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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예감1

온종일 그것도 모자라 잠자리에서도 그대를 생각했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깨고는 욕들어 먹을 각오하고 방에 쳐박혀 있으면서도,

유쾌하지 못한 뉴스를 접하면서도,

불확실한 내 삶 앞에서라도 그대를 생각했다.

 

불면증,

오늘은 편히 잠을 자고 싶다.

잠을 잘 수 없다.

그대 때문에 잘 수 없다면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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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눈물이 희망의 씨앗이 되어

할머니의 눈물이 희망의 씨앗이 되어


히로시마행 비행기를 타며
작년 12월 4일 “전국 동시 증언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김순악 할머니와 함께 히로시마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2005년, 올해도 할머니들께서는 일분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령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힘든 발걸음을 하셨다. 10월 22일에 있을 “일본군‘성노예’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일본 전국 동시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예천에 살고 계시는 김옥선 할머니와 함께 히로시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작년에는 10개 도시였지만, 올해는 9개 도시에서 열리게 되었다. 도쿄, 카나가와, 미에, 쿄토, 오사카, 히로시마, 토치, 후코오카, 오키나와에서 개최되었으며, 한국, 대만, 필리핀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께서 참석하셨고, 한국에서 다섯 분의 할머니들께서 참석을 하셨다.이용수 할머니께서도 ‘미에’에서 증언집회를 가졌다. 이렇게 동시 집회가 가능했던 것은 ‘나눔의 집’에 방문했던 일본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서, 살아 계시는 동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지로 뭉쳐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이렇게 전국 동시 집회가 이뤄졌다.

 

히로시마에서 머물며
10월 20일 새벽부터 서둘러 예천 터미널에서 할머니를 만나 서울행 버스를 타고 두 시간 반을 달려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은 후 리무진버스로 1시간 반을 달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탑승까지 몇 시간의 여유가 생기니 할머니께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7시 10분, 히로시마 공항에 도착해서 마중 나오신 분들의 배웅을 받으며 숙소로 향했다. 피곤하셨는지 숙소에 도착해 씻으시고는 바로 주무셨다.
21일은 저녁 6시에 히로시마 시내에 있는 가톨릭회관에서 증언 집회가 있었다. 아침 식사가 양식이어서 할머니 입맛에는 맞지 않으셨나보다. 그래서 점심은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한식집에서 먹었다. 오전에는 히로시마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가로 산책을 했으며, 오후에는 민족학교를 방문하였다. 오늘 통역을 맡으실 서석희 선생님은 민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증언 집회 전에 서석희 선생님께서는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나서는 통역에는 문제가 없다며 자신을 하셨다. 서석희 선생님께서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는 증언이 시작되기 전부터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할머니와 통역자가 같이 울먹이다
김옥선 할머니께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증언하시는 게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목소리로 가슴에 묻어 두었던 한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증언을 시작하셨다. 차분한 목소리로 16세 때 끌려갔던 정황을 이야기했다. “벌써 트럭 안에는 15명이 타고 있었다. 나랑 정님이라는 친구가 타서 17명이 트럭을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 10명은 남양군도에, 나를 포함해서 7명은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을 울분을 참으시면서 차근히 이야기를 하셨다. 100명이 넘는 군인들이 줄을 서 있었다. 라는 말에 통역자인 서석희 선생님께서는 자주 눈을 감으셨고, 목소리를 가다듬기도 했다. “100명을 받고 죽고, 목 메달에 죽고, 매 맞아 죽고..........” 할머니께서도 차마 말을 잊지 못하셨다. 결국 할머니와 정님이라는 친구 두 명 살았다. 그 곳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할머니의 기억은 선명했다.
할머니께서는 연신 물을 마셨다. 또 얼마 전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한 것에 대해 일갈을 가했다. “난 당신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저는 잘못을 모르는 일본정부를 미워할 뿐입니다.” 그리고 몇 분간의 침묵을 거쳐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한국에서 몇 번의 대수술과 어머니께서는 눈을 못 감으시고 돌아 가셨다며 할머니께서 몸짓으로도 표현하셨고, 통역 하시는 선생님께서는 그만 눈물 보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좌석에서도 연신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 시간 반가량의 증언시간을 예상했으나, 50분가량의 증언을 하셨다. “8년 동안 당한 걸 생각하면 밤새도록 이야기해도 못한다.” 죽도록 고생해서 끌려갔다 왔는데 주의의 곱지 않은 시선 속에 있다. 너무 분해서 까무라친 적도 있다. 가톨릭 회관을 가득 채운 시민들의 힘찬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셨다. 억누르지 못한 감정 때문에 할머니께서는 밖에서도 눈물을 보이셨다.

 

히로시마대학교에서
그렇게 할머니의 생애 첫 번째의 공개 증언이 마무리 되었다. 저녁을 드시고는 곧장 숙소로 향했다. 피곤하실 텐데도 다 하지 못하신 이야기를 새벽이 다 가도록 가이드를 맡은 다니구찌 교꼬와 저에게 쉴새없이 하셨다. 어느 정도 속이 풀렸는지 곤히 주무셨다.
22일 토요일 2시, 히로시마대학교  중앙 도서관 라이브러리 홀에서 개최되는 “일본군 ‘성노예’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일본 전국 동시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히로시마 대학교로 출발하였다. 이날 9개 일본 도시에서 동시에 열린다. 도쿄, 카나가와, 미에, 쿄토, 오사카, 히로시마, 코치, 후쿠오카, 오키나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피를 토하며 외칠 것이다. 망언을 일삼는 그 땅에서 거짓의 실상이 낱낱이 증언으로 밝혀 질 것이다. 비록 지상파 방송사의 카메라나 지역 신문사 기자의 플래시가 없다 하여도 진실은 묻혀지지 않을 것이다. 일당백의 각오로 앉아서 묵묵히 듣고 있는 일본의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잊지 않을 것이다. 가슴을 치며, 울음을 참으며 증언을 하셨던 김옥선 할머니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작넌에 이어 올해도 기획과 총괄을 맡았던 히로시마 대학생인 가도다 나오꼬씨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할머니 증언 전에 저희 단체 소식지에 일본에서 보내는 편지라고 해서 고정연재를 하고 계시는 츠즈키 스미에 선생님의 기조 강연이 있었다. 2시를 조금 넘겨 할머니의 증언은 전날보다 안정된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중국에서 유학 온 김춘미씨의 통역으로 진행되었다. 어제 했던 증언하고 다르지 않았다. 다를 수가 없다. 어찌 다를 수가 있겠는가.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끔찍한 각인텐데. “못 받는다고 모진 매타작에 죽더라도 한마디 하고 죽어야지 하는 심정으로 우리나라 빼고 우리를 끌고 와서 노예로 부려먹어도 한계가 있지 않느냐 너는 도독놈이다.”라고 하니 더 때렸다며 끝끝내 울먹이는 목소리로 분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리고 이 말도 잊지 않으시고 하셨다. “일본이 이렇게 부자나라가 된 가치가 뭐 있나?, 우리 때문에 이렇게 사는 데 사과도 없고, 배상도 없이 말이지.” 할머니께서는 참지 못한 서러움과 분통 때문이신지 결국 탁자에 엎드려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렇게 증언을 마치시고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어제는 안 드셨던 우황청심환을 마셨다. 그제서야 안정을 되찾는 것 같았다.

 

슬픔은 흘러야 한다
할머니께서는 증언이 끝나고 도서관 의자에 앉아 계셨는데 할머니의 증언을 들었던 유학생 두 명이 할머니 곁으로 왔다. 경북대에서 교환학생으로 온지 얼마 안 된 여학생이었다. 할머니 손을 잡고는 눈시울 붉어질 때까지 울었다. 왜 진작 알지 못 했던가 제 가슴을 치듯이 말했다. “할머니 죄송해요” 그렇게 10분을 있었다. 할머니께서 학생들이 이렇게 일본까지 공부하러 왔으니 열심해라며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꼭 잊지 않겠다며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약속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 집회를 준비했던 히로시마 대학생이 직접 장만한 음식이 차려진 뒷풀이 장소로 옮겼다. 정성껏 차려 준 음식을 먹고는 홈스테이를 하게 된 숙소로 옮겼다. 다음 날 차려주신 아침밥을 먹고 인천행 비행기를 탔다.
할머니와 동행을 하면서 틈틈이 읽을 요량으로 최근에 나온 책을 챙겨갔다. 분쟁지역을 다니며 피스저널리즘에 고민을 하고 있는 윤정은 기자의 책이다. 106일간 이라크 지역의 슬픔을 담담히 담아 낸 “슬픔은 흘러야 한다”이다. 할머니가 겪어야만 했던 태평양 전쟁이나 현재 이라크 전쟁이나 전쟁은 모든 걸 파괴한다. 그 파괴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이런 구절이 있었다. 이 두장을 끝으로 남기고 싶다.
“어쩌면 그 친구가 너에게 기대했던 것은 고통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런 자리에 함께 있어 주는 것, 그것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남의 고통을 고치겠다고 덤벼들지 않는 일, 그냥 그 사람의 고통의 가장자리에 공손하게 가만히 서있는 일.”
“우리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이 현실 앞에서 진정으로 슬픔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고통당하는 데도 고개를 돌려버리고, 슬픈 것을 보고도 슬퍼하지 않는 우리의 잔인한 모습에 진정 슬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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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자 -05.03.16을 회상하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왜 그리 당당하게 보이고,부러워보이고, 의미가 있어보이지는 스스로가 의문이다. ㅋㅋ

 

나의 힘이 뭘까
기형도가 질투는 나의 힘이라 했지만,
난 무엇이 힘일까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피해의식으로 시작되어서 피해의식으로 끝나는 힘이랄까
그래서 나름의 미화와 적개심이 적당히 힘이겠지

 

설레는 봄날이라서 그런지 조그만한 것도 쉽게 지나치지 않는다.
스스로의 감정에 있어서 예민한 것도 분명있겠지만, 그것보다 스스로 생각 해보면 신경인 날카로워진 것 같다.

 

각설하고 이야기 하자.
처음이다. 그런 문자메세지를 받은 게.
누군지고 모른다. 번호가 없었다.
"꽃인 그대와 함께 피어 아픈 그늘있어요. 잘자요. 기홍"
몇 날 며칠 밤을 설쳤다.
왠지 가분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오늘만은 설중매를 마셨다.
아껴두었던 설중매였다. 분선할매가 좋아했고, 난 분선할매를 좋아했다.

 

그런데, 오늘 난 느꼈다.
난, 어쩔 수 없구나.
내가 자라온 환경과 피붙이의 환경과는 다르다고 몸부림치며 도망가고 싶고 잠적하고도 싶은데, 피는 속일 수 없구나를 느꼈다.
이런 나의 장애를 이해한다고 해도 충돌은 당연할 것인데.
어찌 연애를 꿈꾸는가.(그렇다고 완벽주의는 결코 아닌데)

 

결코 그 문자의 주인공이 나의 상상력으로 밝혀지지 않을께 분명하니 괜히 설레고 망상에 젖지 말고,스스로에게 부탁하고 싶다.
현재 삶에 있어 허덕이고 있는 문제에 좀 더 치열하게 살자.
그게 더 현실적이고, 기홍이 답지 않은가ㅋㅋ

 

꼭 그런 기분이다.
윤동주의 시에 보면 침전하는 뭐라고 하는 싯구에 많은 고민했다고 했는데, 기홍주의에 왠지 침몰되는 기분이다.

 

어차피 이 마당이 극히 자기중심인게 당연하겠지.

 

혼자 사무실에서 피켓을 만들면서 생각했다.

 

결국 혼자 살아가고, 혼자 해결하고, 혼자 행동 할 것인데,
무엇에 그리 기댈려고 하는가.
그래, 맞다.

 

그래서
술김에 지랄하고 싶다.

 

C발
무슨 내 주제에
어차피, 안 되는 연애를 구질구질하게
껄떡거리지 말고,
내 삶을 제대로나 살아보자.

 

그래서 포기하자.
감히, 이 봄날에

 

포기하며,
더 좋은 세상에서
나의 연애는 이루지리라
믿는다.

 

어떤 이유로도
내 앞에서 연애를 설득하지 마라.

 

이 말이 비록 술김이라도.
C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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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싸운다 중에서

세계화와 싸운다(폴 킹스노스/ 창비) 중에서
 -‘제 4장 쇼핑중단파 교회’ 사례요약 중심으로


자기문화를 ‘펩시’나 ‘코카’로 양자 택일할 수 밖에 없는 문화식민지에 살고 있다. 문화 전쟁은 진행 중이다. 무섭게. (본문 중에서)

 

1. 빌리목사
-불꽃 같은 근사한 머리모양을 하고 치아를 빛내며 개목걸이와 흰색 턱시도를 입고 설교.
-‘휴대전화 오페라’ 신도들이 가게 안을 돌며 전화기에 대고 노예노동에서 저임금까지 무엇이든 큰소리 침
-‘말다툼연극’ 화장실에서 섹스하자고 큰소리치는 대본, 출소자가 감옥에서 칠했던 종이컵을 알아본다는 대본.

 

2. 소규모 문화게릴라들
-미국: 캘포니아교도부(CDC), 광고판해방전선(BLF)→ 말보로 광고판이 말보로 담배꽁초로 바뀌고 등등
-영국: 반광고세판 세뇌행동(ABB), 신광고수준당국(NASA)
-팬클럽회원들: 나이키타운에 들어가 운동복을 엄청나게 구입후 ‘더러운 것이 묻었다’고 환불을 받았다. 더러운 것은 나이키 로그였다.
-휠마트(Whirl-Mart): 햐얀색 낙하복을 입고 월마트 통로에서 빈수레로 한시간 동안 오간다. ‘소비를 깨닫는 예배’ 중이라 답한다.
-감시카메라 배우들(SCP): 맨해튼의 3,000개 cctv 앞에서 거리무언극을 공연함으로 cctv 반감 표출.
-런던 활동가들은 가짜신문을 나눠준다.
-RT마크: 전복적인 아이디어 교환하는 온라인체
 ①‘바비해방전선’-미군병사인형을 바비인형으로 교체.
 ②2002년 가짜 죠지 부시지지 사이트 제작. 폐쇄 조치됨. 부시 왈 “자유에도 제한이 었어야 한다.
 ③수천명의 히피들과 노숙자들을 모아 같은 날 전국의 월마트 주차장에서 자게 한다.


소비자사회에 대한 저항도 상품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우리의 정신을 파괴한다. 그런데 기업이 아무리 애를 써도 문화훼방은 예상을 뒤엎으며 계속되고, 발전 부활한다. 문화훼방을 요점이다. (본문 중에서)

 

3.생체제빵부대(BBB)
-유기농 코코넛크림파이를 서류가방에 넣고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대부 밀턴 프리드먼 얼굴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이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우리에게 하늘에 떠 있는 파이를 먹으라고 합니다. 나는 다만 그 파이를 따다가 그에게 돌려준 것뿐입니다.” ‘파이로 파워에 맞서기’ 보도자료를 자료 작성시 제빵용어를 절묘하게 사용 말장난과 정치를 조합한다. 또 ‘체리파이 삼인조 사건’는 도시노숙자 정책에 반대 시위 일환으로 샌프란시스코 시장에게 가격, 결국 징역 6개월 선고, 이 사건을 두고 ‘전세계 빵봉기’라 부른다. 전세계 빵봉기는 사빠띠스타에서 영감을 얻음. 권력층에 디저트를 배달하는 제빵투사들의 지하네트워크‘라 자칭함. 파이세례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 직접행동이다. 눈에 보이는 에스페란토다.

문화훼방은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점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다. (전적으로 동의를 하지는 않지만) 미래의 투쟁은 머리와 가슴의 투쟁이라 생각한다. 무장투쟁, 대중저항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무력 투쟁은 국가의 파상공격을 초래할 뿐 아리라 사람들의 파상혐오를 초래한다. (본문 중에서)

 

○땅과자유
-반소비주의에 대한 운동 차원을 벗어나 전방위적인 전략과 전술로 활용해야한다. 예를 들어서 오아시스 프로젝트 예술인 회관 문제 해결을 위해 문광부 앞에서의 문화노동자들의 기발한 시위(라면 먹기, 서서 잠자기, 낚시하기, 체조하기 등)
-대구 중앙로 반월당 횡단보도 삭제에 대한 분노로 ‘횡단보도 프로젝트’ 실시
- 이런 행동이 좀 더 활발해져서 우리의 분노를 제대로 표출하면서 살자. 지역에서 지하철․버스요금 인상은 원칙과 기준도 없이 인상하며 우리의 분노는 며칠 뿐이고, 표출은 없다.

 

<본문 중에서>
*경찰은 자본주의의 폭력적 얼굴이다. 다시 말해, 경찰은 부자들을 지키는 개다. 따라서 무정부주의자들이 부자들과 한판 계급전쟁을 시작할 때, 최전선은 경찰이다.

*투쟁이란 남과 싸우는 것도 아니고 폭력적인 것도 아닙니다. 투쟁이란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자기 손으로 해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는 투쟁할 수 없습니다. 연대하는 법을 배우고 함께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모든 것을 요구하자. 있는 힘껏 외치자. 손에 넣을 때까지 멈추지 말자. 우리도 놀랄 만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우리가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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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전환 중에서

<위대한 전환> 중에서 -42. 국경을 가로지른 조직화

 

뉴그라운드를 분쇄한 협력
 -국경을 가로질러 광범위한 조직과 네트워크, 연합체형성은 지난 20년 동안 경제에 직접대응하면서부터 시작
㉠70녀대 농장노동자연합노조가 유럽의 노조지지→ 노조없는 포도농장 불매운동, 해외확산
㉡네슬레 유아식 선전을 막기위한 운동→ 50개가 넘는 나라 참여, 구제적인 합동회의 구성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국제농업위기정상회의→ 비슷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걸 인식
㉣농장노동자조직위원회의(볼드머 벨라스케스)→미국과멕시코 농장노동자조직,공동행동인식

㉤투자회수운동→아프리카민족회의에서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 반대운동, 철회시킴
㉥국제인디언조약협의회→원주민들이 정기모임으로 콘티넨털 석유회사와 싸움, NAFTA와 GATT의 심각성을 인식, 미․캐․멕의 원주민 연합체형성, 인간게놈 다양성프로젝트에까지 이름
㉦미국자유무역협정와NAFTA에 반대운동,GATT재협상반대운동→국제적인 조직운동 절정기
㉧‘50년이면 충분하다’는 운동→세계은행과 IMF 50주년 기념일에 출범, 치밀한 조직으로 40개가 넘는 나라가 시작, 94년 마드리드에서 세계은행회의 때 절정-최근가장성공적인운동

 

자기이익과 연대
▶자기 이익에 기초한 운동
 -레이건의 GATT 농업 관련 협정 → 가족농에게는 위협적
 -지적재산권 조항→ 100만명의 농민들의 대규모항의 시위(전세계를 돌며 합동회의와 방법 강구)
▶국경을 가로지르는 조직운동
 -미국 농민이 브라질 농민을 적으로 보지 않고, GATT의 공격 앞에서 문제의 근본 원인을 뿌리 뽑기 위해 공동의 전선이 필요

 

지역과 지역의 관계
▶지역이나 주 차원의 조직들이 직접 맺은 관계가 전국적인 차원의 조직이 맺은 관계보다 훨씬 지속적이고 생산적이다
 -멕시코 북부지역 농민들이 캔자스주 농민연합에 중고 농기계 구입 부탁, 캔자스 농민들이  국경까지 몰고 가 멕시코 동료 농민들에게 넘겨주었다.
“난 미국 농민과 멕시코 농민 사이에서 우리가 농사짓는 규모 말고는 거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문제도 비슷하다. 시장에서 경쟁을 허락하지 않는 독점적인 초국적 기업에게 착취당하고 부패한 정부 때문에 고통 받고 있기는 매일반이다.”

 

개인적인 관계
 -삶과 정치의 모든 측면에서처럼, 중요한 건 사람이다. 여기서 출발하여 다지고 또 다른 싸움의 발판과 원동력이 된다.
▶ 80년 12월 벨기에 열린 GATT행정장관회의→ 전세계적인 농민저항운동으로 신속,조직적으로 대응 -미국농민연합‘가격과 생산에 관한 일반협정’제안, 폭넓은 지지, 유럽농민연합회가 있었고 이어서 환경,소비자,노동,시민단체의 연대해 이 제안을 지지하는 행진을 함. 결국 회담은 무산, 협정타결 시한 5년후로 연기시킴
▶94년 GATT의 우루과이라운드가 투표 직전에 브뤼셀에서와 같은 대대적인 시위를 벌임

 

장기적인 전망
▶장기적인 관점에서 운동을 봐야 한다
  -네슬레 불매운동은 1977년에 시작 84년 겨우 매듭, 약속 위반으로 88년부터 다시 시작     지금도 계속됨. 89년에는 마닐라에서 60개국의 활동가들이 모여 10주년 기념식가 향후     10년 계획을 세움.
▶새로운 지도자를 발견하기는 쉽다. 오히려 어려운 것은 갈수록 나이가 드는 지도자들이  물러나는 것이다.
▶국경을 가로지른 국제운동이 국내운동에도 똑같이 적용
   -관계와 낯선 동료들과의 작업, 새로운 사고방식에 주의깊은 관심을 기울 때 -지속가능     한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다.

 

 역사의 변혁에서 최고의 덕목은 열정이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다 된 것은 아니네 지혜가 있어야 하네
 지혜와 열정의 통일 이것이 승리의 별자리를 점지해준다네
 한마디 더 하고 싶네 적을 공격하기에 앞서
 반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공격을 삼가게 패배에서 맛본 피의 교훈이네  

 김남주의 시<마지막 인사> 중에서


*땅과자유 학교에서 위대한전환(동아일보사) 책을 가지고 공부를 하였다. 4부 ‘다시 지역화로 향하고 있는 새로운 발걸음들’ 집중하여 각 장 별로 맡아 발제를 하였다. 난 발제보다 요약에 치중하여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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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사람'의 힘을 믿어요!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한미FTA 저지

땅과자유 수요집회

 

지난해 12월 13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2.28 기념 공원 앞에서

우리 땅과자유 모임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한미 FTA 저지"를 위해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비록 매번 10여명 안팎의 많지 않은 식구들이 모이는 작은 집회이지만,

규모가 작은 투쟁일수록 더욱 힘이 나는 땅과자유 사람들의 기질 덕분에^^

추운 날씨와 연말연시의 어수선함 속에서도

한 주도 쉬지 않고 힘차게, 꿋꿋이 기도와 투쟁의 촛불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무현의 가소로운 '개헌' 카드와 다가오는 '대선 정국'의 블랙홀 속에

풀뿌리 민중의 생존과 관련된 모든 사안들이 실종되어버리고,

평택 문제와 한미 FTA 협상 또한 슬며시 졸속으로 처리되어 버릴 위험이 매우 큽니다.

 

더구나 1월 15일부터 19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 FTA 6차협상은

어느때보다 강도높은 정부의 '미디어 공세'와 민중에 대한 탄압 속에서,

그리고 어느 때보다 거센 미국과 초국적기업들의 압력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한/미 양국이 '2월까지 협상 타결'을 공언하면서,

고위급에 의한 '빅딜'의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는 매우 심각하고 우려스러운 상황입니다.

상황이 비록 어렵지만, 전농을 중심으로 한 농민들은 농기계를 몰고 전국을 순회하며

엄동설한을 뚫고 끈질긴 투쟁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또 평택 미군기지와 관련해서는, "마을 공동체를 포기할 수 없다"는 주민들의 최소한의 요구조차

사실상 묵살하고 있는 국방부가 "주민들이 이주에 합의했다"는 식의 거짓선전을 일삼으며

주민들의 투쟁의 진의를 왜곡하고 운동진영을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주민들은 900일이 넘게 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촛불을 밝히고 있으며,

평택 지킴이들은 대추리를 평화와 자치의 '꼬뮨'으로 만들어 가기 위한 헌신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의 힘이 비록 보잘것없으나, 그렇다고 손놓고 무력감에 빠져 있어서는 안됩니다.

'한 사람의 혁명(One-Man Revolution)'의 진실을 믿는 우리 땅과자유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객관적 정세'와 '역량의 한계' 따위에 핑계를 돌리거나

'지도부'나 소위 '중앙'의 판단과 지침을 기다리고 있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힘을 의식하고, 그에 따라 개인으로서 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행동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지역에서 끈기있게 기도하고 투쟁해 왔습니다. 

지난 12월 13일부터 이어오고 있는 수요집회 역시 그러한 우리들 실천의 연장입니다.

 

땅과자유 식구 여러분,

그리고 '땅의 사람'으로서, '땅의 사람'이 주인되는 세상을 꿈꾸는

대구 경북의 모든 동료 시민 여러분,

'한미 FTA 저지 대구경북운동본부(대경본부)'가 주최하는 공식적인 투쟁일정 및 지침을 따라

함께 연대하여 힘차게 싸우되,

매주 수요일 저녁은(대경본부의 별도 일정이 없다면)

"평택 미군기지확장 반대, 한미 FTA 저지 수요집회"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최'가 되고 '조직자'가 되어,

힘차고 즐겁게 열어나갑시다.

 

우리들, 비록 작고 여린 목소리이지만,

2.28 공원 앞을 지나는 단 한 사람의 동료 시민의 가슴 속에

또하나의 촛불을 새로 켠다는 믿음으로,

'자율, 자급, 자치'와 '평화'를 위한 촛불을

누군가의 가슴 속에 하나 더 밝힌다는 마음으로 

수요집회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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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자유학교와 대화마당 안내

지난 1월 12일, 2007년 땅과자유학교 첫 시간이 열렸습니다.

모두 10명의 땅과자유 식구들이 모여, 새해 학교 문을 힘차게 열었습니다.

계획대로 간디의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를 함께 읽고

묵상하고 토론했습니다.

(각자의 소감과 평가 등 '후기'를 '댓글' 또는 '답글'로 적어주세요.)

 

공부를 마치고, 앞으로 한 주 동안 함께 실천할 생활과제도 정했습니다.

"식사 전 감사기도를 올리고, 밥을 꼭꼭 씹어 천천히 먹자!"

모두 함께 한 주 동안 마음을 다해 실천하고,

다음 땅과자유학교에서 몸과 마음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공부방법을 조금 바꾸겠습니다.

함께 책을 천천히 읽어나가려고 했는데, 계획을 바꾸어, 각자 미리 읽어오도록 하겠습니다.(아래 일정 참고)

2월 2일, 김종철 선생님과 함께하는 [대화마당] 전까지는 적어도 이 책을 한번은 읽는 게 좋겠고,

또 각자 읽는 데 그다지 어려움도 없을 뿐더러,

미리 읽어 오면, 토론과 묵상 시간을 좀더 넉넉히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월 2일 전의 두 주 동안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를 읽고 공부한 다음,

2월 2일 김종철 선생님과 함께 [대화마당]을 열고,

그 다음에는 다른 책이나 다른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때, 매주 한번씩 [읽기모임]을 여는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검토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너무 버겁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 이어서 함께 공부하고 싶은 책이나 주제가 있으면

지금부터 미리 제안해 주세요. (물론 간디 이외의 책과 주제도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2월 2일 [대화마당]을 각자 주위에 널리 알려 주세요.

특히 평소 땅과자유 모임에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학교나 모임에 나오지 못했던 주변 친구들을

이번 기회에 두루 초대하세요.

 

 

다음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땅과자유학교 [읽기모임]

 

1월 19일 (금) 저녁 7시 30분부터

녹색평론사 자료실 (대구)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제3장부터 19장까지

 

1월 26일 (금) 저녁 7시 30분부터

장소 미정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제20장부터 끝까지

 

 

2. 땅과자유학교 [대화마당] 첫번째는 2월 2일, 김종철 선생님 강연 

 

일시 : 2월 2일 (금) 저녁 7시부터

장소 : 전교조 대구지부 강당

강사 : 김종철 선생님 (녹색평론 발행/편집인)

주제 : '세계화'에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 -- 간디와 '스와라지(자치)' 사상

 

누구든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참가 문의 010-4690-0742 (땅과자유학교 운영자 홍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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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후반기 내 삶의 중심에 있었던 '농민장터'

2006년 후반기 내 삶의 중심에 있었던 '농민장터'

 

늦게 장터 정산을 끝내며, 나도 정리를 해야할 것 같았다.

말끔히 정리된 로드맵이나 장터 취지의 휘황찬란  선배의 글에 주눅이 든 건지 농민장터에 관한 글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다. 6개월 가량을 함께하며 보낸 시간들인데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니 조금은 아쉽고, 섭섭하다.

 

2006년 7월 21일부터 10월 27일까지 매주 금요일 농민장터를 열었다.

경북지역의 10여개의 시군 농민회 소속 생산자들의 물품을 직접 들고와서 장사꾼의 잇속이 아닌 농민의 똥줄타는 심정으로 장터에 참여했을 것이다. 대구공업대학 운동장에서, 대구MBC 앞마당에서, 수성구민운동장 주차장에서, 북구 관음운동장에서, 경북대 운동장에서 총 14차례를 열었다.

 

찜통 더위의 땡볕을 받으며 시작해서 느닷없이 내리는 비를 원망하기도 했고, 금요일마다 일기예보는 '비' 라해서 항상 걱정을 했으며 떨이를 하고 싶어도 어느덧 짧아지 해를 끝으로 대장정의 장터도 파장을 했다.  풀어내자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뒤죽박죽이겠지만 어디 이것 뿐일까. 근데 말자. 내 속만 터지고 후회스러울 뿐 일 것이다.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얻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 순전히 내 개인적인 수준과 느낌이겠지만. 금호의 힘이라 일컫는 영천의 연사부장님은 항상 사무국의 운영을 걱정해하며 배즙을 먹어라며 몇 박스씩 챙겨주셨고,  성주의 사무국장님,  안동의 형님들, 경산의 호균선배, 고령의 고시생 같았던 농민분, 의성의 자부심과 한미FTA 저지에 역설이시던 어르신들, 장터 식당의 주인이셨던 상주 여농의 조직부장은 항상 덤으로 부침개 또는 묵을 주셨다. 생각난다. 다시 장터 실무를 보기는 싫지만, 지금 생각나는 사람들은 보고 싶다. 항상 소주가 뒤따라다녔던 장터, 다같이 모여 소주 한잔하고 싶다. 집회 현장에서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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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남쪽으로 튀어&quot; 중에서


 

몸과 정신이 공황상태에 빠진 날 난 이 책이 찌푸라기인 양 끈질기게 잡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끈질기게 잡고 있지 않아도 술술 읽히는 책이다.

바닥치기를 하며 하루 한끼를 겨우 라면으로 챙겨 먹으면서도 그 때의 상황이 뭔가를 집중하게 만들었다.

역시나 나에게 부족한 건 용기, 기개... 또 확인했다.

사실 '과격파 운동권 출신 아버지'가 쪼매 부럽다. 과거, 현재의 모습보다는 비위짱이 틀어지면 저돌적인 사람이 되는 그 천성이, 글구 아들과 가끔 프로 레슬링을 하는 것도.

마치 현실로 착각하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당최 소설과 현실도 구분을 못하니 쯧쯧

현실 감각이라도 되찾을 요량으로 목욕재계에 준하는 세수를 하고 한 시간 반 가량을 걸어서 밥줄이 있는 일터로 갔다.

자질구레하게 메모했던 글을 옮겨 놨다.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화하지 않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주 작고 작아, 이 사회는 새로운 역사도 만들지 않고 사람을 구원해주지도 않아. 정의도 아니고 기준도 아니야. 사회란 건 싸우지 않는 사람들을 위안해줄 뿐이야.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

 

*나는 나의 깃발을 흔들 뿐이다.

 

*학교는 국가가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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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하는 존엄성이 아니라면 우리는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상품이 된다”

한미 FTA 저지 총궐기를 호소하며
“반역하는 존엄성이 아니라면 우리는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상품이 된다”


 100여년 전 강도 일제와의 을사늑약 후 40여년 동안 빼앗긴 땅에서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도륙당했는지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외세의 개입으로 두동강난 산하에 민족상잔의 비극을 지나, “잘살아 보세”라는 경제성장의 허울을 뒤집어쓴 개발독재의 마력에 휘둘려 또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비참한 삶으로 떠밀렸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산을 깎고 들을 파헤치고 강을 막고 바다를 메우며 하늘을 가리는 건설공화국의 명성을 얻는 동안, 빈부귀천 없이 우리를 품어주던 공유지 금수강산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도시와 수도권의 기형적인 비만은 농촌과 지방의 야위어진 제 살을 뜯어먹고서야 가능했다. 온 나라가 투기판이 되고 도박을 걸어야 살아갈 수 있는 땅이 되어 버렸다.

 

 일제가 패퇴하고 되찾은 이 땅에 활개치며 들어와 주둔한 미군기지에 옥토를 내어주며 자동차 팔고 휴대폰 판 돈은 미제 무기 사는 데, 미제 학벌 사는 데 갖다부어도 모자란다. 그러던 중 IMF 난리통을 거쳐 이제 결국 한미 FTA를 통해 무자비하고 악랄한 초국적 금융자본의 아가리에 남김없이 다 떠밀어넣겠다는 이 노무현 정권을 ‘광인(狂人)’이라 말고 달리 어찌 부르겠는가?

 

 세계 도처에서 자립적·자주적으로 살던 민중들의 삶을 폭격으로 짓뭉개고 침략하여 남의 피눈물을 제 양식으로 삼아 수탈하길 일삼았고, 전세계 곳곳에 725개가 넘는 군사기지를 보유했지만, 빈부격차가 가장 극심하고 국민의 5천만명이 의료보험의 혜택조차 누리지 못해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나라가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다. 자국민의 기본적인 삶도 보장하지 못하는 이런 미국의 길을 따라가자는 ‘광인’의 논리를 도저히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험악한 세상 모진 기후의 여름에도 수십 가마니의 나락을 키워내는 우리 농민들. 눈 내리는 들판으로 쟁기를 매고 보이지 않는 봄을 향해 늙은 발걸음을 옮기듯 때때로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아스팔트 농사지을 때, 자식 같은 경찰들에게 얻어맞아 수십, 수백이 다치고 죽어나가고, 그 울분을 삭이지 못해 농약 마시기를 반복하는 농민들은 또 얼마던가. 그러나 세상은 묵묵부답, 냉담하기만 하더니 이제는 농토를 버리고 땅에 뿌리박은 삶을 통째로 내놓으라 한다. 이런 개망나니 세상이 또 어디 있으랴.

 

 이에 우리는 민중의 생존과 평화적 삶의 근본인 농업과 농민의 명줄을 뿌리째 뽑아 처참한 파국을 몰고 올 한미 FTA를 저지하기 위해 결연히 일어서고자 한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명백히 반대한다. 동시에 다양한 대안적 세계를 바란다.
 여러 다양한 세계가 아닌 하나의 세계화 지배체제로 인해 유린당한 모든 민중과 연대하고자 한다.
 “우리쌀 한되가 지엠 자동차보다 더 고귀하다.”

 “멕시코 원주민과 농민이 가꾼 한개의 토종 옥수수가 삼성 휴대폰보다 더 소중하다.”
 우리의 경제 인식은, 한되의 쌀과 한개의 옥수수가 장차 그 낱알들보다 더 많은 수의 민중과 후손을 먹여 살릴 인류의 자산이며, 농민의 존엄과 사회적 건강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요란한 굉음을 내며 폭주하는 스포츠카 핸들이나 잡는 게 어울릴 삼성 이건희 같은 인간들에게 나라와 민중의 운명을 조종할 면허증을 확실히 내어줄, 이 미치광이들의 한미 FTA를 전민중의 단결과 항쟁으로 저지하고, 자급과 자치의 희망을 노래하자.

 

 우리는 희망의 세상을 일구는 항쟁의 길에서 반드시 부딪힐 민중의 적들인 카길, 몬산토, 맥도날드, 스타벅스, 테스코 따위의 초국적 자본의 타도와 농민들의 생존에는 아랑곳없이 오로지 수익 경쟁만을 염두에 두고 저가의 쌀을 공급하는 국내 대형 유통자본들의 타격에 기여하는 어떤 투쟁도 숭고한 도덕이며, 인간다운 사명으로 의심치 않는다. 

 

 민중이여 일어나라, 저항하라, 반역하라!
 반역하는 존엄성이 아니라면 우리는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상품에 불과하다. 굶주린 자본의 통치하에서 쪼개지고 뼈 빠지는 노동은 소비문화를 위안삼아 민주주의, 정의, 자유를 통째로 내어주고 노예로서 사는 일이다.

 

 오직 자급을 가꾸는 들녘에만 평화의 아름다움이 있을 뿐이다. 자급이 없다면 민주주의도 인권도 없으며, 자치도 없다. 남의 땅을 침공하여 가져오는 석유와 식량으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산해진미를 차리는 성장은 결코 민중의 몫이 되지 않는다.

 

 온 나라 온 세계의 민중을 쥐어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철폐하고 한미 FTA를 저지하기 위한 민중대항쟁으로 새롭고 다양한 세상을 일굴 것인가, 아니면 ‘광인’들의 잔칫상 옆에서 비육당하고 말 것인가? 이제 선택의 순간이다. 비육당하기 싫은 자, 떨쳐 일어나 함께 외쳐라.


 서민 살림 쥐어짜는 한미 FTA 반대한다!
 부자들만 살찌우는 한미 FTA 반대한다!
 주권과 민주주의 팔아넘기는 한미 FTA 막아내자!
 우리 농업 다 죽이는 한미 FTA 막아내자!
 제2의 을사늑약, 한미 FTA 협상 중단하라!
 미친 소고기 먹기 싫다, 한미 FTA 협상 중단하라!
 농업은 상품이 아니다, 한미 FTA 저지하고, 우리 농업 지켜내자!
 식량주권 팔아먹은 노무현 정권 물러가라!
 농민 살해, 노동자 살해, 노무현 정권 물러가라!

 

 민중생존 압살하는 노무현 정권 타도하자!
 제2의 ‘을사오적’ 김현종, 김종훈을 처단하자!
 우리쌀 헐값 판매, 홈플러스 규탄한다!
 농민 가슴 못질하는 홈플러스 규탄한다!
 지역경제 다 죽이는 홈플러스 박살내자!
 노동자-농민 직거래로 우리쌀 지켜내자!
 땅을 농민에게! 공장을 노동자에게! 권력을 민중에게!
 자율! 자급! 자치!


2006년 11월 22일
         땅과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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