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여행에 대한 짧은 생각'

12 POSTS

  1. 2008/03/29 나는 걷는다외 - 여행에 관한 책들1
  2. 2008/03/25 4대문명 (2)
  3. 2008/03/19 자전거타기
  4. 2008/03/08 세 할머니 (2)
  5. 2008/03/03 거친 현지동네청년들과 마주쳤을때
  6. 2008/02/29 Old and Wise 늙어 현명해지면
  7. 2008/02/28 객지에서 감정다루기
  8. 2008/02/27 여행을 세배로 즐기는 법 (2)
  9. 2008/02/25 연민이라는 것
  10. 2008/02/24 길에서 만난 사람들 (2)

 

 

 

2004년 여행 준비할때

세계지도와 함께

나에게 영감을 주었던

여행에 관한 책들1

 

 

...................................................

 

 

[나는 걷는다]

 

내가 처음에 지구의 서쪽으로 걸어가겠다고 마음먹는데 도움을 준 책.

실제 걷는 여행은 못했지만 배낭여행의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나이 60살이 되어 곧 은퇴를 앞둔 프랑스 언론인이

'나 이제 할만큼 했다' 뭐 이런 식으로 자위하지 않고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오로지 걸어서 여행한다는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긴다는게

내 마음에 잔잔하게 다가왔었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뭐 이런 마음속 깊은 항변이 아니었을까?

 

3권중 터키 동부 크루드 족 마을을 지나쳤던 1권이 인상에 남는다.

그가 지나다 어떤 마을에 초대받았을때 온 마을 사람이 모여

이방인의 존재에 호기심을 가지고 그에대한 정보를 공유하는데

그걸 읽은 나도 그렇게 현지인에게 초대받는 여행을 꿈꾸었었다.

중동 이슬람 지역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상하수직적인 것이 아니라

온 마을 사람이 공유하는 수평적 방식이라는 글도 그때 찾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때 나도 실크로드 코스를 꿈꾸었지만

겨울에 떠나는 바람에 카리콜람 하이웨이를 넘을 수 없어

남쪽 코스로 방향을 바꾸었었다. 

 

 

 

[쉬 트레블즈]

 

캐나다에서 석사공부를 마친 한 30대 한국여성이

삶의 허전함과 전망의 불투명함을 뒤로 하고

남미여행을 떠난다는 여행기다.

 

이 책에는 가이드북들이 주는 남미여행의 정보 팁은 별로 없다. 

인상적인것은 그녀가 남미 한 도시 정류장에 내릴때마다 

숙박삐끼들이 몰려들고 그들과 신경전을 벌이며 

조금 더 가격을 깍으려는 실강이와 악다구니들이 반복표현되어 있다.

나중 어떤 글에는 자기가 왜 이렇게 몇 푼 아끼겠다고 이런 독한 짓을 하고

있나라는 자조섟인 얘기도 나오는데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떠나는 여행이 단지 도피가 아니라 현지인들과 부데끼면서

진짜 삶에의 도전의 힘을 준다는 뭐 그런거 아닐까?

 

이 여성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미에와 루이의 300여일의 버스여행]

 

미에는 모델이었고 루이는 사진을 찍는데 이 한국여성과 프랑스 남성이

함께 살게 되고 버스를 개조해서 중국에서 프랑스까지 버스여행을 하는 여행기다

 

한 여성지에 연재한 것이 유명해져서 책으로 나온것을 헌책방에서 샀는데

서툰 글이 가지는 솔직 담백함이 끌렸었다.

누군가가 내 여행일기를 보고 재는 왜 맨날 먹는 얘기만 쓰냐고 그랬다는데

그게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닐까 싶다.

 

미에가 현지인을 메이크업해주고 루이가 사진찍는다는게 여행 컨셉이었는데

이것도 그럴듯해 보였다.

뭐든지 명분이 조금은 있어줘야 한다.

 

그런데 얼마전 루이 미에 아프리카 여행이 책으로 나왔었다.

그걸보니 출판마케팅의 농간인지 돈이 없어 인세가 아쉬웠는지

하여튼 사파리 페키지 잠깐 다녀온것이 책으로 나와 씁쓸했다.

 

 

......................................................

 

 

 

어딘가에서 여행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여행은 로드무비같은 것이라는 말을 한적이 있다.

아이다호, 델마와 루이스 같은 로드무비는

어떤 목적지없이 길을 가는 여행이다.

그 과정에 사람도 만나고 사건도 벌어진다.

 

 

 지금 내 삶이란 것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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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9 15:46 2008/03/29 15:46

 

 

 

 

고등학교 시절

한참 서양대중음악에 매료되었던 시절

3대 보컬리스트, 3대 기타리스트가 누구니 하며

놀았던 생각이 난다.

그 3대 4대는 누가 권위를 부여했을까?

 

 

.................................................

 

 

 

 

아무튼 4대문명의 언저리에 가본셈이다.

 

 

중국에선 진시황제의 병마용갱이 있는 시안의 박물관을 가보았었다.

굳이 외국까지 나가서 들어간 박물관이니 한국과 다를 것 없는

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로의 변화를 보여주지만 집중이 잘 되었다.

2000년전에 만드느라 애쓴 병마용갱을 보면서

왕들은 사색이나 꽃가꾸기에 취미가 있어야지

건축에 관심있으면 백성들이 고생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황하강보다는 남쪽의 양쯔강(장강)쪽으로 집중해서 그 흙탕물은 기억나지 않는다.

 

 

 

인더스강 유역은 인도가 아니라 파키스탄 남부다

파키스탄은 여행코스가 아니기도 했지만 워낙 우범지대라서

그냥 혼자 갔다가는 생사를 보장못한다는 소문이었다.

현지의 한 할아버지를 가이드로 대동하면 이 할아버지가

다 막아주며 구경할 수 있다는데 앞으로 죽 살아계셔야 한다.

그냥 인도 갠지즈강으로 만족했었다.

 

 

 

나일강은 그나마 제대로 본 강이다.

우간다의 나일강 발원지를 직접 배타고 보고

비행기로 이집트까지 나일강을 죽 따라 내려봤었고

나일강이 지중해로 빠지는 클레오파트라의 도시 알랙산드리아까지 갔었다.

화강암으로 지어진 기원전 2000년대 이집트의 신전들은

도도한 서유럽 백인들을 완전히 기죽여버린다.

단단한 돌을 깍아내고 쌓아올리느라 백성들이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로마제국 전까지 이 민족의 침략이 거의 없었던 단일 왕조였다는데

문명의 지속이 느껴졌다. 

 

 

 

그에 비해 시리아와 터키 남부를 가로지르는

티그리스 유포라테스강 유역은 뭐가 남아 있는게 없었다.

이곳은 화강암지역이 아니라 무른 사암지역이기도 하고

워낙 이 지역을 둘러싼 쟁탈이 많았던 지역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메소포타미아는 4대 문명중 가장 앞선 문명이었고

그리스 기독교 이슬람 신화의 기본 모태였다는 길가메쉬 서사시를 낳은 곳이라는데 

내가 보기에 그냥 쓸쓸한 변방이었다.

 

 

 

인류초기 아프리카의 한 아줌마가 천천히 북쪽으로 이동해 나갔다.

그 후손들이 강가에 머물면서 이후 문명이 꽃피워졌다.

 

 

 

....................................

 

 

나에게 맞닥뜨려진 현실에 한숨이 쉬어질때

지금의 나를 긍정하며

눈을 감고 내가 지나온 길을 돌이켜본다.

 

 

내 문명의 시작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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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5 18:03 2008/03/25 18:03
  1. 빨간뚱띵이
    2008/03/28 09:43 Delete Reply Permalink

    와~ 4대문명 발원지!

  2. 아이비
    2008/03/28 14:19 Delete Reply Permalink

    빨간/스쳐 지나간걸요^


 

 

국민학교 5학년때  큰 집에 언쳐 살았던 시절

자전거를 망가뜨리고 서러워하며 울었던 생각이 난다.

그렇게 울 필요도 없었는데 왜 그랬을까?

 

 

..........................

 

캄보디아 앙크로와트의 도시 씨엡립에서

하루 1불 짜리 자전거를 빌려타고 다녔다

한적한 동네 골목을 지나다보면 집집마다 아이들과 손을 흔들면서 인사를 하곤했다.

자전거의 속도는 만남의 속도였었다.

천년된 앙크로 제국을 무동력 패달을 밟고 돌아다녔었다.

 

남아공의 해안가를 죽 따라내려오다 오츠혼이란 산아래 마을로 왔다.

2000미터 산까지 봉고차로 타고 갔다가 자전거로 내려오는 투어를 했는데

남반구의 7월 겨울에 낭떠러지 길을 혼자 타고 내려오다

속도에 대한 강한 욕망을 품은 적이 있다.

마음은 브레이크 손을 풀고 날아보려했으나

실제는 아스팔트에 넘어져서 세바늘 꿰메고 고생했었다. 

 

폴란드 위 리투아니아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북유럽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던 남매를 만난적이 있다.

하루에 70키로 이상씩을 내달린다는데 피곤에 지쳐하는 모습이었다.

한 편 부럽기도 했고 한 편 저 고생에 대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

 

 

올 초 부터 이따금 한강변을 자전거로 다니기 시작했다.

강물을 스쳐 지나가며 서서히 패달을 내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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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9 12:00 2008/03/19 12:00

 

 

20대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는 한 가지 생각

그때부터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였다.

 

다시 할머니를 떠올려본다.

맏 며느리로 농사짖는 그렇게 힘든 조건에서

그렇게 아낌없이 베풀면서 하나 욕심없이

그렇게 즐거운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

 

할머니는 나의 어린방학시절

값진 추억을 만들어 주셨다.

 

 

 

여행에서 만난

두 할머니가 생각난다.

 

중국을 돌다가 홍콩에 다다랐을때 한국음식이 먹고 싶었다.

홍콩의 한 한국식당의 마담이셨던 일흔둘의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님 접대는 직원들 시키라고 화를 내도

손님을 맞는 일이 그렇게 즐거우시단다.

그 미소가 입소문으로 이어져 

내가 론리플레닛 중국편에 이 식당이 소개되었다고 전하자

어떻게 서양사람들이 여기를 찾아온다고 하면서 감사편지를

론리프레닛 본사에 보내신단다.

 

일본배낭여행자들이 즐겨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헬레나 게스트하우스는

헬레나 할머니가 마담이신 도미토리 숙소다.

할머니는 항상 페셔너블한 옷을 소화하는 멋장이신데

여행자들을 언제나 즐겁게 맞아주신다.

헬레나 할머니는 매일 점심을 직접 해주시는데

밖에 나갔다가 와도 내 침대자리에 그 정성어린 음식이 놓여있었다.

일주일을 지내고 헤어지는데

서운해하시며 미스터 황 더 머무르다 가란다.

 

 

 

이렇게 사는게 사람사는 정리일텐데

돌아오고 나니 인상굳어지는 일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  

그때마다 세 할머니를 떠올리며 미소 지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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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8 00:06 2008/03/08 00:06
  1. 자일리톨
    2008/03/18 23:19 Delete Reply Permalink

    저도 요즘 인상 쓰는 일이 잦네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제게는 방학때마다 추억거리를 만들어주셨던 할머니는 없네요. 이제 9월이 되면 제 아이가 태어나는데 마당있는 집에서 개를 키우며 뛰어놀게 해줄 수 없을 듯 싶어 걱정이네요.

  2. 아이비
    2008/03/19 20:46 Delete Reply Permalink

    화창한 봄날에 너무 걱정모드시군요.^ 사실 저도 그렇기에 이 부분에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고 그냥 시간이 흐르면 좀 나아지더군요. 아이가 뛰어놀 정도로 크기까지 시간이 있으니 그때쯤 가서 다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네요.^


 

 

 

 

네팔 카트만두에서 한국인 프로등산인 친구 하나 만났다가

어떻게 관계가 꼬여서 아주 힘들었었다.

 

이 친구 카트만두 타멜거리에서 죄다 죽일듯이 폼을 잡고 걸어다녔는데

나중에는 이 지역 조폭조직에서 연락이 올 정도였단다.

 

그래도 착한 네팔인들이니 별탈이 없었지

남아공이나 러시아 여행할때 이 친구 같이 여행하면

여행의 한 치앞이 불투명해진다.

 

여행이라는게 서슴없이 도시를 돌아다녀야 맛이다.

그럴려면 어느 정도의 뒷골목도 다니게 되는데 말이다.

 

한적한 골목을 들어서는데 저쪽에서 거칠어 보이는 청년들이 오고 있을때가 있다.

나도 속으로는 약간 움찔하고 그들도 자기공간에 들어온 동양인의 존재가 생경한 상황이다.

 

이럴때 내가 터득한 것은 절묘한 포스를 풍겨야 한다는 것이다.

부드럽고 태연한 태도가 일단 기본이다. 여기에 만만치않고 당당하다 태도를 깔아야 한다.

 

이 포스가 행동으로는 그냥 별일 없다는 듯이 직선으로 걸어가는 것으로 표현된다.

움찔하면서 피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 약점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러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단 은연중에 기싸움을 벌이면서 그들과 가까워졌을때 상황에 따라서

그들에게 그나라 인사말로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를 한다.

그러면 서로간에 한 긴장감이 풀어지면서 그들도 보통 반갑게 인사를 한다.

관계를 맺자고 여행을 하는거다.

 

이렇듯 여행 할때는 감각이나 직관력이 높아진다.

배낭여행은 내 고유한 감각을 찾아나가는 치유방법이다.

 

 

 

그런데 돌아와서는 온갖 것들이 내 감각을 무디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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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3 02:07 2008/03/03 02:07

 

 

고등학교때 좋아했던 알란 파슨즈 프로젝트 그룹의

올드 앤 와이즈라는 서정적인 노래가 생각난다.

여행지에서 만난 늙어 현명해보였던 사람들... .

 

 

중국 광저우에서 토미토리(2층침대 여러개가 한방에 있어 값이 싼)에서 만난

네덜란드 할아버지. 그의 나이가 일흔 여섯이었다.

하얀 백발에 풍만한 체구의 장기 투숙자로 동네에선 싼타할아버지로 불리웠다.

다 벗고 잠을자다 밤에 화장실 갈때면 동네 중국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란단다.

그는 그 나이에 섹스 씨디와 잡지를 침대위에 늘어놓고  나에게 권하기까지 했다. 

그 에너제틱한 감성에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지도를 펼치자

이 중국보다 작디작은 유럽의 패권주의가 문제라며 역사의식 또한 보여주셨다.

 

이 70대 배낭여행자의 모습은 내 40년뒤 모델로서 아직도 귀감이 되고 있다.

 

 

인도 마날리에서 만난 사우디에서 사업하다가 매년 여행 온다는 한국 아저씨

그의 나이 예순이었나 예술 둘이었나 그랬다.

큰 가방 두개를 짊어지고 혼자 다니는데 여행의 맛이 있단다.

아직 미혼인거 같은데 김치를 얼마나 맛나게 담궈드시고 음식을 잘하는지

사우디의 한인 모임 부인들이 겸연쩍어 할 정도란다.

내 숙소 배란다에 의자놓고 술 한잔하면서 서로 군침흘리며 먹는 얘기를 나누었었다.

사람은 얼굴도 얼굴이지만 목소리에 나이가 든다.

그런데 이 아저씨 아직 청년의 감성 그대로의 목소리다.

헤어질때 아쉬워하며 나에게 그 귀한 참치캔 세개와 라면 세봉지를 분양해 주셨다.

 

이 한갑나이 배낭여행자의 모습은 내 한갑때 모델로서 아직도 생생하다.

 

 

현명해지는것은 변하지만 변치않는 것이다.  

나도 그들같이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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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9 03:12 2008/02/29 03:12

 

 

 

먼저 여행했던 친구의 말

 

"어느 순간 정말 꼼짝하기도 싫고 헬리콥터가 와서 나를 한국으로 실어갔으면 하는

때가 있었어. 장기여행자는 그런 상태가 한 번쯤은 와."

 

 

여행은 돌아오니 낭만이고 무용담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은 수많은 삐끼와 장사치와 사기꾼들을 상대해야 하는 아귀다툼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남아공을 여행할때는 이 호객꾼들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남아공의 밤거리의 위험함에 대해서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장거리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밤에 도착할때 느꼈던 그 압박감과 스트레스... .  

 

그 한꺼풀을 벗겨내야만 배낭여행자들이 염원하는 리얼세계, 현지사람과의 접촉이 가능하다.

이게 어디 쉬운일인가.

똑같은 여행지에서도 저마다 자기 수준만큼 여행한다.

 

그럴때마다

여행 초보자였던 내가 객지에서 감정을 다루는 방법은

'호기심을 드높이기'이다.

이는 한번도 가보지못한 공간에 다다르고 그 공간이 어떨까하는 호기심을 마음에 품어

머리의 상념을 날려버리는 방법이다.

 

잠비야에서 잠베지강으로 뛰어내리는 111미터 번지점프를 신청하고 난 날 밤

내 머리는 내가 왜 100불(몇초 뛰어내리는데 85불,  그 모습을 찍어주는 사진 15불)씩이나 주고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걸 신청했을까를 고뇌하고 있었다.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떨어질때 그 몇초동안 내 인생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질거야. 그때 그 기분이 어떨까."

 

난 다음날 머뭇거림없이 사진사에게 억지웃음을 지어보이고 한번에 슉 떨어졌다.

물론 그 순간 내 인생사의 파노라마는 없었지만 곤두박질이라는 단어의 느낌은 알았던것 같다. 

 

 

 

여행은 호기심과 그걸 확인하려는 욕구에 의해 지속된다.

그것은 지금도 적용되는 삶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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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8 15:07 2008/02/28 15:07

 

 

 

여행을 세배로 즐기려면

우선 대형서점의 외국코너에서 쓸만한 세계지도를 산다.

이 지도를 매일 처다보면서 나만의 여행코스를 세운다.

그러다보면 관심있는 지역이 생기고 관련한 기행문이나 역사서를 사거나 빌려서 본다.

조금만 터득되면 이 재미가 쏠쏠하다.

첫번째 여행은 상상하는 여행이다.

 

 

그리고 실제 여행을 떠난다.

머뭇거려서는 안된다. 과감하게 배든 비행기든 표를 끊어버린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풍광과 거리에 온몸을 내맡긴다.

일기장을 구입하라. 평소에는 며칠을 못 넘기던 일기가 그냥 써진다.

갈 곳이 오지탐험이 아니라면 여행자용 피씨방이 있다.

블로그에 흔적을 남겨서 객지생활의 외로움을 달래라

두번째 여행은 느끼는 여행이다.  

 

 

이제 여행에서 돌아왔다.

여행의 무용담은 독이 될수도 있다.  빨리 현실을 직시하고 생활에 적응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어느 순간 다시 그 여행의 기록을  잠깐 들여다본다.

여행지에서 호기를 부리는 나를 떠올리며

지금 지지고볶는 나와 비교해본다.

세번째 여행은 돌아보는 여행이다.

 

 

 

이 글은 세번째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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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7 20:58 2008/02/27 20:58
  1. re
    2008/03/04 11:21 Delete Reply Permalink

    두번째 여행을 즐기고 있습니다.
    여행은 혼자 다니는 중이고요, 세번째 여행 글들이 가슴에 팍팍 와닿네요(벌써? ㅎㅎ) 놋북에 수첩에 블로그에 끄적끄적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무용담'으로만 끝나면 안되니깐요. 세번째 여행이야기 계속 적어주시와요~~

  2. 아이비
    2008/03/04 23:17 Delete Reply Permalink

    저도 여행을 돌아보면 어떻게든 계획대로 움직이려는 강박같은것도 있었던것 같아요. 쉴때는 쉬면서 리듬을 타면서 여행을 즐기기 바래요.~ 멀리서 보내는 님의 응원에 힘을 받아 저도 계속 세번째 여행을 떠나보렵니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캠랑

 

영어잘하는 중국아줌마 소개로 그의 집에 열흘을 묵었었다.

앙크로와트의 특급 호텔 자제과에 근무하는 그는

새벽같이 나가 일본어와 영어를 공부한다.

어느날 한 공원에서 그가 나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한국에 가서 돈벌어와서 작은 여행사 차리는게 내 꿈이야. 

날 좀 초대해줘."

"난 그럴 처지가 아니야."

 

 

네팔 트레킹에서 만난 셀파

 

에베레스트 쿰부 히말라야로 가는 길에 한 곱상한 외모의 셀파를 만났다.

비스킷을 나눠 먹다가 3일을 함께 길을 걸으며 같이 먹고 자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나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나 내일이면 저쪽 방향의 내 집으로 가. 돈 조금만 주면 내가 가이드 할 수 있어."

"난 누구를 고용하고 싶지않아. 내 힘으로 배낭을 매고 오르고 싶어."  

 

 

탄자니아에서 만난 고등학생

 

수도 다르에스살람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스물한살이라는 고등학생을 만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우는상을 지으며 말한다.

 

"아버지가 선생님인데 월급이 100불이야. 그런데 내 일년 기숙사 학비가 총 1000불이야.

좀 도와줘."

"난 아끼며 아끼며 길을 지나가는 배낭여행자야."

 

 

...

 

그런데 돌아와서는

그 누구에 대해 연민을 갖기 보다는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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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5 23:48 2008/02/25 23:48

 

 

여행하면서 뭐가 좋았냐는 질문을 받을때

먼저 얘기하는 대답

 

 

길눈이 아무리 밝아도

헤멜 수 밖에 없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의 에피소드는 이순간 발생한다.

 

배트남 하노이 구시가지

100만대의 오토바이와 함께  그 복잡한 미로를 걸을때

숙소에서 나와 이길로 이길로 왔었지를 계산하다 계산하다

머리가 벅차올라 그냥 포기해 버리는 순간이 있었다. 

 

길에서 물어야 한다.

 

안녕하세요(그나라말로)

손짓 발짓(인류공통의 언어)

감사합니다(그나라말로)

 

평균잡아 하루에 열명정도의 현지사람들에게

대화를 청하고 눈빛을 주고 받았다.

총 오천오백오십명정도의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돌아왔다. 

이것이 여행에서 가장 큰 수확이다. 

 

 

그런데 돌아와서는 사람들 만나기가 녹녹치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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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4 02:05 2008/02/24 02:05
  1. re
    2008/02/24 22:32 Delete Reply Permalink

    아이비님의 여행기를 읽으며, 여행준비를 하던게 얼마전 같은데
    이제 제가 서쪽으로 움직이고 있네요. ^^
    그렇죠... 정말 많은 사람들과 눈빛을 나누는 것 같아요.
    어떤걸로 환산할 수 있는건 아닌것 같고, 그냥 마음속에 하나씩 차곡차곡 남네요.
    요즘도 가끔 아이비님 포스팅 참조한다는.ㅋㅋ

  2. 아이비
    2008/02/25 00:54 Delete Reply Permalink

    블로그에 가보니 코스가 인상적이더군요.^ 여행자들 얘기로 티벳 더 망가지기전에 나도 가보고 싶네요. 그런데 가족들과 함께 여행하는 건가요? 아무튼 건강하고 별탈없이 여행 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