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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주민투표

지금 열 시 조금 넘었는데, 투표율은 아주 낮지도, 또 아주 높지도 않아서 그렇게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형국인 듯 하다. 33.3%가 조금 넘을 것 같다는 추측도 나온다. 조직적으로 오세훈 지지층이 결집하는 것 같은데, 중산층 이상의 계층의 결집이 더 쉬울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든다. 정치적 의사 표현에 적극적이고 그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싶다.

 

 '무상급식'의 논란의 중심에 이른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라는 두 대립적 프레임이 있는데, '선별적 복지'는 기본적으로 사후적 복지이고, 복지 수요를 만들어내는 시스템 자체에는 손을 대지 않고 복지가 필요한 곳에 '맞춤형'으로 돈을 대주겠다는 것이다. 한편, '보편적 복지'는 내가 보기에 어떤 '보편적 권리'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이 권리를 공동체가 인정하고 국가를 통해 보장하게 되면서, 그 권리 보장에 관한 공적 서비스의 체계가 복지 서비스로 만들어 지는 듯 하다. 그런데 권리 자체는 늘 해석의 대상이기에 논쟁을 불러 온다. 그래서 무상급식의 경우도 이것이 권리 일 수 있는지가 부분적으로 논란이 된 것 같다.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늘 가장 절박하다고 직접 느꼈던 보편적 복지는 교육과 의료 및 주거 였다. 현재 현대 세계 자본주의가 기울어 가는 상황에서 이러한 영역에서 보편적 복지를 보장하는 것은 거의 '사회주의'적 변혁을 하지 않고는 어렵지 않은가 싶다. 그 때문에 나는 줄곧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적 변혁에 매력을 느껴왔을 것이다. 그만큼 '보편적 복지'의 주장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제기된 '보편적 복지'는 사실 뜻 밖이기도 하면서, 또 의심스러운 것이다. 물론 '망국적 포퓰리즘'으로 비난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요소가 없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아마 개혁과 변혁의 변증법을 누가 주도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 같다.

 

몇일 전 kbs 토론에서 이상수 전 노동부장관이 투표 반대 논자로 참여했는데, 그를 마주하는 나의 마음이 그다지 편치 않았다. 나에게 그는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반대했던, 민주노동당이 반대했던 비정규직 특별법을 한나라당과 함께 날치기 통과시키고 환하게 웃으며 케익을 자르던 자로 기억되어 있다. '무상급식' 토론에서 그가 '보편적 복지'를 지지하는 것 처럼 등장했지만, 바로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는 자들과 함께 '비정규직 양산법'을 통과시킨 자에게 '보편적 복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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