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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5

왕휘 수업의 텀페이퍼의 주제를 잠정적으로 정했는데, '박현채'이다. 일전 왕휘 선생과 사석에서 1980년대 한국 사회운동을 이야기하면서 권유를 받았던 것을 실천에 옮겨 보려는 것인데, 현재 조건이 전면적으로 작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인지라 현재 접근 가능한 자료들 중에서 주제를 좁혀 한 두 가지 논점을 잡아 연구노트 식의 글을 써보고자 한다. 박현채 전집이 출간된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상해에 이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나중에 작업을 확장하면서 불가결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다.

 

사실 근래에 내 주변에는 백낙청 선생과 민족문학론이 진광흥 선생이 주도하는 일군의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자주 회자되는데, 나는 이에 대해 다른 시좌를 제공해주고자 하는 조금 작지 않은 목적도 가지고 있다. 일전에 "대만사회연구계간"이 특집으로 관련 논의로 도배한 적이 있고, Inter-Asia Cultural Studies 지난 겨울 호 역시 동일하게 도배를 한 바 있다. 나의 작업은 백낙청 선생의 논의에 대한 직접적 비판 보다는 오히려 그와 긴장을 형성할 수 있는 박현채 선생의 논의를 불러내 그 갈등적 상황을 재현해 보려는 목적도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민족문학론과 민족경제론의 대비와 갈등이 어떤 의미에서 아주 고전적이면서도 일반적인 의미를 가져, 현재 우리의 논의, 정치(정치적인 것)와 역사에 대한 논의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까지도 중요한 참조점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여기에서 정치적인 것(또는 문학예술적인 것)을 사회과학에서 어떻게 전유할 것인지의 문제도 논의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정치와 역사, 변증법과 유물론 등의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논의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한다. 내가 과문하고 이해가 천박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의 80년대의 이론과 운동 안에 이미 그 후에 남한에서 유행되었던 아주 많은 서구/유럽/프랑스 사조들의 문제의식이 충분히 담겨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더욱 살아 있는 언어로 생생한 역사 상황을 분석하고 묘사하고, 또 그 안에 참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주변화되고, 90년대의 대전환이 벌어진 것은 참 아쉽다. 정말 무능했던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제 인터넷에서 접근 가능한 박현채 선생 관련 자료 인쇄를 마쳤다. 인쇄비가 싼 중국에서 150원RMB(약 3만원)이 나왔다. 우선은 번역에 집중하고, 종종 한 두편씩 속독을 하고 주말 시간을이용해 다시 꺼내어 전체적으로 통독을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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