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014/06/15

1. 황해문화 83호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황해문화> 83호(여름호)를 받아 보았다. 전에 대강 훑어보고 지나쳤던 왕휘汪暉 선생님의 글이 백원담 선생님의 번역으로 실렸다. 나는 이 글에 이어지는 손가孫歌 선생님의 강연을 녹취하여 확인 및 번역했고, 특별기고로 실린 전리군錢理群 선생님의 서평을 번역하기도 했다. 이 서평은 <인간사상>에도 실린바 있고, 백승욱 선생의 <중국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의 중문판 대서로 수록되기도 했다.

 

"항미원조전쟁'에 대한 왕휘 선생의 글이 번역되어 소개된 데는 그 나름의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왕 선생님의 글의 입장이나 견해는 일정하게 중국 내부의 주류적 시각의 일부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이 유통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실마리나 돌파구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중국 '신좌파'의 모택동주의적 시각이 앞으로 동아시아에 어떻게 적용될 지를 초보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샘플로도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일전에 앞의 포스팅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왕 선생의 시각에는 '식민'에 대한 사고가 전무하다. 사실 '식민'에 대한 사고는 동아시아에서 '국제주의'의 진정성과 현실성을 가늠하는 주요한 잣대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치명적인 결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항미원조' 전쟁으로 중국적 시각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면서도, 그것이 '원조援朝'라고 할 때 주어지는 '국제성'을 배제하고 중국적 인민전쟁의 '국내성'의 맥락에서 '조선전쟁'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은 특수주의의 위험이 있고, 나아가 그러한 특수주의는 국가주의에 포섭되기 쉽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비록 그것이 '모택동주의'로 '등소평주의'를 비판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왕 선생님의 글에는 '지원'의 대상인 '조선'은 사실상 괄호쳐져 있다. 다시 말해서 중국 혁명의 인민전쟁으로서의 특징이었던 '근거지' 전략이 '조선전쟁'에 왜 적용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분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당시 김일성과 모택동이 대표하는 일정한 좌익 노선의 공통적인 판단이었음에서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게다가 모택동이 항일투쟁 과정 속에서 식민지배를 받은 '동북'지역을 접근하면서 보여준 신중함이 조선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사실상 생략되어 있는데, 이는 적어도 지금의 시점에서는 엄격하게 재검토되어야 할 지점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는 홍콩가 대만의 문제와도 직결되지 않는가.

 

이러한 글에 대해 북조선의 지식인은 어떤 입장인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왕 선생님이 저렇게 말할 수 있는데는, 사실상 이 담론 지형 내부에 북조선이 부재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사실상 중국이 북조선을 대리하는 어떤 인식적 구도를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지지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반성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물론 현실적 곤란이 문제가 된다...

 

 

2. 역사-지식-윤리, 그리고 사랑

 

진영진陳映真의 작품을 두 번째 읽으면서 나의 인식 구도에 결국 '사랑'이 추가 되었다. 그렇다. '역사' 없이 '지식'은 올바르게 존재하지 못한다. 그러한 지식의 매개 없이 대중은 올바로 서지 못하고, 폭력의 주체이자 객체로 전락한다. 그런데 인간은 사실 더욱 중요하게는 '사랑'하는 존재이다. 바로 '역사'가 단절되고 왜곡되면서 '지식'이 뿌리내리지 못하는데, 그 뿐만 아니라 그런 인간들은 '사랑'하는 법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위선적 사랑을 진정한 사랑으로 착각하고, 폭력을 행사하면서 또는 폭력을 당하면서도 그것이 폭력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렇게 죽어간다.

 

그런데 사람은 태생적으로 본능적으로 '사랑'을 하고 또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일정한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통제되는 기제가 문제가 된다. 여기에 바로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의 문제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적 수준은 보편주의적 폭력성과 부족주의(가족주의)적 폭력성에 이중적으로 저항적인 '사랑'의 공동체를 지향한다. 

 

진영진은 그 죽어간 사람들을 다시 살려낸다. 우리 앞에 보여준다. 우리가 역사를 감당한다는 것은 바로 폭력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의 상처를 과거가 아닌 현실의 문제로 전화하여 미래를 열어제끼는 것을 말한다. 진영진은 그 역할을 자신의 문학의 사명으로 삼아 일관되게 실천했다. 

 

 

3. 조희연 교육감

 

첫 번째 번역서의 역자 후기에 나는 조희연 선생님에게 감사를 표하며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를 처음 가르쳐주신 분으로 쓴 바 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내가 인격적으로 그 가르침에 값하는 연구자가 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이 앞선다.

 

암튼 조희연 선생님이 서울시 교육감이 되었다는 소식에 기쁜 마음과 아쉬운 마음이 교차한다. 조희연 선생은 동아시아 지식인운동과 남한의 사회과학의 혁신에 없어서는 안 될 조직자이자 연구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세계적 전환의 시대에 사람을 세워내는(立人) 교육의 혁신의 물꼬가 트이기를 기대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잠깐 쉬고...

쉬는 시간을 누릴만큼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 번 한계지점에 다다른 이후 정리의 필요성을 계속 느껴왔던 터다. 대강 뽑아놓은 제목은 "뿌리의 상실과 사랑의 (불)가능성"이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하게 보고 다룰만한 것이 없다. 내가 가진 자산이 없어서 그렇다. 그렇지만 몇 가지 발견이 실마리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군복무 이전의 초기 작품의 중요성이다. 대체적으로 그 시기에 초석을 놓은 셈이다. 특히 진영진 말마따나 '노신의 영향은 운명적'이었다. 그런데 이를 노신과 연결지어 분석한 글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역사의 왜곡된 전개에 다른 주체성의 왜곡과 부재는 진정한 사랑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주체들의 비극적 연애로 표현된다. 남성은 사랑에의 무지와 사랑 능력의 부재가 주요한 결함으로 표현되고, 여성은 안식처를 찾아 지속적으로 표류하는 붕뜬 주체로 표현된다. 물론 작자에게 남성은 비판의 대상이되고, 여성은 풍자의 대상이 되는 듯 싶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도 희망은 비극적 사랑으로 제시된다. <장군족>은 이번에도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진영진의 작품을 두 번째 읽고, 이번에는 정독을 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진영진이 하나의 중요한 거울이 되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한의 역사와 현실을 바라보는 하나의 거울로서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들이다. 기회가 된다면 진영진 문학 전집의 한국어판도 기획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여섯 권의 소설집이니 그리 오래 걸리는 작업도 아닌 셈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댓글 목록

20140526

이제 곧 작품 분석으로 들어가야 할 듯 한데, 자꾸 머뭇거리게 된다. 준비가 좀 부족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물론 준비는 늘 부족하다. 그래도 일정하게 정합성을 갖는 문제의식의 틀이 구성되었다면 한번 시도해볼만 하다고 본다.

 

1. 대만을 참조점으로 삼는데는 우선적으로 중국-조선이 갖는 유가적 문명권 및 동아시아의 반제국주의-민족해방 운동이라는 공통 경험을 전제한다. 남한은 조선의 분단으로 인해서 '인식론적 단절'을 겪게 되었고, 이 때문에 '중국'과 '대만은 우리에게 상호보충적인 참조점이 되어준다. 중국이 북조선과 조선이라는 반제국주의민족해방 운동과 유가 문명의 역사적 참조점이 되어준다면, 대만은 식민-내전-냉전-분단이라는 당대의 현실적 참조점이 되어준다.

 

2. 대만의 분단은 식민과 내전에 의해 중첩되어 있다. 1) 식민으로부터 주어진 수동적 분단은 나름의 이중성을 갖는다. 2) 내전의 외부에 위치함에서 주어진 또다른 분단은 또한 나름의 이중성을 갖는다. 3) 한편, 이에 더불어 민중 구성의 복잡성의 요인으로서의 '외성인' 또한 핵심적 특수성이다. 이 또한 이중성을 갖는다.

 

3. 진영진은 이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는가? 1)과 관련한 사상적 공백의 문제. 2)와 관련한 민중적 외부성의 문제. 3)과 관련한 가상적 적대의 문제가 그의 문학과 사상의 핵심적 테마가 된다. 궁극적으로 1)은 목적, 2)는 방법, 3)은 제약의 요인이 되는 듯 하다. 

 

암튼 이제 이를 다시 한번 정리하고, 작품 분석에 들어가야겠다. 작품 분석을 마치고 되돌아와 다시 정리되면 박사논문의 출발점으로서의 대략적 그림이 그려질 듯 싶다.

 

6월이 오는 것이 참 두려웠는데, 부족하지만 신심을 가지고 6월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오늘 대학원 다음학기 강의 목록을 보니 백영서 선생님의 강의가 계획되어 있다. 다음 학기 방문 교수로 백영서 선생님이 오시게 된 모양이다. 아쉽게도 나는 대만에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좀 아쉽게 됐다.

 

강의는 금요일 오후로 잡혀 있고, "동아시아 시각에서 본 한국 현대 사상사" 從東亞視角看韓國現代思想史라는 제목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