의 이익에 필요한 곳에 쓰겠다는 의미이다. 경제야 말로 가장 정치적인 부분이다. 국내외 자본가들이 정부의 시장통제가 경제를 망친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자신들이 맘대로(노동자를 맘대로 짜르던, 환경오염을 시키던, 산업재해를 증가시키든 상환없이) 돈벌이를 하는데 방해놓지 말라는 정치적 의미에 다름 아닌 것이다.

 

얼마전에는 토지개혁법에 입각해서 전체 농지의 80%를 유상 및 무상으로 몰수해서 빈농중심의 협동농장에 나눠주겠다고 선언했다. 1.5%의 인구가 토지의 80%를 소유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농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으며,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이 땅을 생산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놀림으로써 국가 차원에서도 손실이 심했다. 그리고,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베네수엘라의 상황에서 식량주권을 위해서도 토지개혁은 절실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토지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으며, 외국회사들이 소유한 토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차베스 대통령은 법 집행을 위해서 군대도 동원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직장을 직접 통제하는 실험이 진행중이다. 유럽 사회민주주의식으로 주식 좀 받고 이사회 몇자리 차지하는 식이 아닌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공장통제 방식의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사회주의 방식이고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하겠다. 이에 관한 BBC 방송의 뉴스가 있어서 직접 번역해서 옮겨본다.

 


차베스, 직장에서의 민주주의를 요청하다.

 

2005년 8월 18일 화요일

Iain Bruce - BBC

 

알카사(Alcasa) 3번라인의 주조실은 열기와 소음이 너무 심하다. 이 곳은 Puerto Ordaz 남동부에 있는 두 개의 큰 알루미늄 공장 중 하나이다. Puerto Ordaz 는 베네수엘라에서 기초산업시설이 모여있는 곳이다.

 

이 곳은 노동자 참여경영(co-management) 이라는 새로운 실험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노동자 참여경영을 “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중요한 단계로 얘기한다.

 

전기공으로 일하는 Alcides Rivero 씨는 노동자 참여경영(co-management)이 37년의 회사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가 통제권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산과 기술에 대한 문제를 결정하는 것도 우리 노동자들이고, 우리의 관리자를 선출하는 것도 바로 우리 노동자들입니다.”

 

인사과에서 일하는 Marivit Lopez 씨는 노동자들이 2006년을 대비해서 “참여예산”을 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각 부서의 노동자 평의회에서 기존의 제안을 토론하고 수정해서 회사의 요구에 제대로 들어맞는 예산을 만듭니다.”

 

현대 사회주의 (Modern Socialism)

 

노동자 평의회는 알카사(Alcasa)의 노동자 참여경영 실험에서 핵심적 부분이다.

 

3번 창고에서 진행되는 회의에서, 각각의 팀에서 선출된 사람들이 화이트보드에 각종 통계자료와 도표들을 쓰고 있다.

 

대표자들은 각 부서의 기술적 문제점들에 대한 가능한 해결방안들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순수한 알루미늄을 분리해내는 graphite anode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방법같은 것들이다.

 

전체 생산과정을 총괄하는 사람에 따르면, 노동자 참여경영의 목적 중 하나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장벽을 허물고, 생산을 설계하는 사람과 실제로 생산을 하는 사람이 달랐던 상황을 넘어서는 것이다.

 

알카사(Alcasa)의 대표로 임명된 Carlos Lanz 씨(이전에 좌익 게릴라 지도자였음)는 성과가 이미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주적으로 계획을 세우니까 다소 뒤쳐진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이 11%나 증가했다.”

 

Lanz 씨는 베네수엘라의 노동자 참여경영은 지분의 일부를 노동자에게 떼어주고 이사회에서 노동자에게 몇자리 내어주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식과는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베네수엘라의 노동자 참여경영은 노동자들이 공장을 통제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하나의 단계입니다.”

 

노동자의 개입

 

이제까지 베네수엘라의 노동자 참여경영 계획은 Alcasa 같은 국영기업과 이미 파산해버린 두개의 작은 민간기업에 국한되서 실시되었다.

 

올해 초 정부는 제지회사인 Venepal 과 밸브회사인 Valvulas를 접수했다. 이 회사들은 국가가 51%의 지분을 가지고 나머지 49%를 노동자가 (협동조합을 조직해서) 소유한 상태로 재가동해서 노동자 참여경영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노동절 때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그 자신이 더 나아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노동자 참여경영을 실시하는 민간기업들에게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 법안이 의회에 제출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가의 개입

 

대통령의 선언에 기업인 대표들은 혼란스럽고 걱정에 사로잡혔다.

 

베네수엘라 미국상공회의소의 Tony Herrera 씨는 베네수엘라 정부의 노동자 참여경영 제안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에 대해서 국가가 더욱 통제하겠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전부터 베네수엘라의 문제점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길이 좋은 의도들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려고 많은 시도를 해왔고, 결과는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베네수엘라 경제인 연합 Fedecameras 의 회장인 Albis Munoz 씨는 노동자 참여경영을 베네수엘라 회사들에 법률로 강제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독일의 기독교 민주당이 발전시킨 방식의 노동자 참여경영(사용자, 노동자, 소비자들 간에 자유로운 협상을 통한 전략적 제휴)은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알카사(Alcasa)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그것과 달라보인다.

 

Marivit Lopez 씨는 새로운 생산방식(사회주의를 의미함)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혁명적 노동자 참여경영”이라 부르는 것을 더욱 밀고 나가야 한다고 열정적으로 말했다.

 

정부의 지원 하에, 그녀와 알루미늄 회사의 사람들은 지역의 다른 국영 산업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자 참여경영을 조직하는 방법”에 대해서 교육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혁명이 성공한 원인

 

베네수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유는 다양하게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핵심적이고 중요한 요인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몇가지 원인을 언급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군부 내에 확고한 혁명세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지난 시절의 수많은 변혁적 시도들이 좌절됐던 결정적 원인들 중의 하나가 제국주의와 결탁한 국내 보수 반동 군인들의 쿠데타이다. 당연히 베네수엘라에서도 2002년 4월에 이러한 반동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군부 내의 혁명적 세력들이 민중들과 일심단결해서 물리쳤다. 차베스 자신이 군인 시절에 MBR-200 이라 불리는 혁명조직을 건설했고 그 역량이 지금껏 혁명과정을 수행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둘째,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999년 대선 승리후 제헌의회 소집을 통해서 국가기관을 한꺼번에 접수했다는 점이다. 이미 이 글의 앞쪽에 자세히 언급을 했으니 더 얘기하지는 않겠다.

 

셋째, 민중들이 정치적으로 각성하고 스스로 조직화되었다는 점이다. 차베스는 2000년에 MVR(제5공화국운동)의 우경화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혁명속의 혁명”을 수행할 것을 민중들에게 요청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MVR에는 내부에 기회주의 세력들도 존재한다. 차베스는 이전의 MBR-200의 정신을 계승하고 민중들이 "볼리바리안 서클“로 스스로 조직할 것을 요청했다. 이 조직은 2003년 현재 220만명의 사람들이 가입되어 있으며 지역 및 직장에서 볼리바리안 헌법을 학습하고 협동조합 결성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그리고, 보수반동 쿠데타, 총파업, 소환투표 등 세 번의 위기를 돌파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조직의 폭과 깊이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넷째, 기회주의와 타협없는 단호한 민중독재(PT독재)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49개 개혁법안 통과시에 보수반동세력 뿐만 아니라 MVR 내부의 기회주의세력들도 반대했지만 차베스는 비상대권(헌법에서 보장한 대통령의 권한으로 의회의 승인하에 1년동안 대통령이 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발동해서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CTV가 2달간 총파업을 진행했을 때 차베스는 불법적 파업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고 파업에 적극 가담한 PDVSA의 직원 18000명을 해고 시켰다. 이 인원은 PDVSA 전 직원의 절반에 가까운 수이다. 이것을 통해서 보수 야당인 AD당의 지도를 받으며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들러리나 섰던 CTV가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었고 민주노조인 UNT가 탄생하게 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베네수엘라의 혁명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주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세계 혁명역량의 약화로 인해서 자본주의(제국주의)가 신자유주의라는 외피를 쓰고 전세계 민중들을 말려죽이고 있다. 이러한 엄혹한 시기에 베네수엘라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혁명은 이남 민중들에게도 많은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남 진보세력들이 앞으로 토론하고 연구할 중요한 과제이다. 필자도 나름의 고민이 있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며 앞으로 많은 사람들과 토론해보고 싶다. 다만 민주노동당이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번 고민해볼 내용에만 한정해서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다.

 

최근에 이남에서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개헌논의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정치권, 시민단체 및 학계에서 토론회 및 발표회 같은 것이 진행되면서 분위기를 잡아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니 내각제니 하면서 이리 재고 저리 재는 모습들이 가관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대연정이니 소연정이니 하면서 그러한 판을 짜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논의의 중심에 민중들은 없다. 개헌을 한다고 해도 어차피 기존의 국회의원들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법안 만들고 통과시킬 것이기 때문에 개헌이라는 상황조차 그들 보수 정치권의 손안에 있다. 그들은 2007년 대선을 이러한 기만적인 개헌논의로 판을 짜들어가면서 어떻게든 집권을 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의 진보진영, 특히 민주노동당은 베네수엘라를 좋은 사례로 삼아, 이러한 기만적인 개헌논의를 폭로하고 제헌의회를 소집하는 것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2007년 대선에서 선거공약으로 제헌의회 소집을 고민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말을 남기겨 글을 마무리 한다.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빈민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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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우리는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이 글은 영국 런던 메트로폴리탄대학에서 국제노동학 교수로 재직 중인 어슐러 휴스(Ursula Huws)가 미국의 평론잡지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 최근호에 기고한 글의 전문 번역이다.
  
  이 글에서 휴스는 이른바 '지식기반 경제'의 세계적인 확산과 그에 따라 초래되는 '직업 정체성'의 붕괴가 인간의 노동과 노동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성찰하고 있다. 이 글은 한국에서 사회적 현안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나 '일자리의 해외이전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휴스는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사이버타리아트〉의 저자다. 이 번역의 원문은
www.monthlyreview.org/0106huws.htm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얼른 알아보기 어려울 때 우리는 가장 먼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게 된다. 수렵채집으로 살아가는 소규모 부족사회를 제외하면 어디에서나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을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그 사람의 직업일 것이다. 유럽의 여러 문화권에서는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이 가족의 성으로 이어졌다. 예컨대 슈미트, 에레로, 르페브르 등의 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선조는 대장장이이고, 웨인라이트, 바그너 등의 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마차 제조공의 후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뮐러는 방아꾼의 후손, 불랑제는 제빵공의 후손, 게레로는 군인의 후손이다. 북미의 전화번호부를 들여다보면 포터(짐꾼), 부처(백정), 카터(마부), 쿠퍼(통 제조공), 카펜터(목수), 피셔(어부), 셰퍼드(양치기), 쿡(요리사) 등의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유럽에서 발원한 문화권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남아시아에서도 노동의 분업이 진전되면서 여러 사회구조 속에 깊이 자리 잡게 됨에 따라 누구나 직업적 정체성을 부여받은 상태로 태어나는 것으로 여겨지기에 이르렀다. 수드히어 비로드카르(Sudheer Birodkar)는 이렇게 설명했다. "직업의 전문화는 4대 바르나(카스트) 중 하위 2개의 바르나인 바이샤와 수드라가 다양한 자티(각 카스트 안에서의 직업상 구분)로 나뉘는 데 핵심 요소였다. (…) 직업에 대한 카스트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추방당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자티가 차마르(신발 만드는 사람)인 사람은 평생 차마르로 살아야 했다. 차마르인 사람이 쿠마르(항아리 만드는 사람)나 다르지(옷 만드는 사람)가 되려고 한다면 차마르 집단에서 추방당할 수 있었고, 설사 그가 신발 만드는 일 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지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다른 카스트에서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처럼 수공 기술에 기반을 둔 직업 정체성 구분은 자동화의 영향과 공장 시스템의 도입에 따라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생산관계에는 노동자들을 서로 간에 쉽게 대체될 수 있는 무차별적인 대중으로, 다시 말해 노동계급 또는 프롤레타리아로 전락시키는 일반적인 경향이 내재돼 있다.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능과 그런 기능을 갖춘 노동자가 얼마나 희소한가는 그런 기능을 갖춘 노동자들이 사용자들(그런 기능을 갖춘 노동자가 자영업자라면 고객들)을 상대로 더 높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얻어내기 위해 협상할 수 있는 능력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 따라서 여러 용도에 두루 사용할 수 있는 범용의 기능을 갖추고 있고, 따라서 최대한의 대체가능성이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는 노동계급의 존재는 자본에 이익이 된다. 범용의 기능만을 지닌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데는 비용이 적게 들고, 그들을 대체할 수 있는 노동자들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노동자들이 말썽을 부리면 사용자들은 그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다.
  
  특정한 기능, 지식, 경험의 소유를 중심으로 형성된 직업 정체성은 사회주의자들에게 하나의 수수께끼다. 이런 직업 정체성은 한편으로는 노동자 조직화의 기본단위가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폭넓은 계급의식의 발달에 장애물이 된다. 노동자 조직의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전통적으로 특정한 직업 정체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집단 속에서 자라나왔다. 이때 직업 정체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집단은 강력한 내적 연대관계를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내포적인 성격을 지니기도 하지만, 집단의 효력이 강력한 경계와 진입장벽에 근거한다는 의미에서는 배타적인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도제제도를 비롯해 특정 직업으로의 진입을 제약하는 메커니즘 중 일부는 자본주의 이전에 존재하던 길드와 같은 제도적 형식들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길드의 조합원들은 공식적인 입회식에서 동업자들끼리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해야 했고, 조합원들 간의 유대관계는 강화하지만 외부자들은 배제하는 여러 관행적 행사나 행동에 참여해야 했다. 길드 이후에 나타난 다른 많은 직업 기반 집단들 중에서는 누구를 받아들이고 누구를 배제할 것인가를 판정하는 기준에 성별과 인종을 제한하는 요소를 포함시킴으로써 구성원들 사이에 강력한 사회적 동질성을 보이게 된 경우도 많았다. 이로 인해 직업 기반의 집단이 보다 넓은 범위에서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노동자들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는 성격도 갖게 됐다.
  
  그러나 직업 기반 집단은 강력한 조직력을 갖게 되고 사용자들에 휘둘리지 않고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됨으로써, 전체 노동자들 가운데 일부가 더 높은 임금이나 더 나은 노동조건을 얻어내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더 폭 넓게 보면, 직업 기반 집단들은 인구 전체에 혜택이 돌아가는 생활보호 입법이나 복지제도의 도입을 촉진하는 운동을 주도할 수 있다. 직업 기반 집단의 이런 역할은 특히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직종별 노사교섭보다는 산업별 노사교섭이 발달하도록 유도해 온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 자본주의에서 발달한 복지국가들은 그 형태가 다양하고 서로 다른 특색을 보였지만 공통점도 하나 있었다. 그것은 그런 복지국가들이 이루어낸 성과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대량생산의 생산성 이득 중 일부를 노동자들에게 나눠주도록 사용자들을 압박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노동자 조직의 노력이 가져온 결과였다는 점이다. 그런 결과 중 하나로 사용자들과 국가가 일종의 타협, 즉 공장 등 작업장이 언제라도 노동자들에 의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데 대한 불안감을 갖지 않고도 작업장을 운영해나갈 수 있도록 노동자들이 배려해주는 대신 사용자들과 국가는 노동자들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완화한다는 타협을 하는 데 동의했다. 노동자 조직의 형태는 나라마다 달랐다. 영국에서 지배적이었던 직종별 노조와 같은 직업 기반의 노동자 조직도 있었고, 강한 직업 정체성을 가진 노조 지도자들이 이끌고 보다 포괄범위가 넓은 노조에 기반을 둔 노동자 조직도 있었다. 이와 동시에 노동시장이 성별과 인종별로 뚜렷하게 나뉘기도 하고, 그 밖의 여러 다른 요인들에 의해 노동시장이 더욱 세분되기도 했다.
  
  노동 기능은 노동자들 스스로에게만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 게 아니다. 노동 기능은 자본에게도 역시 그 의미가 모호하다. 자본주의의 발달에 필수적인 변화의 원동력이 되는 혁신의 과정은 노동자의 기능을 필요로 하는 데서 매우 모순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어떤 작업이 자동화되기 전에는 그 작업의 모든 과정을 자동화하고 표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그 과정의 각 단계를 반복해 수행하는 기계장치의 프로그래밍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아는 누군가의 전문성과 경험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단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노동자의 지식과 경험, 기능이 일단 활용되고 나면 그것들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고, 그 대신 더 저렴하고 기능이 떨어지는 노동자들을 새로 도입된 기계장치를 돌리는 일에 투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넓게 보면 노동자의 기능에 대한 수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고, 그 생산의 과정을 설계하고, 새로운 목적에 맞춰 제품과 생산과정을 다시 조정하고, 자본주의의 수레바퀴가 계속 원활하게 굴러가도록 해주는 많은 제품과 서비스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콘텐트를 서로 주고받거나 제공해주고, 사람들을 돌보고 교육하고 정보제공을 하고 기분전환을 하게 해주는 제품과 그 제품의 생산과정을 창출하고 설계하는 데 인간의 지식, 손재주, 창조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노동기능도 그 일부는 좀 더 적은 수의 노동자들에 의해서도, 그리고 기능의 수준이 보다 낮은 노동자들에 의해서도 수행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지식을 컴퓨터 프로그램과 데이터베이스에 집어넣는 과정에 말려든다. 예를 들어 기술지원 부서에서 일하는 전문 도우미 노동자들은 고객으로부터 자주 제기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데이터베이스에 집어넣도록 요구받는다. 이런 사측의 요구는 보다 하위의 일선 직원들도 그런 대답들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강의를 전자학습(e-learning) 방식으로 전환시키라는 요구를 받는 대학교수의 지식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하나의 작업을 수행하는 일이 정형화되어 특별한 기능 없이도 누구나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상품화 과정 중에서 그 다음 단계를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지식노동자' 집단이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점점 더 기술적으로 복잡한 자본주의의 발달이 노동자들에게 '기능박탈(deskilling)'을 초래하는가, 아니면 '기능재습득(reskilling)'을 초래하는가 하는 논란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이 두 가지 과정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혁신의 과정이 지닌 특징이다. 노동의 기술적 분업이 발달하는 과정의 각 단계에서 '머리'와 '손'의 분리가 거듭 새로이 이루어진다. 어느 한 집단의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직무를 정형화하기 위해서는 그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대한 종합적 지식을 갖춘, 흔히 그 수가 보다 적은 노동자 집단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이 변화에 저항하거나 적응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화함에 따라 부단히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나고, 기존의 직업들은 형태가 바뀐다. 직업 정체성은 배타적인 동시에 내포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지속적인 구축과 해체의 과정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사용자들은 한편으로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으며 잘 교육되고 창조적인 노동자의 공급이 계속 이뤄지도록 보장받아야 할 필요성,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의 가치를 저렴하게 만드는 데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동시에 충족하는 균형 잡기를 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사용자가 다른 기업들에 비해 우월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노동자의 기능과 지식에 대해 재산권에 입각한 통제력을 보유할 수 있기를 원하기도 한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노동시장이 작동하는 형태가 결정되는 데 노동 기능이 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한다고 볼 수 있다. 현실의 사회는 고전적인 계급적 양극화로 그려진 사회의 모습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변해왔다. 즉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재화와 자본의 순환과정을 통제하며 국가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지령하는 부르주아와 점점 더 동질화되는 프롤레타리아 대중 사이의 양극화로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그 안에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노동자는 더 낮은 임금만 받고도 고분고분한 태도로 동일한 노동을 해줄 수 있는 실업자 산업예비군 중 누군가로 쉽게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의 인식에 의해 단속되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현실 사회는 이런 그림보다 훨씬 복잡하다. 노동의 기술적 분업이 점점 더 복잡하게 전개됨에 따라 이런 그림과는 반대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즉 매우 다양한 노동 기능들에 대한, 부단히 변화하는 수요가 창출되며, 그런 노동기능들 가운데 다수는 산업발전 과정의 특정 국면이나 특정 부문, 특정 경영과정, 특정 제품, 심지어는 특정 기업에서만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필요한 노동 기능이 다양화하고 고용계약상의 의무나 지리적 위치의 측면에서 더욱 더 다양하게 노동분업이 이뤄지더라도, 산업예비군은 노동자, 사용자, 국가 사이의 타협(이는 흔히 '포드주의 타협'이라고 불린다)이 붕괴했거나 심각하게 긴장된 최근의 노동시장에 일어난 변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적절한 개념이다. 노동시장에 대한 이런 이해를 할 수 있기 위해 우리는 노동시장의 작동에서 직업 정체성과 노동 기능이 하는 역할에 대한, 좀 더 다양하게 차별화된 개념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점점 더 복잡해지고 격동하는 경제에 생겨나는 틈새를 메우는 데 필요한 범용의 기능을 노동인구가 갖추도록 하는 데에서 국가가 하는 역할과, 직업 간 경계선을 흐리게 하고 조직화된 노동의 힘을 잠식하는 데에서 그런 범용의 기능이 하는 역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런 분석을 하기 위한 출발점 중 하나는 노동이 거래되는 시장, 즉 노동시장 그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노동시장이라는 개념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도 물론 여러 가지가 있다. 노동의 특성과 자본의 특성에는 극도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며, 이런 점은 노동의 거래를 재화나 서비스의 거래와 매우 달라지게 만든다. 노동시장에 제공되는 기본단위인 인간의 육체는 힘과 인내력, 민첩성에서는 물론이고 몇 시간이나 일을 계속할 수 있는가에 있어서도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다. 이 점은 자본과 원료에 대한 접근이 가능한 한 얼마든지 계속 더 많이 이용될 수 있는 기업의 다른 자원들과 다른 것이다. 노동은 자본처럼 물리적 이동성을 갖고 있지 않다. 자본이 제멋대로 얼마든지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지금과 같은 자유무역의 시대에도 노동은 다른 나라에 존재하는 기회를 이용할 능력이 크게 제약돼 있다. 당신이 산 채로 다른 나라로 가서 합법적으로 일자리를 얻는 것보다는 아마도 당신이 죽은 뒤에 시체가 국경을 넘는 것이 오히려 쉬운 경우가 많다.
  
  노동시장은 독점이나 수요독점(노동력의 구매자가 하나만 있는 경우), 카르텔, 기업끼리나 노동자끼리의 다양한 연대, 국가의 개입, 노동인구의 성별, 인종별 구분을 심화시키는 가용 노동시간이나 이동 상의 제약(예를 들어 임금이 지급되지 않아도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노동은 누군가가 해야 한다는 점)을 포함한 많은 요인들에 의해 왜곡된다. 남성에게만, 백인에게만, 또는 특정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특정한 직업들의 문호가 열려 있는 노동시장은 결코 자유시장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러나 직업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노동시장에서 순수한 경쟁이 발달되는 것을 가로막는 요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고도로 복잡하고 갈수록 글로벌화하는 기술적 노동분업 속에서 사용자들이 특정한 기능을 갖춘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점일 것이다.
  
  노동시장 이론화의 시도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 꼽히는 〈내부 노동시장과 개인의 노동력 분석(Internal Labor Markets and Manpower Analysis)〉(1971)이라는 획기적인 저서에서 저자인 피터 되린저와 마이클 피오레는 이중 노동시장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 모델에서는 직업이 대체로 두 개의 카테고리, 즉 '1차 노동시장' 또는 '내부 노동시장'에 속하는 직업과 '2차 노동시장' 또는 '외부 노동시장'에 속하는 직업으로 나뉜다. 두 저자에 따르면 내부 노동시장은 내부 규칙의 체계에 의해 외부 시장의 힘과 격리된다. 사용자들이 특정한 작업관행에 맞춰진 특정한 노동 기능을 필요로 하는 경우 그 사용자들은 충성도 높은 노동자들을 유지하기 위해 더 높은 임금, 연금, 휴일, 기타 일련의 부가혜택을 포함한 유인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 아울러 두 저자는 내부 노동시장은 특정 기업에 국한된 지식에 크게 의존하는 내부 승진경로를 갖고 있으며, 고도로 구조화되고 위계적인 형태를 띠는 게 보통이라고 말한다. 이런 내부 노동시장에서는 사용자들이 높은 수준의 생산성을 달성하기 위해 기업 내부의 자체 교육훈련에 기꺼이 많은 투자를 한다. 달리 말해 내부 노동시장의 임금 및 노동조건의 수준은 순수한 형태의 외부 노동시장에서 실현되는 임금 및 노동조건의 수준과 다르다. 내부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지점들은 통과하기가 어렵지만, 일단 통과해 내부 노동시장에 진입한 노동자들은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된다. 외부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암묵적 타협은 이런 내부 노동시장의 상황과 매우 다르다. 외부 노동시장에서는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장기간의 약속을 하지 않으며, 필요하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고도의 헌신성과 생산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되린저와 피오레가 위의 책을 쓰던 1960년대 말에는 전형적으로 내부 노동시장에 속하는 노동자는 공무원 또는 IBM이나 제너럴모터스와 같은 대기업의 노동자였고, 전형적으로 외부 노동시장에 속하는 노동자는 수위, 작가, 그리고 자신의 노동 기능을 다양한 고객에게 제공하는 자영업 형태의 노동자였을 것이다.
  
  이런 이중 노동시장 모형은 다양하게 존재하는 여러 경제사회들 사이의 복잡한 임금차이를 설명하기에는 너무 단순하다는 점이 곧 분명하게 드러났다. 되린저와 피오레의 통찰은 다른 분석가들에 의해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지면서 '다중 노동시장' 또는 '분절 노동시장' 모델로 발전했다. 분절 노동시장이라는 개념은 국가적인 교육 시스템, 노동보호 입법, 노동자들의 조직화 방식을 포함한 여러 요인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임금과 노동조건이 서로 다르게 형성된 다수의 노동시장들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돌이켜보면 되린저와 피오레, 그리고 두 사람을 따른 사람들에 의해 묘사된 내부 노동시장은 현실의 경제 속에서 절대적이고 불변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자본주의의 한 특정한 국면, 즉 2차대전 이후 타협의 시기에 특히 잘 들어맞은 이론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타협의 시기가 종식됐다는 선언이 자주 들리기도 했지만, 우리는 그 시기를 구성한 요소들이 미래의 자본주의에도 계속 유용하거나 필요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타협의 시기가 전성기를 이미 지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결론일 것이다. 그 시기가 어떻게, 왜 붕괴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기의 타협이 황금기의 실현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대규모 조직들 내부에서 그 필수적 '핵심'과 자본 사이에 이뤄진 특수한 타협이 유효하게 기능했던 것은 그런 타협이 모든 노동자들에 다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기에 가능했을 뿐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노동귀족들이 자신들의 힘을 발휘해 노동계급 중 많은 부분에 폭넓은 이익을 가져다준 역사적 순간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이보다는 내부 노동시장에 소속된 행운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스스로 알고 있었고, 2차 노동시장에서의 삶은 어려울 수 있다는 인식에서 질서를 수용하고 지켰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이런 식의 포섭과 배제의 패턴은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에 의해 강화되기도 했다.
  
  둘째, 2차대전 이후의 모델은 보편적이었던 게 아니라 나라마다 서로 다른 형태를 취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도 중요하다. 포섭과 배제의 나라별 형태는 노동자 조직이 발달돼 온 각국의 특수한 방식과 더불어 각국의 특수한 산업구조와 역사에 의해 형성됐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강력한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개별 산업부문 차원의 단체협약을 촉진했고, 이는 곧 '내부 노동시장 타협(insider deal)'이 특정 산업부문의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예컨대 영국처럼 직종별 조합이 강한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난 타협의 형태, 즉 특정 직업집단에만 타협이 적용되는 경우와 다른 것이었다. 이는 또한 기업 차원의 단체교섭이 지배적인 곳에서 특정 기업에만 타협이 적용되는 형태와도 다른 것이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타협의 형태는 복지체계의 유형, 투자의 형태, 정부 개입의 정도와 방식, 교육훈련 및 취업자격 체제 등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그 차이가 직업들이 규정되는 방식에 다시 반영된다. 데이빗 코츠(David Coates)는 이런 차이들이 경제 전체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포괄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내부 노동시장 타협'은 '외부 노동시장 타협'의 여러 유형들에 의해 보완됐다는 것이다. 이는 곧 2차대전 이후 타협의 붕괴도 나라별로 각기 다른 형태로 이루어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나라별 차이를 부분적으로나마 모델화하기 위해 로즈메리 크롬프턴(Rosemary Crompton)의 도표를 일부 수정한 아래 도표를 이용해서 이중 노동시장 이론을 성 및 계급의 이론과 통합시켜 설명을 시도해 보겠다.
  

  이 도표는 나라마다 노동시장이 다른 형태를 보인다는 점을 분석하는 데, 특히 지금 우리가 살아나가면서 겪고 있는 급속한 구조적, 기술적 변화의 시기에 노동시장이 나라별로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고 변화하는지를 살펴보는 데 유용하다. 이 도표는 내부 노동시장과 외부 노동시장을 양 극단의 노동시장으로 보고 그것을 각각 오른쪽과 왼쪽에 표시하며, 그 사이에 중간적인 유형의 부문별 노동시장이 존재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이어 이 도표에는 또 하나의 측면, 즉 노동 기능이라는 변수가 추가된다. 이 변수는 위, 아래로 표시된다. 이처럼 두 개의 축으로 이뤄진 도표를 이용하면 임금이 지급되는 노동이라면 그 어떤 종류의 노동이라도 어딘가에 점으로 표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높은 임금을 받는 대기업 임원이나 고위 공무원은 오른쪽 위의 코너 B 근처 어딘가에 위치할 것이다. 다양한 고객을 위해 일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프리랜스 회계사의 노동 기능 수준도 대기업 임원이나 고위 공무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높겠지만, 도표에서 그의 위치는 코너 A쪽으로 달라질 것이다. 오른쪽 아래의 코너 D 근처에는 대규모의 안정된 기업조직에 새로 취직한 신입직원이나 견습직원을 비롯해 견습 우편물 분류사처럼 직업 사다리의 맨 밑에 존재하는 노동자들이 위치할 것이다. 그리고 왼쪽 아래의 코너 C 근처에는 과일을 따는 일을 하는 사람과 같은 계절적으로만 고용되는 노동자, 파트타임 노동자, 일시적으로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굽는 일을 하는 노동자 등이 위치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물론 그 중간 곳곳에 중간적인 노동 기능의 노동자들이 위치하게 된다.
  
  조합주의 정치, 역사적으로 강력하게 유지돼 온 내부 노동시장, 교육훈련에 대한 사용자들의 상당한 투자, 엄밀하게 정의된 직업구분, 사용자 기반의 플랜과 연계된 복지제도가 존재하는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는 노동인구의 상당한 부분이 도표의 오른쪽에 편중돼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전형적인 직업경력의 궤적은 코너 D에서 출발해 사용자가 제공하는 교육훈련을 거치고 기업 내부의 규칙을 따르면서 점차 코너 B로 상승해가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보다 자유주의적인 노동시장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은, 보다 큰 비중의 노동인구가 도표의 왼쪽에 몰려 있는 형태일 것이다. 이렇게 도표의 왼쪽에 위치한 사람들은 자영업 형태의 노동을 하는 개인들, 그리고 기업 내부에서 승진할 기회나 당장 취업하는 데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교육훈련을 받을 기회를 거의 누릴 수 없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안정된 직장을 갖기 어려운 임시직이나 파트타임 노동자로서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런 형태의 노동시장을 가진 나라에서는 기본적인 고등교육 이상의 자격을 가진 노동자들은 그런 자격을 자신이나 부모의 비용으로 획득한 것이다. 이런 형태의 노동시장을 가진 나라에서는 코너 C 근처에 위치한 다수의 무차별적 불안정 노동자 대중과 코너 A나 B 근처에 위치한 소수의 특권층 노동자 사이에 생활수준의 큰 차이가 존재한다.
  
  물론 이상의 두 가지 모델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고용상의 지위보다는 개인의 시민권에 더 밀접하게 연계된 복지제도를 갖추고 있으며 교육훈련은 공적으로 제공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는 높은 수준의 기능을 가진 노동인구가 도표의 위쪽 절반 영역에 많이 위치하고, 코너 C나 D 근처에는 비교적 적은 수의 노동자들만 위치할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이와 달리 공식부문의 노동자 수가 아주 적다. 다시 말해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인구의 대부분이 코너 A와 C가 위치한 도표의 왼쪽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설사 공정성을 제고하는 규칙이 있다 하더라도, 이 모든 형태의 노동시장 각각에서 실제로 모든 인구에 공평하게 기회가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는 백인 남자인 거주자가 일반적으로 코너 B가 들어 있는 사분면을 지배할 것이고 이주자, 유색인, 여성은 코너 C가 있는 사분면에 주로 위치하게 될 것이다.
  
  이 도표는 노동시장을 정태적으로 비교하는 방법으로서만 유용한 게 아니다. 이 도표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조직적 리스트럭처링이 노동자들에게 상이하게, 동태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방식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사용자들로 하여금 노동비용을 줄이도록 하는 유인은 어느 나라에서건 동일할는지 모르지만, 그에 따른 리스트럭처링의 모습은 나라마다 서로 다르다. 조합주의 국가의 노동시장에서는 고용된 노동자들이 강력한 조합이 사용자와 체결한 노사협약에 의해 보호되기 때문에 내부 노동시장의 경계선이 분명하고, 따라서 노동자 각 개인이 내부 노동시장에 들어와 있느냐 아니냐가 분명하다. 이런 나라에서 내부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공식적인 취직 절차를 통하는 것이고, 가장 일반적인 퇴출의 방식은 공식화된 해고나 퇴직의 절차를 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부 노동시장 안에 들어와 있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복지혜택의 대부분이 고용상의 지위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퇴출당할 경우 잃어버릴 것이 많다. 따라서 그들은 퇴출당하는 데 대해 격렬히 저항하며, 내부 노동시장에 자신이 갖고 있는 발판을 잃기보다는 직장에서 자기가 맡고 있는 일자리에 대해 급격한 리스트럭처링이 이루어지는 것을 수용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다기능(멀티태스킹)화로 불리는, 전통적 직업구분의 붕괴를 수용하는 것도 그같은 리스트럭처링 수용의 한 형태다. 이런 나라에서는 노동자가 일단 실업자가 되면 다른 직업을 구하기가 어렵다. 이는 노동기능이 특정한 산업이나 기업에만 필요한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사용자들이 장기간의 고용계약을 해줘야 하는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를 기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나라에서 보수가 괜찮은 일자리에 안정적으로 고용된 상태에서 노동자가 이탈하는 경로는 도표에서 '실업'이라고 쓰인 화살표의 방향으로 가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가 적은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내부 노동시장이 훨씬 덜 보호되고, 노동자의 입장에서 내부 노동시장에 들어 있다는 것의 편익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나라에서는 사용자들이 상황변화에 대해 정규직 고용을 비정규직화하는 것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임시 고용이 풀타임 고용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데에 점점 더 많이 이용되고, 여전히 필요하긴 하나 항상 필요하지는 않은 기능만을 갖추고 있는 직원들은 파트타임 노동자나 프리랜스 노동자로 전환하도록 권유되며, 노동의 아웃소싱이 점점 더 많이 이용된다. 따라서 이 경우 내부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는 과정은 도표에서 '비정규화'라고 쓰인 화살표의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의 비정규화는 미국과 영국 외에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와 같은 나라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이런 나라들에서도 실업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실업이거나 오랜 기간 지속되는 경향이 덜한 경우가 많다. 그 대신 이들 나라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현상은 마치 포드자동차의 기계장치에 녹이 스며들어 번지는 것처럼 노동시장 전체에 고용의 위태로움이 확산되면서 노동조건이 전반적으로 나빠지고 고용의 안정성이 점차 악화되는 것이다.
  
  이런 차이들이 중요한가? 경제 전문 언론매체의 독자들은 독일에 500만 명의 실업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유럽의 노동시장 정책이 '경화'되었거나 '경직적'이기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기사에 익숙할 게 뻔하고, 보다 리버럴한 유럽 언론매체의 독자들은 자기착취의 집단행동 속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한 채 늘 과로하는 '앵글로색슨' 국가 노동자들의 모습을 그린 기사에 익숙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인식은 노동자들 사이에 단합을 촉진하는 데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많은 수의 실업자 대중과 기간제 노동자를 비롯한 한시적 노동자 대중은 어느 정도 동일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즉 실업자와 한시적 노동자는 둘 다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노동시장에서 보다 조직화된 노동자들의 임금수준과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동운동을 제약하는 산업예비군이라는 것이다.
  
  이런 접근법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현대 경제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해내고 있고, 그러는 가운데 다양한 생산요소들이 투입되며, 모든 작업은 아니더라도 많은 작업들이 단순한 근육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달리 말해 노동의 기술적 분업이 진전되면서 이제는 대부분의 직업이 각각 특정한 노동기능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각각의 직업이 요구하는 특정 기능을 갖추지 못한 산업예비군은 쓸모가 없다. 그런데 많은 작업들이 요구하는 특정한 노동 기능의 대부분은 한 세대 전에 요구되던 노동 기능, 즉 20세기 후반에 직업 정체성을 형성시킨 노동 기능과 같지 않다. 선반공, 식자공, 재단사, 그래픽 디자이너, 영화 편집자, 교정원, 천공기사, 오디오 타이피스트(테이프에 녹음된 소리를 들으면서 그대로 타자하는 사람), 전화교환원과 같은 직업들은 과거에 베를 짜던 사람이나 필경사와 같은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됐거나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하는 일의 모습이 바뀌어버렸다. 이런 변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정보기술(IT)이다. 컴퓨터의 이용이 상이한 생산과정들, 산업들, 기업들 사이에 남아 있던 많은 차이들을 모두 다 없애버린 것은 아니지만 상이한 생산과정들, 산업들, 기업들에 필요한 정보를 조직화하고 조작 또는 활용하는 데 표준화된 절차를 도입했다.
  
  일상적인 노동에서 실제로 컴퓨터를 이용하는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나라마다 다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사용자들은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고 실제로 컴퓨터를 작동시킬 줄 아는 소수의 엘리트 노동자 집단과 협상해야 하는 입장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사용자들 가운데 일부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상대적으로 특권적인 소수 컴퓨터 도사들만의 배타적이고 신비화된 영역이었던 1960년대에 그런 협상을 해야 했지만, 지금의 사용자들은 그 누구도 그런 입장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이 컴퓨터를 잘 다룰 줄 알게 하기 위한 교육훈련에 스스로 큰 투자를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사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노동자들이 풍부하게 공급되어, 필요하면 얼마든지 그런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고, 필요 없게 되면 얼마든지 해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그렇게 되어 수요가 급증할 때 필요한 노동 기능을 구하지 못해 손발이 묶일 수 있다는 데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노동자들의 풍부한 공급을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
  
  이런 측면에서 흥미롭게도 19세기의 상황이 지금과 비슷했다. 당시 산업과 국가경제, 제국주의 국가의 조직화가 복잡하게 되자 글을 읽을 줄 알고 셈을 할 수 있는 노동인구가 필요해졌다. 국제무역을 하는 데 따르는 모든 거래와 관련된 송장과 영수증의 처리를 담당할 사무원들이 필요해졌고, 누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일했는지를 기록해뒀다가 그것을 토대로 임금계산을 하는 일도 점점 더 많이 필요해졌다. 육체노동자도 읽고, 쓰고, 간단한 산수를 할 수 있는 게 도움이 됐다. 그래야만 그들도 작업지시를 받고 재고량을 세는 일 등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능을 소수의 노동자들만 갖추고 있다면 그런 기능이 그들에게 얼마간의 협상력을 갖게 해주어 사용자들의 운신공간을 좁혔을 것이다. 물론 시간엄수, 강도 높은 노동, 다른 사람의 재산에 대한 존중 등의 가치관이 이미 주입된 새로운 노동자들이 작업장에 원활히 도착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했다. 그들이 소비자로서도 글 읽기와 셈 하기 능력을 갖추는 것이 도움이 됐다. 그래야만 그들이 갈수록 더욱 더 화폐에 의존하는 경제 속에서 현금을 다룰 줄 알고, 공적인 신호를 읽을 줄 알고, 어느 상품을 살 것인지를 식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이었던가? 기본적인 학교 교육을 보편적으로 실시하면서, 권위가 존중되고 강력한 노동윤리가 권장되며 무단결석이나 시간 안 지키기가 엄하게 징벌되는 분위기 속에서 읽기, 쓰기, 셈하기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이런 기능이 보편화되면 그런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그 누구도 시장에서 추가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오늘날에는 노동 기능의 내용과 그것을 표현하는 수사가 좀 다르다. 이제 사용자들은 디지털 기기 이용능력이 있고, 자발적 동기부여가 돼 있고, 팀플레이를 잘 하고, 소프트 스킬(soft skill)을 갖추고 있고, 피고용경쟁력(employability)이 있고, 기업가적 정신을 갖추고 있는 노동자들을 원한다. 또한 사용자들은 기술과 시장이 변화함에 따라 새로 필요해지는 노동기능을 학습할 자세가 돼 있는, 흔히 '평생학습의 의지가 있다'고 표현되는 사람들을 요구한다. 아울러 사용자들은 특정한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익숙하게 잘 다루고, 글로벌 시장 속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고객들과 의사소통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런 기능, 능력, 적성, 노하우를 어떻게 조합해 갖춘다 하더라도 그것이 안정된 직업 정체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사실들은 지금의 세계에서는 직업에 한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내가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내 직업의 일부로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의미에서 직업에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세계에서는 각각의 직업에 대한 규정이 무한히 신축적으로 되어, 노동자가 물러앉아 "마침내 나는 숙련된 상태가 됐고, 인정받는 직업을 갖게 됐다. 이제부터는 좀 느긋한 자세로 이 직업을 계속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지점에 결코 도달할 수 없게 됐다. 게다가 우리는 이제 글로벌 자본주의의 국면에 접어들었고, 이 국면에서는 19세기에 노동자들이 글 읽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보편적으로 필요하게 됐던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이 새로운 범용의 태도와 능력들을 갖추도록 요구받고 있다. 그리고 19세기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국가기관들은 그런 범용의 태도와 능력을 갖춘 노동자들을 사용자들에게 원활하게 공급해주는 일에 적극 나섬으로써 사용자들을 돕고 있다. 19세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그런 일이 어느 한 나라의 국경 안에서만, 또는 서로 경쟁하는 몇몇 제국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지구적인 규모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뿐이다.
  
  자본주의는 늘 새로운 시장을 찾아 해외로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와 동시에 자본주의는 새로운 노동공급 원천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의 이 두 가지 필요조건은 서로 분리되기 어렵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러나 세계은행이나 유럽연합(EU)과 같은 초국가적 기구의 교육정책이나 그런 기구의 지원을 받는 개별 국가의 교육정책은 '지구적 지식노동자 산업예비군'을 창출하는 것을 명시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그런 효과를 겨냥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지구적 지식노동자 산업예비군이 창출되는 과정에서, 그런 지식노동자가 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어느 정도 배타적으로 가진 사람들이 노동시장에서 누리던 비교우위는 파괴돼버렸다.
  
  이런 식으로 지식노동자 집단을 창출하는 시도는 나라마다 서로 다른 형태를 띤다. 예를 들어 조합주의 모델을 유지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에서는 정부가 '노동기금'을 다수 설립하고 이를 통해 지역별로 사용자들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실업자들에 대한 교육훈련을 실시한다. 한스 게오르크에 따르면 이 나라의 레오벤 시에서는 교육훈련을 받는 피교육생의 38%가 실업자가 되기 전에 일하던 회사로 복귀한다. 이와 관련해 질리언은 오스트리아의 노동기금은 사용자들에게 노동력의 저수지 역할을 해준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노동기금은 사용자가 다시 노동자를 공급해줄 것을 요구하게 되는 시점까지 납세자의 비용 부담으로 노동자를 재교육하는 장소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도표에서는 이런 일이 코너 D 근처에서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심하게 훼손되기는 했으나 아직은 내부 노동시장으로 간주될 수 있는 곳으로의 진입에 대해 국가가 사용자들과 함께 규제에 나선다. 이보다 규제가 덜한 경제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는 교육훈련이 각 개인의 비용 부담과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도표에서 보면, A-C 축에 놓이는 비정규 노동자들, 그 가운데 특히 왼쪽에 치우쳐 있는 노동자들에게 이런 과정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사용자들에 대한 국가의 보조금 지급이 교육훈련에 직접 지출되는 방식이 아닌 다소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국가가 수행하는 역할이 정확히 무엇이든 간에 일반적으로 본다면 국가의 보조금 지급이 구인광고 및 노동자들의 디지털 기기 이용능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초점이 옮겨지는 경향이 있다. 이와 관련해 유럽연합의 전 지역에서는 '유럽 컴퓨터 드라이빙 라이선스(ECDL, European Computer Driving License)'라는 자격이 강조되고 있고, 이 자격의 소지자는 기초적인 컴퓨터 이용능력을 갖춘 것으로 대우받는다.
  
  국제적 수준에서 보면,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교육비 원조가 글로벌 지식기반 경제의 육성과 갈수록 더 명시적으로 관련되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원조 프로그램를 이른바 '케이 포 디(K4D, Knowledge for Development)'와 긴밀하게 연계시킨다. 이런 원조 프로그램은 교육의 개혁을 통신망의 확장과 기업가 정신의 권장, 그리고 기업, 연구소, 대학 등의 효과적인 혁신 시스템 도입과 연결시키는 내용으로 돼 있다. 유럽연합의 개발도상국 원조 프로그램도 비슷한 목적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의 2001년도 정책 중 하나인 '제3세계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 정책'은 "인적자원 관리를 개선하고, 경쟁적인 세계경제 속에서 유럽연합을 교육, 훈련, 연구개발의 강력한 주도기구로 만드는 것"을 교육정책의 목적으로 꼽았다.
  
  이런 개발도상국 원조 프로그램들은 피원조 국가들에 대해 국가 단위의 자격체계를 해체하고 국내 교육훈련을 국제적인 교육훈련 과정에 연계시킬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말하는 국제적인 교육훈련 과정은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들의 대학에 의해 운영되는 교육훈련 과정을 프랜차이즈해갈 것, 초등교육 기관에서 영어를 의무적으로 가르칠 것 등을 요구할 뿐 아니라 디지털 기기 이용능력, 피고용 경쟁력, 기업가 정신 등을 강조한다. 초국적 기업들은 노동 기능의 지구적 표준을 설정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나 SAP와 같은 초국적 기업들은 자사의 소프트웨어 제품 사용에 관한 자격 코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자사 제품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 초중등학교나 대학에 하드웨어나 통신장비를 기부하기도 한다.
  
  유럽연합에서는 e유럽(eEurope) 정책의 실행계획에 따라 2005년에 새로 가입한 10개 국과 아직 가입을 기다리고 있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터키 등 3개 국에 대해 컴퓨터 과학 분야의 전체적인 학업성취도에 관해 여러 가지 목표들이 설정됐고, 이밖에도 인터넷 접근성의 수준과 전자상거래의 이용도와 같은 다양한 지식사회 지표들에 관한 목표들도 설정됐다. 헝가리, 체코공화국, 폴란드,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중동부 유럽 국가들은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을 위해 비용이 적게 드는 '후방 지원부서(백 오피스)'의 역할을 이미 떠맡고 있다. e유럽 정책 관련 문서에서 '제3의 국가들'이라고 언급된 나라들은 이보다 더 외곽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알바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유고슬라비아연방, 마케도니아공화국,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벨로루시, 그루지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몰도바, 러시아연방,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몽골,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모로코, 시리아, 튀니지, 팔레스타인이 그런 나라들이다.
  
  이런 나라들은 영어권에서는 인도, 필리핀, 바베이도스, 프랑스어권에서는 튀니지, 모로코, 마르티니크, 스페인어권에서는 도미니크공화국, 멕시코, 콜롬비아와 같은 처지가 되어간다. 지구적으로 정보노동자들이 바닥으로의 경쟁에 휘말려 있는 상황에서 이런 나라들은 정보노동 아웃소싱의 역외 대상지가 되고 있다. 이런 나라들에는 대용량 통신 인프라가 갖춰져 있을 뿐 아니라 글로벌 언어를 말할 줄 알고 표준화된 글로벌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돌릴 줄 아는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글로벌 소싱(global sourcing)'이라는 용어가 지칭하는 과정이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사용자들은 이런 나라들을 넘나들며 일자리를 이 노동자로부터 저 노동자로,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부단히 옮길 수 있게 된다. 여기서 글로벌 소싱이란 사업상 고객의 수요에 맞춰 필요한 작업들을 다수의 여러 장소에 분산 배치해 각각 현지의 노동자들에 의해 수행되도록 하는 '노동의 복잡한 혼합 및 연결' 체제를 가리킨다.
  
  선진국의 노동자들은 국내의 일자리가 해외로 옮겨지는 것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국내의 일자리가 제거되는 데 있다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산업예비군이 존재하는 목적은 모든 일자리를 다 넘겨받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규율을 강요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선진국 노동시장의 전체 규모에 비하면 해외로 장소를 옮기는 일자리의 수는 실제로는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선진국의 사용자들은 주된 고객들이 본거지를 두고 있는 곳, 즉 국내에서 필요한 노동 기능을 갖춘 노동자들을 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대부분 민감한 '핵심' 연구개발 작업은 해외로 옮기기를 꺼린다. 그런가 하면 콜센터와 같이 해외이전이 많이 일어나는 작업 부문들은 전체적으로 확장의 과정에 있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은 자신의 제품을 사줄 국내시장도 필요로 하지만, 국내에 대량실업이 존재한다면 그런 국내시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 시장은 중국이나 인도의 시장보다 여전히 몇 배나 더 크다.
  
  실업은 분명히 발생하고 있고 실업에 의해 현실의 비참이 야기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자리의 해외이전이 가져오는 가장 강력한 효과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일자리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이전이 가능한 일자리에 고용될 수 있는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둬야 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노동 기능을 전 세계에 걸쳐 수십만 명의 다른 사람들도 역시 갖고 있음을 안다면 직업 정체성을 토대로 조직화를 하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자리가 얼마든지 해외로 이전될 수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면, 이런 의식은 임금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데, 그리고 잔업 등의 추가 노동을 거부하는 데 강력한 잠재적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다. 일자리가 해외로 이전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노동자들의 삶의 안정성과 협상력이 파괴될 수 있다. 사용자들은 여전히 노동자들의 창조성과 지식을 필요로 하고 있고, 때로는 고도로 전문화된 노동기능을 필요로 하기도 하지만, 이런 것들이 고정적이고 안정된 직업 정체성 속에 존재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다.
  
  지금 우리는 이처럼 직업 정체성이 파괴되는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현됐던 고임금-고소비의 타협이 종국적인 죽음을 맞고 일자리의 안정성도 종말을 고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혹시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의 발전과정 속에서 또 한번의 변전을 겪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조직화된 노동이 보호주의와 인종주의에 밀려 붕괴하는 모습을 보게 될까? 아니면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는 노동자들의 창의성과 능력이 국가별로 쳐진 전선을 가로질러서 새로운 형태로 노동의 조직화가 이루어질 것인가? 미래에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될 때 우리는 그때 어떻게 대답하게 될까? (번역=이주명 기자)
   
 
  어슐러 휴스/영국 런던메트로폴리탄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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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바라보는 몇가지 관점

▲ 이명원 서울디지털대 문예창작학부 교수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시인 백석의 절창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도입부다. 이 시를 읽다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뻐근해지곤 했다. 특히 ‘가난한 나’의 사랑노래가 마음에 물기를 돋게 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유년시절, 신약성서의 이 구절을 읽으면서, ‘가난’과 ‘천국’의 관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곤 했다. 알쏭달쏭했다.

“가난은 한갓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라는 시의 일부다. 삶의 남루에도 불구하고 인간됨의 위엄은 훼손될 수 없다는 메시지가 자못 울림이 있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던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도, 가난에 대한 꽤 낭만적인 헌사에 바쳐진 듯했다.

그러나 산 체험으로서의 가난은 사실 혹독하다. 가치나 지향이 사라진 가난의 혹독함은,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절규와 함께 강림한 비극이다. 가난에 단련될 수 없는 구체적인 인생들에게, 가난에 대한 성찰적 물음은 죄다 ‘개똥철학’에 불과하다. 게다가 ‘돈’ 본위의 사회가 되어버린 오늘 날, 가난은 ‘무능의 증거’로 규탄된다. ‘부자 아빠’가 노골적으로 예찬되는 세계에서 가난한 나의 사랑, 행복, 타고난 마음씨는 물론이고, 천국 따위는 도대체가 낯선 은하계인 것이다. 설화 속의 흥부가 다시 태어난다면, 그와 놀부 사이에서 갈등했던 ‘제비’는 오늘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가난은 신자유주의라는 지배적 시스템의 측면에서도 규탄되지만, 그것의 모순을 지양하려는 대안적 시스템에서도 곧잘 ‘제거’의 대상으로 떠오르곤 한다. ‘민중의 수사학’으로 무장된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조차 ‘가난’을 악의 상징으로 규정하는 일을 우리는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가난의 반대편에 있는 ‘부’야말로 ‘선’이라는 이야긴데, 이러한 관점은 가치론적으로 보자면, 결코 올바른 시각이 아니다.

우리는 ‘가난’과 ‘부’의 문제를 물질적 차원에서 보는 일과 가치론적 차원에서 보는 일, 그리고 공동체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잘 구분해야 한다. 대원칙은 ‘가난’과 ‘부’가 그 자체로 옹호되거나 규탄되어야 할 상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난과 부, 그 자체를 양극화하여 규탄하거나 옹호하는 시각은 오히려 초점이 빗나간 논의를 이끌어내기 쉽다. 부자 아빠를 예찬하면서 가난한 아빠에 대해 무능의 딱지를 씌우거나, 부자 아빠들의 정체야말로 가난한 아빠에 대한 착취에 기반하고 있다는 시각은 선동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는 주장이지만, 이는 물질적 양극화 못지않은 인식론적 편견을 불필요하게 확대재생산 한다.

가난과 부의 가치평가 문제에서 중요한 사항은 ‘경쟁조건의 평등성’과 이에 따른 ‘분배구조의 형평성’, 개별적 필요를 과잉 초과하는 부의 사회환원을 통한 사회구성원 공통의 이익과 복지의 증진 문제이다. 이러한 사실과 함께, 가치론적 차원에서 ‘가난의 철학’을 정립하려는 노력에 대해서도 우리는 좀더 섬세해지고 성숙해져야 한다. ‘자발적 가난’에 대한 지식인의 담론이 자주 공허한 지적 허위의식으로 전락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와 무관하게 비움을 통해 삶을 채울 수 있다는 사색은 인간들이 지속해왔던 오래된 성찰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명원/서울디지털대 문예창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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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다

이런 선거가 있었다. 정부에서 막대한 예산을 지원해서 한쪽 후보를 편들었다. 선거자금에 대한 법적 규제도 없어서 한쪽 후보가 돈을 엄청나게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돈을 써도 나중에 다 메워주기로 약속도 되어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삭발을 하면서 한쪽 편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공무원들이 동원되어서 한쪽 후보에 대해서만 홍보를 했다. 사전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도 없어서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하기 몇 달 전부터 공무원들이 한쪽에 대해서만 홍보를 하고 다녔다. 마지막에는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들이 난무했다. 이장들이 동원돼 부재자투표 신고를 받았고, 공개투표 시비까지 있었다.
  
  이런 선거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당연히 상식으로 판단하면 부정선거, 불공정선거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선거는 법적인 문제를 떠나 당연히 무효다.
  
  과거 자유당 시절에 부정선거가 있었지만, 민주화된 지금 시대에 최소한 이런 선거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 왔다. 그런데 경주, 군산, 영덕, 포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앞에서 이야기한 모든 일들이 어제(11월 2일) 실시된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주민투표와 관련하여 일어났던 일들이다.
  
  자유당 시절 부정선거 뺨친 주민투표
  
  기본적으로 유권자들의 투표라는 행위가 있다는 점에서 선거와 주민투표는 다를 것이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선거는 후보나 정당에 대해 투표를 하는 것이고, 주민투표는 특정 사안(정책)에 대해 찬ㆍ반을 밝히는 투표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든 주민투표든 그것이 유권자들의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해서는 공정해야 한다. 공평하게 운동을 할 수 있게 해야 하고 공정한 룰이 적용돼야 한다. 그리고 금권이나 관권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원칙이 무너지면 선거나 투표는 민주적 절차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어제(11월 2일) 있었던 방폐장 주민투표에서는 그런 최소한의 원칙이 무시됐다. 지자체의 예산이 찬성하는 쪽에만 지원되었다. 투표운동 자금에 대한 규제도 없어서 찬성하는 쪽에서는 지자체로부터 지원받은 돈을 마음대로 써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찬성률이 가장 높았다는 경주의 시장은 삭발 하면서 찬성을 호소했다.
  
  찬성률을 높이기 위해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말단 행정조직인 이장, 통ㆍ반장들이 동원됐다. 그 결과 부재자투표 신고율이 정상적인 선거보다 20배가 넘게 나왔다. 이번에 찬성률이 가장 높았던 경주의 경우 최종 투표율이 70.78%였다. 그런데 그 중 부재자 투표 신고율은 38.1%였다. 그런데 지난 10월 26일 치러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부재자 투표 신고율은 1.6%에 불과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사상 초유의 부재자 투표율은 강력한 관권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부재자 투표에 대해서는 이미 상당수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신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고, 심지어 공개투표를 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점을 안고 있는 주민투표에 대해 반대하는 주민들이나 환경ㆍ사회단체가 효력을 인정할 리 만무하다. 부정선거가 치러진 이후에 '그래도 선거를 했으니 무조건 따르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깨어 있는 시민이라면 당연히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민들의 저항에 의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발전해 왔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고준위 방폐장은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이런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이번 주민투표는 정부가 그동안 굴업도, 안면도, 부안에서 방폐장 추진에 실패한 이후 새롭게 '유치지역 지원 특별법'을 제정하고 중ㆍ저준위 방폐장과 고준위(사용 후 핵연료 등) 방폐장을 분리하기로 한 이후에 치러진 것이다.
  
  그 이전과 바뀐 것은 '3000억 원+알파(α)'의 지원금과 한국수력원자력(주) 본사 이전이라는 혜택이 주어지고 위험도가 비교할 수 없이 높은 고준위 폐기물은 안 들어오고 중ㆍ저준위 폐기물만 들어온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당근을 키우고 고준위 폐기물은 들여오지 않음으로써 주민들의 저항감을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우선 의문이 제기된다. 과연 고준위 폐기물 처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 부지 선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중ㆍ저준위 폐기물에 3000억 원을 지원했다면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 부지에는 3000억 원의 10배, 100배를 지원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정부는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미뤄 두었을 뿐이다.
  
  사실 방사성 폐기물의 핵심은 고준위 폐기물이다. 고준위 폐기물은 1만 년이 지나도 위험하다는 폐기물이다. 현재 법률로써 중ㆍ저준위 방폐장에는 고준위 폐기물을 처분하지 않기로 했지만 사실 법률은 국회의원 과반수로 언제든지 개정이 가능하다. 고준위 방폐장에 대한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중ㆍ저준위 방폐장 부지만 선정한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
  
  방사성폐기물 정책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안전성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정책의 기본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독립적 기구가 추진하고 관리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방사성 폐기물 관리법이 국회에 의원 발의돼 있지만 제대로 심의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런 기본적인 틀도 없는 상태에서 정부는 돈과 관권으로 부지부터 선정하려고 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 현주소 보여준 방폐장 주민투표
  
  한편 이번 일로 주민투표 제도 자체의 문제점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우선 중앙정부가 국책사업에 대해 주민투표를 요구할 수 있게 한 조항은 폐지되어야 한다. 정부가 주민투표를 임의대로 실시할 수 있으면 주민투표는 정부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시점을 정해서 여론을 호도하고 자금도 뿌리고 관권도 동원해서 지역 민심을 유도한 후에 투표를 실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주민투표법에서 금권이나 관권 개입을 무제한 허용하고 있는 부분도 전면 보완되어야 한다. 현재 일반 선거에 적용되는 선거법상으로는 이장, 통ㆍ반장, 관변단체와 같이 관의 영향력 내에 있는 사람들은 선거운동을 못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주민투표법상으로는 이장, 통ㆍ반장, 관변단체 등이 찬반 운동을 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다.
  
  또한 사전투표 운동에 대한 규제가 약하다보니 주민투표를 발의하기 전에는 공무원이 총동원돼 찬성 쪽만 홍보하고 다녀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선거법상으로는 선거자금에 대한 규제가 있는데 주민투표법에는 아무런 규제가 없다. 돈을 펑펑 써도 아무 문제가 안 된다. 그러다보니 경주시는 무려 15억 원을 예산편성해서 찬성운동에 사용하고, 찬성단체를 지원했다. 중립성, 공정성은 완전히 상실된 것이다. 따라서 주민투표에서 찬ㆍ반 양측이 사용하는 자금도 규제를 해야 하고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일체 자금지원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법 자체도 문제지만 법을 집행하는 기관들은 더 문제였다. 주민투표법상 공무원의 투표운동이 금지되어 있는데도 신분이 공무원인 경주시장은 삭발까지 하면서 찬성을 유도했다. 그렇지만 선거관리위원회는 직무를 방기했다. 부재자투표에서 엄청난 문제가 드러나도 선관위는 개별적인 확인 작업에 소극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방폐장 주민투표는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관이 개입하고 주도해서 투표라는 형식으로만 포장하는 이런 방식의 주민투표는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이런 식의 주민투표가 실시될 수 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리고 '여론을 호도하고 돈과 조직을 동원해서 밀어붙이면 된다'라는 발상이 통용되게 한 노무현 정부는 한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하승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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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주의 강연회 자료집


반자본주의 강연회 1강

자본주의 경제구조와 노동자

전국노동자회 교육위원 김화정



1. 인간 역사의 변화·발전과 자본주의 사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 살고 있다. 막강한 생산력과 경쟁의 논리, 모든 것을 상품화시켜 내는 능력 등을 볼 때 마치 과거에도 현재에도 또 미래에도 자본주의란 영원불변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역사적으로 변화·발전해 왔다.

돌도끼 들고 사냥하던 ‘원시공동체 사회’, 사람을 노예로 사고파는 ‘노예제 사회’, 양반-천민 갈라 살던 ‘봉건제 사회’,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 또 한 축의 ‘사회주의 사회’ 등 역사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인간 사회가 존재해 왔다.

물론 나라마다 민족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인류 전체의 역사는 이런 큰 흐름을 가지고 변화·발전해 온 것이다.

원시공산제 사회

- 공동생산, 공동분배, 공동소유 : 착취가 없다.

- 채취, 사냥 / 돌멩이, 몽둥이

- 생산력이 낮아 잉여생산물이 없다.

생산력 발전으로 잉여생산물 발생, 사적 소유와 재산상의 불평등 발생

노예제 사회

- 노예―노예주 (최초의 계급발생)

- 국가가 나타남 (군대, 감옥 등)

- 농업, 목축업, 수공업 등 분화

노예착취로 노예감소, 스파르타쿠스 난 등 노예반란, 소농 발전

봉건제 사회

- 농노―봉건영주

- 농노는 영주에 인격적·신분적으로 예속

- 농노는 영주 소유의 토지를 경작하고 생산물의 일부를 지대로 바침

상업과 도시의 발전, 농민봉기와 시민혁명

자본주의 사회

- 노동자―자본가

- 임노동 : 신분적 예속은 없으나 노동력을 팔아야 먹고 살 수 있는 노동자

- 대규모 산업발전


● 인간의 역사는 변화·발전해 왔다.

돌멩이를 들고 사냥하던 원시공산제 사회에서 기계와 로봇 등 최첨단 산업으로 발전해 온 인간의 역사는 생산력의 발전만이 아니라, 문화·예술·과학,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의 확대와 발전과정이었다.

노예제 사회보다는 봉건제 사회가, 봉건제 사회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분적·법적 평등과 정치적 자유가 확대 발전되었다.


● 역사는 전진과 퇴보, 정체와 비약을 거듭하며 발전해 나아간다.

역사는 전진과 퇴보를 거듭하며 발전한다. 역사는 일직선으로 발전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크게 보자면 면면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오랜 시간 발전과 퇴보를 거듭하며 정체하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우리의 관념을 뛰어넘어 짧은 시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도 하는 것이 역사의 전개방식이다.


● 역사발전의 원동력 = 생산력의 발전 + 자유·평등·해방을 향한 피지배계급의 투쟁

역사를 발전시켜 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일차적으로 생산력의 발전이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볼 때,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적응·지배·조화 능력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계급투쟁이다. 특히 자유·평등·해방을 갈구하며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고자 했던 피지배계급의 투쟁이다. 사회가 발전해 온 역사 속에는 수많은 노예·농노·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의 흔적이 숨어 있다.


● 자본주의 사회는 또다른 사회로 변화·발전해 나아갈 것이다.

‘엄청난 생산력과 상품, 소비향락, 자본과 경쟁의 위력’을 과시하며 얼핏 영원불변할 것만 같은 자본주의도 알고 보면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으로부터 본격화된 것으로, 약 3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수십만년에 이르는 인류 역사에 비교하면 사실은 아주 짧은 시기다.

인간의 역사가 변화·발전해 온 큰 역사적 흐름과 발전과정을 보면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도 또 다른 어떤 사회로 변화·발전해 나갈 것임을 알 수 있다.



2.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


자본주의를 한자로 풀면 資[재물 ], 本[근본 ], 主[주인 ], 義[옳을 ]다. 의미 그대로를 풀면 자본주의 사회란 ‘돈이 주인인 사회’라는 말이다.

사실 돈이 많을수록 떵떵거리며 살 수 있고, 돈이 없으면 사람대접도 제대로 못 받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다.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덧 ‘돈’ 자체가 절대적인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돈의 노예가 된 사람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돈을 번다기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다.


1) 자본주의 사회에는 크게 ‘노동자―자본가’라는 두 개의 계급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형적인 생산형태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가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생산이 이루어지는 기업 형태의 생산이다.

생산력 발전의 결과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서는 [‘개인적 생산’이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생산설비 및 노동력을 결합시킨 ‘사회적 생산’이 주된 생산형태로 되기 때문이다.


● 자본가

- 자본가는 기업을 차려 노동자를 고용하고 일을 시켜 생산된 상품을 팔아 돈을 번다.

- ‘자본’은 보다 많은 이윤을 확보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확대하려는 본성을 갖고 있으며, 자본가는 이러한 자본의 의지를 실현하는 역할을 한다.

- 따라서 산업자본가·금융자본가·상업자본가 등 모든 자본가는 이윤추구를 위해 기업을 운영하며, 어떻게 해서든 더 적은 임금으로 노동자에게 더 많은 일을 시켜서 더 큰 이윤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 노동자

- 노동자는 노동을 통하여 생산의 주체로서 역할하지만, 자본가에게 고용되지 않으면 노동할 수 없고, 노동할 수 없으면 먹고 살 수 없다. 즉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 (노동자=임금노예?)

- 노동자는 노예나 농노와 달리 자본가에게 신분적으로 예속되어 있지는 않으며,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로운 의지로 자본가에게 판매함으로써 고용계약이 성립한다. 그러나 실제 노동력을 사용하는 노동과정 속에서 노동자는 철저히 자본의 지휘·통제·감독 아래서 노동한다. (※ 노동력 : 일하는 데 필요한 정신적 육체적인 힘. 노동할 수 있는 능력)


2) 자본주의 사회는 상품을 기초로 경제가 운영되며, 모든 게 상품이 된다.


● 상품의 생산과 판매를 기초로 운영되는 자본주의 경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의식주를 비롯하여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사서 쓴다. 사람들의 생활에 필요한 소비재만이 아니라 그러한 소비재를 생산하기 위한 생산설비나 기계도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이렇게 돈을 주고 사는 물건이나 서비스가 상품이다.

상품이 자본주의 사회에만 나타난 것은 아니며, 상품을 파는 상인은 고대 사회로부터 매우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생산이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상품의 생산으로 전면화’된다.

가령 조선시대 소작인(농민)은 지주의 땅(논)을 경작하여 수확량(쌀)의 일정 부분(가령 50%)을 소작료로 지주에게 바치고 나머지(쌀)로 가족들이 1년을 먹고 살았다. 가끔 쌀이나 미리 쌀과 바꾸어 둔 엽전을 주고 머리빗·항아리·호미 같은 물건들을 사기도 하였지만, 집을 직접 짓거나 옷을 직접 지어 입는 등 경제생활에서 상품에 대한 의존도가 별로 높지 않았다. 즉 조선시대 소작인의 생산은 기본적으로 상품생산이 아니었으며, 상품의 구매가 있기는 하였지만 경제생활의 중심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상품을 구매하지 않고는 하루도 버티기가 힘들다. 한 푼의 돈도 쓰지 않으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가를 생각해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이 얼마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가를 알 수 있다.


● 상품의 소유권은 직접생산자인 노동자가 아니라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가 갖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원천은 상품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의 소유권은 상품을 직접 생산한 노동자가 아니라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가 갖는다.

이처럼 노동생산물의 소유권을 ‘직접생산자’가 아니라 ‘생산수단을 소유한 지배계급’이 갖는 것은 계급 사회의 공통적인 모습이다. 노예의 노동생산물은 [토지와 노예를 소유한] 노예주가 가졌고, 소작인의 노동생산물은 [토지를 소유한] 지주가 가졌다.


● 상품 생산의 무정부성과 공황

상품은 시장에서 판매될 것을 전제로 하여 생산된다. 만일 기대와 달리 상품이 시장에서 판매되지 않는다면, 심각한 사태가 일어난다. 이윤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투자원금도 회수하지 못하게 된 자본가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거나 해고한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과잉생산에 의한 공황에 직면한다. 사회 전체적인 구매력을 넘어서서 상품이 과잉 생산됨으로 인해 판매처를 찾지 못한 자본이 도산하고, 그로 인한 실직의 급증으로 사회 전체적인 구매력이 더욱 저하되어 더 많은 자본이 파산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상품의 판매량이 사회 전체적인 구매력 수준에 이를 때까지 수많은 자본의 파산으로 생산력이 저하되고 나면 공황을 탈출하여 다시 경기가 활성화된다. 공황을 거칠 때마다 경쟁력이 약한 소규모 자본은 몰락하고 덩치를 키운 자본의 맹렬한 성장이 전개되다가 다시 공황을 맞이한다.

공황은 떵떵거리던 자본가들이 줄줄이 파산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대규모 실직과 임금삭감으로 인해 최소한의 생활필수품도 구하지 못한 노동자들의 빈곤과 고통이 극에 달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도 상품의 과잉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바다에 버리는 등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1820년대부터 10년 주기로 반복되던 공황은 1929~1939년의 세계대공황에 이르러 탈출구를 찾지 못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의 대량 파괴에 힘입어서야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다.

세계대공황 및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난 이후 국가의 개입으로 [수요를 인위적으로 늘림으로써] 공황을 회피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사용되면서 세계대공황과 같은 양상은 반복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전형적인 공황이 사라진 대신 1970년대 말 이후 지금까지 세계 경제는 만성적인 불황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으며, 언제 사상초유의 세계대공황이 전개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 모든 것이 상품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으로 된다. 다시 말해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대상이 된다. 하룻밤 성행위에 10만원, 해수욕장 입장료 5천원, 콩팥 한쪽에 70만원 등등

모든 것이 상품으로 되는 까닭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여 평가하려는 경향이 만연한다. 이를테면 값비싼 선물일수록 정성이 깃든 선물로 간주된다. 돈 잘 버는 신랑감을 아들로 둔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비싼 혼수와 예단을 해오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또한 돈이 많을수록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므로 돈 자체가 절대적인 목적으로 되며, 돈을 잘 버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된다. 좋은 직업과 배우자를 따질 때도 돈을 얼마나 잘 버는가가 우선적인 기준이 된다. 몸이 부서지고 가정이 무너지며 삶이 피폐해져도 돈만 많이 벌 수 있다면 좋아하기도 한다. 유산을 탐내어 부모를 살해하는 엽기적인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나아가 돈으로 상품을 사는 소비행위 자체에서 기쁨과 만족을 얻는 소비향락주의가 만연해진다. 자신의 소비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주며 유명메이커 제품을 기쁜 마음으로 구매한다. 이웃보다 더 비싼 집, 더 비싼 차, 더 비싼 가구를 사는 것으로 우월감을 느끼고, 그러지 못하여 생기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정신없이 소비경쟁에 뛰어든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라는 카드회사의 광고처럼, 소비능력은 자존심의 근원이 된다.



3. 자본주의 경제구조


1) 임금 = 노동력의 가격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함으로써 고용관계를 맺게 된다. 모든 상품에는 가격이 있듯이, 노동력의 가격이 곧 임금이다.

일반적으로 상품의 가격은 수요·공급에 따라 일정한 변동 폭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평균적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마찬가지로 노동력의 가격으로서 임금은 기본적으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평균적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해서 사용해야 할 노동자의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한 비용이 바로 임금이다.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서, 노동자는 먹고 입고 쉬어야 하며, 2세를 교육시키고 아픈 곳을 치료해야 한다. 나아가 일정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해야 한다. 이처럼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표준 생계비가 임금이다.


▲ 2003년 표준 생계비 (민주노총이 산정한 가구 규모별 표준생계비, 2002년말 물가 기준)

 

단신 가구

2인 가구

3인 가구

4인 가구

표준 생계비

1,271,616

1,998,452 

2,504,131

3,434,381


그런데 보다 적은 임금으로 노동력을 구매할 수 있다면 자본가들은 그만큼 더 많은 이윤을 얻게 된다. 사실 자본가들의 입장에서는 임금을 최대한 낮추되 노동자들이 굶어죽어 노동력 공급 자체가 중단되는 일만 없으면 된다.

그러나 생산력 발전의 성과와 문화적 혜택을 공유하며 어느 정도나마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자 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당연한 요구다. 노동자들은 건강하게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는 비용으로서 임금을 제값대로 받아야 한다.

따라서 지난 수백년의 자본주의 역사는 임금을 제값보다 낮추려는 자본가들과 임금을 제값대로 받으려는 노동자들 사이에 끝없는 투쟁이 전개되어 온 과정이었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임금을 둘러싼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투쟁은 끝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결국 노동자들의 실제 임금 수준은 개별 기업 내지 사회 전체 차원에서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을 상대로 얼마나 단결된 투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 임금투쟁)


2) 잉여가치의 생산과 이윤의 창출


자본가는 돈을 벌기 위해, 즉 이윤을 얻기 위해 기업을 운영한다. 그렇다면 자본가는 어떻게 해서 이윤을 얻는가?

이를테면 A라는 자본가가 (1천일의 사용기간을 갖는) 10억원 어치의 건물·설비·도구를 마련하고, 200만원 어치의 원자재를 구매하여, 일당 4만원짜리 노동자 20명으로 하루 8시간 생산을 하였는데, 이 날의 생산결과 500만원 어치의 상품이 제조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A라는 자본가는 380만원의 자본을 투자하여 500만원의 상품을 얻음으로써 120만원의 이윤을 얻었다. 이 이윤은 어디서 생긴 것인가?


투자된 자본

산출된 자본

이윤

건물 등 감가상각분

100만원 (=10억÷1천일)

500만원

(=상품가치)

120만원

(=500-380)

원자재

200만원

임금

80만원 (=4만원×20명)

380만원


자본가가 얻는 이윤의 원천은 노동자가 생산하는 잉여가치다.


● 노동자가 노동하지 않으면 자본가의 이윤은 없다.

자본가는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돈으로 ①건물·설비·도구 ②원자재 ③노동력을 구입하여 생산활동에 투입한다. 그런데 자본가가 아무리 많은 생산수단[건물·설비·도구 및 원자재]을 구비하였다 하더라도 만일 노동자가 노동하지 않는다면 생산은 이루어지지 않고 자본가가 새롭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생산에 투입되지 못한 생산수단의 감가상각 등으로 인해 자본가는 오히려 피해를 볼 뿐이다.

이것은 자본가가 얻는 이윤이 노동자의 노동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자본가들이 많은 돈을 투자하였기 때문에 그로부터 [저절로] 이윤이 나오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한 천박한 인식일 뿐이다.

제 아무리 거대한 자본과 고성능 컴퓨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는 한 푼의 가치도 새롭게 만들어내지 못한다. 인간의 노동, 노동자의 노동이 생산수단과 결합했을 때에만 생산이 이루어지며,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 가치 이상으로 노동을 하며, 이로부터 잉여가치를 생산한다.

임금을 받고 자본가에게 고용된 노동자는 노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생산한다. 노동자가 생산한 노동생산물 속에는 ‘생산수단의 가치가 그대로 이전한 부분’과 ‘노동자가 새롭게 창조한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앞에서 든 예를 다시 살펴보자. A라는 자본가가 (1천일의 사용기간을 갖는) 10억원 어치의 건물·설비·도구를 마련하고, 200만원 어치의 원자재를 구매하여, 일당 4만원짜리 노동자 20명으로 하루 8시간 생산을 하였는데, 이 날의 생산결과 500만원 어치의 상품이 제조되었다고 가정한다.

이 경우 500만원 어치의 상품(노동생산물) 속에 담긴 가치는 다음과 같이 구분해 볼 수 있다.


생산수단의 가치가 그대로 이전한 부분

노동자가 새롭게 창조한 가치

건물·설비·도구의 감가상각분

원자재

200만원

(=500만원-300만원)

100만원

200만원


여기서 노동자가 새롭게 창조한 가치 200만원 가운데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 8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120만원이 바로 잉여가치다.


노동자가 새롭게 창조한 가치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

잉여가치

200만원

80만원 (4만원×20명)

120만원


즉 ‘잉여가치’는 ‘노동자가 생산을 통해 새롭게 창조한 가치’에서 ‘임금’을 뺀 금액이다.

만일 ‘노동자가 새롭게 창조한 가치’가 ‘임금’보다 많지 않다면 자본가 A는 손해를 보거나 남는 게 없게 된다. 그렇다면 자본가 A는 기업을 운영할 수 없고, 사회 전체적으로 보자면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가 없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생산에서는 기본적으로 ‘노동자가 새롭게 창조한 가치’가 ‘임금’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 된다.

한편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를 창조하는 데 사용된 노동시간을 ‘필요노동시간’이라 하고, 잉여가치를 창조하는 데 사용된 노동시간을 ‘잉여노동시간’이라 한다. 이것을 앞의 예로 다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필요노동시간

잉여노동시간

전체 노동시간

시간

3.2시간

4.8시간

8시간

건물 등 감가상각분

40만원

60만원

100만원

원자재

80만원

120만원

200만원

새롭게 창조한 가치

80만원

120만원

200만원

=임금

=잉여가치


●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을 소유함으로써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이윤으로 가져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노동생산물)의 소유권을 갖는 자본가는 상품 속에 담겨 있는 잉여가치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소유로 가져간다. 바로 이것이 자본의 이윤으로 된다.

즉 자본가의 이윤은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착복한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이윤으로 착복하는 과정은 외관상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노동력을 판매하고 또 그 가격으로서 임금이 지불되었다는 사정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상품가치

생산수단의 가치가 그대로 이전한 부분

노동자가 새롭게 창조한 가치

500만원

건물 등 감가상각분

원자재

임금

잉여가치

100만원

200만원

80만원

120만원

산출된 자본

투자된 자본

이윤


이는 조선시대 소작인이 농사를 지어 수확물의 일정부분(가령 50%)을 소작료로 낼 때에는 확연하게 지주의 착취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조선시대 봉건제 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의 분배라는 형태로 착취의 실체가 확연히 드러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과정 속에 교묘한 형태로 착취의 실체가 은폐되어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런 속임수(!)가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함으로 인해, ‘열심히 일하면서 살고 있는데 왜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노동자들이 쉽게 인식하지 못하게끔 되어 있다. 내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노동의 성과를 빼앗기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내가 못사는 것은 내가 못나고 게으르며 운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돈이 최고고, 돈만 있으면 돈을 벌 수 있다”

왜곡된 현실인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게 되는 것이다 : 주식·투기·복권


● 잉여가치를 늘리기 위한 방법1 :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잉여가치를 늘리려 한다. 수백년 동안 수없이 많은 방법들이 사용되어 왔지만, 근본적으로는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잉여가치를 늘리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노동시간을 연장함으로써 잉여노동시간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른바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주야교대근무, 잔업, 특근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는 자본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가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기본조건(“특근·야간·연장 없이 생활임금 보장”)을 파괴하는 것이다.


필요노동시간

잉여노동시간

필요노동시간

잉여노동시간 (노동시간 연장)


과거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처음 태동했을 때에는 하루 15~16시간, 심지어 20시간씩 일을 시켰다. 얼마 전 미국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 노동자들의 주간노동시간이 55.1시간으로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보고가 나왔다. 이는 자본가들이 그만큼 잉여가치를 많이 착취하고 있다는 뜻이다.

노동시간 단축 문제는 과거 19세기 선배 노동자들의 투쟁에서부터 노동자 투쟁의 핵심적 쟁점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하루 14시간에서 12시간으로, 10시간으로, 8시간으로 [나아가 주40시간을 넘어 주35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투쟁이 전개되어 왔다. 세계노동절 또한 8시간 노동제를 위해 투쟁했던 미국 노동자들을 기념하려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 잉여가치를 늘리기 위한 방법2 :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것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아무리 노동시간을 연장한다 해도 하루에 24시간 이상으로 연장할 수는 없으며, 노동시간을 연장함에 따라 작업능률이 떨어지고 산재 및 노동자의 저항이 거세지기 때문이다.

잉여가치를 늘리기 위한 두 번째 방법은 노동강도 강화 혹은 생산성 향상으로 필요노동시간을 단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잉여노동시간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른바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필요노동시간

잉여노동시간

필요노동시간

잉여노동시간


자본가는 작업(콘베이어)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더 많은 업무를 담당케 하여 노동자의 육체적·정신적 노동량을 증가시키는 방법, 즉 노동강도 강화를 통해서도 잉여가치를 확대한다. (uph상승, 화장실 1번 가기, 잡담금지, 핸드폰 끄기, 면회사절, 감시시스템 도입 등) 이를테면 5시간 걸려서 하던 일을 4시간만에 해내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생산력 향상으로 5시간 동안 할 일을 4시간 동안 해낸다면 자본가가 확보할 수 있는 잉여가치는 증가하게 된다.

즉 노동자 자신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노동시간(필요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자가 자본가를 위해 무상으로 일하는 노동시간(잉여노동시간)을 연장시킴으로써, 자본가는 더 많은 잉여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다.

노동강도 강화는 노동시간 연장에 비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 못지않게 노동자들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훼손한다. 만일 노동자들의 저항이 무력화되면, 자본은 “마른 수건도 쥐어짠다”고 할 정도로 노동강도를 강화시킨다.

노동강도 강화 저지, 나아가 노동강도 완화로 ‘적정 노동강도를 유지하는 것’ 또한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다.



3) 자본의 축적과 집중, 노동자의 삶


● 자본간 경쟁과 자본의 축적·집중

살벌한 자본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본가들은 죽기 살기로 더 거대한 규모의 투자, 신기술 도입, 인건비 절감 등을 통해 생산력을 향상시켜 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약한 중소기업, 기술력이 떨어지는 소자본들은 몰락의 길로 가고, 소수의 대자본에게로 흡수·통합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본간 경쟁을 통해 강한 기업이 약한 기업을 흡수하거나 종속시킴으로써 경쟁상대를 제거한다. 그러나 새로운 대기업들은 또 다른 대기업과 훨씬 더 치열하고 차원 높은 경쟁을 해야만 한다.


● 자본의 집중과 노동자의 삶

한편 노동자들은 자본의 축적과 집중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해고와 실직의 위기에 직면한다.

일반적으로 자본이 축적·집중되면 생산규모가 커지고 생산량이 증대하지만, 생산성이 높아짐으로 인해 고용된 노동자 수는 상대적으로 더 적어진다. 특히 공황 내지 경제위기 국면에서 자본의 집중이 진행될 때에는 노동자들의 해고와 실직이 더욱 심각하게 발생한다. 그런데 자본의 집중은 대부분 공황 내지 경제위기 국면에서 이루어진다.

기업에서 쫓겨나 실업자가 된 노동자들은 착취당할지언정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는 조건조차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과로와 산재의 위협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 고된 일을 멈추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남아도는 노동력은 자본가에게는 유리한 자본축적의 조건이 된다. 왜냐하면 실업노동자가 있기에 자본가들은 현재 취업해 있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압박하고 그들의 요구와 투쟁을 약화시키고, 자본가의 지배력을 강화시켜 잉여노동의 확대를 가능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삶이 파괴당하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더 많은 이윤을 위하여 자본의 축적과 집중을 관철시켜 나가는 과정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4.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각종 제도와 수단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자본가들은 경제구조에서만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사상적으로 권력을 거머쥐고 다수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


● 국가

국가는 어떤 집단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그들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계급관계가 형성되었던 노예제 사회로부터 시작되었다. 소나 돼지처럼 취급받던 노예들의 반란에 맞서 그들을 통제하고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서 국가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실제로 국가는 지배세력의 이익을 보장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입법·사법·행정부라는 각종 기구로 구성되며, 대통령·국무총리·대법원장 등 국가엘리트들이 법률을 제정하여 국가권력을 행사한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 국가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가의 문제이다.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사실이다.


● 교육제도

교육은 우리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심어주고 있는가?

자본주의 사회는 민주사회고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고 인간은 자유롭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꾸로 된 현실과 역사를 가르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과 차별을 가르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교육제도의 역할이다.


● TV와 언론의 역할

무엇이 문제인지 본질이 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뉴스, 연속극, 바보스러운 오락물, 사고를 마비시키는 광고 공세.

가진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상품, 노동문제에 대한 왜곡보도, 여성에 대한 성차별 문화, 연예인들만의 잔치···.

이런 것들을 통해 보통의 사람들은 탈정치화된다. 세상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정치적으로 무기력해지고 결국은 자본가를 비롯한 지배계급에게 순한 양처럼 복종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탄생 이후, 자본주의는 그 본질적 성격은 변하지 않으면서도, 과학과 기술의 진보, 노동자 계급의 저항과 투쟁 등에 영향을 받아 끊임없이 그 외형을 바꿔 왔다.

자본주의는 자유로운 경쟁이라는 미명하에 많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불평등이 인정되고 있다. 많이 가진 자는 자본을 투자하여 돈을 벌지만, 없는 자는 가진 자에게 고용되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이다.

사람에 의한 사람의 착취를 없애는 것, 생산수단을 가진 소수 자본가는 자본이 있다는 이유로 더 많은 돈을 벌고 생산수단이 없는 노동자는 평생 가난한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부’의 세습과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바꾸어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반자본주의 강연회 2강

현 시기 노동자운동의 중요성에 대해

전국노동자회 총무 김즌오




자본주의는 부르주아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다. 따라서 사회의 모든 영역은 부르주아의 관점, 즉 이윤의 논리에 의해 규정된다.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그리고 이 사회의 모든 구성요소는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자본의 이윤추구의 대상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위력 앞에 굴복하는 운동, 소극적인 개조운동을 넘어 자신의 온전한 권리를 주장하는 모든 운동은 반자본주의 운동이다. 자본의 환경파괴에 저항하는 운동이 환경운동이고 농민운동도 자본의 이윤논리에 저항하는 운동이다. 교육을 영리추구의 장으로 삼는, 그리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영역으로 삼는 것에 저항하는 것이 교육운동이고 학생운동이다. 반전평화운동, 여성운동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흔히 필요하다고 말하는 모든 운동은 자본주의와 대립하고 자본주의와 충돌한다.

그런 의미에서 말한다면 노동자운동은 아직 반자본주의로 나아가지 못한 하나의 대중운동의  영역에 불과하다. 노동자 대중운동의 현실적인 방식은 노동조합운동이고 노동조합이라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적 형식이다. 8-90년대의 기억의 단편만을 가진 사람들이 ‘노동자계급, 노동자계급의 혁명’이라고 떠드는 것을 제외한다면 노동자운동은 여타의 운동에 비해 자본주의와 부분적으로만 충돌한다. 사회주의적 정책 따위를 말할 게 별로 없다는 면에서 노동자운동은 여타 영역의 운동보다 근본적이지 못하다.


운동은 봉사활동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가장 고통 받고 소외된 존재를 위해 헌신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려 한다면 여러분은 노동자운동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운동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당장 길거리에 겨울의 거센 바람 앞에서도 마땅한 잠자리를 찾지 못하는 수많은 노숙자들이 있고, 마땅한 생계수단을 가지 못한 빈민들이 있고, 마음대로 나들이 한번 하기 어려운 장애인들도 있다. 그들의 운동도 기본적으로 반자본주의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이 만약 희생과 헌신의 관점으로 운동을 하려 한다면 나는 노동자운동보다 다른 많은 영역의 운동을 추천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사회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곳에서 자본에 저항하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주의는 사회의 특정 영역을 바꾸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자본주의 전체를 바꾸기 위한 운동이다. 따라서 모든 영역의 운동은 사회주의의 지향에서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여러분이 운동에 참여한 이유는 매우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맨 처음에 왜 운동에 참여했든, 어떤 운동에 관심을 갖든 결국 고민의 귀결은 결국 하나로 모아진다. 어떻게 자본주의를 극복할 것인가? 여러분은 단지 특정 영역의 운동의 필요성과 여러분의 관심을 넘어 전체 운동의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할 계획을 말해야 하는 국면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우리는 비로소 혁명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영역에서 우리는 비로소 왜 노동자운동이 필요한 지, 왜 노동자운동이 중요한 지에 대해 말할 수 있다.


80년대의 사회주의 운동에게 노동자운동은 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사회주의 활동가, 혹은 정파 조직원의 배출 창구로 학생운동이 중시되기도 했지만 대중운동의 측면에서 학생운동의 임무는 정치투쟁부대, 혹은 노학연대의 일원으로 노동자운동 지원부대의 의미가 강했다. 이른바 주사파가 학원자율화를 강조하고 있을 때, 사회주의 정파의 지휘를 받는 학생대오는 정치투쟁을 강조하고 노동자투쟁 지원에 힘을 기울였다. 그 이유는 한가지다. “노동자계급이 혁명의 주체다. 노동자계급을 조직하라.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강화하라.”

87년 이후 노동자 대중운동이 강화되면서 노학연대의 관점은 더욱 강조되었다. 학생운동보다 더 많은 동원력, 그리고 학생운동보다 더 파급력이 강한 노동자의 투쟁을 보면서 사람들은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임을 확신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즉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모든 것은 변했다.

일단 많은 활동가들이 자신의 지향이었던 사회주의를 버렸다. 80년대에는 감히 주장되지도 못했던 사민주의나 트로츠키주의가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여전히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전의 ‘노동자계급 혁명론’을 스탈린주의라는 자식을 낳은 원죄를 지닌 레닌주의의 잔재라고 규정했다. 다양한 부문운동이 강조되고 활동가들은 자신의 기호나 관심에 의해 자신이 활동할 부문영역을 정했다.  노동자운동도 변했다. 여전히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활동가들은 노동자운동의 극소수로 고립되어 갔다. 사회주의라는, 노동해방이라는 자신의 지향을 버리거나, 혹은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고 해도 극도로 추상화된 공문구로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 운동의 헌신과 희생에 의해 성장되어진, 그리하여 이미 10%가 넘는 커다란 사회적 영향력으로 성장한 노동자운동이라는 권력을 두고 쟁탈전을 벌인다.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지향을 갖지 못한 그들은 ‘자본주의 안에서의 노사공존’을 넘어서는 자신의 지향을 갖지 못한다. 그 최대치는 사민주의고 노골적인 형태는 노사협조주의다. 현재의 민주노총으로 표현되는 노동자운동의 상태가 그러하다.

여기서 우리는 노동자운동의 지위에 대해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노동자운동이 가장 중요한 대중운동인지, 정당운동이나 여타의 운동영역보다 더 중요한지를 떠나 노동자운동이 그런 상태에서 사회주의는 가능한가? 혁명은 가능한가?  노동자운동에 대해 아무런 근거를 갖지 못한 사회주의 운동이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우리는 흔히 중국 혁명을 농민혁명이라고 부른다. 쿠바혁명도 노동자혁명이라고 부르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단지 그 사회의 지향이 제대로 된 사회주의가 아니라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가 성장하지 못한 사회에서 혁명의 주력이 되는 세력이 노동자가 아닌 농민 등에 근거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상당히 발전한 나라, 전체 국민의 50% 이상이 노동자와 그 가족인 나라에서 노동자운동을 주도하지 못하는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노동자운동이 혁명운동의 제1영역, 즉 가장 중요한 영역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사회구성에 대한 분석과 혁명운동의 총체적인 계획을 요구하는 대단히 이론적인 문제이고, 혁명의 총체적인 계획 속에서 말해져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최소한 나는 필요충분조건이라는 말로 노동자운동의 중요성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여성운동이 없는 혁명, 환경운동이 없는 혁명을 우리는 러시아에서 중국에서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에서 노동자운동을 주도하지 못하는 혁명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최소한으로 말해도 노동자운동이 혁명운동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반자본주의 강연회 3강

비정규직노동자의 현재와 투쟁

울산 현대자동자 비정규직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강용범



Ⅰ. 비정규직 문제의 대두


비정규직 비율이 급격하게 확대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80년대 말부터 비정규직이 50%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경제 체제가 독점 대기업으로 중심으로 수직계열화되면서 하청의 연쇄고리를 이루어서 마지막에는 가내수공업 등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자리하게 되었고, 중소영세업체들이 사내하청으로도 많이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업서비스업이 발달하면서 대부분의 여성 노동력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되고, 여성노동력을 부차적 노동으로 취급하면서 임금을 저하시키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임시직․계약직이 확대되어 왔다. 또한 건설경기가 활성화되면서 건설업종 일용직도 확대되었다. 즉 비정규직 문제는 이미 80년대 말부터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왜 지금, 이것이 문제가 되는가?

90년 중반 이전 비정규직은 여성에게 편중되어 있었고, 상업연맹이나 건설업, 그리고 대기업 내의 일부 하청에 집중되어 있었다. 업무영역이 달랐기 때문에 정규직 노동자들의 자리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87년 이후 노동운동이 활발해지면서 90년대는 운동의 주력을 만드는데 집중해왔기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1993년에 정부와 자본이 파견제를 제정하려는 하면서 노동운동의 반대투쟁이 있기는 했지만 정규직의 일자리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정도의 수준으로 문제가 제기된 것이고, 그 관심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다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만이 87년 이후 지역노조를 만들면서 투쟁의 명맥을 유지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경제위기 이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고가 자행되면서 정규직 일자리는 대폭 축소되고, 그 자리는 비정규직으로 대체되었다. 사무직에서 임시직과 계약직이 급속하게 확대되어 은행의 경우 200% 가까이 비정규직이 확대되기도 했다. 제조업에서도 분사와 아웃소싱, 사내하청이 일상화되고, 아르바이트도 확대되었다. 이로 인해서 노동운동 진영은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구조조정 반대투쟁은 바로 이러한 자본의 노동력 유연화 전략에 대한 반대였다.

96․97 총파업의 총전선을 통해 자본의 유연화에 대항하는 저지선을 설치하려던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러면서 정리해고와 파견근로, 비정규직화는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이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 만도기계 노동조합이라는 대표 주자들이 다시 나서서 유연화를 막아보고자 했으나 ‘그들만의 투쟁’을 좁혀지면서 투쟁에서 패배했다. 노동력 유연화에 맞서는 전선은 제대로 설치되지 못하고 모든 사업장에서 비정규직은 확대되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곧 전체 노동자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자본은 이렇게 비정규직의 확대를 통해 노동력을 유연화할 뿐만 아니라, 임금과 고용의 공공연한 저하를 꿈꾼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내부를 분할하고 위계를 세움으로써 노동자계급이 계급으로 하나되는 것을 막고자 한다.



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존재 양태


1.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존재양태


간접고용이란 파견과 같이 고용과 사용이 분리되는 형태를 말한다. 파견의 경우 파견사업주가 파견노동자와 사용사업주를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노동자는 파견사업주와 근로계약을 맺지만,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와의 계약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 아래 일하게 되는 것이다. 용역, 도급 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사용업체와 용역노동자 사이에 용역업체가 개입하게 되어 파견과 같은 간접고용에 해당된다. 외주, 분사의 경우에도 사용업체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분사하면서 분사된 회사가 독립성을 갖지 못하고 사용업체에 종속되어 있는 경우 간접고용에 해당한다.

현실적으로는 도급이니 용역이니 파견이니 사내하청이니 하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질적으로는 원사용자가 노동비용을 절감하고 노동자들의 단결을 막으면서도 자신은 실질적 사용주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고용형태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모든 간접고용은 단지 고용형태 중 하나가 아니라, 반드시 사라져야 할 왜곡된 고용형태이다. 간접고용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 파견, 불법파견, 사내하청, 시설관리(용역), 점원파견, 외주/분사


2.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존재양태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간접고용처럼 사용사업주와 고용사업주가 달라서 나타나는 이중착취의 문제는 없지만, 대다수가 고용의 불안정화 속에 놓여있다. 자본은 임시직과 계약직, 그리고 단시간 노동자들을 활용하는 이유를 ‘임시적이고 간헐적인 노동력의 사용’이라는 측면을 들어서 강변하고 있으나 사실상 임시직 노동자들이 장기간․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즉 장기임시근로는 남자가 28.6%, 여자가 53.4%이다

2000년 이래 비정규직 규모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거듭되면서, 1년 이상 계속 사용되고 있는 계약직 노동자를 비정규직에 포함시킬 것인가 여부에 따라 비정규직 규모가 26%에서 56%까지 다르게 나오기도 했다. 이것은 거꾸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시적이고 부수적 필요에 따라 사용될 뿐이라는 자본의 논리가 거짓이라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근로기준법 23조에 의하면 ‘근로계약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과 일정한 사업완료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 기간이 1년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이 조항의 해석을 둘러싸고 대법원 판례가 바뀌면서, 실제로는 계약을 반복갱신하여 장기간 사용되거나 1년이 넘는 근로계약을 맺고 있는 계약직 노동자들마저 고용이 불안정하게 되었다. 이들은 특히 정규직 일자리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직접고용 비정규직은 대체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이 많다. 여성이 전체 임금노동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6%이지만 상용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7%밖에 안 된다. 반면 여성이 임시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2.6%이고, 단시간 노동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8.3%에 이른다.

도소매․음식숙박업이 35.4%로 가장 많은 임시직을 보유하고 있으며, 제조업도 17.0%를 보이고 있다. 임시직의 경우 노동시간은 정규직보다 짧으나 정규직의 67.7%의 임금수준이고 정규직과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단시간 노동자는 여성이 80%로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는 단시간 노동이 여성 미숙련 노동력을 주 대상으로 하는 고용제도라는 사실을 반영한다.

- 계약직, 단시간노동자(파트타임)


3.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존재 양태


일반적으로 특수고용 형태의 노동자란 사용자가 노동자를 개인사업자 등록을 내는 등의 방식으로 사업자화하여,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일을 시키는 형식의 고용 형태를 가리킨다. 사용자와 개별 노동자와의 관계는 학습지 교사, 보험모집인, 레미콘기사, A/S기사, 애니메이터, 텔레마케터 등 위탁 내지 도급계약이 일반적이나, 방송사 작가․리포터의 사례처럼 형식적으로 전속성이나 종속성이 결여된 프리랜서 형태의 계약도 있고, 골프장 경기보조원 사례처럼 아예 사용자와 일체의 계약 관계 없이 알선의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통상 노사간에 개별적인 근로관계의 성립에는 별 다툼이 없는 일반적 고용형태와는 달리, 사업자화 형식을 통해 노동자성을 배제하기 위한 사측의 고용 형태라는 점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말이 사회화되고 있고 최근 비정규직 문제가 부각되고 학습지교사, 골프장경기보조원 등을 필두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조직, 투쟁이 활성화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한 유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와 같은 형태는 전형적인 근로관계에 있어 핵심적인 개념으로 상정되어 온 사용종속관계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고용형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전형적인 임금체계가 아닌 수당 내지 수수료 등의 급여 형태나 사업장 내에서 고정된 업무를 담당하는 기존의 형태에서 벗어나 노동자 개인에게 일정한 업무처리가 맡겨진 업무 형태 등에 있어서 전형적인 근로관계와 일정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뒤에서 상세히 살펴보겠지만 이와 같은 특수고용 형태는 서비스 산업의 발달과 정보기술의 발전, 그리고 이윤증대를 위한 자본의 경영방식 및 노무관리방식의 전환 등으로 매우 급증하고 있으며, 그 형태 또한 매우 다양화하며 기존에 일반화된 업종 이외의 여타 업종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일정한 특수성과 차이는 있을지언정 특수고용 형태 노동자들은 사용자와의 사용종속관계 내지 경제적․인적 종속관계 하에서 노동을 제공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나, 자본은 이같은 특수고용 형태를 도입한 의도가 그러했듯이 이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개인사업자 형식으로 되어 있음을 이용하여 아주 손쉽게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부정한다. 그리하여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과 4대 보험의 적용에서 배제되어 법정수당, 휴일․휴가, 고용보장, 모성보호, 산업재해, 퇴직금, 실업수당 등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고, 노동조합 설립 및 단체교섭, 단체행동권의 행사도 매우 제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 학습지교사, 보험모집인, 골프장경기보조원, 건설운송, 화물운송노동자, A/S 기사, 방송사 작가,         애니메이터, 텔레마케터 등이 있다.



Ⅲ. 비정규직규모와 실태


첫째,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2002년 8월 772만명(임금노동자의 56.6%)에서 2003년 8월 784만명(임금노동자의 55.4%)으로, 지난 1년 동안 12만명 증가했고 그 비율은 1.2% 감소했다. 그러나 노동부 집계 방식에 따르면 375만명(27.5%)에서 465만명(32.8%)으로 90만명(5.3%) 증가했다.

둘째,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노동조건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정규직을 100으로 할 때 비정규직의 월임금총액은 2002년 52.7%에서 2003년 51.0%로 하락했고, 시간당 임금은 51.1%에서 48.6%로 하락했다. 주당 노동시간도 정규직은 44.0시간에서 41.8시간으로 3.2시간 단축되었지만, 비정규직은 45.5시간에서 44.1시간으로 1.4시간 단축되었다.

셋째, 임금소득 불평등(90/10)은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 2001년 5.2배, 2002년 5.5배, 2003년 5.6배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OECD 국가 중 임금소득 불평등도가 가장 높은 미국(4.3배)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저임금 계층은 OECD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의 절반인 722만명에 이르고, 2001년 46.9%, 2002년 47.5%, 2003년 50.0%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EU의 LoWER 기준에 따르더라도 2001년 23.7%, 2002년 25.1%, 2003년 27.3%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넷째, 2003년 8월 시간당 임금이 2,510원 미만인 사람은 92만명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63만명은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 하고 있다. 따라서 2003년 9월부터 새로이 적용된 법정 최저임금의 영향률은 2.2%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최저임금제도가 ‘저임금 계층 일소, 임금격차 해소, 소득분배 구조개선’이라는 본연의 목적과 달리, 있으나마나 한 제도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03년 8월)참조


1. 비정규직 규모

1) 전체

통계청이 2003년 8월에 실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 비정규직은 784만명(임금노동자의 55.4%)이고 정규직은 631만명(44.6%)으로,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OECD 국가들은 대부분 파트타임이 비정규직의 다수를 점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파트타임이 5.9%로 그 비중이 높지 않다. 이에 비해 비정규직의 97.9%(784만명 가운데 768만명)가 임시근로 내지 임시근로를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징을 보이고 있다.

2003년 8월 부가조사 결과를 2002년과 비교하면, 비정규직은 772만명에서 784만명으로 12만명 증가했고, 정규직은 591만명에서 631만명으로 40만명 증가했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 비율은 2002년 56.6%에서 2003년 55.4%로 소폭 감소했다.

고용형태별로 장기임시근로는 547만명(40.1%)에서 459만명(32.4%)으로 88만명(7.7%) 감소했고, 계약근로는 200만명(14.6%)에서 309만명(21.8%)으로 109만명(7.2%) 증가했다. 그러나 장기임시근로와 계약근로를 합친 임시근로는 각각 746만명(54.7%)과 768만명(54.3%)으로 거의 변함이 없다. 호출근로는 증가하고, 특수고용과 가내근로는 감소했다.

2) 남녀

남자는 정규직이 452만명(54.6%), 비정규직이 376만명(46.8%)으로 정규직이 많다. 여자는 정규직이 179만명(30.5%), 비정규직이 408만명(69.5%)으로, 비정규직이 2배 이상 많다. 여성 노동자 10명가운데 7명이 비정규직인 것이다. 이러한 남녀간에 차이는 주로 장기임시근로, 계약근로 등 임시근로와 파트타임에서 비롯된다. 즉 장기임시근로는 남자가 25.0%, 여자가 42.9%이고, 파트타임은 남자가 2.9%, 여자가 11.7%로 그 격차가 크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 비정규직이 적은 것도 아니다. 절대 수에서 비정규직은 남자 376만명, 여자 408만명으로 엇비슷하다.

3) 연령

남자는 저연령층(20대 초반 이하)과 고연령층(50대 후반 이상)만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다.  그러나 여자는 모든 연령층에서 비정규직이 많다. 정규직 여자는 20대 후반을 정점으로 그 수가 크게 감소하지만, 비정규직 여자는 20대 초반과 40대 초반을 정점으로 20대 후반을 저점으로 하는 M자형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자녀 육아기를 거친 여성이 노동시장에 다시 진입하려 할 때, 그들에게 제공되는 일자리가 대부분 비정규직인데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4) 학력

비정규직 노동자 784만명 가운데 중졸이하 225만명(28.6%), 고졸 386만명(49.2%)으로, 고졸이하 학력이 전체의 77.8%를 차지하고 있다. 학력별 비정규직 비율을 살펴보면 중졸이하 81.5%, 고졸 61.6%, 전문대졸 44.5%, 대졸이상 29.1%로, 학력이 낮을수록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학력이 높을수록 낮다. 중졸이하는 5명 중 4명이 비정규직이다.

5) 성별 혼인여부

비정규 노동자들의 성별 혼인여부별 분포를 살펴보면 기혼여자 285만명(36.3%), 기혼남자 243만명(31.0%)으로 기혼자가 전체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성별 혼인여부별 비정규직 비율을 살펴보면 미혼남자 59.0%, 기혼남자 40.3%, 미혼여자 59.4%, 기혼여자 75.1%로, 미혼자는 남녀간에 차이가 거의 없지만, 기혼자는 남녀간에 차이가 매우 크다. 기혼남자는 10명중 4명이 비정규직인데 기혼여자는 10명중 8명이 비정규직인 것이다.

6) 노조가입

2003년 8월 현재 노동조합 조합원수는 162만명으로 노조 가입률(또는 조직률)은 11.4%이다. 정규직 631만명 가운데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은 143만명으로 정규직 노조 가입률은 22.7%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784만명 가운데 19만명만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있어 비정규직 노조 가입률은 2.4%밖에 안 된다. 이에 따라 전체 조합원 162만명 가운데 88.5%가 정규직이고, 11.5%가 비정규직이다.

7) 산업

비정규직 10명중 6명(465만명, 59.3%)이 제조업과 건설업,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 4개 산업에 몰려 있다. 산업별로 비정규직 비율을 살펴보면 광공업과 공공서비스업은 18~44%인데, 민간서비스업과 농림어업건설업은 59~100%로 10개 산업 모두 50%를 상회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서비스업에서도 교육서비스업(47.9%)과 금융보험업(44.6%)은 그 비중이 매우 높으며, 가장 낮은 전기가스수도사업(18.4%)과 공공행정(20.4%)도 5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다.

8) 직업

비정규직 10명중 8명(600만명, 76.5%)이 단순노무직(177만명)과 기능직(115만명), 서비스직(124만명)과 판매직(94만명), 사무직(90만명)에 몰려 있다. 특히 서비스직, 판매직, 단순노무직은 10명중 8-9명이 비정규직이다.

9) 산업 직업

산업․직업별 비정규직 분포를 살펴보면 제조업은 138만명 가운데 113만명(기능직 43만명, 장치기계조작조립원 32만명, 노무직 38만명)이 생산직이고, 건설업은 103만명 가운데 93만명(기능직 54만명, 장치기계조작조립원 4만명, 노무직 35만명)이 생산직이다. 이에 비해 도소매업은 128만명 가운데 72만명이 판매직이고, 숙박음식점업은 96만명 가운데 81만명이 서비스직이다. 금융보험업은 31만명 가운데 17만명이 판매직으로, 이 가운데 14만명이 보험설계사 등 특수고용형태이다. 사업서비스업은 71만명 가운데 28만명이 노무직이고, 교육서비스업은 56만명 가운데 42만명이 전문가 및 준전문가로, 산업에 따라 직업별 분포를 달리 하고 있다.


2. 비정규직 임금․노동시간․노동복지 등

1) 월평균임금

정규직은 지난 3개월간 월평균 임금총액이 2002년 8월 182만원에서 2003년 8월 201만원으로 19만원(10.6%) 인상되었다. 비정규직은 96만원에서 103만원으로 7만원(6.9%) 인상되었다. 그 결과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2000년 53.7%, 2001년 52.6%, 2002년 52.7%, 2003년 51.0%로, 그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2) 노동시간

노동자들의 주당 노동시간은 2000년 47.3시간, 2001년 46.2시간, 2002년 44.8시간, 2003년 43.1시간으로 빠른 속도로 단축되고 있다. 그러나 정규직은 2000년 47.1시간에서 2003년 41.8시간으로 5.3시간 단축된데 비해, 비정규직은 2000년 47.5시간에서 2003년 44.1시간으로 3.4시간 단축됨에 따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노동시간 격차는 0.4시간에서 2.3시간으로 확대되었다. 주5일제 등 법정 노동시간 단축운동의 성과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골고루 향유되고 있지 못 한 것이다. 특히 법정 초과근로 한도인 주 56시간을 초과하여 노동하는 노동자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포함하여 255만명(18.0%)에 이르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규직은 84만명(13.3%), 비정규직은 171만명(21.8%)이 주 56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3) 시간당임금

2003년 8월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 평균은 5,855원으로 정규직(12,039원)의 48.6%밖에 안 된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2002년 52.7%에서 2003년 51.0%로 하락했음에도, 시간당 임금은 51.1%에서 48.6%로 더 크게 하락한 것은, 정규직 노동시간이 비정규직보다 빠른 속도로 단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4) 임금소득 불평등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 전산업 월임금총액 평균값을 계산하면 2000년 115만원에서 2003년 147만원으로 32만원 증가했다. 그러나 하위 10%는 45만원에서 55만원으로 10만원 증가했고, 상위 10%는 200만원에서 280만원으로 80만원 증가했다. 이에 따라 상위 10% 와 하위 10% 사이에 임금격차(90/10)는 2000년 4.4배에서 2003년 5.1배로 증가했고, 시간당 임금기준으로는 2000년 4.9배에서 2003년 5.6배로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임금소득 불평등은 OECD 국가 중 임금소득 불평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미국보다 크게 높다는 점 뿐만 아니라,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임금소득 불평등도(90/10)를 남녀, 고용형태 등 각 집단별로 살펴보면,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 2002년 3.6~5.1배에서 2003년 3.9~5.4배로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각 집단 내부적으로 임금소득 불평등도가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지난 1년 동안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남자를 100으로 할 때 여자는 62이고, 정규직을 100으로 할 때 비정규직은 49이며, 남자 정규직을 100으로 할 때 남자 비정규직은 52, 여자 정규직은 72, 여자 비정규직은 38밖에 안 된다. 남녀,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이 비정규직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남녀를 구분하여 비교하더라도 OECD 국가 가운데 임금소득 불평등도가 가장 높다.

5) 저임금

OECD는 ‘상용직 풀타임 중위임금의 2/3 이하’를 저임금으로 정의하고 있다. 프랑스 등 OECD 국가는 이를 기준으로 법정 최저임금을 정하곤 한다. 이에 따라 ‘상용직 풀타임 중위임금(180만원)의 2/3’인 ‘월평균임금 120만원 이하’를 저임금 계층으로 분류하면, 전체 노동자 1,415만명 가운데 절반인 722만명(51.0%)이 저임금 계층으로, 정규직이 144만명(22.8%), 비정규직이 578만명(73.7%)이다. 정규직은 5명중 1명, 비정규직은 10명중 7명 꼴로 저임금 계층인 것이다.

6) 법정 최저임금 미만 계층

2002년 9월부터 2003년 8월까지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2,275원이고, 2003년 9월부터 2004년 8월까지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2,510원이다. 그런데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 2003년 8월 현재 시간당 임금이 2,275원 미만인 노동자는 63만명(4.6%)이고, 2,510원 미만인 노동자는 92만명(6.8%)이다. 따라서 2003년 9월부터 적용된 법정 최저금 2,510원이 미친 영향률은 2.2%(29만명)이고, 나머지 63만명은 최저임금 적용 제외자이거나 최저임금법 위반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로 추정된다.

현행 법상 가내노동자와 감시․단속적 근로자, 장애자․훈련생․실습생이 최저임금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고, 취업기간이 6월을 경과하지 아니한 18세 미만 근로자는 최저임금의 90%만 적용받고 있음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상은 현행 법상 최저임금 조차 탈법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노동자가 광범하게 존재함을 말해준다. 더욱이 이들 계층은 매년 53~64만명(4.2~4.9%)으로 항상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법정 최저임금제도가 ‘저임금 계층 일소, 임금격차 해소, 소득분배 구조개선’이라는 본연의 목적과는 달리, 있으나마나 한 제도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2003년 9월부터 적용된 법정 최저임금 2,510원 미만인 노동자 92만명을 고용형태별로 살펴보면, 정규직은 4만명(4.1%), 비정규직은 88만명(95.9%)으로 비정규직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성별혼인별로는 기혼여자 45만명(49.2%), 기혼남자 18만명(19.5%), 미혼남자 15만명(15.7%), 미혼여자 14만명(15.5%)으로 기혼자가 전체의 2/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학력별로는 고졸이하가 84만명(91.6%)으로 저학력층에 집중되어 있고, 연령계층별로는 55세이상 30만명(32.9%), 25세미만 23만명(25.1%)으로 고령층과 저연령층에 집중되어 있지만, 25세 이상 55세 미만 계층도 39만명(42.0%)에 이르고 있다. 이들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국민연금 9.8%, 건강보험 14.4%, 고용보험 8.9%밖에 안 되고, 노동조건 적용률도 퇴직금 7.9%, 상여금 6.7%, 시간외수당 4.6%밖에 안 된다.

7) 사회보험 가입 및 노동조건 적용률

현 직장에서 사회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 가입률은 정규직은 80~98%인데, 비정규직은 26~29%밖에 안 된다. 정규직은 퇴직금․시간외수당․상여금을 77~99% 적용받지만, 비정규직은 11~16%만 적용받고 있다.

8) 근속년수

2003년 8월 현재 임금노동자의 근속년수 평균은 4.4년으로, 전년에 비해 뚜렷한 변화가 없다. 정규직은 근속년수 평균이 7.7년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비정규직은 1.7년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고용형태별로는 파견근로만 평균 근속년수가 증가했을 뿐 다른 고용형태는 모두 감소했고, 파견근로도 중위값 기준으로는 감소했다. 이밖에 정규직은 근속년수 3년 이상이 65%인데, 비정규직은 근속년수 3년 이상이 17%이다. 임시근로자 가운데 수차에 걸친 반복 갱신 등으로 근속년수가 3년 이상인 사람이 16.4%이고, 5년 이상은 8.9%, 10년 이상은 3.1%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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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말자'

끝없이 돈을 추구하도록 하는건 지배세력의 불순한 음모...

지배세력 가진거라곤 돈 밖에 없으니.....자신의 지위,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결국 세상 사람들이 모두 돈 앞에 굴종하도록 만드는 수 밖에..이럴때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흘 굶어 도둑질 안하는 사람 없다? 놀고있네.... 굶어 도둑질하는건 그놈이 밥상머리 교육, 기본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은 배 부른걸 모르기 때문에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저 그 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나 할뿐 그 어떤 이상 행동을 하지 않는다. 반면 한번 돈 맛 본 사람이 배 고프다??? 단 하루 단 한끼 거르는것도 참지 못한다. 한번만 딱 한번만 맛있게 먹고 죽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는 사람. 그에게 진짜 맛있는게 주어진다면....??? 결코 깨끗하게 죽을 수 없다. 또 한번만 더..또 한번만 더..... 한번이 열번이 되는거고 열번이 백번 천번 만번이 되는것... 결국 끝 없는 탐욕을 채우려고 발버둥 치는것만큼 어리석은건 없다. 그럴바에 차라리 무(無)를 지향하라.... 어차피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거라면  괜한 헛 고생할바에 애시당초 채우지 않는게 현명한 방법!! 게다가 도시자본주의, 소비자본주의하의 경제체제하에선 환경파괴, 전지구적 단위의 착취, 인간성 상실, 차별-특권을 통한 계급 구조 공고화 등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양심과 이웃에 대한 배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선 결코 많은 것을 가질 순 없다. 이런 체제는 전반적으로 제로섬게임의 갈취경제이므로 자신이 조금 더 가지면 그만큼 이웃이나 기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굶고 억눌린 생활속에 하루하루를 신음하며 살아가게 되니.... 도대체 남의 불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신의 행복의 가치? 그게 그렇게 필요할까

 

 

유명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를 초청해 연설을 듣고 싶었던 어떤 학회에서
  그에게 사람을 보내 강의를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나 그 학자는
  연구와 저술을 위한 시간을 뺏긴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학회에서는 꼭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많은 돈을 제시했습니다.
  그러자 학자가 대답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제 소중한 시간을 돈을 버는 데 허비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으니까요.'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죽기 전에
  돈을 아무리 많이 모아도
  돈으로 사 놓은 것이 아무리 많아도
  넣어 갈 곳이 없다는 말이지요.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스위스 출신의 고생물학자 아가시(Jean Louis Rodolphe Agassiz)의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어디에 시간을 쓰고 있습니까?
  

  '돈은 많은 것의 껍데기일 수는 있지만 본질일 수는 없다.
  돈은 먹을 것을 살 수 있게 하지만 식욕은 주지 않는다.
  돈은 약은 주지만 건강은 주지 않는다.
  돈은 아는 사람은 만들지만 친구는 만들어 주지 않는다.
  돈은 쾌락은 주지만 마음의 평화나 행복은 주지 않는다.'
  입센(Henrik Ibsen)
   
 
  문화평론가/Maxi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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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 불소화 주장은 파시즘

에프킬러??? 뿌려서 모기 박멸될까?

그 제품 나온지가 언젠데....ㅉㅉㅉㅉ 결국 인간이 모기 바퀴벌레를 없애려고 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 '강한놈만' 살아남을 뿐만아니라 내성이 더 강해져 끈질기게 인간을 괴롭히지 않을까 영원토록... 인간?  도대체 인간이란 생명체가 얼마나 되었다고 오랜 세월에 걸쳐 살아남은 그들에 대적하려고 드나? 뿌려도 뿌려도 결코 없어지지 않는 그들이라면 차라리 방역업자, 관련제품 판매업자 상술에 놀아나지 말고 그들과 인간 이제 공존을 모색해야할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더 이상 그런 물질 판매를 좌시하지 말고 즉각 불법화 하라..안그러면 재미없다. 그건 곧..자본 이익 대변한다는걸로 간주하고 국가 타도 하는 수 밖에......??? 인간의 존엄보다 자본의 이익을 앞세우는 국가는 존립 당위성을 이미 상실했기에 그것을 전복하는것은  당연한것 아닐까??....... 그런행동 역시 합헌??..

 

  삼성킬라에스에어로솔
 
구분 : 의약외품

원료약품 및 분량 :
이 약 100그람 중
살충원액 36그람(49밀리리터) 중
주성분 :[[디클로르보스]](식약청고시 제98-127호)  0.492그람
주성분 : 프탈트린(식약청고시 제98-127호)  0.164그람


성상 :
무색내지 담황색의 액제가 내압용기에 든 에어로솔제


효능 및 효과 :
파리, 모기, 벼룩, 빈대, 기타 위생 해충의 구제


용법 및 용량 :
파리 및 모기에 대해서는 9.9m2에 대해 5~10초씩 나누어 위를 향해 용기의 상부에 있는 버튼을 눌러 분무한다.


포장단위 :
자사포장단위


저장방법 :
차광된 기밀용기에 넣어 건냉암소에 보관


사용기한 :
제조일로부터 36개월


사용상 주의사항 :
1. 피부, 음식물, 식기, 어린이의 장난감 또는 사료에 닿지 않도록 할 것.
2. 피부에 묻었을 때에는 비누와 물로 씻을 것.
3. 분사 중에는 분사하는 사람 외에는 입실을 피하고, 분사 후 실내의 공기가 외부와 교환된 후 입실할 것.
4. 인체를 향하여 분사하지 말고, 분무기체를 직접 흡입하지 말 것.
5. 관상용 물고기나 조류 등에 뿌리지 않도록 주의할 것.
6. 사용 전에 잘 흔들어 줄 것.
7. 고압가스를 사용한 가연성 제품으로서 위험하므로 다음의 주의를 지킬 것.
 1) 불꽃을 향하여 사용하지 말 것.
 2) 난로, 풍로 등 화기부근에서 사용하지 말 것.
 3) 화기를 사용하고 있는 실내에서 사용하지 말 것.
 4) 온도 40℃ 이상의 장소에 보관하지 말 것.
 5) 밀폐된 실내에서 사용한 후에는 반드시 환기를 실시할 것.
 6) 불 속에 버리지 말 것.
 7) 사용 후 잔 가스가 없도록 하여 버릴 것.
 8) 밀폐된 장소에 보관하지 말 것.

 

1939년 스위스의 화학공업회사 가이기(Geigy)의 연구원인 파울 뮐러는 식물과 사람에게는 전혀 해가 없으면서도 파리, 모기, 이 등 해충은 깡그리 소탕해버리는 아주 기막힌 마법의 해충약을 개발했습니다. 게다가 이 해충약은 냄새도 없었고, 그 효과도 오래 지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값도 아주 싸게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를 시작한 지 4년만에 이룬 쾌거였고, 개발된 해충약은 가히 환상과 기적의 신물질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뮐러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백색의 이 하얀 가루가 바로 다름아닌 DDT입니다.
  
  1940년 스위스에서 특허를 얻어 1942년 시판에 들어간 DDT는 2차 세계대전 기간에 군인들에게 사용되어 그 효과가 확실하게 입증되었고, 말라리아 퇴치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게 됩니다.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전후 전세계에 걸쳐 대규모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뉴욕의 길거리에서부터 아시아, 아프리카의 궁벽진 산골에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얗게 DDT 가루를 뒤집어쓴 사진이 꽤나 오랫동안 세계보건기구의 자랑스런 홍보사진이 되었습니다. 인류의 건강 지킴이로서 소명의식에 불타는 전문가 집단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그것도 전세계가 인정하는 세계보건기구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1957년 생물학자인 레이철 카슨은 조류연구소를 운영하는 친구 올가 허킨스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해 여름에 매사추세츠 주정부가 모기를 박멸하기 위해 늪지에 DDT를 살포했는데, 모기는 죽기는커녕 오히려 더 극성을 부리고 엉뚱하게도 새들과 곤충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매사추세츠 주정부는 DDT는 해충 이외의 생명체에게는 매우 안전하다는 것이 이미 과학자들에 의해 입증됐기 때문에 안전하고, 그래서 한 번 뿌려서 모기가 죽지 않는다면 여러 번 뿌려 모기를 박멸시킬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레이철 카슨은 곧바로 진상조사와 연구에 착수했고,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도 집필을 계속해 마침내 1962년 현대 산업문명의 부메랑 효과를 통렬하게 폭로한, 저 유명한 <침묵의 봄>을 출간했습니다. 레이철 카슨의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DDT를 비롯한 농약과 살충제 등 화학물질은 사실은 살충제가 아니라 살인제이며 생명을 죽이는 독극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침묵의 봄>이 출판되자 대부분의 과학자들과 정부관리, 화학물질과 살충제 제조회사들은 레이철 카슨에 대해 엄청난 공격, 비난, 비판, 심지어는 "히스테리컬한 노처녀"라는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고 퍼부어댔습니다. 이런 공격은 과학의 이름으로, 이른바 전문가의 의견이란 이름으로 갈수록 더 심하게 계속됐습니다. 사실 DDT가 쉽게 분해되지 않고 축적된다는 점을 DDT의 아버지인 뮐러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는 이를 무시해버렸던 것입니다.
  
  근대의 과학자나 전문가란 늘 이런 식으로 과학자나 전문가로서의 함정에 빠지면서 눈앞의 달콤한 꿀을 핥아먹느라 함정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밧줄이 끊어지는 줄도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들은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지금 들으면 끔찍할 정도로 무지와 오만에 가득 찬 근거를 들어가며 레이철 카슨을 비난했던 것입니다.
  결국 미국 대통령자문회의가 조사를 벌인 결과 레이철 카슨의 주장은 모두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미 연방의회는 시민의 안전을 무시하고 살충제 사용을 묵인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DDT의 제조가 금지됐습니다. 그리고 레이철 카슨을 비판하고 반대했던 <타임>지는 레이철 카슨을 지난 100년간의 시기에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선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도 죽을 때까지 자기 몸 속에 다량의 DDT를 어찌할 도리 없이 '소유'하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이것은 끔찍하게도 자식들에게까지 전달됩니다. 제조 자체가 금지된 지 30년이 지난 2005년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에서도, 빅토리아 호에서도, 한강에서도 DDT가 검출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독성 화학물질 오남용의 역사는 비단 DDT에만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널리 알려진 또 다른 화학물질인 PCB나 오존층 파괴의 주범인 CFC(프레온가스, 여기에도 불소가 포함돼 있습니다)의 역사도 DDT의 역사 못지 않게 대재앙의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자연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화학물질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대량으로 만들어 지상에 퍼뜨렸습니다. 그리고 이들 화학물질은 고스란히 인간의 체내에 들어와 이제는 이른바 환경호르몬으로서 인간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중입니다.
  
  불소화합물 또한 이처럼 사람이 제조한 화학물질 가운데 하나입니다. 수돗물 불소화에 사용되는 불소는 자연상태에서 존재하는 불소와는 완전히 다른, 위에서 예로 든 DDT나 CFC처럼 인간이 생산한 맹독성 화학공업 물질입니다. 물론 수돗물 불소화를 찬성하시는 분들은 불소가 독성물질이긴 하지만 소량일 경우 충치예방 효과가 있다고 말을 하고, 그래서 수돗물 불소화 사업도 정확한 법률용어는 '수돗물 불소농도 조정사업'이라고 하지만 말입니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 장향숙 의원이 발의한 수돗물 불소화법(구강보건법) 개정안 때문에 다시금 불소화 논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프레시안>에서 논쟁의 장을 마련해 다양한 찬반의견이 개진되었습니다. 이는 아주 바람직한 일입니다. 서로 의견이 엇갈리는 쟁점이 생겼을 때 일반 시민들에게 충분히 서로 다른 의견을 들어보게 하는 것은 어떤 선택이나 결론에 앞서 매우 필요한 일입니다. 특히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법과 제도의 시행에 앞서 이해관계 당사자의 치열한 입법 찬성 및 반대의 로비를 넘어서는 시민사회의 개입이 적극 요구됩니다. 이른바 거버넌스(공치)라는 관점에서도 활발한 의견교환과 여론개입은 매우 적절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자는 분명히 수돗물 불소화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장향숙 의원을 비롯하여 수돗물 불소화를 추진하는 중심 세력이랄 수 있는 건치(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와 치과협회,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무슨 사심이 있어 수돗물 불소화를 추진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분들도 장애인 인권운동을 했거나, 특히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건치처럼 수돗물 불소화가 빈곤계층과 소외계층의 구강건강에 유익하다는 신념을 갖고 수돗물 불소화를 지지하거나 추진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필자는 수돗물 불소화 찬성 쪽의 의견도 가능한 열린 마음으로 들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논쟁이 진행되면서 수돗물 불소화를 찬성하는 분들이 불소의 유해성 문제와 함께 민주주의의 문제를 논하게 되면서 수돗물 불소화법 개정안이 마치 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이는 적절한 제도인 양 주장한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나아가 수돗물 불소화 반대측이야말로 다수의 선택권 보장을 방해하는, 과반수 찬성의 민주주의 의사결정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극단론자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말 어이없는 '뒤집어씌우기'이며, 민주주의의 개념을 이상하게 거꾸로 세우고 이상하게 헝크려뜨리는 기괴하고 이상한 주장입니다.
  
  먼저 문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번 개정안의 핵심 내용을 다시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구강보건법 신·구 조문 대비표>

현행/개정안
  
  제10조(수돗물불소화사업의 계획 및 시행) ①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을 시행하고자 하는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 또는 한국수자원공사장은 다음 각호의 사항이 포함된 사업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②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 또는 한국수자원공사장은 공청회 또는 여론조사 등을 통하여 관계 지역주민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그 결과에 따라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을 실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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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조(수돗물불소화사업의 계획 및 시행) ①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다음 각호의 사항이 포함된 사업계획을 수립하여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을 시행하여야 한다. 다만,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실시한 지역주민 여론조사 결과가 과반수 이상의 반대의견인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광역상수도를 관할하는 한국수자원공사장에게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을 요청한 경우 한국수자원공사장은 이를 실시하여야 한다.

   우선 개정안의 과반수 반대라는 단서 조항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조항입니다. 이것은 언뜻보면 국민의 '저항권'을 존중하는 아주 희한한 조항같습니다만 사실 민주주의와는 전혀 배치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인 민(民)이 주인이 되어 나라와 사회를 지배하는 긍정의 제도이지 민의 저항을 유도하는 부정의 제도가 아닙니다.

     과반수의 찬성으로 시행한다는 것과 과반수의 반대로 시행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게 그것인 동어반복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영어로 포지티브 방식과 네거티브 방식은 하늘과 땅의 차이인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의결정족수로서 과반수 참석에 과반수 찬성을 이야기합니다. 의결정족수를 말하는데 과반수 참석에 과반수 반대로 의결한다는 얘기를 필자는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국회 누리집에 들어가 법안을 검색해서 "과반수 이상의 반대"라는 말을 넣어 검색해 보았더니 검색결과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과문해서 단정하기는 뭐하지만, 그 많고 많은 법안 가운데 이런 조항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불을 보듯 뻔한, 명백한 강제입법입니다. 그것도 파시스트식 강제입법입니다. 이것을 강제입법이 아닌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입법이라고 말한다면 참으로 상식이 없는 파렴치한 주장입니다. 지금처럼 수돗물 불소화에 대해 찬반양론이 갈려 있는 상태에서 입법을 통해 의무규정으로 시행하겠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강제입법입니다. 여론조사를 해서 과반수가 반대하면 시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조항은 쉽게 말해 사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도 국가가 국민의 세금을 들여 국민의 저항을 유도하는, 아니 국민의 저항을 원천봉쇄하는 아주 치졸한 사기극입니다.
  
  과반수 이하의 지지로 집권한 나치의 히틀러는 누구보다도 대중선동에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즐겨 사용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군중심리학에서 다중이 모여있을 때 반대하는 것은 찬성하는 것에 비해 몇 십배 어렵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독일 국민 전체의 과반수에서 훨씬 못미치는 지지로 원내 제1당이 된 나치당과 히틀러가 집권하자마자 의회를 해산하고 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민주주의는, 아주 좁혀서 선거 민주주의, 절차 민주주의로 국한해서 본다고 하더라도, 과반수의 찬성이라는 긍정의 제도여야 하지 과반수 반대라는 부정의 제도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자치단체장을 뽑을 때 찬성표가 많은 사람을 뽑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지, 후보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반대표를 집계해서 반대표가 가장 적은 사람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물론 선거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되새길 필요도 없이 대의제 민주주의는 문제가 많은 제도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그나마 삼권분립과 정당제도, 지방자치의 확대와 시민사회의 활성화 등을 통해 그같은 선거 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굳이 민주주의를 말하려면 기존의 법을 그대로 놔두면 하등의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주민의 선택권도 보장이 되고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주민의 과반수가 수돗물 불소화를 찬성하는데 자치단체장이 시행하지 않을 경우가 있어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한다면 그 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돗물 불소화를 강제로 입법하려다보니, 수돗물 불소화를 최상위의 가치로 놓고 모든 문제를 보다보니, 이처럼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어긋나는 짓을 저질러 놓고 나서도 이것이 민주주의라는 전도된 주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문제와 함께 유해성 문제에 대해서도 수돗물 불소화를 찬성하시는 분들의 주장에는 위험한 지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불소화가 유해하다는 근거보다 무해하다는 근거가 훨씬 많은 상황에서는 불소화를 추진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주장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생체실험의 대상이 아닙니다. 불소의 독성에 대한 찬반논쟁이 있는 그 순간부터 불소화는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가와 이른바 과학자, 전문가들이 먼저 해야 할 시급한 일은 과연 불소화가 유해한지 무해한지 광범위하고도 깊이있게 조사연구하는 일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수돗물 불소화에 사용하는 불소는, 상수도 정수장에 투입되는 불소는 DDT나 CFC처럼 공장에서 제조된, 불화규산과 불화나트륨이라는 유독성 화학물질입니다. 불화규산은 우리나라의 경우 비료공장의 굴뚝 세정시설에서 부산물로 얻어지는 독성 산업폐기물이며, 그것도 포장용기에 해골이 그려져 있는 명백한 산업폐기물입니다. 남해화학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불화규산(F6H2Si)에 대해 흡입, 피부접촉, 눈접촉, 섭취 등의 경우 유해 위험성과 응급조치 요령, 폭발사고와 누출사고 시 대처요령 등까지 자세하게 적어놓고 있습니다.
  
  2002년 1월 4일 안양시 학의천에서 물고기 수천 마리가 집단으로 떼죽음을 당해 떠오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경찰은 사건의 원인을 추적했습니다. 경찰이 밝힌 사건의 원인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의왕시 상수도 사업소에서 정수장 약품처리 과정의 실수로 불소를 과다하게 투입하여 학의천으로 방류한 결과 각종 물고기들이 그렇게 참혹하게 떼죽음을 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 불소가 과다투입된 수돗물이 그대로 시민들에게 보급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48년 10월 말, 미국의 명절인 할로윈 데이에 발생하여 더욱 그 악명이 널리 알려진 대재앙, 세계 최초로 기록된 대기오염 사고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작은 공업도시 도노라에서 일어났습니다. 며칠 만에 20여 명이 죽었고 한 달 동안 70여 명이 사망하고 6천여 명의 환자가 발생한 최악의 사고였습니다. 도노라 사건의 초기 주범이 다름아닌 불소화합물입니다. 그리고 한때는 미국에서 20여 종의 주요 대기오염 물질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배상책임의 손실을 기업에 안겨준 독극물이 다름아닌 불소화합물입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그 운반과정에 극도의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는 물질도 다름아닌 불소화합물입니다. 이런 독성 화학물질이 '기적의 충치 감소제'로 변신하는 과정에는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원자탄을 만들면서 부산물인 불소화합물이 원자탄 제조공장 인근의 노동자들과 가족들을 중독시키는 점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던 미국 정부와, 대기오염과 독극물중독 배상책임에 시달리고 있던 듀퐁이나 멜론같은 다국적기업의 추악한 결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치과의사들은 차라리 이들의 희생양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이런 화학물질을 수돗물에 넣을 때는, 물론 소량이면 충치를 예방한다고 불소화를 주장하는 분들은 말하지만, 먼저 충분한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안전하다고 수많은 과학자들이 얘기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DDT나 CFC의 경우처럼 이른바 과학자나 전문가의 오만이나 무지의 소치일 수 있습니다.
  
  계층의 문제를 지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수돗물의 안전성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마시지 못하고 생수를 사서 마시는 이상한 도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돈이 없는 극빈층과 소외계층은 그나마 돈이 없기 때문에 생수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수돗물을 마십니다. 수돗물 불소화를 추진하는 분들은 이들 중하층, 특히 취약계층을 위해서라도 불소화가 강제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의 주장은 소외계층의 구강건강을 걱정하는 그 근본 취지는 충분히 공감이 가지만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주장은 자칫 한 발짝만 더 나가면 범죄발생을 줄인다는 공익 목적을 위해서는 흑인들에게 불임수술을 강제로 시술해야 한다는 인종차별 주장이나 거의 다름없게 됩니다. 국가가 강제로 시행하는 전염병 예방사업과 비교하는 분도 있었지만, 이것은 상식 이하의 말이 안되는 얘기입니다. 충치는 법정 전염병이 아닙니다. 이런 주장은 그 옛날 국가가 나서서 강제로 DDT를 뿌리던 때의 얘기와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이미 심각한 정도를 넘어서 차상위 계층까지 600만~700만을 헤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때문에 무엇보다도 빈곤층 자체를 없애거나 줄이려는 노력이 근본 대안이겠지만, 빈곤층의 구강건강을 위한 현실성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수돗물 불소화는 아닙니다. 굳이 미국 치과의사협회가 권하는 1일 불소투여 권장량(6개월 이하의 신생아에게는 0ppm, 6~12세 1ppm: 수돗물 불소화 농도는 1ppm)을 들지 않더라도, 노인과 환자에게는 불소의 독성작용이 특히 민감할 수 있다는 미 독성물질 질병등록국(ATSDR, 1993)의 경고를 들지 않더라도, 가난한 집의 아이들과 노인들에게 불소화된 수돗물은 혜택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위협하는 대재앙이 될 위험성이 다분합니다.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구강보건을 생각한다면 우선 치과의 문턱부터 대폭 낮추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치과치료는 너무나 비싸서 빈곤층은 물론 웬만한 중산층조차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때문에 치과진료의 혜택이 더 넓게 돌아가도록, 너무나 많은 치과 치료 항목이 보험혜택에서 제외되고 있는 현실부터 뜯어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너무나 비싼 치과진료비부터 낮추어야 합니다.
  
  지구의 딸, 지구의 시인이었던 레이철 카슨은 <침묵의 봄>의 마지막을 이런 말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지금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 곳에 서 있다. 하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 나오는 두 갈래 길과는 달리, 어떤 길을 선택하건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우리가 오랫동안 여행해온 길은 놀라운 진보를 가능케 한, 너무나 평안하고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습니다. 수돗물 불소화는 쉽고 편안한 고속도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끝에는 재앙이 절벽처럼 입을 벌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바라옵건대 좋은 뜻에서 수돗물 불소화를 추진하는 분들도 이 점을 깊이 성찰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박승옥/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석연구원
 
26개 시민ㆍ환경단체 '수돗물 불소화법안'에 '반대' 2005-10-14
"수돗물 불소화 사업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 2005-09-26
"수돗물 불소화는 민주주의와 주민자치에 합당" 2005-09-14
"수돗물 불소화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강제 의료" 2005-09-13
"수돗물 불소화가 왜 위험한지 근거를 대라" 2005-09-12
"수돗물 불소화 '전국 확대', 꼭 막아야 합니다" 200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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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농민들 '낫' 들고 일어설 때 무슨 변명 하려나&quot;

작년 이맘 때 우리나라를 찾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를 인터뷰하려다 거부당한 사연을 '기자의 눈'으로 쓴 적이 있다. 조제 보베는 애초 밤 늦게 예정돼 있던 인터뷰를 거부하는 대신 우리나라 농민들과 '쌀시장 개방'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것을 택해 기다리고 있던 기자를 당혹스럽게 했다.
  
  당시 그가 인터뷰를 거부하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한국에 와서 농부들의 사정을 들어보니 내 얘기를 하는 것보다 그들의 얘기를 듣고 토론하는 게 훨씬 더 시급한 일로 여겨졌다. 기자를 만나는 것보다 농업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과 만나는 게 나한테는 더 중요한 일이다." 사실 이 말을 듣고 부끄럽지 않을 '한국의 기자'들이 있을까? 기자 역시 부끄러웠다. '내가 언제 이 사람보다 우리 농업을 걱정한 적이 있던가.'
  
  언론에서 사라진 농업문제
  
  농업문제가 언론에서 사라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3년 추석연휴 기간에 농민운동가 이경해 씨가 멕시코 칸쿤에서 세계화에 항거하며 목숨을 끊은 후 국내 언론이 보여준 태도는 이와 관련해 아주 시사적이다. 당시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이를 사건기사로만 간단하게 취급했지 그의 자살이 갖는 의미를 심도 있게 다루지 않았다.
  
  이것은 외국의 반응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고인의 고향을 찾아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해 한국 농촌의 '절망적인 현실'을 조명했고, 영국의 <가디언>은 '눈물의 들판'이라는 르포 기사를 통해 한국 농촌의 비참한 모습을 담아냈다. 개인적으로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얼마 후 번역ㆍ출간된 <굶주리는 세계>(허남혁 옮김, 창비, 2003)의 한국어판 서문이었다.
  
  'Food First'로 널리 알려진 미국 식량과발전정책연구소에서 펴낸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은 고인에 대한 추모사로 대체됐다. "오늘 이경해 씨는 영웅이며, 국제적으로 조직화된 농민운동의 순교자이다. 그의 정신은 굶주림을 종식시키려는 전 세계의 투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는 이 한국어판 서문을 이 투쟁에 삼가 바치고자 한다."
  
  정작 고국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고인이 밖에서는 '농민운동의 순교자'로 주목받은 현실, 바로 천덕꾸러기가 된 우리나라 농업과 농민의 실상이었다.
  
  농업을 존중하는 마음이 사라진 사회
  
  이경해 씨가 세상을 뜬 지 벌써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농업의 미래는 암울하다. 정확히 말하면 '땅의 힘'을 믿으며 살아 온 소농들(한때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였던 이들)이 뿌리째 삶의 기반을 상실하고 있다. '소농의 몰락'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속도와 사회적 무관심에서 우리와 비교할 대상이 없다.
  
  최근 '중국산 납 김치' 논란이 일면서 일부 언론에 등장한 '금치'라는 표현은 농업과 농민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 어떤 상황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4인가족 기준으로 김치 10포기를 담그는 데 6만 여 원이 드는 걸 가지고 '금치'라고 할 때 농업과 농민에 대한 존중심은 손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다.
  
  여름 내내 땡볕 더위 아래서 고생해 많아야 몇 십만 원을 손에 쥐었을 농민들이 이런 표현을 보고 느꼈을 참담함은 짐작하기조차 힘들다. 식량 자급률이 고작 20% 대에 불과한 나라에서 또 '먹을거리'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 있는 나라에서 이토록 농업과 농민에 대한 관심이 없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새로운 길' 찾아 땅 일구는 '거대한 소수'
  
  스스로 모순과 차별을 느끼는 자가 먼저 행동한다고 했다. 대다수 지식인과 언론이 사실상 '농업'과 '농민'을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을 때 '새로운 길'을 찾는 움직임은 농업 안에서 꿈틀대고 있다.
  
  그 중에는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기존의 관행 농업에 한계를 느끼며 유기농업에서 대안을 모색하려는 이들도 있고, 삶의 구석으로 쫓겨 다시 '어머니 땅의 힘'에 기대고자 귀농을 선택한 이들도 있다.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농촌에서 찾은 이들도 있고, 농업에서 삶과 문명의 대안을 찾아보려는 이들도 있다. 아직 농촌에 삶의 터전을 두지는 못했으되 먼저 실천한 이들의 뒤를 좇는 사람들도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지금은 '소수'지만 우리나라를 또 세상을 바꿀 '꿈'을 갖고 있다. '산업화'라는 리바이어던이 곳곳에서 땅을 무참히 유린할 때 그들은 묵묵히 땅을 일군다. 그리고 하나둘 땀을 흘리면서 땅을 일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사연을 알고 싶다고? <프레시안>에서 5개월 동안 진행된 이야기는 바로 그들의 흔적을 기록한 것이다.
  
  절망을 싣고 서울로 오는 소달구지
  
  노무현 대통령은 13일 오후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에 참석해 "농촌이 살고 농민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반드시 찾아나가겠다"면서 "개방은 피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개방의 파고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지원은 다 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노무현 대통령의 입 발린 약속에 농민들은 '감동' 대신 '절망의 소달구지'를 안겼다. 13일 해남 땅끝 마을을 출발한 '농민의 절망'을 실은 소달구지는 순천, 진주, 대구, 대전, 홍성, 과천을 지나 오는 30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리는 집회에 합류할 예정이다.
  
  이날 오전 경실련, 전교조, 환경정의 등 7개 시민ㆍ사회단체로 구성된 '우리 쌀 본부'는 "우리 쌀과 우리 밀을 지키는 일은 곧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며 "쌀 개방을 국가적 위기"로 간주했다. 이정주 본부장의 절규가 귀에 생생하다. "추수를 준비해야 할 황금빛 10월에 논으로 가야 할 농민들이 소달구지에 절망을 싣고 국토를 걷고 있다. 농업에 희망이 없으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또 우리나라의 미래도 확신할 수 없다."
  
  농민들 낫 들고 일어설 때 지식인-언론은 뭐라 변명할 것인가?
  
  꾹 참고 있던 농민들이 낫을 들고 일어설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농업을 살리자'는 목소리를 외면한 지식인, 언론들은 김남주의 시 '낫'을 기억해야 한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
  주인이 종을 깔보자
  종이 주인의 모가지를 베어버리더라
  바로 그 낫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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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미 제국주의 꼭두각시 노릇 그만 두어라&quot;

미국 제국주의의 꼭두각시 노릇을 그만두어라                    장신기

1944년 한반도의 친일파들은 일본 제국주의가 무너질 줄 모르고 조금이라도 더 친일을 하려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따라서 반미구호를 외치느라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1945년 일본 제국주의는 무너졌다. 1988년 동구 유럽의 구소련 지지 권력자들은 구소련 제국주의가 무너질 줄 모르고 구소련 권력자들에게 아부하려고 변화하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1989년 구소련은 하루아침에 스스로 무너졌다. 1944년의 일본과 1988년의 구소련처럼 2005년의 미국 제국주의는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한 예로, 남아프리카 흑백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했다는 이유로 넬슨 만델라와 함께 1993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클러크(FW de Klerk) 전 남아공 대통령은 미국 미주리 주립 대학교의 강연에서 “미국 주도의 지구화는 이제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계속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적 지구화를 강행한다면, 미국의 주도권은 상실될 것이지만 선진국 중심의 (근대화 과정에서) 배제된 저개발 국가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토대로 한 (탈근대적) 지구화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클러크는 국가보안법과 동일한 아파르트헤이트를 토대로 흑인과 흑인을 지지하는 백인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인 남아프리카 백인 독재정권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다. 1948년 영국과 미국의 절대적인 지원 하에서 만들어진 남아프리카 백인 독재정권은 1950년 미국의 맹방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미국은 남아프리카를 지원하였고,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남아프리카 백인 독재정권은 미국을 대신하여 남아프리카뿐만 아니라 나미비아, 모잠비크, 짐바브웨 등등의 아프리카 주변 국가들의 흑인해방 세력을 억압하고 말살하는 선봉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미국은 영국을 비롯한 프랑스와 독일 등등의 언론과 미국내 NGO 단체들, 그리고 UN의 반대에 부닥쳐 남아프리카 백인 독재정권을 지원하지 못했다. 미국의 지지를 잃은 남아프리카 백인정권은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남아프리카 백인 보수주의 정치가들과 아파르트헤이트의 권력과 폭력을 휘둘렀던 경찰과 군대는 흑인들과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주장했지만 백인 독재정권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클러크는 아파르트헤이트를 폐지하고 공산당과 아프리카 민족회의를 합법화시켰다.

남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우리 한반도도 50년 동안 지속된 남북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ㆍ15 남북공동선언>이 만들어졌다. 남아프리카 흑백갈등을 해결했다는 이유로 클러크와 만델라는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가 되었다. 한반도의 두 지도자도 당연히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가 되었어야 했지만 여전히 미국의 입김이 작용하여 김대중 대통령만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996년 새롭게 만들어진 남아프리카 헌법의 골조는 “인종, 사상, 종교, 성을 매개로 차별을 하거나 억압하는 행위를 일체 금지시키”는 소수자를 위한 공공의 역할이다. 만약에 인종이나 사상, 혹은 종교나 성을 매개로 그 누구를 차별하거나 비난을 하면 그 누구라도 법의 근엄한 심판을 받아야만 한다. 이와 더불어 남아프리카는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서 가장 늦게 해방된 나라이면서도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과 더불어 유럽이나 미국의 식민지 문화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자발적인 평등의 문화를 창조하는 선봉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흑백갈등은 남아프리카의 근대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350년 동안 고착된 것이다. 그것이 해결되었다. 그 힘은 한 때 미국의 지원으로 권력을 유지하였던 클러크로 하여금 미국 제국주의를 비난하도록 만들었다. 이제 지구상의 내부적인 지역갈등은 한반도밖에 남지 않았다. 한반도의 남북갈등은 단지 50년밖에 되지 않았다. 350년의 흑백갈등이 해결되었는데 소위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형제자매이며 같은 민족이라고 말하는 우리 한반도의 남북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 이유는 미국이 아니다. 미국도 세계적인 탈근대의 흐름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마치 일제 말기의 친일주의자들처럼 미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조선일보의 몇몇 언론 권력자들, 아직도 남아있는 검찰과 경찰의 독재세력들, 그리고 한나라당의 몇몇 수구세력들이다. 그들은 한반도를 둘러 싼 6자회담의 평화적 해결을 불안해한다. 그들은 남아프리카처럼 미국이 자신들을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불안해한다. 그렇다. 미국은 아무리 현재의 초강대국이라고 하더라도 미국 내부의 민주화 운동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적인 탈근대의 흐름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남한의 수구세력들과 마찬가지로 흑인들과 목숨을 건 마지막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백인 권력의 수구세력들이 있었고 지금도 몇몇 존재하고 있다. 그들의 몇몇은 스스로 남아프리카를 떠나 아직도 백인 중심주의가 남아있는 유럽과 미국,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방황하면서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고, 다른 몇몇은 자신들의 권력을 마구 휘둘렀던 근대적 과거에 몰입하여 폭력을 조직하고 있다. 그 예로, 2003년 남아프리카의 사법 수도인 블로엠포테인 고등법정에서 “테러의 밤(Night of Terror)”이라고 불리는 “바알 담(Vaal Dam)”을 계획한 허큘레스 빌존(Hercules Viljoen)과 레온 피콕크(Leon Peacock)에 백인 극우집단에 대한 재판이 있었고, 같은 해에 “보어에마그(Boeremag)”라고 불리는 일단의 군대 백인 근본주의자들이 행정 수도인 프레토리아 고등법정에서 쿠데타와 전국적인 테러를 계획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다. 그들은 지금도 비밀리에 http://www.siener.co.za와 같은 우익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근대의 폭력과 증오에 너무 물들어 이제 평화를 증오하는 근대의 망령이 들은 것이다.

근대의 망령은 마치 1950년대의 메카시 선풍처럼 항상 마녀사냥을 필요로 한다. 남한의 수구세력들이 지금도 그 짓을 하고 있다. 작년에는 근대와 탈근대의 과정에서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몸담았다가 37년 만에 고국을 찾은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를 빨갱이로 몰아 다시 국외로 내쫓더니 이번에는 올곧게 한반도 근대사 연구에 몰두하는 강정구 교수를 빨갱이로 매도하고 있다. 그러나 고여 있는 물은 썩듯이 한국사회의 보수주의자들 중에서 과거 독재정권의 썩은 냄새가 나는 미국 제국주의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수구세력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남아프리카의 클러크 전대통령이나 아파르트헤이트 폐지에 지대한 공헌을 한 기자 막스 두 프레즈와 같은 건강한 보수주의자들이 한국사회에도 등장하여 근대적인 진보와 보수의 대립적 틀을 깰 수도 있을 것이다. 클러크는 강연의 마지막에서 미국 제국주의자들에게 “세계 각 지역의 국가가 나라들이 대립과 갈등 없이 스스로 자신들을 다르게 정의할 수 있는 문화적 다양성을 하루라도 빨리 받아들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만델라는 호사인이고 남아프리카인이며 아프리카인”인 것과 같이 “나는 아프리카너(네덜란드계 백인)이고 남아프리카인이며 아프리카인”이라고 강조했다.

클러크의 말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이고 한반도인(코리안)이며 아시아인이듯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국민이고 한반도인이며 아시아인이다. 나는 클러크와 만델라가 흑백갈등으로 지난 과거에 죽은 수없이 많은 희생자들보다 더많은 희생자들이 생길 수도 있는 근대의 막바지를 슬기롭게 헤쳐나간 것처럼 노무현과 김정일 두 지도자가 평화적으로 한반도의 남북갈등을 해결하는 근대의 막바지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들에게 탈근대의 위대한 지도자들이 되기를 바라기 이전에 우리들 스스로가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을 깨트리고 서로가 서로의 다른 종교와 사상, 그리고 성의 차이를 인정하고 화합하는 탈근대인이 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탈근대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최대의 걸림돌은 미국 제국주의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서 오직 글과 말로만 행동할 수 있는 지식인 마녀사냥을 일삼는 수구세력들이라고 생각한다. 이곳 남아프리카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그들의 미래는 너무나도 암담하다. 하루라도 빨리 미국 제국주의의 꼭두각시 노릇을 그만두고 한반도인으로 거듭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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