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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씨의 최근 글중에 일부를 옮겨 놓습니다. 원문 트랙백 주소는 맨 아래 우측에....
"돈도 명성도 더 이상 그리 필요하지 않는 나이에 한나라 시절의 식화지와 계속 씨름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중국 고전을 다루는 일은, 그 분으로서 인생의 (이제 거의 유일한) 즐거움입니다.한자 하나 하나 한어대자전에서 찾아내고,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문장 구조를 이해하고, 그걸 아름다운 러시아어로 옮기고... 이게 "노동"이자 즐거움, "나"를 위한 지적 오락, "나"의 지적 욕망의 분출의 계기이기도 하는 것이지요. 사실 이 분의 삶에서는 "노동"과 "삶", "노동"과 "오락"의 경계선은 없습니다. 중국 고전을 빼면 "삶" 자체가 무너지고 마는 것이지요." 인용그런데 나름 성공한 은퇴 지식인 계급의 즐거움이지, 가난한 삶에 허덕허덕거리는 시장에 반평도 안되는 좌판을 내다 깔고 찬거리 내다파는 노인네들에게 적용되는것은 절대 아니겠지요. 이러한 생각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까요?
지식인의 배부른 소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적 욕망을 저렇게 다독거리면서 살수있다면, 저렇게 곱게 늙었스면 좋겠다는 바램이 들긴 합니다.
지금의 제 삶을 돌이켜봐도 늘 바라는것은 일과 삶과 사랑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지만, 그러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삐걱삐걱 절룩거리는 삶인듯 합니다.
현재 칼라TV란 막장 인터넷 방송의 스텝으로 온통 악다구니와 한숨과 피눈물 범벅인 노동 현장에서 기록을 하는 노동에서 보람을 찾는다. 참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죽을 맛입니다.
공장에서 하루종일 반복되는 단순 조립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은 신성한것이고 노동은 고귀한것이라고 그것에서 즐거움을 가지라고 아무리 귀에 못박히게 이야기한다고 그게 진리가 될까요?
팍팍한 노동과 쳇바퀴 도는 지난한 삶의 구조속에서...말입니다.
"그래도 악조건 하에서도 "즐거운 노동", "노동 그 자체를 위한 노동", "돈이 아닌, 나와 남을 위한 노동"을 지향하는 게 인간의 지상 과제라고 봅니다. 이 과제의 완벽한 해결이야 자본주의의 완전한 극복 이후에만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대로 이를 "지향"하도록 노력하는 게 본인의 정신 건강에도 좋을 듯합니다. " 인용물론 동의 합니다. 그렇게 저도 삶을 만끽하면서 살고 싶답니다.
요 얼마전 치열하게 살던 영상 활동가 후배가 지쳐 자살을 하고, 대한통운과 배달 수수료 건당 30원 인상을 합의했다가 그것마저도 안되어서 10원만이라도 올려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한 이가 목숨을 버렸습니다.
공산주의자의 필요조건, 물론 동의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의 숨표를 문득문득 찍어 버리고 싶어지는 이 우울한 시대에 강단에 서서 약간 거리를 두고서 냉철하게 지식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것 또한 분명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거리두기에 의해 얻어지는 절제된 언어와 세련된 철학과 온유한 사유들이 괜스레 사탕 발림처럼 느껴집니다.
어째건 조세희 샘 이야기는 들어보셨을거에요.
http://www.newscham.ne제 귀엔 오아시스와도 같은 이야기지만 그런 형극의 삶을 유지하면서 사는것
두려운 경지랍니다.
때론 현명한 지식인에게서 희망의 싹에 관한 필요조건을 듣기도 하지만,
필요조건 보담은 충분조건인 토양의 힘을 북돋을 수 있는 더 낮은 자리에서의
살 부대낌이 듣고 싶어지네요.
쓰다보니 충분조건이란것을 적확하게 표현한것인지 헷갈려지긴 하지만,
일단 이정도로 글을 마무리할까 싶습니다.
아 그리고 저는 공산주의자는 아닌듯해요!
안간힘을 써야 D급좌파 정도나 유지할까 싶네요?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2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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