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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7/31
    아~ 유비쿼터스!(4)
    해민
  2. 2004/07/31
    스티븐 제이 굴드를 기리며
    해민
  3. 2004/07/30
    잡다한 글을 올리려고(3)
    해민

아~ 유비쿼터스!

아~ 유비쿼터스! 기관지노힘 제57호 김해민 노동자의 힘 회원 2004년 4월 미국의 부시 정부는 2007년까지 어디에서나 초고속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환경을 구축한다고 발표하면서, "미 전역에 초고속인터넷을 보급하고 소비자가 다양한 선택권을 갖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참여정부'도 비슷한 소리를 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IT전략으로 언제 어디서나 디지털 혜택을 누리는 '유비쿼터스 사회' 구현하고 2007년까지 세계 첫 진입을 추진한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에 따르면 "U코리아(유비쿼터스 코리아)는 우리경제가 제 2의 도약으로 나가는 전기일 뿐 아니라 국민생활 전체를 바꿔놓을 일대 문화혁명"이기 때문에 "IT산업을 통해 전 국민이 일자리를 갖는 것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전 국민이 IT산업체의 주주가 되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비쿼터스 사회'가 뭐 길래 이쯤 되면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유비쿼터스 사회가 도대체 뭐 길래 '국민 생활 전체를 바꿔놓을 문화대혁명'이라는 것일까? 그리고 왜 노동자-민중은 그렇게 좋은 사회를 가르쳐 줘도 투쟁만 할까? 이러한 궁금증을 뒤로하고 유비쿼터스 사회에 한번 푹 빠져 보자. 유비쿼터스 컴퓨팅(이 용어는 '유비쿼터스 환경' 혹은 '유비쿼터스 사회'와 유사한 말이다)이라는 말은 1988년에 미국 제록스 팰로앨토연구소의 마크 와이저(Mark Weiser) 소장이 처음 사용한 말인데, 앞으로 제 3의 정보혁명의 물결을 이끌 것이라고 한다. 유비쿼터스란 라틴어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어떤 기기로든 언제 어디서나 사용자가 컴퓨터와 연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컴퓨터의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휴대전화, TV, 게임기는 물론이고 자동차에서도 심지어 걸어 다니면서도 자연스럽게 컴퓨터 네트워크에 연결하여 통신할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한다. 마크 와이저에 따르면 유비쿼터스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첫째, 다수의 작고 값싼 특수 기능의 컴퓨터들이 무선의 네트워크를 통해 완전히 연결된다. 둘째, 이러한 컴퓨터들은 사용자의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한다. 셋째, 가상공간이 아닌 실제 공간 어디서나 컴퓨터 이용이 가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간화된 인터페이스로서 사용자 상황(장소, ID, 장치, 시간, 온도, 명암, 날씨 등)에 따라 서비스가 변해야 한다. 유비쿼터스 환경에 대한 사회·문화적 전망은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다. 유비쿼터스 사회가 오면 현재 정보화 정도의 불균형에 따라 나타나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유비쿼터스 사회에 적용되는 기술은 마치 공기와 물처럼 일반 환경 속에 컴퓨터를 내장시켜 언제든지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보화 교육을 받지 못한 취약 계층의 사람들의 소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유비쿼터스 사회의 시스템은 매우 효율적일 것이라고 한다. 미래에는 버려지는 쓰레기정보까지 컴퓨터에 내장되어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자원을 효과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유비쿼터스 사회로 가면 저절로 사회주의 이상이 실현될 것같이 보인다. 노동자민중은 투쟁을 접고 유비쿼터스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할 듯하다. 라디오, 무선통신 인터넷 그리고 유비쿼터스까지 100년 전 라디오 방송이 전파를 타고 세상에 나왔을 때, 자본가(와 기술주의자, 주식투자가들)는 개개인이 무선으로 통신할 수 있는 세계를 선전하며, 이 기술이 유토피아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했다. 무선통신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다 줄 것이며, 더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했다. 당시 기계문명의 역동성을 찬양한 미래파 시인 마리네티(F. T. Marinetti)는 라디오 전파가 정신을 안정시켜주는 특성이 있으며 정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고까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차 세계 대전 뒤에 상업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면서, 각 라디오 방송국들 사이에 치열한 전파 싸움이 일어났다. 강력한 전송탑을 새워 상대 방송국 전파를 방해하는 등 그 피해가 심각해지자 국가는 라디오 주파수에 대한 국가 규제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국가 규제 시스템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나치의 전체주의에 휩싸이면서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라디오 전파를 완전히 국가 선전 도구로 전락시켜 버렸다. 2차 세계 대전 뒤, 자유시장과 전체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공공의 이익'이라는 개념이 강화되었고 주파수에 대한 국가 규제가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또 한번 변화를 겪게 된다. 오일 쇼크 이후 위기에 처한 자본은 탈규제의 신자유정책을 도입하게 되는데 "공공의 이익"을 위한 국가규제의 비효율성이 공격대상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민간 방송국이 생겨나고 전화시설은 사유화되었다. 이때부터 국가와 자본에 의한 공동 지배가 시작된다. 1990년대 초 본격적으로 도입된 인터넷은 국가와 자본에 포섭된 전파와는 '조금' 다르게 성장했다. 인터넷이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기술이기도 하지만 비 상업적인 공유문화와 정치적 행동주의의 메카로서도 성장하고 있다. 자본이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인터넷은 급속도로 상업화의 길을 가고 있지만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경제의 몰락은 인터넷에 대한 자본가들의 기대를 상당부분 사라지게 했다. 그래서 자본가은 다시 국가와 자본에 의해 통제된 차세대 무선 인터넷에 기대를 품고 붐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므로 기존의 인터넷을 무선 인터넷으로 전환한다는 의미는 인터넷 속에 내제된 참여와 평등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재산권에 의해 통제되는 개념으로 그리고 분권화된 공간이라기보다는 중앙 통제적인 공간으로 재정립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유비쿼터스 사회' 전망은 바로 이러한 배경을 타고 나온 것이다. 유비쿼터스 사회?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유니버설 서비스라는 정책이 있다. 서비스 공급 비용이 높아 경제성이 없는 외딴 지역이라도 이용자는 그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공급자는 그 서비스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그러나 현재 여러 나라에서 추진하고 있고, 유비쿼터스 사회의 붐을 조성하고 있는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에 유니버설 서비스개념은 찾아보기 힘들다. 만약 눈에 보이지 않는 컴퓨터가 도처에 널려있고 유무선 통신망을 통해 연결되어,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나 서비스를 즉시 제공하는 환경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즉, 컴퓨터가 흘러넘쳐 컴퓨터 가치가 거의 사라지는 사회가 왔다면, 디지털 격차로 얼룩진 이 냉혹한 자본주의가 노동자민중의 투쟁 없이 바뀔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디지털 컨텐츠는 가치가 '0'인 상태로 흘러넘치지만 자본과 국가는 폭력과 경찰력을 동원해서 막고 있지 않은가? 또 유비쿼터스 기술은 특정 장소의 사람을 추적하여 확인하는 장치를 필수로 하는데, 현재 연구 중인 기술 중에 액티브-뱃지가 핵심기술이다. 이 기술은 노동통제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좀더 현실적인 애기해보자.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면 항공사로부터 '마일리지'라는 선물(?)을 받는다. 이것이 쌓이면 무료 여행도 갈 수 있고, 항공사로부터 받는 서비스도 달라진다. 한마디로 항공사가 고객에게 베푸는 할인 혜택이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한번 다르게 생각해 보자. 항공사는 이 사소한 마일리지 정보를 모아 사람들을 차별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맑스가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했던가? 유비쿼터스 사회에서는 사소한 개인의 사회적 관계를 담은 정보가 자본가로 집중될 것이다. 이러한 유비쿼터스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는 이제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2004-07-20 15: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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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 굴드를 기리며

스티븐 제이 굴드를 기리며 기관지노힘 제32호 2002년 5월 20일, 진화론과 고생물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미국 하버드대 교수 스티븐 제이 굴드(사진)가 암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그의 저서 <풀 하우스>와 <판다의 엄지>를 통해 한국에 알려졌지만, 그의 세계적인 명성과 활발한 좌파적 활동에 비해 그리 많이 알려져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사가로서 현대 진화론에 획기적인 성과를 남겼으며, 일반 대중을 위한 가장 영향력있는 과학해설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 국회 도서관은 그의 대중적 영향력과 왕성한 집필활동을 바탕으로 그를 '살아 있는 전설'로 지정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인종주의, 환원주의 그리고 창조론 등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했으며, 모든 종류의 제국주의와 억압에 대항한 정치활동가였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굴드의 사회주의적 성향은 뉴욕 좌파 활동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버지의 사상과는 '매우 다르다'라고 밝히고 있지만 맑스주의에 대한 그의 관심은 수많은 글과 활동 속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굴드는 일생동안 활발한 좌파적 활동을 펼쳐왔다. 1960년대에 영국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을 때, 흑인 출입을 금지한 댄스-홀 앞에서 주말마다 집회를 조직하였으며, 결국 이 댄스-홀의 인종차별 정책을 철회시켰다. 미국에 돌아와서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였으며, 1969년에는 대학교수로서 대학이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하버드 학생들의 투쟁을 지지하기도 했다. 1971년 이스트-캠브리지 부근에서 노동자들과 주민들이 경찰의 가혹행위에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켰을 때, 굴드는 이 폭동을 지지하는 '민주 사회를 위한 학생(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과 거리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같은 시기에 굴드는 '민중을 위한 과학(Science for the People)'에 가입하여 반전운동 및 사이비과학에 대한 투쟁을 전개했다. 굴드의 정치활동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그는 <다시 생각하는 맑스주의 (Rethinking Marxism)> 저널과 뉴욕의 맑스주의 학교 후원자인 맨해튼의 '브레히트 포럼'에서 자문 위원을 맡았다. 그리고 자연과학자로서는 특이하게 '사회주의 학자 학회' 및 공상당 선언 150주년 기념하기 위한 '좌파의 미래(The Future of the Left)에 대한 포럼(1998)'에서도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또 페루에 투옥된 미국인 정치활동가 로리 베렌슨(Lori Berenson) 석방위원회에 자문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굴드의 이러한 정치적 활동은, 무엇보다도 그의 과학 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굴드는 과학분야에 만연되어있는 인종주의와 생물학적 결정론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생물학의 오용에 대해 그의 일생을 바쳐 투쟁해왔다. 단속 평형이론 - 양의 질적 전화 다윈 이후 진화는 오랜 세월 적응과 도태를 거쳐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하지만 지구상에 관찰된 화석 기록은 점진론(Gradualism)을 뒷받침하기에 너무 불규칙했다. 지구 화석 기록을 보면, 원생대(25억년에서 5억 4천4백만년 전 사이)의 화석에는 단세포 생물들의 기록만 존재하고, 대 빙하기 이후 캄브리아기(주1)(5억 4천4백만년에서 5억 1천만년 전)시대의 화석에는 무수한 고등생명체(삼엽충, 해파리 등)들의 화석이 '폭발적'으로 발견된다(주2). 굴드와 그의 동료 나일스 엘드리지(Niles Eldridge)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변증법적인(주3)' 단속 평형(Punctuated equilibrium)이론을 주장했다. 단속평형 이론에 따르면, 생물이 오랜 기간 동안 거의 변하지 않다가 환경이 변화하면 갑작스럽게 형태나 종의 분화가 일어난다. 즉 생물은 생태계가 안정된 평형 상태에서는 오랜 동안 거의 진화하지 않다가 빙하기, 운석 충돌 등으로 평형 상태가 깨지면서 순식간에 진화하거나 소멸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생명의 역사에서 '작은 변화들의 점진적인 축적이 어떤 한 시점에서 어떻게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 부정의 부정 또한 진화는 생물이 자연에 적응하면서 단세포-다세포-파충류-포유류의 단계를 거쳐 인간으로 성장하는 필연적이며 진보적인 과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의 한 극단에는 19세기 유행한 '사회적 다윈주의자'들과 맞닿아 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사회적 다윈주의자들은 진화론을 인종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자유방임주의를 정당화하는데 사용한다. 이들은 진화론의 적자생존(다윈은 자연선택이라고 했고, 적자 생존이라는 용어를 한번도 쓰지 않았다.)이론으로 강자에 의한 약자의 지배를 정당화였고, 또 이러한 적자생존은 진보를 향한, 그리고 자연의 '거대한 설계'를 위한 필연적인 것이기에, 어떠한 투쟁도 의미가 없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념을 벗어 던지고 나면, 굴드의 이론에 접근한다. 그에 따르면, 진화를 통한 발전은 환경의 제약에 적응하기 위한 '부산물'이고, 자연은 그 제약조건을 해결하기 위한 '땜장이'일 뿐이다. 이 이론 어디에도 자연의 숭고하고 진보적인 목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맑스 역시 자연에는 어떠한 의지나 목적이 존재하지 않고, 그것에 목적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임을 밝히고 있다. 또 변증법에서도 '정�의 부정의 부정인 '새로운 정�은 비가역적인 창조적 변화만을 의미하지 더 바람직한 어떤 가치론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실천적 투쟁의 산물인 인간의 역사와 사회 현실에서까지 진보주의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굴드도 모든 진보주의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의 책 <판다의 엄지>에서 "다윈적인 진화는 그 속도가 너무 느려서 우리들의 역사에 더 이상 큰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인류의 문화적 진화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역사와는 전혀 다르며 오히려 라마르크적(주4)이다. 우리들이 한 세대 동안 배운 것은 교육이나 집필에 의해 다음 세대에 전달된다. 과학기술이나 문화에 관한 한 획득형질(주5)이 계승된다."고 인간 역사의 진보를 인정하고 있다. 우발적 진화론? 굴드에게 제기되는 또 다른 논쟁 주제는 생명의 '우연성'에 관한 것이다. 캄브리아 생물 폭발이후에 다시 엄청난 대멸종의 시기가 오는데, 이때 96%의 생명체들은 멸종했다(폐름기 말). 이 시기에 만약 척색동물(원시 척추동물)이 살아 남지 않았다면, 오늘날 척추동물은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공룡은 지구환경에 훌륭하게 적응한 선택된 종이었어나 오직 '나쁜 운' 때문에 지구 위에서 사라졌다(백악기 말). 굴드는 이러한 '우연'을 진화의 주된 동력으로 보았다. 그는 자연선택이 생명의 형태에 있어 더 높은 복잡성을 이끌어 낸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명이 복잡하게 발전하는 것 또한 진화에서 우연한 부산물일 뿐이며 필연적인 과정이 아님을 주장한다. 그의 저서 <훌륭한 세상(Wonderful Life)>에서 "만약 역사의 테이프를 감아 다시 자유롭게 돌린다면, 인간이 다시 같은 인간으로 진화될 확률은 매우 낮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우연에 대한 그의 지나친 강조는 동료 과학자들까지 불편하게 했다. 70년대에 급진과학운동에 참여한바 있는 영국의 좌파 과학자 스티븐 로즈는 "생명의 테이프를 같은 환경 조건에서 다시 돌린다면 적어도 같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고 반박했고, <오리진>의 저자로 유명한 인류학자 리차드 리키도 많은 진화 생물학자들과 함께 굴드의 이러한 입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리키에 따르면 '아마도 대 멸종 시기에 일부 생물은 (우연이 아닌) 적자(fittest)로서 살아남았을 것이고, 또 어떤 생물은 우연히 살아남았을 것이다. 사실 그는 우연을 너무 과도하게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우연을 강조한 것은- 우리들에게 생명의 흐름에서 우연의 역할을 올바로 알려주기 위해서일 것이다.'라고 굴드의 우연성을 설명한다. 사회생물학자들과의 투쟁 사회생물학은 집단 생물학과 유전학을 도입해서 하등 생물에서 고등 사회성 생물, 그리고 인간 집단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통일된 생물학적 관점을 제시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자본주의는 이 학문을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 등과 같이 억압적 형태가 자연스럽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해 과학으로 '선택' 하였다. 일 예로 사회생물학을 처음 주장한 에드워드 윌슨은 1994년 100만명의 사망자를 낸 르완다 대학살을 인구의 과도한 증가에 따른 인종간의 경쟁으로 그리고 종족 본성과 유전적인 원인에서 찾는다. 그는 IMF와 세계은행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농업황폐화, 그에 따른 아프리카 민중들의 굶주림, 제국주의의 민족 분할 지배 그리고 클린튼이 대량학살을 막기 위한 UN 개입 방해 이 모든 사회적 요인을 생물학적 원인으로 돌려 버린다. 이러한 사회생물학적 관점을 이어받은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라는 책에서 사회생물학을 더욱 극단적인 모습으로 이끌고 갔다. 이 책에서 도킨스는 '자연선택에서 선택의 단위는 유전자이고, 모든 생물은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해서 프로그램 된 '생존 기계'일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그의 이론은, '모든 생물은 유전자의 꼭두각시'로,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유전자 결정론인 것이다. 이 유전자 결정론 뒤에는 나치시대의 '우생학'이 항상 따라다닌다. 도킨스는 현재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에서 동물 행동학 연구 그룹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고, 그의 관점은 미국과 영국의 분자 생물학의 주류를 대변하고 있다. 굴드는 도킨스의 이러한 주장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음을 지적한다. 굴드에 따르면 유전자는 자연선택에 직접 노출될 수 없다. 자연선택은 생물의 개체를 매개체로서 사용한다. "선택이 어떤 개체를 선호하는 것은 그 개체가 특정한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개체가 유달리 힘이 강하거나 좀더 격리되어 있거나 성적으로 성숙이 빠르거나 싸움에서 더 사납거나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전자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많은 유전자들이 서로 상호 자용해서 개체를 형성하기 때문에 모든 생물의 몸은 각각을 개별 유전자로 분리해서 이해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유전자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결정하고 통제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굴드는 도킨스의 이론이 서구의 과학적 사고에 얽혀있는 나쁜 악습인 환원주의(주6) 즉, 전체를 모두 기본적인 단위로 분리시켜 이해하는 사고 방식에 빠져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는 자연과 인간의 발전을 이해하기 위해서 변증법적이고 다면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를 기리며 굴드는 죽기 전 짧은 인터뷰를 통해서 두 권의 큰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만약 내게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그중 하나는 <생명의 방향>으로 진화 발전의 패턴에 대한 책이 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책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고고학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들은 이 책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굴드는 20여 권의 책과 수백 건의 글을 통해 화려한 전설을 우리에게 남겨놓았다. 진화 생물학에서의 그의 공헌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학은 억압이 아닌 해방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언급은 세상을 단지 이해만 하려는 사람들뿐 아니라 보다 나은 세상으로 변혁하려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끝) (주1) 현재 지구의 역사를 구분할 때 고생대(캄브리아기-오르도비스기-실루리아기-데본기-석탄기-폐름기)- 중생대(트라이아스기-쥐라기-백악기)-. 신생대(1기~4기). 지난 45 억년의 지질시대를 통하여 5 번의 대멸종시기가 있었다. (주2) 이를 '캄브리아 생물 폭발'이라고 한다. (주3) 실제로 굴드는 엥겔스의 자연 변증법의 영향을 받았고 수많은 화석자료를 바탕으로 단속평형이론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변증법에 문을 굳게 닫고 있는 서구 과학자들의 편견을 지적한다. (주4) 진화론의 창시자. 그는 획득형질의 유전을 주장한다. 기관지노힘 제20호 참조 (주5) 동물체의 기관중에서 많이 쓰이는 것은 점점 발달하고 반대로 많이 쓰이지 않는 것은 퇴화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얻어진 형질을 획득형질이라 한다.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은 높이 달린 잎사귀를 따먹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목을 길게 뻗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6) 칼 포퍼는 환원주의를 철학적 환원주의와 방법적 환원주의로 구분하고 철학적 환원주의의 위험성은 경고하지만, 무조건적으로 환원주의를 부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한다.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의 독립된 실체를 규명하는 방법론적 환원론은 현대과학의 발전에 중요한 방법론이었다. 유전자 결정론이 지배적인 이유도 바로 환원주의적 과학자들의 큰 성과 때문이기도 하다. 참고 문헌: 1. Phil Gasper, '스티븐 제이 굴드 : 변증법적 생물학자' International Socialist Review Issue 24, July-August 2002 2. Richard C. Lewontin, Richard Levins, '스티븐 제이 굴드 --래디컬하다는 건 무엇인가?', Monthly Review 200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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