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삼 느끼는 것은
뭔가를 한다면 제대로 하거나, 아예 안/못하거나, 해야지
어중간하게 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제대로' 한다는 것은, 꼭 '잘' 한다는 것,
교육 쪽에서 많이 쓰는 표현으로 '수월성'(秀越性, excellency)을 발휘한다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무협지의 교훈대로 천외천(天外天)이 있는 법이니,
수월성을 추구하다 보면 악무한에 빠지게 마련이다.
다만, 모종의 문턱,
그것을 넘지 못하는 한 1도이든 99도이든, 모두 수증기가 아닌 물에 머무는
그런 임계점은 있는 것 같다.
광활한 허허벌판을 헤매다가
드디어 찾던 집 문고리를 잡는 입문(入門)의 순간,
앞으로도 많은 길이 남아 있지만
그 지점을 넘으면 어쨌든 그럭저럭 해 갈 수 있는 불귀점(不歸點).
그 문턱을 넘지 못하는 한
나는 다른 세계로 입장하지 못한다.
아무리 그 세계와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끼더라도,
단지 1도의 열이 부족할 뿐인데 라고 투덜거리더라도,
내가 여전히 이 세계에 머문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문턱 근처에 있는 이는 더욱 슬프다.
이 세계에도, 저 세계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자.
사람들은 그를 흔히 '유령'이라고 부른다.
또는 '박쥐'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 내가 슬픈 것은
내가 정말로 유령이거나 박쥐이기 때문이 아니라
유령/박쥐가 되지 못한 채, 유령/박쥐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하는 문턱이
눈 앞에서 끊임없이 달아나기 때문,
또는 내가 딛은 문턱이 끊임없이 늘어나 흡사 연옥이 되고
그 곳에서 제논의 거북이를 쫓는 아킬레우스 같은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분업을 받아들일 수도, 그렇다고 분업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는
이 결정불가능한 곳 앞에, 또는 그 한 가운데 나는 있다.
그리고 우유부단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옥은 넓어지고
문득 길을 잃고, 다시 길을 찾고, 또 길을 잃는
허깨비의 삶은 계속된다.
이것이 돌파하지 못한 자에게 내려진 형벌일까?
Posted by 아포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