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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이주연대회의 결성 토론회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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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완두콩을 심다

마리아에게 부탁했던 완두콩을 한 움큼 얻어 받았다. 나에게 있어 그냥 완두콩이 아니였다.

완두콩을 심기에는 늦은 감이 있지만 정성스레 심었다. 마치 애인을 만나러 가듯

설레이며 완두콩을 들고 텃밭으로 향했다.

"기억하기 위해 싸운다."

하지만 함께 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항상 마음 한켠이 무겁다.

마지막 촛불행사도 참석하지 못 했다. 그래서인지 지킴들이 부른 노래를 매일 듣고 있다.

"기억하기 위해 심었다. 씨앗을 받아 내년에도, 영원히 심을 것이다. 완두콩만은 꼭."

"대추리 도두리 황새울은 영원하다"

일단 네 고랑만 심었다. 이 소중한 씨앗을 다른 분께도 나눠 드려야 할 것 같았다.

 

작년 팔공산에서 시작되었던 텃밭농사가 올해는 내 방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으로

이사를 했다. 영숙선배가 없었다면 가난한 청춘의 꿈은 항상 꿈만 꾸고 있을텐데.

이렇게 텃밭농사를 지을 수 있어서 좋다. 더욱이 대추리 완두콩을 심을 수 있어서. 

평화시장에서 고추 모종도 사와 심었다.

 

이번주 토요일은 지주대를 세우고, 고추랑 오이, 쑥갓, 상추도 심어야 할 것 같다.

수확물을 거둬 집밥을 그리워하는 자취생들과 나누 먹어야 겠다.

 

"농사를 지으면 평화가 옵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 주말마다 나의 열정을 쏟아 부을 작정이다.

 

 *대추리 완두콩을 심었다. 대추분교, 황새울, 지킴이 숙소... 대추리 도두리 모든 것이 열매로 맺힐 것이다

 

 *밥상에 오를 아삭아삭한 고추를 생각하니 입맛이 돈다. 나눠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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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또 걷다

박재삼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첫 구절인 "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처럼 혼자 앉아 있지 못해서 매일 걷는다. 도착할 곳이 없는 발걸음을 제일 싫어하고 힘들지만 무작정 걸을 때도 있다. 근데 지금처럼 쉼터에서 당직 설때면 걷고 싶어 미칠 지경에 이른다. 감옥에 있는 동지들도 이런 마음이겠지. 군대있을 때도 걷도 싶어 별 짓을 다했는데.

 

지하철과 버스는 답답해서 요즘 거의 안 탄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만 음주 운전으로 며칠 동안은 자제하기로 했다. 오늘도 한 시간 반을 걸었다. 골목길을 걸으며 조용해서 좋지만 또 혼자인 것 같아 매연 가득한 대로를 걷는다. 효목시장을 나와 큰고개 오거리쯤이면 속도에 탄력이 붙는다. 완만한 고개를 넘어가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평화시장쯤이면 혼자가 아님을 느끼며 사람 구경을 한다. 반 쯤 온 것 같은 공고네거리에 서면 왜 이렇게 걸을까 싶다. 원래 걷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지하철을 타면 짬을 내어 책이라도 볼 수 있을텐데. 난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았다. 강남약국을 지나치며 이런저런 기억을 되살려 보기도 했다. 칠성시장에서 신천변으로 빠졌다.

 

개나리를 보고싶어서 신천을 끼고 걸었지만 마침 어스름이 깔릴 때라서 그랬는지 우울해졌다. 예전에는 걸으면서 머릿속에 복잡했던 것들이 단순해지며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근데 요즘은 꼭 그렇게 뭔가를 얻어려고 하기 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많이 걷는다. 다리가 묵직해져오며 아플 때까지 그래서 집에 도착하면 잠이 올거라 바로 누웠지만 정신은 더 말똥말똥 또렷해진다. 제길~

 

신천에서 삼덕동으로 빠졌다. 쉼터에 도착해서 영화 <사랑할때 이야기하는 것들> 봤다. 억지스럽지 않았다. 담백했다. 혹자는 '미열'로 표현했는데 그 말에 동의하는 편이다. 여전히 왈칵 쏟아내지는 못했다. 그 많은 눈물은 다 어디로 도망갔을까.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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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소주 마시러 간다

백수의 하루는 너무 염치없다ㅋㅋ

 

엊그제는 존경하는 활동가 선배와 이주동지와 소주 한잔했다.

어제는 2900원 짜리 포도주 마시고 술친구인 형집에서 잤다.

오늘은 한 3년을 넘게 같이 하루가 멀다고 만나서 마시니

그만 보자고 농담하는 형한테 소주 한잔 사달라고 메일 날렸다.

 

이러다 속이 빵구날 것 같지만

해마다 한 번은 꼭 봄앓이를 앓는 나에겐

소주가 약이다^^

 

봄은 빨리 안 지나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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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싶은데

잠이 오질 않는다.

몇 주 동안 거의 술로 기절해서 잔 탓에 맨정신으로는 잠이 오지 않나보다.

그래도 내일은 여수 집회에 가기로 약속했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위태롭다.

 

다시 겨울이다.

어찌 꽃샘추위가 겨울 추위보다 더 한 것 같다.

마치 지금의 내 상황 같이

그건 아마도 살짝 맛뵈기 보여준 봄기운에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찾아온 추위 때문일 거다. 

그 추위가 나에겐 환상에서 현실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에 몸살을 앓는 것 같다.

 

긴박한 3월의 일정을 뒤로 하고

결국 잠수 타고 말았다.

쿨하게 어디로 튀어 볼까 했는데,

감옥같은 방에 박혀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오늘 상경집회에, 지역 집회에도 참가하지 하지 않고, 기사로만 보고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런 정세 속에서 개인사에 파묻혀 잠수타는 게 부끄럽지 않느냐고?

근데 내 몸과 마음이 지금은 감당하기에 혼란스럽다.

 

시간이 나를 살아 숨쉬게 하겠지

결국 버팅겨 내는 것,

견디는 수 밖에 없다.

 

누군가를 생각하다

그 관계속에서 교통사고를 칠 것만 같아

먼저 잠수 탔다.

꽃샘추위가 지나가면

좀 나아질까.

자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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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연애는 자전거를 타고 온다!!

그 기쁜 마음으로 페달을 밟았고, 그 눈으로 찾아낸 봄.

별꽃, 산수유꽃, 매화..... 망울져 있던 목련

설렘

 

그것도 잠시

이제는 시기와 질투의 눈으로 째려본다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살해하고 싶은 봄날

내 삶하고는 너무 먼 평행선 같은 봄날

2007년 봄날은 갔다.

 

아프다.

가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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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아름다운 노.농연대-자급.자치의 관점으로

[요약]아름다운 노.농연대-자급.자치의 관점으로
(천규석/ 녹색평론 통권 91호)

 

-노.농연대의 직거래가 대안이다
1. 도농 직거래: 지역 농민단체 또는 마을 공동체와 도시공장의 노동조합이 연대하여 농어촌마을의 농축수산물로 직거래로 지역적이고,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차원의 노농연대사업으로서의 직거래
2.학교급식: ‘친환경 우수농산물’에서 ‘친환경 지역농산물의 직거래’로 조례 개정운동.

 

-전북 정농의 실패, 교훈
1. 학교측과 생산자 측의 사전 논의나 통보없이 임의로 이루어짐, 사전계약재배가 아니였다는 사실. (도의 재정지원으로도 되는 것이 아니며, 재고의 문제, 농산물 때깔의 문제가 있으며, 조례 개정이 된다고 해도 불안정한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
2. 사후 일들에 대한 문제점에 대한 사전 대비없이 전북도 보조금 3억 5천만원, 농민들의 쌈지돈 1억 5천을 보태어 5억 짜리 물류센터를 지은 것부터 망조. (비근한 예는 많다. 안동가농의 ‘우리농한생명 운동’ : 확고한 비전, 전망도 없이 ‘물량화와 규모화의 경제’에 빠져 단명했다.)
반대로 한 살림은 20년이 다 되어서야 물류센터를 지었다: 오랜 활동기간에 쌓여온 절실한 내부적 요구와 자기능력의 축적에 따라 거의 자력갱생을 이뤄냈다.(일단 ‘하자’가 아니라 ‘하다가 하자’)

 

-재정지원 받는 물량주의 운동은 반드시 망한다
1. 사회문제의 궁극적인 책임을 정부에 묻고 재정보조의 문제해결이 최종 열쇠인냥 주장한다. 다시 말해 재정지원 받는 사회운동은 이미 운동이 아니다.(모든 운동의 총망라, 물론 한계와 결론을 지어 놓고 우리의 역할은 여기까지 라며 자기 스스로 해산한 거의 단체는 없었다. 사업 전환만 있을 뿐이지)
2. 어떤 사회단체는 정부가 마땅희 해야 할 일을 정부가 안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대신 해주고 최소한으로 받는 재정수령이 왜 나쁘냐고 반문할 것이다. 정부에 기생하는 관변단체의 변명 또는 곧 그렇게 될 단체의 자기합리화다.
3. 재정지원이 없다고 우리가 하던 일이나 해야 할 일들을 자꾸 정부에게 하나하나씩 떠넘기고 정부가 해주기를 요구 하니까. 우리의 자주와 자치는 사라지고 수탈기구로서의 정부는 날로 막강해진다. 정부에 요구, 의존하는 운동은 국가주의의 체 바퀴를 못 벗어난다.
4. 정부에 대해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고 가능한 세금도 안 내는데 있다.

 

-기아차 노조와 구례농민회의 연대
1. 05년 11월 11일 광주 기아자동차 노조와 전남 구례농민회 노농연대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자. 더디게 가더라도 그렇게 하자. 쌀 1000포 구입과 설 특판 사업, 노농경작단 출범 등등.
2. 노농연대의 궁극적인 목적은 산업문명체제의 대안을 전망하는 데 있다. 그 전망은 ‘자급적 관점’ 스스로 주인되는 자급적이고 지속가능한 삶의 관점은 귀농적 삶뿐이다. 귀농적 비전 없는 노농연대는 성공해봐야 지금의 현상을 유지, 개선 정도이다.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확실히 하자. 열가지 밍숭맹숭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대구․경북지역 노․농연대 직거래운동의 현주소
1. 센터라는 이름의 집중과 규모의 경제와 효율을 추구하겠다면 기존 시장의 유통에 맡기면 될 것이지 우리가 새삼 직거래 운동의 이름으로 또 하나의 시장 기구를 복제해 낼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학교의 직거래 실무자, 책임자들과 함께 농민의 살림과 그 직거래 의미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인식 공유의 선행이 먼저다.
2. 학교 또는 사내식당의 짜여진 식단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식단에 따라 식재료를 구입하지 말고 생산 공동체의 공급가능 품목에 따라 식단을 꾸리는 자기 변화, 혁신없이는 직거래 운동의 성공은 어렵다. 노농연대의 진정한 새로운 공동체 혁명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철저한 문제 인식과 고민 그리고 대안은 아니더라도 자존심은 지키는 운동의 원칙을 가지고 있는가 묻게 된다.)

 

-‘기구’보다는 사람의 사이의 관계변화가 먼저다
1. 지역물류체계의 구축에서 벗어나 쌀부터 시작해서 축적하여 품목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지역물류체계의 구축이란 지역에 사는 인간관계의 새로운 구축의 다른 말이다.
2. 물량조절의 어려움→ 개인이나 작은 공동체 당사자 간의 계약으로 생산한 물량은 과부족의 폭은 그리 크지 않다. 스스로 조절이 가능하다.(소규모화) *계약, 협약은 물량의 계약아 아니라 농산물을 수확한 만큼 소비한다는 ‘소비약속’이다.
3. 지역식량기구의 대안은 시장과 국가를 동시에 넘어서는 민중 스스로의 자치와 자율로 서는 자립적인 지역공동체 세상이다→ 상품에 종속된 소비가 아닌 그러니까 제도로 통한 일방적 계획보다는 협동적 인간관계 변화운동으로 서야 한다. 작은 실천과 동시에 인간관계 변화와 자급자치적 관점에 서지 않고서는 결코 노농연대 운동은 성공을 기약하지 못한다.
4. 권력투쟁이나 계급투쟁에 대한 미련이 조금이라도 남은 사람들은 이 운동으로부터 일찌감치 떠나야 한다. 공동체에 그런 기득권은 없다. 만일 없던 기득권이 다시 생기면 그것은 이미 공동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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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 100주년 기념에 부쳐

국채보상운동 100주년 기념에 부쳐

(( 오늘은 대구시,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매일신문> 등 일부 언론에서 공식적인 기념행사를 열고 있는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

한반도에서 영국과 미국의 후원으로 중국 및 러시아와 전쟁을 벌인 뒤,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한 일제의 침략과 수탈이 고조되던 1907년, 그 이전부터 멸망해가는 나라를 걱정하고 국권을 회복하고자 활동하던 사회운동가들 중 일부에서 제안하고 미동이 있던 “ 국채를 자주적으로 갚자”는 뜻이, 2월에 들어서 대구 광문사의 대표인 김광제 선생과 서상돈 등 대구의 유지들이 발의하여, 전국적으로 마른 들의 불길처럼 번져나가 일정한 성과를 거둔 국채보상운동을 돌아보고, 오늘 또다시 미국의 식민지로 완전히 전락하고야 말 한·미 FTA 협정 저지 운동을 하며 그 때의 의미를 헤아리고, 오늘의 활동을 성찰하며, 투쟁의 방향을 가늠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오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기념식처럼 박제가 되고, 왜곡되는 역사 읽기와 쓰기가 아닌, 민중의 입장과 전망이 살아있는 역사가 되기를 소원하는 마음입니다. 그것도 특히 자랑스러운 민중항쟁의 땅으로 기억되어야 할 대구에서 말입니다.

일제가 한반도와 중국 등 동아시아를 식민지화하기 위해, 조선으로 침략하여 수탈하는 기반이 되는 것에 사용된 국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주로 도입된 차관 등 국채를 민중이 스스로 갚고 경제적 자주와 정치적 독립을 염원하는 마음이 모아져 상당한 정도의 성금이 모였습니다만, 일제와 친일파의 방해와 탄압으로 인해 결국 성사되지는 못하였고, 여러 다양한 애국계몽운동으로 발전한 중대 계기가 되었습니다.

흐름도 아니고 의미보다 덜 중요하지만, 금액으로 비교해 보면, 그 때의 외채는 대략 2조 5천억 정도인데, 지금은 얼마일까요 ? 대략 250조인데, 외환 보유고를 텅 비우면 한 30조 쯤 모자라겠습니다.

우리 민중에게 외채에 대한 최악의 기억은 1997년 IMF 환란입니다.
환란이란 한마디로 외채를 못갚을 정도가 되어 국가부도 사태로 이어질 뻔 할 때, 다시 외채를 더 빌려 갚고, 다음 세대에 떠넘기는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외채란 결국 민중이 세금으로, 피땀으로 갚는 것이지, 노무현이나 이건희가 대신 갚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

국채보상운동이 편협하게 일부 조선 상공인들의 이익을 비호하는 데 있지 않은 것처럼,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올바름을 왜곡하는 <서상돈 상> 수여 따위에 의미가 있지 않으며, 더욱이 “ 소수 부자들의 나라인 경제대국 건설 ” 방향과는 전혀 다른 취지입니다.
지금 수출이 3,000억불이 넘는 데도 한반도의 절대다수 민중들은 생존 그 자체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사실 위협의 장본인들이 오늘 오전에 백주년 기념식을 연 작자들입니다.
이렇게 역사는 늘 민중의 애환과 기본권을 빼앗은 자들의 일방적인 잔치로 끝나야 합니까 ?

국채보상운동이 국가주의, 제국주의, 식민지 경영으로 나아가는 한국판 신자유주의 원조라도 된다는 것인지요? 정말 허탈한 역사왜곡이 아닐 수 없으며, 이웃 나라들의 역사 왜곡과 날조를 비판할 자격 없는 자들의 모략일 뿐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의 진정한 취지와 확산은 식민지를 만들고 착취하려는 외세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한 자립경제 추구였습니다. 이후 물산장려운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립경제라야 민중에게 기여하는 생산과 소비가 되고, 민중이 통제 가능한 경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식민지와 전쟁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 경제는 필연 일제와 미제의 부속물로 변질하였고, 이제 한·미 FTA를 통하여 완전한 소모품으로 바쳐질 위험한 운명과 마주하고 있는 중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식민지 경제로, 그리하여 식민지의 풍경이 가득찬 사회로 그려지는 파국을 맞이하기 전에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 민중이 일군 불멸의 사회운동들이 역사 속에서 왜곡되지 않도록 기억하는 겁니다. 지금처럼 민중의 생존을 말살하는 자들이 도리어 자축하고 기념하는 행태는 과거와 미래를 잃어버리는 역사의 미아로 버려지는 삶이 됩니다.

둘째, 국채보상운동의 미완성(국채는 여전히 우리에게, 그리고 또다른 이웃 나라의 민중에게 완강히 남아 있습니다)을 오늘에 되새기는 뜻은, 대외의존 심화의 개방경제에 있지 않고, 민중이 주인되는 경제, 곧 자립경제를 다시 만들어가는 데 있음을 환기하는 데 있습니다.

한국 자립경제의 기본은 시장자유로부터 발생하는 삶에 필수적인 것들의 상품화, 산업화를 막아내는 데 있으며, 이것은 농업의 부활과 함께,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자급을 어는 정도까지 달성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을 통하여 식민지 전락을 막고자 온 민중이 거국적으로 동참하였듯이,
지금 온 민중이 함께 나서서 한·미 FTA를 확실히 이겨내는 저항으로써 자급과 자치에 한 걸음씩 다가서야 합니다.

휴대폰과 자동차 장사로, 중국 가서 컨설팅 파는 것으로 온 국민이 배터지게 먹고 쓰는 일은 망상입니다.
그런 경제활동은 다른 나라 민중들에게 국채보상운동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아이들과 후손들에게 아무리 해도 다 갚을 수 없는 국채를 더 이상 남기지 않은 길은 절대적인 자립경제를 구축하는 것이며, 그 근간은 민중이 식량과 에너지를 대지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자급하고 서로 나누어 쓰며, 고르게 가난함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2007. 2. 21. 땅과자유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를 위한 수요촛불집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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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리하다가

게으름으로 인해 2006년의 상반기 나의 모든 것이었던 '텃밭 농사'를 이제사 정리를 하게 되었다. 백수로 시작된 2006년 봄, 서툴지만 소꿉장난 같은 텃밭을 가꾸고 싶어 수소문하다가 참여연대 동구주민회에서 팔공산 자락에 텃밭 농사를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동구주민회에 있는 선배를 찾아갔다.

 

<주말농사 텃밭가꾸기> 새책도 들고와서 선배랑 함께 하기로 했다. 불로시장에서 상추씨, 쑥갓씨, 고추모종, 오이모종, 호박모종, 가지모종을 사들고는 밭을 일구고는 심었다. 처음 시작하는 농사 치고는 욕심을 부렸다. 땅은 무한정 있는 곳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뭔가를 계속 심고 싶었다.  고구마, 자두가 챙겨준 대추리산 옥수수씨, 동현선배가 챙겨준 검은 콩, 자취방 주인 어머니께서 챙쳐주신 파, 정구지를 얻어서 무작정 심었다. 물 주고 김 맬 것을 생각도 못하고는 욕심껏 심었다.

 

팔공산 자락에 있지만 차를 가지고 가지 않으면 불편하다. 그만큼 깊은 산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생동물로 인해 농사를 짓기에는 힘들다는 점도 있다. 고구마, 콩은 심는 그 순간 동물들의 먹잇감인 것이다. 한여름 땡볕에도 자전거로 왔다갔다 했다. 1시간 거리를. 근데 문제는 그렇게 준비를 하고 가지만 가는 동안 힘을 소진한 터라 물주고 김매다 보면 지쳐서 그만하고는 김밥 까먹고 돌아왔다. 텃밭농사 보다는 소풍에 가까운 것 같았다. 그 때도 그랬지만 자전거를 타고 밭에 애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페달을 힘껏 밟는 것, 즐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행복했다.

 

장마철이 지나고는 밭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작정하고 함께 농사를 짓던 선배들과 찾았다. 그 새 달맞이꽃 밭으로 변신해 있었다. 한숨 크게 함 쉬고는 낫질 반쯤하다가 힘들어서 그만하고 맛있는 밥 먹었다. 손바닥만 했던 나의 밭에서 상추, 쑥갓, 고추는 여러번 거둬 주위 사람들과 나눠 먹었고, 끝에 얻은 수확물은 오이 몇 개, 단호박 1개, 가지 몇 개를 땅과자유 식구들에게 자랑했다^^;;

 

올해도 이 기분을 이어가기 위해, 좀 더 가깝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밭을 구하고 있는 중이다. 작년에 행복했는데 올해도 행복하려고 한다. 작년 보다는 어설프고 서툰 밭 가꾸기가 줄어 들길~

 

-머리 털 나고 처음 내 입으로 들어갈 작물을 심었다.



 -씨부리기를 하며 반신반의 했는데 이렇게 고개를 내밀었다. 쑥갓

 

 -뭐지?

 

 -주인집 어머니께서 주셨던 씨앗으로 이렇게 자랐다. 파

 

 -단호박, 거름을 듬뿍 주지 못했지만 이렇게 자랐다.

 

 -장마 지나고 나서 달맞이꽃 밭으로 변신해 있었다. 누가 몰래 와서 씨앗을 뿌렸나보다.

 

-달맞이꽃 밭에서 찾아낸 달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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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예감2

오늘은 울고 싶다
근데 울지 않고 있다
오늘은 취하고 싶다
근데 아무리 마셔도 말똥말똥

 

어제 문자메세지에 반신반의 했지만 그 말에 취했다
오늘이 발렌타인데이란다, 그래서 만나는 거라
선배가 웃음기 띄며 궁금해 했다
등달아 나도 그랬다

 

친절한 그대는 저녁밥을 찜닭으로 같이 먹으면서
많이 먹지 않는다고 타박했고
맛있는 커피를 마셨다
주춤거리며 잇지 못 한 말,
단박에 느낌이 왔다

 

간만에 찾아온 추위 속을 걸었다
체념 모드로 말했다
충격 흡수 된다며

 

수많은 말들
기억한다
각인,
웃었다
그리고 씩씩했다

 

현실, 그게 지금의 스물 아홉, 여덟
내 삶이다

끝이 아니라고
내 모든 열정을 쏟아 붓고자 다짐했지만
오늘은 무너진다, 끝내 소통의 부재

 

그 동안의 불면증이 오늘로써
증명된다
불안한 그 예감은, 어김없었다
오늘은 푹 자고 싶다

 

평택 지킴이들은 깡소주에 권주가를 부른다는데
난, 너무 간사하며 개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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