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경 - 고동치는 중국의 심장부

 

1.

1279년 남송이 멸망하면서 마침내 원나라가 전중국을 지배하게 되고, 비로소 북경은 처음으로 중국 전체의 도읍으로서 중국의 중심이 된다. 당시 북경은 대도라고 불렀다.

 

2.

북경을 찾는 사람들은 반드시 고궁을 보러 가게 된다. 고궁은 봉건왕조의 지배자들이 살앗던 궁전을 의미한다. 북경의 내성안에 황성이라는 구역이 있는데, 그곳도 과거에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황제가 사는 자금성은 바로 그 황성안에 만들어졌다. 옛날 전제황제는 3중으로 둘러싸인 땅에 궁전을 지었다. 그들의 화려한 생활이나 어마어마한 권위는 일반 백성들을 착취해 이룩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백성들이 반기를 들고 봉기를 일으킬까 봐 이처럼 조심조심 몸을 사리며 자신을 지켰다.

 

3.

1900년에 일어났던 의화단운동때에는 천안문 앞에서 싸움의 불꽃과 연기가 피어올랐다. 1919년의 5.4운동때에는 이곳에서 북경의 학생과 지식인들이 일본이 내민 21개 조항의 요구에 굴복한 군벌정부에 항의하는 행동을 시작했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알린것도 천안문광장에서 였다. 천안문은 옛날 위정자가 일반 사람들에게 알리는 조서를 발표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그곳은 봉기를 일으킨 사람들이 자신들의 혁명적인 사상을 전국에 호소하는 장소로 쓰였다. 천안문은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힘차게 고동치는 중국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4.

겨울이 되면 북해는 얼어붙는다. 18세기 청대의 기록에 따르면 사람들이 쇠이빨이 붙은 구두를 신고 얼음 위를 달렸다는데, 아마도 지금의 스케이트와 비슷한 것이었나 보다. 이를 보면 중국의 스케이트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북해가 고궁바깥에 있었다고 해도 황성안이엇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출입할 수 없었다. 아무리 오랜 역사를 지녔다고 해도 북해의 스케이트는 일부 특권 계급만이 누릴 수 있는 스포츠였다.

 

5.

경산 혹은 북해의 백탑산에서 북경 시가지를 바라보면 지금은 고층 건물이 가득 들어차 있지만, 옛날에는 그처럼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지역에 따라서 2층 이상의 건물의 짓지 못하도록 금지해 놓은곳도 있었다. 봉건왕조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궁전이나 관청따위를 크게 짓고는 이들 건물이 더 커 보이도록 주변에 민간인이 커다란 건축물을 짓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주변이 낮고 작아야 그들이 세운 건축물이 가장 거대해 보인다는 사고방식 때문이었다.  

 

 

* 만리장성 - 중국인의 마음을 이어주는 장성

 

6.

장성이 거대한 구축물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산맥이 갈기처럼 길게 이어져있는 장성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마치 역사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잇는 듯한 착각에 바져들게 한다. 장성을 만든 것은 전국의 군주들이었고 진시황이었으며 한무제였지만, 실제로 흙을 나르고 쌓아올리는 공사는 이름도 없는 가난한 백성들이 맡아 했다. 누구도 좋아서 그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라에서 내린 엄명에 따라 부모형제나 처자와 헤어져 삭풍이 몰아치는 장성의 공사장으로 끌려왔던 것이다. 강제노동이었기 때문에 공사를 감독하는 관리가 그들을 노예처럼 부렸으리라는 것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만리장성의 그늘에는 백성의 피와 눈물과 땀이 서려 있으며, 많은 사람의 목숨이 묻혔을 것이다. 그것은 갖가지 비극을 낳았다.

 

7.

임조에서 시작해 요동에 이르는 원망과 한탄의 만여 리,

이곳을 흐르는 황하를 건너 양산을 거쳐 꼬불꼬불 구부러져 북으로 향한다.

 

8.

진시황의 대공사는 만리장성뿐만이 아니었다. 국도로 정한 함양 축조, 아방궁, 그리고 자신의 묘지로 쓸 여산능 이 있었다. 아방궁과 여산 공사에는 70만명 남짓한 죄수를 동원했다고 사기는 적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어마어마한 죄수가 있을 수 있었을까? 당시 진의 법률이 너무나 엄해,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없듯이 누구라도 갖다 붙이면 죄수가 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대공사중에는 원하는 만큼 인원수를 채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죄수라고는 해도 그 대부분은 지금 우리들이 생각하는 범죄자가 아니었다. 군대, 징용인부, 범죄자가 아닌 죄수들이 관리의 채찍 아래에서 신음하며 쌓은 것이 바로 만리장성이다.

 

 

* 산동 - 바다와 녹음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땅

 

9.

태산은 오악의 으뜸이라고 하여 역대의 황제드은 이곳에서 국가적인 행사 가운데 가장 장엄한 의식이었던 봉선을 올렸다. 봉선은 황제가 태평세계의 실현을 신에게 보고하는 의식이었다. 황제라고 누구든지 태산에서 봉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덕이 있는 황제만이 이를 허락받았다. 여러가지 설이 있기는 하지만, 태산의 정상에서 흙을 돋우어 단을 만들고 그곳에서 하는에 제사를 올리는 것이 봉이고 태산의 기슭인 소산에서 땅을 물리친 산천을 모시는 곳이 선이라 한다. 태산은 대산이라고도 쓰며, 그 산 아래에 옛날 봉선 의식을 거행하던 대묘라는 곳이 있다. 대묘의 문물들은 잘 보존되어 있는데 이것은 문화혁명에 처했을때 묘 담당자들이 냉정하고 현명한 조치를 취했기 때문일 것이다.

 

10.

언제부터인지 태산의 신은 여자를 지켜주는 신이라고 해서 낭낭묘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그런 탓인지 나이 든 부인들이 이 산을 많이 찾아간다. 확실히 태산에 오르면 건강에는 좋을 것이다. 어쩌다 전족을 한 노부인이 지팡이를 짚고 비틀비틀 돌계단을 오르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조마조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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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2 18:47 2005/01/2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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