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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아, 박현채 교수 (백기완)

 

*2005년 9월 박현채 교수 출판기념문집 기고글 

아, 박현채 교수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더듬이 자비 출판기념회) 
나는 내가 아는 분의 글이라면 그 어떤 것보다 먼저 읽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저런 잡지에 실리는 박교수의 글이라면 일부러 찾아 꼬박이 읽어왔기에 ‘민족경제론’이라는 책이 나왔을 때도 꼼꼼히 읽으며 무릎을 탁 치곤 하던 어느 날이다. 

그렇다, 이 책은 그 이름까지도 입에 올리지 못하게시리 미리부터 자갈을 물릴지 모른다. 그러니 얼핏 박교수를 찾아가 축하부터 해야 한다. 그러면서 사무실을 나서는데 골목에서 후다닥 소리가 난다. 그러더니 시커먼 차림의 너댓 놈이 따라 붙는다. 
바로 그 무렵 내가 일하고 있는 백범사상연구소와 자유실천문인협회(민족문학작가회의 전신)가 공동으로 “민족문학의 밤”을 연 죄(?)로 그때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한 보름 동안 된통 겪게 되었다. 그 후유증으로 온 몸이 들쑤시고 어철어철 걸음도 엔간칠 않았다. 

그래서 뒤를 밟는 놈들도 따돌릴 겸 택시라도 잡아타고 달아났으면 쓰련만 내 주머니의 딱함도 어지간하고 또 은근히 주먹도 쥐어져 “그렇다, 내 앞길을 가로막기만 해 보아라 이 새끼들아, 이참엔 골통을 짓모으고 말테다”라고 막 골목을 빠져나오는데 “어? 백선생, 어딜 가는 길이오.” 고개를 돌리니 놀랄 일이다. 바로 박현채 교수다. 

나는 너무나 반가워 얼핏 내뱉었다. 
“이게 웬일이여, 바로 박교수님을 만나러 가던 길 아니오.” 
“그런 호랑이 눈을 해 가지고 나를 찾아오다니 혹시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건 아니오?” 
“잡아먹다니 이참에 박교수가 낸 <민족경제론> 출판기념회를 열어주려고 가던 길인데.” 
“아니 그럼 혼자서 출판기념회를 열어주겠다 그 말이오?” 
“알뜰하게 열려고 하면 그래야 하는 것 아니오.” 
“잘됐습니다, 갑시다.” 
그래서 잽싸게 택시를 잡아타고 골목을 한 두어 바퀴 돌아 따라붙던 놈들을 빼돌리고선 간다는 것이 어느 바글바글한 시장골목 더듬한 포장마차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먼저 포장마차 기둥에 손바닥만한 쪽지로 ‘<민족경제론> 출판기념회’ 그렇게 써 붙이고선 쐬주로 거나하게 돌아가면서 그때 내가 한 이야기는 딱 두 가지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첫째, 이참에 펴낸 책은 틀림없이 더듬이가 될 거라고 했다. 무슨 말이냐. 좋은 책은 사람들이 찾아 읽는 것이지만 이 <민족경제론>은 마치 더듬이처럼 도리어 사람을 찾아 나서 의식을 깨우고 나아가 갈 길을 잡아주는 진짜 좋은 책이라고 했다. 
이때다, 박교수가 쐬주를 거퍼 들이키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하는 말이었다. 
“그럼 내가 무슨 선구자라도 된단 말이오.” 
“선구자가 따로 있는 건 아니잖아요. 선구적 생각을 정리해 제시하면 그게 선구자지.” 
“그러면 더듬이 출판기념회 그래야겠구만.” 
우리들은 껄껄 웃었다. 

두 번째로 기억나는 대목이다. 
“거 박교수, <민족경제론>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좀 더 대중 속으로 파고들려고 하면 소설도 한 번 써보는 게 어떻겠수. 논리적으로 다가서면서 아울러 정서적으로 다가서는 방법 말이외다.” 
떡하니 이래 말을 했더니 박교수의 반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소설을 한 번 써봤으면 했었는데 아주 내 속을 정통으로 치는 구려. 하지만 소설이란 재주도 있어야 하고 또 사물을 볼 때 정서적으로 접근하는 끼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허 <민족경제론>의 겉만 보질 말고 그 바닥을 치는 물살을 보시라니까. 그냥 이야기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 
“정말 그런 것 같수?” 
우리들은 또다시 껄껄 웃었다. 

(술자리 막판에 드러난 내 누더기) 
하지만 그 술자리는 내 누더기로 하여 판이 깨갱깽 뒤집히고 말았다. 
띠루띠루 일어나 술값을 치르려고 먼지까지 털었는데도 낯모를 사람 두엇이 낑겨 들어 거퍼 마셔대 그랬는지 택도 없으니 어쩌는가 말이다. 
이를 본 박교수가 얼핏 돈을 내며 하는 말이 내 뒤통수를 치는 것이었다. 
“오늘 출판기념회는 자비 출판기념회였구먼. 더듬이 자비 출판기념회.” 

(타비 출판기념회) 
그로부터 얼마 뒤 나는 무슨 일로 또다시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끌려갔다가 나오고 나서는 허리 다리가 시원치 않기도 하고 또 숨이 가쁜 증세가 너무나 벅차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술도 못하고 담배도 못하고…, 어적이던 어느 날이다. 

거리에서 마주친 박교수가 그 시장골목 포장마차로 나를 끌고 가며 하는 말이었다. 
“얼마 전에는 자비 출판기념회를 했으니 오늘은 타비 출판기념회를 해야 하질 않겠소.” 하지만 딱 한잔이라는 말에 그만 쏠깃 이럭저럭 한참을 마셨는가 싶은데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고 땅은 꺼질듯 온 몸이 가랑닢처럼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나는 더는 견딜 수가 없어 일어났으면 하는데 박교수의 한마디에 그만 눈이 번쩍 떠지고 말았다. 

이왕 출판기념회가 다시 열렸으니 <민족경제론>을 읽은 사람의 평가를 한번 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어쩌는 수가 없어 억지로 말을 받았다. 
“<민족경제론> 그것은 박정희 군사독재가 강행하는 민족경제 해체의 거짓됨과 그 범죄성을 가름할 실천적 논리를 떳떳이 제시한 것 아니겠어요? 그것 하나만으로도 8.15해방 뒤의 분단 독재 억압을 청산할 최대 최고의 이론서일겁니다.” 
“아따 그렇게 말을 하시면 출판기념회의 객관적 평가가 아니라 날개도 없는 이 박현채를 공중에 띄우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그러질 말고 따끔한 한마디를 해달라”고 한다. 

나는 한참을 말없이 어둑어둑 해지는 거리의 노을처럼 기우는 몸을 추스르느라 어거지로라도 거퍼 마시는데 아글아글 들어왔다 게걸게걸 떠나가는 낯모를 술꾼들도 성가시고, 찬바람은 발가락을 디리 얼쿠고, 어서 일어나고만 싶었다. 그런데도 박교수는 한마디 해달라고 거퍼 잔을 돌린다. 
하는 수 있는가 입을 여는 수밖에 없었다. 

“박교수! <민족경제론>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 가지 점은 짚어낼 것 같습니다. 하나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인데 그것은 아직 준비가 덜돼 못 하신 것 같다는 점이요, 또 하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글을 써달라는 잡지사 편집취지의 한계와 군사독재의 탄압과 억압 때문에 뜻의 활자화에 제약이 있고 이로 말미암아 이참 <민족경제론>에서도 박교수의 기술적 절제도 있었을 것이란 점입니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터인데 아직 준비가 덜된 것 같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지금 박정희가 강행하는 조국근대화란 분단 극복의 물질적 기초인 자주 자립의 도태를 사그리 해체하여 미・일독점자본의 식민지 내지는 철저한 예속화로 내모는 민족 학살 과정이다. 이때 우리들이 말하는 참 자주성의 실체란 무엇인가. 

민족의 실체인 민중, 그것도 올바르게 깨우친 민중이 주도하는 참 해방 아닌가. 그렇다면 국제 독점자본주의의 체내에서 자주성 확보란 어느 만치 가능한 것인가. 자칫 잘못하면 국제 독점자본주의 즉 미・일 제국주의에 맞선다는 이름 밑에 국가 독점자본주의라는 또 다른 허무주의 속으로 빠져들 위험도 없지 않은데 이점에 대해서 앞으로 <민족경제론>은 보다 철저하게 창조적 또는 실천적으로 재탄생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서도 글을 써달라는 잡지사나 출판사의 한계에도 매이질 않고 으랏차차 나타난 <민족경제론>은 오늘의 학문적 수준으로 쳤을 때 군사독재가 강요된 뒤 입때까지 없었던 가장 빛나는 한발뛰기였다는 평가”라고 했더니 박교수가 눈을 크게 뜨며 묻는 것이었다. 

(그때 그 자리에 더듬이 새긴돌(시비)를 세우고 싶은 이 마음) 
“한발뛰기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한 춤꾼이 떵! 하는 한 소리에 발을 들 때 그는 발만 드는 것이 아니다. 춤꾼으로서 제 한 몸 제 온 목숨을 통째로 드는 것이요, 나아가 그 춤꾼의 발끝에 이 땅별 지구를 통째로 아니 이 독점자본주의 체제의 억압과 착취를 통째로 들었다 엎는 것이 곧 한발뛰기요, 그래서 진짜 춤꾼은 그 한발뛰기에 목숨을 건다는 거 아니요.” 
“야, 멋지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이렇게 한발을 뛰고 또 이렇게 한발을 뛰며 그 포장마차를 뒤흔들다가 어떻게 어떻게 집까지는 왔었는가 싶은데 깨어보니 어느 시커먼 지하실 붙박이 걸상에 꽁꽁 묶여있는 나를 보고 나는 물었다. 

“썅이로구(도대체) 여기가 어디 메요?” 
피멍투성이의 내 온 몸이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즐겨 찾는 곳 아니오.” 

얼마 뒤 그 지긋지긋한 지하실을 기어이 밟아대고 나와 쩔뚝쩔뚝 박교수와 몇 번 들렀던 그 포장마차를 다시 찾으니 그 더듬한 아주머니의 말이었다. 
“오늘 홀로 온 까닭을 알겠구려. 얼마 앞서 그 훤하게 잘 생기신 분이 돈 이천 원을 맡겨놓은 것이 있지요. 아저씨가 오면 좋아하시는 꼼장어 한 접시와 쐬주 한 병을 주라고.” 

그러니까 <민족경제론> 하나만 가지고도 벌써 세 번씩이나 얻어먹은 턱이건만 나는 단 한 잔도 못 샀으니 아, 덧없는 달구름(세월)이여, 왜 이리 아득해만 지는가. 바로 그 포장마차가 있던 그 자리에 박교수를 기리는 새긴돌(시비)이라도 하나 세웠으면 싶은데 어느새 밤이 깊었는가, 캉캄한 하늘에 대고 박교수를 불러본다. 
정말로 한발뛰기를 한 번 해야 하는 건데 아, 박현채 교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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