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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과 싸워야 한다 펌

부자 학교의 가난한 학생

부자 동네 옆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학교를 다닌 탓에,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는 친구들 중에 진짜 부자가 몇 명 있다. 처음에는 우리 집이 가난한 순서로 반에서 두 번째 내지 세 번째쯤 됐는데, 더 가난한 집 아이들이 하나씩 둘씩 전학을 가 버리는 바람에 나중에는 결국 우리 집이 반에서 가장 가난한 집이 됐다.

반 아이들 중 몇 명은 점심시간이 되면 집에서 기사나 ‘식모’가 싸 들고 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점심을 펼쳐놓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먹기도 했는데, 나는 어머니가 싸 주신 조개젓 반찬이 냄새가 난다고 아이들이 얼굴을 돌리며 인상을 쓰는 바람에, 도시락을 창문틀에 내 놓고 고개를 창문 밖으로 빼 낸 채 혼자 점심을 먹기도 했다. 조개젓 반찬이 다 떨어질 때까지 며칠 동안이나 점심을 그렇게 먹었다. 내 등 뒤에서 “맛있는 반찬을 싸와서 혼자 먹는다.”고 수군거리는 못난 인간들은 그 시대에도 항상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도 내가 그 학교를 끝까지 계속 다닐 수 있었고, 어머니가 학부형회에 “고개 빳빳하게 쳐들고” 참석해 대의원으로 뽑힐 수 있었던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결국 내 자랑이 되니 하지 않겠다. 마음대로 짐작하기를...

나이 쉰이 넘은 요즘, 그 친구들은 몇 년째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면서 나에게도 연락은 하지만, 나는 그 모임에 딱 한번밖에 가보지 않았다. 어릴 적 담임선생님이 교장선생님으로 취임하는 날, 겸사겸사 참석했을 뿐이다. 그 친구들이 한 달에 한번씩 모이는 최고급 식당 역시 어릴 적 친구가 경영하는 비싸기로 소문난 일식집이다.

요즘은, 그 친구들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과 관련된 일이 터지거나, 우리 사무실 변호사들의 급한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이 가끔 연락을 해오면 만날 기회가 있을 뿐이다. 그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나 한 다리 건너 다른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입이 쩍쩍 벌어진다.

부자 친구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커피를 판다고 소문이 자자한 커피전문점을 경영하는 사장님은 초등학교 때 내 짝이었던 친구다. 외국에서 20년 넘게 살다가 왔다기에 만났더니 “얘, 우리나라 커피 문화가 외국과 비교해서 50년쯤 뒤진 거 아니?”라고 묻는다. 나는 “그게 500년쯤 뒤진 들 무슨 상관이냐?”고 대꾸했다.

한번 구경 가보니, 한 잔에 몇 만원씩이나 하는 커피를 마시러 사람들이 바글바글 와 있었다. 낯익은 연예인들의 얼굴도 보였다. 굳이 커피 창고를 구경시켜 준다기에 따라 갔더니, 작은 깡통을 가리키며 “이거 한 통에 200만 원쯤 하는 거야. 콜롬비아에서도 일 년에 몇 킬로그램밖에 생산되지 않지. 우리가 볼 때 ‘스타벅스’ 커피는 원가 몇 백 원밖에 안 되는 구정물에 불과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대한민국 부잣집 아이들의 놀이터라는 번화가에서 커다란 미용실을 경영하는 친구도 있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그 상가가 아예 그 친구 소유다. 대한민국 멋쟁이들이 다 모인다는 다른 번화가에도 역시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상가를 한 채 더 갖고 있고, 그 상가에서 커다란 한식당을 경영하기도 한다. “너 요즘 돈 얼마나 버냐?”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해보는 표정을 하고나서 “응, 많이 벌 때는... 하루에 3천만 원쯤 벌어.”라고 했다. 매출이 그만큼 된다는 뜻이겠지, 설마 그게 순수익일라구...

그 친구가 “술 한 잔 사겠다.”고 했지만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나는 2차 모임에 가지 않고 빠졌다. 나중에 들었더니 4명이 청담동의 한 술집에 가서 5백만 원어치쯤 마셨단다. 그런데, 한다하는 재벌 누구누구가 단골로 드나든다는 그 술집에서 하룻밤에 5백만 원어치쯤 술을 마셔봐야 ‘졸부’ 취급밖에는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 자본가들을 대표하는 재벌 부자들에 비하면 자기들은 한낱 ‘새발의 피’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이 친구가 백화점의 명품점 앞을 지나다가 2천만 원짜리 코트가 좋아 보인다고 불쑥 들어가 걸치고 나온들 욕할 수 있을까? 하루 번 돈만큼도 안 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봄날’에서 고현정이 입고 나왔던 옷들이 한 벌에 천만 원짜리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 옷들을 일상적으로 사고파는 세상이 우리 사회 한 구석에 버젓이 있는 것이다.

그 친구에게 “너희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족집게 과외를 받는다던데, 너희 집 아이들도 하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우리 큰 애도 했고, 막내가 지금 하고 있어.”라고 했다. 내가 “정말로 과외비가 한 달에 과목당 천만 원씩 드냐?”고 물었을 때, 친구는 “그건 옛날 얘기지.”라고 했다. 한 과목에 2천만 원씩 다섯 과목 한 달 과외비만 1억 원이 든다는 것이다. 아예 “서울대 합격할 때까지 몇 억” 그렇게 과외비를 계산하는 강사들도 많다는 것이다. 이 썩을 놈의 학벌 중심 사회에서 자기 아이들이 서울대에 들어간다는데 돈 있는 인간들이 그 돈을 내지 않을 리가 없다.

한 평에 몇 천만 원이나 하는 금싸라기 땅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친구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젊은이들을 상대로 별로 비싸지 않은 음식을 파는 식당이라 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음식 값을 지불하는 손님이 대부분이라는데, 토요일 철야영업을 하면 그날 하루에만 매상이 5천만 원쯤 오른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일요일 새벽마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들을 들고 와서 돈을 가득가득 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한 채를 사고 팔았더니 “한 달에 정확하게 7억 원이 손에 떨어지더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점점 늘어나는 고소득자들과 불로소득

문제는, 이렇게 노동하지 않으면서 쉽게 돈을 버는 고소득층의 소득이 증가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그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에 3천만 원쯤 번다.”는 친구에게 1년 전에 똑같은 질문을 했을 때는 “하루에 천5백만 원쯤 번다.”고 답했었다.  이렇게, 노동하지 않는 고소득층의 소득이 1년 사이에 1백 %나 늘어나는 동안 대기업 정규직 ‘노동귀족’들의 소득은 얼마나 늘었을까? 사람들에게 욕 먹어가면서 죽어라 임금인상투쟁 해 봐야 10% 인상시키기도 어렵다.

연봉 수천만 원을 받는 노동귀족들도 갈수록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절대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있어서 느끼지 못할 뿐이다. 아파트 평수가 점점 넓어지고, 자가용 배기량이 점점 큰 차로 바뀌고 있으니 자신이 과거보다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 뿐, 실제로는 갈수록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그 지경이니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현상을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는 희망이 없다. 노동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버는 고소득층의 소득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을 붙들어 매지 못하면 우리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경제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민들과 잘 섞이지 않고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따로 놀고 있는 부자들은 사람들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진짜 부자들에게는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인상투쟁에 대해서는 ‘노동귀족’의 파업이라고 분개할 수밖에 없다. 노동하지 않는 고소득층과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 사이의 엄청난 양극화 현상을 보지 못하는 착한 노동자들이 노동자 내부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 현상에 가슴 아파하면서 자신의 임금인상투쟁은 한국 경제에 유익하지 않다고 스스로 자격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들끼리 서로 정규직이네 노동귀족이네 싸우고 있는 모습을 진짜 부자들이 내려다보면서 얼마나 가소로워하고 있을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면 길을 걷다가도 이가 갈린다. 나는 평생 동안 이 부자들과 싸우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조종사들의 파업은 이러한 부자들과의 싸움의 일부로서 의미를 갖는다.

공부 많이 한 학자들에 대한 바람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해야 하는 역할 중 하나는, 나는 피부로만 느끼는 이런 현상들을 데이터를 사용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일이라는 것이 나의 소박한 바람이다. 고임금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 차별을 설명하는 자료들은 많다. ‘근로소득 상위 몇 %, 하위 몇 %’ 등의 자료들은 언론에도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노동하지 않는 고소득층과 땀 흘려 노동하는 사람들과의 소득 차별을 설명하는 자료들을 별로 없다.

기업에 투자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돈 놓고 돈 먹는” 곳만 찾아 떠돌아다니는 자금이 420조원이나 되는데, 그 돈은 우리나라 연간 정부예산의 3배나 되고, 국방예산의 20배나 되는 규모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누가 좀 속 시원하게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국민들 중 상위 1%가 우리나라 전체 사유지의 51.5%나 소유하고 있는 봉건적 코미디 같은 현상이 어떻게 근대국가 문명사회에서도 가능한지, 누가 좀 속 시원하게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2004년도에 가처분소득이 기업은 41%나 증가했는데, 가계는 0.9%밖에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기업의 가처분소득 증가율이 대기업과 중소영세 하청업체 사이에 또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누가 좀 속 시원하게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상장기업의 순익이 전년도에 비해 두 배나 늘었고, 주가는 사상 최고액을 기록하고 있고, 경상수지 흑자는 130억불이나 되고, 외환보유액이 2천억 불이나 되고, 기업의 현금 보유액은 66조원이나 되는 등 기업경쟁력은 역사상 최고 수준인데 고용증가율은 0%대에 머물러 있고 민간 소비는 오히려 0.5% 감소했다는 이 어처구니 없는 현상의 책임이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 누가 좀 속 시원하게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양신규를 잊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때문이다. 경제학 150년의 역사를 뒤엎었다는 ‘내쉬 균형 이론’에 대해서 국내 학자들은 학위논문에서 ‘게임 이론’만 설명하고 있을 때, 양신규는 그 원리를 몇 개의 수식을 사용하여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소득 배분율에 따른 효용성이라고 명쾌하게 깨우쳐주었다. 그 관점은 아직까지도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내 시선의 중요한 도구이다.

나의 어릴 적 친구들이 이 글을 보게 되면, 아마 나에게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사회 부자들의 실태를 엿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잃어 버리게 되는 셈이다. 이제부터는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그 통로를 마련해줘야 한다.

이 엄청난 부자들과 싸우지 않는 사람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을 철폐하는 일에 나서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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