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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

앞에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군. 내게 있어 천진은 8년 전 학부 3학년 때, 처음 하루 넘는 시간을 배를 타고 밟았던 중국 땅이었다. 4년 전 신강 위구르 자치구를 여행하기 위해 중국에 갈 때, 인천에서 또 배를 타고 천진 항에 잠시 들렸지만 곧장 북경 가는 차를 타서 천진은 둘러보지 못 했다. 시간이 다시 4년이 흘러 정말 8년 만에 진짜 천진을 가게 되었다.

 

북경에 있는 '하루' 군을 만나러 가려다가, 아예 '하루' 군을 천진으로 불러내 보기로 했다. 사실 내가 처음 천진으로 갔었던 데는 '하루'군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값 싸게 공부하는 방법을 하루 군이 잘 알고 있기도 했고... 그런데, '하루'군과 함께 천진에 있었던 적은 없다. 내가 가기 전에 이미 녀석은 돌아왔으니까.

 

천진 가는 배를 타기 전날 이문동에서 '하루' 군을 포함하여 여럿과 밤새 술을 먹었다. 그래도 하루 군은 아침 일찍 일어나 인천까지 나를 배웅을 해 줬다. 지하철에서 토할 것 같은 걸 참고 간신히 인천에 도착했고. 하루 군은 배에서 먹으라고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주기도 했던 것 같다.

 

천진에 도착한 후, 나는 나름 목숨 걸고 겁 없이 중국어 공부를 했다. 수업 들을 돈이 부족해서 과외를 더 많이 받고 친구를 사귀곤 했다. 지금은 아무도 연락이 안 되지만 그 땐 참 많은 사람을 겁 없이 만났다. 그 땐 늘 마음 속에 응어리가 있었다. 그래서 그 답답함 때문에 미친 듯이 술도 먹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때 하루 군의 소개로 만났던 선배들과 술 먹다가 '하루' 군을 찾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옆에 있었던 사람을 찾듯이 선배에게 '하루' 어디 갔냐고 되물었던 게 기억난다. 그 식당에 가 보고 싶다. 그렇지만 아마 없어졌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구글 지도에서 천진 시내를 찾아 보았는데, 기억 나는 곳이 참 몇 군데 없다. 머릿 속에는 여러 장소들이 선명하게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그 장소가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다. 가서 땅을 직접 밟아 보면 좀 다를까.

 

암튼 이번 짧은 방문 기간에 천진과 북경을 가게 된 것은 북경/상해 고속철도가 마침 6/30 개통되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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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놀이터 쉼 '엄마, 안녕'

전태일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아마 어머니였겠지요. 그렇지만 마음 속 이야기를 얼마나 털어놓을 수 있었을까요? 그가 분신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 날 아침, 그는 세 번 씩이나 어머니에게 현장에 그의 항의행동을 보러 오라고 부탁합니다. 나는 관련자료에서 이러한 서술을 읽고 전태일이 어떻게 자신의 어머니 보고 이 잔혹한 화면을 보러 오라는 모진 마음을 먹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어머니가 현장에 있어야만 더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몸을 불 사를 수 있었던 것일까요? 나는 이 문제를 연출 연습과정으로 가져가 조금씩 발전시켰습니다.

 

한걸음 씩  전태일의 내적 영혼 세계로 들어가면서, 뜻 밖에 나는 그의 마음 속 고통을 느낄 수 있었고, 이는 그가 반드시 혼자 자신을 불사르는 육신의 제전(祭典)으로 가야했을 때, 이 숙명적 고독감이 사람을 더욱 모질게 만든다는 데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때, 나는 예수가 수난 직전 무릅꿇고 기도하며, 하느님께 가능하다면 이 잔을 그에게서 거두어 달라고 기원했던 것(마태 26, 39)이 일종의 공포 앞에서의 연약함이었고, 생명 속에서 이러한 연약함이 출현할 때, 그는 조금도 두려움 없이 대면하며, 예수처럼 하느님에게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당신의 뜻에 따르소서’라고 말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연약함 속의 실재적으로 담겨 있는 더욱 큰 용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이로 인해 사람의 연약함은 사실 죽음을 회귀로 받아 들이는 신성한 용기를 발산하기도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왕묵림王墨林 의 '연출의 변' 에서)

 

지난 가을에 이어 대만 공연을 마치고 한국에서 다시 공연을 한다고 한다. 방금 '연출의 변' 막 받아서 번역해 보내줬다. 예수와 전태일... 성경이 조금 궁금해졌다. 죽음은 회귀이다. 돌아가는 것이다. 가진 자들은 가진 것을 잃을까 죽음이 두렵겠지만,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자에게 죽음은 두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가끔 죽음을 두려워 하는 나를 보며 도대체 나는 무엇을 가졌기에 죽음이 두려운가 생각해 본다.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암튼 안타깝게도 정작 나는 이 연극을 볼 기회가 줄곧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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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4

마음 속으로는 조금씩 상해를 떠날 준비를 한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짧지도 않았던 세 달의 시간이었는데, 이제 2주 좀 넘게 남았다. 번역도 계획 만큼은 못했어도, 2/3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나름 선방했다. 물론 초역이라 앞으로 많이 손을 봐야겠지. 한편, 작은 논문도 하나 완성 중인데, 이는 뜻 밖의 수확이다. 물론 조심스럽다. 상해에서 만난 여러 중국인들 덕분에 일정한 이해와 편견을 가지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나와 비슷한 영역의 사람과 상대적으로 매우 이질적 영역의 사람들과 대화하며 이를 대조해보는 것 역시 흥미로운 일이었다.

 

근래에 더욱 느끼는 것이 공부하는 일이 외롭기도 하고, 외로워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공부라는게 둥글게 둥글게 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여러 관계를 거치고 그 속에서 작업이 진행되더라도 궁극적으로 나 자신의 주체적 능동적 판단이 있어야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유성이나 독자성을 상호 인정하면서도 협력하는 자세가 중요할텐데, 아직까지는 차이를 드러내는 단계에 머물러 있고 그럴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계속 좌충우돌이 반복되는 상황이고, 맘에 드는 것은 별로 없는 상황이다. 아직 젊은건가. 이 고민을 이론적으로 정리해 볼 계획을 세운지도 좀 되었다. 번역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착수해보자. 새로운 것들을 더 찾아보기 보다는 기존에 접했던 것을 좀 더 심화하고 초벌적인 나 개인적 독자적 문제의식과 이론 구도에 집어 넣어 그 내부의 긴장들과 한계들을 드러내 보자. 이렇게 해서 어떤 새로운 '문화연구'의 방향을 가설적으로 제시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것이 자격고사의 첫 과목의 주제이자 과제가 될 것이다. 경향으로 갖고 있는 투박한 것들을 이론적으로 표현하고 설명하면서 동시에 이론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작업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내년 초 쯤 되어야 어느정도 정리될 듯 하고, 다시 반 년을 준비해서 세부주제에 대한 자격고사를 거치면 2012년 말쯤 될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박사 논문 쓰기를 시작하면 2014년 초는 되어야 마무리가 될 듯 한데, 그래도 이렇게만 된다면 마흔 이전에 끝날 것 같으니, 2007년 처음 대만에 올 때의 계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그런 다음이 더 문제이기는 하다. 갈수록 한국에 바로 돌아가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을 하게 된다. 나와서 공부하는 동안은 장학금 덕분에 적어도 나 개인의 먹고 사는 문제는 고민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이 기간은 사실 예외적인 시간임을 잊은 적은 거의 없다. ... 그런데 또 가끔은 문득... 난 즐겁게 살고 있나? 하고 묻게 된다. 행복하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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