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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적 권리담론

일전에 대만의 오랜 친구 가운데 하나인 대만 아방가르드 소극장의 관장에게 "신식민/분단체제와 '민주수업'의 불가능성"이라는 글을 보내준 바 있었다. 한국 쪽과의 합작 공연 기획과 관련해서 최근 상황에 대한 내 의견을 구해 왔던 것이다. 그 친구가 작품에 넣고자 한 단락의 한국어 번역을 요청해 왔다. 종말론적 권리담론을 비판하는 대목이다. 이 글을 읽어본 사람들 가운데 이 대목에 특별히 주목한 친구는 처음인 듯 싶다.

 

역사와 지리의 다원성을 소거해서 보편성을 얻은 주체는 인류와 사회로부터 추상된 권리의 담당자로 표상된다. 현대적인 보편주의의 틀에서 이러한 주체가 구성한 사회, 나아가 이러한 사회가 구성한 세계는 규범적으로 개체 사이의 차이와 사회/민족 사이의 차이를 소거한다. 이와 같은 인식론/존재론적 구도에서 세계사를 구성하는 운동적 에너지를 파악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보편의 상 아래에서 제출된 진보의 방향은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무차별화의 완성이었다. 그리고 무차별화의 완성은 곧 횡적 시간성의 우위 하에서 역사지리적 차이가 소거된 세계의 종말이다. 물론 이와 같은 세계 종말은 담론적 구성물에 불과하다. 보다 장구한 맥락에서 보면 현실 역사의 전개는 여전히 다원성에 근거하여 자신의 논리를 관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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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수업의 불가능성

주체적 역사 복원의 계기인가? 또는 역사 단절의 공고화인가? 두 갈래로 큰 방향을 나눠 본다면 2016년 겨울 한국의 흐름은 시작부터 후자로 정향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민주 수업'이 될 가능성 보다는 '민주 수업'을 불가능하게 하는 담론적 선긋기가 너무도 명확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러한 '규모' 자체가 불가능했었을 것이다.

 

광장이 '민주 수업'의 장소가 되려면 적어도 1945년과 1950년을 우리 사상운동 담론 안에 다시 들여와야 한다. 장기적인 제약조건이었던 외재적 억압의 효과를 무시할 수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를 핑계로 우리 내부의 단절을 합리화할 수 없다는 점이고, 이런 맥락에서 '민주'를 둘러싼 지식담당자들의 위선, 오만, 태만, 관성, 자기합리화는 '민주 수업'의 불가능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인이 된다.

 

결국 1987년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갔고, 오히려 퇴보했다는 짐작이 이제 확신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1987년을 낳았던 1960년대의 여전한 구속력 또한 확인된다. '대중'적 분노를 낳는 모순과 대립은 1960년대의 구속력 범위를 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상'적이다. 사례들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이번 시위에서 역사교과서는 이러한 가상적 모순의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다. 한편 농민의 트랙터 상경시위는 매우 드문 예외로 간주될 수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및 관련 간첩사건은 예외가 될 수도 있지만,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정치의 주체가 '살아 있는 자들'만으로 제한될 때, 살아 있는 자들은 오히려 진정한 정치의 주체가 되기 어렵다. 그들은 단지 살아 있는 자들이 아니라 '살아 남은 자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살아 남은 자들'은 그들을 살리기 위해 죽은 이들을 기억하지 못하며, 그들이 '살아 남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지금 그들은 그저 시혜적 '민주'가 호명한 역사 없는 '추상'적 주체일 뿐이다. 

 

광장에서 사람이 모여도 민주수업이 되지 못하는 이 상황은 하나의 부정적 추세를 갖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듯 하다. 마치 계속 마셔도 목이 마른 음료수와 같은 것이다. 또는 통증의 원인은 밝혀지거나 제거되지 않은채, 반복해서 통증의 완화를 위한 진통제를 먹고 있고, 점점 더 많이 먹어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사람들의 호흡은 점점 짧아진다. 그리고 '역사'의 장역이 갖는 공간 또한 무화된다.

 

이 악순환을 끊고 역사를 다시 만날 계기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어르신이 안 계시기 때문이다. 조정로의 소설 민주수업의 안 씨 어르신 같은 분들을 찾아가 뵈어야 한다. 살아 계시지 않아도 아직 우리 안에 책으로 글로 남아 있다.

 

지금 상황에서 '역사'를 부여잡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아마도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을 가지고, 그로부터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두려울 것이 없다.

 

역사는 곧 신앙을 준다. 신앙은 확신을 낳고, 확신은 용기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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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엘리트주의

이른바 ‘식자층’ 사이에서 ‘정치적 올바름’의 대명사의 권위를 갖는 것이 ‘여성주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좀더 세련된 장소에서는 ‘성소수자’등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 등등도 ‘정치적 올바름’의 일부가 된다.

 

2016년 11월 남한에서 벌어진 몇 차례의 집회에서도 약간의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여성주의는 과거에는 여성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여권주의’라고 번역되었는데, 지금은 ‘여성주의’로 좀더 급진적으로 ‘주체화’된 것 같다. 물론 나는 이러한 급진화가 ‘통합’적 인식과는 멀어진 것이 현실이라고 본다. 대부분 정체성에 근거한 이론의 급진화의 귀결이 그렇다. 이론과 운동의 일치라는 귀결이다. 특히 당사자의 이론가/운동가 겸직이라는 특성이 강한 정체성 지향적 운동에서 이론은 기본적으로 보편이론으로 존재하며, 대중은 보편이론의 소비자로서 보편주체로 존재한다. 소수자 운동이라고 불리지만, 존재양식은 매우 엘리트주의-포퓰리즘적이다.

 

원인은 여기에 ‘역사’의 통합적 심급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수자들은 소수자로 규정되는 정체성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완정한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그 정체성을 분리해내서 특수화하는 ‘이론’을 직접적으로 ‘운동’으로 전환시킬 때, 비로소 엘리트주의-포퓰리즘적 소수자운동이 형성되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소수자를 위하는 것 같지만, 이러한 이론주의는 역사를 가진 사람을 역사적 맥락으로 부터 분리시켜 추상적 인간, 즉 죽은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것이 운동으로 전화되면 곧 폭력이 될 수 있다.

 

인간의 다원적 역사가 일원화된 데는 ‘현대성’의 보편주의, 그것의 정치적 실천으로서의 식민주의와 국민주의의 작용이 핵심적이었다. 소수자가 겪는 모순 또한 현대성의 폭력에서 기인하는데, 이것의 극복의 전망은 ‘현대성’ 자체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역사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요며칠 여성주의도 그렇고, 소수자운동도 그렇고…. 모두 ‘역사화’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엘리트주의-포퓰리즘적 원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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