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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미제가 최고야~

 

제임스 카트라이트 미쿡 합참 의장은 북한의 인공위성인지 미사일인지 발사 불발을 보면서

이렇게 한마디 했다고 한다.

 

"3번이나 거푸 실패하고,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나라에서 당신이라면 (미사일을) 구입하겠느냐”

 

하하, 이 건 무슨 소리인가?

 

북한 무기 보다는 역쉬 미쿡꺼가 최고라는 말~

(이런 비교 광고는 광고 심의 윤리에 걸리는 거 아닌가? )

 

그러나 감탄~ 언제 어디서나 기회만 되면 무기 영업을 뛰는 미쿡의 영업사원들~

영업사원이란 원래 이래야 하는 걸꺼다..

 

말 안하고 있지만, 일부 과학기술자들도.. 내심 기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공위성(인지 미사일) 분야에 연구비가 쏟아지겠구만, 레이건때 "광학"하는 넘들

좋았지~~"  

 

아 재미없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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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 과학기술, 좌파도 싫어하는 과학기술

닭갈비 과학기술, 좌파도 싫어하는 과학기술

 

실업문제에 비정규직 문제 등 각종 투쟁들이 산적해 있는 이런 시국에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한다면? 왠지 굶어죽는 사람에게 SF소설을 읽으라고 권하는 격이지 않을까? 또 친구 중 누군가가 빅뱅(Big Bang)이나 선사시대 공룡을 연구하고 싶다고 한다면, 혹은 중력의 근본원인을 파헤치고 싶다고 한다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불쌍한 놈~”, 아니면 “집에 돈이 많구나!” 아이러니하게도 과학기술에 대한 이런 생각은 자본가들에도 마찬가지 인듯하다.

 

자본가의 닭갈비(계륵) 과학기술

 

세계적으로 유명한(했던) 미국의 벨연구소를 보면 요즘 자본가가 과학기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 수 있다. 1925년에 설립된 벨연구소는 ME(극소전자) 혁명을 일으킨 트랜지스터와 레이저를 최초로 발명한 곳이며, 11명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한 곳이다. 처음에는 국영 AT&T사 소속이었다가, 1996년에 AT&T사가 3개의 민영회사로 분리되면서 루슨트사 소속이 되었다. 지속적인 경기 침체로 2006년에는 프랑스 통신회사 알카텔과 합병을 하게 되었다. 매 변화 시기 마다 순수과학에 대한 투자와 인원을 줄였으며, 지금은 순수과학 분야에는 단 4명만이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네이처 2008). 국내에서는 삼성종합기술원이나 LG 전자 기술원이 비슷한 역할을 담당 했지만, 요즘은 사업부의 하청 업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 초기에 과학기술은 종교권력에 대항하고, 생산력 발전의 동력이 되었으며, 새로운 계급을 억누르기 위한 착취의 수단과 이데올로기를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권력의 지위가 확립되고 새로운 경쟁 상대(노동자)의 발흥을 충분히 막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자본은 현상유지에만 관심을 가졌고, 이때부터 과학기술의 주가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인터넷과 주식 시장의 확산으로 자본이 단기성과에 집착하게 되면서 그 주가는 더욱 떨어졌다.

 

7-80년대 ME 혁명은 냉전시기 개발된 군사기술이 수십 년 동안 숙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1956년에 개발된 트랜지스터가 실제 시장에서 꽃피운 시기는 1970년대 중반 이후였다. 개발 후 본격적으로 실용화되기까지 20여년의 숙성기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자본은 더 이상 과학기술이 숙성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과학기술은 한마디로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먹을 것이 없는 닭갈비(계륵)의 신세가 된 것이다.

 

좌파도 싫어하는 과학기술

 

‘좌파가 언제 과학을 싫어한다고 했어?‘ 라고 반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간첩 리철진]이라는 영화를 보면, 북에서 내려온 간첩 리철진이 강도에게 공작금이고 뭐고 다 털린 후 고정간첩 오선생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오선생이 다짜고짜 북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현실적인’ 요구를 하자, 리철진은 단 한마디로 상황을 반전시킨다. “당에서 보내서 왔소”

당은 이성(과학)의 화신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절대 진리를 담지 하는 신은 절대 진리를 밝혀내는 과학(혹은 이성)으로 대체되었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지도’한다는 당은 무엇이 ‘과학’인지는 상관하지 않고 당시 과학의 특권화된 권위만을 고스란히 이어 받아 모든 정보과 권력을 독점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내놓은 ‘과학적’ 진리란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자본주의가 지나면 사회주의가 된다는 식이었다. 전 세계 노동자-농민들의 구체적인 투쟁은 당의 ‘과학적’ 판단 속에 무시되거나 심지어는 탄압받기도 했다.

 

이 것이 좌파가 과학을 싫어하는 배경이다. 일부에서는 그 역편향으로 과학기술의 모든 권위를 해체해 버리고, 과학기술의 독특한 방법론까지 인정하지도 않으려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들은 이성의 시대는 가고 감성의 시대가 왔다고 주장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것은 자본가가 바라는 변화이기도 하다. 자본가들은 많은 자본과 오랜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이성적’ 과학기술에 투자하기 보다는 작은 자본으로 단기간 내 성과를 볼 수 있는 ‘감성적’ 디자인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듬고 가야할 과학기술!

 

사실 과학기술에서 중요한 것은 경험적이든 연역적이든 어떤 현상을 일반화(추상화)해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일반화는 각각의 상황에서 인정되는 정보의 일부분일 뿐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정보를 종합해서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해 내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경험과 과학지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구체적인 현실 속의 노동자-민중의 지식과 실천(혹은 투쟁)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진리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진리는 구체적이며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연안시절(1937-1949) 모택동의 말은 아직도 시의 적절하다.

 

“당시의 열일곱, 열여덟 살 먹은 청년들은 [자본론]과 [반듀링론](양자역학과 상대성 원리 등을)등을 열심히 배웠지요. 청년들은 훌륭한 선생(훌륭한 과학자)에게서 배운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마르크스-레닌주의(현재의 과학기술을)를 종교적 교의로 여기는 사람들은 맹목의 무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공개적으로 “너의 교의는 똥보다도 쓸모없다”는 점잖지 못한 말을 써야 합니다. 개똥은 들판에 거름으로 쓰일 수 있고 사람의 똥은 개가 먹을 수도 있다는 걸 압니다. 그러나 교의라는 것은 들판을 비옥하게 할 수도 없고, 개를 먹일 수도 없지요. 그게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괄호속의 말은 필자가 삽입함)

 

흔히 과학기술은 생산력이면서 생산관계라고 한다. 이 말은 과학기술이 우리 생활의 모든 부분에 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과학기술은 싫다고 회피할 수도 없으며 회피해서도 안 된다. "과학(기술)은 단지 과학적 성취와 응용기술을 나열한 명부가 아니다. 그것은 특별한 사회 환경에서의 인간 활동이다. 그러므로 과학(기술)은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에 대한 학습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야할 대상인 것이다. 최근 들어 점점 더 다양한 이슈들, 지식의 군사화, 건강, 환경 경제 발전, 여성해방, 인종주의와 계급 서열화의 합리화 그리고 교육문제 등에 대한 정치적 투쟁들이 과학적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어렵다고 상아탑 속에 갇히게 해서도 안 된다. 이를 위해서 “혁명정당은 권력을 잡기 전과 후 모두 과학(기술)에 대한 프로그램을 가져야 하고 이런 저런 과학적 근거를 형성하는 사회운동에서 어떤 식으로 투쟁할 것인지를 배워야 한다. 맑스주의 과학자는 자본주의 하에서 과학(기술)이 이데올로기적, 제도적 속박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밝혀야 한다.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자본주의에 대항해야할 필요성을 인식한 사회주의자들은 과학의 문제들에 대한 초기의 관심을 부활시키고, 과학(기술)을 투쟁활동과 연구를 위한 실천과제 속에 배치시켜야 한다.“ (리차드 레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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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속에 감추어진 역사

과학 속에 감추어진 역사
 
“역사는 파괴와 창조, 투쟁과 노동이 서로 맞물려 가면서 변화 발전하고 우리 근현대에서 그러한 역사의 주체는 낡고 썩은 것을 유지하고 지탱하려는 소수 보수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 사회의 대다수 노동자 민중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대의제도와 대리주의를 넘어 노동자 민중이 정치의 주체로 ‘반자본주의 정치변혁’의 거대한 역사의 강줄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 주장은 파업 속에서, 반자본주의 투쟁 속에서 더 큰 물질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 영역에 들어오는 즉시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과학의 역사는 ‘코페르니쿠스가 갈릴레오를 낳고 갈릴레오가 케플러를 낳고 케플러는 당연히 뉴턴낳’는 다는 식으로 이어질 뿐이다. 과학의 역사 어디에도 생동감있는 노동자 민중의 역사는 찾아 볼 수 없다. 대리주의와 대의주의가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과학의 역사가 외부 즉, 신이나 외계인의 역사가 아니라면, 앞에서 언급한 (투쟁과 노동이 서로 맞물려 변화 발전하는 그런)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학 역사의 주체도 당근! 노동자 민중일 것이다. 그러나 왜 과학에는 엘리트들만 보일까? 혹시, 우리가 (자본주의라는) 병에 걸려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누군가 그 역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숨겨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숨겨진 역사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법 하다.
 
천연두 백신을 개발한 노예와 농민
 
16세기에 세계인구의 5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중남미 원주민들을 90%나 사망시킨 무시무시한 천연두 문제의 해법을 서방에 알려준 이는 바로 미국으로 끌려온 오네시모(Onesimus)라는 아프리카 노예였다.
1721년 미국 보스톤에 천연두가 번졌을 때, 오네시모는 그의 주인 코튼 마터(Cotton Mather)에게 자신의 고향 아프리카 수단에서 사용하는 천연두 예방법을 알려 주었다. 이 방법은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피부를 긁어서 생채기를 내어 바르는 방법인데, 11세기 이후 중국이나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법이 있었다. 이를 인두법(人痘法) 이라고 한다.
 
코튼 마터는 대범하게 이 방법을 주민들에게 바로 적용하였으나 그 과정에 6명의 환자가 사망하고 말았다. 격렬한 종교적 반발이 있었고, 성난 군중들은 그를 목매달려고 했다. 그가 피신한지 1년 후 그는 다시 영웅이 되었다. 당시 천연두에 걸린 사람 대부분 사망했지만, 그의 시술을 받은 환자는 2% 만 사망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오네시모의 이야기는 사라져 버렸다.
 
천연두에 얽힌 얘기 하나만 더 해보자. 흔히 천연두 예방 백신을 개발한 사람은 영국의 의사인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라고 알려져 있다. 그가 1796년에 개발한 백신은 소의 천연두라고 알려진 우두(cowpox)를 접종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불주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방식은 이미 22년전, 당시 농부였던 벤자민 제스티 (Benjamin Jesty)에 의해 이미 알려진 방법이었다. 벤자민은 같이 살고 있는 소 젖 짜는 여자들이 우두를 앓고 나서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대범하게 소의 유방에서 고름을 채취하여 부인과 아들의 팔에 바늘로 상처를 내고 주입하였다. 부인은 심하게 고생하긴 했으나 두 사람 모두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는 단지 이 사실을 접하고, 소년을 대상으로 ‘과학적인’ 인체 실험을 거쳐 정식화 했을 뿐이었다.
 
말라리아도 유사한 역사가 있다. 중국에서는 2000년 이상 개똥쑥이라는 약초를 사용해 말라리아를 성공적으로 치료해 왔다. 그리고 남아메리카에서 페루 인디언들은 기나수(樹) 껍질을 사용하여 치료하였다. 기나수를 통한 치료법이 유럽에 소개된 것은 17세기나 되어서 였다.
 
뉴턴보다 뛰어난 시계공
 
요즘은 배를 타고 항해를 할 때 배의 위치는 인공위성을 이용한 GPS로 쉽게 알 수 있지만 17세기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의 위치는 지구상의 위도와 경도로 알 수 있는데, 위도는 특정시간에 태양과 수평선의 각도로 정확하게 알 수 있었지만 경도는 정확하게 측정할 방법이 없었다. 이 문제는 영국 의회가 0.5도의 오차를 허용하는 경도 측정방법 개발자에게 2만 파운드라는 거대한 상금을 걸 만큼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해결책으로 제안된 방법은 두가지 였다.
 
첫 번째 방법은 뉴턴과 영국 왕실에서 진행한 방법인데, 목성의 위성 관측이 경도를 결정할 수 있다는 갈릴레오의 발견을 이어 받아 계산하는 방법이었다. 두 번째 방법은 정확한 시계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경도 15도의 차이는 지구가 1시간 자전했을 때의 차이이므로,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면 경도를 계산할 수 있다. 존 해리슨이라는 아주 평범한 시골 시계공은 이 방법을 택하여 뉴턴에 도전했다. 결론은 평범한 시계공의 승리로 끝이 났다. 뉴턴이 이 방식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 기술로 정확한 시계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목성의 위성을 관찰하는 것은 평지에서는 가능했지만 흔들리는 배위에서 매우 어려웠다.
 
미생물의 세계를 연 안토니 반 레벤후크(Antony van Leeuwenhoek)
 
17세기 초기만 해도 현미경의 배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래서 현미경은 과학 탐구의 도구가 아닌 장난감으로 취급받았다. 과학자들이 현미경의 배율을 높이기 위해 무척 많은 노력을 했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그런데 17세기 중반 네덜란드의 한 의류 소매상인 안토니 반 레벤후크는 독학으로 현미경의 배율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다. 그는 살아 있는 원생동물과 박테리아를 직접 본 첫 번째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의 경력은 16세 때 직물상의 견습생, 22세 때 직물점 상인이 전부였다. 대학교육도 받지도 않았고, 자연과학, 철학은 물론이고 영어나 프랑스어, 라틴어도 몰랐지만, 그는 20세기 과학혁명에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한 사람 중 한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과학에도 풍부한 노동자-민중의 역사가 핵심이다.
 
레닌의 혁명은 소비에트를 통한 노동자-민중들의 자발적인 투쟁과 그것의 양적 성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과학 역시 마찬가지 이다. 과학이 기본적으로 자연에 대한 지식이라면, 과학이 자연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노동자-민중)로부터 나오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갈릴레오가 대포의 각도가 45도일 때 가장 멀리 날아간다는 사실을 처음 수학적으로 증명해서 유명해 졌다고 하지만, 당시 대다수의 포수들이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오히려 이러한 풍부한 포수들의 경험이 갈릴레오의 이론을 탄생시킨 동인이 된 것이었다. 뉴턴의 만류인력 법칙도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다 로버트 후크라는 과학자가 만류인력을 먼저 주장한 바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 역시 그리스 시절부터 있었던 주장이며, 지구 중심설의 대부격인 푸톨레마이오스의 수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프랑크가 양자역학의 문을 열었던 계기도 이전에 수많은 과학자들의 실험적인 결과와 이론적 성과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아이슈타인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 과학에 자리 잡고 있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중략)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중략)..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식의 역사관은 성경에서 끝나야 한다.
 
참고서적 : Clifford D. Conner, "A People's History of Science"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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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라듐 그리고 광우병과 방사능

소, 라듐 그리고 광우병과 방사능

 

1922년, 은행에서 일하는 그레이스 프라이어(Grace Fryer)는 병원을 찾았다. 갑자기 이빨이 흔들리며 뽑혔고, 턱에는 염증이 생겨 부어올랐다. X-ray 결과는 참혹했다. 턱뼈가 마치 벌레먹은 이파리처럼 구멍이 숭숭 나있었다. 같은 증세를 호소한 사람은 마을에 여러 명 있었고, 모두 야광 칠을 하는 공장에서 일을 했었다.

 

그레이스가 병원을 찾기 20년 전(1902년), 발명가 윌리엄 해머(William J. Hammer)는 과학자 퀴리 부부로부터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그가 받은 선물은 라듐염 결정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방사능은 새로운 과학 분야이기에, 그 위험성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피에르 퀴리는 라듐을 자신의 팔에 붙여 위험성을 실험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라듐이 스스로 푸르스름한 녹색의 빛과 열을 내기 때문에, 인간에게 무한 에너지를 주는 환상적인 물질로 생각했다. 해머는 이 라듐염으로 야광 페인터를 발명하였다.

 

야광 페인터는 US-라듐사(US Radium Corporation)에 의해 상품화되어 1차 대전 중에 계기판 표시기나 군인들의 손목시계에 사용되었고, 민간용으로도 확대 되었다. 당시에는 라듐의 위험은 상당히 알려져 있을 때이다. 그러나 US-라듐사는 아주 미량 사용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주장하였다.

 

US-라듐사의 과학자는 라듐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사용한 라듐은 우라늄보다 100배 더 강한 것이기 때문에, 실험시 방사능 차단 장치를 확실히 사용하였다. 그러나 공장의 노동자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작업장 바닥과 벽은 이미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있었고, 심지어 여성 노동자들은 남자 친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입술이나 치아에 바르기도 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미 라듐은 일상화 되었고 구조화 되어 있었다. 관절염, 고혈압, 암 등의 치료약으로 쓰였는가 하면, 치약이나 화장품, 심지어 생수와 빵에 넣어 먹기도 했다. 자본은 이윤 때문에 스스로 이 위험한 거래를 멈추려 하지 않았다.

 

3년 후, 그레이스의 의사는 병의 원인으로 US-라듐사를 지목했다. US-라듐사는 콜롬비아 대학의 전문가 플린(Flynn)을 내세워 그레이스를 조사하였다. 플린은 그레이스가 건강이 아주 좋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의사도 아니었고, 그레이스의 “동료“를 조사한다면서 작업장에서 일하지 않았던 부사장의 감염여부를 조사하는 등 부정한 방법을 사용 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US-라듐사는 그녀의 병이 방사능 중독이 아니라 매독 때문이라고 유언비어를 조성하기도 했다. 또 많은 의사들을 포섭해서 왜곡된 정보를 만들었다.

 

사실, US 라듐사는 이미 1920년대 초부터 하버드 생리학 교수 세실 드링커(Cecil Drinker)를 고용하여 작업장 환경에 대한 연구를 시킨바 있다. 드링커는 보고서를 통해 심각하게 오염된 작업장 실상과 노동자들의 이상 증세를 자세하게 보고하였다. 그러나 정작 US-라듐사는 노동부에 가짜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가짜 보고서의 시작은 모든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여공들은 완벽한 조건에서 근무 하고 있다”.

 

그레이스와 5명의 노동자들은 US-라듐사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변호사를 선정하여 소송을 했다. 재판은 2년을 끌었고, 당사자들의 병세 악화와 절박한 사정으로 회사에 유리한 합의를 해야 했다. 당시 합의를 주선한 사람은 라듐 재판의 판사이자 US-라듐의 주주였다고 한다.

 

방사능에서 광우병으로

 

현대로 오면서 라듐의 방사능은 광우병 소로 대체된다. 기업은 정부로 바뀌고 대상은 특정 노동자 민중에서 전체, 전 세계 노동자 민중으로 확대된다. 영국은 1985년에 최초로 광우병이 발병했고, 1년 뒤 그 사실을 처음 확인하였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사안인데도 불구하고 영국 보건부는 11달이나 대중들에게 알리지 않았으며, 그 후 눈에 잘 띄지도 않게 수의학 논문지에 싣는 것이 전부였다.

 

1980년대 중반쯤에 영국정부는 소에게 먹인 동물사료가 광우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증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989년이 되어서야 뇌, 척수, 가슴샘, 비장 그리고 일부 내장을 소의 사료로 금지시켰다. 그러고 나서 다른 조직들은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러한 조치는 노동자-민중의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축산업자의 이윤을 위해, 사료비 증가를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영국 정부는 사이비 과학 자료와 잘못된 가정을 바탕으로 소고기 안전에 대해 여러번 왜곡된 발표를 했다. 예를 들어 1989년에 영국정부가 발표한 사우스우드(Southwood) 보고서에 따르면 소를 광우병의 종말 숙주라고 주장하면서 인간에게는 위험성이 거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대범하게도 위원회는 “광우병과 사람의 건강과의 관련성은 결코 있는 것 같지 않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로 광우병 발생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문제를 노동자-민중의 건강의 위기로 보지 않고 어떻게 발표할 것인가의 문제로만 보았다. 영국 농무부장관 존검머(John Gummer)는 BBC 방송에서 자신의 딸 코델리아와 같이 햄버거를 먹으며"광우병 안전합니다."라고 선전하기도 했다. 아무도 믿지 않는 광고를 촬영하면서 자신의 딸을 광우병 볼모로 삼고 “맛이 기가 찹니다.” 라고 말하였다.

 

영국 정부의 거짓말은 곧 바로 드러났다. 1994년 16세 소녀 비키 리머(Vicky Rimmer)는 인간 광우병의 첫 희생자가 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가족들에게 경제를 위해 사망사실을 공개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또한 비키가 죽은 후 메이저(John Major) 총리는 "인간은 광우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해두고자 합니다.“ 라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의 편지를 가족에게 보내기도 했다. 아무튼 첫 번째 희생자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200여명이 광우병으로 죽었거나 앓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치매로 죽어간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인간광우병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핵심은 이윤에 반해 전복할 수 있는 권리이다.

 

시장에서 잘 팔리는 상품이라면, 즉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자본가 혹은 그를 대변하는 정부는 그것이 방사능 물질이든 광우병 소든 상관하지 않고 확실하게 주장한다. ‘아주 안전하다’, 자본에 매수된 과학(자)은(는) 이 주장을 뒷받침할 결과들을 쏟아 낸다. 그러다 실제 위험이 발견되면, 방사능 오염은 ‘매독’이 되고, 광우병은 ‘치매’로 둔갑해 버린다. 그리고 방사능물질과 광우병으로 노동자-민중이 죽어 나갈 때 까지 우리에게 어쩔 수 없는 구조(무의식 적인 것)가 된다.

 

2008년, 한국의 노동자-민중은 검역 ‘주권’을 놓고 ‘미국-한국 연합정부’와 투쟁하고 있다. 주권이라는 것은 ‘(필요에 따라) 생산할 수 있는 권리’와 ‘전복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생산할 수 있는 권리는 생산수단이 없다면 구성하기 힘들지만 전복할 수 있는 권리는 그런 기반이 없어도 된다. 특히 자본주의에서 ‘이윤에 반해’ 전복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미국은 광우병이 발생했지만 도살된 소의 1% 미만에 대해서만 검사를 하고 한국에 수출한다. 이명박 정권은 이 소에 대해 전복할 수 있는 권리를 미국에서 넘겨주었다. 그대로 받아들이면 미국소는 우리의 구조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가 된다. 그러다 광우병이 발병하면 비극은 시작될 것이다. 누구나 공감하듯 촛불시위는 이 권리를 다시 찾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다. 더 나아가 이미 구조화 되어 버린 것들을 돌아 봐야 한다.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는 먹을거리들. 예를 들어 국내 소는 항생제만 해도 미국의 3배 스웨덴의 24배나 사용한다. 광우병은 발병하지 않았지만 전수검사 역시 하지 않는다. 이것들에 대해 우리는 (이윤에 반해) 전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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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1)

 한국의 촛불 투쟁이 미국의 노동자-민중들의 투쟁뿐아니라 전세계의 투쟁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해본다. 미국의 광우병 정책을 비판하는 미국의 시민단체들이 힘을 얻고 있고, 일반 신문  마져 비판적인 기사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美농무부 정신 차려라"…美언론들, 줄줄이 비난"), 대만, 일본 민중들 또한 한국의 촛불 투쟁을 지지하고 있을 것이다. 진짜로, 우리의 촛불 투쟁은 바로 자본의 이윤에 맞서 전세계 민중들을 위한 것이지 아닌가! (머찐 투쟁이다.!!)


(잡담 2) 사람들이 햇깔려 하는 것.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올바른 주장"은 한국소도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에 관련된 글은 "인간광우병, 국산 쇠고기도 안전지대 아니다!" 를 참조하면 될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소의 불안정성을 미국소 수입근거로 삼는다는 점이다.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그 위험은 우리가 경험으로 명백히 확인한 바 있다.  한국 소의 위험은 "어렵겠지만" 우리 국회와 정부를 촛불집회와 같은 투쟁으로 압박한다면 집적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미국소의 경우는 다르다. 죽어라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밤새고 ..  "좀비"라는 욕을 들어 가면서 까지 아들딸 댈고 나와 시위했는데 그 결과는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로 (재협상도 아니고) 추가 협상을 하러 가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나마 얻은 결과는 말도 하기 싫을 정도의 결과를 가져 왔다. 그래 놓고 90점 받았다고 지랄발광을 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일상 식탁의 안전을 지켜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소를 더 엄격하게 규정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중에 한가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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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쓰촨성 지진에서 두꺼비에 부끄럽지 않은 시스템

중국, 쓰촨성 지진에서 두꺼비에 부끄럽지 않은 시스템

 

지진을 예측한 중국 쓰촨 (Sichuan)성의 두꺼비

 

지난(2008년 5월) 12일, 중국의 쓰촨성에서 발생한 대지진은 현재(5월 25일)까지 중국정부 공식발표로만으로도 사망자 6만2천664명, 실종자 2만3천775명에 이른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지진 사망자만 8만 명을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과 인접한 쓰촨성은 지진대 바깥에 있지만 유라시아판과 인도판의 경계 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불안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1800년 이래로 16년 마다 한 번씩 큰 지진이 발생하였고 1900년부터는 평균 11년 마다 발생하였다. 1976년 지진 이후에는 26년 동안 진도 7 이상의 지진은 발생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서 첸 쥬에종(Chen Xeuzhong) 국가 지진국 책임연구원은 2002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2003년 이후 지진 발생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지진이 발생하기 며칠 전에는 이상 징후가 발견되기도 했다. 진앙지 인근에서는 ‘똑똑한’ 두꺼비 떼가 지진 발생을 미리 알고(?) 이동하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그러나 신고를 받은 ‘무식한’ 현지 전문가는 "두꺼비 번식기로 정상적인 현상"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중국이 지진 발생 시점을 정확하게 예측한 때도 있었다. 1975년에 발생한 해성 지진 때의 일이었다. 당시 10만 명의 사람들을 구성해서 이상 자연 현상에 면밀히 수집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진도 7.3의 대지진이 발생했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해 해성에서 200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비슷한 규모의 탕산(唐山)지진은 예측하지 못했고, 24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실 지진과 같은 자연 재해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국내 기상청도 2대의 슈퍼컴퓨터를 가지고 있지만 불과 내일 날씨도 평균 4번 중 1번은 오보를 내고 있다. 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는 미국도 2005년에 슈퍼태풍 카트리나의 경로를 예측하지 못했다. 아무튼 중국 정부가 2002년의 과학자의 경고와 2008년 ‘똑똑한’ 두꺼비의 경고를 믿었다고 하더라도 대규모 지역주민 이주를 결정할 시점을 정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칫 재난 경보를 난발하여, 늑대소년이 될 수도 있고 이주비용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자연 재해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해결할 수 있는 쉽고 뻔한 해결방법이 있다. 자연 재해 발생 지대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건물과 보호시설을 갖추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재해가 발생할 때는 인간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재활과 복구를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뻔한 해결 방법들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시스템이 있다.

 

중국의 ‘시장’ 사회주의에서의 복구와 재건

 

1976년 24만 명이 숨진 중국 탕산(Tangshan) 지진의 복구는 중국정부의 철저한 계획 아래에서 진행되었다. 모든 자금과 정책에서 탕산 지진 복구에 우선권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장기간 지속적인 의료 해택과 사회 복귀 프로그램은 탕산 지역을 예전보다 더 좋은 곳으로 복구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2008년 또 한 번의 지진이 있었고 복구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중국은 1976년의 중국과 많이 다르다. 1980년 초부터 도입된 시장경제 시스템은 탕산 지진에서 힘을 발휘했던 공공의료 시스템을 파괴했다. 사설 의료 기관들이 많아짐에 따라 협동의료 시스템(CMS, Cooperative Medical system)은 점점 해체되어 갔다. 이 제도는 모택동 시절에 농촌인구 70%의 보건의료 재정을 담당하였다. 농촌에서 CMS의 해체는 바로, 의료 시설의 사유화와 의료 수가 상승을 의미했다. 2004년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쓰촨지역을 포함한 3개의 농촌지역에서 높은 의료 수가로 충족되지 못한 의료 수요가 13%에 이르고, 71%(농촌에는 90%, 도시에는 51%)가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Health Affairs, 23, no. 6 (2004): 222-234 Meng-Kin Lim). 점점 많은 사람들이 공공의료에 불만(높은 가격과 불친절)으로 인해 더 값싸고 질 낮은 사설의료시설을 찾고 있다.

 

이번 쓰촨 지진에서도 재건계획이 나올 것이다. 탕산(唐山)대지진 재건은 엄격한 계획경제 상황에서 이뤄졌지만 쓰촨 지진 복구는 시장 경제체제에서 처음 실시하는 대규모 재건사업이다. 사유화된 의료 시설, 그리고 시장 시스템 속에서 재난 복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우리는 이미 2005년 미국에서 생생하게 확인하였다.

 

자본주의에서의 복구와 재건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해서 1천800여명의 사망자와 80여만 명의 이재민을 내었다. 중국의 인민해방군은 지진 당일 쓰촨에 도착했지만, 세계 최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미국 군대는 뉴올리언스에 도착하는데 만 4일이 걸렸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지진직후 정치국 중앙위원 회의를 소집하여 대책을 강구했지만, 부시는 당일 골프를 치고 있었다. 중국정부는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과거 식민지 통치를 받았던 일본과 정치적으로 적대적인 대만의 구조 활동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쿠바 정부가 1600 여명의 의사, 야전 병원 그리고 83톤의 의료품을 보내 준다는 인도적 제안을 무시했다.

 

미국의 모든 구조 노력은 근본적으로 자유 시장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보험에 가입된 사람들은 복구가 가능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노숙자로 전락했다. 심지어 당시 뉴올리언스에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려는 주민들을 법 집행기관에서 총기로 위협해 다시 돌려보내는 사례도 있었다. 주민들은 굶주림에 약탈을 했고, 경찰은 약탈자를 사살하도록 명령했다.

 

지주, 개발자, 정치인들은 재해 지역을 이윤을 뽑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서민 주택 보다는 고급 주택위주로 재건하기를 원했고, 이로 인해 가난한 지역주민들은 돌아갈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태풍에 흩어졌던 뉴올리언스 시민들 중 아직도 20만 명 이상은 외지를 떠돌거나 영영 이곳을 떠났다. 돌아온 사람들의 삶도 예전과 같지 않았다. 트레일러에서 피난민처럼 생활하는 가족이 4만2천250가구에 달하고, 일자리가 없어 노는 사람이 태반이다. 버스운행 정상화 율은 19%에 불과하고 병원의 3분의 1은 아예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2007년 8월 상황)

 

관료주의와 시장시스템의 결합

 

중국에서도 시장 시스템의 폐해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번 지진에서 가장 큰 피해는 학교 학생들이었다. 시장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던 시기에 지워진 이들 건물들은 건축비를 줄이기 위해 노후한 건축자재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기준에 미달하는 재료를 사용하였다. 물론 쓰촨성에 들어선 다국적 기업들, 노키아, 마이크로소프트, 모터롤라 그리고 IBM의 건물들은 멀쩡했다. 무너진 것은 학교와 가난한 노동자-농민들의 집이었다. 유사한 현상이 지난 겨울 1억 명의 이재민을 낸 폭설에서도 나타났다. 폭설에 무너진 송전탑과 전봇대들은 거의 모두 1990년대 불량으로 지어진 것이었고 1950년대 계획경제하에서 만들어진 것들은 복구가 용이하였다.

 

이번 지진 대책에서 중국은 미국과는 확실히 달랐다. 하지만 이 다른 점이 속에는 중앙 통제적 관료 시스템을 포함하고 있다. 중앙 통제적 관료시스템은 언론을 통제하였고, 복구 작업에서 자발적으로 그리고 민주적으로 조직되는 모임까지 억눌렀다. 그 결과 인민들에 의한 민주적 통제는 약화되었고, 불신은 커져갔다. 일부 구호품을 빼돌리는 관료들이 발견되자 무력 충돌로까지 이어졌다.

 

 

두꺼비만큼 똑똑한 시스템

 

남미의 카리브 해역에는 잦은 허리케인에도 꿈쩍 않는 나라가 있다. 지난 1998년에는 허리케인 조지로 인해 인근 국가에서 6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으나, 이 나리에는 단 4명에 그쳤다. 또 2004년에도 이제까지 최대 규모의 허리케인 “아이반”이 불었으나, 단 1명의 희생자도 나오지 않았다. 반면 미국에서는상륙시 세력이 많이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5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바로 사회주의 국가 쿠바에서의 일이다. 쿠바에는 미국이나 중국보다 더 나은 기상학자가가 있는 것도 아니며, 기후에 대처하기 위한 특별한 힘을 부여받은 것도 아니다. 물론 중국에서 보이는 똑똑한 두꺼비도 없다. 모든 것은 사회주의 노선을 따르는 사회 인프라와 관련이 있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전체 인민과 국가가 철저한 계획에 따라 국내의 공동 자원을 이용할 수 있게 동원된다. 마을마다 미리 준비된 대피소가 있고 또 가정의사가 있다. 이 의사들은 평소 환자를 직접 방문하면서 사회·경제적 환경을 함께 고려하여 치료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사회 시스템과 원활하게 연동되는 시민방위 시스템이 있다.

 

시민 방위 시스템에서는 피난 시에 지역주민 가운데 도움이 필요한 최신자료를 확실히 배포하고 교육한다. 그리고 자연 재난 발생시 지역 의료진들은 피난민과 함께 움직이는데, 애완동물과 수의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TV와 냉장고도 대피소로 옮겨진다. 지역 스스로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이 시스템 속에서는 누가 자신의 물건을 훔쳐갈까 싶어 대피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은 없다. 만약 피해가 발생한다면 정부에 당당하게 재발되지 않은 시스템으로 복구할 수 있다. 결국 중앙의 계획, 그리고 민주적 통제가 자발적인 개인의 노력과 함께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다. 이만 하면 중국의 두꺼비에 부끄럽지 않은 시스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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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바 HD-DVD 포기하고 주가 상승하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오랜만에 또 잡소리를 해보자. 오늘 문득 지나가다..

[도시바의 승부사 니시다 사장 ‘DVD 전쟁’ 소니에 지고도 이겼다 ] 는 기사를 봤다.  삼성의 기관지 비스무리한 모 중앙 신문에 난 기사다.  DVD 업계의 지저분한 싸움에 대해서는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자본들간의 피터지는 싸움으로 DVD라는 기술은 CD에서 맡보았던 영광을 누리지도 못하고 다음 세대 DVD로 넘어가게 되었다. 

 

다음세대 DVD도 역시 두진영으로 나누어 싸우고 있었는데, HD-DVD 진영과 블루레이 진영이 그것이다. HD-DVD진영에는 도시바, NEC와 함께 MS, 유니버셜픽쳐서 가 있었고, 블루레이 진영에는 소니, 마쯔시다, 삼성, LG와 함께 월트디즈니, 소니픽쳐스, 워너브라더스  등이 있다. 파라마운트가 HD-DVD에 있다가 블루레이로 이전했고.. LG는 과학기술 노동자들을 쫙쫙 쪼아 붙혀 양쪽을 다 지원하는 드라이버(이른바 슈퍼 멀티 블루)를 2007년에 개발한 바 있다. (물론 아직 시장성이 없어 개발 엔지니어들은  죽어라 일하고 욕듣고 있는 실정.., SSI-BAL  시장성이 없는 것이 노동자 책임인가? 지들 책임이지...  물론 당시 CTO는 많은 상을 받았다)

 

자세한 기술적인 부분은 Web.을 참조하시고, 간단하게 기술을 설명하면, HD-DVD 는 30GB용량, 블루레이는 50GB 로, 저장용량만 보면 블루레이가 앞선다. 허나, HD-DVD는 CD, DVD와 결합이 쉽고, 디스크 관리가 쉽다. 블루레이는 다 어렵다고 보면 된다.

 

 기사를 요약하면 도시바의 니시다 사장이라는 넘이 2년간 HD-DVD쪽으로 방향을 잡고 노동자들을 꽉꽉 쪼아 붙이다가..  시장에서 밀리자.. 하루 아침에 HD-DVD 사업을 접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가가 오르고 주주들로 부터 "니시다 그넘 참 난 넘이야~"라는 칭찬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 기사에 난 그 넘 사진 쫌 봐주기 바란다... 얼굴에 기름끼 봐라~~..

 

허~참...

그렇다면 그 넘의 잘 못된 판단 때문에 2년간 자본간의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고 죽어라 HD-DVD 기술을 개발한 노동자들은 어떻게 될까? 뻔하다.. ..  구조조정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 도시바 주가가 오르는 이유가 뭘까? HD-DVD 개발을 빨리 포기했기에?  과연 그럴까? 아마도 구조조정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요즘 분위기가 이렇다.  판단 잘못한 넘은.. 기름끼 좔좔 흐르고.. 그 넘 따라 가다가 X빠지게 일한 노동자들은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 

 

요즘 자본가들의 구호는 단순하며 혁명적이다.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로!!!" 그러나 모든 권한과 혜택은 자본가에게!  

 

요즘과 같이 기존 기술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는 과학기술 노동자들은 돈만 쓰는 죄인이된다. 요즘 기업들은 신좌파보다 더 탈근대 분위기를 좋아 한다.  그를은 자본에 포섭된 노동자-민중의 "욕망"에 호소한다. 이제 기술(성능)이 아니라 '뒤쟈인(design, 디자인의 오뤤지적 표현)'이 상품의 생명이다. 껍데기만 애뿌게 색칠해 놓고 그 속에 알맹이는 네트워크를 활용한다. 하청업체와 비정규직들을 네트워킹해서 쪼아 붙이면 개발완성!! (아~ 탈 근대는 네트워크의 시대였던가?).  10년 수명으로 개발된 전자 제품은 1-2년에 버려진다. 그리고 그 폐기물은 중국이나 제 3세계에 수출되어 그 곳의 노동자-민중들을 폐기물에 병들게 한다. (전자제품에는 납, 수은 등 각종 중금속이 풍부하고 폭발위험이 있는 밧데리도 있다)

 

좀 다른 애길 해 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기업은 '사적 영역'으로 취급된다.  그 속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이 법이 허용하는 한에서 마음대로 한다. 사기업이라는 왕국은 절대 군주가 군림하며, 과거 100년간 자본가들이 쌓아 올린 민주주의, 인권과 같은 말들은 찾아 볼 수 없다. (혹시.. 주식회사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 도시바도 주식회사고 LG, 삼성 모두 주식회사인데... 그속에 어떤 민주주의가 있는지...)

 

노동자들이 상품 기획이나 경영에 참여한다면, 좀 나아 질까?

 

 이 치열한 자본의 경쟁에서 노동자들이 참여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더 열심히 더 많은 일을 할 것으로 보인다.  돈 돌아가는 것도 보일 것이다.  경영참여의 목적이 이러한 것이 되어서는 초장 부터 종친다. 

 

 더 중요하게,  과거 100여년간의 자본이 구축한 구조가 있기에.. 한 기업 수준에서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순간 자본과의 경쟁에 휘말릴 것임에 명심해야 한다. 그속에는 경쟁에 이기기 위해 자본이 개발한 효율적(?)인 관계, 즉 위계질서가 확립될 것이다.  관리하는자와 관리받는자가 생기고, 같은 수준에서 육체노동자와 정신노동자들 사이에 위계적 분업이 이루어 질 것이다. 새로 고용된 노동자들에게는 더 많은 착취를 강요할 것이다. 

 

이렇게 진행되면 뭐~ 새로운 부르조아(붉은 부르조아)의 탄생 정도의 의미 내지는... 아니면 '타락한 노동자 기업(?)' (요런식으로 노는 것도 재민네..)

 

암튼..

 경영참여는 이러한 형식적인 것 이외에 내용적인 참여(어떤 것을 생산할 것인가)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어떻게 자본의 경쟁관계에서 독립적으로 생존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서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생산단위로써의 '주체'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주체의 지위라는 것이 자본가들이 향유하고 있는 성격의 지위가 되어서는 안된다. 

 

기업의 민주화는  분명 자본에 위협적인 주장일 것이다. 자본가들은 노동자 다수가 기업 경영에 민주적으로 참여하면 배가 산으로 가고 자본의 경쟁에 망한다고 아우성 칠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몇몇 맹아적 형태가 있었다. '지역사회의 민중을 위한 과학기술, 생산자를 소외시키지 않는 과학기술'을 표방하였던 영국 루카스 항공의 협동계획 사례도 있다. 이 내용을 잠시 소개하면,

 

"1969년 루카스 항공 노동자들은 비용감축을 위해 일부 공장을 폐쇄하고 노동자를 정리해고하려는 경영진에 맞서 그때까지 없었던 전혀 새로운 시도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이들은 지역사회의 주민들과 협력해 그때까지 그들이 만들었던 전투기 엔진이 아닌 150개의 혁신적 제품을 설계하고 그중 일부를 시제품으로 내놓았다. 여기에는 저렴한 의료기구, 저연료 엔진, 도로, 철도 겸용 버스, 태양 집열장비 등 인권, 환경, 지역사회의 필요를 고려한 제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1970년대 10여년 동안 진행된 이 계획은 경영진에 의해 거부되었고, 결국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이 해고당함으로써 실패로 끝나고 만다." ("과학기술의 덫에 갇힌 언론", 강양구, 《녹색평론》제80호 2005년 1-2월호)

http://greenreview.co.kr/archive/80KangYanggu.htm

 

또 기업은 아니지만 리눅스 생산에서 이용자들의 참여도 눈여겨 볼 만하다.

 

 또 중요한 것이 있다.  그 속에서 자본 구조의 늪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  이러한 흐름을 모아 낼 수 있는 단위, 자본의 구조를 파괴하고 새로운 구조를 형성시킬 수 있는 "중장기적으로 존재하는" 개별 단위와 이들과 유기적으로 결합될 연결 통로 (당과 소비에트(평의회)..아직 뭔지는 모르겠다. 당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싫어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혹자는 소련의 경험을 절대화해서 평의회와 같은 조직이 혁명시기만 존재한다고 한다. 뭐~ 그럴한한 이유가 있을까? 그 조직이 대체권력의 핵심 토대라면 혁명시기뿐아니라 일상시기에도 조직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

 

이른 흐름을 만들어 가는 것을

"기업의 사회화"의 한 방향으로 애기하고 싶지만, 왠지 분배에 초점이 가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기업의 민주화" 하면 왠지 좀 뉘앙스가 약하다.. 뭐라 해야 할까?  주절 주절 말이 여기 까지 와버렸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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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변혁을 위한 과학기술은 존재하는가?

특근하면... 김진균선생님 동영상보고 울적해서 함 적어봤습니다.

 

 

변혁을 위한 과학기술은 존재하는가?

과학기술자에 대해 요즘 사람들은 흥미 없어 하지만(이공계 기피 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17-8세기 과학자들은 탤런트나 마술사와 같은 인기를 누렸다. 당시 과학의 시연은 대중들에게 마치 마술과도 같이 신기하게 보였고, 또 그 기술을 이용하면 생활에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과학기술자들은 자본가들의 지원을 받았다.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과학이 중세 종교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데올로기적 물질적 기반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흔히들 갈릴레오가 ‘지구는 돈다’라고 해서 종교재판을 받았다고 하지만, 이미 갈릴레오는 자본가들에게 종교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와 이데올로기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요주 인물이었다.  


이렇게 자본가들로부터 지원을 받은 과학은 20세기 냉전을 맞아 더 비약적인 발전 하는데, 그것은 70년대 반도체(고체물리)를 기반으로 하는 양자역학과 80년대 광학의 발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80년대 전쟁광 레이건의 스타워즈 계획은 광학을 하는 과학기술자들에게는 산타클로스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 버린 90년대 들어 자본주의가 추락하면서, 기존의 과학기술 역시 추락하고 있다. 돈 되지 않는 과학은 관심을 잃어갔고, 기존 기술은 발전의 발전을 거듭해서 한계까지 왔다. 자본주의 상품은 제품의 유용성(기능성) 보다는 껍데기 디자인만 바꾸어 ‘신제품’으로 출시되고 있다. 이로 인해 그 동안 각광받았던 고학력 과학기술자들은 노동자 대중들과 같은 운명이 되었다. 당시 국내에 주주자본주의가 도입된 시기였다. 이에 발 맞추어 IT, BT NT 등이 등장하였지만, 주가와 동고동락하는 이들 기술들은 주가가 폭락하면서 순차적으로 IT가 몰락하고, NT도 몰락하고 황우석 사건으로 BT마저 몰락해 가고 있다 (아직까지 BT에 대한 기대는 크다)

과학기술을 비판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 가 있다(아래 레빈스교수 글 참조). 우선 예전의 과학은 공유되었지만 지금은 특허 등으로 사유화되고 기업 의 비밀로 간주되어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과학의 오용에 대한 비판(주로 환경오염, 원폭문제)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자유주의 시민단체에서도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고, 대립지점도 분명하며, 주로 과학기술 정책비판에 의존하였다. 두번째로 엥겔스나 레닌이 했듯이 과학기술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다. 과학기술의 검증 역시 과학기술계에서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이러한 비판을 어렵게 한다. 한번 따져보자 현대 과학기술이 과연 객관적일까? 혹시 어떤 이데올로기를 포함하고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IQ를 TEST해 보니까, 흑인 보다 백인이, 여성보다 남성이 뛰어나다는 ‘과학적’ 결과가 있다고 한다. 어떤 과학자는 범죄 유전자를 찾는다고 난리를 피운다. 또 잘 알려진 ‘주위력 결핍 장애’라는 병을 정의하고, 사회학적 치료방법을 도외시 한 채 아이들에게 마약을 처방하기도 하고, 이 마약이 ‘공부 잘하는 약’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또 기독교 신화(혹은 아프리카 원주민 신화)와 유사한 ‘빅뱅이론’은 현대 우주론의 주류이다. 또 각 나라에서 발견되는 유인원의 역사는 고무줄과 같다. 이러한 결과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과학기술은 노동자-민중의 삶과 과학기술의 삶은 아주 밀접한 듯 하지만(소비의 측면에서) 아주 동떨어져 있다(생산의 측면에서). 과학에서도 노동자-민중의 ‘주권(전복할 수 있는 권리)'은 없다. 근대에서 탈 근대로의 주장을 펴는 분들은 하나의 대안으로‘이성(과학)’에서 ‘욕망’으로의 이전을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과학기술에 얽혀 있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본질적인 해답은 나올 것 같지 않다. (그렇지만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과학기술(이성)을 축으로 해서 ‘욕망’을 탐구하고 싶다. )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고민은 다음과 같다. 과학기술에 대해 앞서 두가지 측면에서 비판은 아주 중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첫번째와 두번째 비판을 수행하면서, 그 대안을 찾는 것이다. 중세에서 근대로 오면서 과학기술의 발전은 역사 발전의 중요 선상에 있었다. 그 과학기술은 자연에 대한 객관성을 ‘일부’ 포함하면서도 자본주의의 탄생과 성장을 위한 과학이며 과학기술이었다. 그렇다면 변혁을 생각하는 우리들, 또 이 시기에 첫번째와 두번째 비판에 자유로우면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과학 혹은 과학기술, 은 무엇일까? 혹은 더 비판적으로 그러한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없다면 다른 대안은 무엇인가?

 

필자는 이러한 입장에서 과학기술을 고민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과학기술을 비판하고 찾는 작업들에서 소련의 ‘리센코 사건'은 소중한 교훈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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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최종]우리 자신의 과학 : 맑스주의와 자연 -맑스주의 과학 III

우리 자신의 과학 : 맑스주의와 자연 -맑스주의 과학 I

우리 자신의 과학 : 맑스주의와 자연 -맑스주의 과학 II

[번역]우리 자신의 과학 : 맑스주의와 자연 -맑스주의 과학 III

 

리차드 레빈스


현실 과학에 대한 비판 


“현실에 존재하는 과학”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 수준에서 진행해야 한다. 좀 쉬운 비판으로 자유주의 비판이 있다. 그것은 과학이 자신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래] 과학은 국제적으로나 대중적으로 공개하는 규칙이 있는데, 이 규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군사기밀이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거부된다. [막대한] 연구비용과 과학교육 그리고 과학 언어의 난해함은 일반 대중이 독자적으로 [과학을] 논증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한다. 앞으로 과학자의 자격 증명서나 [과학자의] 염색체 같은 것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생각을 발표할 수도 없을 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과학에 관한 대중적인 결정을 할 때 과학의 권위에 최종적으로 호소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신뢰성은 권력 내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답을 줄때에만 유지된다. 과학자에게 신뢰성은 중요한 재산이다. 그런데 그 신뢰성은 그들의 충고를 정책 결정자가 잠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과학이 스스로 정한 규칙을 따르지 못한다는 비판 보다 더 중요한 비판은 객관성에 대한 기준 자체가 종종 객관성을 유지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인 아이디어는 그 생각의 원천에 대한 기준 없이 과학 자신의 힘으로, 과학의 틀 내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이것은 얼핏 보기에 논쟁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기준인 것처럼 보이며, 기본적으로 공정한 것으로 보인다(역주- 예를 들어 과학의 공정성을 평가할 방법이 있다면, 그 평가 방법을 또 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무한히 반복해야 될까?). 그러나 페미니스트 측의 과학 비판에서 강조했듯이 연구 활동에서 연구자[특히 자본주의 남성]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발견의 과정에 대한 [일종에] 사기이며 과학 논쟁을 이해하는데 장벽으로 작용한다.


인종주의자와 성차별 주의자들이 억압을 위해 [만들어 낸] 이성의 역사와 내용을 모른다면, 지식, 질병 혹은 사회적 행동에 대한 생물학적 결정성에 대한 논쟁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과학 논쟁의 원천과 사회적 결과를 명확하게 하는 것은 그 논쟁에 해답을 줄 수는 없을지라도 문제를 명확하게 분석하는데 필요한 요소이다.


감정(feeling)에서 사고(thinking)를 분리해 내는 것은 과학적 활동의 필수 단계이지만 단지 하나의 단계일 뿐이다. 그것이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것이 될 때, 과학자들은 잔인하리만큼 초연하게 가장 살인적인 기술과 이론을 개발한다(역주-원자 폭탄 개발을 생각해보라). 과학 활동이 중립적이라는 거짓을 드러내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작업가설(역주- 여러 가지 얻은 실험결과를 기초로 하여 다음의 실험계획을 세우기 위한 잠정적인 가설)을 선언해야 한다: 억압에 관대하고, 정당화하며 그 억압을 증진시키는 모든 과학 이론은 잘못되었다; 과학 자료, 논리, 분석 혹은 함축된 의미를 유추할 때 그 속에 결점이 있는지 없는지를 발견해 내는 것은 우리들의 임무이다. [팽배한] 이데올로기 내에서는 잘못된 방법론이 받아들여지고 잘못된 논리들이 [마치 정당한 것으로] 이해되고, 잘못된 주장들이 그럴싸하게 들린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것 역시 우리들의 [중요한] 임무이다. 



이것이 맑스주의가 주류 과학적 이데올로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맑스주의는] 세계의 변혁을 목적으로 하고 [변혁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결과와 밀접하게 관계하는 실천의 이데올로기다. 이러한 당파성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데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맑스주의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게 한다: 인류의 생존과 해방; 그것은 어떤 문제를 볼 때, 더 넓은 맥락에서 문제를 설정하기 위해 그 문제의 경계에서 부터 이의를 제기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 주위를 흔들고 있는 이데올로기들 때문에 보지 못하는 분석 목록들을 볼 수 있다. 또 맑스주의는 문제의 해결책들이 인민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한다. 그러나 더 좋은 세계에 대한 강력한 열망은 우리가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사람들이 우리의 프로그램에 얼마나 응답하는지, 얼마나 빨리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지 혹은 승리 후에 우리가 직면할 문제들이 무엇인지를 보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아무튼, 맑스주의는 과학과 공통으로 그리고 철학과 공통으로 일부 특성을 공유하지만 그것은 과학도 아니며 철학도 아니며 그리고 그 둘을 기계적으로 합쳐놓은 것도 아니다.


과학 그리고 좌파


과학적, 기술적 접근방법 역시 과학의 자기평가를 객관적 생산력으로 그리고 진리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파괴적인 결과를 [단순히] 과학을 잘못 이용했기 때문으로 보고, 또 과학의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진리를 왜곡한 것으로만 본다(역주- 과학 자체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데, 잘못 이용하거나 왜곡했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IQ평가나 우생학과 같은 과학은 과학을 왜곡하거나 오용한 결과가 아니라 그 자체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이다.). 그래서 과학-정치는 과학 정책으로 대치되고, 과학 정책의 임무를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를 제거 하고 이데올로기적 왜곡을 제거하는 것으로 본다. 같이 실린 글(“과학과 발전: 농업에서 7가지 과학 발전주의자의 미신”)은 이러한 견해가 갖는 함정에 대해 잘 설명해 놓았다.


이러한 기술 관료적 견해에 반대하고 저항하기 위해, 과학의 계급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며 오만한 측면이 강조된다. <급진 과학 저널(Radical Science journal)>로 잘 알려진 이러한 견해는 다음 슬로건으로 요약된다. “과학은 사회적 관계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과학은 사회통제(social control)이다. [과학] 이론은 자연과는 관련이 없고 사회에 대한 의미만이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원리는 아원자 입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개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관한 것이다. 생산 확장의 목적은 더 이상 인간의 필요가 아니라 자본주의 명령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객관성은 계급 이데올로기를 숨기기 위한 슬로건이다.


페미니스트는 과학적 화법에서 감정을 배제하는 것을 남성 가부장적인 측면이라고 강조하다. (수잔 그리핀(Susan Griffin(미국, 에코 페미니즘 문학가)의 “비인칭 수동문“에서) 예를 들어 지배를 나타내는 표현들, 자연을 ”관통하는(penetrating) “ ”그녀(자연)로부터 그녀(자연)의 비밀을 캐내는”,”지배(conquering) “ 등. 그리고 세계에 대한 공격적이고 거만한 [과학의] 자세는 피할 수 없는 재앙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특히 과학이 앎을(지식을 얻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은 대중 지식, (비이성이 아닌) 탈 이성적인(역주-이성 이외의 정신작용, 즉 감성, 감정 등을 의미) 그리고 “직관적” 지식, 즉 기원은 모르지만 특정 단계에서 감정적이고 심미적이고 지적인 결론을 통합한 과거 경험에 비추어 해석되는 인식들의 복합체들에 도전받고 있다(역주-과학은 아주 전문화되고 고도로 발전되었다고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정작 내일 만날 애인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직관이나 경험보다 더 해답을 주지 못한다).


자본주의 기술에 대한 천박한 미국 비평가들도 역시 [과학을] 유럽의 창조물로서 이질성을 강조하고 자연에 대한 전통적인 종교적 접근 속에서 저항의 원천을 찾고 있다. 기존에 과학에 대한 도전은 대안적인 치료와 생태학 등 여러 운동에서 그리고 새로운 전체론적(holism)인 여러 학회에서 실천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들은 우리가 과학을 분석할 때 중요하게 취급되고 고려되어야 한다. 이들은 기존의 과학 기구(institutions)의 외부이지만, 너무나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하기에] 통상적으로 질문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신선하고 새로운 시각을 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존의 과학을 부정할 때 단순히 기계적 의미에서 과학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거부되는 측면을 다시 통합하는 변증법적인 부정을 의미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학적인 견해와 반과학적인 모든 견해를 극단적이라서가 아니라 일면적(one-sided)이기 때문에 비판한다. [이 두 측면을] 구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자유주의자들은, “극단적인 것”은 나쁘고 “중도적인 것”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극단주의에 대한 비판은 당면한 문제를 회피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1964년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에 대항한 린든 존슨(Lyndon Johnson)의 선거 캠프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곤 했다(*). 그러나 극단-중도의 축은 세상에 대한 양적인 견해이다. 반면에 “일면적”이라는 비판은 질적인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다원적 혹은 유연한 방식이기 때문이 아니라 변증법적이 때문에 강조되어야 한다. 변증법적이라는 것은 어떤 견해에 대한 여러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순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주의자의 속기(shorthand, 날림의 언어)를 이용하는 것은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기에 반드시 피해야 한다.


기술과 과학의 도입과 발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과학과 기술은] 사회적 생산물로써 그 내용은 자연을 그대로 반영한 것도 아니며 미리 운명 지워진 특별한 어떤 길을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해로운 기술에 대한 대안으로 기술 그 자체가 거부 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기술은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물질세계에 작용하기 위한 의식적인 방법이다. 넓은 의미에서 기술은 우리 종(species)만큼 오래되었다. 우리는 단순히 기술 이전의 목가적인 자연 상태를 선호한다고 해서 그것을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적, 사회적 필요를 보다 더 잘 충족시킬 수 있는 다른 대안적 기술을 찾을 수 있다.


과학에서 대안적인 길을 만드는 문제는 과학사회 내부에서 그리고 외부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문제이다. 그것은 과학이 가지고 있는 전 영역의 모순을 이해해야 하고, “실제 존재하는”, 대부분 부르주아지적인, 과학에 투쟁적이며 협동적일 수 있는 유연성을 필요로 한다. 파괴와 이윤을 위해 과학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물론이고 그것을 선호하는 제도적 구조 그리고 과학자들이 재생산되고 사회화되는 방식, 그들이 연구하는 지적인 틀에 대해서도 저항할 필요가 있다. 혁명운동은 과학을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의 전쟁터로 다시 한 번 재인식해야 한다.


COPYRIGHT 1986 Monthly Review Foundation, Inc.

COPYRIGHT 2004 Gale Group


(*) 역주- 골드워터는 북베트남에 핵폭탄을 투하하고, 사회보장제도를 없애자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친 극우주의 정치가이다. 로널드 레이건은 1964년 대선에서 골드워터를 지지하는 운동을 했다. 린드 존슨은 골드워터의 핵폭탄과 같은 극단적인 발언을 비판하기 위해 광고를 제작했다. 데이지 꽃잎을 따며 놀던 순진한 어린 소녀의 눈망울에 핵폭발의 버섯구름이 투영되는, 그 유명한 ‘데이지 걸’광고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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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노동자..

참세상에 "삼성반도체 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 발족"기사가 났군요.

"23세 황유미 씨 등 최근 7년간 노동자 5명 백혈병 사망"했다고 하는 군요.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조치가 취해지기 위해서 5명의 생명이 부족한 것일까요?

 

유사한 소송이 대만에서는 RCA(미국)를 대상으로 그리고 미국에서는 IBM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2002년에 적은 글(깨끗한(?) 첨단산업의 더러운 비밀<노동자의 힘>)과 번역글(클린 룸의 더러운 비밀<사회진보연대>)이 있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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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첨단산업의 더러운 비밀

 

과학기술혁명을 주도했던 전자 산업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먼지하나 없이 ‘깨끗한’ 작업장의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자본가들은 늘 첨단 기술의 깨끗한 작업장을 자랑해 왔다. 한국에서도 대표적인 전자 산업인 반도체 공장들이 환경 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첨단 전자회사의 ‘깨끗한’ 작업장이 반도체 칩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지난 5월 말 대만에 있는 다국적 기업 RCA(Radio Company of America) 전직 노동자들은 그들의 실상을 알리고,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미국 원정 투쟁을 전개했다. RCA 노동자 자력구제 연합(Self-help Association for RCA Employees)에 따르면 RCA에 근무한 노동자들 중에서 1998년까지 1375명이 암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이들 중 216명이 죽었다. 그리고 102명이 여러 가지 종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공장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살인적인 ‘깨끗한’ 작업장


RCA는 30여 년 전부터 미국의 대표적인 가전 제품 제조 회사였다. 1969년에 대만의 타오위엔(Taoyuan), 주후베이(Zhubei)와 이란(Yilan)에 공장을 지었고, 전체 노동자 수는 2-3만 명 정도 되었다. 1992년에 문을 닫은 RCA는 1986년에는 GE(General Electric) 소유였다가, 1988년에 프랑스 톰슨사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GE와 톰슨은 둘 다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이다. 1992년 문을 닫기 전까지만 해도 대만 정부는 RCA 공장을 대만의 대표적인 수출 회사의 전형으로 선정하는 등 철저하게 그들의 본 모습은 은폐시켰다. 1994년이 되어서야 타이완 환경보호국(EPA)은 RCA가 발암물질로 알려진 독성 폐기물과 유기 용매를 불법 매립하여 그 일대의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켰다고 공개했다. 그 후 1998년에 환경보호국은 RCA공장 지역을 영구 오염지역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현 RCA 공장의 소유주인 프랑스 톰슨사는 그 주민들과 노동자들의 질병과 그들의 공장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대만 정부 보고서를 인용하며 반박하고 있다. 1999년에도 유사한 소송이 있었으나 기각된 바 있다. 노동자들은 수년동안 지속적으로 GE와 톰슨사를 대상으로 가해 책임을 인정하고 정당한 보상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미국에 도착한 그들은 LA, 뉴욕, 워싱턴에서 거리 선전전 및 대중연설을 진행했으며, GE에 대해서는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항의 투쟁을 펼쳤다. 아울러 미국의 SVTC(Silicon Valley Toxics Coalition), 그린피스, AFL-CIO(미국노총) 등 미국 내 활동가들과 환경부 간부, 의원들과 만나 그들의 상황을 전했다.


이러한 첨단 산업의 문제는 비단 제3세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현재, 250여명의 노동자들이 대만 노동자들과 같은 이유로 뉴욕과 캘리포니아에 있는 IBM과 내셔날 반도체(National Semiconductor) 등 첨단 반도체 회사를 고발했다. 미국 노동자들은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수많은 독성 혼합물들이 선천성 기형과 유산 그리고 암을 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천성 기형아 출산, 암, 환경 파괴…

발뺌하는 자본가들


미국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노출된 독성물질의 양은 미국 정부의 직업 안전 보건부(OSHA)에서 설정한 기준치 이하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그 규정은 수십 종의 위험한 물질들이 항상 새어 나오고 있는 실제 작업장의 상태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노동자들의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다. 일반적으로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산업의 작업장을 클린룸(깨끗한 방)이라고 부른다. 클린룸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는 먼지가 나지 않는 방진복이라는 옷을 입고 작업한다. 그러나 이 옷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반도체 칩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계된 옷이다. 또한 클린룸의 공기도 일정하게 순환되지만 필터는 먼지만 제거하고 화학 가스는 제거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클린룸에서 작업하는 동안 발암물질 혹은 발암물질로 의심받는 수십 종의 화학약품에 노출되고 그것을 호흡하게 된다. 첨단 산업의 클린(Clean)한 이미지는 안전하다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다.


1991년에 캐나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클린룸에 사용되는 약품과 유사한 화학약품에 노출된 임산부들은 125명중 13명이 기형아를 출산했다고 한다. 이 통계는 화학약품이 없는 다른 작업장에서는 125명중 1명 정도임을 감안할 때 매우 큰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스코틀랜드 조사에서도 남성노동자에서 나타나는 뇌종양 발생률이 평균보다 4배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의 반도체 노동자들에 대한 암 발생률은 조사된 적이 없다. 1998년, 캘리포니아 보건 서비스부(California Department of Health Services)는 이에 대한 연구를 계획한 바 있었지만,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참여를 거부했기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


한국 전자산업 종사노동자의

정밀 검진과 작업장실태조사가 시급하다!


이렇듯 첨단 ‘공해’ 산업의 문제는, 전통산업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선진국에서 직업병 및 환경 문제가 발생하여, 자국의 노동자-민중의 저항에 부딪치게 되면 다국적 기업은 환경 규제가 허술한 제3세계로 이동한다. 예나 지금이나 다국적 기업은 한 나라에서 충분한 이익을 뽑은 다음 노동자들에게는 항상 직업병과 환경오염을 뒤에 남기고, 규제가 보다 허술한 제3세계로 이전했다.

차이가 있다면, 첨단산업에서 발생하는 직업병은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기 때문에, 그 원인 규명이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선진국과 제3세계 국가들의 노동자들이 거의 동시에 유사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을 차이점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정부나 연구소가 발간하는 첨단 산업에 관련된 자료들은 대부분 자본가를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산업 보다 첨단 산업에서 더욱 노동자-민중들이 대응하기는 힘들고, 장기간의 투쟁을 요구한다.


대만과 미국 노동자들의 이번 투쟁은 첨단 산업의 깨끗한 이미지 이면에 숨겨져 있는 더러운 음모를 전세계 노동자-민중들에게 알려내기 위한 투쟁의 시작으로 의미가 있다. 특히, 전자 산업의 역사가 20여 년이 되고, 환경규제도 선진국보다 엄격하다고 볼 수 없는 한국의 노동자-민중들에서는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제일 우선적으로 한국의 전자 산업에서 작업장 실태에 대한 조사작업 즉, 작업장에서 사용되는 각종 독성물질들의 종류(첨단 산업의 자본가들은 독성물질의 종류를 기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할 것이다)와 그것이 인체와 주변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작업과 전자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그리고 종사한 적이 있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건강상태에 대해 정밀 조사를 요구하는 투쟁을 시급하게 진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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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룸의 더러운 비밀

반도체 산업은 첨단 기술의 “클린 룸”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은 첨단기술의 보호 장치들이 마이크로 칩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시작했다.

수잔 Q. 스트라나한

1984년, 종합 검사 결과, 40세의 아미다 메사(Armida Mesas)는 유방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라틴계인(라틴계 여성들은 대부분의 소수민족보다 암 발생률이 낮다) 메사는 두 아들을 출산했으며(출산은 역시 감염을 낮춘다) 술과 담배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어머니도 그리고 7 자매 역시 이러한 병에 걸린 적이 없는데 그녀만 이런 병에 걸리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나이 57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왜 그런 암에 걸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녀의 동료, 수자네 루비오(Suzanne Rubio)가 왜 36세의 나이로 유방암으로 죽었고 그녀가 알고 지내던 상당 수의 사람들이 왜 암에 걸리게 되었는지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 모두는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있는 IBM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컴퓨터, 휴대폰 등, 하이테크 상품에 적용되는 실리콘 칩을 생산했던 것이었다.

메사는 다른 250명의 반도체 노동자들과 그리고 그 가족들과 함께 하이테크 공장에서 사용되는 독성 화학약품들이 노동자들에게 암을 유발하고 자녀들에게 선천성 기형을 일으키는 지 여부를 증명하고, 고용주들이 그 화학약품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런 보호대책을 새우지 않았음을 밝히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사회에 부각되지 않고 있다.”라고 요셉 라도우(Joseph LaDou) 박사는 언급하였다. 그는 직업병치료를 위한 국제 센터 회장이며, 1970년대부터 대규모 반도체 제조가 시작된 이래로 이 산업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거의 30만명의 사람들이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 노동자들은 작업량의 1/4정도는 일상적으로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데 사용되는 독성 화학약품에 노출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반도체 노동자수는 백만명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 회사중 인텔과 모트롤라와 같은 미국회사들은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고 매년 말레이시아, 필리핀, 중국에 새로운 공장을 짓기 위해 수 조원씩 투자하고 있다.

라도우 박사는 반도체 산업이 확대됨에 따라, 노동자들(그들 중 대부분은 여성이거나 소수민족이다)의 건강문제는 급격하게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것은 이제까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훨씬 큰 문제다. 아마 석면에서 경험한 것보다 더 크게 만연될 것으로 본다”라고 경고했다.

반도체 칩이 만들어지는 “클린 룸(clean room)”에서, 노동자들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덥을 수 있는 보호옷(통칭 토끼옷)을 입는다. 그러나 이 옷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칩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계된 옷이다. 클린룸에서 공기도 일정하게 순환되지만 필터는 먼지만 제거하고 화학 가스는 제거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클린룸에서 작업하는 동안 발암물질 혹은 발암물질로 의심받는 수십종의 화학약품에 노출되고 그것을 호흡한다. 이들 약품중에서는 톨루엔(toluene), 카드늄(cadmium), 아신(arsenic), 벤젠(benzene) 그리고 트리클로로에칠렌(trichloroethylene)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물질들 뿐아니라 여러 화학약품들의 혼합으로 생성되는 화합물 역시 피할 수 없다. 역시 이런 화합물들은 사람에게 미치는지 영향을 한번도 실험된 바 없는 물질들이다.

그러나 산업계 대표들은 노동자들에게 노출된 독성물질의 양이 모두 직업 안전 보건부(OSHA)와 같은 정부 기간에서 설정한 기준치 이하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그 규정은 수십종의 위험한 물질들이 항상 세어 나오고 있는 실제 작업장의 상태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노동자 지지자들과 관련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노동자 지지자들과 전문가들은 노동자들이 여러 질병으로 스러지기 시작하자 그 규정의 효율성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고, 고용주가 위험을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경고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현재, 25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뉴욕과 캘리포니아에 있는 IBM과 내셔날 반도체(National Semiconductor) 등 하이테크 반도체 회사를 고발하였다. 고발당한 회사는 이외에도 칩제조에 사용되는 화학약품을 생산하는 유니온 카브라이드(Union Carbide), 듀퐁(DuPont)과 이스트맨 코닥(Eastman Kodak) 등도 포함되어 있다. 노동자들은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수많은 독성 혼합물들이 선천성기형과 유산을 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첨단 산업의] 클린(Clean)한 이미지는 안전하다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많은 노동자들을 대표해서 산호세의 아만다 하위(Amanda Hawes) 변호사는 주장한다. 많은 IBM노동자들처럼, 24년가량 근무한 아미다 메사는 빅불루(IBM)에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IBM의 회사 관료는 “항상 우리들을 제일 우선적으로 [안전을 위해서] 개개인을 감독하고 있다고 이야기했고, 우리들은 그말을 완전히 믿었다”라고 메사는 [그때를] 회상했다.

메사는 1968년, 그녀의 나이 23세 때 코트 로드(Cottle Road)에 있는 IBM에 취직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지금의 실리콘 벨리인 산호세가 농장과 과수원이었을 때, 오랫동안 그 지역을 실리콘 벨리라고 불렸다. 1959년에 문을 연 그 공장은 인텔, 휴렛페커드, 내셔널 반도체, NEC 전자 등과 초창기 컴퓨터 회사중의 하나이다.
반도체 칩 제조에는 위험하다고 이미 알려져 있는 수백가지의 화학약품들을 사용한다. 접시 크기의 실리콘 웨이퍼를 가지고 여러 가지 산과 용매로 3차원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세기고 벗겨 내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러한 작업과정을 거쳐 생선된 수많은 미세 전기도선을 통해 반도체에 전기 신호를 전달할 수 있게 된다. 매 공정마다 실리콘 웨이퍼에 화학약품 처리하여 평탄하게 하거나 아신과 같은 화학약품도 칩에 부분적으로 주입하여 특정부부에 전기를 잘 통하게 하기도 한다.

거의 20여년 동안 메사는 반도체 칩 제조 라인의 클린룸에서 일했다. 그녀와 동료 노동자들은 우선 보호 가운과 신발을 신은 후에 토끼옷(방진복)을 입었다. “반도체 웨이퍼에 있는 화학약품을 씻을 때 우리가 끼고 있는 장갑은 다소 거치적거린다. 장갑이 재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장갑을 벗고 작업하기도 한다.”

메사는 작업하는 동안에 종종 건강의 좋지 않음을 느꼈다. 두통과 축농증, 혹은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증세들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1984년에 유방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수술후 완쾌되자 그녀는 다시 일터로 나갔다. 그러나 1991년에 다시 재발하여 유방절제 수술을 받게되었다. 그녀가 근무한 IBM은 그 이듬해 그만 두었다. 얼마 후 그녀의 코트 로드의 가까운 몇몇 동료들 뿐아니라 다른 노동자들도 역시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맙소사, 이게 전염병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랐다”고 한다.

1988년 이들 작업 노동자들중 일부가 IBM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메사도 역시 소송을 제기했다. 약 50건의 소송이 켈리포니아에서 제기되었고, 뉴욕의 이스트 피셔킬(East Fishkill)과 버몬트의 에식스 정션(Essex Junction)에 있는 IBM 공장에는 약 200건 이상의 소송이 제기된 상태이다. 뉴욕의 아몽크(Armonk) 위치한 IBM은 가장 긴 역사 때문에 대부분의 소송의 초점이 되고 있다. IBM대변인은 이 소송에 대한 언급을 거절했다.

첫 소송은 이스트피셔킬(East Fishkill)의 IBM 공장 클린룸에서 일하였던 패지 칼튼(Faye Calton)과 미가엘(Michael)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들의 아들 자채리(Zachary)(16)는 심한 골격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1996년에 미가엘과 칼튼은 이 장애에 대한 보상으로 IBM에 4천만불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작년 비밀에 붙인다는 조건으로 비공개된 금액에 타협하여, 재판까지 가지 않고 빠른 시간에 끝냈다. 그 당시 IBM은 “첨단 과학에 기초해서, 이 소송에서 IBM은 어떠한 책임도 없으며, 잘못된 조치도 없었음을 확신한다”라고 주장하였다. 뉴욕에서는 이 회사를 대상으로 80여건 이상의 소송이 있었고 올 후반기에 재판이 잡혀있다. IBM에 대한 캘리포나아 소송에서는 재판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여러 가지 소송건들이 있지만, 원고 모두에 공통적인 소송건이 있다; IBM 등 첨단 회사들은 그 회사에서 사용되는 화학약품들이 노동자들에게 위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공동] 연구 제안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 클리콜 에테르(glycol ethers)-반도체 산업에서 한때 널리 사용된 화학약품-가 실험실 동물 실험에서 불임을 유발 한다고 보고된 바 있다. 1989년에 반도체 산업 협회에 의해 지원되는 연구를 포함하여, 뒤이은 연구 보고에 따르면, 화학약품에 노출된 반도체 노동자들의 유산율은 예상치 보다 두배에 달한다고 한다.

반도체 산업에서 1990년대 중반에 되어서야 글리콜 에테르의 사용을 점차적으로 줄여나갔다. 그러나 아직도 사용되는 많은 다른 화학약품들, 예를 들면 크실론(xylene), 트리클로로에칠렌, 페놀 그리고 아세톤 등은 불임과 관련이 있다. 1991년에 캐나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클린룸에 사용되는 약품과 유사한 화학약품에 노출된 임산부들은 125명중 13명이 기형아를 출산하였다고 한다. 이 통계는 화학약품이 없는 작업장에서는 125명중 1명 정도임을 감안할 때 매우 큰 수치임을 알 수 있다.

한 연구자는 반도체 제조업에 여성노동자들의 비율이 증가하기 때문에 불임 문제는 매우 위험한 문제라고 경고한다. 이 산업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2000년에 미국인들의 시급의 중앙값은 12달러이다) IBM과 같은 큰 회사는 12시간 교대 근무로 좋은 수익을 보장해 주었고,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에게는 상당해 매력적인 직장이었다.

최근에 전문가들은 반도체 노동자들에게 [유산, 불임 그리고 기형아 출산이외에] 또 다른 위험-암발생을 경고했다. 1985년 이전에도 IBM의 한 화학자는 그의 직장 상사에게 상당히 많은 그의 동료 노동자들이 여러 형태의 질병에 걸렸다는 경고 메모를 남긴 적이 있다. 그후 많은 연구 보고에 따르면, 전자 산업에 장기간 근무한 노동자는 특정 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지난 12월 영국 정부의 실제 조사 보고서의 내용 때문이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스코틀랜드 그린녹(Greenock)의 내셔널 반도체에 근무하는 4000명 이상의 노동자들 중에서 유방암, 폐암, 뇌종양 그리고 위암 발생률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미국의 반도체 노동자들에 대한 암 발생률은 조사된 적이 없다; 1998년, 캘리포니아 보건 서비스부(California Department of Health Services)는 이에 대한 연구를 계획한 바 있었지만,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참여를 거부했기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 “클린룸에서의 작업과 암발생이 관련이 있다는 충분한 과학적인 증거는 없다” 또한 “그와 같은 연구에 관여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반도체 산업 협회의 대변인 몰리 투틀(Molly Tuttle)은 주장하였다. 2000년에 그 협회는 이 연구를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자체 과학자문 위원회를 소집한 바 있다.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지만,“매우 심각하게” 논의되었다고 투틀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어떤 조치를 빠른 시간내에 취할 것이라고 믿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라도우와 존 배랄 3세(John Bailar III) 박사 그룹은 WHO가 클린룸 노동자들에서 암 발생률을 국제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직업병문제가 증가함에 따라 [이 문제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넓은 영역에 걸쳐 깊이 있게 공중 보건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배랄박사는 암 관련 정부기관 담당자에게 1월에 보낸 한 편지에서 주장하였다. 특히 개도국의 노동자들은 더 큰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개도국에서 직업안전에 관한 법률들이 약하게 규정되어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고, 선진국에서 이미 위험하다고 밝혀진 화학약품과 장치들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배랄은 스코틀랜드의 연구를 포함한 연구결과를 살펴본 후에 [즉시 이러한 활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 연구결과를 보면 상황이 심각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은 연구 결과에서도 공통적으로 신체의 4곳에서 암 발생-[유방암, 뇌종양, 폐암, 위암]-이 증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자료는 비록 [반도체내의 작업환경이] 암 발생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못하지만 [그 관련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라고 배랄은 주장하였다.

배랄에 따르면 유산, 선천성 기형 그리고 특정 암은 같은 화학약품에 의해 촉진될 수 있으며,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독성은 인간 유전자에도 손상을 입힐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화학약품에 노출된 후에도 수년 동안 건강상의 문제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의 직접적인 연계를 밝히는 것은 무척 어렵다. “노동자들이 20여년 동안 이 산업에서 지속적으로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라고 브루스 포웰(Bruce Fowler)박사는 언급했다. 만약 [20년 전] 이 연구에 집중했다면 현재 노동자들이 법정소송에서 제기한 [많은] 의문에 대해서 상당수는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에드 마츄작(Ed Matuszak)는 1988년 1월에 IBM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화학과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재료과학에 석사를 받은 에드는 빅블루로부터 다섯 개의 부서에서 일을 제안을 받았다. 그때의 행복감은 아마 북부 버몬트에서 최고였을 것이다라고 그의 아내 스잔은 회상한다. 그는 벌링톤(Burlington) 부근에 있는 엑식스 정션의 IBM공장을 직장으로 선택했고, 클린룸에 정교한 장치를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는 종종 12시간의 긴 작업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이 일이 그에게 상당히 의미가 있음을 말하곤 했다.

2000년 3월 어느날 에드는 감기증세를 호소하며 퇴근했다. 몇 시간 후 발작증세로 뒹굴기 시작했고, 너무 심한 발작으로 어깨까지 탈골되기도 했다. 그의 아내는 고열 때문으로 생각했지만, 응급실 의사는 정밀 조사를 해봐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 다음날 아침 “ MRI 촬영을 했다. 신경외과 의사는 매우 퉁명스러웠다. 그 의사는 에드가 뇌종양을 갖고 있으며 5년에서 10년 정도 더 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스잔은 그때 당시를 회상했다. [그 후] 에드(40)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고 [증세가 호전되는 듯했다.] 의사도 낙관적으로 이야기 했다. 공장에서의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그의 직장 동료에게 랩탑컴퓨터를 요구했고, 다시 직장에 복귀하는 이야기를 했다.

재활기간 중 어느날 물리치료사는 간단한 수학 테스트를 했다. 그러나 그는 덧셈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순간 얼어 버렸다“ 고 수잔은 회상했다. 뇌종양이 다시 자라난 것이었다. 그해 6월 에드 다시 큰 발작을 일으켰고, 4주후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에드가 알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같은 병원 다른 병실에 에드의 동료 노동자 마이크 뷰드니(Mike Beaudry)도 역시 치명직인 뇌종양과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작년에 죽었다.

수잔 마츄작은 “두 남자의 병이 그들의 직업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공장의 다른 노동자들은 심각하게 고려하기를 원치 않았다.“고 회상했다. “추측컨대, 그들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수잔과 뷰드니의 모친은 현재 IBM에 대해 소송중에 있다.

에드 마츄작의 경우처럼 직장에서 남자들의 뇌종양 발생률이 평균보다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1975년에서 1989년사이에 죽은 1만명 이상의 IBM노동자들을 대상으로한 1996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10년 혹은 그 이상 이 회사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남성 기술자와 엔지니어사이에서 뇌종양 발생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 자료만으로 [암발생의] 원인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 수치는 IBM이 [확실하게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포웰박사는 지적했다. 게다가 두 개 이상의 다른 연구 결과에서 전자 산업에서 노동자들 사이에 뇌종양 발생률이 증가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스코틀랜드 조사에서는 남성노동자에서 나타나는 뇌종양 발생률이 기대치보다 4배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여전히, 이러한 통계수치는 스잔 마츄작과 같이 작업장과 남편의 죽음의 관계를 급하게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적절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클린룸에 사용되는 특별한 화학약품들이 직접 그 질병의 원임임을 밝히는 것은 헤라클레스의 힘을 빌려야 할만큼의 어려운 작업이다. 이는 연방정부의 보건 안전 가이드라인에 있는 100개의 화학약품 보다 더 많은 화학약품과 수십종 이상의 질병과의 관계를 밝혀 내야 하기 때문이다.

소송이 진행됨에 따라 노동자들은 산업계의 변호에 대응해야 한다. 산업계에서는 반도체 작업은 국가에서 인정한 가장 안전한 산업에 속한다라고 변호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업자는 미국 노동통계국의 자료를 종종 인용하는데, 반도체 제조업은 그 자료 목록에 나열된 200여개의 산업중에서 6번째로 낮은 산재와 직업병의 비율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자료는 작업중에 발생한 산재와 직업병에 관한 것이지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병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노동자의 2세에 발생하는 유전 병 혹은 불임에 관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러한 자료의 누락-특히 젊은 여성이 많고 이직률이 높은 이 작업장에서-은 [반도체 제조업이 매우 안전하다]고 쉽게 오인하게 만든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 단속위원도 첨단 산업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작업장을 감독하는 연방 기관 [역시] 반도체 공장에 대해서 특별한 감시와 연구를 하려고도 하지 않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깨끗하고 안전한 기록”들은 단속위원들게 단속에 있어 우선 순위를 갖지 않게 한다고 직업 안전 보건부(OSHA) 대표들은 지적하고 있다. “[산업체]가 ‘우리에게는 어떤 문제도 없다’고 입장을 이야기할 때 무척 심한 좌절감에 빠진다. ‘네가 틀렸어, 너는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고 있어. 우리에게 [직업병으로 확인된] 사망자 수를 [명확하게] 제시해봐, 그러면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꺼야'라는 말은 항상 듣는다, 우리는 반도체 산업체들과 [싸움은] 오랫동안 이런식으로 반복해왔다.”고 산호세의 하위 변호사는 그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일부 산업 감시 전문가들은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널리 알려지고 값 비싼 소송을 치러야 할 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다. “만약 고용주가 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정부도 개입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변호사에게 가야한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할 사람이다.“ 라고 라도우는 주장한다.

그러나 [설사, 변호사를 찾아가서 재판을 하더라도] 수십년 혹은 수년이 지나야 이러한 의학적이고 환경관련 법적 이슈들은 해결될 것이다. 라고 포웰박사는 지적한다. 그런 동안에 미국과 해외에서 반도체 산업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리고 아파서 쓰러진 노동자들만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그들에게 죄가 다면 단지 일을 필요로 했다는 것 뿐이다라는 사실을..”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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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 레닌과 트로츠키


레닌의 본명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입니다.  원래 "레닌"이라는 사람은 위조 여건을 만드는 사람의 이름이었다고 하는 군요.

 

트로츠키 또한 본명은 "레프 데이도비치 브론슈타인"이며, 원래 "트로츠키"는 감옥에 있을 때 간수 이름이었고 합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로자 룩셈부르크도 "유니우스라"는 가명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멕시코 반군의 지도자 마르코스 역시 본명은 "라파엘 세바스티안 기옌 비센테"라고 하며

"마르코스"는 사망한 동지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체게바라의 본명은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이지요.  뭐~ 80년대 수많은 활동가들이 가명을 사용했지요.

 

억압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실명제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는 수도 없이 많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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