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015/06/23 데이트 폭력에 대한 메모

2015. 12. 3 페이스북에 올렸음.

원고를 쓰며 메모장을 뒤적거리니 이런 게 나왔다. 데이트 폭력에 대한 논의가 한참 이뤄질 때 수수글을 보고 혼자 끄적거리고 차마 못 올리고 메모장에 고이 넣어뒀던 것 같다.


2015. 6. 23

"그 때의 나는 어렸고,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옴짝달싹 할 수 없게 좁은 곳에 갇힌 기분이었다. 데이트 성폭력이라는 말 조차 알지 못했고, 그 상황을 확실하게 정리하지 못한 채로 2년을 어영부영 보냈다. 

당시 너무 확연한 폭력의 상황을 겪고도 사실은 나의 잘못이 더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라면 절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줄 거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혹여나 내가 잘못했기 때문인 거면 다시 나의 문제로 돌아올 상황이 무서웠다. 내가 어리다는 사실도 어린게 벌써 발랑까져서라는 말로 돌아올 나의 약점인 것만 같았다. 동시에 이중적으로는 그 사람들이 성폭력의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줄지를 알았기에 나 때문에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매장될까봐 하는 마음에 그 사람을 보호하려고 했던 내 결정이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그 후 어느 순간 나와 너무 근접한 곳에서 그가 지내기 시작했고, 나의 친구들이 이미 있는 그 공간이었기에 그사람과 아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됐다. 심지어는 같은 이에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도 만났다. 그 때마다 술을 마셨다. 분노와 두려움과 내가 잘 대응하지 못해 다른 피해자를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그 사람이 내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화. 그 후로 하자와 관련된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들을 늘 꺼려왔다. 혹여나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게 될까봐. 용기 내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내게 된 나의 '남성'인 친구에게 그 사실을 고백했을 때는 더 이상 그렇게 연결되어 그 사람이 내 눈앞에 보이지 않길 바래서였다. 하지만 대답은 미지근했고, 참 별로였다.

 

이제는 7년이 넘은 이야기이며,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자신을 더 이상 탓하지 않게 되었다. 이겨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속에서 사라지진 못한다. 그토록 마주치고 싶지 않던 사람이 6년이 지난 시점에 뜬금없이 우리집 지하실에서 그 사람이 나와 나를 스쳐갔을 때, 더 이상 그 사람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지만 너무나 화가 났다. 왜 쟤는 죽지 않고 아직도 내 근처에 존재하는가. 나는 그 후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 속에서 잘 살아왔지만, 그는 절대로 잘 살지 않길 바랬었다. 좋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애정과 관심을 받으며 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마음이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

가해자를 단순히 개새끼로 만들고 끝나게 되는 것이나 개인에 대한 처벌로 끝내는 방식이 아닌 재발을 막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노력들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 해왔지만, 그 후로 제 3자의 입장에서 내가 아는 두 사람간의 성폭력 사건을 맞닥뜨리게 됐을 때, 나는 화를 냈다. 제 3자의 일로 만들지 못하고 화를 냈다. 어쩌면 그 사람 대신 화풀이를 했던 기분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피해자로서의 분노와 사람을 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닌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마음, '성폭력'에 대한 총체적 접근 같이 복잡한 머릿속은 아직 정리되지 못했다. 최근 시작된 사람들의 폭로는 어른스러웠다. 나는 여전히 어른스럽지 못하다. 나는 아직도 성폭력 사건이 두렵다.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겠어서 더욱 두렵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