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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로프- 서평

 

스탈린주의의 비극 속에 사라진 위대한 소련의 식물학자, 바빌로프의 이야기
[서평] 게리 폴 나브한,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황정규  ㅣ  2011년2월1일
 

1.
소위 많은 “생태주의자”들이나 생태주의를 수용해야 한다는 맑스주의자들이 대개 보이는 공통된 견해가 하나 있다. 맑스주의는 생태적 관심이 없고 자연을 이용과 파괴의 대상으로 보는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너무나 많이 퍼져 있어서, 맑스주의가 생태문제를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본적인 근거가 되어 있다. 나는 이러한 견해에 대해 정반대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충분한 역사적 증거를 가지고 있다.
맑스와 엥겔스가 발전시킨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은 모두 유물론이라는 철학, 즉 자연에 대한 유물론적인 파악에 기반을 둔 것이다. 맑스는 유물론의 기계론과 결정론을 극복하고 관념론적인 인간이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유물론적 관점에서 자연과 인간간의 관계,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고유한 위치 등을 설명할 수 있는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발전시켰다.
또한 맑스와 엥겔스는 19세기 발전하는 자연과학의 성과를 습득하기 위해 언제나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20세기 말에야 비로소 맑스, 엥겔스의 비판적 역사적 전집인 MEGA 중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노트 등이 발간되면서 겨우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맑스는 당대의 과학자들과 꾸준한 교류를 하였으며, 맑스의 장례식에서는 젊은 생물학자인 레이 랑케스터가 조사를 읽기도 하였다.
많은 자칭 타칭 맑스주의자들이 맑스주의는 자연과학에는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와 역사에 적용되는 것이다, 제한된 이론으로서 계급투쟁에 대한 것이다라는 식의 주장을 하지만, 맑스주의는 그 근원부터가 유물론적 자연파악에 있었고, 맑스와 엥겔스는 이러한 기반을 전혀 떠난 적이 없다. 오히려 맑스 사후의 맑스주의는 한편에서는 맑스가 발전시킨 변증법적 유물론이 기계적 유물론으로 전락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연철학으로서의 토대를 잃어버리고 관념론에 오염되는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자연과학 속에서 맑스주의적 견해는 꾸준히 발전해왔다. 맑스주의를 자연과학에 적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낳는 것마냥 보는 과학에 문외한인 맑스주의자에 비하면, 과감하게 맑스와 엥겔스의 방법론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자연과학자들을 보면 경외스러운 느낌이 일기까지 한다. 가령 생명의 기원에 관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할데인의 경우에는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의 최초 영역판 서문을 쓰기도 하였으며, 하버드대 생물학자들인 리처드 레빈스와 리처드 르윈틴은 자신들의 공저 “변증법적 생물학자”라는 책을 엥겔스에게 헌정하였다.
왜곡되고 불충분한 맑스주의의 이해가 맑스주의의 중요한 전통인 변증법적 유물론의 전통을 망각하고, 자연과학 내에서 맑스주의적 세계관과 방법론을 이어가는 전통을 바라볼 수 없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2.
게리 폴 나브한의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책은 니콜라이 바빌로프에 관한 것이다.
바빌로프는 소련의 식물학자이자 유전학자로, 전세계에서 다양한 종자를 수집하고, 이를 인류의 식량확보를 위해 노력한 학자이다. 그는 상인계급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과학의 길을 선택하였고, 이 과학을 통해 인류에 공언하고자 하였다. 특히 러시아가 겪었던 끊임없는 기근을 보면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물학과 유전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는 1917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과 긴밀하게 연관되었던 학자였으며, “1915년에서 1917년 사이, 유례없는 러시아혁명이 임박했을 무렵, 바빌로프는 교육수준이 낮은 동지들과 기꺼이 육체노동을 함께하며 자신이 프롤레타이아트와 소작농 계급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프롤레타리아트와 소작농 계급의 삶을 편하게 해줄 업적을 이루겠노라는 목표를 세웠다.”(70쪽)
그의 연구는 레닌의 강력한 후원 속에서 진행되었다. 레닌은, “공산주의는 소비에트권력과 전기화”라고 주장한 생산력주의자였다는 세간의 비판이 무색할 정도로, 사회주의 혁명이후 생태문제에 대해 선구적인 활동을 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베르나드스키와 퍼스만의 요청에 따라 1920년대 우랄 남부지역에 최초로 자연보호지역을 설정한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레닌이 세우고 바빌로프가 이끌던 농업연구 조직은 소련 전역에 155곳의 실험경작지를 운영하고, “세계에서 가장 크며, 규모에서나 중요도에서나 미국의 연구소를 능가한다”(253쪽)라는 평을 들었다.
바빌로프는 식량작물의 다양성을 확보, 연구하고, 이 연구를 통해 소련의 식량확보에 도움이 되는 작물을 개발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바빌로프는 평생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작물과 작물의 야생근연종을 수집하였으며, 수집한 종자의 수는 1933년 해외원정을 중단하였을 때까지 14만 8000 ~ 17만 5000개나 되었다.



3.
바빌로프의 주요 업적은 “다양성 중심지”라는 이론에 있다.
그의 초창기 연구목표는 “다양한 전통작물을 재배하는 실험경작지에서 병해저항력이 강한 작물을”(55쪽) 찾으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러시아와 동유럽의 기근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과정에서 “더 넓은 세상의 작물다양성에 눈뜨게 되었고, 결국 많은 저술과 원정, 발견”으로 이어졌다.
다양성 중심지라는 개념에 대해 나브한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처음에 바빌로프는 이 개념을 재배작물의 기원지라는 관점에서 설명했지만, 그가 선택한 지역을 보면 작물뿐 아니라 야생근연종의 유전자 변이도 활발한 곳이다. 당시 보편적이던 고고학적 믿음과는 반대로 바빌로프는, 농업문명의 요람은 분지나 거대한 강가의 비옥한 범람평야가 아니라 산악지대라고 주장했다. 그는 산악지에에서 가장 높은 다양성을 보이는 작물을 600개까지 꼽았으며 작물다양성이 높은 지역일수록 토착언어와 야생생물다양성도 높다고 지적했다.”(40쪽) “바빌로프가 그린 중심지들이 차지하는 면적은 지표의 5분의 1도 안되지만 야생식물과 재배식물의 다양성이 월등히 높은 곳이다.”(41쪽)
바빌로프는 이러한 다양성 중심지를 단지 인간의 손때가 닿지 않는 자연지역으로 보지 않았다. 바빌로프는 이러한 생물의 다양성이 인간의 생활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음을 인식하고 연구 속에서 이를 언제나 강조하였다. 따라서 나브한은 바빌로프가 “생물다양성과 문화다양성의 관계에도 최초로 주목한 학자”(47쪽)라고 평가한다.
바빌로프는 이러한 다양성 중심지에서 나온 유전자풀이 풍부한 작물들은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식량작물의 다양성 중심지를 찾아, 전세계를 원정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바빌로프의 원정을 저자인 나브한이 좇아가면서, 바빌로프의 업적을 확인하고 바빌로프 당시와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자는 페르시아의 파미르 고원을 시작으로, 이탈리아와 지중해, 레바논과 시리아, 아프리카 북부와 에티오피아, 카자흐스탄, 북미와 멕시코, 남미 아마존 지역까지 바빌로프가 지나갔던 방대한 장소를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식량작물의 다양성이 왜 중요한지, 이러한 다양성이 수천 년 동안 그 지역에서 적응해간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현재 작물다양성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4.
바빌로프의 “다양성 중심지” 이론이나 그의 연구태도는 단지 자연을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자연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바빌로프는 언제나 다양성 중심지에서 작물을 가꾸고, 개선해가는 인간의 활동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이 책의 표현대로 바빌로프는 “작물다양성은 사람이 만들어가는 생물다양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적극적인 작용은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자 변증법적 유물론이 강조하는 핵심적인 내용이다. 맑스는 독일이데올로기에서 포이에르바하를 비판하면서, “부단한 감성적 노동과 창조, 이러한 생산이야말로 지금 존재하고 있는 감각적 세계 전체의 기초이므로, 이것이 단 일년만이라도 중단된다면, 포이에르바하는 자연 세계의 엄청난 변화를 발견하게 될 뿐만 아니라, 아울러 전체 인간 세계와 그의 고유한 직관능력, 실로 그 자신의 존재마저도 당장 사라지고 말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빈번하게 인간과 자연을 대립적으로 파악하여 자연을 인간과는 분리되는 존재로서 보면서, 인간 역시도 자연의 산물이며, 역으로 자연 역시 인간의 적극적인 개입, 즉 인간의 노동을 통해 변화발전한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모습을 본다. 생태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의 구분 역시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반면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보는 경우에도 인간을 단지 자연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자 자신의 산물이지만, 자연에 대해서 적극적인 개입을 하고 자연을 변형시켜왔는 점이 반드시 인식되어야 한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적극적인 역할을 자연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기 십상이지만, 오히려 바빌로프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인간이 자연과의 공존 속에서 자연의 다양성을 더욱 확대시키면서 인간의 삶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상호발전의 가능성이 오히려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바빌로프의 마지막 해외원정지였던 아마존 열대우림의 잉가노족의 농업을 소개한다. 나브한에 따르면 아마존의 열대우림은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은 자연림같지만 실제로는 아니라는 것이다. 잉가노족의 농업경관은 농경지와 비농경지인 숲 등이 명확히 구분되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양자사이의 구분이 없으며, 따라서 작물과 야생식물, 잡초 등이 숲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의 민속생물학자인 카밀로는 “오랫동안 많은 서양인들은 우림을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이고 특별한 생태시스템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원주민들의 영토에서 발견되는 생활방식을 보면, … 수백년간 원주민들의 손길로 관리되었다. … 이렇게 인간과 숲이 상호작용하는 풍경은 인위적 숲 또는 인간화한 숲이라 부를 수 있다.”(240쪽) 이러한 주장은 맑스가 말한 “인간의 자연화”, “자연의 인간화”라는 말을 떠올리게 할 정도이다. 따라서 나브한은 “아마존 지역에서 일하는 국제보존단체 중에 서식지의 다양성을 함께 관리하기 위해 원주민공동체와 직접 연계된 곳은 거의 없다. 오히려 몇몇 단체는 원주민 거주지의 땅을 사들여 보호구역을 만들고는 그 어떤 종류의 농업도 금지해버렸다”(243쪽)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5.
바빌로프의 위대한 원정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지막은 그리 행복한 것이 못되었다. 이 책은 바빌로프가 정치적인 이유로 밀려나고 결국 자신이 처음 교수생활을 시작하였던 사라토프의 한 감옥에서 굶주림으로 1943년 사망하게 되는 과정을 12장에서 상세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규모의 농업 연구를 위해 많은 인력과 재정을 레닌에게서 지원받았”(231쪽)지만,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1932년 중남미의 마지막 원정길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이무렵 스탈린정권이 농업 집산화를 가혹하게 시작한 후, 최악의 기근이 일어나려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바빌로프는 농업정책에서의 실패를 전가하기 위한 희생양이 되었다. 바빌로프는 당장 수백만의 인민이 굶어죽는 상황에서 한가하게 해외관광을 하는 부르주아 학자로 매도당했고, 당시의 정치이데올로기 속에서 승승장구하는 얼치기 리센코와의 논쟁 속에서 점점 더 스탈린주의 관료들의 눈 밖에 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1940년 체포되어 소비에트 연방공화국 최고법원 군사위원회에 의해 총살형을 선고받게 되었다. 그러나 바빌로프의 과학적, 대중적 명성 때문에 소련의 관료들은 사형을 집행하지는 못한 채, 대외적으로는 바빌로프가 리센코와 함께 러시아의 식량공급을 위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선전할 수밖에 없었다.
1939년 러시아 식물육종연구소 모임에서 바빌로프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남긴다.
“우리는 장적더미로 걸어갈 것입니다.
불타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종교와 관념론에 대항하다 화형을 당한 16세기 유물론자 조르다노 브루노처럼, 바빌로프는 소련 관료체제의 비이성과 비과학에 맞서 과학을 옹호하고 인류의 미래에 공헌하고자 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변증법적 유물론자였다.
여전히 그의 연구가 한국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연구업적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나브한의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이러한 책이 더욱 소개된다면 맑스주의가 진지한 생태적 관심은 없다는 생태주의자들의 억측 역시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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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대안

“구제역 가축, 살처분 말고 스스로 질병 이겨내게 해야”

교수 234명, 정부당국에 호소문 발표

김도연 기자 2011.03.09 15:38

교수·지식인 234명이 정부에 구제역으로 인한 가축 살처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9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과 같은 생매장, 살처분 방식으로는 구제역·조류인플루엔자 같은 가축전염병을 막을 수 없으며 오히려 매년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구제역 사태에 대한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을 호소했다.

 


이들은 “구제역의 경우 성체가 된 동물에서는 감염사망율이 5% 이하로 매우 낮고 대부분 2주내에 항체가 생겨 자연치유가 된다”며 “구제역 청정국 유지에 집착하여 전염병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동물들까지 모두 죽이는 일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황성남 중앙대 교수(의학)는 “단지 감염 가능성 때문에 자연적인 면역력을 가진 동물까지 죽인다면 점점 질병에 대해 허약한, 면역력을 갖추지 않은 동물만 남게 된다. 그러면 이런 질병이 돌 때마다 다 죽여야 한다”며 “결국 최종 숙주인 동물들이 자체가 그걸 막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인류 역사를 보면 수많은 전염병 돌았지만 초기에는 사망률이 높았던 질병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에 저항하는 면역력 갖춘 인간이 나오고, 결국 우리가 이겨낼 수 있는 상태가 된다”며 “구제역 역시 살처분이 아닌, 질병과 싸워 이겨낼 수 있는 강한 개체를 만드는 방식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종 바이러스 인간 감염 가능성...“‘복지축산’ 도입해야”

 

이들은 바이러스의 변종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현재 살처분에 소요될 경비를 가축사육환경 개선에 투입해 축산환경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처음에는 닭에서 발병했으나 이제 오리까지 발병하여 매몰되고 있는 우리나라 조류인플루엔자의 사례는 다른 종 사이에 전이가 일어났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며 “우리 축산 환경이 닭, 오리, 돼지, 소 등의 근거리 사육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서로 다른 종간에 변형된 바이러스가 양산될 수 있으며 이는 인간에게로 감염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정용희 한림대 교수(화학)는 “특히 돼지는 직접적으로 인간에 바이러스를 전이할 수 있다”며 “축산을 하면서 우선 다른 이종을 격리시킬 필요가 있고, 밀집형이 아닌 넓은 공간, 그리고 소규모로 축산환경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정부의 대응책에 ‘복지축산’ 개념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박창길 성공회대 교수(동물복지 전공)는 “정부에서 친환경축산기반구축제도 T/F팀을 발족했지만 제도팀에서 마련한 내용이나 법률개정 및 신설안에는 복지축산의 기초인 인도적 살처분 내용이 빠져있는 등 의제가 굉장히 불충분하다”며 “일반적 T/F팀이 한 달 만에 대책을 만들어 ‘땜빵’하는 방식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영속적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친환경 복지축산의 기본적인 내용이 없는 <동물보호법>, 인도적 도살의 내용이 전무한 <축산물가공처리법>과 <가축전염병>에 대한 규정들이 국제적인 기준에 맞게 전면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지속가능한 축산을 위해 “도시와 농촌이 소통하고 생명과 환경, 지역경제를 아울러 생각하는 새로운 공생의 생존방식을 찾아내야” 하며 “국민들의 건강한 식문화를 위해 먹을거리 체계의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같은 내용의 호소에는 환경철학회 한면희 회장,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교수, 전 서울대 보건대학원장 백도명 교수, 씨알의 소리 편집장 김조년 교수, 전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김서중 대표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 기독교 원로교수인 김경재 교수, 경제학계의 원로 이대근 성균관대 명예교수, 이정덕 동국대 명예교수, 생명윤리학회의 원로 진교훈 교수, 허종화 경상대 명예교수 등 다수의 학계원로 교수들도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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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호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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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법(3)- 쿠바와 이북의 경우

자연농법 노트(3) - 쿠바와 이북의 경우(2010년 2월10일)


- 쿠바를 여행하고 온 사람들의 글을 보면 도시의 공간을 온통 파헤치고 작물을 심었다는 소식을 알수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전쯤 소련이 망하면서 급격하게 에너지와 식량난이 찾아오게되고,
다양한 활로를 모색하면서 전국토에 대한 유기농업이 시행되었다고 한다.
(유재현의 쿠바여행기. 전 국토인지,도시만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라틴 아메리카 국내 권위자 이대 이성형 교수 글을 참조할 것 !)
해서는 식량난을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수도 아바나 등에서 생태적으로 얼만큼 성공했는지도 쿠바관련 글을 봐야 할듯함 ! 같은 사람글 참조할 것!)

- 이북의 경우 한 십년전 쯤인가 큰 홍수와 식량난등이 발생하였다는 방송이 있었다.
그때 식량증산을 위해 산을 파헤치고 죄다 옥수수를 심었던 것이 화근이 되어서는 홍수가 발생하였고 식량난이 증가하였다고 한다. 해서 한미 에프티에반대를 위한 농업부분 토론회에서 북의 주체농법을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할것인가 말것인가를 놓고 한참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농업부분 대책위 정책담당자중 한명인 박모씨의 논문으로 알고 있는데, 결국 농민쪽의 반대로 자료에 실리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문제가 된 논문내용 중에 북의 주체농법의 핵심인 고 투입 방식을 비판한게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산마다 심은 옥수수가 문제였는지? 옥수수에 다량 투입한 비료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둘다가 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함. - 07년이나 08년도 참세상 기사를 참조해 볼 것!)

- 쿠바나 이북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자본중심의 (이윤확보에 근거한 상품생산구조)사회가 아닌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식량문제 해결은 그리 간단치 않으며, 같은 사회주의라도 그 기술적 방식이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수 있다는 것이다.
거칠게 보면 쿠바는 '유기농 기술 방식' 이고, 이북은 '화학농 기술방식' 인듯 보인다.

- 자본주의적 농업 방식은 대체로 비료농약 고투입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땅 떵어리 넓은 브라질, 미국의 경우는 대부분 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화학약품(비료, 농약, 씨앗)과 공장형(가축사육, 사료, 도축 등)의 방식이 대세로 알려져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경우가 유기농 농업인가 ?
비교적 소농이 보존되어 있다는 유럽의 경우는 유기농 농업방식인가?
구 사회주의 러시아와 동유럽의 경우는 어떤가?
향후 주목되는 중국의 경우는 노동력, 기계화, 화학화의 정도가 어떤가?
동아시아 아프리카등 다국적 기업에 잠식당한 경우는 대체로 확학 농업일 것이다.
(농업 기술방식을 중심으로 세계지도를 그릴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글을 참조할 것!)

- 최근 간혹가다가 ' 어느 기업이 어느국가의 영토 사용권을 획득했다!' 는 언론보도를 접하곤 할 것이다.
'사용권 50년정도! 거져 얻다시피하다 ! 식량난 해결! 제주도(?)보다 큰 땅 떵어리 사용권 체결!'
이것은 제 3세계 빈국을 상대로 탄소배출권을 돈주고 사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여진다.(실은 제3세계 민중들의 땅에 들어가서 탄소를 내뿜는 격이다.) 제 3세계 빈국의 땅을 마구 파헤치고 쪽 빨아먹은 후 밷어 버리는 격이니까! 일제가 김제망갱평야 등 조선의 땅에서 어떻게 식량을 자국으로 송출해 갔는가 ? 그때와는 다르게 현재는 한번 쓰면 베린다는 특징!

- 사회적 논쟁의 지점은 '식량문제'다.

현재, 대세인 주장의 요지는 이것이다.
기본적으로 좁은 땅덩어리 아닌가? 수입해야 한다. 또한 공업수출등을 고려할때 더욱 그렇다. 즉, 글로벌한 시대에 식량난 해결을 위해서는 농산물의 자유무역이 되어야 한다.
우리 농업은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소수만 필요하다. 나머지 농민은 필요없다. 농촌에 공장이 들어서는 게 훨씬 경쟁력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한국)도 해외로 직접 농사지을 땅을 개척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 멀리 갈것도 없다. 자신이 사는 동네주변을 살펴 보라! 공장으로 포위당하고 있지 않은가? 6개월에 한개씩 공장이 들어서고 있을 것이다.)

아래 주장이 대세가 되어야 한다.
위에서 주장하는 식량문제 해결방식은 현재까지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가?
농민의 몰락 ! 연달아 농촌의 해체와 도시의 과밀과 도시빈민의 증가!
다국적 자본에게 목줄이 담보잡힌 식량안보!
오염된 식품의 섭취로 인한 전 민중의 건강권위협!
포크레인으로 파헤쳐지는 농촌과 이로인한 환경의 위기 심화!
주류 농업정책의 문제점을 더 말해야 알겠는가?

문제점은 알겠는데, 대안은 무엇인가?
구조에서는 쿠바모델 ????(헌데, 쿠바모델이 뭐지? 생산협동 공동체??? 생산과 소비의 조화!! 교환구조등등!!을 살펴볼 것)
구 소련의 집단농장 모델 ????? (이북형 집단농장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대안시스템에 대해서는 사례를 중심으로 연구를 더해봐야 한다.

 

내가 현재 말하고자하는 것은 그 농업기술의 방향이다.

향후 당연히 지향해야 할 그 기술적 방향으로는 '자연농법'이어야 함은 분명하다. 
그 어떠한 화학농 방식도 실패 할 것인다.
지구환경과 식량난해소가 불가분의 관계라고 했을때 현실적 선택, 역사적 교훈도 자연농법일수 밖에 없다.
 

내가 행하려는 자연농법의 출발선은 바로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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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법 (2) - 그 원리

자연농법이 가능 하냐고요?
그 질문은 무신론자에게 '신이 왜 없다는 것이냐?' 는 물음과도 같습니다.
좋습니다. 유신론자에게 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라기 보다, 무신론자에게 신이 없음을 증명하라고 하시니 기꺼히 그러겠습니다. 다만, 증거를 남기기위해 농사지을때 따라다니셔야 합니다.

저는 태평농법을 자연농법이라 부릅니다.
이영문 선생께서 오랜 시행착오끝에 태평농법의 원리를 정립하고 실제로 작물의 생산물로 증명하신지 약 10년쯤 됩니다.
산청인지 밀양인지 하동인지 헷갈리는데 최근에는 낙동강 하구쯤에 후학들을 위한 실습장도 운영하고 계십니다.
태평농법의 원리는 ' 모든것은 땅(흙)에 있다.' (출판사는 기억안남), 최근에는 업그레이드한 '자연의 --- 아니라고 있나?' (보리출판???) 책에 담겨져 있습니다.
태평농의 그 기술은 처음책자에 모두 담겨있습니다. 최근책은 농업기술과 한국 농업의 구조에 대한 관계, 그리고 자연과 인간생명간의 관계(의학)로 까지 고민의 지평을 넓힙니다.

태평농법은 이명문 선생이란 독보적인 존재없이는 설명불가능합니다. 뭐랄까? 농사꾼이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자연에 대한 집요한 관찰때문에 가능했으며, 자연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때문에 원리를 터득했다고 보여집니다.

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자연의 법칙에 조응하라 !'는 것입니다.최근 방송을 탄 일본의 썩지않는 사과농장편을 보신분은 아실겁니다. 땅심을 강하게하고 무농약합니다.

저는 태평농법을 친구로부터 듣기만 하고 대번 깨달았습니다. 이거구나하고 말이죠! 저는 당시 (99년 경) 자연의학에 대해 거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태평농법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의학이란 무엇인가?
원리는 간단합니다. '인간의 몸을 자연에 맡겨라! 왜냐고?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의 법칙에 부단히 조응하는 인간의 몸을 만들라!' 고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자연의학의 원리는 이론적으로 배워야 했던 것이죠.
그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전쯤 습득을 하게되는데, 이때는 제몸을 가지고 이러저러한 실험을 해서 저의 것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때 당시는 자연의학이란 이름은 낮설었습니다. 일본의 '니시 가쓰오' 선생이 자신의 몸을 가지고 실험해서 터득했다고 해서 저는 니시의학으로 기억을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현재 국내에서 이름꽤나 있는 분들은 니시의학이나, 모리시타선생(?)등의 이론을 발전시키지 않았을까 하고, 또 우리나라 대대로 내려오던 민간요법을 나름대로 발전 시켰던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90년대 초반에 저는 '자연의학'의 원리에 푹빠져 있었습니다. 해서는 이걸로 큰 돈을 벌수도 있겠구나 별러 보기도 했으나, 주변에서 땡기는 강한힘은 이게 아니어서 포기했습니다.

대표적인 노빠인 최민회(?) 씨가 쓴 ' 황금똥을 ---' 이란 책등이 히트를 친거는 2003년 경쯤으로 아는데 이때쯤 웰빙 열풍이 불었고 08년 광우병사태 터지고 유기농선호 하면서 돈번 사람들 좀 있었을 겁니다.

저의 돈벌이 고민이 10년 앞섰던 것이었으나, 저는 한참 웰빙열풍을 선전해대며 자연을 상품화하던 2004년 당시 돈벌이는 커녕 감옥에서 1년을 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이때 저는 자연의학과 자연농법의 원리를 더욱 깊고 넓게 고민하였습니다.
 

자연의학과 자연농법의 결합이라!
이 둘을 원리적으로 결합시킨 이론서를 제가 아직 접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저는 개척정신을 가지고 이를 대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 대한 저의 자긍심은  대단하다고 할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에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건축문제입니다.
인간의 집과 건축물이 자연의 일부라고 했을때, 현재 자본주의적 건축물은 분명히 자연을 거슬르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특히 건축문제는 화석재료,에너지,빈부공간, 부피 그자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중대한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제가 현재까지 도달한 자연건축원리는 간단합니다.
'인간의 건축물은 자연의 일부여야 한다. 위배되는 건축물은 모두 파기하고, 자연에 조응하는 토목건축양식을 짓도록 하자! 한국의 대표적 주거양식인 아파트를 부숴라! 흙집5층이하면 족하다.' 입니다.

결론적으로 자연의학에서 출발하여, 자연농법과 자연건축의 원리로까지 고민은 확장되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인간의 기본인 의-식-주문제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안을 정립시키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럼, 저의 이러한 자연의-식-주론은 현재 어떻게 드러나며, 향후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첫째는 대체로 자본주의적 경제성 원리와 충돌하고 있으며, 탄압을 받거나 음성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 혁명적 원리는 증명할 기회도 부여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평한 지구를 둥글다고 하니 그냥 놔둘수가 없는 것입니다.
침뜸의 대가이신 구당 김남수 선생께서 탄압받는 거를 보시면 압니다. KBS에서 종종 대체의학 방영한바 있는데 의사협회 압력으로 중간에 짤리는 거 아시는 분들은 압니다.
자연농업의 경우는 최근 썩지않는 일본 사과농장편이 공중파를 타기도 하는 등 , MBC나 KBS피디들이 기획하기도 하지만 가뭄에 콩날 정도고 그것도 수박 겉핧기 식입니다.  
 

둘째, 때문에 (내용)원리에 맞는 체제(형식)를 시급히 건설해야 합니다.

자연의-식-주 원리는 자연과학기술이라 할수 있습니다. 내용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그 내용은 형식과 조응해야 꽃을 피울수가 있습니다. 헌데, 현재 이 원리(내용)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담보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라는 형식에 어울리는 의-식-주의 내용은 어떻습니까?

농업기술은 농약에 버므리고 유전자가 조작된 콩입니다.
(구조 : 원주민들 내쫒고 농지파손과 공장 짖기-> 아마존의 눈물을 보라! 광우병으로 상징!)

성냥갑 같은 고층 아파트나 지하실방에서 구매자나 노동력의 제공자로 대기자로 사육되고 있는 주거양식이지 않습니까?
(구조 : 멀쩡한 강바닥 홀랑뒤집어 파헤치는 토목구조. 돈되는 건축물 짖는데 버티면 태워죽이고!!!! -> 뉴타운건설공화국)

화학식품과 스트레스 때문에 암걸리면 암덩어리 도려내고 방사선 쏘이는 무식한 치료(기술-내용)로 내몰립니다.
(구조 : 돈 없으면 병원근처도 못가는 의료시스템. 보건의료 민영화 가속화)
 
한편, 알만한 사람들은 거의 아는 건데 돈많은 자들이 자연주의 의-식-주를 행한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인가요? 브르주아 애덜이 자본주의적 원리에 입각하지 않는거 말입니다. 
아닙니다. 자연(주의)의학과 농법기술, 자연건축물이 좋다는 거를 브로조아 애덜은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 햇빛, 물, 공기, 흙등 자연재가 '녹색성장론'에 기반해서 급속히 다양한 상품으로 재탄생하고 있기도 합니다. 자연재뿐 아니라, 자연농(의, 건축)기술도 자본의 이윤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자연농(의, 건축)기술양식이 반자본주의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일뿐, 원래가 '반자본적 기술원리다 '라고 못박을 수도 못박는다고 박히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이 부분은 중요한 문제로 향후 더 말하겠습니다.) 
  
  
셋째, 의-식-주가 자연과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결합과정에서 발생하는 양식이라고 했을 때, 제가 아직 접하지 못하고 있는'생태 사회주의'양식은 이러한 '자연 의-식-주 기술원리'를 바탕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나름대로 가설을 세워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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