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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개의 폭력이 있다.
집회인 -> 노숙인 ("집회를 하는데 귀찮고 깜짝 놀라게 한 방해꾼에 대한 정당한 반응"),
정부 -> 철거민 ("순순히 나가지 않은 불온한 자들의 도심 테러에 대한 정당한 진압")
청올님은 "그저 '나와는 다른 만만한 사람'으로 보고 함부로 했다는 점에서", 이 차이를 모르겠다고 하신다.
너무 압축적으로 설명했으니 여기에서 청올님의 덧글을 읽으시면 된다.
청올님의 순수한 뜻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논리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거의 모든 폭력은 공권력과 같아진다. 원래 폭력이란 자신의 의지를 타인에게 관철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리력이다. 교사가 학생을 구타할 때, 남편이 아내를 구타할 때, 부모가 자식을 구타할 때 기타등등 거의 대부분 폭력은 자신보다 힘이 약한 대상에게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행사하는 것이다. 나는 폭력을 찬양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폭력일반이 공권력과 같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폭력은 항상 관계속에서만 생각할 수 있고, 정부가 행사하는 폭력은 단순히 그저 나와는 다른 만만한 사람에게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피지배계급에게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권력은 계급지배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고, 공권력을 사용하는 경우는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다. 계급지배는 현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임금을 받고 일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만일 친구에게 만원 줄께 심부름 좀 갖다와 하면 친구는 굉장히 굴욕감을 느낀다. 누군가를 위해 돈을 받고 일한다는 그 자체가 굉장히 굴욕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용이 되면 기뻐한다. 이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계급지배가 실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다 지배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폭력은 행사될 필요가 없다. 아무도 저항하지 않으므로. 그럼 언제 폭력은 행사되는가. 생존권을 빼앗겨서 목숨을 내걸고 저항할 때 공권력이 동원된다. 그 공권력은 그 사람의 생명까지도 빼앗을 수 있는 폭력이고 실제로 죽였다. 지배계급의 폭력이 동원되는 경우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이런 종류의 폭력과 우리가 일상적으로 나보다 더 만만한 누군가를 굴복시키기 위해 저지르는 폭력이 같은 것일까. 그 폭력이 추악하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폭력과 같다고 하는 것이 온당한 것일까. 정운찬의 "철거민 사망원인은 화염병" 발언이 훨씬 더 폭력적이라고 한 것은 살인을 사후적으로 승인했기 때문이며 유족들의 가슴에 또 한 번 대못질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노숙인을 어디다 내팽개치고 구질구질한 변명을 늘어놓은 것과 결코 같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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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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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지배에 관한 말씀들에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는 제가 애초 문제제기한 부분과는 조금 다른 측면을 더 짚은, 즉 '여집합' 부분이 자세해진 것으로 봅니다.반면 제가 비교하고자 했던 부분에 관하여 말하면, 노숙인을 내팽개치고 구질구질한 변명 늘어놓기를 넘어선 정당화('저 사람이 저렇게 내팽개쳐진 것은 저 사람이 먼저 우리에게 폭력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또한 내팽개쳐진 노숙인에게는 역시 폭력을 사후적으로 승인한 것이고 당한 사람에게 또 한번 대못질을 한 것이기도 합니다. 쓰러진 노숙인과 주변의 그를 조금 아는 동료 노숙인들 다 듣고 있었고요. 한 명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집단의 모두가 하나둘씩 점점 들고일어나 모여서 정당화하기에 바빴습니다.
저는 글쎄요, 여전히, 정부만큼 자원과 공권력과 합법적 폭력이라는 장치를 갖지 않았을 뿐이지, 그래서 그만큼 강력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이 가지고 있었고 행사했고 구사한 폭력과 논리의 장치들은 정부의 것을 거의 그 자리에서 충실히 재현했다고 볼 만큼 유사했다고 봅니다. 그 자리에서만큼은 그 노숙인은 정부에 함부로 대들었다가 가차없이 처형을 당한 자였답니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논리가 있다면 그것마저도 그 자리에서는 충실하게 재현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상의 재현에 대해 실제로 문제제기하는 소수의 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그들의 정당화에 물리적으로 밀리기도 했습니다. 정당한 비판이 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죠. 정부가 언론 장악하는 것처럼요.
말하자면 그 자리에서 '그들'은 (가상의) 정부처럼 그 노숙인을 응징하고 정당화하였습니다. 노숙인은 가상의 민중이었던 것은 아니고(생존권 등을 주장하면서 알맞은 대상에게 저항하던 것은 아니니까) 그냥 실제의 노숙인이었습니다. 응징은 실제 폭력으로 이루어졌고 그 노숙인의 몸에 가해졌습니다. '그들'이 집회 하던 사람들이 아니고 지나가다가 노숙인과 시비가 붙었을 뿐이라든가 '내가 화가 나서 좀 그랬어' 이랬다면 저도 그들이 정부의 논리를 쓴다고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집회 하는데 그가 먼저 폭력으로 방해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다뿐 아니라 '집회의 효율성을 위해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고 방해하는 사람을 좀 그렇게 할 수 있다 이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공권력 비유가(제가 억지로 같다 붙인 비유가 아니라 그들이 보인 행태가 정부에서 하던 짓과 너무나 똑같아서 많이 보던 것이었고 공포스러울 만큼 똑같았다는 겁니다) 처음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계속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지배계급/피지배계급'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병행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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