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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10/18
    주간 싸이클의 구렁텅이에 빠지다
    토리
  2. 2005/10/06
    부안생활 3개월째...(3)
    토리
  3. 2005/07/29
    부안 생활 2주일째(3)
    토리
  4. 2005/06/15
    '개똥녀'가 될뻔한 오늘 아침(7)
    토리
  5. 2005/06/10
    누구 함께할 사람!! =ㅁ=)/(5)
    토리
  6. 2005/05/25
    부끄럽게 배운 하루(잡담)
    토리
  7. 2005/05/20
    개그맨 노예계약 파문 종결... 씁쓸함(2)
    토리
  8. 2005/05/17
    바위섬 (춘자에게)(4)
    토리
  9. 2005/05/10
    ‘비정상가족’에게 배우는 미덕(5)
    토리
  10. 2005/05/08
    교사들이 대신 촛불시위 나섰나?(3)
    토리

주간 싸이클의 구렁텅이에 빠지다

멋지게 부안 체류기를 담아보려고 했는데,

영 마음과 몸의 여유가 닿질 않는군요 -_ㅠ)~

 

오늘은 화요일 밤, 마감 전날...

인터넷신문의 일일 취재편집 시스템에서

주간 싸이클을 적응하는 것은 오히려 쉬웠어요.

그냥 몰아놨다 한꺼번에 -_- 화요일 날 한번 새면 되니께...

 

그런데 몇주가 흐르고 나니깐...

그렇게 해서는 암껏도 못해버리게 생겨버리게 되어버렸다 이겁니다.

더 크게 위기의식을 느낀 건 부안독립신문 인터넷판을 만들게 된 후였지요.

말이 인터넷판이지 일주일 내동 암껏도 안올리고 있으려니

마음이 불안해지고... =_=;; 뭔가 해야 하는데 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마감날짜인 수요일만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고...

이번주엔 뭔가 달라져 보려고, 주말에도 일하고 인터넷에 올릴 하루하루 소식도

열심히 해보았는데... 그렇게 했더니 이제는

마감이 코앞인데 지면 기사꺼리를 하나도 안해놓고

오늘 밤 사이에 5꼭지를 기본으로 써줘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감 스트레스가 더 커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_= 도대체 누가 주간신문이라는 것을 만든 것인지...

전, 주간이 정말정말로 싫어졌습니다.

시의성 계산하느라 골머리 썩고,

조금만 긴장을 늦추고 있으면 맥아리 없는 글들만 나오고...

독자들의 반응을 파악하기도 더 힘들고요..

또 부안이 부안투쟁 거치면서 얼마나 준 시민기자들이 많아졌습니까!

거칠지만 생생한 속보들이, 정돈된 지면 기사보다 훨씬 큰 힘(이건 주관적 판단)을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에 또 안절부절....

 

그래서!!

-_- 항상 화요일은 힘들답니다.

마감 꺼리가 밀려 있는 원인도 있지만,

항상 화요일에는 위와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 끝까지 차오르니까요...쩝...

 

흐흐... 그래도 심란할 때는...

우리 미소년 지0씨 사진이나 귀염탱이 조카들 사진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니, 참 좋네요.

 


 

=_=)/ 모두 모두 건강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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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생활 3개월째...

...=_=;;

 

조만간 토리툰 페이지 살려야지요...

 

부안독립신문 인터넷판 띄우고, 주간신문 일정에 조금 적응한 뒤니...

 

어떻게든 사람들을 다시 찾아 나서야겠습니다~

 

=ㅂ=)/ 기대해주셔요~


      오늘 그린 삽화~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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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생활 2주일째

7월 15일자로 부안독립신문에서 일하게 됐고

이제 2주일째를 맞는 금요일...

블로그에 멋진 부안 금의환향(!)기를 써봐야겠다고

마음만 먹었지만 도통 시간을 못내고

2주일을 흘려보내고 말았네요.

자세한 얘기는 주말 쯤에!!

암튼 저는 잘 살고 있답니다!!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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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녀'가 될뻔한 오늘 아침

요즘은 글을 쓰다보면 -_- 계속 투정에 불퉁거림이다. 쩝...

 

오늘 아침 있었던 일이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집앞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타자마자 녹취관련해서 뭐가 안된다는 후배의 문자가 왔길래, 답장 문자를 보내느라 정신없었고 그런 와중에 앞 좌석이 비었길래 냉큼 앉았다.

 

그리고 또 계속 문자를 날리고, 한번은 전화통화까지 하고 있는데, 다음 정류장쯤 가다보니 나이드신 할아버지 한분이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내가 경로석 즈음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통화를 하면서 내 앞으로 오면 일어나야지...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내 옆쪽에 왠 아저씨 한명이 나를 째려보며 서있었다.

 

순간 느꼈다. 이 아저씨에게 나는 나이드신 분 놔두고 자리에 앉아있는 싹수없는 젊은이로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뭔가 아저씨의 대응이 있겠군 생각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 아저씨, 버스에 올라탄 나이든 할아버지를 모셔오더니 내 발을 '툭~' 차면서 앙칼진 목소리로 '일어나!' 라고 말한다.

 

순간 기분이 확~ 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통화를 마치고 계속 씨부렁거리고 있는 아저씨한테 한마디 했다. "아저씨, 말과 행동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예요?"

 

그랬더니, 이 아저씨 '옳거니 잘걸렸다' 생각했는지 잔소리를 더욱 쏟아낸다.

"나이드신 분이 탔으면 자리를 양보해야지, 여기 경로석이 아닌가? 나같은 사람도 서서 가고 있다가 더 나이드신 분 있어서 자리내드릴려고 하는데, 젊은 사람이 그러면 못써. 너같은 사람은 아마 한번도 자리양보도 안하고 그러고 살고 있을 것이다. 인생 그렇게 살면 안된다.... (그외에도 수없는 말들...)"

 

화나니 개길수밖에... 그 사람많은 버스 안에서 나도 시끄럽게 말했다.

"그렇다고 너라니요. 나이든 분 공경하라고 할려면 젊은 사람도 공경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 아저씨 화가 더 났나 보다. 그래도 다행히 상스러운 욕까지는 섞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위아래로 싹~ 훑더니... (하필 오늘 옷을 좀 요란하게 입었다) "학생인지 아줌만지 모르겠는데,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라고 계속 잔소리를...

 

옆에 있던 아줌마들도 "그냥 학생이 잘못했다고 하고 끝내~"라고 말한다. 뭐... 똑같이 떠들고 있으니 특별히 누구 편들려고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방금 자리를 양보한 할아버지가 계속 불편해하는 기색이다. 그제서야 버스 안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 성질에 여기에서 그치랴. 한마디 또 했다.

 

"아저씨 같이 정의감이 엄청나게 투철한 분이 있어서 이 사회가 정말 좋아지겠네요. 저같은 사람 완전히 나쁜 사람 만들어놓고 잔소리 하시니 뿌듯하신 가부죠?"

 

아저씨, 계속 잔소리 이어짐. "비아냥거리는 것 보소. 니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더냐?"

 

나는 거기에서 대화를 끊고, 이어폰을 끼고 다른 쪽 창을 보며 아저씨를 무시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까지 약 10여분 동안 아저씨는 내가 듣든지 말든지 계속 뭐라고 씨부렁 거린다. 나는 계속 무시했다. 그리고 내가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예끼~ 이 못된 것!" 도 내뱉어 주신다.

 

기가 막혀 하면서 '으이그 버스쪽을 향해 *큐를 한번 날려줘?'라고 생각하다가, 그제서야 '개똥녀'가 떠올랐다. 크허~ 개똥녀가 달리 만들어진 게 아니었구나. 모든 것이 다 옳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아랫사람 가르치려 들려고 하는 것은 사실 얼마나 피곤하고 짜증나는 일인가. 그런 것이 나보다 좀 더 과격하게 표현된 사례가 개똥녀 아닌가! (물론 개똥 안치웠다든지 세부적인 사항은 좀 더 지탄받을만도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정말 짜증나는 일은 불친절하고 제멋대로의 잣대를 가진 버스운전사 아저씨를 만나는 것과 함께 이 경로우대석을 둘러싼 세대간의 끊임없는 갈등이다.

 

이것을 심지어는 어떤 어른들은 경로석이니까 아예 자리가 비어있어도 앉아있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젊은이는 그 어떤 경우에도, 심지어 그 젊은이가 몸이 아파 앉아있더라도 앉은 순간부터 싸가지 없는 젊은 것이 돼버린다.

 

나는 경로우대석은 말그대로 노약자우대석이지 경로자를 위해 무조건적으로 비워진 자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건 도덕적 관습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고 개개인의 양심에 맡겨야 하는 영역일 뿐, 대놓고 비난하고 훈계할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

 

또 하나 황당한 일은, 예전에 버스에서 겪은 일인데 아주 건장하게 생긴 40대 남자가 10대 청소년이 자기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았다고 욕하고 화내는 일이 있었다. 버스안에서는 손아래사람이 손윗사람에게 무조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이상한 규칙을 제멋대로 갖다 대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버스안에서 나타나는 나이주의의 왜곡비약된 대표적 사례다.

 

이래서 '어른'이라는 것은 정말 싫다. 나도 이제 늙었지만... 아침의 일을 밤까지 곰곰히 되씹으며...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 일은 청소년들의 경우 민감하게 반응했을 '니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더냐'는 이 주옥같은 멘트에 반박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

 

만약 다시 한번 그런 경우를 당한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예, 우리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어요. 손아래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는 윗사람은 공경할 필요가 없다고!"

 



이건 주제가 좀 다른데... 지난 일요일에 겪었던 일이다.

 

언니와 조카 나현이와 전주 모백화점에 갔는데

조카가 유모차에 타고 있어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열리더니

앞의 한 부부가 아기가 탄 유모차를 먼저 밀어넣고 있는데

문이 닫히려고 하는 것이다.

깜짝 놀란 부부는 바깥쪽 오픈 버튼을 계속 누르고 다시 시도했는데

역시 다시 문이 닫히려고 했다.

센서가 고장이 났나 하면서

우리도 아슬아슬하게 들어갔는데

 

알고봤더니 안에 있던 젊은 남학생 하나가

이 부부와 유모차를 생각해 안쪽에서 오픈 버튼을 누른다는 것이

닫힘버튼을 계속 눌러대고 있었던 것이다.

 

화가난 이 애기 아빠, 얼굴이 벌개져서 학생에게 욕해댄다.

"야이 씨*놈아 *만한 놈아, 개**야, 니가 우리 애기 다치면 어떻게 할라고"

안에 있던 10여명의 사람들이 다 민망하게 계속 심한 욕설을 퍼부어댄다.

학생이 실수로 그랬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내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면서 툭 내뱉었다.

"아따~ 아저씨, 욕 너무 심하게 하시네..."

그랬더니 아저씨 욕하던 것을 뚝 멈춘다. 계속 얼굴은 울룩불룩 거리더니

자기가 내려야 할 층에서 후다닥 내렸다.

 

아저씨가 내리고 나서야 다른 사람들이 한마디씩 해댄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너무 심하네..."

"저 갓난애기가 더 민망하겠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흐흐... 내가 한마디 내뱉길 잘했구나' 생각했다.

 

....

여기까지 쓰다보니...

오늘 아침 위 사건의 아저씨랑 신나게 싸운 것도

이 여파인가보다 하고 생각이 정리가 된다.

'아니다' 싶으면 무조건 내뱉고 보자...

물론, 오늘 오전의 내 행동이 잘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저씨 문제를 떠나 버스 안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실례를 범한 셈이니까...

그러나, 문제가 있다 싶으면 계속 내뱉어야지... 싸움이 되더라도...

=_= 그게 내가 속안터지고 살길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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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함께할 사람!! =ㅁ=)/

소위 '공적인 인간'이 되길 자처한 순간부터

곧바로 정말 '공적인 인간'이 돼 버렸다.

(잠잘때는 기사쓰는 꿈과 라디오로 온갖 뉴스를 듣는 꿈을 꾼다!)

 

그런 와중에 내 머리와 가슴에 스믈스믈 기어들어오는

간절한 생각이 있는데...

내가 태어나 자랐고, 지금도 천추의 한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새만금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거다.

이것저것 떠오르지만, 신통방통한 아이디어는 별로 찾아볼 수 없고...

 

단지 내 수준에서 해볼 수 있는 것....

첫번째, 새만금 15년, 새만금 운동 6년을 정리할 수 있는 영상프로젝트.

물론 생각만 하고 있지 하나도 구체화시키지는 않고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두번째는...

요몇주 사이에 새만금을 한번 정리해보려고 웹사이트들을 뒤지는데

운동이 사그러드니, 기록도 사라지는가!

2001년 이후로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들이 거의 없더라.(농발게 제외)

어딘가 아직도 열정을 내뿜고 있는 이들의 최근 몇년간의 자료들이

구석구석에 숨어 있을텐데...

그리하여... 새만금운동을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웹페이지를 만들어야 겠다는

욕심을 꾹~ 가졌다.

 

두번째 생각을 갖자마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 보니...

"참 좋은 생각이야~!!"

 

...

그리고?

 

"그런데 그걸 누가 어떻게 다해?"

 

큭... 나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분명히 어딘가에도 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없을까... 어려운 논쟁에 어려운 자료에... 정리한다는 건...

저 넓은 갯벌에 있는 백합들을 모다 긁어 모아 64홀 대규모 골프장에

10열 종대로 줄지어 놓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일단 손은 대봐야지...

누구 함께할 사람!!!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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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게 배운 하루(잡담)

1. 겉도는 기사 말고 심도있는 기사를 써보겠다고 욕심을 부렸더니 오늘 하루종일(지금 이시간까지도 -_ㅠ) 정리가 안되는 고통에 허덕이고 있다. 내가 왜 욕심을 냈을꼬.... 흑... 후회 막심...

 

2. 국적포기 문제에 대해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던 나... 좋아하는 기자님이 쓴 글들을 읽으면서 그냥 '군대 얘기 너무 많다' 정도만 생각하다가... 전북대에 교수 2명이 자녀를 국적포기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학생에게 연락해서, '총학생회는 신원공개하라고 뭐 안한다냐??'라고 캐묻다가... '컥...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생각을 정리하던 중... 인권과 헌법을 양손에 쥐고 날카로운 칼날을 휘두르시는 교수님에게 전화를 했더니, 바로 명쾌한 글을 보내주셨다.... 결과적으로는 뿌듯하였으나 과정에서의 나의 고민을 돌아보니... 부끄럽다.

 

이어서... 좋아하는 기자님도 날카로운 칼날 교수님의 글을 보며 '부끄러웠다'고 직접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고 이런 생각을 해봤다. 훌륭한 기자라 해도 현장을 방문하고 다양한 의견들에 귀를 열어두지 않으면 자칫 나중에 '부끄러울 수 있는' 글을 쓸 수도 있다고... 좋아하는 기자님은 항상 현장을 뛰어다니셨는데, 최근엔 지위가 '상승'하여 데스크에 많이 앉아계신다고 한다. 주류언론들의 주장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기에는 힘든 조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많은 걸 느끼고 배운 하루였다.

 

3. '안녕, 프란체스카'가 시들해지면서 예전에 봤던 '괴기대가족'을 다시 보고 있다. 엔딩곡이 너무 좋아서 음악을 따서 엠피3로 반복해서 듣고 다니는데 오늘 집에 들어던 중 '괴기대가족'에 나오는 주인공과 똑같이 생긴 얼굴에 똑같은 머리모양을 한 남자를 봤다. 드라마에서 막 튀어나온 듯 했다. 신기했다.


 이렇게 생겼다. 코믹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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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노예계약 파문 종결... 씁쓸함

부제 : 맘가는 사람 편들기

 

어제 웃찾사를 봤다. 매주 웃찾사를 본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맘에 드는 몇개 코너에만 시선을 고정시킨다(요즘은 '화상고'와 '왜이래' 코너만 보게 된다). 그런데 어제는 다 봤다. 시끄러운 사건이 종결된 직후라, 또 녹화시점이 갈등이 최고조였을 때인지라 개그맨들의 표정을 유심히 봤다. 내 주변의 상당수의 사람들도 그렇게 웃찾사를 봤단다.

 

'노예계약' 논란은 온라인에서 뜨거운 네티즌 논쟁을 만들었지만, 그중 몇개 글들만 훑어본지라 나도 정확하게 사실을 알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 한편, 갈갈이 박준형의 박승대 기획사로부터의 독립선언 소식을 전에 접했기 때문인지 박승대에 대한 인상은 좋게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보니, 얼핏 소식을 들었을 때 개그맨들의 편을 들꺼라 생각했던 네티즌들이 웃찾사에서 해당개그맨 퇴출운동까지 벌이는 상황을 보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합의 기자회견을 한 후에는 '이것들이 개그하고 있네'라는 반응을 보이며, 아주 냉소를 터뜨린다.

 

이 문제를 오늘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얘기하다보니, 사무실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둘다 실망스러워서 웃찾사를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안들더라'였다.

 

내가 생각한 건 이런거였다.

 

잘못된 개그맨사회의 시스템을 고치려는 노력은 여러차례 있었다. 박준형의 경우 자신이 힘을 키운 후 억압한 당사자로부터 독립한 경우다. 세련된 방식이다. 김재우라는 개그맨의 경우, 아직 '뜨지' 않은 상태에서 이면계약을 거부했다가 퇴출을 당했다. 고군분투하다가 개인의 절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세번째 방법이 박준형 처럼은 힘없지만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몇몇 개그맨들이 집단적으로 문제제기를 한거다. 그러나 이들은 방송계 기득권과 여론의 흐름이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욕은 욕대로 먹고, 울며 합의했다. 환하게 웃으며 화해 기자회견을 한 사람들 뒤에 웃지 않고 있는 몇몇 개그맨들의 표정은 이런 안타까움을 보여주는 듯 하다.

 

첫번째 의문은 자신의 처지가 부당하다고 느낄 때 이를 제기하는 방법은 위의 세가지 외에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인가이다. 만약 나라면 역시 세번째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더 다른 '세련된' 방법이 있다면 알려달라.

 

두번째 의문은 '방송에서 웃겨야 할 개그맨들이 시청자들 눈살을 찌뿌리게 하고 있다. 그래서 둘다 싫다'는 논리다. 방송에 출연한 개그맨들의 웃음 뒷면의 아픈 현실은 이해하지만, 그걸 들추고 나와서는 안된다? 공인은 공인답게 본분에 충실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이지 않은가? '국민의 안전한 출퇴근을 책임져야 할 지하철 노조가 파업이라니...' 억지스런 비유인가?

 

어찌되었건 개그맨들이 개그사회의 이면을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킨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사건이 일단락되고 있는 중 전체적인 여론의 추이를 보면, '웃찾사 이제 보기 싫다'가 가장 확실한 결론인 듯 하다. 이면계약 문제를 없었던 걸로 하는 등 당사자간의 문제는 해소됐지만, 비슷하게 또 다른 문제가 터지지 않을 것이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개그맨 사회, 혹은 방송사회의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는 '해당 개그맨들의 인기하락, 웃찾사 시청률 하락'으로 끝나야 되는가?

 

얘기를 돌려서...

 

앞에서 언급했듯, 정확하게 상황파악도 못한 상태에서 느끼는 심정만 주리주리 써본 것. 사무실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내 스스로에게 발견하는 것은 아는 사람이니까 편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어제도 사소한 논쟁이 있었는데, 얘기하다보니 상대방이 비판한 대상이 나의 학과 교수였기 때문에 더욱 편을 들고 있었다. 한개 더! 최근 god 손호영의 양어머니가 남편 불륜을 폭로하기 위해 기자회견 했다가 자식들을 싸잡아 비판해서 논란을 빚고 있다. 4~5년전 손호영군의 열성적인 팬이었다보니 양어머니의 논리에는 하나도 귀가 안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늦게만치 오늘 한겨레신문을 펼쳐들었더니, 한 섹션으로 이 문제를 다룬 글을 발견했다. 그래서 펐다. 내 의문을 풀만한 논지의 글은 아니었다. 그러나 객관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긴 하다. (또 다른 한편의 의문, 냉소적인 것이 때로는 객관적인 것과 동일시 될 수 있지 않는가!!)

 

휴~ 머리 아퍼~~~ @@;;;



‘멀대’ 박승대와 개그맨 화상고 권법식 대결 ‘예측불가식’ 화해, 닮은꼴?


△ 18일 서울 등촌동 <에스비에스> 공개홀에서 열린 스마일매니아 박승대 사장과 ‘웃찾사’ 개그맨들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박 사장이 웃찾사 맴버들과 화해의 몸짓을 하고 있다. 연합


이재현의 인물로 세상읽기


연예 매니지먼트회사 스마일매니아의 대표 박승대씨와 이 회사 소속 인기 개그맨들 14인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게 요즘 술자리 화제다. SBS의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출연 중인 윤택 등 14인의 개그맨들은 데뷔한 2003년에 SBSi, 스마일매니아와 3자계약을 일단 하고서 또 다시 2004년에 스마일매니아와 계약을 맺었는데, 14인은 바로 이 후자의 계약이 이중계약이라며 무효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양쪽은 18일의 공동 기자회견에 이르기까지 서로 번갈아 기자회견을 열고 변호사를 내세워서는 공방을 벌였고 네티즌 사이에서도 편을 갈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늘 그렇듯이 이런 식의 다툼에서 어느 한쪽 말만을 믿을 것은 못된다. 14인은 기자회견에서 계약 무효의 근거를 ‘노예’ 계약이라는 매우 선정적인 이유에서 구했는데 상당히 수긍이 가는 내용이다. 연예계의 관행으로 보아서 신참 연기자들은 극히 불리한 상황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개념’이니까 말이다.

반면에 박승대 대표의 주장도 사람들에게 먹히는 것 같다. 공짜로 먹이고 가르쳐 가면서 무명 연기자를 키워 주었는데 이제 와서 난데없이 악질 계약자로 매도당하고 있다는 게 박 대표의 하소연이다. 한국사회 특유의 가부장제 온정주의를 기준으로 삼아 따진다면 14인이야말로 아주 배은망덕 한 셈이 된다. 네티즌의 의견이 양쪽으로 갈리는 것도 아주 당연하다.

일부 종이신문의 논조는 상당히 묘하다. 개그맨이란 본디 사회에 웃음을 주어야 하는데 서로 싸우는 게 꼴사납다는 것이 그 요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니까 수익의 분배를 둘러싼 사적인 다툼은 늘 있기 마련인데 개그 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세대인 나는 이번 개그 계의 다툼을 그 자체로 즐기며 지나치지를 못하고 쓸데없이 역사, 사회, 문화, 정치 등의 영역으로 확장해서 읽게 된다. 나쁜 버릇이다.

우선, 코미디나 개그에도 역사가 있고 상징 투쟁이 있다. 라디오 시대에는 만담이 있었다. “장에 소 팔러 간 사이에 낳았다 해서 장소팔이라우”라는 식의 빠르고 시끄러운 만담 말이다. 진공관 라디오 시절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장소팔과 고춘자 콤비는 만담 레코드를 내기도 했는데 TV에 밀려 순식간에 무대 뒤로 사라져버렸다.

1960년대 말 TV 코미디 초창기에는 의 <웃으면 복이 와요>가 있었다. 그 이전 순회 극단의 시절부터 살아남은 구봉서, 서영춘 등의 희극인 진영에 배삼룡, 이기동, 배일집 등의 새 코미디언들이 가세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이 시기 코미디언의 전형은 배삼룡이다. 바보 캐릭터의 슬랩스틱 코미디가 ‘대세’였는데 오늘날 방송가에서는 이런 콩트 중심의 코미디 형식에 ‘정통’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소위 정통코미디를 몰아낸 것은 70년대 중반부터 태동한 ‘개그’였는데 전유성, 이상용, 임성훈, 최미나, 김병조, 이홍렬 등은 기존 콩트 형식의 구식 코미디와는 달리 2 - 3분 가량의 짧은 꼭지를 기본 포맷으로 해서 대학가에서 유행하던 유머에 바탕을 둔 새로운 유형의 웃음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했다. 일종의 세대 교체였던 셈이다. 70년대 청년문화, 대학문화를 배경으로 해서 탄생한 개그는 대중음악 쪽의 통기타 포크송에 상응하는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개그가 등장함에 따라 기존의 정통 코미디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는 상투형으로 몰렸고 반면에 기존의 코미디언들은 새로 등장한 개그맨들이 희극 연기도 제대로 못한다고 비판했다.

코미디와 개그 사이의 이러한 상징투쟁은 개그 쪽의 승리로 귀결되어서 80년대 중후반부터는 개그맨들이 코미디 무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일방적인 승리는 아니어서 개별 코너의 형식은 전 시대의 콩트였다. 김형곤, 최양락, 심형래, 이경규, 최형만 등이 <회장님 우리 회장님> <동작 그만> 등의 코너에서 우리를 즐겁게 했다. 90년대 들어서는 김용만, 김국진, 김미화, 신동엽, 이영자, 이경실 등이 새롭게 등장했고 지금 이들은 주로 오락프로의 MC로서 살아남았다.


△ 대학로 소극장에서 일차로 검증된 개그가 방송에 진출하고 있다. 에스비에스 <웃찾사>의 한 장면.

박승대 대표는 1967년 생으로 1986년 KBS 코미디 4기로 데뷔했다고 한다. 박승대 대표는 개그맨으로서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 본다면, 어느 쪽인가 하면 보는 이로 하여금 안쓰럽다고 느낄 정도였던 것 같다. 키도 크고 얼굴도 긴 반면에 별로 웃기지 않아서였는지는 몰라도 ‘멀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던 것 같다. 굳이 딱지를 붙이자면 박승대 대표는 386세대인 셈인데 당시 선배 개그맨들의 인기 내지는 헤게모니에 눌려 제 뜻을 펴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박승대 대표가 개그맨으로 서서히 자리를 잡을 무렵인 90년대 들어서는 시트콤 등이 인기를 끌면서 코미디나 개그 프로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시들해졌고 반면에 각종 버라이어티 쇼나 토크쇼를 비롯한 각종 오락프로는 물론이고 드라마 등의 다양한 장르 안으로 코미디나 개그의 기능이 흡수되어 버렸다.

요즘은 배칠수, 김C, 김원희, 김수로, 신정환, 김성수 등과 같은 연예인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데뷔한 다음에 개그맨 못지 않은 입심과 재담과 개인기로 우리를 즐겁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80년대 초중반에는 공중파 방송의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서만 개그맨이 될 수 있었다. 뽑는 인원수와 경쟁률로 친다면 사법고시보다 더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개그맨들은 기수를 더 유별나게 따지고 군기가 아주 세지게 되었다고 한다. 혹은, 탤런트나 가수와 같은 연예인들과는 달리 개그맨들의 프로그램 준비 및 제작 작업이 집단적인 성격을 갖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얼마 전 KBS의 어떤 개그맨이 후배 개그맨을 구타해서 구속된 사건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용만과 김국진 등이 한때 미국 유학인가를 떠났던 것도 구타 관행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가부장제’ 한국 사회에서 남성 개그맨은 선배에게 구타당하고 여성 개그맨은 남편에게 구타당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개그맨으로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던 박승대씨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개그콘서트>와 <웃음을 찾는 사람들>과 같은 프로그램이 성공하면서부터였다. 박 대표는 대학로에 박승대홀을 설립해서 신세대 스탠딩 개그맨들을 발굴해냈던 것이다. 박 대표에게는 ‘성공한 개그 CEO'라는 별명이 붙게 되고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되었다. 박승대 대표는 과거의 코미디 프로에서는 재벌 총수 옆에서 “좋습니다”만 연발하는 이사 역할, 혹은 심형래 등의 옆에서 곁다리로 곰 노릇만을 하던 조역 개그맨이었다. 하지만 최근 일이년 사이에 박승대 대표는 이수만, 송승환, 서세원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성공한 비즈니스맨이 되어 나타났다.

정색을 하고 말한다면 이번 사태는 연예 매니지먼트가 아직 충분히 근대화되지 않은 데서 연유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매니저와 에이전시의 일을 분리하지 않은 채, 게다가 기획, 제작하는 일까지 뒤섞어서 사업을 벌려 왔기 때문에 수익 분배에서 분쟁이 생긴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결국 연예 매니지먼트가 충분히 분업화, 전문화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정색하고 바라보기보다는 한국의 정치가 코미디나 개그의 발전을 막아 왔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정치가 개그의 소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몇 년 전부터였고, 그 이전에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1980년대 초반에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전두환을 상기시킨다는 이유로 해서 여러 가지로 ‘압박’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보라.

다른 한편으로, 한국 정치 행태의 우스꽝스러움 자체가 코미디나 개그에는 마이너스였다고 할 수 있다. 2천억원대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던 전두환씨가 통장에 29만원밖에 없다고 버틴 것이나 그의 아들 전재용씨가 130억원대 괴자금 은닉 혐의로 법정에 출두하면서 고물차를 타고 온 것이야말로 아주 웃긴 일이었다.

한국은 사회적, 계급적 갈등을 정치적 수준에서 표출시킬 수 있는 충분한 제도적 시스템을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요전 번 재보궐 선거의 ‘시청률’, 그러니까 투표율도 매우 낮았다. 반면에 공중파 방송의 개그 프로는 나름대로의 시스템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관객들에 의해서 일차로 검증된 개그와 개그맨들만이 <개그콘서트>와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요즘의 스탠딩 개그는 슬랩스틱의 요소를 버리지 않은 채 하이 개그의 즐거움도 선사해 준다. 나는 특히 내 모국어가 구어로서 갖는 사회문화적인 힘을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요즘의 스탠딩 개그가 잘 보존하고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요즘 개그 프로야말로 정말 ‘마데인(made in)' 코리아라고 할 수 있다.

이게 바로 박승대 대표 등이 만들어낸 시스템의 효과다. 최근에 스타앤컴퍼니라는 이름으로 합병을 한 갈갈이패밀리와 컬투패밀리도 이 시스템에 끼여들었다. 박승대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배후세력의 존재를 언급했다. 이번 다툼은 새롭게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스템에서 개그맨의 상품 ‘가치’에 바탕을 둔 시장 ‘가격’의 협상권을 누가 독점할 것인가와 관련해서 벌어진 사태다.

처음에 양쪽은 “다 죽여버리겠다 ~허이짜 허이짜~” 하며 서로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싸우듯 했다. 그러다가는 전격적으로 화해를 해버렸다. 아, 그러고 보니까, 정치와 개그 사이의 공통점들이 떠오른다. 하나는 관객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마무리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시스템의 후진성으로 인해 벌어진 사태의 책임을 언론에 뒤집어씌우는 버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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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섬 (춘자에게)


 

17일 오후 7시 전북대 이세종 열사비 앞에서 있었던 추모식.

춘자!! 너의 사랑스런 '산하' 후배들이 노래를 부르더군!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처음엔 사람들이 없어서 조용히 진행되나 했는데

전북대 학생들이 꽤 많이 (그래도 50여명 -_-;;) 참석했어.

 

그리고 추모제 시작을 노래패 산하의 공연으로 시작했어.

그런데 이 친구들이 '바위섬'을 부르는 거야.

난 이상하다 하며 별별 상상을 다했지...

산하 정도면 민중노래를 많이 알고 있을텐데 왜 저 노래를 부르지?

혹시, 5.18과 독도문제를 연결하려는 것 아냐?

 

사무실에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해줬어.

그랬는데 일이 있어서 와 있던 주용기 님이 얘기해주시더라고.

바위섬을 부른 가수 김원중은 광주민중항쟁을 생각하며 그 노래를 썼다고...

생각해봤더니 한때 바위섬이 금지곡 비슷하게 됐던 때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이고~ 주용기 씨 없었으면, 나중에 혼자 쪽팔릴 뻔 했네요~"

라며 웃었어. 그걸 부른 산하 친구들의 '센스!'도 기특하고...

 

그런데 습지괴물과 놀러와있던 지쓰랑 딸기는

노래 가사가 잘 생각이 안난다고 하더라고...

기억을 더듬어 읊어 봤더니 -_-;; 몽땅 다 기억하고 있었어. 가사를...

역시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봐....

그렇게 가사를 되짚어 봤는데...

간접경험으로 알고 있던 광주민중항쟁이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려지더라...

피상적으로 행사취재차 갔던 내게 생각의 시간을 준

소중한 노래가 됐다는 생각을 해봤어~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없던 그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둘 모여들더니

어느덧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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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가족’에게 배우는 미덕

* 노란리본님의 [이 가족이 사는 법!] 에 관련된 글.

프란체스카를 보고 난 후, 써야겠다고 미뤄뒀던 글을 작성하고

블로그에 올려야겠다~ 생각하고 샤악 들어왔는데

노란리본님의 비슷한 생각을 담은 글을 발견했어요~

'앗! 선수를 뺏겼다!'는 생각과 함께 엄청 반가움이 느껴지네요~ 흐흐...

이럴 때 블로그가 재밌다고 느끼는 거겠죠?

 

 



“외모는 10대 소녀지만 사실 2000살을 먹은 왕고모 소피아, 어린이들을 울며 도망가게 만드는 섬뜩한 외모에 도끼까지 들고 다니는 프란체스카, 외모에 엄청난 자신감을 갖고 있으면서 영원을 함께할 남자를 물색하고 다니는 엘리자베스, 닭피를 먹어 닭대가리가 된 바보 흡혈귀  켠이. 루마니아에서 일본에 가려다 배를 잘못타 한국으로 온 뱀파이어 4인(?). 우연히 만난 인간 두일이를 물어 흡혈귀를 만든 후 기묘한 동거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의 기상천외한 일상이 펼쳐진다.”

 

 

요즘 월요일 늦은 근무를 제쳐두고 나를 TV 앞에 앉게 만드는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의 이야기.

 

나는 평소 TV에서 개그프로그램 외에는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 편인데, 그 이유는 캔디같은 여자 주인공과 현실에는 그리 많지 않지만 TV에서는 길가다 채일 정도로 수두룩한 잘생긴 재벌 2세가 만나 콩볶아 먹는 얘기가 지겹고, 틈만 나면 출생의 비밀에 기억상실증이 난무하는 상황들이 식상하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큰딸, 작은 아들 등등이 대가족을 이루고 엄마는 매일 부엌에서 요리하고 빨래하는 장면만 나오지만 ‘우리 가족은 화목해’라고 훈훈한 감동을 전하는 가족 드라마는 얼마나 닭살을 돋아나게 만드는가.

 

‘비일상성’이 만들어내는 웃음과 풍자

 

그런 내가 이 ‘안녕, 프란체스카’를 우연히 본 후로는 한편에 천원씩이나 하는 비싼 유료관람료를 내고 VOD 다시보기 버튼을 누르며 재탕 삼탕을 반복해 보고, 나오는 대사 한마디, 터지는 상황 하나에 울고 웃으며 빠져들게 됐다.

 

10%를 약간 웃도는 그리 높지 않은 시청률이지만 꾸준히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 시트콤의 가장 큰 매력은 ‘비일상성’이다.

 

남자 주인공 두일이 근무하는 조명이 환한 백화점에서 시식코너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세풍의 검은 드레스와 검은 머리의 프란체스카는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며 시식하러 나가오던 아주머니들은 나자빠지게 만든다. 또 낯선 한국땅에 온 이국인 프란체스카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고스톱 패를 보며 그 아름다움에 반해 놀음중독까지 빠지게 되는 상황은 있지 않을 법한 존재와 지극히 일상적인 현실의 충돌을 만들며 웃음을 만들어 낸다.

 

초기 설정인 뱀파이어의 존재 자체부터가 일상적이지 않기도 하지만, 시트콤의 주인공들이 내뱉는 한마디, 벌어지는 상황들은 기존 통속적인 드라마의 설정을 묘하게 비틀며 풍자한다.

드라마 매니아인 반장댁 백수아들 용주는 매니아틱하게 드라마 상황을 현실에서 연출하다가, 짝사랑하던 엘리자베스가 ‘사실은 네 이복동생이다’는 엄마의 거짓말을 듣고 ‘우릴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통곡한다. 첫회에서 엘리자베스가 발견한 이상적인 남자 사업가 기주는 음악에 미친 비정상적 인간이고, 10회에 이르러서는 3각, 4각을 넘어 무려 12각 관계의 남녀가 치고 받고 싸우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상가족? 비정상가족

 

비일상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인간이었던 두일과 흡혈귀들이 동거생활을 하면서 만들어 내는 ‘비정상적’인 가족형태다.

 

동네사람들에게 최고령자인 2000살 소피아는 귀여운 막내딸이 되고, 두일은 듬직한(!) 가장이고, 프란체스카는 아내이다. 그러나 속내를 보면 일반가족에서 최고 서열에 있어야 할 가장은 가장 힘없는 위치에 있고, 막내딸 역할의 소피아가 대고모로서 가족의 중대사를 이끌어간다.

 

또 이들은 낯선 이국에서 온 이질적인 존재이지만 ‘가족의 구성원 역할’을 하고 함께 부대끼며 서로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간다. 물론 이 애정도 통속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다툼 후에 화해를 하며 서로를 꼭 껴안고 아름다운 배경음악이 깔리지만 금새 ‘이런 화목한 분위기 싫어’라며 닭살을 털어내며 흩어진다. 그러나 인간이었을 때는 천애고아에 왕따 분위기를 자아냈던 두일이 흡혈귀들과 함께 살며 ‘가족’을 느끼게 되며 잔잔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면 그 이질적인 가족이 너무도 사랑스럽게 느껴지게 된다.

 

시트콤의 연출을 맡은 노도철 PD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안녕, 프란체스카>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불법이민자들이 이 사회에서 가족으로 위장하고 적응해나가는 것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에서 불법체류하고 있는 이주가족들의 현실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생각을 확대시켜보면 불법이주자 뿐만 아니라 이성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 외에 독신자, 동성부부, 한부모가족 등 다양한 가족들이 현존하고 있는 지금, 이들이 이 사회에서 정상적인 가족으로 인정받고 살아가야 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혈연으로 운명지어진 형식을 위주로 한 가족이 아니라 낯선 타인이 유대감을 형성하며 만들어 나가는 가족도 엄연한 가족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족으로 이 시트콤의 주목할만한 독특한 인물은 켠이라는 흡혈귀다. 자신이 동성애자인 한 언론사의 기자는, 자기도취적 특징을 보이고, 좋아함에 남녀를 가리지 않는(시트콤 상에서는 단지 바보이기 때문으로 묘사되지만) 켠이라는 인물이 동성애적 코드를 아주 체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사회의 드라마에서 곁들이 정도로 출연하는 것 외에 동성애 그 자체로 발언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우리사회는 비정상가족을 포용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가족 형태의 다양성 혹은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제도 및 정책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호주제 폐지 후 신분등록제의 문제가 그렇고, 동성애자인권단체들의 지속적인 활동도 그렇고, 이주노동자들의 문제가 그렇고, 농도인 전북지역에서 급증하고 있는 국제결혼과 그에 따른 이주여성들의 문제가 그러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폭이 넓어지고 발생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이 다른 가족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개인을 포용할 수 있는 틀은 그리 넓지 못하다.

 

 

여기에서 잠깐 다른 드라마 얘기를 한번 해보자. <안녕, 프란체스카>에 반한 후로 괴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족 드라마가 또 있을까 하고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괴기대가족>이라는 드라마를 발견하게 됐다. 국내에도 개봉돼 관객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영화 <주온>을 제작했던 감독이 <주온>의 배경이 되는 그 섬뜩한 집에서 전혀 다른 코믹드라마를 연출한 것이다.

 

귀신뿐만 아니라, 좀비, 외계인, 흡혈귀 등 온갖 이세계의 존재들이 총출연하는 이 드라마의 결말에서 주인공은 강력한 주술을 걸어, 모든 사람들이 귀신을 볼 수 있게 하고 음지에서 숨어 지내던 낯선 존재들을 밖으로 나오게 해 모두 함께 사랑하며 공존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자신과 조금은 다른 특징을 가진 존재들을 혐오나 천시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함께 공존하는 세상,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그것이 내가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끄집어내고 다소 과장시킨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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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이 대신 촛불시위 나섰나?

 

전주 고등학교 1학년생들의 촛불시위가 예정돼 있던

7일 오후 7시 객사 앞. 학생들은 없고, 교사들이 북적거렸다.

예상은 한 상황이었건만, 그 교사들의 규모와 고압적인 자세에 한번 더 놀랐다.

 

다음은 취재를 위해 객사 앞을 지키던 교사들을 만나서 나눈 대화...

 

“학교에서 학생들과 이런 얘기를 해보셨나요?”

“오늘 아침에도 학생들과 얘기했습니다. 학생들도 얘기를 듣고 수긍하는 반응이더군요.”

“촛불시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나요?”

“저는 학생들에게, ‘그래도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당당하게 시위에 나가서 너희들의 뜻을 밝혀라’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시위참여 단속을 위해) 이 자리에 나오셨잖아요.”

“....”

 

학생들이 나타나자 교사들이 학생들을 불러세운다.

그 모습을 촬영했더니 왜 찍느냐고 그러더라...

아... 학생들 인격권을 생각해서 그러는가보다 생각해서...

 

"학생들 신변보호를 위해서 그런 거라면 걱정 마세요. 모자이크 처리하니까."

"우리 학교 교복은 어딜가도 다 알아봐요. 사진 공개하지 말아주세요!"

 

주변에서 기웃거리던 학생들과의 대화...

 

“저희요? 오늘 촛불시위 하자는 문자를 받고 구경하러 왔어요.”
“만약 시위하면 저희도 함께 할려고 했지요.”
“촛불이랑 다 준비해오는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보이진 않네요.”
“그런데 13일인가 14일로 연기했다는 문자를 받은 애들도 있어서, 오늘 확실하게 하는 지는 잘 모르겠어요.”
“내신등급제. 저희들끼리 얘기할 때도 문제가 많다고 다들 그래요. 벌써 나부터도 친구들에게 (노트, 참고서 등) 잘 안빌려주거든요.”
“그냥 수능 그대로 보는게 속이 편하죠. 이런 거 만들어서 더 힘들게 만들고...”
“우린 그냥 우리 뜻을 알리려고 한건데, 아예 아무 것도 못하게 막는 건 너무 심해요.”

 

여자다, 젊어보인다(!) 등의 특징을 살려

최대한 공손하게 학생들에게 다가가 얘기하고 있는데

다른 방송사 기자들이 달려든다.

"14일로 연기됐다는 문자 있으면 보여줘봐."

그러다 카메라까지 두세대씩 접근하니 학생들이 영 부담스러워 한다.

그러다가는 자리를 피해버린다.

다른 학생무리에 다가가 대화를 시도했는데 또 카메라들이 달려들고...

내 참, 방송사들이 중요인사 인터뷰 하는 거 옆에서 기웃거리며 참조한 적은 있어도

내가 취재하는데 기웃거릴 뿐만 아니라 취재원을 쫓아내버리는 경우는 처음이네...

 

시위를 막는 어른과 취재꺼리를 얻으려는 어른들은 있었으나

학생들을 지지하고 도우려는 어른들은 없었다.

"전교조나 시민단체가 나와서

'학생들 시위를 지지합니다' 피켓을 들던가 소리통이라도 해야 하는거 아냐?"

씁쓸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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