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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중

"난 나중에 후회 안할 만큼 마지막까지 발버둥쳐 본 거예요.
중간에 그만 두면 두고두고 납득하지 못해요.
후회가 길어지죠.

안 그래요?

한 번쯤 발버둥쳐 봐요.
모양새는 우습더라도, 그게 나을 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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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라는 덧없음을 견디게 하는 것은 지난 날의 기억들
지금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기억이 된다
산다는 것은 기억을 만들어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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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7 13:49 2009/07/0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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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직 행복할 여지는 남은 거지?

개인적으로 꼽는 <연애시대> 최고의 명장면은 동진과 함께 살던 집 곳곳에 서린 기억을 더듬는 은호의 모습이었다. 남들에게 말도 못할 만큼 사소한 그 기억들은 그것이 절대로 반복될 수 없는 순간이라는 이유로 어마어마한 비극이 되어버린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파고 속에 무너져 내리는 은호를 따라 나 역시 엉엉 울었다.

그 기억에 나도 울었다

남산 산책로를 함께 걷던 어느 늦가을 그의 손의 따뜻함,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그와 함께 사먹던 계란빵의 말랑말랑함, 언젠가 그와 함께 지켜봤던 평범한 일몰의 마지막. 남산에 가거나 계란빵을 먹거나, 일몰을 목격하면 문득문득 지금도 생생하게 들이닥치는 그 감각들이, 누구나 그렇듯 나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적인 순간을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캐릭터와 상황과 대사를 곳곳에 품은 <연애시대>는 마주하는 것이 때때로 너무 힘든 드라마였다.
언제부턴가 은호와 동진의 일거수일투족에 사정없이 감정이입을 해버리게 된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나는, 진심으로 은호와 동진의 재결합을 반대했다. 애틋하고도 무심하게 서로를 응시하는 그들은 이미 벌어진 어떤 사태와 그로 인한 변화는 절대로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일상적인 만남 속에 미묘하게 흔들리면서도 계속해서 서로의 삶에 개입하는 그들은 ‘따스한 쿨함’의 완벽한 모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평범했다.
실연 뒤 폐인으로 살다가 이내 멀쩡히 일상을 영위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짝을 찾는 친구들과도 닮았고, 열정과 권태와 모진 결심과 허전함과 후회가 지나간 자리에 또 다른 열정이 들어앉는 경험 끝에 심드렁해진 우리와도 닮았다. 최고의 파트너임이 명백한 상대를 옆에 두고도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는 노력을 게을리 않는 그들이 안타까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자신들의 운명적인 사랑을 증명하는 모습을 차마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루한 건 아니라고 말해주길…

그들도 우리처럼 놓치고 후회하고, 또 수긍하면서 살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때 내가 내렸던 선택 혹은 포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이처럼 지루한 것은 아닐 거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시시하고 쓸쓸하지만 여전히 빛나는 각자의 사랑을 찾아가는 완벽한 결말을 향해 기꺼이 박수를 쳐주리라 작정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그들은 기어코 다시 만났다. 행복해지기 위해 모질게 노력하는 그들은 브라운관 앞의 나를 지진아, 혹은 성격파탄의 냉혈한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들의 마지막 선택에 따르면, 좋다는 사람을 고민 없이 뿌리치고, 상대에게 빠져드는 스스로의 감정이 거추장스러워 작정하고 무덤덤해지는 나에게 ‘연애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을 시대다. ‘여기가 내 시간의 끝이 아니기에 지금의 우리를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던 은호의 마지막 내레이션을 애써 곱씹는다. 그 어디도 내 시간의 끝이 아니기에 나는 완벽하게 불행해지지는 않을 거라고. 혹은 아직도 행복할 여지는 남아 있다고.


 

글: 오정연(블로그: http://blog.cine21.com/lovesu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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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이 멋진 글을 보고, 꼭 <연애시대>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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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9/07/07 13:22 2009/07/0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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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는 말로 시작되는 시가 있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증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참 좋은 시였는데 다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 한 구절씩만 생각난다.

마지막은 이렇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내 자존심을 지킨답시고 난 저 아이를 버렸는데

그럼 지켜진 내 자존심은 대체 어디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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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준영(송혜교 분)과 헤어진 후 지오(현빈 분)가 하는 독백이다.

시는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다.

얼마 전 이었나, 총장실을 정리하던 시인이

이 시의 첫머리를 읊는 걸 보았다. 어디선가 들은 적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사.세>에서 들은 거였다.

 

"내 자존심을 지킨답시고 난 저 아이를 버렸는데

그럼 지켜진 내 자존심은 대체 어디 있는 걸까"

 

싸움의 목적은 자존심이었지만

싸우는 동안 그 목적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이것이 싸움과 갈등 일반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알다시피 싸움과 갈등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물론 그 경계가 불분명하여 서로 뒤섞이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지오가 싸움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잔혹'이며
(그의 전 연인 연희는, 지오가 가끔 너무 '잔인하다'고 말한다.)

이로써, 준영을 자신의 기억에서 완전히 추방/배제하고,

그녀와의 마주침을 통해 드러난 자신의 깊은 열등감과 결여를 환상적으로 메꾸려 한다는 점이다.

 

이런 종류의 싸움은 항상 목적을 잡아먹게 마련이다.

자존심이란 결국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정서인데,

이 싸움은 관계 자체를 파괴하고, 따라서 이 관계의 한 항인 자기 자신도 파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싸우고 갈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항상 모종의 위험, 이른바 '극단적 폭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출몰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잘 싸울 것인가?(이 위험 때문에 아예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분야가 되었듯, 싸움과 갈등이 일어나는 곳이라면,

이는 항상 중요한 쟁점이 아닐 수 없다. 의외로 연애 이야기가 전혀 다른 분야의 문제에 관해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아마 연애에는 항상 싸움과 갈등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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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9/07/05 16:19 2009/07/0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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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중

일정한 슬픔 없이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을까.
지금은 잃어버린 꿈, 호기심, 미래에 대한 희망.
언제부터 장래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게 된 걸까.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고, 일 년 뒤가 지금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없을 때,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를 견뎌낼 뿐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연애를 한다.
내일을 기다리게 하고, 미래를 꿈꾸며 가슴 설레게 하는 것.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 희망 같은 것.
 

---------------------

 

밤에 자기 전, 꽤 유명했으나 보지 못했던 드라마들(예컨대 노희경의 <거짓말>)

을 다운 받아 보는 게 요새 가장 큰 낙이다.

최근엔 <9회말 2아웃>과 <연애시대>를 보고 있는데

단연 후자가 압도적이다.

 

몇 편을 더 보았지만, 여전히 <9회말 2아웃>은 공감이 잘 가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난희의 심정을 이해할 순 있을 것 같다.

(예컨대 주위 친구들이 잘 나가고, 연인이 22살이라는 게

그녀가 막 진입한 서른이 더 괴롭겠구나 하는 것 따위. 이건 수애의 캐릭터 문제일 수도 있는데,

사실 조은지 연기는 꽤 괜찮다. <눈물>에서부터 조은지는

마이너한 캐릭터를 아주 잘 살린다.)

그렇지만 드라마를 이해하면서 봐야 한다니! 드라마 일반에서 사고를 배제하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이 드라마가 나에게 사고와 이해를 압박하는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가끔씩 반짝거리는 대사가 있긴 하지만, 전체 분위기와 잘 맞물리지는 못하는 듯.

 

반면 <연애시대>는 서른이라는 것 자체를 큰 화두로 삼진 않지만

(감우성이 분하는 이동진이 서른이다)

20대 후반 30대 초반 사람들의 생각과 정서를 아주 잘 상연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재미도 있고 말이다. 역시 극본이 탄탄해야 한다.

 

위의 대사는, 왜 사람들이 연애를 하지 않을 수 없는지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즉 연애란,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적) 이상과 사건의 대체물 노릇을 하는 게 아닐까?

뭐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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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4 21:54 2009/07/04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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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세, <연연>

 

나를 자꾸만 부르지마
내 마음 문턱을 넘어오지마
문을 열고 날 알아버리고
더 힘들면 어떡하려 그래

여기저기 다친 자리인데
못생긴 마음인데
누구도 아닌 너에게만은
보이고 싶질 않아

 

사랑 내 가슴을 닳게 하는 것
간신히 잦아든 맘 또 연연하게 하고
잊혀졌던 지난 상처 위에 또 하나
지울 수 없는 슬픈 이름 보태고
이내 멀어지는 것

 

얼마나 맑은 사람인데
눈물이 나도록 눈이 부신데
나 아니면 이런 아픔들은
넌 어쩌면 모르고 살 텐데

너를 보면서 하는 모든 말
사랑한단 뜻이라
쉬운 인사말 그 한 마디도
내겐 어려운 거야

 

사랑 내 가슴을 닳게 하는 것
간신히 잦아든 맘 또 연연하게 하고
잊혀졌던 지난 상처 위에 또 하나
지울 수 없는 슬픈 이름 보태고
이내 멀어진데도

몇 번이라 해도 같은 길로 가겠지
나는 어쩔 수가 없는 니 것인걸
다신 사랑하지 않겠어
눈물로 다짐했던 자리에
어느새 널 향한 맘이 피는걸
난 알아

 

사랑은 늘 내 가슴을 닳게 하지만
또 사랑만이 내 가슴을 낫게 하는걸
너의 사랑만이
내 가슴을 낫게 하는 건
너의 사랑뿐

 

(강조는 나)

 

------------------

 

얼마 전부터 <그사세>를 다시 보고 있는데

성시경의 이 주제곡에 꽂혀서 계속 듣고 있다.

준영에 대해 지오가 품는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는 듯.

 

강조했던 부분은, 사랑의 (이렇게 말하자면) '마법'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전혀 새로운 곳으로 연인들을 데려간다기보다,

그/녀들이 살던 일상적인 것/곳에 전혀 예상치 못한 뉘앙스를 주는 그 마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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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3 21:58 2009/06/23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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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추도가

"가슴 쥐고 나무 밑에 쓰러진다

독립군 가슴에서 쏟는 피는 푸른 풀 위 질벅해
산에 나는 가마귀야 시체 보고 우지 마라
몸은 비록 죽었으나 독립 정신 살아 있다
 

만리창천 외로운 몸 부모형제 다 버리고
홀로 섰는 나무 밑에 힘도 없이 쓰러졌네
나의 사랑 대한 독립 피를 많이 먹으려나
피를 많이 먹겠거든 나의 피도 먹어다오"

 

- <독립군 추모가>

 

------------------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를 읽다가 <빨치산 추도가>를 보았는데

인터넷에서 찾아도 없더니, 오늘 약간 가사가 바뀐 <독립군 추모가>를 찾았다.

어느 곡이 원곡인지는 확실치 않은데, 확인해 봐야겠다.

<빨치산 추도가>를 보고, 아주 강렬한 인상을 받았는데,

전에 이 곡을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을 거의 못 했다.

생각해 보니, 학교 다닐 때 과방에 굴러다니던 노래책에서 봤던 것 같고,

'피를 많이 먹겠거든 나의 피도 먹어다오' 이 대목이 이제야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아마 기억을 못 했던 것은 첫 대목, '나의 사랑 공산주의'

이건 처음 보았을 뿐더러, 극히 강렬해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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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쥐고 나무 밑에 쓰러진다

혁명군 가슴에서 흩으는 피 푸른 풀에 즐벅해

산에 나는 까마귀야 신체 보고 울지 마라

몸은 비록 죽었으나, 혁명 정신 살아 있다

 

만리천정 우주공헌 부모형제 다 버리고,

홀로 선 나무 밑에 웨맥 없이 쓰러졌다

나의 사랑 공산주의 피를 많이 먹었으나,

만약 먹고 싶으거든 나의 피도 먹으라"

 

- <빨치산 추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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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공산주의 피를 많이 먹었으나, 만약 먹고 싶으거든 나의 피도 먹으라"

어떻게 이런 가사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그저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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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1 15:55 2009/06/2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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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과 부활 2

"3학년 때 닉은 교실을 열대 섬으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사실 뉴햄프셔 주에 사는 아이라면 누구나 추운 2월에 여름을 맛보고 싶을 것이다. 닉은 아이들에게 초록색과 갈색의 두꺼운 종이로 작은 야자나무를 만들어 책상 네 귀퉁이에 붙이자고 했다. (…) 이튿날 여자 아이들은 머리에 종이꽃을 달고, 남자 아이들은 선글라스와 밀짚모자를 썼다. (…) 그다음 날 닉은 집에서 가져온 작은 드라이버로 온도 조절기를 돌려 교실 온도를 32도까지 높였다. 아이들은 모두 반바지와 티셔츠로 갈아입고 맨발로 돌아다녔다. 선생님이 잠깐 교실을 비운 사이에 닉은 희고 고운 모래 열 컵을 교실 바닥에 쫙 뿌렸다. 디버 선생님은 아이들의 풍부한 '창의성'에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 교장 선생님은 당장 모래 자국을 따라가 보았다. 그랬더니 디버 선생님은 앞줄 아이들에게 훌라 춤을 가르치고 있고, 웬 갈색 머리 꺽다리 녀석 하나가 웃통을 벗고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낸 채 티셔츠 여섯 장을 묶어서 만든 네트 너머로 배구공을 힘껏 내리치고 있었다."

- 앤드루 클레먼츠, 『프린들 주세요』, 사계절, pp.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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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집에서 아이들과 독서토론 수업을 하면서 사용한 책인데

할 얘기도 많고 재밌는 책이었다.

구원이나 부활 개념을 너무 비속하게 만드는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난 이 대목을 보고 저 개념들을 떠올렸다.

 

여기서 벤야민을 생각하게 되는 건 우연이 아닌데

알다시피 그는 '아동(기)'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아동의 '천진(天眞)함' 같은 개념에 별로 동의하지 않고,

스피노자를 읽고 나서 더 그렇게 된 나였지만

벤야민의 이야기에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작년하고 올해, 이른바 '청소년문학' 범주에 들어가는 책들을 조금 읽었는데

내가 그 나이에 이런 책들을 읽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됐다.

초등학교 시절 평범사와 계몽사의 어린이 문학 전집을 읽은 뒤

사춘기/중학교 시절에 이상하리만치 책을 읽지 않은 나는

(이런 도식을 약간 무리하게 사용하자면) '동화'의 세계를 떠나 '소설'의 세계로 진입하지 못했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청소년문학은, 말하자면 약간 교육적 차원에서,

양자를 매개할 수 있는 형태와 내용으로 기획된 책들인데, 물론 책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고, 또 철학적이다.

 

개인적으로 최고로 꼽는 청소년문학

(사실 이건 흔히 '동화'로 번역되는 '메르헨'(Märchen)이라고 하는 게 가장 정확할 텐데)

은 미하엘 엔데의 책들이다. 『모모』야 이제 워낙 유명하지만,

『끝없는 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민중의집에서 청소년 독서토론교실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썼던 책이

저 『끝없는 이야기』였는데, 당시에는 이 책을 한 번에 다뤘지만,

지금이라면 몇 차례로 나눠서 더 꼼꼼히 할 것이다.

이 책은 '자유'에 관한 다양한 해석과 그 귀결을 사람들과 토론하는 데

가장 좋은 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들과도.

 

성인들과 한다면, 메르헨의 문학사적 지위를 다루고,

아동기 개념(그리고 미메시스 개념)에 대한 벤야민의 해석을 검토한 다음,

엔데의 소설 말고 다른 메르헨(벤야민 전공자 윤미애 교수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쓴다.

여기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예컨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추가할 수 있다.)

을 함께 보는 식으로 짤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작년에 아이들 수업을 짜는 중에 든 착상인데

모르긴 해도, 특히 독일 예술/미학 등의 전공자라면, 이런 식의 커리큘럼을 이미 짰을 법도 하다.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지만, 어쨌든 이 내용은 나중에 한 번 정리해 보고 싶다.

구원과 부활이라는 테마를 메르헨과 연결시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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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5 19:35 2009/06/1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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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과 부활

"폭격기를 보면서 인간의 비행에 대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기대를 기억하게 된다. 그가 공중으로 떠오르려 했던 것은, '산꼭대기의 눈을 가져다가 한여름 뙤약볕으로 이글거리는 도시의 거리에 뿌려주기 위해서'였다."

- 수잔 벅 모스,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p. 317

 

전에 얘기한 것처럼, 나는 새로운 것 일반에 매혹되진 않는다.

나를 매혹시키는 것은, '죽지 않는 것들',

바뀐 상황 속에서도 그 모습을 변화시키면서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것들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되돌아오도록 만드는 이들, 그리고 그들의 작업이다.

대추리에 관한 나의 기억 중 가장 강렬한 것 중 하나는 대추리 주민역사관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53937)

그 곳 한 편에 주민들의 기억이 담긴 사진들을 진열해 두었었는데,

그 사진들을 감싼 액자는, 마을 곳곳에 버려져 있던 책상 서랍들을 수집한 것이었다.

 

판화가 이윤엽씨는 우리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어느 날 집에서 우연히 책상 서랍을 열었더니

아주 옛날 사진들이 있었고, 거기엔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들이 새겨져 있었다고,

그 때부터 서랍과 기억을 연결시킨 작품을 언젠가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그런 착상에 따라 이 전시관을 만들었다고.

 

당시 벤야민을 띄엄띄엄 읽고 있던 나에게

그건 정말이지 놀라운 감동이었다.

잊힌 기억일 뿐만 아니라 버려진, 또는 강제로 빼앗긴 기억의 표징 자체인 '대추리의 서랍',

그것들이 죽지 않고 다시 예술 작품으로, 투쟁의 상징으로 되살아나는 장면,

벤야민이 말하는 저 '구원'(redemption)을 눈 앞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김에 말하자면, 노무현에 대한 나의 환멸이 그의 죽음에도 가시지 않는 이유는

그가 저 대추리를 파괴했고, 게다가 그걸 여전히 치적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봉화에 온 용산 주민들에게, 자신이 미군기지 내 보낸 덕에 용산 땅값 올랐으니 고마워하라

고 말하면서 웃는 노무현을 TV에서 보고 얼마나 끔찍했던지!)

 

구원과 부활. 돌이켜 보면 이 말들은 나를 항상 사로잡았다.

기억이 닿는 한에서는, 아마 20여 년 전, 아마도 우리 또래에게 최초로 비극을 가르친,

<성모승천> 앞에서 죽은 네로를 만난 다음이었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민중가요가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와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1>

인 것도 나중에 생각해 보니 우연이 아니었다.

벤야민에게 그렇게 끌렸던 것도, 벤야민과 데리다를 '사진'이라는 주제로 연결시킨

카다바(Eduardo Cadava)의 Words of Light 주위를 끊임없이 맴돈 것도

구원과 부활의 현세적 변주라는 테마에 매혹됐기 때문이다.

 

돌파하고 싶지만 몇 년째 변죽만 울리고 있는 이 문제에 관해

더 늦기 전에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일요일 저녁에 책을 읽다 문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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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4 20:09 2009/06/1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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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선물'

"조능희 전 < PD수첩> CP는 “지금까지 언론자유가 단단하게 이뤄진 걸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며 “언론자유는 한계단 한계단 쌓아 올리는 게 아니라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잠시라도 노 젓는 걸 멈추면 민주주의는 한 순간에 바닥으로 내려온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2009. 3. 26.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의 긴급 비상총회 中)

 

-------------------

 

전에 이 얘기를 듣고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오늘 다른 글을 읽다가 문득 생각나 수집해 둔다.

 

급류를 거슬러 노를 젓는 것.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탁월한 심상 중 하나일 것이다.

민주주의에는 어떤 '단단한' 기초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어떤 질서를 아래에서부터 '한계단 한계단 쌓아 올리는' 건축술도 아니다.

 

그것은 '급류를 거스르는 것', 따라서 갈등적인 세력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고,

기존의 지배적 경향('급류')에 맞서는 반경향('노를 젓는 것')을 끊임없이 재생산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역전되고 퇴행하고 패배할 수 있는('바닥으로 내려온다') 적대적인 투쟁이라는,

근원적인 '우연성'(contingency)이라는 '기초 아닌 기초' 위에 불안하게 서 있다.

(어쩌다 읽은 한 글의 각주에 따르면, 우연성이란

"그 존재, 사건, 인물 등에 있어서 아직은 확실치 않은 그 무엇에 의존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이명박 이전에도 언론자유나 민주주의가 '단단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위의 상황이 이명박 시대의 특수한 '예외 상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일반적 조건이라는

유보 조항을 추가하는 한에서,

나는 조능희 CP의 저 통찰에 적극 동의한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곧 투쟁/운동의 시간 '이후' 도래한 제도의 설계/운영이 아니라,

이 제도를 항상-아직 규정하는 민주주의 투쟁/운동,

민주주의의 역전을 제어하고 '민주주의를 민주화'할 새로운 정치적 주체(화)의 유일한 원천인

저 투쟁/운동의 항을 보존/확장하는 것, 그에 기초해 제도와의 변증법을 꾀하는 것이다.

 

김대중이나 노무현의 시대에도 그랬었지만

이명박의 시대에 비로소 가능해진 저 정치적 진리의 대중화,

아마 이것이 이명박이 우리에게 준 예기치 못한 '선물'일 것이다.

이를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정쟁 속에서 자유주의적으로 낭비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의 자유주의적 전유를 넘어서는 '더 많은 민주주의'의 대중적 허구(fiction)

(자연적(natural)이지도, 자의적(arbitrary)이지도 않은, 진리의 이데올로기적 번역이라는 의미에서)

의 원천으로 삼을 것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은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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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9/06/10 01:20 2009/06/10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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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분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아닐까 한다.

 

학교 다닐 때 내가 믿고 따르던 선배들, 그렇지만 지금은 운동을 그만 둔 선배들은,

대개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 중 누군가가

작심하고 전향하여 먼 훗날 바리케이트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하게 된다면,

내가 느끼게 될 감정이 아마 이런 것이리라.

 

나는 대선 전의 노무현, 그러니까 청문회 당시 노무현이나, 3당합당에 반대한 노무현,

그 전에 87 항쟁에 나섰던 노무현은 잘 알지 못했다.

내가 노무현을 알게 된 건 그가 대권 경쟁에 나설 때였고,

그 때 나는 이미 운동권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내가 운동을 하기 전에 노무현을 알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그에게 열광했을지는 미지수다.

운동을 하기 전 나는 광주 사람이었고,

광주에는 김대중이라는, 어쩔 수 없이 이런 말을 써야 한다면,

'전설적'인 자유주의 정치인이 있었으므로,

(나는 지금도, 92년 대선이 끝난 새벽 잠에서 깼을 때,

'김대중 씨가 떨어졌어'라며 부엌에서 울던 어머니를 잊지 못한다.

우리 부모님에게 김대중은 언제나 김대중 '씨'였다.)

DJ에게 환멸을 느낀 나에게, DJ의 경력이나 후광에 비하자면 어린애에 불과하고,

그런 왜소함을 보충해 줄 만한 이념/노선의 차별성도 발견하기 어려운

노무현은 별다른 매력이 없었던 것이다.

운동권 이전에 광주 사람이었던 나에게,

DJ 이후의 자유주의 정치인이란 아무런 기대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운동판에서 그와 실제로 마주치고 함께 일했던 선배들이라면,

공적인 평가와는 달리, 개인적으로 많은 회한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해와 동의는 별개다. 많은 공적인 인물들이 공/사의 구별을 잊은 채

과잉되게 표출한 사인으로서의 감정(그들과 노무현의 인연이 그 정도로 깊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은 동의하기 어려울 뿐더러, 대개 절도도 없는 것이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이 추도문은

근래에 본 글 중 가장 강렬하면서도 이성적이었다.

그건 아마 그녀가,

내가 살지 못한 시대를 살았으면서, 내가 산 시대를 같은 편에서 함께 겪은,

그리하여 두 시대를 이어줄 수 있는, 이 말의 모든 존경스러운 의미에서의,

'선배'이기 때문이리라.

 

 

------------------

 

 

집회도 없고 수련회도 없는 휴일은 외려 잠이 일찍 깨요.
아무 일도 없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언제부터 저는 평화가 실감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걸까요.
아무 일도 없는 이상한 토요일.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화면에 뉴스속보가 뜨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뇌출혈로 입원”
검찰조사가 시작되면 입원으로 시작해서 휠체어나 마스크가 구명보트처럼 등장하는 꼴을 늘 봐오긴 했습니다만 당신은
그런 쇼를 할 사람은 아닌지라 스트레스가 어지간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10여분 후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한 듯”이라는 자막이 뜨고 그제서야 뒹굴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날이 일구 우일구하기 여념없는 시시껍절한 방송이 중단되고 속보가 이어지더군요.
경호원, 사저뒤편, 부엉이 바위, 세영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심폐소생술, 열상 따위의 일상과 밀접하지 않은 단어들이 바
퀴벌레처럼 툭툭 튀어나와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정신적 공황상태까진 아니었지만 불면 탓으로 약간 멍한 채로 이틀을 보냈고 월요일 아침 부산역까지 가긴 했으나 조문
은 못하고 역 광장을 몇 바퀴 빙빙 돌다 왔습니다.
선뜻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문상객들의 거리낌없는 몸놀림이 참 부럽다고 생각하며.
잠이 안오대요.
다음 날 다시 부산역엘 갔습니다.
역 광장을 또 빙빙 돌다가 그냥 돌아가면 다시 닥칠 불면의 밤이 성가셔
문상객들의 뒤에 얼른 붙어 섰습니다.
방명록에 몇 줄 쓰기도 했습니다. 잠을 자야하니까.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습니다.
90년 변호사 접견 오셨을 때처럼
봉하마을 어딘가에 앉아 각자의 위치가 만들어 낸
그동안의 원망과 미움들을 두런두런 털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곧..
고맙고 죄송합니다.“
 
90년. 제가 첫 징역을 살 때였습니다.
접견을 오셨었지요.
보통 변호사 접견은 재판 전날 와서(사실 재판 전날도 안 오는 변호사도 많습디다만)
재판절차를 일러주고 이빨도 맞추고 하는데 재판날짜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였던지라
많이 의아했던 만큼 20년 전인데도 이리 생생하네요.
접견실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더군요.
보통은 재소자들이 한 시간 이상씩 주리를 틀면서 기다리는데.
요샌 교도소 반찬이 뭐가 나오냔 얘기, 여사에선 뭐하고 노냐는 얘기, 변호사가 해주던 징역살이 얘기, 남사에선 뭐하고 논다는 얘기,
법무부 시계도 가니까 재밌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서 징역을 잘 깨라는 얘기.
변호사가 접견을 와선 재판이야긴 한마디도 없이 노닥거리기만 하다 그 더디기로 유명한 법무부시계가 세상에 한 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가야겠네” 일어서시길래 하도 황당해서 물었습니다.
“왜 오셨어요?”
“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그리고 당신은 정치권으로 갔고,
정치권으로 갔다는 건 권력을 탐하는 변절로 규정하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으니
변호사비용을 거침없이 떼먹고도 사기꾼의 돈을 떼먹은 것 마냥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직하면 갚으마. 유전 발견하면 갚으마. 보물선 찾는대로 갚으마. 막연한 약속이 선임비였던 시절이었으니.
그게 인권변호사의 당연한 책무였으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상실감이었어요.

그 시절 당신은 우리들의 유일한 빽이었는데.
공돌이 공순이 편을 들어주는 가장 직책 높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있어 우린 수갑을 차고도 당당할 수 있었는데.
그때 직감적으로 생각했어요.
이제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겠구나.
재판장 앞에서 수갑을 찬 채 잔뜩 주눅 든 우리를 향해, “피고인은 무죕니다.”
외쳐 줄 사람이 이젠 없겠구나.
이제 재판에서 지더라도 찾아가 울 데도 없겠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부엉이바위인 크레인 위에 올라갈 때 따라 올라가지도 않겠구나.

그리고 당신을 잊었습니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없어서 혼자 진행했던 1심 재판에서 당연히 지고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왜 항소를 안했어요?” 라는
질문에 “항소가 뭔데요?” 라고 되묻던 저에게 “노동자가 항소를 알면 그건 노동자가 아니지.” 하던 말도 잊었고,
노동자도 이론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며 함께 했던 소모임도 잊었고,
군사정권 시절 해고된 노동자의 그 막막한 눈빛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유일하게 내 얘기를 그대로 들어주던 무료법률 상담소도 잊었고,
어느 날은 밤에 오라 길래 밤에 찾아갔더니 그날이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의 기일이라고
변호사 사무실 구석에 조촐한 제상을 차려놓고 아무 말도 없이 유령들처럼 절을 하던
그 뭉클하던 밤도 잊었고,
함께 같은 거리를 달리던 6월 항쟁도 잊었고,
최루탄 가루가 싸락눈처럼 내린 범냇골 국민운동본부 옥상에서 막걸리를 나누던 걸판지던 뒤풀이도 잊었습니다.

그리고 침례병원이 초량에 있을 때였습니다.

노동조합 조합원 교육에 초청을 받았는데 앞 시간 강사가 당신이었더군요.
당신은 내려오고 나는 올라가던 계단에서 마주쳤습니다.
난 참 어색하기가 짝이 없습디다.
그냥 모른 척 할라고 했습니다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지요?”
굳이 손까지 내미시더군요.
그때 대답을 했거나 웃기라도 좀 했으면 지금 잠을 이루기가 좀 쉬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출마한 대선에서 전 4번을 찍었습니다.
단 한 번도 단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외포리를 한번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생 1번을 벗어난 적이 없는
큰언니가 전화를 했더군요.
“이 노무헤니가 그 노무헤니지? 니 벤호사. 그 사람 찍었다. 너 인쟈 깜빵 안가지? 복직두 되갓지?” 얼른 대답할 말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제가 왜 “내 변호사”를 놔두고 4번을 찍었는지 우리 큰언닌 죽을 때까지 이해 못할 거예요.
2번과 4번의 극심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도 이리 막막한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그 미세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은 저의 재주로는 난망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뻐서 우는 사람도 있습디다만 이회차이가 당선된 거보다 노무혀이가 당선된 게 노동자들에게는 더 힘들 거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립은 깊어졌고 고착화되었습니다.
김영삼이가 당선되었을 때 운동권이 1/3이 떨어져 나갔고,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른바 재야가 사라졌고,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그야말로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았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해고될 때 그 무지막지한 자본을 향해 호통쳐주는 어른 하나 없습디다.
노동자들이 핏발 선 눈으로 거리로 나설 때 역성들어주기는커녕 죄 우리만 나무랍디다.
그거 아세요. 당신은 조중동이랑 열심히 싸우셨습니다만 우리에겐 조중동이랑 한편처럼 보인 거.

 “야~ 기분좋다!” 시며 봉하로 가셨을 때 오리농법보다 더 중요한 일은 농민들의 삶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왜 목숨 걸고 한미 FTA를 반대했는지.
그리고 전용철, 홍덕표 그들의 죽음에 당신이 늦게나마 사과를 하면 참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봉하마을을 갔을까요. 아마 갔겠지요.
그리고.. 김 주익 얘기도 했을까요. 아마 그 얘긴 못했을 거예요.
말로 꺼내긴 크나큰 상처였으니까.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말씀.
유난히 노동자들에겐 가혹하셨습니다.
2003년도 한진중공업에서 저는 한꺼번에 두 명의 지기이자 동지를 잃었습니다.
김 주익은 600여명 조합원의 명퇴에 맞서 2년을 싸웠고 노사가 합의를 했고
그 합의를 회사가 번복을 했고 그래서 크레인에 올라갔고 그 크레인 위에 129일을 매달려 있다가
아시다시피 목을 맸습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시대는 정말 지났을까요.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종종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인 것을..

저는 당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당신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지배가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시대에 그 꿈은 가장 허황되고 지리멸렬해졌습니다.
때론 우리가 품은 꿈이 너무 초라했고 궁색했습니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짤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격상됐고 그들은 언론과 자본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조차 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기주의를 꾸짖으십디다만 동료가 수백 명씩 짤리는 걸 목격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에게 내밀 손이 남아 있겠습니까.
저 살아남는데 써야지.

징역을 살 때 만난 사형수가 있었어요. 이 여잔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개털이었는데 새로 신입이 들어오면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샴푸나 속옷을 사달라는 거예요.
출소한 사람들이 쓰다만 물건들도 다 그 여자 차지였죠.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는 게 도덕의 눈으로 보자면
참 추접스럽습디다.
그 여자 집행되고 보니 샴푸나 속옷 나부랭이가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옵디다.
백분의 일도 못쓰고 죽었죠. 생에 대한 나름의 집착이었던 거죠.
샴푸 생길 때마다 빌었겠죠. 이거 다 쓰고 죽자.
정규직 노동자들은 삶의 벼랑에서 그런 심정으로 잔업하고 철야를 합니다.
얼마가 남았을지 모를 정규직의 삶을 그딴 식으로 저축하면서.
그 무렵쯤이었을 거예요.
변호사비용을 이제 그만 갚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당신의 시혜나 은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적이 될 거라면 호적수이고 싶었습니다.
실력도 한참 모자라고 열정도 전만 못하고 진정성마저 잃어 그리 되진 못했습니다.
그게 참 부끄러워요.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나 우리를 속속들이 아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고 남은 자들은 동네북이 되어 초딩들마저 두들겨대고 천덕
꾸러기가 되어 크레인엘 올라가고 굴뚝엘 기어 올라가도 언놈 하나 눈길주는 놈이 없어졌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 밖에 못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입 달린 사람은 죄다 침이 마릅디다만 고등학교도 못
나온 저 같은 노동자들은 당신의 시대에 대부분 절감해야 할 원가가 되어 구조조정 당했고 효율화를 위해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차라리 군사독재 시절엔 대드는 노동자만 짤렸으나 당신의 시대엔 남녀노소가 짤렸습니다.
서민의 벗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훨씬 더 까마득해졌습니다.
당신이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24년의 세월 동안 전 아직 복직도 못한 해고노동자로 찌질한 50대가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짧은 시간 동지였고 오랜 세월 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뜨겁고 바른.
만고 씰데없는 소립디다만 그래서 대통령 같은 거 하지 말았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
지금도 해요.

불안하고 불길한 기운으로 떠돌던 예감이 당신의 죽음으로 확연해집니다.
한 시대가 갔다는..

이제 상고출신이 변호사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양양한 가도가 보이고 그 길을 편하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의 있습니다!”
외칠 때, 그 외침에 뒤돌아보는 사람도 이제 더는 없을지도 몰라요.

만 명이 울어주면 천국에 간다했던가요.
천국에 가셨을 거라 믿어요. 진심으로.
김주익 곽재규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당신의 시대에, 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서러움으로 억울함으로 목 놓아 울었던
죽음들입니다.

당신처럼 벼랑 끝에 내몰렸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죽음을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란 적이 있었어요.
하도 야속해서. 노동자의 삶을 안다는 사람이 어찌 저럴 수가 있나 너무 미워서.
아무리 야속하고 미워도 그런 바람은 품지 말걸 그랬다 싶어요.
애증도 부질없어 졌습니다.

언젠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말들이 기형도의 시처럼
떠돌다 때때로 부딪히겠지요.
이제 변호사비용은 영원히 안 갚아도 되게 생겼습니다.
 
다음 생에 오실 땐, 너무 똑똑하게 오지 마시구려.
사법시험 같은 것도 합격하지 마시구요. 그냥 태생대로 기름밥 먹는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저는 당신에게 변절이라 손가락질 할 일 없이, 당신은 절더러 경직되었다거니 세상을
모른다거니 한심해 할 일 없이. 떠날 일도 보낼 일도 없이 그냥 내내 동지로.
그래서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다.
그 멋진 말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 남다른 정의감 그대로 만날 수 있길.
다시는 미워할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이렇게 미어질 일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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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9/06/05 16:03 2009/06/0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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