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선물'

"조능희 전 < PD수첩> CP는 “지금까지 언론자유가 단단하게 이뤄진 걸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며 “언론자유는 한계단 한계단 쌓아 올리는 게 아니라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잠시라도 노 젓는 걸 멈추면 민주주의는 한 순간에 바닥으로 내려온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2009. 3. 26.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의 긴급 비상총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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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이 얘기를 듣고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오늘 다른 글을 읽다가 문득 생각나 수집해 둔다.

 

급류를 거슬러 노를 젓는 것.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탁월한 심상 중 하나일 것이다.

민주주의에는 어떤 '단단한' 기초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어떤 질서를 아래에서부터 '한계단 한계단 쌓아 올리는' 건축술도 아니다.

 

그것은 '급류를 거스르는 것', 따라서 갈등적인 세력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고,

기존의 지배적 경향('급류')에 맞서는 반경향('노를 젓는 것')을 끊임없이 재생산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역전되고 퇴행하고 패배할 수 있는('바닥으로 내려온다') 적대적인 투쟁이라는,

근원적인 '우연성'(contingency)이라는 '기초 아닌 기초' 위에 불안하게 서 있다.

(어쩌다 읽은 한 글의 각주에 따르면, 우연성이란

"그 존재, 사건, 인물 등에 있어서 아직은 확실치 않은 그 무엇에 의존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이명박 이전에도 언론자유나 민주주의가 '단단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위의 상황이 이명박 시대의 특수한 '예외 상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일반적 조건이라는

유보 조항을 추가하는 한에서,

나는 조능희 CP의 저 통찰에 적극 동의한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곧 투쟁/운동의 시간 '이후' 도래한 제도의 설계/운영이 아니라,

이 제도를 항상-아직 규정하는 민주주의 투쟁/운동,

민주주의의 역전을 제어하고 '민주주의를 민주화'할 새로운 정치적 주체(화)의 유일한 원천인

저 투쟁/운동의 항을 보존/확장하는 것, 그에 기초해 제도와의 변증법을 꾀하는 것이다.

 

김대중이나 노무현의 시대에도 그랬었지만

이명박의 시대에 비로소 가능해진 저 정치적 진리의 대중화,

아마 이것이 이명박이 우리에게 준 예기치 못한 '선물'일 것이다.

이를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정쟁 속에서 자유주의적으로 낭비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의 자유주의적 전유를 넘어서는 '더 많은 민주주의'의 대중적 허구(fiction)

(자연적(natural)이지도, 자의적(arbitrary)이지도 않은, 진리의 이데올로기적 번역이라는 의미에서)

의 원천으로 삼을 것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은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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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9/06/10 01:20 2009/06/10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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