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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 許紀霖의 역사주의/국가주의 비판

앞서 사상16호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許紀霖선생의 논지를 교수신문에서 발췌하여 소개하고 있다. '역사주의'로 중국적 현대성에 대한 논의를 개괄하고 있는 지점이 주목된다.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1660

 

“‘중국 패러다임’, 富强을 목표로 한 국가주의 색채로 충만”

쉬지린 상하이 화둥사범대 교수가 말하는 ‘최근 10년간 중국의 역사주의 사조’

 

 

최근 국내 학계에 중국학자들의 움직임이 빈번하게 소개되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 지식인의 동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내진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소장 김수영)와 상해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가 국민대에서 ‘중국의 지식·지식인의 형성과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제로 개최한 제1회 국제학술회의가 눈길을 끌었다. 특히 「보편 문명인가 아니면 중국적 가치인가? 최근 10년간 중국의 역사주의 사조」를 주제발표한 쉬지린 상하이 화둥사범대 교수(53세, 역사학·사진 오른쪽 끝)에 시선이 쏠렸다. 중국 근현대사상사를 전공한 대표적 사학자이며 중국지식인에 대한 연구의 권위자인 그는 중국 지식인들의 담론 변화의 지점을 진단하는 데 탁월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평가다. 다음은 쉬지린 교수의 발제문 가운데 주요 부분을 발췌 요약한 글이다.
 

 

 

 
 

 

 

 

지난 2000년대는 중국이 우뚝 일어난 10년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흥기는 이미 세계가 공인하는 사실이 됐다. 30년간의 개혁개방을 지속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면서 글로벌 주류 문명에 녹아드느냐, 아니면 독특한 중국적 가치를 찾아 새로운 모더니티를 제공하느냐의 ‘보편적 가치론’과 ‘중국 특수론’의 감추어진 논쟁이 공공영역에서 직접적으로 전개되지는 않았지만 중국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서 거의 그 뒷면의 살기등등한 기세를 엿볼 수 있다. 현재 사상계의 서사 배후에서 유행하는 각종 ‘중국적 가치’, ‘중국 패러다임’, ‘중국 주체성’ 등은 한 가지 이론 가설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즉 반계몽적, 보편 이성에 대항하는 역사주의다. 새로운 세기 초의 역사주의 사조는 성대하게, 장관을 이루며 한때 중국 사상계의 저명한 학설이 됐었다.


2008년 이전에는 ‘세계가 중국을 발견’했다면 2008년 이후에는 이미 ‘중국이 세계무대에서 우뚝 솟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갑작스러운 거대한 변화 역시 역사주의적 경향을 띤 지식인들에게 미묘한 심리적 변화를 가져왔다. 얼마 전 그들은 조심스레 중국 모더니티의 특수한 경험에 대해 논증한 바 있는데 이제는 오만하게 조심스럽던 ‘중국 경험’을 한 단계 상승해 체계를 이룬 ‘중국 패러다임’으로 말하고 있다. 이 같은 패러다임은 중국의 특수한 國情에 적합할 뿐 아니라 서양과 겨루기에 충분한 다른 종류의 모더니티로 승화해, 비서양 국가가 참고하고 모방할 수 있는 최신 사례로 탈바꿈했다. 과거에는 ‘중국 특수론’으로 보편적 가치의 공격을 막아냈다면 지금은 특수가 보편으로 바뀌어 ‘중국 패러다임’이 돛을 달고 출항해 국제무대로 나아가 전세계 문명의 담론 패권을 쟁탈한다.


이런 형형색색의 ‘중국 패러다임’에는 모두 富强을 최고로 치는 국가주의 색채로 충만하다. 최근 중국 사상계에는 이목을 끄는 현상이 등장했다. 민족주의가 온화한 문화 보수주의에서 극단적인 정치 보수주의로 탈바꿈하고 反모더니티의 슈트라우스주의와 국가이성제일의 슈미트주의가 손을 잡고 급진 좌익 그룹이 우익으로 전환돼 현재 정치 질서를 인정하는 국가주의로 전향한 것이다. 국가주의의 등장은 역사주의의 사조이자 긴밀한 관계가 있다. 철학 영역의 역사주의는 정치적인 국가주의로 발전되고, 개중에는 종잡을 수 없는 논리의 통로가 존재한다.


중국의 국가주의가 서양에 저항하고, 중국의 특색을 띤 길을 추구할 때 사실은 가장 서양적인 방식으로 중국적이라 여기는 이상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양문명에서 한층 더 진귀한 보편적 가치를 배제하고, 서양문명의 야만적인 부국강병을 계승했다. 그들이 서양의 무게 중심을 서양 문명의 계몽가치로 구체화하는 것에 반대했을 때 오히려 가장 무서운 부강 모더니티를 은밀히 놓아준 꼴이 되고 말았다. 표면적으로는 서양과 맞서지만 실제로는 이리저리 부딪히며 하나가 되고 서양의 정신적 포로, 즉 문명 가치가 가장 결핍된 부분의 정신적 포로가 됐다.

부강 모더니티 극복과 보편성 담론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역사주의자가 국가주의로 떨어질 때 다른 부분의 인문 감성을 가진 역사주의자는 부강 모더니티를 뛰어넘어 중국 문명의 재건을 시도해 서양과 보편성의 담론 지도권을 다툰다. 최초로 이 같은 자각의식을 가진 이는 간양(甘陽)이다. 2003년 말, 간양은 중국이 민족국가에서 문명국가로 발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는 근대 터키를 본보기로 삼아 만약 한 나라가 서양을 배우고 자기 민족의 문화전통을 스스로 훼멸시킨다면 이는 ‘자기거세식의 현대화’로서 결국 얻어지는 것은 ‘자기 분열적 국가’에 불과할 것이라 했다.


1990년대의 문화 보수주의에서 중국 문명을 부흥시킨 것은 민족문화의 특수성을 지키기 위한 것에 불과하며, 2000년대에 이르러 중국이 우뚝 솟은 배경에서 중국 문명의 부흥자들이 강력한 서양과 보편성을 다투는 ‘문명의 욕망’을 싹틔웠다. 장쉬둥(張旭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글로벌 시야에서의 중국적 가치’ 문제를 제시하는 것은 ‘중국적 가치를 ‘보편 문명’의 높이와 틀에 두고 사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중국적 가치와 보편적 가치 사이에는 어떤 긴장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보편적 가치가 서양의 전유물이 아니므로 “‘중국적 가치’는 필연적으로 ‘세계 문명 주류’의 구성 부분이다. ‘중국적 가치’의 문제에는 반드시 이론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중국적 실천이 선험적으로 모든 기존의 참조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적 가치의 실현은 보편적 의미를 가진 역사성의 실험이자 ‘구세계를 타파하고 신세계를 세우자’는 혁명적 집단행동이다.


중·서 문명의 문제를 대할 때 중국의 역사주의는 이중적 잣대를 적용한다. 한편으로는 서양이 보편성을 가장하는 특수 문명일 뿐이며 동시에 자신의 문명이 천성적으로 보편적 자격을 갖고 있음을 인정한다. 이 실용주의적인 이중적 잣대가 잠재의식 중에서 ‘적과 나를 구별’하는 ‘문명충돌론’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국의 역사주의 담론 가운데 ‘보편적 가치’와 ‘중국적 가치’를 인위적으로 대립시킨 가설이 있다. 보편적 가치가 서양의 가치이며, 중국의 ‘좋은 점’은 반드시 서양의 좋은 점과 대립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서양 모더니티가 가진 복잡한 이중성은 보편적 문명을 내포한 계몽적 가치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야만적 확장의 국가이성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자유민주의 보편적 가치와 야만적 확장의 국가이성 중 어떤 서양 문명을 흡수하느냐에 있다.


놀라운 사실은 중국의 역사주의는 고야스 노부쿠니, 사카이 나오키 등의 일본 좌파학자들과는 다르게 서양의 포화를 비판하는데, 부강을 목표로 하는 마키아벨리즘을 겨냥하지 않고 오히려 부러워했을 뿐이다. 이에 서양 현대성에 대한 토벌이 역방향의 선택으로 나아갔을 뿐이다.

문화 다원주의와 중국의 선택


이사야 벌린은 유럽 초기 역사주의의 대표 인물인 비코와 헤르더를 이야기하며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듯 문화 상대주의자가 아니라 진정한 문화 다원주의자였다고 지적했다. 문화 다원주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인정하지만, 여러 역사 문화 맥락 가운데 보편적 가치에는 서로 다른 문화 형식과 구체적인 표현이 존재한다. 민족문화의 기초를 떠나면 보편적 가치는 근원이 사라진다. 문화 다원주의는 계몽적 보편적 가치와 공존 가능하다. 우리는 자신의 문화, 국가와 계급의 특수한 가치관을 초월하는 능력을 지녀야 하며, 문화 상대주의자가 우리를 제한하려는 봉인된 상자를 부수고 ‘타자’의 문화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하기만 한다면 ‘타자’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의 생활 목표를 이해할 수 있어 이로써 인류문화의 공통점과 다양성을 실현할 수 있다.


‘보편 문명인가 아니면 중국적 가치인가’라는 문제는 거짓 문제일 수도 있다. 정확한 답은 보편 문명을 품고 중국적 가치를 재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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