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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건국포장 받다. 그러나...

3일 보훈처에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47명을 포함한 214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에게 서훈을 추서한다고 밝혔다. 이번 명단에는 우리 할아버지도 포함이 됐다. 국내항일로 건국포장을 받았다.

 

호적상 이름 윤억병, 가명으로 우병을 쓰기기도 했던 우리 할아버지는 1938년 2월 일본경찰에 피체됐다. 정부공식 기록으로는 청년동지회 활동, 학계 자료에 따르면 칠곡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 경북지역 사회주의자 동맹 등으로 불리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일년 8개월 동안 지낸 우리 할아버지는 1939년 10월 14일 90여명의 동지들과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송치됐고 이 중 26명이 구속, 대구형무소에 투옥됐다. 1941년 3월까지 7회의 구류갱신처분을 당한 끝에, 1941년 3월 1년형을 언도받았으나 이미 경찰에서 20개월 형무소에서 17개월을 지냈기에 미결구류일수 산입으로 석방됐다.

 

당시 모스크바라는 별명을 받았던 대구 경북 답게 큰 조직 사건이었다. 할아버지를 비롯해 대구에서 공부하던 인물들이 대거 향리인 칠곡, 왜관 지역으로 낙향해 조선공산당 재건에 나선 것이다.(프로핀테른의 떽을 받았단다.) 왜관은 경부선 개통과 함께 커진 신흥 상업도시였지만 일개 면에서 터진 사건에 연루된 조직원이 90여명이 넘고, 구속자가 20명이 넘었다는 것은 당시 그 동네의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심지어 도쿄등지에 조직원을 파견하기도 했단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우리 할아버지는 사회주의자 였단 말이다. 적용받은 법규는 치안유지법(국가보안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법이다. 20년대 이른바 다이쇼 데모크라시 하에서 급증한 공산주의자들을 때려잡기 위해 쇼와 시대에 만든 법이다.)

 

지금은 일흔을 훌쩍 넘긴 고모들, 생전에 할머니의 전언에 의하면 형무소에 면회 갔더니 손톱이 다 빠졌더라는 등 딱히 알만한 온갖 고문들을 다 받은 모양이다. 또한 듣기로, 해방 이후에 더 힘들었단다. 일제 때 치안유지법 위반 '전과자'는 예비 검속 대상이었고 대구 경북지역에서는 10.1 항쟁등 사건이 계속 터진데다가 어찌나 못살게 굴던지 견딜 수가 없어 부산으로 식구들이 이사했단다.

 

하여튼, 뭐 정부에서 사회주의자들까지 서훈대상에 포함한 것은 전향적인 것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훈격이 문제로 터졌다. 경찰 유치장 20개월, 교도소 17개월 동안 옥살이 한 우리 할아버지는 아무리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해도 건국훈장 애족장에 해당한다. 그런데 한 등급 낮은 건국포장을 받은 것이다.

 

보훈처 공훈심사과 실무자는 '사회주의자는 한 등급을 낮추기로 결정했다'고 말해주더라. 공식적인 기준이냐는 말에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기준을 정했단다. 그러면서 이 전 정권에서는 사회주의자들에게 전혀 포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일도 전향적 인 것이란다.

 

차라리 안주고 말던가 자기들이 선심쓰는 것도 아니면서 사회주의자는 한등급 낮춘다는 기준을 어떻게 삼을 수 있는지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거지 동냥주는 것도 아니고...열받은 아버지는 이것을 받아야 되냐 말아야 되냐신다. 

 

게다가 청년동지회(보훈처 공식 표현), 칠곡공산주의자 협의회, 사회주의자 동맹으로 할아버지와 같이 옥고를 치룬 분들중 다수는 이미 노태우정권인 90년, 김영삼 정권인 95년에 훈장을 받았다. 그건 어떻게 된 거냐 물어보니까 역시 보훈처 직원은 '그때는 모르고 줬을 거고 이번엔 알았기 때문에 한 등급 낮춘거다' '형평성 문제는 우리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 분들걸 하나 낮출 수도 없는것 아니냐'고 되묻더라.

 

결국 정부에서는 사회주의자 47명을 포상했다고 떠들석하게 선전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훈격조작이 숨어 있고 사회주의자=2등 독립운동가 라는 기준이 서있는 것이다. 

 

옥신각신 끝에 보훈처 담당자는 "선생님 할아버님 같은 경우에는 순수 민족주의 활동을 한 것은 밝혀진 게 없고 사회주의건만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순수 민족주의 활동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있어야 사회주의의 흠집을 가릴 수 있단다. 

 

난 할아버지 얼굴도 본 적이 없으니 그 분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30년대 후반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에 대해서는 좀 알고 있다. 민족해방의 경로로 사회주의를 택한 사람들인게다. 물론 그 안에서도 좌우 대립이 있어서 민족주의를 탈피해야 한다는 측도 있었고 우리 할아버지께서 그 안에서 좌파였는지 우파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정부에서 이런식으로 재단 당해야 할 행위를 한 것은 아니고, 부끄러워해야 할 바는 전혀 아니라고 확신한다. 보훈처 직원은 심지어 '사회주의자였던거 아시죠? 재건공산당 사건이었잖아요'라며 비아냥 혹은 협박 식으로 이야기 하더라(그렇게 들린 건 내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

 

나도 열받았다. 그래서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수훈 공훈록(서훈을 받으면 이러이러한 공적으로 이런 상을 수상한다는 공훈록을 작성하게 돼 있다)에 '재건 공산당활동 결과로 건국포장을 수여한다'고 명기해달랬다. 그니까 돌아오는 답은 '선생님이야 그렇게 생각하실 수 도 있지만 국민감정이나 또 일가 친척분들도 그걸 원하시지 않을 것'이란다. 하긴 그 말이 맞지 우리 일가 친척들이 그걸 원할런지는 나도 자신 없다.

 

도대체, 90년에 이미 같은 사건으로 동지들이 서훈을 받았는데 자기들이 알아서 연루자를 찾아 서훈을 해도 될까 말까한 판국에 개인이 쎄빠지게(국립문서보관소에서 관련 자료 찾느라 작년에 고생좀 했다) 찾아서 올린 것도 열받는데 사회주의자는 한 등급 낮춘다니 , 무슨 선심 쓰는 것인가?

 

열받는다. 이래 놓고 국민통합이니 사회주의자 재발굴이니 선전하고 앉았다. 그래 머 국가에서 주는 훈장 받으면 머하고 안 받으면 또 머하냐 싶긴 한데...이런 식은 아니다. 누가 누구를 평가하고 감히 사회주의자는 한 등급 낮춘다는 기준을 누가 정할 수 있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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