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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에 관하여

< ● Equality of rights itself constitutes a right or a power, which may or may not exist, according to the circumstances; it supposes certain conditions. Spinoza explicitly points this out in relation to the problem of a federal State (TP, Ⅸ, 4). In an anarchic situation, close to the "state of nature", the equality of individuals exists "in imagination rather than in fact", as does their independence (TP, Ⅱ, 15). True equality, as opposed to this empty equality, between certain men, or between all the citizens of a State, can only exist as the joint result of institutions combined with a collective praxis. It will only emerge if everyone recognises it as being in their interest.>

 

- Etienne Balibar, Spinoza and Politics, p. 62, Verso, 2008 (에티엔 발리바르, 진태원 역, 『스피노자와 정치』, 이제이북스, 2005)

 

--------------

 

마찬가지로 집에 국역본이 있는데, 집에서는 인터넷이 되지 않는 관계로

영역본을 인용한다.

 

정확하지 않은 기억을 더듬자면,

개인들 간의 평등을 이론적 전제로 삼은 대표적인 이론가 중 한 명은

다시 또 홉스다. 그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모든 개인은 평등하다.

가장 약한 자도 몇 명하고만 일시적으로 힘을 모으면 가장 강한 자를 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고,

가장 강한 자도 생명과 안전에 대한 끊임없는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약하기 때문이다.

즉 자연 상태에서는, '타인을 죽일 수 있는 능력' 면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반면 스피노자(를 읽는 발리바르)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의 (능력의) 평등이란 가상에 불과하다.

그에게 있어 (권리의) 평등이란 정치적, 또는 수행적(performative)인 것,

즉 자연적이거나 본성적인 것이 아니라

그 원리를 실제로 실행함으로써만 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사후적이고 과정적인 것이다.

 

이처럼 자의적(arbitrary, 자연적/본성적이 아니라는 의미에서)인 원리이기 때문에,

평등은 항상 갈등과 투쟁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평등을 옹호하는 만 가지 이유만큼, 그것을 부정하는 만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또 평등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전유한 만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어쨌든. 그런 점에서 평등을 당위로서 전제하는 것도(그에 관한 '수행적' 과정 없이),

그렇다고 끊임없이 다가가야 하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점근선적 이념으로 간주하는 것도,

(때때로 맑스가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지 물을 수 있다)

적절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평등은 말의 강한 의미에서 수행적이고 정치적인 '과정'이고,

그런 것으로서 사고하고 실천해야 한다.

 

정리가 잘 되진 않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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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8 13:08 2008/12/1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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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세.> 12회에서 가장 기억나는 대사

"내가 지금 이 애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눈도 아파 죽겠는데 나는 왜 지금 얘랑 헤어져서 더 외롭게 내 무덤을 파는 건지.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젊어서 힘이 남아 돌아 쓸데 없는 짓을 한다 하시겠지.

근데 어떡해, 난 젊은데."

 

----------------

 

지오와 준영의 갈등은,

이해하려 들면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완전히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저 대사를 듣고

작가에게 100% 동의하기로 했다.

 

그렇다.

때로 젊음 같은 잉여 요소가 추가되어야만 비로소 일어나는 사건들이 있는 것이다.

예컨대 그들의 이별도, 그렇지만 그들의 재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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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6 13:56 2008/12/1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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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짜증

“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들의 사상은 그것이 옳을 때에나 틀릴 때에나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하다. 사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이밖에 별로 없는 것이다. 자신은 어떤 지적인 영향으로부터도 완전히 해방되어 있다고 믿는 실무가들도, 이미 고인이 된 어떤 경제학자의 노예인 것이 보통이다. 허공에서 소리를 듣는다는 권좌에 앉아 있는 미치광이들도 그들의 미친 생각을 수년 전의 어떤 학구적인 잡문으로부터 빼내고 있는 것이다."

- 케인즈,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中

 

-------------

 

난 철학을 즐겨 읽는다.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그/녀들을 이해하는 데 철학이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철학을 외재적으로 거부하거나,

기존 철학을 '극복하는' '새로운' 철학(많은 경우 스스로가 철학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을 제시한다면서, 사사건건 다른 철학 전통이나 사조를 비판하는 이들일수록

기존의, 그것도 아주 낡은 철학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예컨대 1960년대 전후, 경제주의적이고 헤겔주의적이지 않은 맑스를 주장하던

일군의 '인간주의적'(humanist) 맑스주의자들에게

알튀세르가 던진 가장 강력한 폭탄은,

그의 비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알튀세르가 번역한 포이어바흐의 책,

인간주의적 맑스주의자들의 주장을 몇백 년 전에 훨씬 더 정밀하게 전개하던 그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그들은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니체가 나에게 가르쳐 준 가장 소중한 교훈은

'원한'에 입각한 반대나 정치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가장 탁월한 니체주의자 중 한 명인 들뢰즈를 따른다고 주장하면서

원한의 정치가 스며 들어 있지 않은 글은 거의 쓰지 못하고,

자신이 스탈린주의를 일찍부터 비판했다는 자부심 바로 그것 때문에('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자신의 사고가 여전히 뿌리 깊숙이 스탈린주의를 닮아 있다는 걸 맹목하는

이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특히 맑스주의의 '국가주의'를 비판하면서 비국가적 '공동체'를 대안으로 내세우는 이들은,

저 국가주의의 원흉 '헤겔', 나아가 '독일 관념론'이 정확하게 동일한 논리를 구사한다는 점

(헤겔은 국가가 '기계'가 아닌 '공동체'인 한에서만, 진정한 국가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을 알는지 모르겠다.

 

그런 이들을 만날수록

나는 점점 더 철학 독서에 집착하게 된다.

나 자신도 혹시 저러고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커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읽고, 더 적게 쓰게 된다.

또는 쓰더라도, 항상 누구에 관한 주석으로만 쓰게 된다.

이런 까닭에 나는 그들이 밉다.

나의 역량과 활동력을 가장 줄이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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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4 17:44 2008/12/1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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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작가에게, 오마주

요새 <그.사.세.>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시청률이 안 나와서 속상하다. 앞으로 노희경 작가가 글 쓸 기회가 줄어들 것 같아서.

난 노희경 작가 드라마를 그리 많이 보진 않았지만,

아래 장면-대사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문득 기억나서 옮겨 온다. 이런 장면을 만들어 낸 노희경 작가에게, 경의를.

 

------------

 

씬 58 미옥의 방안.


미옥, 벽에 기대 이불을 무릎에 덮고, 막막하게 앉아있는,
엄마, 죄지은 사람처럼 밥상 앞에서 앉아있고,
고모, 맘에 안들게 미옥을 보는,


엄 마 : 미옥아, 너 좋아하는 청국장이야, 한술만 떠봐, 어?
미 옥 : ....
고 모 : (버럭) 아, 거, 기집애, 진짜 해두해두 너무하네!
엄마, 미옥: (고모 보면)
고 모 : 똥개훈련 시키는 것도 아니고 벌써 몇번째 국을 뎁혔다 말았다 하는 줄 아냐, 너! 니 엄마가 기집애야, 니 종이냐!
엄 마 : (말리는) 고모...
고 모 : 언니도 애들 이렇게 키우지 말어! 이게 뭐야? (미옥 보며) 너 기집애야, 뭐가 그렇게 잘나서 식구들 전부 절절 매게 해! 너 뭐가 그렇게 잘났어! 영민씨는 집안이 어찌됐든 너 받아 줄 맘 있대! 그럼 끝난 거지, 니가 왜 쏘가지야! 대체 지금 누구한테 쏘가지가 난 거야, 너!
미 옥 : (엄마 눈가 그렁해 보며, 맘 아프지만, 담담하게) 엄마, 나 왜 대학 그만두라 그랬어.
고 모 : ?
엄 마 : (미옥 보며, 순간 철렁하는) ?
미 옥 : (울먹이며, 조금 큰소리로) 내가 4년제 대학 간다 그럴 때두 ..엄마가 2년제 가라 그랬지? 그나마 2년제두 엄마가 중간에 그만두라 그랬지.
엄 마 : (눈가 붉어져, 맘 아픈, 조심스레) 내가 언제..니가..그만둔댔잖어.
미 옥 : (격앙된) 엄마가 미수는 4년제 가야하는데 그러면 집안이 힘들어진다고..자나깨나 한숨쉬고 그러니까, 내가 그만둔 거잖어!
고 모 : (맘 아픈, 달래듯) 야, 야, 다 지난 일 갖고, 야, 김미옥,
미 옥 : (엄마에게, 눈물 흐르는, 맘 아픈) 엄마는 착한 게 아니라, 방관자야.
엄 마 : (미옥을 빤히 보는데, 눈물 뚝 흐르는)
고 모 : (맘 아픈) 미옥아.
미 옥 : 다른 엄마들 봐, 파출부를 하든 뭘 하든 죽어라 일해서 자식들 대학 보내잖어. 땅 장사다 집장사다 해서 어떻게든 돈 벌잖어! 그런데 엄마는 어땠어? 공장 가면 공장에서 쫓겨나고, 파출부 나가면 거기서 또 쫓겨나고, 덕분에 나는 대학도 못다니고, 시집갈 때까지 갈비집에서 가위질하며 돈 벌었어! 내 또래 애들 전부 잘 나가는 대학생 되고, 멋진 옷 입고 다닐 때 나는 앞치마하고 갈비집에서 일 했다구! 왜 미수만 유학까지 갔어야 돼! 나는 뭐가 모잘라서 갈비집에서 일했어야 돼! 내가 엄마 딸이지, 엄마 엄마야! 내가 왜 지금까지 엄마 생곌 책임져야 돼! 나 영민씨 아버지 집에서 돌아올 때 그 누구보다 엄마가 미웠어! 왜 날 이렇게 밖에 못키웠어! 왜, 이렇게 밖에 못키웠냐고, 왜!
엄 마 : (손등으로 눈물 훔치며, 맘 아픈) 미안해, 엄마가 모잘라서 그래.
고 모 : (속상한, 눈가 붉어져) 언니가 뭐가 모잘라! 사람 다 생긴 대로 사는 거지. (미옥 보며) 야, 기집애야!


그때, 재수 화나 벌컥 문 열고 들어서서 미옥에게,


재 수 : (화난, 소리치는) 오늘 나랑 한판 뜰래!
미 옥 : (보면)
고 모 : (일어나, 재수 밀며) 넌 빠져, 자식아!
재 수 : (아랑곳없이, 미옥 보며) 지금 어디서 화풀이야! 누나 그 공치사하는 거 이제 내가 더는 지겨워서 못듣겠어! 염병, 재혼 못해 환장했냐! 그렇게 시집이 두 번 세 번 가고 싶어서, 엄마한테 이 난리야, 지금!


그때, 미수, 들어와 재수 끌고 나가며, 가라앉은,


미 수 : 재수 너 나와. 어서!
고 모 : (같이 재수 끌고 가며) 그래, 나가자, 나가자.
재 수 : (나가며, 큰소리치는) 지가 집에 잘했음 얼마나 잘했어! 이혼해서 엄마 그만큼 속썩였음 됐지, 뭐가 그렇게 잘났어!
미 수 : (재수 끌고 가며) 조용히 못해!
재 수 : 지가 못난 건 괜찮고, 왜 엄말 쥐잡듯 잡냐고, 왜!
고 모 : 나가, 자식아, 니가 뭘 안다고 그래!
미 수 : 나와, 어서!


고모, 미수, 재수를 끌고 문밖으로 나가는 소리 들리는,


미 옥 : (맘 아픈, 눈물 닦으며, 자조적으로) 그래...나 잘한 거 없다, 그러니까 너두 나 무시해, 다들 그래, 그렇게 무시하라 그래.
엄 마 : (눈물 닦고, 밥 떠 미옥의 입에 대주며) 한술만 떠.
미 옥 : (엄마 막막하게 보는, 속상한)
엄 마 : 엄마한테 할말 다 했음 ..제발 밥 한술이라도 좀 떠, 어?
미 옥 : (엄마 막막하게 보는, 내가 무슨 짓을 했나 싶다)


씬 61 엄마의 거실, 아침.


엄마, 졸린 얼굴로 눈 비비고 나오다, 순간 달그닥거리는 소리에, 멈칫하는, 조심스레 주방 쪽으로 가면,
미옥, 쪼그리고 앉아 물에 말은 밥과 김치를 바닥에 놓고 먹고 있는,


엄 마 : (마음이 조금 풀리는, 어색하게 작게 웃고, 미옥의 앞에 앉아서) 아이고, 밥 먹네, 우리 애기?
미 옥 : (엄마 보고, 미안한)
엄 마 : 왜 밥을 이렇게 먹어, 청국장 뎁혀줄까?
미 옥 : (어색하게, 눈가 붉어져) 어제..미안.
엄 마 : (맘 짠해지는, 끄덕이며, 애써 웃으며) 괜찮어. 니가 엄마 아니면 어디 가서 그렇게 소릴 질러, 안그래?
미 옥 : (눈가 붉어져, 작게 웃으며) 맞어, 나는 엄마가 젤로 만만해.
엄 마 : 알어. (하고, 김치 찢어 미옥의 입에 넣어주며) 아, 해!
미 옥 : (입벌리면)
엄 마 : (넣어주고) 꼭꼭 씹어, 큰애기.
미 옥 : (받아먹고, 눈가 붉은 채, 씩 웃는) 어.
엄 마 : (손가락 빨아먹으며, 미옥 보고, 눈가 붉은 채, 씩 웃는)


--------------------------

(위의 강조 표시는 내가 한 것이다)
 
씬 58, 굵은 표시를 한 고두심의 대사가 나왔을 때,
특히 '엄마한테 할말 다 했음 제발 한술만 떠'가 나왔을 때
눈과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그 느낌을 도저히 여기 옮겨놓을 수가 없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김흥수의 '오늘 나랑 한판 뜰래'로 시작하는 연기다.

이게 없었다면 그후 고두심의 대사는 훨씬 덜 감동적이었으리라)

 
한편
씬 61의 저 대화를 고두심과 배종옥이 한다고 생각해 보라!
모르긴 해도 국내에서 저 대화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두 사람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 두 장면만으로 난 이 드라마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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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4 15:10 2008/12/1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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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세.>의 대사 한 대목

준영: 우리 같이 이기적인 직업을 가진 인간들한텐, 서로한테 아주 헌신적인 상대가 필요해. 우리 상대들이 들음 정말 재수없겠지만. 안 그래?

 

---------

 

'이기적인 직업'.

들으면서, 참 재밌다고 생각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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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8/12/12 20:10 2008/12/1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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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파이란>의 최민식이 한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개인적으로 쿨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고

얼굴을 있는 대로 찌그러뜨리며 우는 편이라

(올해 한 번 그렇게 울어본 적이 있는데, 그 때 내가 참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의 얘기가 공감되어 깊이 기억에 남았었다.

 

문득 그 인터뷰가 기억나 인터넷을 찾아 보았는데

<씨네 21> 2001년 기사였다.

문득 <파이란>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전에 이 영화에 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

그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해 보고 싶다.

 

"내가 제일 즐겨보는 TV프로는 <병원24시>다. 그게 내 교과서다. 사람을 배우고, 감정을 배운다. 얼마 전엔, 술만 들어가면 개꼬장 부리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젊은 여인 편이었다. 몸이 아픈 어머니가, 딸이 만류하는데도, 또 술이 엉망으로 취해 집을 개판으로 만들고, 여인은 아파트 복도에 앉아서 울더라. 얼굴이 찌그러들면서 울더라.

저런 게 우는 거구나. 저런 게 진짜구나. 내가 해봤자 강재 흉내내는 것밖엔 안 된다. 그저 진짜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가려고 발버둥치는 것밖엔 다른 도리가 없다. 연기에서 테크닉이란 건 정말 보잘것없는 거다. 가끔 얼굴 표정 변화없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연기를 본다.

그게 쿨하다는 생각이 퍼져 있는 것 같다. 절제미를 과시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그게 아주 적절한 연기인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난 그게 테크닉을 위한 테크닉이 든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슬플 때 얼굴이 찌그러지면서 북받쳐서 운다. 꺼이꺼이 우는 것이다.

어떤 훌륭한 연기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진짜 모습이 언제나 나를 낙심하게 하고 또 배우게 한다."

(https://bridge.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1001&article_id=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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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9 14:27 2008/12/0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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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took some time to understand, against our own political interests,
that the state, politics, citizenship, and the relation of citizenship to nationality

were not future objects for Marxist theory but were inaccessible to that theory;

they were not only momentary blind spots,

but the absolute limits of any possible Marxist theoretization.
Not because of Marxism’s much-decried economic reductionism,

but because of its anarchist component.


Balibar came to see that the “theoretical anarchism” inherent in Marxism denied it the tools to master either Soviet state socialism, in which “the discourse of the withering away of the state gave rise to a practice which supported an omnipotent state,” or the national populism of democratic capitalist states, where “individuals fear the state—particularly [those] most deprived and the most remote from power—but they fear still more its disappearance and decomposition. The anarchist and Marxist tradition,” Balibar contended, “never understood this, and has paid a very heavy price.” Balibar no longer foresees the nation or the state fading away, but instead redefinitions, recompositions of them, and this has become the terrain of his struggles since his departure from the party.

 

- Don Reid, Etienne Balibar: Algeria, Althusser, and Altereuropéenisation 中, South Central Review 25.3 (Fall 2008)

 

위의 글에서 발리바르는

이른바 '이론적 아나키즘'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이 사고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국가, 특히 근대 국가와 대중들 사이의 현실적/상상적 관계일 것이다.

 

개인들이 국가를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그것의 소멸과 해체를 더 두려워하는 현상.

'국가는 폭력이다'라는 사실을 대중들이 정확히 알지만,

그런데도 국가를 여타의 '사적' 폭력과 다른 식으로 체험하면서 그것에 집착하는 현상.

 

그러므로 결국 문제는 폭력과 대중들의 주체화 사이의 갈등적 관계를 심도 깊게 분석하는 것,

그리고 '폭력의 합법적 독점'으로 대표되는, 안전에 관한 근대 국가적 해법보다

더 문명적이고 더 효과적인 해법을 내놓는 것이다.

 

그 출발점에서, 나는 여전히 빅토르 위고의 다음과 같은 충고가

여전히 비길 데 없는 가치를 갖는다고 믿는다.

대중들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들을 사고하기 위해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에 관해서.

 

<그런데 추악하다 해서 연구를 배제한다는 법이 있겠는가? 질병이 의사를 몰아내는 법이 있겠는가? 독사며, 박쥐며, 전갈이며, 지네며, 독거미 등을 연구하기를 거절하고 ”아이 징그러워!“라고 말하면서 그것들을 본디의 어둠 속에 팽개쳐버리는 그런 박물학자를 사람들은 상상할 수가 있겠는가? 은어를 외면하는 사상가가 있다면 그것은 궤양이나 무사마귀를 외면하는 외과의사나 진배없을 것이다. 그것은 또 어떤 언어의 사실을 조사하기를 주저하는 언어학자와도 같고, 인류의 어떤 사실을 탐구하기를 주저하는 철학자와도 같을 것이다. 왜냐하면 은어는 문학적 현상이자, 사회적 현상으로서 이것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잘 설명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데 은어란 본래 무엇인가? 은어란 비참 그 자체의 언어인 것이다.>

-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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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8/11/25 15:12 2008/11/2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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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유진과 유진> 중

<차는 바닷가를 낀 채 달리고 있었다. 바다는 도로의 형태나 위치에 따라 바로 옆에 있다, 먼 곳에 있다, 낮은 곳에 있다 하며 따라왔다. 하지만 어느 바다든 여전히 아우성치고 있었다. 엄마의 침묵이 차츰 내 마음을 짓눌렀다. 침묵의 무게가 더 할수록 가슴 밑바닥에선 내뱉고 싶은 말들이 바다처럼 아우성치고 있었다.

"왜 그랬어! 그때 왜 그랬어? 내 잘못도 아닌데 왜 그랬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나는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끼익, 차가 급정거를 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의 얼굴은 혼이 달아난 듯 퀭했다. 뒤에서 빠앙! 하고 화난 듯한 경적이 울렸다. 엄마가 정신이 든 듯 차를 갓길로 옮겼다. 그 도로는 높지는 않았지만 절벽이었다. 파도가 쉴 새 없이 절벽에 와 부딪쳤다. 절벽에 몸을 부딪쳐 멍이 든 것처럼 그 바다는 검푸른 바다였다. 엄마가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런데도 나는 조금 전에 내가 정말 소리를 질렀는지 아니면 상상이었는지 혼란스러웠다.>

 

- 이금이, <유진과 유진> 中 pp. 261~2, 푸른책들, 2008

 

--------------------

 

이금이 씨는 최근 아주 흥미롭게 읽는 작가다.

아이들 수업 때문에 읽게 되었는데

어른들이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특히 위의 장면은 너무 인상적이다.

내가 가장 강하게 동조하는 정서가 억울함이어서 그런 것도 있고,

침묵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느닷없이 'acting out'을 한 뒤

끼익 소리를 내며 급정거하는 차, 혼이 달아난 엄마 얼굴, 뒤에서 울리는 화난 경적 소리, 도망치듯 간 곳에 펼쳐진 절벽, 파도의 부딪침, 멍든 바다,

그리고 이 장면에 관한 실재적이면서도 상상적인 체험...

 

아마도 이런 탁월한 묘사가

문학의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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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8/11/23 15:58 2008/11/2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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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라는 착각

"비극 혹은 운명의 인과율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타자와 동일자의 차이가 언제나 ‘내적인 차이’라는 점이다. 양자의 존재는 단순하게 분리될 수 없으며, 그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동일성이란 과정으로서 차이화(differentiation)가 가져오는 상대적인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자기자신과 내적인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타자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가 곧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로 드러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타자의 존재가 억압될 수는 있다고 할지라도 파괴될 수는 없으며 다시 돌아와 동일자의 뒷덜미를 잡아채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기와 분리 가능하다고 믿었던 타인의 존재(‘주체’란 이러한 착각을 우리가 이름짓는 하나의 방식일 것이다)가 사실은 동일자 자신의 내부를 항상 이미 구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쟁하고 있는 당사자들이 비극적인 파국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들이 모종의 상호 인정(mutual recognition)에 도달함으로써 일방성 없는 시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경우뿐이다."

 

- 최원, 「비극: 테러, 이라크, 미국」, 『사회진보연대』 2003년 4월호(강조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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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다가 문득 떠오른 대목.

강마에는 자신의 주체를 위협하는 감정, 곧 정념(passion)을 어떻게 맞이할까.

이성보다 감정이 더 우월하다는 흔해빠진 낭만주의로 전락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두 가지를 조화시켜야 한다는 덜 흔할 것도 없는 절충주의로 미끄러지지도 않으면서,

이 문제를 다루는 다른 방법을 이 드라마가 보여 줄까?

흥미진진한 관전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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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8/11/01 03:32 2008/11/01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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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북스 언어 교과서들

요즘 민중의집에서 스페인어 스터디를 하고 있다.

 

일단 느낀 건, 영어가 상당히 어려운 언어라는 점이다.

아직 깊숙히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모르지만

무엇보다 발음이 그렇다. 불어도 그렇고, 스페인어도 그렇고,

그냥 쓰인 대로 읽으면 되는데, 영어는 발음기호를 따로 외워야 하니까.

물론 명사 등에 성별 구별이 있기 때문에 이거 외우는 게 좀 까다롭긴 하고,

스페인어는 아직 잘 모르지만 불어는 시제가 복잡해서 이게 좀 어렵긴 하다.

하지만 뭐랄까, 처음에 입문할 때는

큰 어려움을 들이지 않고 읽을 수 있다는 게 큰 유인이 되는 것 같다.

 

또 한 가지는, 일단 영어를 어느 정도 아는 상태라면

다른 언어를 익히는 게 훨씬 쉽다는 점이다.

이 역시 배운 지 2주 밖에 안 되는 처지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스페인어보다는 조금 더 아는 불어의 경우에 비추어 보면

한글보다 영어가 유비가능성이 훨씬 높아서

처음 영어 배우는 것보다는 좀 수월했던 것 같다.

지금 불어를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몇 가지 단어야 알고 있는데

스페인어의 경우 영어나 불어 단어와 유사한 단어가 많다.

생각해 보니, 영어보다 불어랑 더 유사한 단어가 아직까지는 많았다.

 

물론 전혀 다른 언어권에 들어간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일단 라틴어를 어원으로 하는 언어는,

영어가 됐든 불어가 됐든 스페인어가 됐든,

어느 언어를 하나 알면 다른 언어에 접근하는 게 훨씬 쉬워지는 듯.

 

이번 수업에서 위키북스 언어 교과서를 사용하는데

그 사이트에 들어가니까 여러 언어 교과서가 있다.

영어로 되어 있긴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영어로 배우는 게 다른 외국어를 익히는 데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 번 도전해 볼 만 한 것 같다.

주소는 http://en.wikibooks.org/wiki/Wikibooks:Languages_bookshelf 이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한 번 가보시도록.

 

기왕에 스페인어 시작한 김에

아직 제대로 돌파하지 못한 불어를 일단락짓고

올해 안에 이태리어 학습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그나마 내가 상대적으로 더 훈련받은 분야가 어학이니까

이걸 정리해 두어야 나름 밑천 노릇을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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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8/10/29 11:54 2008/10/2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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