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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이후... 그리고 새로운 작업.

<모택동 시대와 포스트 모택동 시대: 다르게 쓴 역사 1949~2009> 상/하권이 모두 출간된지도 한달이 넘었다. 하권이 뒤늦게 나오면서 책에 대한 관심이 분산되었고, 책 값이 너무 비싸게 책정되어 별로 팔리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역자로서는 좀 아쉽긴 하다. 책에 대해서 역자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 있겠지만, 이미 책과 관련한 반응들이 나올만큼 나왔기 때문에 몇 가지 개인적 생각들을 언급해 볼 수 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 책에 대해 쓴 나름의 체계적인 비평은 내년 1월 대만에서 출간될 <인간사상> 겨울호로 출간될 예정이다.

 

앞에서 관련 보도를 1차 정리한 바 있었는데, 하권이 나오고 나서 서평이 두 개가 실렸다. 하나는 이홍규 선생이 쓴 짧은 서평이다. 전리군 선생의 '민간/민중'의 시각이 반영된 새로운 역사에 대해 평가하고 있다.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121025024015&ctg1=10&ctg2=&subctg1=10&subctg2=&cid=0101051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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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서평은 이욱연 선생이 프레시안에 쓴 서평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1102124323

 

사실 이 서평은 책에 대한 소개를 약간 담고 있지만, 이 책을 그다지 참고할 필요가 없는 '자유주의 지식인의 자기만족적 역사서술'로 폄하하는 주관적 판단을 강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약간의 논평이 필요할 것 같다.

 

이욱연 선생은 모리스 마이스너와 아리프 딜릭을 비교의 준거점으로 제기하고 있는데, 내가 읽기로는 실제로 마이스너/딜릭과 전리군을 자세히 비교해보면 오히려 유사점이 많다. 이와 관련해 논점의 핵심이 되는 '반우파운동'에 대한 판단을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전리군 선생은 마이스너가 단순히 '민족주의혁명' 또는 '관료주의' 등 모종의 외부적 관점에서 중국혁명과 그 이후의 역사에 대해 이론적 판단을 하는 것을 넘어, 당 운동 외부의 '민간'을 주목하고, 당 내부에서도 모택동의 자기 모순 및 이질적 흐름들을 '문학'적 방식으로 포괄하여 새롭게 서술하고 있다. 물론 동원하는 사료는 오히려 전리군 선생이 더욱 풍부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서평은 아쉽게도 개혁개방 이후의 시장화에 대해 '6.4 천안문 학살'을 계기로 권력귀족과 자본이 결합되는 과정, 이른바 '권력귀족자본'으로 개념화하고 비판하는 부분에 대한 언급이 생략되어 있다. 이 생략은 전리군 선생이 다른 자유주의자들과 전혀 다른 포지션임을 가리는 전략으로 보인다. 이런 전략을 취하게 된 동인이 무엇일지 자못 궁금하다. 나는 이런 상황들로부터 남한의 '역사적 중국학'이라고 할만한 의제를 제시하고 반성적 평가를 진행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래서 사실 이 서평은 내용적 측면에서 보면 <망각을 거부하라: 1957년학 연구필기>에 대한 서평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서평의 결론은 전리군 선생이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마오'를 청산하려고 하고, 사회주의의 역사와 체제에 대해 비판적 역사서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급하고 있는 '1957년', 즉 이른바 '반우파 투쟁'에 대한 관점이 사실 중요한 쟁점이라 할 수 있다. 이욱연 선생은 전리군 선생이 당내 갈등구조(즉, 모택동파와 주자파)를 주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즉 '반우파운동'은 사회주의로 가기 위해 진행된 당 내외의 자본주의적 경향에 대한 타격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전리군 선생은 당내의 차이, 즉 류소기/등소평 등과 모택동 사이의 차이는 그들 사이의 일치점에 비해 크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 역사적 사료로 논증한다. 오히려 전리군 선생은 '반우파운동'의 과정에서 '진정한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민주+사회주의' 세력들이 숙청되어 간 것에 주목한다. 즉, 당 내부와 외부에 존재했던 사회주의 체제의 관료화를 비판했던 지식인(이른바 '우파'), 그에 억압/착취당했던 학생, 노동자, 농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인다. 이 부분은 <망각을 거부하라>에 이미 잘 소개되어 있고, 이 책에서도 다시 서술되고 있는 사회사적 사실이다. 전리군 선생은 이러한 '진정한 사회주의'와 '당/국가 사회주의'의 대립구도를 문혁까지 끌고 간다. 전리군 선생을 간단히 '자유주의자'로 비판하는 것은 쉽겠지만, 진지한 비판이 되려면,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중국혁명'에 대한 관점을 우선 내려 놓고, 우선 중국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반우파운동>, <문혁> 등과 관련해서 발굴된 사회사적 사료들과 사실들을 '부정'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실 중국 연구와 관련해서는 그동안 묻힌 사료들이 2000년대 이후 대규모로 발굴/공개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중요한 변곡점이라 할 수 있는 '반우파운동', '문혁', '천안문 사건' 등은 모두 일정하게 금기시 되는 사건들이고, 상당수 자료들이 여전히 당에 의해 독점되어 공개되지 않고 있고, 연구 자체가 금기시 되어 있다.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는 가운데 전리군 선생의 작업도 나오게 된 것인데, 내가 보기에는 이로부터 자극을 받아 더 치고 나가야할 임무와 과제가 한국의 중국연구자들에게 주어져 있다. 과거의 중국 내외부의 담론적 틀에 갇혀서 이러한 새로운 사료를 거부하는 것은 올바른 지식 작업의 방식은 아닐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백승욱 교수가 이번에 낸 <중국 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는 전리군 선생의 작업과 조금 다른 강조점에서 진행된 연구이면서도 문혁과 관련한 기존의 구도를 넘어서 새로운 접근을 보여준다. 전리군 선생의 작업에 비해 백승욱 교수는 여전히 '당'에 주목하지만, 그 내부의 '이질적인 것'이라 할만한 진백달(陳伯達, 천보다)의 모순을 매개로 해서 새로운 역사적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이론틀로 귀결하는 경향도 강하지만, 당 내부의 모순을 재조명하기 위한 적절한 사례로서 진백달을 선택해서 '당', '주체' 등 과 관련 쟁점을 좀더 깊이 밀고 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책을 중국어 번체자판으로 번역하고 있고, 현재 서문, 1장, 2장, 3장 절반, 결론을 초역하였다. 연말까지 초고를 완성하고, 내년 3월쯤에 대만에서 출판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아마도 기본 작업은 12월말까지 끝날 것이고, 그 이후는 나도 박사 자격고사 준비를 하려고 한다. 논문 주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노신의 일반화를 준거로 '전리군'과 '리영희'를 역사적으로 비교하는 연구로 갈 확률이 높아 졌다. 노신의 일반화는 이번 학기 왕효명(王曉明) 선생의 <중국 초기 근대사상> 강의를 들으면서 윤곽을 잡게 되었다. 아주 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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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2/9 한국

1/24~2/9 한국에 간다. 어쩌면 한동안 다시 못 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녀오면 정말 논문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잘 되길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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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10월에 상해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나서, 백승욱 교수의 신간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계획 상으로는 연말까지 초고가 나온다. 그러던 가운데 연극과 관련한 일을 도울 일이 있어 번역이 잠시 중단되었다가 이제 재개한다. 중간중간 '조어대' 등 영토분쟁과 관련한 '민간동아시아'성명 관련 회의와 작업들이 있고, 왕효명 선생의 수업도 최대한 빠지지 않고 청강을 하고 있다. 지난 주에는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과 석사 과정을 함께했던 친구들 등등과 대동台東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뒤늦은 졸업여행이라 할 수 있는데,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모택동 시대와 포스트 모택동 시대>는 결국 상/하권이 다 큰 무리 없이 출간된 듯 하고(책을 돌리고 나니 내 손에 책이 없다), 하권 출간 이후에는 이욱연 선생님의 프레시안 서평이 나오기도 했다. 논쟁의 구도가 열리는 느낌인데, 서로가 격려하면서 논의가 풍부해지는 그런 논쟁을 보고 싶다. 나는 별도로 전리군 선생의 이 저작에 대해서 <人間思想> 겨울호(2013년 1월)에 나의 논문을 싣게 되었다. 6월 홍콩에서 발표했던 초고를 거의 다시 쓴 논문인데, 기회가 되면 한국어로도 발표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연말까지는 지금하고 있는 번역을 마치고, 이어 내년 여름까지 자격고사를 마치면, 아마 가을부터 논문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리군 선생의 역사적 중간물로서의 사상적 실천을 조명하면서, 노신으로부터 계승된 '서술학' 실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하나의 방향이고, 리영희 선생과 비교하면서 노신적 사상의 당대 속에서의 차별적 발현을 검토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으로 삼고 있다. 진광흥 선생도 논문 쓰고 할 일이 많으니 우선 다른 일 벌이지 말고 논문에 집중하라는 언질을 줘서 어서 논문 작업 준비를 해야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번 대동 여행을 다녀오면서(작년 봄 왕휘 선생과 갔다 온 뒤 두 번째), 박사논문 작업의 공간으로 대동을 염두에 두고 있다. 대만에 마지막 남은 순수 또는 청정의 땅이라 불릴만한 곳인데, 무엇보다 물가가 싸서 경제적 부담이 크지 않은 점이 고려되었다. 그러면 아마 2014년 말에는 박사논문이 대강 모습을 드러내리라 본다. 중국 대륙 쪽도 고려하고 있는데, 펀딩 상황을 봐야할 것 같다.

 

그동안 블로그를 보시는 분들이 의외로 좀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글을 남기기가 좀 그랬다. 대화의 상대가 좁혀지는 느낌이 들어 전과 같은 자유로운 사유의 공간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한국과, 특히 그 지식사회와 관계를 맺으면서 그 사회 속의 불문률을 의식하지 않기 어려움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비판'이나 '문제제기'가 설사 적절치 않더라도, 그 의미는 논의 속에서 판단되어야 할 문제이지, 논의도 해보지 않고 인격적 문제으로 매도하는 방식은 오히려 필요한 논의를 사전에 봉쇄한다. 이런 문화가 지배적인 상황 속에서 학문적 이론적 창신은 불가능하다. 특히 젊은 연구자들의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사고를 끌어내는데 이런 문화는 매우 해악적일 것이다. 당분간 한국과 거리를 둔 삶을 지속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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