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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에 관한 발리바르의 글

제목은 "Structure. Method or subversion of ths social sciences?"로

원래 발리바르가 1990년대 중반에 쓴 것인데

(불어본 주소는 http://www.ciepfc.fr/spip.php?article210)

이번에 Radical Philosophy에서 영역했다.

다른 글들은 유료인데, 이 글은 무료다. ㅋ

(ww.radicalphilosophy.com/pdf/highlight_balibar165.pdf)

 

 

French Philosophy Since 1945: Problems, Concepts, Inventions, Postwar French Thought, Volume IV

 

 

발리바르가 공동편집자인 위 책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출간일이 계속 미뤄지다가, 지금은 3월 10일 발간 예정이다.

(March가 아니라 May였군...)

저 책이 나오면 구조주의에 관한 발리바르의 견해를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엔 꼭 나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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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6 14:15 2011/03/0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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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 하에서 사고'한다는 것 1

"J'admire que Matheron, ici, n'ait eu recours ni aux facilités de l'expilcation analogique (Althusser aurait cherché à penser la philosophie ≪sur le modèle de la politique≫, et occasionnellement aussi la politique ≪sur le modèle de la philosophie≫, ou d'une certaine philsophie), ni au formalisme très en vogue d'une théorie du ≪performatif≫ (qui pourrait sans doute être une façon de développer l'idée du ≪concept pratique≫ en tant que discours produisant des effets, ou trouvant sa réalité dans les effets qu'il produit, mais ne rejoindrait jamais l'idée althussérienne d'une ≪pensée sous la conjoncture≫, toujours déjà commandée dans ses contenus, ou ses problèmes, par les conditions d'un ≪fait à accomplir≫, et donc aussi d'une dissolution du fait accompli)."

- Etienne Balibar, "Une rencontre en Romagne", Louis Althusser, Machiavel et nous, Tallandier, 2009, p.27.

 

'정세 하에서 사고'한다는 것.

그것은 우선 정세가 제기하는 문제, '달성해야 할 사실'(fait à accomplir)의 가능성/조건을

사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특히 마키아벨리의 사례에서 보듯,

이는 '기성의 사실'(fait accompli) 또는 세력관계 안에서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정세가 제기하는 문제가 대개 '불가능성의 가능성'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정세 하에서 사고'하는 것은

한편으로 '기성의 사실' 또는 세력관계를 해체(dissolution)한다

는 의미에서의 '이상주의'와

다른 한편으로, 이렇게 해서 '기성의 사실'에서 풀려난 요소들이,

'달성해야 할 사실'의 가능성/조건을 이루게끔 연접(conjonction)시킨다

는 의미에서의 '현실주의'라는

'대립물의 통일'이 된다.

(물론 이런 의미에서의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는 매우 독특한 것이고

기성의 이상주의/현실주의와 많은 점에서 충돌할 것이다.)

이상주의를 통해서만 열리는 현실주의,

현실주의를 통해서만 실현되는 이상주의

라는 눈부신 역설.

 

알튀세르가 즐겨 쓰는 심상, '아무 데서 와서 아무 데로 가는 기차'를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항상-아직 기차는 도착하며,

새로운 시작 또는 차라리 '돌발'(surgissement)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성'일 뿐이고,

더욱이 '달성해야 할 사실'에 호의적이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우리는 닥쳐오는 정세를 우리의 구미에 맞게 선택할 수 없고,

좋든 싫든 이 주어진 조건을 재료로 작업해야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이 여건의 요소들이 호의적으로 마주치고 연접할 수 있는

'공백'(vide)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적 행위,

마키아벨리 식으로 말하자면 '(변)덕'(virtù)을 발휘할 때에만

기차/정세/여건은 우리를 '달성해야 할 사실' 쪽으로 조금이나마 가까이 이끌 것이다.

 

더 정교히 할 문제들이 있을 텐데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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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3 15:11 2011/02/1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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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으로서 현재

"Insurgence is not a top-down imposition of an already scripted future. It bubbles up from the past in places where present circumstances seem propitious for an irruption. In this view, the present is like a bog: leaky, full of holes, gaps, contradictions, and misunderstandings. These exist just beneath all the taken-for-granted assumptions that give the present its apparent consistency. I study this ethnographic present historically not to give a historian’s complete account. Rather, I use historical investiga­tion to show how the past always leaks through the present, breaking it up into heterogeneous elements, and permitting it to be recomposed and transformed. I use history to make an argument about the present."

- James Holston, Insurgent Citizenship: Disjunctions of Democracy and Modernity in Brazil,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9, p.34.

 

늪으로서 현재.

한번 읽은 것이지만, 다시 봐도 새삼 눈을 사로잡는 탁월한 비유다.

겉보기엔 평온하고 매끈한 현재의 표면,

그러나 그 아래서 부글거리다가 빈 틈이 보이면 기포로 솟아올라 현재를 찢어버리는 과거,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새롭게 열리는 미래.

벤야민의 '성좌로서 역사'에 비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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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0 20:27 2010/12/10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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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와 인간학/인류학

"Both demonstrates, one, that the hyperbolic extension was always already the condition for the construction of the structural models of the constitution of the subjectivities in particular, and second, that the frontiers of the boundaries of the disciplines within the field of the human sciences are totally, and completely arbitrary, or in Foucauldian terms, results from pure power-knowledge structures. They reflect themselves metaphysical or quasi-transcendental representations of the human. The only discipline that corresponds to the structuralist point of view is, I believe, a critical anthropology related to the multiplicity, and the historicity of the anthropological differences, therefore, permanently challenging the opposition of psychology and sociology or politics, individualistic and communitarian societies itself."

- Etienne Balibar, "From Structure to Rhizome - Transdisciplinarity in French thought, 1945 to the present: histories, concepts, constructions - STRUCTURE", 2010 (강연 녹취, 강조는 인용자)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론이 필요한지 한창 고민 중인 나에게

위의 언급은 희미하지만 어딘가 출구가 있음을 보여주는 빛이다.

(녹취니만큼 정확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지금 인류학과로 전과할 수도 없고(^^a), 어쨌거나 사회학을 선택했으니

뒤르켐-모스-레비스트로스-구조주의라는, 사회학 안의 인간학/인류학적 흐름

(물론 이건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곳곳에 도사린 이단점들에 가까울 것이다)

을 추적해 보고 싶다.

다행히 뭔가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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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7 19:17 2010/12/07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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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라는 현상액

"과거는 문학 텍스트 속에 빛에 의해 감광건판 위에 새겨지는 상에 비유될 수 있는 이미지들을 남긴다. 미래만이 그러한 음화(cliché)를 완벽하게 드러내는 효력을 가진 현상액을 갖고 있다." (앙드레 몽글롱)

- 발터 벤야민, <파사젠베르크> 묶음 N("인식론에 관해, 진보이론") 15a, 1

 

"폭격기를 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비행하는 사람에게 기대했던 것이 떠오른다. 그가 하늘로 올라간 이유는 ‘산꼭대기에 쌓인 눈을 구해 도시에 돌아와서는 한여름 무더위에 시달리는 거리에 눈을 뿌리기 위해서’였다." (피에르-막심 슐)

- 발터 벤야민, <파사젠베르크> 묶음 N18a, 2

 

과거가 기입해 넣은 것을 부활시키는 미래라는 현상액이라.

어떻게 이런 비유를 만들어들 내는 것일까.

 

폭격기가 세상을 파괴할 때

비행기를 만든 사람들의 꿈을 저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벤야민은 그 순간에 오히려,

세계의 파괴로 이어진 한 계열의 시간을 반성하면서

그 계열로 환원되지 않는, 그 동안은 압도되어 숨죽이고 있던,

그러나 우리를 새로운 계열의 시간, 말 그대로 '미래'로 안내할 수 있는

위대한 꿈을 발견했다.

때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그 말의 뜻에 값하는 '미래'를 여는 것이라는

역설을 눈부신 진리로 만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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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6 15:55 2010/11/0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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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위대함은 어디서 오는가

"great authors or discoverers are always accompanied, followed, and sometimes preceded by minor authors who observe the same facts and make the same discoveries. But great authors are historically great because they have understood the historic importance of their discovery, have made it the center of their work, and have made of that work a public act, capable of modifying the theoretical situation."

- Louis Althusser, Letters to D., Writings on psychoanalysis : Freud and Lacan,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6, p. 37.

 

기질상 통이 작고 야심이 없는 편이며

거기에 큰 불만 없이, 많은 경우엔 감사하며 살아가는 나이지만,

그래도 저런 글을 보면 내가 너무 쪼잔한 게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그나마 저런 문제를 계속 고민케 하는 것이 나에겐 철학이다.

철학자가 되지는 못하지만, 철학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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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7 22:26 2010/10/2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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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급투쟁을 한다

요샌 통 세상 돌아가는 일을 모르고 사는데

우연히 지나가다 프랑스 파업 투쟁 얘길 들었다.

거기서 '나는 계급투쟁을 한다'(JE LUTTE DES CLASSES)

라는 구호가 등장했다고.

이 말이 구호로 등장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이론가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대중들 사이에서, 공적인 구호로

계급투쟁이 다시 귀환한 것을 환영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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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5 18:24 2010/10/2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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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에 관한 발리바르의 또 다른 글

어제 아는 분께

발리바르가 공산주의에 관한 쓴 글이 또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요새 발리바르가 '맑스, 그리고 맑스주의에 관한 11 테제'(!)를 구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 중 6 테제와 7 테제를 발췌하여 <국제 맑스 총회>에서 발표한 것이 아래 글이다.

(http://actuelmarx.u-paris10.fr/cm6/com/MI6_Plenum3_%20Balibar.doc)

 

이것 말고도 Rethinking Marxism Volume 22 Issue 3 2010

에도 공산주의를 비롯한 여러 문제에 관한 발리바르와 네그리의 대담이 실렸다.

(http://www.khukuritheory.net/equaliberty-the-common-and-communism/)

아무래도 발리바르가 공산주의에 관한 책을 한 권 쓸 모양이다.

기대 만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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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6 20:11 2010/10/1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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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상적인 말

'먹는 입'과 '말하는 입'.

말 참 기가 막히게 만든다.

(넓은 의미의) 경제와 정치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더욱이 보편주의를

'먹는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가능성, 즉 함께 먹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능성'

으로 정식화할 수 있다니.

이게 문학의 힘일까.

굳이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대립시키려는 것에는 찬성하기 어렵지만

문학과 철학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정도로 이해한다면, 뭐.

 

진은영은 랑시에르를 비롯한 프랑스 철학을 가지고

한국에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해 보여주는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임에 틀림없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419448.html)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0826)

 

‘절차에 갇힌 소통’ 인문학으로 구출을

공동체 위계·폐쇄성 둔 채
규범 따져봐야 ‘불통’ 못깨
현실 뛰어넘는 상상력 필요

 

이대 학술대회 진은영 연구교수 제안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갈등이 다양하게 분출할수록 누구나 ‘소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진짜 소통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는 ‘국민들의 뜻에 따라’ 정책을 집행한다지만, 사람들은 ‘소통 없는 정부’를 비판하며 촛불집회에 나선다. 그들에게는 소통 대신 ‘불법 집회 참가자’ 딱지가 돌아온다. 소통만 있으면 어떤 문제든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것 같지만, 단지 서로의 입장과 의사를 주고받는다고 해서 소통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이화여대 탈경계인문학 연구단은 지난달 30일 ‘소통을 위한 인문적 상상’이라는 제목의 학술대회를 열었다. 철학자이자 시인인 진은영(40)씨는 ‘소통, 그 불가능성 안의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여는 발표를 통해 진정한 소통의 어려움과 그 가능성에 대해 철학적인 정리를 시도했다.

진씨는 사사로운 이해관계나 편견 등 방해 요소들만 제거하면 왜곡 없는 투명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일반적인 관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소통은 어떤 공식처럼 규범화할 수 없는 행위이며, 각자의 입장 속에서는 이미 보내야 할 메시지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메시지를 주고받는 ‘절차’에 대해 따져봐도 ‘소통의 불가능성’만 더해간다는 것이다.

그는 한나 아렌트, 위르겐 하버마스 등이 시도한 ‘소통의 규범화’에 비판을 들이댄다. 아렌트는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휘둘릴 수 있는 경제적 사안들이 아닌, 오직 공동의 문제만 다루는 정치적 영역에서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봤다.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적 합리성’ 개념을 통해 진실성·진리·정당성 등이 모두 충족되는 말하기만이 보편적인 소통이 가능하다고 봤다. 진씨는 이들의 시도가 ‘먹는 입’과 ‘말하는 입’의 구분을 통해 소통을 보편적 규범으로 만들려 했던 것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진씨는 “먹는 입과 말하는 입의 구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에는 다양한 모습의 현실적인 불평등·불균형이 존재하며, 이는 어떤 종류의 규범화를 통하더라도 끊임없이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동한다. 게다가 경제적인 조건은 말하는 이의 자리를 결정해주는 핵심적인 구실을 하기 때문에 “경제적 사안과 관련된 문제야말로 소통의 핵심적인 주제로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한 몸’ 이미지를 통해 소통이 일어나는 공동체의 위계화와 폐쇄성에 비판의 초점을 맞춘다. 공동체 내부 주체들은 소통 주체들이 각자 서 있는 입장이 모두 다르더라도 ‘전체 공동체를 위한 것’을 내세우며, 공동체 내부의 위계질서를 타고 전해져오는 메시지는 별다른 소통 없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또 공동체 밖에 있다고 여겨지는 ‘절대적 타자’와는 소통하는 방법 자체가 없다. 어떤 공동체가 ‘관용’에 근거해 난민들을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난민 스스로는 아무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소통의 불가능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절차로 굳어져버린 소통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씨는 ‘두 주체 사이에 확정된 의미를 서로 전달·교환하는 방식의 소통’을 벗어나기 위해선 소통의 당사자들이 아예 기성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본다. 이를테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평등한 현실을 외면하는 대가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사용자와의 협상에서 자신들의 몫을 챙기며 경제적 투쟁에 몰두할 때 그들은 오직 ‘먹는 입’으로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기존 경제적 재분배 방식에 균열을 일으키며 여성·비정규직·이주노동자들의 ‘먹는 입’과 함께 말하기 시작할 때, 그들의 입은 ‘먹기도 하면서 말하는 입’이 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나에게 낯설기만 했던 ‘절대적 타자’로부터 나와 함께할 수 있는 근접성을 발견하는 ‘탈경계적 보편주의’다. 진씨는 이를 “어떤 이들이 우리를 향해 자신들의 고통과 현실에 대해 호소할 때, 바로 그 순간 그 문제가 우리들이 함께 해결해야 하는 공동의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내게 주어진 고정된 정체성을 벗어날 때에만 비로소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사회과학으로 대표되는 ‘소통의 과학’과 다르게 ‘소통의 시학’으로서 인문학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새로운 주체를 만드는 작업에 대해 사회과학이 여러 문제들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과 연구를 이뤄낸다면, 인문학은 현실적 조건들을 뛰어넘는 다양한 상상력을 발명해낼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주체를 상상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진씨는 “새로운 주체는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부단한 실천 속에서 만들어지며, 그것은 당연히 기성 질서와의 ‘불화’를 겪는다”며 “그렇지만 이런 불화의 과정이야말로 소통의 가능성을 실현시키는 것으로 이를 절차라는 이름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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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4 22:23 2010/10/14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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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에 관한 발리바르의 최신글 두 편

Le genre du parti. Féminisme et communisme : un recours utopique? (2010)

(http://www.ciepfc.fr/spip.php?article202)

Remarques de circonstance sur le communisme, Actuel Marx, n° 48 (septembre 2010)

(http://socio13.wordpress.com/2010/10/07/etienne-balibar-remarques-de-circonstance-sur-le-communisme/)

 

며칠 전 첫 번째 글을 발견하고, 해야 할 일을 내팽긴 채 하루종일 저 글만 읽었는데

오늘은 아래 글을 찾았다. 학교에 Actuel Marx가 들어오지 않아 어떻게 저 글을 구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어떤 의인이 인터넷에 글을 올려 놓았다.

왠지 오늘도 다른 일을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읽고 싶은 글이나 주제는 정말 너무 많다.

발리바르의 첫 번째 글이 다루는 주제이거니와,

최근 새삼 관심이 가는 문제가 70년대 말 유로공산주의 논쟁이다.

대략 뭐를 읽으면 될 것 같다는 목록도 어렴풋이나마 잡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어쨌든 좋은 글 찾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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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0 15:28 2010/10/1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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