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벽에 방에 사람들이 들이닥친다. 아침에 일어나 인사를 하니 한국 복학생들이다. 그중 한 친구가 베이징에서 공부를 하고 있단다. 내 숙소 창문으로 바라보이는 정원 풍경이 멋지다. 박들이 탐스럽게 열려있다. 체크아웃을 했다. 주인이 어느쪽으로 가냐고 묻는다. 그냥 내려가서 생각 좀 해보고 결정한다고 했다. NO3주인은 내가 아는 을지로의 노동시인과 너무나 닮았다. 처음 인사할때 내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라고 하니 그냥 이렇게 삽니다라고 대답할때 약간 수줍어 하는 것 부터 화낼때 톤이 올라가면서 나오는 목소리까지... . 세상에는 닮은 사람들이 있다.

 

2.

어제 먹었던 쌀국수 집에 갔다. 맛이 어제만 못하다. 맥주도 첫잔을 목으로 넘길때의 맛이 최고다. 새로운 숙소인 MCA쪽으로 걸어갔다. 중간에 즉석만두집에서 하나를 사먹었다. 체크인을 했다. 5일치 도미토리 비용을 지불했다. 영어를 잘 하는 직원과 몇 마디 나눴다. 한국여자들이 이쁘단다. 내가 반론을 폈다. 코리안걸 메이크업 뷰티, 차이나걸 내츄럴 뷰티. 이 말은 듣기 좋으라고 한 말도 있지만 사실도 있다. 자전거를 즐겨 타고 몸을 잘 움직이는 중국여자들에게 풍겨나오는 건강미는 보기 좋다.

 

다리 삼탑사 입장권

 

3.

드디어 날씨가 풀렸다. 오늘은 큰 세개의 탑이 있는 사원으로 가보자. 고성의 윗쪽길로 접어들었다. 큰 호떡을 하나 사먹으면서 걸었다. 사원에 도착했다. 아침에 만났던 방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온다.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 곳의 입장료가 52원이다. 하루 잠 자는데 15원인데 52원이라 그래도 볼 건 봐야된다. 탑과 사원이 공간은 아주 넓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얼하이우의 풍경은 군더더기 없이 꽉 찬 맛이있다. 그런데 여긴 불경소리가 안들린다. 맨 위까지 가보니 절 공사를 하고 있다. 그쪽을 갈 수 가 없다. 대형불상이 있는 당의 안내문에는 이곳이 문화대혁명때 없어졌다가 1997년 복원되었다고 나온다. 절은 오래될 수록 맛인데 여긴 새로만든 티가 난다.

 

4.

출구로 나오는데 한 마차주인이 애처로운 눈으로 날 쳐다보며 다가온다. 마차를 타란다. 고성까지 별 거리도 아닌데, 얼마냐 물으니 5원이란다. 좋다했다. 여기저기에 손님을 기다리는 마차들이 있다. 얼마안가 고성입구에서 내렸다. 치즈빵에 시럽을 입혀 둘둘 말아 꼬치에 껴주는 전통과자를 하나 사 먹었다. 고성안에도 작은 시장이 몇 개있다. 이쪽 시장골목에는 큰 도가니에 술을 담궈 팔고 있었다. 0.5원부터 1.5원 3원까지 여러 종류의 술인가 보다. 저걸 한 번씩 맛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할려면 술여행이 되버린다.

 

5.

물 한통을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수동 분리형 세탁기이고 물 호수가 빠져 잡고 있어야 된다. 이곳 게스트하우스의 라운지는 근사하다. 인터넷도 여러대가 있다. 쓰기는 안된다. 검색을 좀 하다. 옆에 붙어있는 레스토랑에서 소고기카레라이스를 시켰다. 값도 적당하다. 음식이 나오는데 아주 푸짐하다. 파오차이를 달라해서 같이 먹고 있는데 아까 인사한 호주 친구가 들어온다. 이름이 크린턴이다. 멜버른에 산단다. 고등학교 역사 선생이란다. 그가 CD한장을 들고왔다. 투 러브 어쩌구 하는데 알고보니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CD이다. 장만옥을 좋아한단다. 서로 취향이 통하는군. 

 

6.

장만옥은 한 40대 중반 쯤, 50 가까이되었을까? 어떻게 나이를 먹어야 되는지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장만옥에게서 풍긴다. 몇년전 술자리에서 각자의 3대 트로이카에 대한 수다를 떤 적이있다. 난 그때 이보희, 배종옥, 강성연을 얘기한 적이 있다. 이보희는 고등학교때 영동사거리의 2류극장에서 본 바보선언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중학교때 애마부인 시리즈가 힛트를 쳐 부산 사상의 신영극장에서 상영될때 난 안 갔는데 하여튼 수십명이 보다 걸렸다. 한 몇주 동안 걸린 친구들은 애마부인 본 애, 그렇게 좋더냐라고 선생님에게 놀림을 당했다. 그 이후에도 뼈와 살이 타고, 서울에서 탱고를 추고, 그랬는데 이보희는 그런 육감적인 몸매가 전혀 아닌 캐릭터였다. 배종옥에게서는 내가 한때 열광했던 노희경 극본 드라마 거짓말에서 보인 절제된 사랑속의 열정같은 것을 좋아했다. 그 드라마는 소유욕을 기초로한 전통적인 삼각관계와는 약간 다른 뉘앙스를 풍겼다. 물론 그 드라마는 해피앤딩으로 끝났다. 강성연은 어떤 드라마인지는 모르지만 좀 강한 여성상이 인상에 남았다. 이 세명 다 지금은 좀 아쉽다. 이보희는 드라마에서 푼수 아줌마로, 배종옥도 드라마로 너무 굳어지고, 강성연은 지금 어디가 있는지 모른다.

 

7.

하여튼 장만옥은 아직 뭔가를 유지하고 있다. 아니 나이 들수록 매력이 더해간다. 내가 화양연화보다가 졸았다고 하니 그가 놀란다. 오 리얼리? 그때 좀 피곤했었다-아임 소 타이어드- 고 변명을 했다. 내가 영화를 보다 조는 사람이 아닌데 하여튼 졸았다. 7번 트랙인가 유명한 노래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가 나온다. 클린턴이 어깨를 들썩인다. 음 이 레스토랑의 분위기와 노래가 잘 어울린다.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

 

8.

한대의 컴이 한글쓰기가 된다. 또 밀린 일기를 치고 있는데 전인권 머리 스타일의 한 한국남자가 부산히 이곳 사장과 대화를 한다. 뭔 문제가 있나보다. 지갑을 잃어버렸단다. 거기에 모든게 다 들어있단다. 밥을 먹었나고 물으니 안 먹었단다. 200원을 빌려주었다. 나도 앞으로 이런일을 당할지 모른다. 방으로 들어왔는데 저쪽 편에 두 여자가 있다. 스웨덴에서 왔고 학생이란다. 내일 숙소를 옮긴단다. 각각 생명공학, 군사학을 공부한단다. 군사학이라 호기심이 생기는데 숙소직원이 온다. 한국사람이 나를 찾는단다.

 

9.

알고보니 부산사람이고 나와 생일이 몇개월 차이가 난다. 사진을 찍는 일을 한다고 한다. 맥주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한국인 커플이 온다. 그 남자도 여행을 많이 다녔나 보다. 조근조근 자기의 경험을 늘어놓는다. 이제 좀 자야겠다. 방으로 들어갔다. 아까 선심으로 일본남자에게 두꺼운 이불을 주고 이제 얇은 이불밖에 없다. 따뜻하다던 윈난, 왜 이리 춥나? 안되겠다. 파카를 덮고 솜바지를 입고 잤다. 밤새 뒤척였다.

 

 

* 050121 (금) 여행 57일차

 

(잠) 다리 MCA게스트하우스 7인 도미토리  1950원 (15원) 

(식사) 아침 쌀국수 260원 (2원)

          점심 비프카레라이스 1560원 (12원)

(이동)  마차 650원 (5원)

(입장) 세 개의 탑 사원 입장료 6760원 (52원)

(간식) 즉석야체만두 130원 (1원)

         계란 160원 (1.2원)

         치즈빵시럽 260원 (2원)

          물 130원 (1원)

          물 1.5L 230원 (1.8원)

(기타) 어머니에게 부칠 윈난성 사진집  10140원  (78원)

          한국여행자에게 빌려줌 26000원 (200원)-- 돌려받음 26일

 

......................................................... 총 22,23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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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5 15:19 2005/01/25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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