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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이 멎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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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리나

해외칼럼] 지구온난화와 카트리나
제러미 리프킨 · 미국 미래·경제학자
정리=이건호기자 ghlee@chosun.com
입력 : 2005.09.06 19:24 03'


▲ 제러미 리프킨
풍속 233㎞의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의 멕시코만을 삼켜버렸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시신(屍身)이 해변에 널부러져 있는 사이, 이상한 정적이 흐른다. 워싱턴 관리들이 비밀이 새 나갈 것을 두려워하며,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살인폭풍 카트리나는 늘어난 이산화탄소 방출과 지구온난화의 엔트로피 계산서라는 비밀을···.

카트리나는 앞으로 화석연료 사용이 한계점을 지나 기울기 시작하는 시발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또 미국인들이 원유(原油) 시대의 종말과 지구온난화의 재해가 먼 미래의 일이라는 미신을 버린 순간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 ‘미래’는 지난 8월29일 뉴올리언스와 미시시피만(灣) 지역 저지대를 초토화시킨 거대한 파도를 타고 폰차트레인 호숫가에 도달했다.

카트리나는 단순한 불행이나 가끔 오는 자연재해가 아니다. 우리가 이 악마 같은 폭풍을 만들었다. 한 세대 동안 지구온난화가 초래할 재앙에 대해 배워왔으면서도, 이를 막지 못한 것이다. 차량 중 52%가 엄청난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SUV(스포츠형 다목적차량)인 미국 실정에서 우리가 무얼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장래에 미국인들은 전세계 인구의 5%도 안되는 미국이 세계 화석연료 소비량의 4분의 1을 썼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에너지 보전을 위해 가솔린 1갤런당 5센트의 세금을 더 내지 못할 정도로 우리는 이기적이었다고 허리케인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외국인들이 미국은 지구온난화 문제를 최대 과제로 삼자는 교토 협약에 왜 서명하지 않았느냐고 물어올 때, 뭐라고 답해야 할까?

한동안 미국인들은 이재민들에게 음식과 머물 곳, 재정적 지원을 한다고 난리일 것이다. 미국인들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데 지구가 도움을 호소할 때, 왜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 걸까? 결국 우리는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리는 지금 2개의 폭풍 전선 사이에 놓여있다. 하나는 사상 최초로 세계 원유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시장의 원유 가격은 배럴당 70달러를 맴돈다. 휘발유와 난방용 기름 가격은 멕시코만 지역에 불어난 물처럼 뛰어올랐다. 지금은 원유 시대의 마지막 시기다. 다른 하나는 우리 생태 환경이 이산화탄소 증가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도망가서 숨을 데도 없다. 지구는 뜨거워지고,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 갇혀 있다.

지금도 부시 대통령은 미국인들에게 제방을 새로 쌓고, 황폐화된 지역 재건에 힘써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를 막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다음에는 5등급, 아니 더 지독한 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잠깐이나마 부시 대통령의 귀를 빌릴 수 있다면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태풍의 눈을 자세히 보면 지구의 종말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또 카트리나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지구상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기름 마개에서 우리 자신들을 떼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이라는 얘기를···.

대통령은 “폭풍에 맞서 싸워 이기자”는 설교는 뒤로 미뤄야 한다. 대신 카트리나가 왜 발생했는지 그 진실을 말해야 한다. 방만한 에너지 소비 방향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미래의 에너지 활용을 위해 지금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는 희생을 감내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대통령이 지속가능한 재활용 에너지와 수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주길 기다리고 있다.

Global Warming Hits New Orleans: The Controversy After the Storm

Jeremy Rifkin is the author of The Hydrogen Economy: The Creation of the World Wide Energy Web and the Redistribution of Power on Earth (Tarcher/Putnam: September 2002).

First the deafening roar of Katrina bearing down at 145 miles per hour on the gulf coast of the United States. Now the eerie silence, as victims wash ashore and out to sea. And in the aftermath, it seems that all of official Washington is holding its breath, less the dirty little secret gets out: that Katrina is the entropy bill for increasing CO2 emissions and global warming. The scientists have been warning us for years. They said to keep our eyes on the Caribbean where the dramatic effects of climate change are first likely to show up in the form of more severe and even catastrophic hurricanes. Indeed. Over the course of the past several years, hurricane activity and intensity has picked up in the Caribbean basin. Now the killer storm Katrina has hit with a vengeance, exacting incomprehensible devastation on a wide swath of the southeastern portion of the United States.

The reality is, Katrina will be looked back on as a “tipping point” of the fossil fuel era the moment when the American public began to discard the comfortable myth that the end of the oil era and the cataclysmic effects of global warming lie far in the distant future. The future arrived on the shores of Lake Ponchartrain with a giant wave of water rushing through the streets of New Orleans, wreaking destruction and havoc on the low-lying lands of the Mississippi gulf region on Monday, August 29th and the result is that America and the world have changed forever.

Katrina is not just bad luck, nature’s occasional surprise thrust on an unsuspecting humanity. Make no mistake about it. We created this monster storm. We’ve known about the potentially devastating impact of global warming for nearly a generation. Yet, we turned up the throttle, as if to say, we just don’t give a damn. What did we expect? 52% of all the vehicles owned in America are SUVs, each a death engine, spewing record amounts of CO2 into the earth’s atmosphere.

How do we explain to our children that we Americans represent less than 5% of the population of the world, but devour more than 1/4 of the fossil fuel energy produced each year. How do we say to the grieving relatives of the victims whose lives were lost in the hurricane that we were too selfish to even allow a modest 5 cent additional tax on a gallon of gasoline to encourage energy conservation? And when our neighbors in Europe and around the world ask why the American public was so unwilling to make global warming a priority by signing on to the Kyoto Treaty on climate change, what do we tell them?

In the coming days and weeks, millions of Americans will rush to the assistance of the victims of hurricane Katrina with offerings of food, shelter and financial assistance. Natural calamities bring out the best of the American character. We pride ourselves on being there for our fellow human beings when they cry out for help. Why can’t we muster up the same passionate response when the earth itself is crying out for help?

Shame on the United State of America and the peoples of other countries we’re not alone who have put their personal short-term whims and gratifications ahead of the welfare of the planet.

Of course, now even we are paying the price. We’re caught up now between two storm fronts. On the one hand, global oil demand is,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eclipsing global oil supply. The price of a barrel of oil is hovering at $70.00 on world markets. Gasoline and heating oil are rising as fast as the flood waters in the gulf-states, in part because the storm knocked out oil rigs across the Gulf of Mexico and crippled a large portion of our gasoline refining facilities.

We are entering the last few decades of the oil era, with ominous consequences for the future of a global economy run virtually entirely on fossil fuels. While our petro-geologists are not sure when global oil production will peak the point when half the world’s recoverable oil is used up it’s clear to all but the few delusional souls in the oil industry that the beginning of the end is in sight.

On the other hand, our Biosphere is convulsing from the buildup of CO2 gases, and there is nowhere to hide or escape. Our planet is heating up, trapping all of us in an unpredictable new period in history.

There will be thousands of memorial services in coming weeks to pay respects to the dead, the missing and the injured. There will be hand-wringing and recrimination. The public will demand to know why the dikes protecting New Orleans and the gulfport region failed. Why necessary precautions weren’t taken to lessen the impact of Katrina. Why the relief effort was too little, too late. Still, what we are not likely to hear from President Bush and The White House or from business leaders, or for that matter from all of us still driving our SUVs is a collective “we’re sorry!”

President Bush has called on the American people in this hour of our grief to rally to the task, to help restore the dykes and causeways, patch up the streets, and rebuild the homes and communities lost in the devastation. To what end, if we leave the demon of global warming unchecked. The next time it will be a Category 5 storm or something even far worse and unimaginable.

If I could get the ear of President Bush, for just a moment, here’s what I would say. Mr. President, if you had looked deeply into the eye of the storm, what you would have seen was the future demise of the planet we live on. It’s time to tell the American people and the world that the real lesson of Katrina is that we need to mobilize the talent, energy, and resolve of the American people and people everywhere to weaning ourselves off the oil spigot that’s threatening the future of every creature on earth.

President Bush, spare us your homilies about American grit and determination to “weather the storm and persevere.” Instead, tell us the truth about why Katrina really happened. Ask all of us to consider a change of heart about our profligate energy-consuming lifestyles. Call on us to conserve our existing fossil fuel reserves and make sacrifices in our future use of energy. Provide us with a game plan to move America beyond fossil fuels to a new sustainable energy future based on renewable sources of energy and hydrogen power. We’re waiting.

 

 

환경칼럼] 20년 사이 100분의 1 된 제비

노영대 ·한국자연정보연구원장 · DMZ생태학교장


▲ 노영대
한국자연정보연구원장
가끔 '환경특강'이라는 이름으로 강단에 설 때가 있다. 강의에 앞서 화두(話頭)처럼 이런 질문을 꼭 던진다. “제비의 고향이 어디지요?”. 그러면 대개 ‘강남요!’라는 대답이 나온다. 틀린 답이다. 제비가 나고 자란 곳은 우리의 처마다. 처마가 바로 제비의 고향이다. ‘강남에 간 제비’라고 말할 때의 ‘강남(江南)’이란 중국 양쯔강 남쪽 아래 지방을 뜻한다. 그런데 ‘강남’은 제비가 먹이인 벌레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철에 임시로 피해 가는 피난처(월동지)일 뿐이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사람 수보다 제비가 더 많았다. 집집마다 한 둥지 이상 제비집이 있었다. 그런데 20여년 전부터 제비가 번식지인 우리나라에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이젠 도시에선 제비를 구경하기가 어렵게 됐다. 급기야 서울시는 제비를 ‘보호야생조류’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제비가 얼마만큼 줄어들었는가는 충북산림환경연구소와 금강유역환경청에서 1980년대부터 실시하고 있는 조사 결과를 보면 안다. 매년 민가(民家)가 있는 충청도 지역의 10㏊ 면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987년 2282마리였던 개체수가 1990년엔 1109마리, 1996년 155마리로 줄어들더니 올해에는 5월엔 13마리, 8월엔 22마리였다.

제비는 논에서 진흙과 짚을 물어다 처마에 집을 짓는다. 제비가 사람이 사는 민가에 집을 짓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 새끼를 보호하자는 생각이다. 제비의 알과 새끼를 노리는 뱀이나 쥐 등 천적(天敵)의 접근을 막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지간한 농촌에서도 주택개량이 이뤄져 제비가 집을 짓기 어렵다. 시멘트나 콘크리트 벽면에는 진흙이 잘 달라붙지 않는다.

먹이도 많이 줄어들었다. 제비는 한 해에 두 번 번식하는데 보통 1차 번식에 5마리, 2차 번식에 4마리 안팎의 알을 낳는다. 14일 정도 알을 품어 부화시키는데 이 갓 깨어난 새끼의 몸무게는 약 1.8g. 20여일을 키워 둥지를 떠나게 하는데 이 때까지 자식들은 엄청난 양의 먹이를 필요로 한다. 약 3주 내에 몸무게를 10배 이상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에너지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부모 제비는 하루에 200마리 이상의 벌레를 사냥한다. 제비 가족이 월동지로 갈 때까지 약 5만 내지 6만 마리 정도의 벌레가 필요하다.

그런데 먹이의 공급처였던 농경지의 환경이 바뀌어 버렸다. 논과 농경지에 뿌려진 농약과 화학비료가 벌레들을 없애버린 것이다. 농약에 오염된 벌레를 먹게 되면 제비도 나쁜 영향을 입을 수밖에 없다. ‘환경호르몬’으로 불리는 내분비교란물질의 섭취로 새끼를 제대로 낳지 못하거나 낳은 새끼도 비실비실해지고 마는 것이다.

문제는 제비에게 적합하지 않게 변한 환경이 인간에게는 괜찮겠느냐는 점이다. 논은 우리의 주식인 쌀의 생산 공간이다. 제비만큼이나 사람도 논에 의존한다. 그런 논의 환경파괴로 제비가 멸종해가고 있는데 사람은 멀쩡한 것일까. 제비가 생물학적 존재라면 사람도 생물학적 존재다. 몸무게가 가벼운 제비는 좀 일찍 독성(毒性)이 나타난 것이고 체중이 더 나가는 사람은 아직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다.

눈알에 노란 빛이 돌면 황달이라고 의심하여 진단을 받아야 한다. 안질 정도로 하찮게 생각하여 안약으로 치병(治病)하겠다면 낭패를 볼 것이다. 눈에 나타난 증상이 간의 이상을 알리는 징후인 것을 빨리 알아야 간의 병을 고칠 수가 있다. 지금 제비의 위기는 사람의 위기를 읽을 수 있게 하는 증후군(症候群)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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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왜 불공평한건가요??

<이별남녀>중
 

"아버지 세상은 왜 이리도 불공평한건가요?" 최근 시작한 이별남녀라는 드라마에서 눈길을 끌게 하는 명 대사 하나...이것에 대해 아버지는 대답, 공평하면 재미 없으니까? 아니다.

 

세상이 불공평한 이유는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기 때문 아닐까? 가진 자의 꿈과 희망은  착취, 억압을 통해 현재의 권력을 누리며 미래의 권력의 확대재생산을 기약하는 꿈과 희망이요, 가지지 못한 자의 꿈과 희망은 언젠가는(열심히만 하면) '나'도 '가진 자'가 되어 그들(기득권자)처럼 '가지지 못한 자'를 착취하고 억압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이니라........

 

결국 그런 환상 속에서 부모세대는 땀 흘려 일했지만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꿈을 로또,복권, 투기에 편승 한 몫 잡아서, 자식세대에겐 '사교육'이라는 마술이라는 것으로 한방에 '인생역전'을 하려는 꿈만을 꾸기에 착취와 억압이라는 잘못된 현실을 교정할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만다.

 

이제,  할수없는건 원하지 않을거라는 이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의 말 처럼 현실을 직시하고 투쟁에 나서야 할 때다. 그것만이 사회의 온갖 모순과 불합리한 점들을 바로 잡을 수 있으니까 솔직히 불의의 시대에 불의를 바로 잡기는 커녕 그것에 편승해 한 몫 잡으려는 세태. 분명 잘못되지 않았나? 불의를 통해 '성공'이라는 권력을 얻기 보다 불의의 사회를 때려 엎기 위해 나서는게 더 현명하지 않나? 설령 힘이 부쳐 그렇게 까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런 사회에서 부당하게 권력을 향유하는 권력자(대표적인게 경제권력)들의 모습을 더는 보기 싫어하는 태도라도 보여 그들 기업이 내놓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철저하게 외면할 수 있지 않을까? 이거야말로 개인의 이기적 선택이 궁극적으로 전체 경제를 합리적으로 끌고 가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해준다는 사실....ㅎㅎㅎ 

 

그나저나 부모세대의 로또, 복권, 투기나 자식세대의 사교육은??? 로또, 복권, 투기(카지노, 경마, 경륜..)산업은 대부분 정부가 간여하고 있는 문제라는걸 감안하면 보다 명확해지지 않나?  기득권 권력을 위한 손발, 하수인인 정부가 서민들을 상대로 이런 사업을 한다는것은??? 그 연장선상에서 사교육 역시  공교육 불신이 사교육을 부추겼다는 기본적 사실을 감안하면 공교육 불신. 이거 국가권력과 기득권자들의 음모 아닐까??? 따지고 보면 얼마든지 공교육을 바꿔서 학부모와 학생들로 하여금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게끔 할 수도 있을텐데 도리어 학교는 사교육 따라하기(입시위주교육)에 급급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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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그 소리 없는 아우성

출산율 급감으로 야단법석으로 떱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공동체 사회 유지에 대한 기본적 철학 같은건 없고 오로지 생산 가능 인구, 소비시장으로서의 인구, 국가를 살찌우기 위한 인구 그거뿐입니다. 하긴 인구. 사람 입이죠. 사람 입이 줄어들면 당근 먹는게 줄고 먹는것만 주냐하면 갖가지 상품이나 서비스를 팔아 치울 대상자가 줄어드니 그토록 비상 걸려 하는것 어째 보면 당연한 것일수도 있겠습니다.

 

암튼 그건 그거고 하고 싶은 얘기는 좀 도발적이긴 합니다만..

자살, 간간히 뉴스를 통해 알려지는 내용중에 이런게 있습니다. 자살하려는 어떤 사람을 몸을 던져 막았다? 그래서 구사일생으로 살려 줬다. 그게 과연 미담일까요 아니면 살기 싫어 죽을려고 하는 사람을 억지로 살려준 철천지 원쑤일까요??

정답은 각자 판단에 맡깁니다. 허나, 하나 확실한건 자살을 선택할 자유도 인정해줘야 합니다. 왜 스스로 생을 마감할 권리는 없다고 합니까?? 누구 좋으라고요?? 그럼 이렇게 봐 봅시다. 조건을 내겁니다. 이래이래 해달라 안해주면 여기서 뛰어 내리겠다. 물론 여기서 이래이래는 재벌해체, 과도한 세금 징수 억제, 생존권 보장, 깨끗한 공기 숨 쉴 권리 보장(배기가스로 부터의 자유), 구속 남발 중지 등 얼핏 혁명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사회 전체적으로 어떻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일 수도 있는 문제 그런 문제에 대한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도 자살할 권리는 인정해서는 안되며 그런 행위는 억제되어야 마땅할까요? 자신이 원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 꾸는건 사유하는 인간으로서 당연한거지요? 그렇다면 자신이 극도로 혐오하고 싫어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이탈하고자 하는 욕망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자살은 누구나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자살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시는분들에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까지 당신은 무엇을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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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과 싸워야 한다 펌

부자 학교의 가난한 학생

부자 동네 옆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학교를 다닌 탓에,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는 친구들 중에 진짜 부자가 몇 명 있다. 처음에는 우리 집이 가난한 순서로 반에서 두 번째 내지 세 번째쯤 됐는데, 더 가난한 집 아이들이 하나씩 둘씩 전학을 가 버리는 바람에 나중에는 결국 우리 집이 반에서 가장 가난한 집이 됐다.

반 아이들 중 몇 명은 점심시간이 되면 집에서 기사나 ‘식모’가 싸 들고 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점심을 펼쳐놓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먹기도 했는데, 나는 어머니가 싸 주신 조개젓 반찬이 냄새가 난다고 아이들이 얼굴을 돌리며 인상을 쓰는 바람에, 도시락을 창문틀에 내 놓고 고개를 창문 밖으로 빼 낸 채 혼자 점심을 먹기도 했다. 조개젓 반찬이 다 떨어질 때까지 며칠 동안이나 점심을 그렇게 먹었다. 내 등 뒤에서 “맛있는 반찬을 싸와서 혼자 먹는다.”고 수군거리는 못난 인간들은 그 시대에도 항상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도 내가 그 학교를 끝까지 계속 다닐 수 있었고, 어머니가 학부형회에 “고개 빳빳하게 쳐들고” 참석해 대의원으로 뽑힐 수 있었던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결국 내 자랑이 되니 하지 않겠다. 마음대로 짐작하기를...

나이 쉰이 넘은 요즘, 그 친구들은 몇 년째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면서 나에게도 연락은 하지만, 나는 그 모임에 딱 한번밖에 가보지 않았다. 어릴 적 담임선생님이 교장선생님으로 취임하는 날, 겸사겸사 참석했을 뿐이다. 그 친구들이 한 달에 한번씩 모이는 최고급 식당 역시 어릴 적 친구가 경영하는 비싸기로 소문난 일식집이다.

요즘은, 그 친구들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과 관련된 일이 터지거나, 우리 사무실 변호사들의 급한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이 가끔 연락을 해오면 만날 기회가 있을 뿐이다. 그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나 한 다리 건너 다른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입이 쩍쩍 벌어진다.

부자 친구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커피를 판다고 소문이 자자한 커피전문점을 경영하는 사장님은 초등학교 때 내 짝이었던 친구다. 외국에서 20년 넘게 살다가 왔다기에 만났더니 “얘, 우리나라 커피 문화가 외국과 비교해서 50년쯤 뒤진 거 아니?”라고 묻는다. 나는 “그게 500년쯤 뒤진 들 무슨 상관이냐?”고 대꾸했다.

한번 구경 가보니, 한 잔에 몇 만원씩이나 하는 커피를 마시러 사람들이 바글바글 와 있었다. 낯익은 연예인들의 얼굴도 보였다. 굳이 커피 창고를 구경시켜 준다기에 따라 갔더니, 작은 깡통을 가리키며 “이거 한 통에 200만 원쯤 하는 거야. 콜롬비아에서도 일 년에 몇 킬로그램밖에 생산되지 않지. 우리가 볼 때 ‘스타벅스’ 커피는 원가 몇 백 원밖에 안 되는 구정물에 불과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대한민국 부잣집 아이들의 놀이터라는 번화가에서 커다란 미용실을 경영하는 친구도 있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그 상가가 아예 그 친구 소유다. 대한민국 멋쟁이들이 다 모인다는 다른 번화가에도 역시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상가를 한 채 더 갖고 있고, 그 상가에서 커다란 한식당을 경영하기도 한다. “너 요즘 돈 얼마나 버냐?”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해보는 표정을 하고나서 “응, 많이 벌 때는... 하루에 3천만 원쯤 벌어.”라고 했다. 매출이 그만큼 된다는 뜻이겠지, 설마 그게 순수익일라구...

그 친구가 “술 한 잔 사겠다.”고 했지만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나는 2차 모임에 가지 않고 빠졌다. 나중에 들었더니 4명이 청담동의 한 술집에 가서 5백만 원어치쯤 마셨단다. 그런데, 한다하는 재벌 누구누구가 단골로 드나든다는 그 술집에서 하룻밤에 5백만 원어치쯤 술을 마셔봐야 ‘졸부’ 취급밖에는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 자본가들을 대표하는 재벌 부자들에 비하면 자기들은 한낱 ‘새발의 피’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이 친구가 백화점의 명품점 앞을 지나다가 2천만 원짜리 코트가 좋아 보인다고 불쑥 들어가 걸치고 나온들 욕할 수 있을까? 하루 번 돈만큼도 안 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봄날’에서 고현정이 입고 나왔던 옷들이 한 벌에 천만 원짜리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 옷들을 일상적으로 사고파는 세상이 우리 사회 한 구석에 버젓이 있는 것이다.

그 친구에게 “너희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족집게 과외를 받는다던데, 너희 집 아이들도 하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우리 큰 애도 했고, 막내가 지금 하고 있어.”라고 했다. 내가 “정말로 과외비가 한 달에 과목당 천만 원씩 드냐?”고 물었을 때, 친구는 “그건 옛날 얘기지.”라고 했다. 한 과목에 2천만 원씩 다섯 과목 한 달 과외비만 1억 원이 든다는 것이다. 아예 “서울대 합격할 때까지 몇 억” 그렇게 과외비를 계산하는 강사들도 많다는 것이다. 이 썩을 놈의 학벌 중심 사회에서 자기 아이들이 서울대에 들어간다는데 돈 있는 인간들이 그 돈을 내지 않을 리가 없다.

한 평에 몇 천만 원이나 하는 금싸라기 땅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친구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젊은이들을 상대로 별로 비싸지 않은 음식을 파는 식당이라 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음식 값을 지불하는 손님이 대부분이라는데, 토요일 철야영업을 하면 그날 하루에만 매상이 5천만 원쯤 오른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일요일 새벽마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들을 들고 와서 돈을 가득가득 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한 채를 사고 팔았더니 “한 달에 정확하게 7억 원이 손에 떨어지더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점점 늘어나는 고소득자들과 불로소득

문제는, 이렇게 노동하지 않으면서 쉽게 돈을 버는 고소득층의 소득이 증가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그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에 3천만 원쯤 번다.”는 친구에게 1년 전에 똑같은 질문을 했을 때는 “하루에 천5백만 원쯤 번다.”고 답했었다.  이렇게, 노동하지 않는 고소득층의 소득이 1년 사이에 1백 %나 늘어나는 동안 대기업 정규직 ‘노동귀족’들의 소득은 얼마나 늘었을까? 사람들에게 욕 먹어가면서 죽어라 임금인상투쟁 해 봐야 10% 인상시키기도 어렵다.

연봉 수천만 원을 받는 노동귀족들도 갈수록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절대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있어서 느끼지 못할 뿐이다. 아파트 평수가 점점 넓어지고, 자가용 배기량이 점점 큰 차로 바뀌고 있으니 자신이 과거보다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 뿐, 실제로는 갈수록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그 지경이니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현상을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는 희망이 없다. 노동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버는 고소득층의 소득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을 붙들어 매지 못하면 우리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경제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민들과 잘 섞이지 않고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따로 놀고 있는 부자들은 사람들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진짜 부자들에게는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인상투쟁에 대해서는 ‘노동귀족’의 파업이라고 분개할 수밖에 없다. 노동하지 않는 고소득층과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 사이의 엄청난 양극화 현상을 보지 못하는 착한 노동자들이 노동자 내부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 현상에 가슴 아파하면서 자신의 임금인상투쟁은 한국 경제에 유익하지 않다고 스스로 자격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들끼리 서로 정규직이네 노동귀족이네 싸우고 있는 모습을 진짜 부자들이 내려다보면서 얼마나 가소로워하고 있을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면 길을 걷다가도 이가 갈린다. 나는 평생 동안 이 부자들과 싸우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조종사들의 파업은 이러한 부자들과의 싸움의 일부로서 의미를 갖는다.

공부 많이 한 학자들에 대한 바람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해야 하는 역할 중 하나는, 나는 피부로만 느끼는 이런 현상들을 데이터를 사용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일이라는 것이 나의 소박한 바람이다. 고임금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 차별을 설명하는 자료들은 많다. ‘근로소득 상위 몇 %, 하위 몇 %’ 등의 자료들은 언론에도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노동하지 않는 고소득층과 땀 흘려 노동하는 사람들과의 소득 차별을 설명하는 자료들을 별로 없다.

기업에 투자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돈 놓고 돈 먹는” 곳만 찾아 떠돌아다니는 자금이 420조원이나 되는데, 그 돈은 우리나라 연간 정부예산의 3배나 되고, 국방예산의 20배나 되는 규모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누가 좀 속 시원하게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국민들 중 상위 1%가 우리나라 전체 사유지의 51.5%나 소유하고 있는 봉건적 코미디 같은 현상이 어떻게 근대국가 문명사회에서도 가능한지, 누가 좀 속 시원하게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2004년도에 가처분소득이 기업은 41%나 증가했는데, 가계는 0.9%밖에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기업의 가처분소득 증가율이 대기업과 중소영세 하청업체 사이에 또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누가 좀 속 시원하게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상장기업의 순익이 전년도에 비해 두 배나 늘었고, 주가는 사상 최고액을 기록하고 있고, 경상수지 흑자는 130억불이나 되고, 외환보유액이 2천억 불이나 되고, 기업의 현금 보유액은 66조원이나 되는 등 기업경쟁력은 역사상 최고 수준인데 고용증가율은 0%대에 머물러 있고 민간 소비는 오히려 0.5% 감소했다는 이 어처구니 없는 현상의 책임이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 누가 좀 속 시원하게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양신규를 잊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때문이다. 경제학 150년의 역사를 뒤엎었다는 ‘내쉬 균형 이론’에 대해서 국내 학자들은 학위논문에서 ‘게임 이론’만 설명하고 있을 때, 양신규는 그 원리를 몇 개의 수식을 사용하여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소득 배분율에 따른 효용성이라고 명쾌하게 깨우쳐주었다. 그 관점은 아직까지도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내 시선의 중요한 도구이다.

나의 어릴 적 친구들이 이 글을 보게 되면, 아마 나에게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사회 부자들의 실태를 엿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잃어 버리게 되는 셈이다. 이제부터는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그 통로를 마련해줘야 한다.

이 엄청난 부자들과 싸우지 않는 사람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을 철폐하는 일에 나서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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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그 소리 없는 아우성

출산율 급감으로 야단법석으로 떱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공동체 사회 유지에 대한 기본적 철학 같은건 없고 오로지 생산 가능 인구, 소비시장으로서의 인구, 국가를 살찌우기 위한 인구 그거뿐입니다. 하긴 인구. 사람 입이죠. 사람 입이 줄어들면 당근 먹는게 줄고 먹는것만 주냐하면 갖가지 상품이나 서비스를 팔아 치울 대상자가 줄어드니 그토록 비상 걸려 하는것 어째 보면 당연한 것일수도 있겠습니다.

 

암튼 그건 그거고 하고 싶은 얘기는 좀 도발적이긴 합니다만..

자살, 간간히 뉴스를 통해 알려지는 내용중에 이런게 있습니다. 자살하려는 어떤 사람을 몸을 던져 막았다? 그래서 구사일생으로 살려 줬다. 그게 과연 미담일까요 아니면 살기 싫어 죽을려고 하는 사람을 억지로 살려준 철천지 원쑤일까요??

정답은 각자 판단에 맡깁니다. 허나, 하나 확실한건 자살을 선택할 자유도 인정해줘야 합니다. 왜 스스로 생을 마감할 권리는 없다고 합니까?? 누구 좋으라고요?? 그럼 이렇게 봐 봅시다. 조건을 내겁니다. 이래이래 해달라 안해주면 여기서 뛰어 내리겠다. 물론 여기서 이래이래는 재벌해체, 과도한 세금 징수 억제, 생존권 보장, 깨끗한 공기 숨 쉴 권리 보장(배기가스로 부터의 자유), 구속 남발 중지 등 얼핏 혁명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사회 전체적으로 어떻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일 수도 있는 문제 그런 문제에 대한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도 자살할 권리는 인정해서는 안되며 그런 행위는 억제되어야 마땅할까요? 자신이 원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 꾸는건 사유하는 인간으로서 당연한거지요? 그렇다면 자신이 극도로 혐오하고 싫어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이탈하고자 하는 욕망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자살은 누구나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자살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시는분들에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까지 당신은 무엇을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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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the reds! 빨갱이가 되자~

어떤놈들은 빨갱이를 아주 인간 이하의 짐승인냥 쳐죽일놈 취급하는데

빨갱이가 왜 나빠??? 도둑놈 날강도 같은 부자들 혼내주고 그들이 빼앗아간 우리들의 노동에 대한 몫을 되찾아오자는건데?? 우린 그들에 대한 채권을 가지고 있다 박정희때 부터 차곡차곡 적금 부어왔잖아? 근데 어느날 계주가 토꼈다.....그래서 이 나라는 외세가 개입하게 되고..쩝

 

조선일보라는 반국가단체에 상습적으로 불온한 의견을 게시해 왔던 유XX라는 교수라는 양반이 이런말을 했다. 

 

박정희 반란군 수괴가 군사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빼앗고 이리저리 살펴보니 밥통은 있는데 아무리 찾아 봐도 국민들이 밥해 우리가 먹을 양식이 없더란다. 그래서 박 수괴는 국민을 설득해 너희들이 밥통에 밥을 지어 우리가 먹기 위해선 너희들이 허리띠를 졸라 매고 우리들을 위해서 경제개발계획도 짜고 또 새마을운동도 해서 밥해 먹을 양식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근 20년의 국민들을 노예로 부리는 노력 끝에 이제는 우리편 배불리 먹일 양식이 어느 정도 마련되었다고 흐뭇해 할 즈음, 애석하게도 자기 몫이 적다고 심통난 부하 하나가 총을 쏴 그만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

답은 나와 있다. 여기에 빨갱이고 반공이고 개입할 여지가 어디 있나? 그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하에서 아주 정당한 자기 몫을 요구하는것뿐이다. 노동, 자본 등 인적 물적 자원을 강탈한 정부가 그 이에 앞장서지 않을시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위배했으므로 배임죄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ㅋㅋㅋ  국가권력에 의한 배임 행위는 그 죄가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 특경가법 몇개는 될듯...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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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주민의 저주의 대상이 된 한국 원조

부끄럽다 제국주의적 원조

우리도 제국을 닮아가나???
근데 이런 비판이 있을거면..사회복지라는 이름의 우리 안의 식민 문화에 대해서도 뭐라 말해야 하지 않나??? 도시라는 콘크리트 공간에 갇혀 자본과 거래를 해야만 아주 최소한 생계가 보장되는 그런 사회... 그런 사회에서 사회복지를 한들 다람쥐 쳇바퀴 굴리는거 아닌가? 자본은 영원히 자본, 빈민은 영원히 빈민?? 그런 구조를 공고히 하는 아주 질 나쁜 체제의 산물??

 

올해 1월부터 필리핀 마닐라 소재 아시아NGO센터에서 연수 중인 환경운동연합 염형철 국장이 <프레시안>에 긴급 기고를 보내왔다. 염 국장은 마닐라 인근에서 추진 중인 '사우스 레일' 사업에 우리나라가 원조를 주기로 하면서 불거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고발하면서 원조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편집자>
  
  원조를 주는 나라의 물건을 사는 데에만 그 원조를 써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면, 또 원조를 받는 대가로 비싼 다른 상업 차관을 함께 써야 한다면, 그런 것을 과연 '원조'라고 할 수 있을까? 원조가 못 사는 사람들을 보금자리에서 몰아내는 비용으로, 또 기업들에게 특권적 이익을 주기 위한 방편으로 쓰인다면 당신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그런 원조를 하는 데에 동의할 수 있는가?
  
  원조에 대한 관심이 짧은 필자지만 필리핀 마닐라의 철로 변 빈민촌에서 만난 한국의 원조(ODA)는 참으로 당혹스러웠다. 다른 나라가 현지 주민의 생존권과 관련된 심각한 문제 때문에 10여 년에 걸쳐 추진하다 포기했던 사업을 타당성 검토도 없이 자국 기업의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덜컥 받아들였다 온갖 비판을 받고 있었던 것.
  
  국민의 선의와 납세자들의 부담으로 제공된 원조가 필리핀 주민들의 환호는커녕 원망과 저주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철로변 주민들의 생활 전경. ⓒ프레시안

  "일본 10년 동안 추진하다 주민 보상 문제로 포기"
  
  '마닐라 남부 통근열차 프로젝트(South Manila Commuter Rail Project, 이하 사우스 레일)'의 1단계 사업에 한국이 처음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대우인터내셔널과 필리핀 철도청(PNR)이 한국에 '유상 원조(EDCF)'를 신청하기 위해 사업타당성 조사사업 계약을 체결한 2002년 5월.
  
  1991년 일본과 맺었던 대외개발협력기금(ODCF) 차관 계약이 철로 변 주민들의 이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10여 년 만에 취소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대우의 사업 타당성 보고서는 한국 재경부의 심사를 훌륭하게 통과했고 2003년 12월 29일 수많은 법률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서 승인됐다. 그래서 2004년 5월 7일 차관계약이 체결된다.
  
  그리고 15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일본의 차관이 실패한 데에 이유가 있었듯이 '사우스 레일' 계획은 아직도 제자리다. 필리핀 정부는 이주를 위한 단지를 마련하지 않았고 주민들에 대한 보상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생계를 계속할 수 있도록 이주지가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거나 이주지에 전기와 수도라도 들어올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정부를 불신하는 주민들의 반대운동은 갈수록 강력해 지고 쌍둥이 사업인 노스 레일 공사 현장에서는 주민들과 철거반이 무력으로 충돌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그러는 사이 한국의 대외경제협력법에 의해 '유상원조 계약이 맺어진 지 18개월 안에 구매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규정을 적용해야 할 시간은 두 달 반 앞(11월 6일)으로 다가왔다.
  
  "대우인터내셔널 사업 돕기 위한 부끄러운 원조" vs "유상원조는 '사업'"
  
 
노스 레일 변의 주택이 철거된 현장. ⓒ프레시안  

  말로는 유상원조지만 모든 서비스와 자재를 한국으로부터 구입토록 한 구속성 차관(Tied Aid) 3500만 달러(총 사업비의 54%)와 연리 7%의 수출 신용 1500만 달러(총 사업비의 23.9%)를 뒤섞은 불순한 차관 계약은 이렇게 표류하게 됐다. 고가격 저품질의 불리한 구매 계약을 강요하고 무역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는 구속성 원조와 혼합 신용을 금지한 '공적 수출 신용 가이드라인에 관한 협약(Arrangement on Guidelines for Officially Supported Export Credit)'을 위반하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이익은 좌절될 위기에 처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의 사업 타당성 조사에 근거하고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목적으로 했을 뿐(관행적으로 같은 업체가 공사를 수주한다), 사업의 여건을 제대로 점검하지 못하고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계획도 세우지 않았던 한국 정부는 이제 난감한 처지가 됐다. 더구나 원조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탐욕스러운 조건 때문에 내놓고 하소연하기도 어렵다.
  
  결국 사업 환경이 마련되는, 언젠지 모를 그 시점까지 차관 계약을 연장하거나, 4만 가구 도시 빈민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공사의 강행을 지원하는 구매 계약을 받아들이거나, 이도 저도 아니라면 계약 파기를 위해 필리핀 정부에 구구하게 사정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를 대행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수출입은행은 외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거나 공사 관련한 정보가 새면 곤란하다며 모든 내용들을 공개하지 않았다. 무슨 정보기관에서나 할 법한 대꾸를 하면서 사업 심사의 기준, 절차, 관련 자료,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비밀로 해 왔다.
  
  그러다가 이제 필리핀 정부를 통해 얻은 자료들로 꼬치꼬치 사실을 캐물으니 "필리핀 정부가 무능해서"라느니 "필리핀 정부에 국제기구들이 권하는 주민 이주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요청하겠다"느니, "마닐라로 출장을 가서 사업을 점검하겠다"느니, "차관 계약을 맺었으나 구매 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니 철회도 할 수 있다"느니 하며 발뺌하기에 바쁘다. 그러다가도 "시민단체가 너무 이상적이어서는 안 되며 유상 원조(EDCF)는 '원조'라기보다 '사업(Business)'"이라는 충고도 빼놓지 않는다.
  
  "무상원조의 39.8%는 미국이 벌여 놓은 전쟁 수습에 쓰여"
  
  사우스 레일 차관 건은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사례다. 원조의 이념은 기업에 특권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변질됐고, 기업의 자료는 진지한 심사도 없이 국가의 결정으로 이어졌으며, 사업 계획에서부터 평가까지 모든 것을 주관하는 재경부에는 어떠한 감시도 작동하지 않았다. 국민의 선의와 납세자의 부담으로 제공되는 원조가 필리핀 민중들에게 원망을 받고 필리핀 정부도 고마워하지 않으며 다른 원조 제공국들에게 존재를 밝히기도 창피하고 한국 국민들도 자긍심을 가질 수 없는 기형적 사업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 누군가 마닐라 사우스 레일에 대해 판단해야 하는 시간이 됐다. 그리고 지금껏 한국의 원조를 소수 관료들에게 맡겨 놨던 국민들도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 됐다. GNI(국민순소득) 대비 대외원조 비율이 0.05%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4분의 1 수준이고 그 나마 유상원조는 모두 구속성 차관인데다 개도국에 대한 무상원조에서 39.8%(7690만 달러)는 미국이 벌여 놓은 전쟁을 지원하는 데(2004년 기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복구비 7690만 달러)에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두고서는 오늘의 사우스 레일은 이곳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구 사회로부터의 입은 수혜를 되돌려줄 수 있는 넉넉한 이웃으로 성숙하기 위해 국민들은 세금 내는 일 말고도 해야 할 일들이 있다.
  
공적개발원조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란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개발을 위한 공적거래와 '양허적' 성격의 금융"을 말한다. 즉 중앙 및 지방 정부를 포함한 공공기관들이 개도국의 경제 개발과 복지 증진을 목적으로 개도국 및 국제기구에 제공하는 무상 증여(grants) 및 유리한 조건의 차관(concessional loans)을 말한다.
  
  2003년을 기준으로 세계의 ODA의 총액은 약 700억 달러이며 한국은 2004년 기준 약 4억 달러(무상원조 1.93억 달러, 유상원조(차관) 1.2억 달러, 다국간 원조 0.92억 달러)다. 재정경제부는 경제개발협력기금(EDCF: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으로 개도국에 양허성 차관(concessional loan)을 제공하고 있고, 외교부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두어 무상원조를 담당하고 있다.

  

마닐라 남부 통근 열차 프로젝트 (South Manila Commuter Rail Project) 1단계 사업
  
  이 사업은 필리핀 수도 마닐라 지역에 통근철도 서비스를 도입하기 위해 총 6468만 달러를 투입해 36km 구간의 철도를 보수하고 철도 차량을 구입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철로가 방치되고 4만여 가구의 주민들이 20년 가까이 그 인근에 거주하고 있어 주민 이주라는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염형철/환경연합 국장ㆍ아시아NGO센터 연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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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양치질할땐 왼손으로 하지 않나?

가위질, 양치질, 손톱 깍기,.. 뭐 이런거??  이상하네...내가 이상한건가ㅠ.ㅠ

한번쯤 거꾸로 해보는것도 치매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어느 공익광고를 보노라면....  그럼 난 오른손으로 양치질해봐야겠다..ㅎㅎ 그나저나 오른손 왼손 그러고 보니.. 필기, 식사할때만 빼곤 주로 왼손을 쓰는거같다. 그러고 보니 앞서 말한거..이상할거 하나도 없는거잖아? ㅋㅋㅋㅋ 근데 난 왜 이렇게 된거지?? 역시 가정교육 학교교육이 중요하단 말야... 왼손으로 밥 먹으면 복 나간다는둥 그러는거 아니라는둥 하며 그것을 든 왼손을 때리기 바쁜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들...흑흑흑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무지 서러웠다 왜 안되나요?에 대해 명쾌한 대답 조차 못해주면서... 필기, 역시 마찮가지 부모님 뿐만아니라 하늘 같은 선생님께서 거의 반강제적으로 강압적으로 오른손으로 쓰는걸 강요하다시피하는데 거기다 대고 어린넘이 반항할 재주를 가진 아이? 얼마나 될까?? 이런 가부장적 유교문화와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학교(물론 군대문화까지 더 하면? 헉..)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은 시민들, 이래서 그들중엔 왼손잡이가 별로 없는걸까? 물론 요즘엔 많이 나아졌다고들 하지만.......

암튼 슬프다. 자유.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해도 그에겐 분명 천부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주어졌다. 오른손을 쓰든 왼손을 쓰든. 그렇다고 그게 가정에서든 사회적으로든 무슨 문제를 일으킬 성질의 것이 아닌 이상 분명하다. 확실하다. 자유. 그 자유 조차 허락하지 않는 폭력이 존재하는 사회라면 결코 자유와 민주주의가 아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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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등락에 일희일비?

중요한건 석유 소비량, 생산량 그게 아니라 석유는 지구를 파괴하는 악성 유독 물질이라는 사실 그 기본적인 것 조차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오늘도 비 오는 날 차 끌고 다니며 배기가스 풍풍 뱉어댄다. 그런 사람들만 보면 김동민일병이 생각난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용기가 없었다. 좌고우면하며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
그래..
더는 못 참아..
기회는 찬스다. 어차피 그놈들은 죽어도 싼 놈들 아니냐...
내가 얼마나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는데 아닐리가 없어...
그래..
죽이자.. 그놈들만 죽이면 이 세상을 보다 평화로워질거야...'


이기적은 석유, 가스 사용자들이여..
당신들의 편익을 위해 마구 써댈때 신음하는 자들은 당신에 대해 이를 갈고 있다는 사실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관련기사>

  “전 세계가 석유를 폭음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지난주 말 이틀 연속 배럴당 60달러를 장중 돌파하며 잇따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표2> 많은 전문가들은 ‘수급 불일치’라는 구조적인 이유 탓에 상당 기간 고유가 시대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가의 가파른 상승세는 2001년 경기 불황 이후 회복·확장 국면에 있는 세계경제의 성장, 특히 원유 의존도가 높은 경제권의 성장세에 최대 변수가 되고 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8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42센트(0.7%) 오른 59.84달러에 마감됐다. 앞선 시간외거래에서는 23일에 이어 이틀 연속 장중 배럴당 60달러를 웃돌았다. 우리나라 원유수입의 73%를 차지하는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도 24일 바이유 53.26달러로 치솟아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전세계 주요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고, 안전 자산인 미 재무부 채권값은 다시 뛰었다. 

과거 오일쇼크는 공급감소 탓…2005년은 공급증가보다 빠른 소비증가 탓 

최근의 고유가 행진은 원유공급 감소에서 기인했던 70년대와 80년대 ‘오일 쇼크’ 때와 양상이 다소 다르다. 공급 지표인 원유 재고량은 지난달 6년 만에 최고수준에 이르렀다. 문제는 ‘공급에 비해 더 크게 늘어나는 원유 수요’다. 미국 국제경제연구소의 수석위원 필립 벌리저 주니어는 “올해 정제유 수요는 지난해보다 6.9% 증가했고, 4분기 수요 급증에 대비한 사재기까지 나타나고 있다”며 “내년 1분기 말에는 배럴당 90달러에 이를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유가를 끌어올린 수요의 진원지는 2001년 이후 세계경제의 성장을 이끌어온 중국과 미국이다. 지난해 전세계 실질총생산은 전년보다 4.0% 증가했고, 하루 평균 원유 소비량은 250만배럴(3.4%) 가량 늘었다. 이런 원유 수요 증가세는 1973년 이래 가장 빠른 속도이며, 지난 10년 평균 증가율의 2배를 넘는다. 지난해 원유 수요 증가분의 20%는 미국, 35%는 중국의 것이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체 소비량은 10년 전 하루 평균 1700만배럴에서 지난해에는 2340만배럴로 급증해, 미국(2050만배럴)을 앞질렀다. <표1> 최근 중국 3위의 석유회사인 중국해양석유가 미 석유회사 유노칼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인수하려고 나선 것도 자국의 급증하는 원유 수요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목적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분석했다. 

물가상승률 감안하면 오일쇼크 때보다 아직 싸다? 

사상 최고치 유가에도 세계경제가 쇼크로 내몰리지 않고 되레 원유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지난 30년 동안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지금의 실질 유가는 지난 80년 2차 오일쇼크 때보다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올 5월 소비자물가를 기준으로 보면, 1980년 4월의 실질 유가는 배럴당 94달러에 이른다. 지금의 유가 수준은 이보다 30달러 이상 ‘싼’ 셈이다.<표3> 


에너지 효율이 높아져 과거와 달리 유가 충격을 상당 부분 ‘흡수’하는 측면도 있다. 미 에너지정보국(EIA)의 보고서를 보면, 지난 2000년 미 국내총생산(GDP) 1달러당 원유 사용량은 1975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에너지 생산성이 2배 가량 높아졌다는 얘기다. 이런 점을 들어 몇몇 연구기관들은 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수준으로 높아지더라도 급격한 침체나 불황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주의회는 지난 2월 2005~2006 경제보고서를 통해 원유가격이 배럴당 40달러에서 70달러로 증가하더라도 앞으로 1~2년 간 불황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2005년도 미국 경제성장률은 3.5%에서 1.9%로, 2006년엔 3.2%에서 1.0%로 각각 둔화될 뿐이라고 내다봤다. 

일부선 “원유생산능력 빠르게 늘 것” …문제는 시간 

일각에서는 공급, 즉 원유 생산능력이 빠르게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캠브리지에너지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앞으로 5년간 전세계적으로 원유생산능력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2~3년 안에 잉여공급량이 하루 평균 600만 내지 750만 배럴에 이르러, 유가가 배럴당 40달러대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베이커휴즈사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가동중인 원유 굴착기 수는 사상 최고치인 1324개로 지난해보다 13.7% 증가했고, 유전개발 및 원유 생산장비 신규 주문량도 최근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그러나 획기전인 공급 확대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수요가 줄지 않는 한 당분간 고유가를 피할 방법은 없다는 게 중론이다. 필립 벌리저 주니어는 “세계경제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지 않는 한 유가가 하락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요가 둔화될 조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전세계총생산 증가율은 2005년과 2006년에 3.0%로 둔화될 전망이다. 특히, 블루칩의 6월 경제전망보고서는 유로경제권의 성장이 1.4%로 크게 둔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수요공급의 시장법칙에 따라 유가가 하락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데 이견을 다는 이는 거의 없다. 그 때까지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따른 리스크 프리미엄과, 그에 대비하는 사재기 등의 선제행위에 의해 유가가 요동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로렌스 골드스타인 피라에너지그룹 사장은 “현재 하루 평균 잉여 원유공급량은 150만배럴에 불과하다”며 “어디선가 조금이라도 생산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시장이 극도로 불안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강인봉 통신원 inbkang@hanmail.net  한겨레 2005.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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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멎을거 같다.

배기가스 생각만 해도 숨이 탁 막혀 왓는데,

오늘 따라 유난히 더 그러네...

어제 너무 자서 그런지, 새벽 너무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졸립기도 하고 머리도 지끈지끈 무지 크게 아파오는데 거기에 기름을 부은게 그놈의 흉기차들이 내뿜는 갖가지 오염물질들...우웩...특히 오토바이의 매케한 냄새는 고역이다 어디선가 본적이 잇는거 같다. 오토바이가 연료 소모량은 적어도 탄소 배출량은 일반 승용차보다 많다고....물론 승용차가 적게 배출한다는건 아니지만 어쨋거나 오토바이..덩치 작은것에 비하면

죽음이다 죽음 진짜... 그거만 보면 자전거?  음..역시 효자야.... 그나저나 나 혼자 이렇게 지구를 생각하는척한다고 해서 뭐 하나... 수 많은 사람들이 너나할거없이 경쟁적으로 내뿜으며 내 코를 통해 폐로 집어 넣기 바쁜데..이러다 폐암 걸리는건 아닌가 싶다. 만약 만약에 담배연기나 자동차 배기가스 등의 오염물질에 의해 폐암에 걸린다면..누가 책임져야 하나? 물론 제약사 등 의약자본의 실험대상이 되긴 싫어 아무리 큰 병에 걸린다하더라도 병원 신세질 일은 없을테니...결국 이유야 어찌되었든 간에 혼자 조용히 이 땅을 하직하면 끝나는건가??? 모든건 나에게 책임이 떠넘겨진채?

허나 하나 확실한건 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죽는다 치자...

그렇게 만든 이 사회, 결코 무사하지 못할거다. 물론 복수를 얘기하는건 아니다. 다만... ; 나'는 갔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 땅에서 계속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어 더더욱 큰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생명을 위해서 그들(자동차, 담배)이 나쁜짓(오염물질 내뿜는짓)을 하지 못하도록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줄테다. 나의 힘으론 좀 버거울까? 그래도 부딪혀 보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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