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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 Folds, 'Still fighting it'

 

 

알바하는 동안 접근하지 못한 인터넷이 되니

그동안 듣고 싶으나 못 들었던 몇 곡을 들을 수 있어 좀 행복하다.

 

많이들 알겠지만 이 곡은

<무한도전> 215회(예능프로그램 횟수를 외우게 될 줄이야!)

레슬링 경기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유재석이 3단로프에서 '파이브스타 프로그 스플레쉬'

로 게임을 마무리지은 후 정형돈을 껴안는 장면

을 전후해서 흐르던 노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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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때문에 무도 215회를 보지 못해 애태우다가

인터넷으로 어렵게 동영상을 구했는데

동영상과 추석 재방송까지 해서 너댓 번은 본 것 같다.

예능을 보고 이런 느낌을 받은 건 거의 처음이다.

(<무도> 여자권투도 있긴 했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 편은 이렇게 반복을 부르는 강도는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싸이의 <연예인>이 그렇게 슬프게 들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카메라를 통해 가깝게 다가오는 정형돈 이하 멤버들의 신체적 고통과

그를 보고 기뻐하고 열광하는 관중들의 모습이 교차편집되면서

뭐랄까, 연예인이 하나의 환유인, 대중들 앞에 서야 하는 이들이 겪는

(우리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대중들 앞에 선다)

비극 같은 걸 느꼈다고 할까.

사실 이런 서사는 흔한 것이고, 많은 경우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왜 우리를 몰라주고 비난하느냐

따위의 반(反)비판적인 투정과 결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내내 들었던 그 유치한 어리광!)

WM7에 대한 이런저런 비난에 대해 김태호 PD가 보인 반응도 좀 비슷했기에

탐탁치 않은 마음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날 그 경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형돈의

그 강렬하지만 묵묵한 신체적 고통이 일종의 진정성을 느끼게 했다.

 

어쨌든 예능이나 레슬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214~215회는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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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6 16:43 2010/09/2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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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폴, '고등어'

 

 

작년 말이었던가, 루시드폴 4집 <레미제라블>이 잔잔한 돌풍을 일으켰었다.

당시 극빈 상태였고, 집 오디오가 고장난지라 음반을 사지 못했다.

오늘 문득 그가 기억났고, 뮤비 하나를 듣는다.

 

몇년 전 처음 선배의 소개로 루시드폴을 들었을 땐

그가 나중에 3집 <국경의 밤>의 '사람이었네' 같은 노래를 만들 거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몫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말한다는 게 이런 것일까?

양탄자와 고등어의 목소리를 듣고

그걸로 우리에게 분노와 위로를 전할 수 있는 사람과

한 시대에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알바비를 타면 음반 가게에 꼭 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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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6 15:43 2010/09/2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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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해 둘 말

읽기만 하는 게으른 정신을 경멸한다.

- 니체

 

쓰는 것보다 읽는 걸 무한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잊지 말고 새길 말이다.

그러니 다른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번역하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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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0 20:26 2010/09/2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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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

"an irreducible autonomy = the capability of escaping from the control of both subjects and other social processes"

- Anthony Woodiwiss, The Visual in Social Theory, continuum, 2001, pp.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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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2 22:14 2010/09/12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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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빨간 나라>

이건 혜은이 <파란 나라>의 노가바인데,

처음에 듣고 너무 웃겼다.

너무 웃겨서, 과격하다거나 충격적이라거나, 그런 생각이 안 들었던 것 같다.

 

이 역시 판본이 다양한데

국사학과 판본으로 기록한다.

 

<빨간 나라>

 

빨간 나라를 보았니
사적 소유가 철폐된
빨간 나라를 보았니
자본가가 없는 나라

 

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알아요
난 엥겔스도 알고요
저 휴전선 너머 빨간 나라 있나요
저 빨간 하늘 밑에 거기 있나요

 

자본론 속에 있고
TBD("What is To Be Done"의 약자) 속에 있어
누구나 한 번 가보고 싶어서
생각만 하는 나라


우리가 한 번 해봐요
온 세상 빨갱이 손잡고
새빨간 마음 한 마음 새빨간 나라 지어요

우리가 한 번 해봐요
온 세상 빨갱이 손잡고
새빨간 마음 한 마음 새빨간 나라

 

우리 손으로 지어요
빨갱이 손에 주세요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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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7 16:13 2010/09/0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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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가

한때 노래는 잘 외웠는데

전처럼 부르지 않고 또 나이가 드니

가사가 가물가물한 노래가 많다.

 

국사학과에 들어와서 배운 노래 중 가장 인상적인 노래가 <권주가>였다.

얼마 전 이 노래 가사가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생각했는데

결국 기억이 안나 인터넷을 찾아 보려 했으나 집에 인터넷이 안 되는 관계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오늘 문득 기억이 나 인터넷을 찾아 보니 나오긴 하는데

2절까지밖에 없다. 내 기억 역시 정확친 않지만

3절까지는 확실히 생각나는데,

4절도 있다고 한다. 배웠는데 기억이 안 나는 건지,

아니면 내가 배운 판본은 3절까지밖에 없었던 건지는 미지수.

 

이 노래가 특히 기억나는 건

3절까지 가사도 죽이는데다

그 다음에 '전국토의 요새화, 전인민의 무장화, 전인민의 간부화, 전장비의 현대화'

(원래는 '전군의 간부화'지만, 내 기억엔 이렇게 배운 것 같다. 아마 운율 때문인 듯.

한편 4대 군사노선이 바로 나오는지, 다른 거 나온 다음에 나오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고등학교 <국민윤리> 시간에나 들은 북한의 4대 군사노선이 나온 다음,

'전국토의 술집화, 전술집의 외상화, 전외상의 백지화, 전백지의 소각화, 전소각의 매립화'

등이 이어진 후(다른 것도 있었는데, 그건 좀 그래서 패스.)

'전자동차의 키트화, 전헬기의 에어울프화, 전오토바이의 검은독수리화'

뭐 대략 이런 내용이 나오면서 끝났기 때문이다.

사실 마지막 대목이 나오면 대개는 깔깔 웃으면서 자연스레 노래가 마무리됐기 때문에

그 뒤에 뭐가 더 이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 기억은 여기까지다.

(생각해 보니, 이게 4절인가?)

 

뭐 이런 것도 일종의 전통 문화(^^)니까

보존 차원에서 적어둔다.

인터넷에서 찾은 다른 권주가는 약간 운율이 달라서

그냥 내가 배운 걸 기록한다.

 

<권주가>

 

뱅뱅뱅 잘 돌아간다
떨 떨이떨이떨이 떨이떨이 떨떨이
떨거지 술 수리술판 떨거지의 술~판

 

부어라 마셔라 없는 놈은 없는 놈끼리
한 잔 술이 없어 빌붙어 마셔도
더러운 잔 받지 않는다
삼천리 방방골골 외상술값 쫙 깔려도
주모야 한 잔만 다오
떨 떨이떨이떨이 떨이떨이 떨떨이
떨거지 술 수리술판 떨거지의 술~판
 
그 누가 나를 보고 주정뱅이라 쌍소리하랴
안주만 처먹고 입 싹 씻는 놈 네놈인가 하노라
술마실 땐 건전하게 토할 때는 아릅답게
뱅뱅뱅 잘 돌아간다
떨 떨이떨이떨이 떨이떨이 떨떨이
떨거지 술 수리술판 떨거지의 술~판

 

간밤에 내린 비가 소주 맥주 막걸리되어
아침에 빈대떡 같이 떠오르는 건 아름답다 하노라
(내 기억은 이런데, 말은 좀 안 된다.
아마 '떠오르는 해' 정도일 것 같은데, 내 기억에 해는 아니었다.
내 생각에 발음 문제 때문에 저런 식으로 한 것 같다.)
이 땅은 우리의 땅 바로 오늘이 그날이다

뱅뱅뱅 잘 돌아간다
떨 떨이떨이떨이 떨이떨이 떨떨이
떨거지 술 수리술판 떨거지의 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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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7 14:58 2010/09/0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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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이주호 교과부장관 후보자의 딸이 용돈(약간의 인턴 급료 포함) 모아서 4천만원 상당 수익증권을 샀다는군요. 이 정도 용돈은 줘야 아빠잖아요. 그 밑으론 아빠 아니잖아요. 아는 아저씨지. ㅋㅋ"

(지나가다 본 글)

 

개인적으로 지금 개콘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행복전도사다.

같은 코너에 나오는 동혁이 형보다 더 파괴력도 있다고 느낀다.

(동혁이 형은 풍자의 맛이 약간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물론 풍자가 좀 부족해도 정말 뜨거운 감자를 다룬다면 그것 자체로 재미가 있겠지만

그렇게까지는 하기 힘들어 다소 만만한 쟁점을 다룰 수밖에 없으니

어느 쪽도 아닌 약간 애매한 상태가 되는 것 같다.

사실 초창기에 동혁이 형이 학자금 상환 이자가 너무 높다고 비판하면서

"아니 대학이 세계적인 학자를 만드는 데지, 세계적인 신용불량자를 만드는 데야?"라고 말할 때는

나도 그렇고 객석 반응도 그렇고, 와 여기까지 나가다니 하는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압박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개그 컨셉이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가 구조적으로 제한되니,

동혁이 형을 탓할 일은 아니다.)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행복'이니 '자기계발'이니 따위가

얼마나 허구적인지 잘 보여준다는 점도 그렇고

부자들과 평민들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산다는 것을 뚜렷이 대비시킨다는 점도 그렇고,

무엇보다 그 풍자가 몹시 재미있다는 점도 아주 좋다.

또 위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그가 만들어 낸 화법이

평민들이 부자들을 풍자하는 데 손쉽게 전유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여튼 위의 글 보고 빵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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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9 10:30 2010/08/1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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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알튀세르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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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꿈꿨던 사건이다...

아래는 이 심포지엄을 기획한 진태원 선생의 글:

 

‘알튀세르 효과 심포지엄’을 마련하며

오늘날 한국의 독자들에게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8~1990)라는 이름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제가 약 1년 전에 알튀세르에 관한 공동 논문집을 기획하고 또 이 심포지엄을 준비하면서 계속 품고 있었던 질문입니다.

아마도 알튀세르는 맑스주의 철학자 중에서, 또 프랑스 철학자 중에서도 세대에 따라 가장 인지도 편차가 큰 인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40대 이상의 독자에게 그는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한국 인문사회과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른바 ‘한국사회성격논쟁’과 ‘맑스주의 위기론’의 중심에 있던 인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당시 웬만한 인문사회과학도라면 누구나 그의 책을 한 권쯤 소장하고 있었고, ‘과잉결정’(또는 중층결정)이나 ‘호명’ 같은 그의 주요 개념들은 가장 널리 운위되던 지적 담론 중 하나였습니다. 반면 오늘날 20대 독자에게 그는 에티엔 발리바르나 슬라보예 지젝 또는 자크 랑시에르나 알랭 바디우의 이름과 함께 간혹 거명되는 이름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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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방향으로) 발리바르, 지젝, 바디우, 랑시에르


요컨대 구세대 독자에게 알튀세르가 한때 우리나라에서 잠깐 지적으로 유행했으나 이제는 잊힌, 추억 속의 철학자라면, 신세대 독자에게 그는 오늘날의 지적 담론을 이해하기 위한 먼 배경 중 하나, 이를테면 ‘기타 등등’ 속에 포함될 만한 나열의 대상 중 하나가 된 셈입니다.
그렇다면 왜 뜬금없이, 이제는 추억 속의 인물이 되었거나 아니면 익명에 가까운 인물이 된 철학자에 대해 이런 거창한 심포지엄을 기획하게 된 것일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이런 의문을 품고 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일차적인 답변은 올해가 알튀세르가 사망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당대 프랑스 지성계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알튀세르는 1980년 11월 16일 정신착란 상태에서 부인을 목 졸라 살해한 뒤 여러 정신병원에서 요양생활을 하다가 1990년 사망했습니다. 따라서 저명한 철학자나 사상가를 기념하기 위해 탄생 몇 주년, 사망 몇 주년을 따지는 것은 널리 통용되는 방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알튀세르라는 철학자, 20세기 후반의 맑스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이 사망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에 그에 관한 심포지엄을 기획하는 일이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심포지엄을 마련하게 된 이유가 단지 그것뿐이라면, 굳이 왜 알튀세르에 관한 심포지엄이냐 하고 의문을 가질 만한 사람들도 있을 듯합니다. 더욱이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그에 관해 무관심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를 좋아하고 그의 사상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을 법합니다. 사실 이 후자의 사람들이 그런 의문을 품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지극히 정당하고 또 알튀세르 자신의 사상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학은 자율적인 것이 아닐뿐더러 그 자체로는 무(無)에 불과하며, 철학은 소멸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한다고 역설했던 사람이 바로 알튀세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생몰연대만을 이유로 그에 관한, 거창하다면 거창한 학술 행사를 기획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알튀세르 자신의 지적 원칙, 철학적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묻거니와, 왜 오늘날 이처럼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그에 관한 공동 논문집을 기획하고 심포지엄을 준비하게 된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저를 비롯해서 기꺼이 이 기획에 참여할 뜻을 밝힌 여러 학자들이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생각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알튀세르의 사상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상적 효력을 지니고 있고 현재를 사고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들이 적어도 몇 가지 존재한다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에 따라서 그러한 요소들이 어떤 것인가에 관해서는 당연히 이견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데올로기론이야말로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과잉결정 개념을 중심으로 한 변증법의 쇄신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매우 독창적인 독해야말로 오늘날 가장 의미 있는 알튀세르 사상의 유산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어쨌든 알튀세르에 관한 공동 논문집과 이번 심포지엄에 참여해 준 선생님들은 그가 여전히 우리에게 무언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고, 또 우리 역시 그의 사상에 관해 무언가 새로운 점을 밝혀낼 수 있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또한 이것은 저희들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실제로 외국의 여러 학자들, 오늘날 사상계를 주도하는 상당수의 이론가들에게서도 이러한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증언을 인용해볼까요?
국내에도 잘 알려진 슬로베니아 출신의 이론가 슬라보예 지젝은 자신의 출세작인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 첫 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우리의 첫번째 테제는 오늘날 지적 무대의 전경을 차지하고 있는 대논쟁인 하버마스-푸코 논쟁이 또 다른 대립, 이론적으로 훨씬 광대한 알튀세르-라캉 논쟁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 되리라. 알튀세르 학파의 갑작스런 실추에는 무언가 수수께끼 같은 게 있다. 이는 이론적 패배의 관점에서는 설명될 수 없다. 이는 그보다는 알튀세르의 이론 내에는 마치 쉽게 잊히고 ‘억압’되어야 할 어떤 외상적 핵이 존재하기 때문인 듯하다.” 당시에는 신출내기 이론가의 다소 엉뚱한 도발처럼 여겨졌던 이러한 주장은, 사실 그 이후 꽤 오랫동안 지젝의 이론적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 중 하나가 되었고, 지젝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점차 새로운 반향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1989년 당시만 하더라도 알튀세르와 그의 제자들 및 동료들의 작업은 현대 사상계의 무대에서 완전히 퇴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알튀세르 자신은 부인을 살해한 뒤 공적인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고 그의 제자들 중 몇몇(니코스 풀란차스, 미셸 페쇠)은 자살로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습니다. 70년대 영미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발리바르의 자본주의 분석이나 피에르 마슈레의 문학생산이론은 당시에는 더 이상 아무런 새로운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젝의 예언적인 선언 이후 놀랍게도 알튀세르와 그와 함께 작업했던 철학자들의 사상은 다시 현대 사상계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지젝과 발리바르, 자크 데리다, 주디스 버틀러 등의 작업을 통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현대 사상의 가장 뜨거운 쟁점 중 하나로 부각되었습니다. 또한 알튀세르 사상의 영향을 받았고 이후에는 비판적인 대결을 통해 독자적인 사상의 경로를 개척한 자크 랑시에르와 알랭 바디우는 오늘날 프랑스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이론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고 논의되는 철학자들입니다. 알튀세르의 사상의 가장 훌륭한 계승자라고 할 만한 에티엔 발리바르 역시 국민 형태 이론과 봉기적 시민권 이론, 시빌리테(civilité)의 정치철학 등을 통해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포스트 맑스주의의 제창자로 유명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의 정치철학은 알튀세르 맑스주의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알튀세르의 사상이 오랜 억압과 배제의 시련을 거친 끝에 이제 다시 부활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알튀세르 사상의 전성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마치 무협지 같은 스토리를 늘어놓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늘날의 인문사회과학에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쟁점들을 해명하는 데서 알튀세르 사상의 요소들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환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알튀세르와 오랫동안 같이 작업했던 제자이자 동료이며 또 그의 사상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중 하나인 에티엔 발리바르는 1996년에 출판된 『맑스를 위하여』 재판에 붙인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이제] 모든 맑스주의는 상상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들 중 일부, 서로 매우 다르고 사실은 매우 적은 또는 소수의 텍스트들이 대표하고 있는 몇 가지 맑스주의는 여전히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따라서 현실적 효과들을 생산하도록 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다. 나는 『맑스를 위하여』의 ‘맑스주의’가 능히 이것들에 포함된다고 믿는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여기에는 『맑스를 위하여』의 ‘맑스주의’만이 아니라 알튀세르의 다른 저작들, 예컨대 『자본을 읽자』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 또는 『마키아벨리와 우리』의 ‘맑스주의’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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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발간되었던 알튀세르의 저작들
 


따라서 이번 심포지엄은 단순히 알튀세르 사망 20주년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의 사상의 위대함, 그의 맑스주의의 독창성을 찬양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이번 심포지엄의 목표는, 그의 사상의 여러 요소들 가운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치를 지니고 있고 여전히 현실적인 효과들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주제들을 살펴보고, 알튀세르 사상과의 비판적 대결을 통해 독자적인 이론의 세계를 구축한 현대 사상가들의 작업 속에서 알튀세르 사상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또 어떤 식으로 지양되고 있는지 검토해 보는 것입니다.

좀더 궁극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목표는, 오늘날 알튀세르의 사상을 무관심하게 망각하거나 맹목적으로 배척하지 않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교조적으로 되풀이하거나 회고적으로 찬양하지 않으면서, 알튀세르의 사고 양식, 곧 맑스(주의)의 사고 양식을 다시 한 번 재개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고, 각자 나름대로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사고해 보려는 또 다른 목표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철학자로서, 맑스주의자로서 알튀세르의 가장 비범한 측면은 비교조적인 사고 양식, 가장 이단적인 방식으로 맑스주의를 쇄신하고 구원하려고 했던 그의 사고 양식에 있는 것 같습니다. 공산당의 정치적 사상 통제가 공공연히 이루어지던 시대에 그는 대담하게도 비맑스주의적인 사상의 요소들을 동원하여 맑스 사상의 핵심을 복원하고 맑스주의를 쇄신하려고 했습니다. 스피노자 철학을 원용하여(더욱이 그의 스피노자 해석은 당대의 맥락에서 볼 때 가장 이단적이고 가장 특이한 해석이었는데, 놀랍게도 오늘날 그의 이러한 해석은 현대 스피노자 연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헤겔의 변증법과 구별되는 맑스주의 변증법을 사고하려는 시도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스피노자의 상상계 이론을 통해 맑스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론을 구성하려는 시도, 바슐라르나 캉길렘에 근거하여 맑스주의 인식론을 쇄신하려는 시도 등이 그 단적인 사례들입니다. 그의 사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그의 사상이 지닌 이러한 이단적 성격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알튀세르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고해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그의 사상을 교조적으로 되풀이하거나 단순히 찬양하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알튀세르에 대한, 알튀세르의 사상에 대한 가장 큰 배반이 될 것입니다. 알튀세르의 사상은 비판적 대결을 거치지 않고서는 이해되거나 수용될 수 없는 사상, 새롭게 변용되고 굴절되는 것을 통해서만 계승되고 재개될 수 있는 사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스피노자 연구자인 피에르-프랑수아 모로(Pierre-François Moreau) 교수는 젊은 시절 알튀세르의 파리 고등사범학교 제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그는 서강대 서동욱 교수와 제가 편집을 맡아 출간을 준비 중인 『스피노자와 현대철학』이라는 제목의 공동 논문집을 위해 마련된 대담에서 “이제 우리가 알튀세르의 이런저런 분석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그는 우리에게 사고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의 사망 20주년을 맞아 마련된 이번 심포지엄이 아무쪼록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그에게 사고하는 법을 배우는 자리가 되기를, 그에게 사고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우는 자리가 되기를, 서로가 서로에게 사고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2010. 7. 22.
진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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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10/08/03 21:14 2010/08/03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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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과 이론, 철학과 과학

"To recognize the concept is to remain faithful to the question and to its nature as a question instead of seeking to realize it, hence, instead of having done with it without really having responded to it. This requirement is as important for the procedures of science as for the history of science, without their being reduced in this way to a common measurement or a point of view. "What matters to us is less to furnish a provisional solution than to show that a problem deserves to be posed."(Canguilhem 1989, 177.) It is in this way, astonishingly, that the formula that turns philosophy into "the science of resolved problems,"(Canguilhem 1955.) in a sense that Brunschwicg never meant the expression to have, is retrieved: philosophy ― and it must immediately be said, although this can only be made entirely clear in what follows, that philosophy is history ― is the science of problems independent of their solution. It is the science that is not preoccupied with solutions, because in a certain way there are always solutions, the problems are always resolved at their level; and the history of solutions is only a partial history, an obscure history, and obscuring everything it touches, by giving the illusion that one can dissolve ― and forget ― problems. Passing behind the accumulation of theories and responses, history is really in search of forgotten problems, up to their solutions."
- Pierre Macherey, "Georges Canguilhem's Philosophy of Science: Epistemology and History of Science", In a Materialist Way: Selected Essays by Pierre Macherey, Verso, 1998, p. 177.

 

지금껏 읽은 글 중에서

철학과 과학의 변별적 관계라는 내 오랜 고민을

가장 명쾌하고 설득력 있게 정리해 준 것이

알튀세르의 제자 피에르 마슈레가 그의 또 다른 스승 조르쥬 캉길렘의 작업에 관해

1964년(!)에 쓴 이 대목이었다.

 

이 글을 통해, 다소 거칠긴 하지만,

한편으로 문제-개념-철학, 다른 한편으로 해법-이론-과학

이라는 도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때 개념을 ‘한계 개념’(concept-limite)으로 이해하면

쟁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한계 개념이란 하나의 이론만으로는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하나 이상의 이론들이 동원될 때에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

나아가 스스로의 해결을 위해 새로운 이론들의 발전을 추동하는 문제

를 제기하는 개념을 말한다.

알튀세르가 즐겨 사용한 예를 들자면

프로이트의 ‘충동’(Treib) 개념이 대표적인데

이는 정신분석학과 생물학의 경계에 있는 개념이며

더욱이 현재보다 훨씬 발전한 정신분석학과 생물학의 힘을 빌어야만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수 있는 개념이다.

이 개념으로써 생물학으로 환원할 수 없는 정신분석학의 고유한 영역이 생겨나는 동시에

정신분석학의 자기충족성(self-sufficiency)이 불가능해지는 두 가지 결과가 산출된다.

 

사실 모든 개념은 경향적으로 한계 개념, 즉 하나 이상의 이론을 요청하며

하나 이상의 해법을 갖는 문제를 제기한다. 만일 특정한 해법과 이론으로써

이 개념이 제기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선언하고 문제를 억압하더라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해법과 이론 안에 출몰하며

때로는 이들을 위기나 심지어 파국으로 내몰 것이다.

'문제들의 과학/학문'으로서 철학이 독자적 존재이유와 효과를 갖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다.

철학은 개념의 원천에 있는 문제로 돌아가, 해결책이 없는 채로 문제를 옹호한다.

이 때 철학은 문제의 새로운 해법을 예상하는 정식화(formulation) 즉

특정한 공식(formula)을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문제를 정돈함으로써

문제 해결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철학의 본령은

특정한 해법과 이론으로 환원할 수 없는, 실은 그 해법과 이론 더미에 깔려 보이지 않는

문제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여러 가지 개념, 따라서 문제를 제기했는데

가장 수수께끼 같지만 또 가장 집요하게 살아남은 것이 바로 '이데올로기'

즉 '종속화'(subjection)이자 '주체화'(subjectivation)라는 모순적 항의 불안정한 통일체인

'인간-되기'(becoming-man) 과정일 것이다.

알튀세르는 이 개념에 대한 전통적인 철학적 접근 곧 '이론적 인본주의'를 비판하면서

한때 프로이트와 맑스, 정신분석학과 역사유물론이라는 두 과학의 '종합' 속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과학적 사고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던 것 같다.

이른바 '프로이트-맑스주의'라는 기획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 개념은, 이 두 과학, 그것도 아직 불완전한 이 두 과학보다 훨씬 더 많은

과학을 동원할 때에만 해결될 수 있음이, 더 정확히 말하자면,

특정 과학의 근원적 불충분성을 지시하는 부정적 지표라는 점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즉 각각의 과학은 이데올로기의 한 측면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지만

이데올로기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렇다.

(물론 이데올로기가 인식론적 의미의 '오류'로 환원될 순 없지만)

발리바르에 따르면 이는 '오류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각각의 과학은 유한하고 유효한 자신의 영역 및 대상에서 진리를 생산하면서

그 필연적 효과로, 특정 오류가 발생하는 국지적 이유와 조건에 대한 설명 역시 생산하지만

오류 일반에 대한 설명을 목표로 삼거나 그를 수행하는 과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발리바르가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에 대해 그의 스승 알튀세르 못지 않게 충실하면서도

이를 다루기 위해 스승과 얼핏 보기엔 정반대로 '철학적 인간학'이란 길을 택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발리바르에 따르면 철학적 인간학이란,

"우선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관계들(예를 들면 경제적, 가족적, 교육적 관계들) 또는 사회적 관계의 다양한 차원들(개인적/집단적, 제도적/무의식적 차원들)에 대한 연구들의 접합점에서 제기되어야 하는 질문들(정확히 과학적이지도 않고 형이상학적이지도 않은, 말하자면 간(間)과학적(inter-scientifique)이거나 관(貫)과학적(trans-scientifique)인 질문들)의 공간의 이름입니다. 그것은 맑스와 프로이트, 레비-스트로스와 브로델이 대화하도록(서로를 혼동하지 않으면서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즉 여기서 요점은, '인간-되기'라는 과정을 사고하기 위해서는

철학의 전통적 실천으로서 형이상학으로 후퇴해서는 물론 안 되지만

그렇다고 정의상 유한함을 통해 유효함을 성취하는 개별 과학 중 어느 한두 분과,

그것이 맑스주의가 됐든 그것을 대체하는 또 다른 과학이 됐든 간에, 그것을 절대화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발리바르는 '프로이트-맑스주의'의 해체를 선언한 알튀세르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는 '인간-되기'를 설명하는 데 정신분석학이 필요없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이것은 정신분석학과 (맑스주의가 그 초보적 형태인) 역사과학을 '종합'한다면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절대과학'이 탄생할 수 있다는 야심을 포기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과학들과의 대화이다. 물론 특정 과학이 특정 시점에서 주도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세적인 것이며, 정세가 바뀌면 자리도 바뀔 것이다.

 

그렇다면 발리바르는 '학제간 연구'를 옹호하는 것인가?

내 생각에, 이 점에서도 발리바르는 학제간 연구가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말한

알튀세르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 각각의 과학은 고유한 대상을 가지며,

그 대상들이 유관한 한에서만 서로 만날 수 있다. 이 구체적 목표와 쟁점 없이

무작정 서로 넘나들고 통합한다고 해서 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과학철학/과학사의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발리바르가 '철학적 인간학'을 주창하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인간-되기'가 됐든, '주체화'가 됐든, 또는 '이데올로기'가 됐든간에,

각각의 과학 곧 이 문제에 대한 부분적 해법으로 환원되지 않는 문제의 권리를 옹호하고

이로써 각각의 과학에 새로운 연구 의제를 제시하기 위해서다.

연구 과정에서 어떤 과학은 실은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분명해질 수도 있고,

어떤 과학은 다른 과학과 합쳐질 수도 있으며,

또 어떤 과학은 환원할 수 없는 독자성을 재차 입증할 수도 있다.

이는 연구 과정의 끝에서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결과이지,

선험적으로 예단할 수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율성'과 '통합'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식별하고 이를 사고할 수 있는 적합한 방식을 발명하는 것이다.

 

발리바르가 철학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철학이 이 사고 프로그램을 정립하고 진전시키는 데

특정 과학으로 환원할 수 없는 고유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형이상학적이지 않은 철학의 개입,

'철학의 전통적 실천'이 아닌 '철학의 새로운 실천',

그 효과로서 과학과 정치의 발전.

결국 언제나 문제는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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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10/07/14 10:28 2010/07/1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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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를 통한 한 가지 반성

"On pense à Machiavel, dont l'influence s'est fait sentir dans les théories qui se sont efforcées de combiner une réflexion sur les perversionstotalitairesde la tentatives révolutionnaire avec une phénoménologie desnouveaux mouvements sociauxqui en formeraient comme la contrepartie positive, dans la mesure où ils ne chercheraient pas tant àprendre le pouvoirqu' à transformer les institutions existantes ou à pousser l'État vers sa propre démocratisation, dans la tradition des revendications de droits civiques. Il y a à cet égard unair de familleréunissant des penseurs aussi différents entre eux que Hannah Arendt, Claude Lefort ou Jacques Rancière. Tout doivent quelque chose à la thèse des Discours sur la première décade de Titre Livre, où Machiavel énonce que l'objectif des classes dominantes est toujours d'opprimer les dominés ou la masse, mais que celle-ci a seulement pour objectif de ne pas être dominée. Autrement dit, ce qu'elle cherche n'est pas, symétriquement, à devenirclasse dominanteà son tour, mais plutôt à neutraliser la volonté de puissance des dominants. Une telle représentation de la demande dejusticeen politique, qu'on peut dire négative, est peut-être encore plus significative dans l'èrepostrévolutionnaireactuelle."

- Étienne Balibar,La justice ou l'égalité, La justice bafouée : L'état des droits de l'homme en France, La Découverte, 2010, pp. 21~22.

 

돌이켜 보면 사회운동을 시작한 이래

운동 노선에 관한 두 가지 다소 이율배반적인 명제가 항상 고민이었다.

 

첫 번째는, 사회운동이 '요구 투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요구 투쟁이란 나보다 강한 자, 곧 지배계급이나 국가를 향해 제시되는 것으로

그 실현 여부를 타자에게 맡기는 수동적인 태도이며

설사 요구가 실현되더라도 사회운동의 자율성보다는

지배계급에 대한 의존 및 국가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이유였다.

심지어 지젝은 요구 투쟁이 일종의 '히스테리', 즉

타자가 들어줄 수 없는 과도한 요구를 던져 타자가 실패하는 것을 즐기려는 목적

을 갖는다고까지 비판하기도 했다.

즉 요구 투쟁은 사회운동의 자율성을 확대할 수 없는 실리주의 '로비' 활동에 머물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오히려 수동성을 강화시키는 '투정'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만 놓고 보자면, 이른바 '개량 대 혁명', 또는 '사민주의 대 레닌주의'라는

전통적 구도를 되풀이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지젝의 경우는, 그렇기 때문에 '지배계급으로서의 책임을 떠맡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레닌주의 심지어 '스탈린주의'의 정신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고까지 말한다.

어쨌든 이런 입장이라면 비록 고전적이긴 해도 그리 이율배반적이진 않을 텐데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새로운 사회운동'이 출현한 이후 운동을 시작한 우리에게는

또 다른 명제가 제시되었고 문제가 복잡해지는 곳은 바로 여기였다.

 

그 두 번째 명제는, '국가 권력 장악'을 지상 목표로 삼지 말아야 하고

역사적으로 나타난 사회운동의 국가주의 경향과 단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국가 장치를 우회하는 아나키즘은 대안이 될 수 없으므로

'집권으로 환원되지 않는 국가 장치 전화/변혁'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는 했지만

그 현실적 형태가 무엇인지는 사실 수수께끼에 가까운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이 두 가지 명제를 만족시키려는 모색의 일환으로

'자기 통치'나 '평의회', '자율적 사회운동' 등의 개념에 주목하게 됐던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아나키즘과 정말 다른 것인지,

다르다면 어떤 점에서 그런지는 충분히 해명되지 못했고

이를 목적으로 제시된 개념들이 많은 경우 알리바이에 지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해결해야 할 문제를 흐리게 만드는 효과를 낳곤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나키즘이라는 논리적.실천적 궁지에서 벗어나려면

(역으로 아나키즘이라는 이름 아래 모순적으로 공존하던,

이 때문에 도매금으로 배척되곤 했던 어떤 긍정적 전통들을 급진적으로 전유하기 위해서는)

'집권으로 환원되지 않는 국가 장치 변혁'이라는 아포리아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발리바르는 이 문제와 대결하기 위해 마키아벨리가 정식화한 공화주의 전통을 전유한다.

즉 그는 개량과 혁명, 아나키즘과 국가주의라는 대당에서 벗어나

국가 장치 더 일반적으로는 '제도'에 개입하는 국가주의적이지 않은 방식을 정식화하기 위해

'귀족과 평민의 욕망의 비대칭성' 및 이 비대칭적 욕망을 대표하는 제도적 개입,

평민을 '지배계급'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려는 의지'에 대항하고 그를 중화시키기 위한

제도적 개입('호민관'(護民官))이라는, 마키아벨리의 놀라운 통찰을 전유한다.

 

이로써 국가와 사회라는 대당은

귀족과 평민, '지배하려는 욕망'과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망'의 비대칭적인 대립으로 대체되고,

이에 따라 국가를 우회하지 않으면서도 국가주의로 미끄러지지 않을 수 있는

사고의 공간이 열리게 된다.

이는 맑스주의의 위대한 전통, 곧 '만인을 해방시키는 계급 아닌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관념론적/이상주의적 전통을 좀 더 유물론적인 방식으로 부활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좀 더 고민은 필요하겠지만

발리바르의 최근 작업의 문제의식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에

매우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 걸려 있다는 것은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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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10/07/09 16:01 2010/07/0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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