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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둘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어느정도 평등한 관계에 있음을 전제하는 것 같고, 강연은 일정한 청중을 대상으로 강연자라는 지식인이 본인의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는 차이를 갖는 관계를 전제하는 것 같다. 둘 사이가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겠지만, 어떤 경우 대화를 하면서 강연을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강연을 들으면서 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에 경험한 어떤 경우는 대화 중에 상대방이 강연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보통 '가르치려' 든다는 그런 느낌이 드는 그런 것이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 청자가 관심이 없거나, 아직 동의할 수 없는 전제를 깔아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그러한 화법은 대체적으로 이미 지적인 권위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이는데, 이런 화법은 지적 위계를 전제하고 재생산하는 화법인 것 같다. 제도권 내의 많은 수업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나타나는 단절도 비슷한 맥락의 결과일 것이다. 강요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과 지적 권위에 의거한 일방적 논의전개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 사이에 접점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정말 제도권 내에서만 그러한가? 대중들의 자기교육이라는 테마에 관심을 갖는다면 아마도 이러한 문제를 피해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교사는 자신이 교사가 아니게 되기 위해 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인데, '무지'한 대중들 위에서 '유식'을 단지 자랑하하고, 그러한 지식을 단지 '추종'하는 대중을 끌어모으는 현상은 흥미롭게도 지식인 중심주의와 반지성주의가 어떻게 공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던져본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해준 그가 정말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단지 그의 이미지가 나에게 지식인 운동의 어떤 흐름에 대해 이런 혐의를 가져 보도록 해주었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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