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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0

진광흥(陳光興 '천꽝싱') 선생의 책 '제국의 눈'(한글판은 창비에서 출판, 중국어 판 제목은 『去帝國: 亞洲做為方法』,영문판 제목은 "Asia as Method: Toward Deimperialization"(Durham and London:
Duke University Press))에 '탈식민'에 대한 이론적인 검토와 대안적 접근법을 제시하는 장(비판적 혼합 및 이른바 '역사-지리-유물론')이 있다. 최근 이 글을 오랜만에 다시 읽어 보았는데, 거기서 제기하는 대만의 '독립노선'의 출현에 대한 비판은 현재로서 가장 훌륭한 비판으로 보인다. 내가 처음 이 연구소에 와서 박사 공부를 하게 된 것도 진광흥 선생의 이 측면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광흥 선생은 적어도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적 보편성의 전제 하에 개별적 특수성의 해명을 추구하는 마르크스주의적 탈식민주의자(de-colonialist)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아시아'라는 방법이 구체적 실천의 장 속에서 어떤 효과를 내고 있는지는 논쟁적이다.

 

적어도 대만/중국의 '분단' 또는 '양안'의 이데올로기적 구조와 상호구성의 측면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해서는 진광흥 선생의 논의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진광흥 선생을 따라 역사로의 우회를 하는 것도 생각 중인데, 바로 '夏潮'잡지에 대한 연구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여기에서 똑같이 역사로의 회귀를 시도하면서도, 진광흥 선생의 소설가 진영진 연구와 방법적으로 차이가 드러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여기에는 '문학'의 지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의 문제, 나아가 문화연구 또는 문화비평의 방법의 문제가 있다. 한편, 대만의 분단 구조를 해명하는데 있어서, 대만 측면에서 볼 때, 본래의 '좌익'적통을 계승하는 세력이 독립담론의 출현을 대면하면서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통일파로 전락하면서, '통/독'이라는 이원 구조에 흡수되었는가라는 문제가 중요한 것 같다.

 

이번 주말 2년 동안의 신죽 생활을 마치고 대북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약간 옥탑 같은 5층에 위치한 집인데, 작은 정원이 있고, 정원에는 물고기를 키울 수 있는 어항이 만들어져 있다. 고기를 구워야겠다는 생각도 굴뚝 같다.이렇게 다시 한 사이클이 마감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신죽의 생활이 완전히 끊기는 것은 아니다. 박사논문이 남아 있기 때문이고, 지도교수를 정하고 자격고사를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준비를 위해서 연구소에서 마지막으로 '개별연구' 수업을 한번 더 신청하려고 한다. 이 수업은 교수와 1:1로 한 학기 동안 일정한 커리큘럼을 짜서 토론 수업을 진행하는 것인데, 1학점 씩 세 학기 동안 진행하게 되어 있다. 보통 2주에 한번씩 교수와 만나서 3시간 정도 씩 토론을 진행한다. 이 수업이 좋은 점은 한 학기 동안 이 정도로 밀착된 수업을 진행해 보면 교수의 입장을 아주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이 좀 적극적이면 교수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암튼, 이 수업 학점을 다 이수했지만, 다음 학기 한 학기 더 신청해서 진광흥 선생과 토론을 진행해 볼 계획이다. 진 교수와는 입학 초기에 지나치게 개방적인 토론으로 인한 몇 차례 언쟁으로 인해 거리감이 생겼지만, 이번에는 이성적 토론으로 거리를 좁혀 볼 생각을 한다. 참고로 진광흥이 백낙청 등에게서 가져와 원용하는 '분단체제' 및 대만에서의 토론에 대해서 한번 정리할 계획을 갖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한반도 및 남한 사회에서 '분단체제' 개념 자체의 여러 타자들 및 그 관계를 규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광흥 선생이 나름대로의 틀 안에 가져와 의미를 부여한 '분단체제'는 이미 백낙청의 그것과는 매우 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진광흥 선생은 백낙청 선생의 '분단체제'가 왜 어떻게 '우익'적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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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과 '창비' 비판

참세상과 프레시안 등에서 김기원 교수의 창비주간논평과 관련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매우 중요하고 고마운 논쟁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논쟁은 한진중공업 사태를 통해 1997년 경제위기와 그 이후의 역사과정 자체를 성찰할 수 있는 대중적 담론의 지평을 열어준다는 의미에서 아주 중요하다.

이러한 논쟁의 계기를 '창비주간논평'이 제공해 준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논쟁은 개인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창비주간논평 자체가 창비 이름을 건 '사설'과 같은 것이고, 대체로 일정한 경향성을 확보하고 담론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창비의 입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창비의 탈계급적 실용주의적 국가주의는 이미 오래된 것 같은데, 이 참에 그 계급적 본질도 만천하에 확실히 드러났으면 한다. 괜히 '변혁적 중도' 등의 수식어 달고 다니면서 오해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논쟁은 신자유주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데, 사실 이른바 '참여당' 문제 및 대통합을 주도적으로 대면하기 위해서도 확장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그리고 진보적 미디어 가운데 이 논쟁이나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거나 그것이 다뤄지지 않는 미디어들도 있는 듯 한데, 그들이 한진중공업 사태에 접근하는 일정한 목적성과 편향이 내재되어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는 정당운동과 그 지향을 갖는 미디어가 사회운동에 얼마나 맹목적일 수 있는지 드러내는 징후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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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3

박사논문 제목과 목차를 대강 작성해두었다. 저 밑에 '비공개'로 해두었다. 번역 하던 중에 문득 전체 틀이 일목요연해지는 느낌이 들어 구성을 잡아 보았는데, 제법 짜임새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목은 일단 "양안 당대 비판 사상 비교 연구: '민족민중론'의 시각에서"라고 잡아 보았다. 범위가 넓어 보이지만, 주로 다룰 대상은 일정한 역사를 갖는 대만의 마르크스주의 잡지 夏潮의 반공주의 비판과 중국의 '사회주의 민주' 또는 '노신 좌익'(전리군)의 국가주의 비판이 될 것 같다. 다소간 무단 전제된 측면이 있는데, 대만과 중국에서 각각 반공주의 비판과 국가주의 비판이 결정적이라는 생각을 해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참조적 시좌로서 박현채 선생의 '민족민중론'이 들어온다. 물론 맨 처음에는'대만'의 탈식민주의적 논의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 '민족민중론'이 도입되는 배경을 설명할 것이다.

 

번역이 좀 늦어지지만, 그래도 논문 구상이 뚜렸해지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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