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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과 무기의 비판

노신은 1928년 3월 12일 《语丝》第四卷第十一期〈醉眼中的朦朧〉에서 마르크스의 '무기의 비판'을 원용하여 예술을 '비판'에 위치시킨 바 있다.

 

내가 근래에 주목했던 박현채 선생은 「문학과 경제—보다 근원적인 상호관계에 대한 인식」(1984)이라는 글에서 경제학과 문학의 관계 및 위상을 논의한다. 경제학은 우연성(즉 '역사')를 재료로 하여 '필연성'(즉 구조와 법칙)을 조명해주며, 인간의 해방에 대한 이론적(즉 '관념적'/'외부적') 해결이 된다. 문학은 일반적인 우연과 달리, 우연을 통해 필연성을 표현해 준고, 인간의 내부로부터의 실천을 통한 인간 해방(주체화/정치화)을 가능하게 해 준다. 다시 말해서 박현채 선생은 문학을 우연의 장 속에서 필연과 일정한 연관을 갖는 우연으로 본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입장은 문학을 '비판'이라는 실천에 위치시킨다는 점에서 노신과 맞닿아 있다. 이는 당시 문학이 곧 역사 인식을 직접적으로 제공한다고 보았던 백낙청 선생과 같은 경험주의적 입장(나아가 역사주의적 입장)과 달리 이론과 역사를 구분하는 관점으로 제시된 것이었다.

 

[여기에서 예술 또는 미학에 대한 관심, 또는 모종의 유물론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같은 최근의 시도들이 함께 논의될 수 있지 않을까? 예술/미학/문학적 실천은 '무기의 예술'의 효과로서 비판적/유물론적인 것이지, 예술/미학/문학 자체가 본래 비판적 인식('무기')을 생산하는 장소는 아닌 것 같다. 따라서 예술 자체에서 정치화의 가능성을 구하는 것은 비판과 무기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비판을 통해 무기를 얻고자 하는 시도로서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노신은 당시 상황 속에서 '무기의 예술'(대중 속에서 비판의 헤게모니, 즉 국민당이 갖는 헤게모니?)이 저 쪽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술의 무기'(이론)를 추구할 수 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그는 혁명적 예술가는 '무기의 예술'이라는 대중의 주체화(즉, '정치화')를 위해서 프롤레타리아 진영 안에서 예술의 무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노신은 '藤野先生'이라는 글에서 일본에서의 선생님을 회고하며, 선생님이 자신을 열심으로 보살펴준 것은 작게 보면 '중국'을 위한 것이지만, 크게 보면 '학술'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노신은 줄곧 이론과 실재를 구분하여 이해하였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런 맥락에서 보면 죽내호(다케우치 요시미)의 노신 해석이나, 그를 이어 받아 노신의 '挣扎'라는 존재론적 고뇌를 특권화하는 최근의 유행은 조금 편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노신이 니체주의적인 면이 없지는 않으나, 나는 노신의 헤겔적이고 마르크스적인 측면을 평가하는 것이 더 의미있다고 본다. 그렇게 해야 노신의 실천이 단순히 개인적 고뇌의 표현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 전체의 맥락에서 온전히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은 나중에 왕휘 선생과 토론이 필요해 보인다.]

 

한편, 문화연구 안에 문화를 문학과 분리하여 '현상'이자 '대상'으로 간주하면서 장르 분석의 대상으로 보는 일정한 경향이 존재하는 것 같은데, 이러한 문화 관념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문화 관념에서 문화현상에 대한 분석과 대중의 문화적 실천이 유리되고, 문화현상에 대한 분석은 늘 결과로서의 대중문화에 부수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상황은 생산이라는 원인 보다 소비/분배라는 결과에 관심을 갖는 것과도 연관되는 듯 하다. 여기에서 문화(문학)를 필연성에 근거한 비판으로서 대중적/일상적 수위에서 실천의 장소로 보는 것과 문화를 현상으로서 분석의 대상으로 보는 것의 차이를 제기할 수 있을 것 같고, 후자에 지식인의 지적 자기만족으로 빠지면서 '대중과 유리되는 대중문화연구'로 전락하는 위험성도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나는 여기에서 오늘날 이른바 '대중문화평론가'와 노신을 대비시킬 필요가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어떤 의미에서 노신은 문학으로 무기의 비판을 감행한 오늘날 새롭게 계승해야 할 진짜 문화평론가가 아니었을까?

 

문학, 문예, 예술, 문화 등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규정이 불가피할 것 같다. 이것도 올 하반기 과제로 정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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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5

중국에서 산 노트북은 윈도우 7이 깔려 있었는데, 정품이 아니었다. 난 이런 것도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고 컴퓨터를 살 만큼 컴맹에 가까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결국 바이러스로 몇 가지 기능이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고, 대만으로 돌아와서 나는 집 근처에 있넌 아수스 서비스 센터로 찾아갔는데, 역시 윈도우의 문제이기 때문에 아수스가 해결할 부분은 아니었다. 그래서 윈도우를 새로 깔기 위해서 주변에 알아본 바, 학교에서 보급하는 xp가 있었다. 그걸 깔았는데, 다운 그레이드하면서 문제가 좀 생겼다. 결국 인터넷에서 알아보니 윈도우 7 이미지를 다운로드 받고 이를 구워서 부팅을 해서 다시 윈도우 7을 설치하는 방법이 있었다. 공DVD를 사 본 적도 없고, 굽기는 더욱 안 해 봤고, 부팅하는 법도 잘 몰라서, 몸이 좀 고생을 하다가 결국 어제 저녁에 인터넷을 제외하고는 설치를 마쳤다. 그런데, 오늘 집에서 아무리 인터넷을 접속하려고 해도 안 되고, 계속 '651 오류'가 뜨는 것이다. 이 문제 역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해결하고자 했는데, 한글로는 검색되는게 한계가 있었고, 영어로 검색해보니 윈도우 7 과 관련하여 이 문제가 많이 보고 되고 있음을 알았고, 몇 가지 참고해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혼자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뿌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 아무도 내가 어린 시절 수학과 과학에 재능을 가졌다고 하면 믿을 것 같지 않지만, 정말 나는 어린 시절 과학에 재능이 있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컴퓨터를 사줄 수 없었던 가정 형편 때문에 그 쪽 흥미를 잃어 문과로 전향했지만...

 

암튼, 이리하여 내일부터는 다시 번역작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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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만

근래 몇 주 사이 아주 긴 거리를 이동했더니 피곤하기도 하고 조금 늙은 것 같다는 생각이 대만에 돌아온 오늘 저녁 들었다. 당분간은 다시 여기에 자리를 잘 잡고, 계획된 일들과 계획할 일들을 잘 해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대만은 역시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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