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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6 바르다 김선생 (혁명하는 여자들/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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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다 김선생

부제 : 당근이 너무 많아서 별로 맛은 없음.

부부제 : 혁명하는 여자들을 읽고

정주

 

바를 정(正)에 두루 주(周). 바른 것을 두루두루 널리 알려야 한다는 건지, 항상 바른 것들을 내 주위에 두루 두어야 한다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처음 내 이름에 대한 이 풀이를 들었을 때, 둘 중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은 자기 이름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름 풀이를 들었을 때도 크게 내 삶에 의미부여를 하진 않았다. 누가 그러겠냐만은. 만약 내 이름이 빼어날 ‘정’에 술 ‘주’자였으며, 이름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술에 빼어난 사람이 되려 했다면, 아마 내 얼굴은 언젠가 한 번쯤 터졌을 것이고, 간은 남아나질 않았을 것이다. 아마 이름을 지어준 할아버지를 평생 원망했겠지.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도 이름대로 바르게 살아 왔습니다. 말해놓고 재수없지만 어쨌든 열여섯까지는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바른사람. 모나지 않고, 잘 순응하고, 잘 하고 뭐 그 정도의 의미를 가졌던 것 같다 내게 바른사람 이라는 건. 유치원 때 엄마는 내게 말했다. 넌 학교에 가면 정말 잘 할거라고. 선생님 말 잘 듣고 정말 잘 다닐거라고. 그래서 학교 안 다녔으면 좋겠다고. 이제 와서야 이해되는 말이었다. 착한아이 콤플렉스.

 

사실 모두가 아는 비밀이지만, 그 뻔한 비밀 한 가지를 얘기해 보자면 바른 아이도 삐딱한 상상을 해본다. 예를 들면 다니던 중학교에 가서 가장 꼰대였던 선생을 발로 차버리는 상상. 대들고, 죽이고, 도망치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상들. 가끔 나는 상상이 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 성당에 있다. 그 사람은 울며 얘기한다. “하느님, 계시다면 시발 그새끼 좀 죽여주세요….” 라고. 하지만 신은 이미 그 일을 행하셨다. 바로 상상으로. 그 사람은 상상속에서 그새끼를 한 오조오억번은 죽였을 것이다. 죽이지 못하면 때렸거나, 아니면 어딘가로 치워버렸거나. 아무튼.

상상은 금기와 친하다.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작용하는 금기이던 간에 아무튼 내가 못하는 걸 상상께서는 들어주시니까. (이쯤되면 신과 악마는 절친이라는 말이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얘기를 왜 했냐면은. 음 그러니까. 내가 했던 잔인한 상상들은 누구에게도 말 못할 것들이 많았다. 그것들은 나를 옭아매고 있던 금기들과 연관이 있었고, 내가 생각했을 때 나는 바른사람이었고, 그렇기에 누군가 내게 “어떻게 그런 끔찍한 상상을 할 수가 있어?”라고 말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르다 라는 건 뭘까. 사실 바르다 라는 건 특정한 기준에 맞춰지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내가 아무리 스스로를 바르다고 생각해도, 지나가던 어떤 어른이 “저 새끼는 왜 이렇게 삐딱해”라고 하면 난 삐딱한 사람이 되는 거였다. 이게 뭔 개소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지금 좀 피곤하다). 그렇기 때문에 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어떤 편파적인 기준에 맞춰야 하니깐. 그렇기 때문에 상상해본다. 부시고, 도망치고, 소리치며, 느리고, 날아가는 상상을. 바른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하는 상상들. 이렇게 상상해보다가는, 언젠가 현실이 되고, 그럼 난 바른사람이 아니게 되겠지. 너무 괜찮은데? 하는 상상들. 이쯤되면 대충 나온다. 세상이 원하는 어떤 상이 있고, 그 상을 연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하는 상상들이 있다.

 상상은 그저 들어주는 것. 내 말을 들어주는 것. 나 이렇게 살기 싫어요. 내 삶이 이렇게 바뀌면 어떨까요. 여기서 더 끔찍한 삶이었다면 이랬을까요? 그저 들어준다. 때로는 상상에게 내가 했던 얘기들을 남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왔다. 어떤 상상은 너무 발칙해서 “아니 감히 어떻게 저런 생각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겠다. 그 상상이, 누군가를 옭아매는 금기와 관련이 있다면, 계속 상상했으면 좋겠다. 계속 상상하자! 문을 열고 이름도 모를 남자들을 죽이는 상상. 식물이 되는 상상. 젖가슴을 남편에게 주는 상상. 상상은 상상을 낳고, 그 상상은 또 상상을 낳을 것이다. 상상만으론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세상을 바꾸려면 상상정도는 있어야 한다. 세상이 말하는 바른 것부터 벗어나 보자. 내 작은 세상부터 바꿔보자. 난 오늘 내가 일하는 마트 점장의 머리에 꿀밤을 놔주었다. 물론 상상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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