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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생각 - 추모만 할 것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생각해보라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오후 김수환 추기경의 주검이 안치된 명동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안내를 받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다. 그 분의 이름은 알지만 그의 행동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김수환 추기경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수환 추기경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 지는 인터넷을 이용하면 간단하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아주 자세히는 알지 못하더라도 대충은 알 수 있다.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어록들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339219.html) 이라는 한겨레 신문의 기사만 보아도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 독재정권에 어떻게 항거했는지, 87년 민주화 항쟁때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 사형제와 남북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알 수 있는 일이다. 또한 '민주주의·인권 위해 싸웠던 ‘우리시대의 목자'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339218.html)라는 내용을 보아도 김수환 추기경이 종교지도자를 넘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서 저항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 람들의 추모행렬이 이어졌고, 특히나 높은 위치에 있는 양반들은 제각각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서 한마디쯤은 했고, 자기가 더 친했었다라는 식의 자랑을 늘어놓고 있다. 심지어 12.12사태 뒤에 전두환에게 싸늘한 비판을 가했던 전두환마저도 추모를 하러 명동성당에 나타났다니, 말 다했다.

<관련기사>
12·12뒤 전두환 면전서 “서부활극 같다” 일침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9368.html)
빈소 찾은 전두환, ‘악연’ 질문에 굳은 표정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9665.html)
이 대통령, 빈소 찾아 조문 “마지막까지 희생정신”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9373.html)
여야대표 등 각계 인사들 조문 발길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9376.html)


<전두환 전 대통령이 18일 오전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두 손을 모은 채 조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난 이런 기사들을 보면서 그들의 행보에 대해서 조금 짜증이 났다. 추모만 하면 무엇할 것인가?
죽은 이에게 추모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자신들이 진심으로 그에게 추모를 한다면 그의 행동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를 본받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민 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언제나 자신을 헌신했던 김수환 추기경의 행동에 대해서 단지 추모만할 것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본받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말로만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서 말하려하지 말고, 단순히 추모한번 해서 용서받으려고 하지 말고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하란말이다.

이 명박 대통령이든 전두환이든 여야대표가 되었든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으로 물타기 하려고 하지 말라. 김수환 추기경이 자신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과거에 어떤 인연을 맺었는 지, "이런 분이셨죠...."라는 식의 이야기로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지 말라. 중요한 것은 김수환 추기경이 보여주었던 민주주의와 인권, 사회적 약자를 위한 헌신이다. 민주주의를 짓밟고 군사력으로 독재했던 인간이 무슨 낯짝으로 추모를 한단 말인가.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철거민을 죽이고, 인권위를 축소하려하며, 사회적 약자는 보지도 않고 오로지 경제만을 외치며 재벌과 기득권에게만 혜택을 주는 이가 어찌 당당하게 추모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아주 가식적인 추모일 뿐이다.

김 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신 뒤 명동성당에 추모행렬이 줄을 지었다고 한다. 이 추운 겨울, 사람들의 마음이 정말 따뜻하게 느껴지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다만 그들의 추모행렬이 그저 보여주기식 추모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수환 추기경을 그토록 추모하는 이유, 생전에 그가 민주주의와 인권, 사회적 약자를 위해 행했던 행동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우리 사회가 그에 걸맞는 행동들로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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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계속 된다 쭈~욱 - 46차 수원 촛불 문화제 다녀와서


작년부터 시작된 촛불 문화제가 벌써 46차입니다. 한주도 빠지지 않고 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1주년이라니, 기념으로 무슨 행사라도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까지 매주 참여를 하지는 못했지만, 요즘에는 매주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바뀐 것은 하나도 없고, 안타까운 소식들만 계속 들려오니 참 가슴이 아픕니다.
영화에서 봤던 명대사(?)를 떠올리면서 위로를 삼아야지요.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놈이더라..."
앞으로 몇 년이 되든 몇 십년이 되든 세상이 바뀌는 그 날까지 오래 오래 가야지요.


언제나 촛불문화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어떨 때는 40명이 넘게 참가하는 경우도 있고, 어떨 때는 20여명밖에 참가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어제는 날이 추워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나오지 못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따뜻한 자리였어요.
수원 촛불은 가끔은 저렇게 동그랗게 모여서 하기도 하는데, 더욱 정감이 가는 장면입니다.


촛불 문화제를 하는 동안 한 쪽에서는 저렇게 김석기를 구속 처벌하라는 서명운동을 받고 있어요. 용산참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왔지만, 그것이 정의는 아닙니다. 잘못한 사람은 있는데, 처벌받지 않는 현실이 참 서글프군요.
관련해서 다음에서 이명박 대통령 재신임 투표 서명을 하고 있으니 함께 해보지요.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68113
또 오프라인에서 용지를 뽑아서 김석기 구속 처벌을 위한 서명운동도 할 수 있어요.  http://www.jinbocorea.org/bbs/board.php?bo_table=policy&wr_id=121


서명운동한 곳 옆에서는 용산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분향소도 마련되어 있답니다.
용산 참사와 관련되어서는 범국민 대책위 홈페이지에 한번 가보면 좋을 듯하네요. 여러가지 소식들과 동영상 사진들이 있답니다. http://mbout.jinbo.net/


수원 촛불 문화제의 좋은 점이 바로 촛불 찻집이 있다는 겁니다. 촛불 문화제를 하는 동안 따뜻한 차를 마시며 몸을 녹일 수도 있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무료로 유자차, 녹차, 코코아, 커피 등 다양한 차들을 나누어 주고 있어요. 평상시에는 잘 안마시는데 어제는 날씨가 추워서 코코아와 유자차를 두 잔씩이나 마셨네요....^^;


범국민 대책위에서 만든 용산 참사 관련된 내용의 홍보 패널입니다.
옆으로도 쭉 마련되어 있는데, 용산 참사 관련된 것 뿐만 아니라, MB악법 관련된 내용들도 많이 있어요.
적어도 20개는 넘지 않을까 싶네요.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멈추어 서서 읽어보기도 하고 좋습니다.


설렁설렁 노래모임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번에는 조용한 목소리로 "산골소년의 슬픈 사랑 얘기"라는 노래는 불렀는데,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사람들이 많이 아는 노래라서 같이 부르기도 했고요.

커다란 문화제는 아니지만, 작고 소중한 모습들이 매주 반복되는 것이 매우 좋습니다.
가끔은 힘들어서 지칠 수도 있지만, 서로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암튼 촛불 문화제는 쭈~욱 계속 됩니다!! ㅋ
참 매주 수요일 저녁 7시에 수원역에서 하는 겁니다. 참가하실 분들은 수원역으로 오시면 되요...
아, 그리고 수원 촛불을 준비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여기는 수원시민광장이라는 곳인데요. http://cafe.daum.net/swnomadcow 로 가면 카페에 가입도 할 수 있고, 여러가지 소식들을 접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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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로 다른 세상을 꿈꾸어 보자! - 경기민언련 블로그 교육을 다녀와서

경기민언련에서 블로그 교육을 준비하여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진보블로그에서 블로그를 한개 운영 중이었는데, 개인적인 내용을 주로 하는 블로그였다.
그런데, 이번 블로그 교육을 듣고서 새로운(?) 필을 받아서 그냥 일기장처럼 생각하는 블로그가 아닌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블로그를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으로, 티스토리에 블로그를 만들었다.

블로그 교육은 1시부터 시작해서 6시가 되어서야 끝났는데, 긴 시간이었지만 관심이 있던 내용이라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1강 블로그? 블로그!!
- 웹 2.0시대, 온라인 소통구조의 변화
- 사회단체 활동과 블로그


1강은 태터앤미디어에서 오신 이선규님의 강의였다. 기존 미디어인 신문과 웹 2.0으로 보여지는 블로그라는 새로운 미디어와의 비교 속에서 블로그의 무한한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시민단체들의 블로그에 대한 생각들과 현재 시민단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블로그를 이용하여 비판하고 개선해나가는 내용을 들을 수 있어서 반성도 하게 되고 매우 좋았다.
사실 시민단체에서 블로그를 운영한다고 하더라고 일방향적인 성명서나 논평만 올리게 되는데, 그런 글을 올려도 잘 읽지 않는것이 사실이다. 그것을 수치화하고 비교하여 진실이 담기고 이야기가 담긴 글을 이용하여 블로그를 운영해야지 사람들에게 더욱 다가가기 쉽다. 나도 블로그에서 내 이야기와 주장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데, 앞으로는 좀더 생각을 많이 하고 내용을 채워나가야 겠다.
강의하신 자료는 나중에 보내주신다고 했는데, 자료가 도착하면 여기에도 올려야겠다.

2강 블로그 설치, 운영, 관리
- 단체 및 개인 블로그 설치, 관리 및 운영
- 블로거 뉴스, 메타사이트 등록


역시 태터앤미디어에서 오신 윤영진 님께서 실질적인 블로그 운영에 대해서 강의해주셨다. 기존에 블로그를 운영했기 때문에, 트랙백이나 태그, RSS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더욱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앞으로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강의하신 자료는 윤영진 님의 블로그에 올려져 있어서 교육에 참여하지 못하신 분들도 볼 수 있다.(http://yupmin.com/153)

3강 파워블로거와의 만남
- 블로그 활용 노하우
- 블로그 활용에 대한 의견교환


이른바 파워블로거인 리장님께서 블로그에 대한 열변을 토하셨다! 스스로 까칠하다고 하시는 리장님은 아주 자세하게 블로그와 관련된 생각들을 말해주었다. 나도 워낙 까칠한지라 그리 까칠하게는 느껴지지 않았다...ㅋ 
지나가다가 진보블로그에서 리장님의 블로그를 보기는 했었는데, 다시금 블로그 내용의 방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수많은 자료와 수많은 태그들!! 혹자는 글쓰는 기계라는 평을 했었는데, 기분나쁘시면 죄송합니다......;;
리장님의 강의를 듣고서 내가 지금까지 운영했던 블로그에 대해서 많은 반성을 했었고, 앞으로의 블로그 운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오로지 자전거만 타고 다니시기에 인천에서 장장 4시간에 걸려서 오셨다는데, 요즘 한창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나는 또 반성하게 된다. 30분만 자전거를 타도 힘든 나와는 너무 비교되지 않는가!! -_- 강의의 자세한 내용은 리장님의 블로그(http://savenature.tistory.com/2665)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블로그 교육 홍보 웹자보(누가 만들었는지, 참 깔끔하고 잘만들었다 -_-;)

블로그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강의였다. 블로그는 하나의 무기였다. 블로그는 다른 세상을 가능하게도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 중에 중요한 방법이었다. 앞으로는 블로그에 대해서 좀더 많이 공부하고, 좀더 많이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이번 강의를 듣고서 너도 나도 블로그를 만든다고 하는데, 모두들 블로깅에 심취되어서 서로간의 네트워킹이 잘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블로그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나의 생각들이 함께 교류되면 좋겠다.


블로그 교육에 참여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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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삶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기로 마음 먹은 뒤

약 1달정도를 생활한 것 같다.

몸은 예전보다 더 바쁘지만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책을 읽는 시간도 늘어났고, 생각할 시간도 조금은 더 생긴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다녀서 그런지 왠지 몸이 더 튼튼해진 것 같기도 하다. (겨우 20일 정도 타고-_-)

 

아직은 모든 것이 조금은 낯설다.

아직은 내 삶이 안정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안정적이고, 계획적이고 여유롭다.

 

조금 더 부지런한 삶을 살아야겠다.

조금 더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겠다.

조금 더 계획적인 삶을 살아야겠다.

조금 더 여유로운 삶을 살아야겠다.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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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의 논리

조폭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이 항상 나온다.

 

보스의 명령으로 뭔가 커다란 살인 사건을 벌인다.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일이 커지자 검찰의 수사가 들어온다.

보스는 행동대장이나 똘마니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니가 한 5년만 다녀와라"

그러면 행동대장이나 똘마니는 그 명령을 듣고 주범으로 잡혀들어간다.

결국 조직은 계속 유지되고 살인사건과 폭력은 멈추지 않는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어제 김석기가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 전부터 김석기는 자진 사퇴할 줄 알았다.

마치 엄청 비통한 듯이 김석기는 기자회견을 했지만, 하나도 비통해보이지 않았다.

조직폭력배랑 똑같다. 김석기만 자진사퇴당할 뿐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단순한 여론 무마 작전인 것이다.

용산 참사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에 대해서 눈치채고 있지만,

여론은 모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속을 수 있다.

 

이명박 정권, 조폭의 논리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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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감기가 걸린 건지 목이 아프다...

아아...

목소리도 이상하고 재채기도 나고, 목에 뭔가 걸린 기분이다.

아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새해 들어서 안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개인적인 일들 말고, 사회적인 일들.

미네르바, 용산 철거민, 연쇄살인, 민주노총 성폭력, 화왕산 산불....

사람들이 구속되고, 사람들이 죽고, 사람들이 폭력에 시달리고, 상처받는다.

 

아직 2009년이 시작된지 2달도 되지 않았는데...

 

목소리를 좀 제대로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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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기

돈도 아끼고 건강도 위할 겸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어디로 다녀야 할지 모르겠다.

차도로 다니자니, 차들이 너무나 빵빵 거리고 차에 치일까봐 무섭고,

인도로 다니자니, 사람들 사이로 돌아댕기는 게 어렵고, 사람들을 칠까 무섭다.

자전거는 도대체 어디로 다녀야 한단 말인가!

 

얼마전 유럽에 있는 한 나라의 자전거 관련된 정책을 보여주었는데, 참신했다.

자전거를 위해서 1차선을 내준다.

자전거는 공용으로 운영된다. 개인의 자전거를 가질 수도 있지만, 나라에서 자전거를 빌려준다. 정액권처럼 돈을 내면 마음대로 자전거를 빌려서 탈 수 있는 것이다.

곳곳에 자전거 관리소가 있어서 자신이 자전거를 이용하고 관리소에 바로 반납하면 된다.

관리소에는 나라에서 인원을 배치해서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자동차를 끌고 나오면 교통혼잡세(?)를 반드시 내야 한다.

자전거 관련 정책은 위에서 걷은 세금으로 처리한다.

자동차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 나라에서 자동차를 빌려준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너무 좋아보이고 부러워 보였다.

우리도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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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Old Partner, 2008)

사람들이 하도 워낭소리, 워낭소리 하길래 함 봤다.

최근 본 영화(?) 중에서 가장 괜찮은 영화였다.

다큐를 가끔보기는 하지만, 조금은 지루하기도 해서 걱정을 했었는데, 나의 걱정은 걱정일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속에 담겨있는 느낌들이 매우 좋았다.

평생 일을 하는 소와 닮아 있는 할아버지, 소를 위해서 굳이 기계나, 농약을 쓰지 않는 것들.

할머니와의 아웅다웅. 뭐 이런 느낌들이 매우 좋았다.

 

물론 할머니의 고생은 어디갔냐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마지막에 올라오는 글귀들(이 땅에 아버지에게 바친다는 식의)은 조금 별로 였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_-;

 

워낭소리를 보면서 소에 대한 할아버지의 애정에 대한 생각보다는, 나의 삶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빨리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빠르고 손쉬운 것만을 위해서 기계를 쓰고, 농약을 마구 쓰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생각났다.

결국에는 생산력 경쟁을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사람이나 동물에게 좋지 않은 약품을 쓰고, 빨리빨리 생산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생산력 경쟁을 막고, 느리고 여유있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는게 중요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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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중학교 국어교과서 좀 읽어라.

중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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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신문과 진실


  길가에서 택시 운전사들이 다투고 있었다. 차가 서로 스쳐 차체가 우그러졌는데 누구에게 잘못이 있느냐로 시비를 벌

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말이 다 일리가 있어 어느 쪽 말이 옳은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우리가 일상생활에

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신문에는 날마다 몇 건의 교통 사고가 보도되고, 우리는 의심 없이 그 기사 내용을 사실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위의 예에서 보이는 것처럼 하찮게 보는 교통 사고 보도에서조차, 엄격히 따져 보면, 진실 보도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이 진실이냐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단순한 교통 사고조차 진실 보다가 어렵다면, 진실 보다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나 큰 문제는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심지어

신문 기자 자신들조차 진실 보도를 자명한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있으나, 문제를 좀더 파고들어가 생각해 보면, 진실

보도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통감하게 된다.

  ‘진실’이란, 어떤 사건이나 문제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란 무엇인가? 존재하는 모

든 사실은 그 존재가 다원적(多元的)이다. 진실을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일수록 그 존재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일면만

보고서는 진실을 이해할 수 없다. 앞에서 인용한 교통 사고의 경우도 시비하는 두 운전자의 말을 다 듣지 않고서는 공

정하고 옳은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언론에 있어 ‘진실’이란, 첫째, 사물의 부분만 보지 말고 전체를 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진실’이 알려지

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신문이 사건이나 문제의 전모(全貌)를 밝히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자기들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과장하여 선전하기도 하고, 불리한 면은 은폐하여 알리지 않으려고 한다. 이와 같이, 부정확한 보도는 일방적

이며 편파적이다.

  논평에 있어서도 진실한 논평을 하려면 이런 측면 저런 측면을 다 같이 검토하고, 그 바탕 위에서 공정한 판단과 결론

을 내려야 한다. 공정한 논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사고의 자유로운 활동이다.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문제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거나, 이 문제는 이런 방향, 이런 각도로만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이 곧 진실과 반대되는 곡필(曲筆) 논평(論評)이 된다. 곡필을 하려면 그들은 사고(思考)를 포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곡필은 어느 선 이상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자유롭게 다각도로 사고를 하

면 진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둘째, 언론에 있어 ‘진실한 보도와 논평’을 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역사적으로 관찰할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어

떠한 사물을 옳게 보도하거나 논평할 수 있으려면, 그 사물의 의미 또는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사물

의 가치는 역사의 발전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에 인정받았던 가치가 내일에는 부정되기도 하고, 오늘에 부정된 가치가

내일에는 새롭게 평가받기도 한다. 따라서, 사물을 옳게 평가하려면 항상 새로운 가치, 발전하는 새 날을 위한 가치의

입장에서 평가해야 한다.

  어떠한 가치에 서서 사물을 보느냐에 따라 사람의 안목은 결정된다. 안목이 있는 사람이란, 발전하는 새로운 가치의

입장에서 사물을 볼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치고 누가 발전하는 입장의 가치를 거부하겠느냐고 말

할 사름이 있겠지만, 사회적 가치란 사회적 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기의 이해 관계에 따라 사물을 보는 태도가

달라진다. 이것은 이해 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자기의 입장, 자기의 이해 관계와 관련된 처지에서 사물을 보기

때문에 같은 사물, 같은 문제인데도 보는 관점이 서로 달라 견해 차이가 생긴다. 따라서, 사물을 볼 때에는 소수의 이익

이 아니라 다수의 이익, 퇴보의 가치가 아니라 발전하는 가치라는 원칙에  따라 판단하고 평가해야 한다.

  셋째, 사물을 볼 때에는 어느 면이 더 중요하고 어느 면이 덜 중요하지를 똑똑히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존재는 다원

적이라고 했다. 교통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가이다. 버스가 전복했을 때에 차체

가 얼마나 파손됐느냐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 가장 중요한 면이 사건의 근거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사건의 조건이 된다. 따라서, 사물을 옳게 이해하려면 사물의 어떤 측면이 근거가 되고, 또 어떤 측면이 조건이

되는가를 예리하게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근거와 조건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그 사건에 대한 이해가 크게 달라진

다.

  보도 기사에는 ‘리드(lead)’라는 것이 있다. 그 보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리드’로 하여 기사를 작성한다. 그런데 기

사의 어느 부분을 ‘리드’로 잡느냐에 따라 기사가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진다. 사물의 어느 면이 중요한가

는 관심도에 따라 다르며, 관심도는 이해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외신을 다루어 보면, 같은 사건인데도 입장에 따

라, 즉 기자의 국적에 따라 ‘리드’가 제각기 다른데, 이는 곧 사건을 보는 눈에 묘한 차이가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베트남의 최후를 보도했던 각국의 신문을 보면 이것을 더욱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반공 진영의 나라와 공산 국가의 신

문 사이에서 베트남 사태를 보는 눈이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반공 진영의 나라에서도 보도에 역점을 두는 측

면이 나라마다 달랐다.

  사실을 정확하게 보도하려면 기사를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는 말이 있다. 조금도 주관을 섞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사

를 써야만 정확한 보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이라는 표현은 주의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정확

하고 올바른 보도일수록 객관적이라기보다 오히려 훌륭한 의미에서의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사태를 정확하게 알리는

보도일수록 주관적이 되어야 한다는 이론은,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조금도 모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윤봉길 의사가 1931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일본 시라카와 대장 등을 폭사(暴死)시킨 사건을 예로 들어 보자. 만

약, 정확한 보도라는 것이 주관을 전혀 개입시지키 않고 거울처럼 보이는 그대로를 보도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윤봉길

의사는 일본군의 엄숙한 대식전을 피바다로 물들인 엄청난 사건의 ‘테러리스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문은 마땅히

윤 의사를 규탄하는 보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가 사건을 정확히 알리는 보도가 될 수 없

다는 것은 분명하다. 윤 의사의 장거(壯擧)는 우선 역사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고

있으며, 식민지 제도라는 것이 인류 역사상 배격, 규탄돼야 할 역사적 유제(遺制)라는 판단이 앞서야 한다. 또, 윤 의사

의 장거 당시 우리 삼천만 동포가 일제의 착취와 탄압 아래에서 얼마나 신음하고 있었느냐를 윤 의사의 행위와 관련시

켜 보아야 한다. 사건을 전체적, 역사적 근거와 조건을 식별하는 입장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판단이 서야만

이 사건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비로소 파악할 수 있다.

  윤 의사의 폭탄 투척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에 이 같은 수많은 사실이 횡적으로 종적으로 얽혀 있다는

점을 우선 알아야 한다. 한 사건을 정확히 보도하는 데 만약 이와 같은 풍부한 지식이 필요하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주

관적 보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한 보도를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사회 과학적 소양과 문학적, 철학적 소양이 필

요하다.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대기자 올솝 형제가 “훌륭하고 정확한 보도는 본래 가장 주관적인 것이다.”라고 말한 것도 이러

한 점을 지적해 말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윤 의사의 의거와 같은 극단적인 예를 든 것이 적절치 못하다고 할는지

모르나, 정확한 보도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실일수록, 오히려 고도의 주관적 보도를 통해 진실의 전달이 가능하다

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신문이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설명이 필요 없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정확한 보도를 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전체적으로 보아야 하고, 역사적으로 새로운 가치의 편에서 봐야 하며, 무엇이 근거이고, 무엇이 조건인가를 명

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준칙을 강조하는 것은 기자들의 기사작성 기술이 미숙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해

관계에 따라 특정 보도의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기사가 보도되게 하려는 외부 세력이 있

으므로 진실 보도는 일반적으로 수난의 길을 걷게 마련이다. 양심적이고자 하는 언론이이 때로 형극의 길과 고독의 길

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문은 스스로 자신들의 임무가 ‘사실 보도’라고 말한다. 그 임무를 다하기 위해 신문은 자신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

진실을 왜곡하려는 권력과 이익 집단, 그 구속과 억압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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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라는 것

난 원래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다.

지금은 그래도 가끔 눈물을 흘리곤 하지만, 예전에는 특히 더욱 그랬다.

아무리 슬픈 상황이 나더라도, 누군가가 죽더라도 슬프다라는 생각은 들지만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머리 속은 슬픈데, 눈물이 흐르지 않아서 내가 뭐가 잘못된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2003년 김주익 열사가 돌아가셔서 한진중공업을 방문한 적이 있다.

집회현장에서 관련동영상을 보다가 앉아서 말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무척이나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내가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용산 철거민 참사를 접하고 난 뒤에도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냥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 일부러 관련된 영상이나 사진도 잘 보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거나 짜증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애써 담담해지려고, 냉정해지려고 하는 중이다.

저 추악한 자본과 정권 앞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슬프게 보이고 싶지 않다.

 

오히려 당당하게 말을 하는 경찰과 정권에게 분노만을 느낄 것이다.

뻔뻔하게 과격시위 때문에 희생되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그들에게 눈물따위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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