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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2000년 12월 전리군 논쟁

내가 가지고 있는 전리군 선생 저작 관련 자료의 마지막 부분에 대비판 실록이라는 부분이 있다. 전리군 선생이 직접 관련한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한 내용이다. 핵심적인 부분만 간략히 추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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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의 <북경대학>이 王麗 <중학어문교학수기> 등의 글을 게재함으로서 촉발된 중학 어문교육 대토론으로부터 유래한 이 사건은 1999년 8월 <중학어문교육> 8월호에서의 경계로부터 시작된다. 어문교학에 훼방을 놓는 작용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중학어문교육연구회 명예이사장이자, 인민교육출판사 부총편인 劉國政이 가장 먼저 구체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 비판 대상은 <審視中學語文教育>이었다. 중학어문교육연구회의 현임 회장이었던 張定遠는 겉으로는 어문교육 문제를 제기하지만, 사실상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한다.

 

1999년 9월이 되면 인민일보 연구실에서 출판하는 <사상이론동태참열>에 전리군의 <食人을 말하다>를 <전리군, '식인'을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게재한다. 이어 중국이 소련식 체제 전환의 길을 걷도록 할 수 없으며, 자유화 관점의 사상을 비판하는 논의가 전개된다. '이러한 교수'가 박사생을 지도하는데, 이는 사회주의 혁명의 '후계자' 양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계급투쟁'으로 이를 바로잡을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어 10월이 되면, 전리군은 '반당 반사회주의 분자'로 규정되고, 본래 참여했던 어문교육 개혁소조 고문직에서 배제된다. 11월부터 전리군을 비판하는 글이 여러 간행물에 게재된다. '반애국주의, 반집체주의, 반사회주의'라는 죄명이 붙여진다. 12월에 출판 예정인 책의 서문으로 쓴 글이 '상부의 연락'으로 삭제 편집된다. 이 글은 2000년 초에 다른 학술지에 투고되었고, 9월 편집부로부터  본래 게재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저자가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검열을 거쳐 게재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는다.

 

2000년 1월에 <青年文化通訊>은 <審視中學語文教育>을 "북경대학 교수 전리군 인터뷰의 형식으로 나온" 책이라고 규정하고, "전리군의 죄는 절대 용서할 수 없고, 100년 동안 타도된 세력이 의식적으로 진행하는 계급투쟁"이라고 비판한다. 이어 淪陷區 문학과 관련하여 전리군의 주작인 연구를 한간漢奸을 옹호한 것으로 비판한다. 2월에도 전리군이 "자신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않고, 전적으로 남을 위하는" 윤리관을 개체 우선성의 관점에서 비판한 것에 대해, 부르주아 계급 이데올로기로서, 반애국주의, 반집체주의, 반사회주의라는 비난이 나온다. 이어 '4항 기본원칙'에 엄중히 위배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리군을 법륜공에 비유하는 비판도 출현한다.

 

3월 북경대학에서는 "연구에는 금기가 없지만, 강의에는 기율이 있다. 북경대학의 교사는 자유직업이 아니며, 자유투고자도 아니고, 마음대로 북경대학의 명예를 훼손하는 큰틀을 그르치는 언론을 발표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출된다. 결국 1998년 하반기부터 북경대학의 관련 부문에서 전리군의 북경대학 강연을 금지해 학생들과의 접촉을 제한한 사실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劉軍寧의 비판은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정치와 분리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는다. 전리군을 지지하는 글과 발언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전리군이 헌법과 교육법을 위반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2000년 6월 《讀書》가 문장상을 전리군에게 수여하면서, 또다른 논쟁이 전개된다. 7월에 <광명일보> 등의 신문사에 "전리군의 글을 게재할 수 없다"는 지시가 내려온다. 이미 게재가 확정된 글들이 철회된다. '전리군, 왕부인, 왕휘, 왕효명' 등의 노신 연구자를 싸잡아 비판하는 글도 출현한다. <중국청년보>는 문학상 심사위원에 전리군이 포함되면 행사가 취소될 것이라는 상부의 통보를 받는다. 북경대학의 지도부는 전리군과 이야기를 나누고, "전리군의 수업과 글이 '정치에 관계되고', '격에 어긋나며', '원칙을 위배했고', '반성을 해야한다'고 제기한다. 7월 26일부터 북경대학 인터넷에 전리군을 옹호하는 학생들의 글이 게재되고 토론이 전개된다.

 

8월부터 <북경청년보>는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전리군 인터뷰를 발표하고. <아주주간>은 북경 고관이 전리군을 공개비판하면서 해직의 위기에 처했음을 보도한다. 전리군의 저작 출판을 준비한 광동음상출판사도 <신어문독본>이라는 책의 출판을 중단한다. "전리군 등의 이름이 서명된 책은 모두 출판할 수 없다"는 지시를 받고, 전리군은 이 책의 편집위원에서 배제된다.

 

9월에 북경대학에 전리군을 옹호하는 학생 대자보가 등장한다. <수필>은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전리군의 글을 발표한다. 중국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는 상부에서 내려온 전리군의 글을 비판할 '임무'를 거부한다. 10월에 <群言>에 전리군 지지의 글(湯一介)이 발표된다. 이 글은 인터넷에 다시 게재되고, 홍콩에서도 발표된다. <중국 청년보>가 다시 지시를 어기고 전리군 인터뷰를 게재한다. 북경대학 학생이 뽑은 열 명의 교수에 선정되었음을 발표한다. 楊先武이 전리군의 '개체' 중심 사상을 옹호한다. 11월 <독서> 잡지 11월호가 상부 지시를 거부하고, 전리군의 글을 발표한다.

 

12월 인터넷에서 최근 라디오와 티비 등의 방송국에 12명의 지식인에 대해 매체 통제를 실행하며, 그들의 모습이 화면에 출현하는 것을 불허하며, 12명 가운데 전리군이 포함되어 있음이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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