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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민중

이와 같은 제목을 참 진부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매우 낯설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 우리 이전 세대부터 우리 세대에 이르는 넓은 의미의 지식인들이 전자에 해당될 것이고, 전세대에 걸친 비지식인과 30 이하의 젊은 지식인들이 후자에 해당하지 않을까 대략 짐작해본다.

 

나와 같이 기존 지식의 위선과 비윤리를 핵심테마로 삼아 작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제목은 매우 진부하면서도 또 낯설게 느껴진다. 진부함은 아마도 기간의 지배적 담론이 지나칠 정도로 '남용'했기 때문이고, 낯섦은 그 역사적 궤적을 살펴볼 때 '남용'된 것들과 달리 많은 곡절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는 궤적은 '민족'의 변태와 지속, 그리고 '민중'의 일시적 득세와 급격한 몰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최근 <황해문화>에 발표된 서평과도 관련이 되는데, 거기에서 '동아시아론'에 관해 몇 마디 제언을 했지만, 사실 앞서 후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논의는 분단체제론 및 민족문학론의 역사화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자격고사 준비를 하면서 박사논문 구성을 생각날 때마다 다듬고 있는데, 아무래도 민족문학과 민중문학의 논쟁과 갈등이 자연스럽게 그에 앞선 시기 대만에서 벌어진 향토문학 논쟁과 이어지는 매개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서로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다는 방법론적 설정에서 매우 흥미로운 구도들이 예상되기도 한다. 80년대 중후반 사상적 층위에서 보면, '민족'이라는 종적인 축이 '민중'이라는 횡적인 축과의 각축 속에서 전자는 전자나름의 '변태'를 시도하고, 후자는 자기만족적 환상 속에서 역사적 단절을 초래한다. 운동의 층위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특히, '민족'이 왜 '탈역사화'를 거쳐 '한국'이 되었는지는 나름 세계체계론과 분단체제론 등의 외인론 내지 구조론 등과 관련하여 혐의를 잡고 있긴 한데, 역시 이를 80년대적 갈등 구조에 놓고 파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와 달리 지속적으로 '민족민중'을 결합하여 사고했던 이가 박현채인데, 그는 레토릭 수준에서 민족과 민중을 결합했던 앞서 언급한 논쟁 구도의 양 자와는 근본에서 다른 입장이었다. 그것은 민중문학 내지 범 민중민주계열 등등 여러 담론에서 사회구성체론을 무매개적으로 사회성격론으로 취했던 점에 대한 그의 비판에서 잘 드러난다. 앞서 다른 포스팅에서 언급한 것처럼,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성격론'은 80년대에 존재하지 못했다. 이는 박현채의 한계이자 비극이다. 물론 민족문학론도 일정하게 정당한 방어의 역할을 맡았지만, 사회성격론을 전개하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냉전 하의 현실의 변화를 가늠할 척도를 내부에 가지지 못했던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다소간 '수세'적인 상황에서 본래 다소 문학적 영역에 잠재되어 있던 '제3세계론', '세계체계론' 등의 자원이 뒤늦게 전면화되어 영역을 넓혀 '분단체제론'으로 귀결되지 않았나 하는 짐작을 해본다. 게다가 이 '분단체제론'은 흥미롭게도 '동아시아론'으로 확장되면서 '분단극복'의 전망을 역사 보다는 현실주의 정치 안에서 찾게 되는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부 정치와 외부 정치가 일정한 조응 관계를 형성하는데, 대만을 보는 시각이 거의 전적으로 '독립파'(사실상 분단고착파)의 것과 일치하는 지점은 매우 흥미롭다. 대만이라는 거울이 없었으면 아마 남한 내부의 담론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았을 어떤 특질이 드러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강요된 역사적 단절 하에서 진행된 현실의 변화를 80년대라는 갑작스런 개방 공간 속에서 구 세대나 신 세대 모두 감당하기 어려웠던 상황은 참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구 세대의 무능과 신 세대의 망동은 이제 모두 성찰의 대상일 뿐이다. 그 무수한 희생을 올바르게 추도하고 기념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살아남은 자, 나아가 살아가는 자들의 윤리적 삶은 이러한 역사적 성찰을 바탕으로 해야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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