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쓴 농담

어제 한 친구를 만났는데

내가 요새 가장 강하게 동조하는 정서가 억울함이라는 내용의 글이 내 블로그에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런 기억이 없었는데

아마 이금이 씨 책에 관한 글에서

'내가 가장 강하게 동조하는 정서가 억울함'

이라고 한 대목을 얘기한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내가 '요새' 동조하는 정서는 아니고

내가 '원래' 가장 강하게 동조하는 정서다.

이걸 주제로 2004년쯤 글을 하나 쓴 게 있다.

문득 그 글이 생각나 퍼 온다.

 

-------------

 

정신없던 지난 한주를 보내고
이제 원래 하고 있었고 하려 했던 일들을 시작하려 한다.
특히 '정신분석'.
어제 드디어 따로 노트도 만들고 그린 책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당분간은 이거 정리하는 데 주로 힘을 쏟을 참이다.

그린 책을 다시 읽다 보니
'dead mother complex'라는 게 나온다.
죽 읽다가 이걸 '둘리 컴플렉스'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겠지만 둘리는
느닷없이 빙하기를 맞아 엄마 공룡과 이별한다.
이때 엄마 공룡은 급속냉동되어 얼음 속에 갇힌다.
즉 '매장'된 것이 아니라 살아 생전의 상태 그대로
그렇지만 차디차게 얼어 접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둘리에게 있어 엄마는 죽은 것도 그렇다고 산 것도 아니다.
이게 그린이 말하고자 하는 상황과 유사하지 않은가?

물론 이건 농담이다. 즉 진지하게 하는 얘기는 아니다.
따져 보면 사태에 적합한 개념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굳이 이런 농담을 하는 것은
내가 느끼기에 상황 면에서 좀 유사한 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둘리라는 단어를 통해
'dead mother complex'에 대한 나의 관계를
설정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어릴 때는 그렇게 눈물이 많았으면서
어느 시점 이후에는 전혀 울지 않게 된 후
난 그 사이에 내가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점이 있었겠지만
어릴 적 나를 울게 만들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면서
실제로는 내가 그렇게 많이 변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즉 나는 원래부터 '슬퍼서' 울어본 적은 거의 없다.
다만 '서러워서', '억울해서' 울었을 뿐이고,
그러니까 그런 상황을 당한 주인공과 동일화될 때만 울었다.
일종의 '(피해)망상'인 셈이다.

내 기억에 난 '둘리'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그 한 편 동안 세 번 이상을 울었고
다시 볼 때마다 또 울었다.
내가 이 애니메이션을 볼 때쯤엔
눈물이 많이 줄어들었음을 감안할 때 좀 이례적이다.
주로 둘리가 잘못한 게 아닌데 누명을 쓰고 쫓겨나는 장면
에서 울었는데, 이는 망상의 연장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둘리가 그런 상황을 겪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엄마와 그런 식으로 이별했기 때문이다.
그는 엄마와의 이별이 너무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그리고 그 이별의 방식이 외양을 보존한 냉동이었기 때문에
엄마를 '애도'하지 못한다. 그는 항상 엄마가 살아 있다고 믿고,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마다
'1억년전 옛날이 너무나 그리워 보고픈 엄마 찾아 모두 함께 떠나'
려고 한다. 즉 그는 '죽은 엄마'에게 사로잡혀 있다.

난 혹시 그런 둘리와 동일화했던 게 아닐까?
물론 이건 농담이다.
이 같은 둘리의 상태는 그린의 개념과도 많이 다르고
(일단 둘리는 엄마와의 '과거의 행복'을 기억하고 있지만
'dead mother complex'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엄마의 갑작스런 변화 때문에 과거 자체를 상실한다.
그/녀들은 엄마와 이별하면서 사랑의 능력과도 이별한다)
또 내가 둘리의 그런 상태와 동일화했다는 것도 미심쩍다.
(이건 그냥 과거 망상의 연장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이렇게 하는 것은
'재미'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 사실 자체가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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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8/12/08 21:21 2008/12/0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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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에서 경계로

'~란 무엇인가?'는 본질의 문제설정을 규정하는 핵심 질문이다.

이 같은 본질주의는 여러 가지 인식론적, 정치적 문제를 갖는데

이를 비판할 때 우리가 흔히 부딪칠 수 있는 반론은

'그렇다면 ~을 ~이 아닌 것과 구별하는 개(별)성이 전혀 없단 말인가?'라는 물음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성립한 개(별)성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럴 때는 대개 문제를 얼버무리거나 절충하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을 본질이 아닌 '경계'(border)의 문제로 제기하고

그 기원적 자의성과 사후적 물질성, 곧 '역사성'을 사고한다면

얘기는 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것 중 하나가 (근대) 문학이다.

(하지만 철학이나 예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분명히 문학이라는 것이 있긴 한 것 같은데,

그것을 어느 하나의 본질로 약분하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모든 게 다 '문학적'이라는 식으로 말하면

문학을 통해서 노리고자 했던 모종의 효과가 다 무화되는 것 같고...

 

최근 문학에 관한 데리다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거기서 그는 다음과 같이 간단히 말한다.

'모든 것을, 모든 방식으로 말하도록 허용하는 제도화된 허구이자, 허구적 제도'라고.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자신의 관습과 규칙 등을 가지고 있는 역사적 제도, 또한 원칙적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 규칙을 자유롭게 깨뜨리며, 규칙을 전위시키고, 이로써 자연과 제도, 자연과 관습적 법, 자연과 역사 사이의 전통적 차이를 설립하고, 발명하며, 심지어 의심하는 힘/권력을 부여하는 허구의 한 가지 제도/설립"(Jacques Derrida, This Strange Institution Called Literature - an interview with Jacques Derrida, p. 37, Acts of Literature, Routledge, 1991)이며,

그런 한에서 그것은 '모든 것을 말하는 것에 대한 권위부여' 및

'근대적인 민주주의 이념의 도래'와 결부되어 있다고.

 

이 같은 관점에 따르면 예컨대 고급 문학 / 대중 문학 등의 구별을 써서 후자를 배제할 순 없는데

왜냐하면 문학은 하나의 경계이자 제도이지, 어떤 본질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관점에 따르면 예컨대 이 같은 제도가 설립되기 이전에 쓰인 기록,

예컨대 호머의 [일리아드], [오디세이] 등은 그 자체로는 문학이 아니다.

다만 이들이 문학이라는 근대적 제도 안에 들어와서

이 제도에 고유한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해석되는 한에서,

들뢰즈를 흉내내 말하자면 '문학-되기'(becoming-literature) 운동의 일부가 되는 한에서,

그것은 문학이 된다.

또 일차 목표가 '정치적 효력'의 발효에 있지, '표현의 자유'에 있지 않은 칙령 같은 기록 형태 역시

그 자체로는 문학이 아니다. 물론 그 칙령이 문학이라는 근대적 기록 형태에서 영감을 길어 오고,

또 문학 제도 안에서 그 본래 목표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유될 수 있는 한에서,

문학과 무관하지 않고, 나아가 특정 과정을 통해 문학으로 탈바꿈할 수 있지만 말이다.

 

여기서 우리의 논의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접근이 다양한 문학을 포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으면서도

동시에 문학과 문학이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분명한 기준 역시 갖는다는 점이다.

이는 여기서 사용되는 개념이 '본질'이 아닌 '경계' 또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경계/제도는 한 편과 다른 편을 구별하고

사후적으로 자신의 경계/제도에 속한 것들 안에 심지어 본질 비슷한 것을 (재)생산할 수도 있지만,

설립 때 자의적(arbitrary, '자연적/본성적'(natural)이 아니라 '인공적'(artificial)이라는 의미에서)이고

자신 안에 다양하고 심지어 적대적인 경향들을 포함할 수 있으며

(기원적 자의성을 갖기 때문에) 정치적/역사적으로 변화가능하다.

 

말하자면 발리바르가 루소에게서 취한 질문,

곧 '인민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인민을 인민으로 만드는가?'처럼

'~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을 ~으로 (재)생산하는가?'라고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 곳이야말로 정치와 철학이 만나는 곳이다.

레닌, 그리고 그를 읽은 알튀세르가 말한 것처럼

정치는, 그리고 철학은 다름 아닌

선을 긋고, 선을 지우며, 다시 선을 긋는 끝없는 행위 자체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정치와 철학에 고유한 윤리 역시 나올 것이다.

'적법한 강제력'을 정치의 특수한 수단이라고 정의한 막스 베버는

이로부터 '정치의 모든 윤리 문제가 지닌 특수성'이 나온다고 말했다.

곧 '모든 강제력 속에 숨어 있는 악마적인 힘과 관계를 맺는' 것에 관한 반성과 책임이 그것이다.

이런 사고 방식에서 착상을 얻는다면,

이 편과 저 편 사이의 선을 긋는 (자의적) 행위를 정치와 철학의 정수 중 하나라 규정할 때

그 행위자들에게 부과되는 윤리적 문제는 그 무엇보다,

저 편과 이 편이 '적(敵)과 아(我)', 곧 군사주의적 용어로 번역되고,

여기에 적에 속한 이들에 대한 절멸 충동과 아에 속한 이들에 대한 획일화 충동이 달라 붙는 것

을 반성하고 책임지는 것이리라.

 

곧 정치적 갈등과 적대가 군사(주의)적 갈등과 적대로 전환되는 것을 막고,

그렇다고 비폭력과 절대적 평화의 유토피아(아마도 실제로는 디스토피아)

에 따라 정치적 갈등과 적대를 해소하는 것도 아니라,

갈등과 적대를 정치적 형태로 '지속'하고 '보존'하는 것,

그리하여 기존의 구조를 혁신할 새로운 대중들과 정치적 주체가 항상-아직 입장할 수 있는

정치적 틈이 결코 닫히지 않게 투쟁하는 것,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스스로 역사의 메시아로 등장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정치가 아니라

메시아의 도착을 기다리며 그/녀들이 들어 올 문을 열어 놓는 세례자 요한의 정치,

(물론 이는 너무 이분법적이며, 사태는 아마 훨씬 더 내재적이고 변증법적일 것이다)

그것이 지금 내가 이해하는 '시민인륜'(civilite)의 정치의 정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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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8/12/01 15:57 2008/12/0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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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 아나키즘 비판의 쟁점

퀜틴 스키너의 책을 읽다가 이 문제에 관한 생각을 연장해 본다.

 

<과연 고대 공화국과 같은 민중 국가의 신민들만이 자유롭고 왕국의 신민들은 모두 노예일까? 홉스의 자유론은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앞서 보았듯이 홉스에 의하면, 인간이 신민이 된다는 것은 국가 주권에 의해 제정된 법에 의해 안전을 보장받으면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하면 국가의 신민으로 산다는 것은 법에 종속해서 산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는 간섭과 방해의 부재를 뜻하는데 법도 인간의 행동을 간섭하고 방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민의 자유라는 것은 법이 간섭하지 않고 방해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뿐이다. 즉 신민의 자유에 대해서 논한다는 것은 바로 법의 침묵에 대해서 논하는 것일 뿐이다.>

- 조승래, 「노예의 자유를 넘어서」, pp. 41~42 (퀜틴 스키너,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푸른역사, 2007 수록 논문)

 

자유와 법(따라서 국가)의 관계는 무엇인가?

홉스(를 읽는 스키너를 읽는 조승래)에 따르면 이 문제를 사고하기 위해선

자유 개념을 분할해야 한다. 여기서 이사이아 벌린이 말한 저 유명한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구별이 등장한다.

전자가 '~으로부터의 자유'라면, 후자는 '~에 대한 자유'다.

 

주지하듯 홉스는 자연 상태와 시민/사회 상태를 구별한다.

전자에서 인간은 자유롭지만 그만큼 위험하다.

이 때문에 자연 상태에서 누리던 자유의 일부를 양도하고 국가(의 법)에 신민으로 종속되면서

그 대가로 안전을 얻는 것, 그것이 바로 시민/사회 상태다.

후자에서 인간은 덜 자유롭지만 그만큼 더 안전하고,

이로써 국가라는 필요악에게 양도한 자유 이외의 나머지 자유를

국가의 보호 아래서 안전하게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바로 홉스의 기획이다.

 

홉스가 볼 때 자연 상태가 끝난 상황에서 적극적 자유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소극적 자유일 뿐이며,

국가(의 법)에 대한 인간의 관계는 말의 강한 의미에서 복종적 관계다.

대신 국가(의 법)이 간섭하지 않고 침묵하는 곳에서 우리는

정말로 안전하게 소극적 자유, 곧 '국가(의 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홉스의 이론이, 아마도 그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말의 강한 의미에서 '이론적 아나키즘'으로 전유될 수 있음을 발견한다.

예컨대, 국가를 '필요악'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러나 소극적 자유의 공간을 확대하기 위해,

국가를 최소화하자는 자유주의적 기획은

홉스의 문제설정 안에서 정당한 권리를 갖고 전개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다.

또, 국가를 '필요악'으로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국가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역설하며

(이는 주로 소극적 자유 개념을 발본화하는 것이다)

국가의 폐지를 주장하는 정치적 아나키즘적 기획 역시

홉스와 정반대의 결론에 이르는 것이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동일한 문제설정 안에서

전개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선택지인 것이다.

 

과연 맑스주의는 이 같은 이론적 아나키즘의 변종들과 다른

정치적 기획을 제시했는가? 나는 발리바르의 질문을 이렇게 이해한다.

예컨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은 정말 자유주의와 구별되는가?

또 다양한 꼬뮌/평의회 개념은 어떤 점에서 정치적 아나키즘과 구별되는가?

혹 맑스주의는 정치적 아나키즘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적 비판을,

그리고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정치적 아나키즘에 따른 비판을 수행하면서

끊임없이 동요하지 않았는가?

 

물론 이 동요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이는 자유주의와 아나키즘으로 환원되지 않는 자신의 정치적 거점을 찾아 내려는

필사적인 노력일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그 거점을 확보하지 않는 한 맑스주의가 어느 한 쪽으로 끌려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우리는 그 동안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잘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 외 어떤 이론적/정치적 자원이 필요할까?

그 중 하나가 '공화주의'일 수 있다는 것이 요즘 나의 생각이다.

물론 공화주의 역시 극히 다양한 판본을 갖기 때문에

이는 즉각 많은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예컨대 칸트는 민주주의에 대한 '테르미도르적' 대안으로 공화주의를 정의했고

남한의 공화주의는 최장집을 필두로 한 공화주의 우파의 헤게모니 아래 있다.

대부분의 공화주의자들은 '인간의 자의적 지배'의 대안으로 '법치'를 강조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발본적 비판을 전제로 한 공화주의의 좌익적 전유 쪽에

나는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발리바르가 헤겔을, 아렌트를, 또한 마키아벨리와 스피노자를,

비판을 전제로 점점 더 많이 얘기하는 것을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어쨌든 이들은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다면) '정치주의'의 전통에 서 있으며

그 곳을 우리가 좀 더 탐색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 나의 잠정적 결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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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8/11/29 14:58 2008/11/2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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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took some time to understand, against our own political interests,
that the state, politics, citizenship, and the relation of citizenship to nationality

were not future objects for Marxist theory but were inaccessible to that theory;

they were not only momentary blind spots,

but the absolute limits of any possible Marxist theoretization.
Not because of Marxism’s much-decried economic reductionism,

but because of its anarchist component.


Balibar came to see that the “theoretical anarchism” inherent in Marxism denied it the tools to master either Soviet state socialism, in which “the discourse of the withering away of the state gave rise to a practice which supported an omnipotent state,” or the national populism of democratic capitalist states, where “individuals fear the state—particularly [those] most deprived and the most remote from power—but they fear still more its disappearance and decomposition. The anarchist and Marxist tradition,” Balibar contended, “never understood this, and has paid a very heavy price.” Balibar no longer foresees the nation or the state fading away, but instead redefinitions, recompositions of them, and this has become the terrain of his struggles since his departure from the party.

 

- Don Reid, Etienne Balibar: Algeria, Althusser, and Altereuropéenisation 中, South Central Review 25.3 (Fall 2008)

 

위의 글에서 발리바르는

이른바 '이론적 아나키즘'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이 사고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국가, 특히 근대 국가와 대중들 사이의 현실적/상상적 관계일 것이다.

 

개인들이 국가를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그것의 소멸과 해체를 더 두려워하는 현상.

'국가는 폭력이다'라는 사실을 대중들이 정확히 알지만,

그런데도 국가를 여타의 '사적' 폭력과 다른 식으로 체험하면서 그것에 집착하는 현상.

 

그러므로 결국 문제는 폭력과 대중들의 주체화 사이의 갈등적 관계를 심도 깊게 분석하는 것,

그리고 '폭력의 합법적 독점'으로 대표되는, 안전에 관한 근대 국가적 해법보다

더 문명적이고 더 효과적인 해법을 내놓는 것이다.

 

그 출발점에서, 나는 여전히 빅토르 위고의 다음과 같은 충고가

여전히 비길 데 없는 가치를 갖는다고 믿는다.

대중들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들을 사고하기 위해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에 관해서.

 

<그런데 추악하다 해서 연구를 배제한다는 법이 있겠는가? 질병이 의사를 몰아내는 법이 있겠는가? 독사며, 박쥐며, 전갈이며, 지네며, 독거미 등을 연구하기를 거절하고 ”아이 징그러워!“라고 말하면서 그것들을 본디의 어둠 속에 팽개쳐버리는 그런 박물학자를 사람들은 상상할 수가 있겠는가? 은어를 외면하는 사상가가 있다면 그것은 궤양이나 무사마귀를 외면하는 외과의사나 진배없을 것이다. 그것은 또 어떤 언어의 사실을 조사하기를 주저하는 언어학자와도 같고, 인류의 어떤 사실을 탐구하기를 주저하는 철학자와도 같을 것이다. 왜냐하면 은어는 문학적 현상이자, 사회적 현상으로서 이것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잘 설명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데 은어란 본래 무엇인가? 은어란 비참 그 자체의 언어인 것이다.>

-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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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8/11/25 15:12 2008/11/2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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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 11

"철학자들은 세계를 서로 다르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최근 발리바르의 <맑스의 철학>을 다시 읽으며

이 테제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여기서 내기에 걸린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맑스는 요즘 말로 '수행성'(performativity)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이론, 또는 보다 일반화하자면 '말'에서 탈출하는 것으로까지 이해되기도 했고

맑스 자신도 그런 열정에 사로잡혔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지만,

그렇게 되면 '道可道 非常道'의 역설, 즉 말로 표현하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지만

그런 도/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적 궁지에 이르게 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이론에서 실천으로의 이행', 또는 '이론 안에 있는 실천으로의 출구'

그도 아니라면 '실천이라는 이론외적 물질성에 의한 이론의 재편'

정도로 정식화 해 보자.

 

이 때 '해석'이라는 관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독일 관념론이 정교화한 '표상'(representation) 개념,

결국 세계 안에 '조화'로운 '질서'가 내재한다

(따라서 이론의 역할은 이 질서를 찾아내는 것이고,

정치의 역할은 이 질서를 구현하는 것, 더 정확히 말하면

이 같은 기원적 질서를 파괴하려는 자('敵', '惡')들을 억압하고 통치하는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다.

 

반면 맑스는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라는 그의 유명한 선언이 말하듯

세계가 갈등과 투쟁(그러나 이는 '무질서'는 아니다) 위에 서 있으며

그런 한에서 세계는 말의 강한 의미에서 '역사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볼 때 이론은 이 갈등과 투쟁의 일부가 되는 한에서

실천적이 될 수 있다.

 

이는 '물질'의 관점, 심지어 '노동자'나 '프롤레타리아'의 관점을 취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그렇더라도 그것이 '해석', 따라서 '질서'라는 이념에 따라 조직되어 있다면

실천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또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념론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론이 객관성이나 과학성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실제로 투쟁을 해 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이 편과 저 편의 힘 관계를 최대한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분석하지 못하는 이론이란

현실의 투쟁에 아무런 쓸모가 없거나 심지어 해악적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계가 정해진 방향과 질서에 따라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투쟁으로 이루어진 불안정한 힘의 균형 위에 서 있으며

누가 이기고 누가 질지 선험적/목적론적으로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할 때,

스스로의 역사적 정당성에 대한 자부가 대개 저 편의 강점과 이 편의 약점, 객관적 힘 관계를

파악하는 데 인식론적 장애물이 된다는 점을 깨달을 때,

이론은 실천적인 만큼 객관적이고, 객관적인 만큼 실천적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이론이 실천에 기여하는 한 가지 방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는 대중들을 실천으로 조직하고 이 조직화가 지속하는 데 필수적인

'역사적 정당성에 대한 자부' 곧 이데올로기다.

약간의 무리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여기서

이론은 실천적인 만큼 주관적/주체적이고, 주관적/주체적인 만큼 실천적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실천에 기여하는 이론은

그 자체가 둘로 나뉘고 갈등한다. <과학-실천>, <이데올로기-실천>이라는

<이론-실천>의 두 복합체 사이의 갈등.

사태가 더욱 복잡해지는 것은, 물론, 이 복합체 두 가지가 갈등적으로 결합될 때에야

유효한 실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없는 과학은 무력하고, 과학 없는 이데올로기는 맹목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맑스주의(하지만 그 이전에 마키아벨리즘)의 독특성을 사고하기 위해

'당파적 과학'이라는 일종의 형용모순

(이는 말하자면 '주관적 객관성', '특수적 보편성'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리고 그 형용모순과 갈등을 북돋는 데 맑스주의의 진실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많은 경우 이 갈등의 한 항을 억압함으로써 결국 맑스주의 자체를 파괴한 것은

아마도 위와 같은 모순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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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8/11/23 17:50 2008/11/2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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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유진과 유진> 중

<차는 바닷가를 낀 채 달리고 있었다. 바다는 도로의 형태나 위치에 따라 바로 옆에 있다, 먼 곳에 있다, 낮은 곳에 있다 하며 따라왔다. 하지만 어느 바다든 여전히 아우성치고 있었다. 엄마의 침묵이 차츰 내 마음을 짓눌렀다. 침묵의 무게가 더 할수록 가슴 밑바닥에선 내뱉고 싶은 말들이 바다처럼 아우성치고 있었다.

"왜 그랬어! 그때 왜 그랬어? 내 잘못도 아닌데 왜 그랬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나는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끼익, 차가 급정거를 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의 얼굴은 혼이 달아난 듯 퀭했다. 뒤에서 빠앙! 하고 화난 듯한 경적이 울렸다. 엄마가 정신이 든 듯 차를 갓길로 옮겼다. 그 도로는 높지는 않았지만 절벽이었다. 파도가 쉴 새 없이 절벽에 와 부딪쳤다. 절벽에 몸을 부딪쳐 멍이 든 것처럼 그 바다는 검푸른 바다였다. 엄마가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런데도 나는 조금 전에 내가 정말 소리를 질렀는지 아니면 상상이었는지 혼란스러웠다.>

 

- 이금이, <유진과 유진> 中 pp. 261~2, 푸른책들, 2008

 

--------------------

 

이금이 씨는 최근 아주 흥미롭게 읽는 작가다.

아이들 수업 때문에 읽게 되었는데

어른들이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특히 위의 장면은 너무 인상적이다.

내가 가장 강하게 동조하는 정서가 억울함이어서 그런 것도 있고,

침묵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느닷없이 'acting out'을 한 뒤

끼익 소리를 내며 급정거하는 차, 혼이 달아난 엄마 얼굴, 뒤에서 울리는 화난 경적 소리, 도망치듯 간 곳에 펼쳐진 절벽, 파도의 부딪침, 멍든 바다,

그리고 이 장면에 관한 실재적이면서도 상상적인 체험...

 

아마도 이런 탁월한 묘사가

문학의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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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8/11/23 15:58 2008/11/2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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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이야기 보론

엊그제 열차에 관한 글을 썼다.

그리고 그 때쯤 정태춘.박은옥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 글을 쓰고 나서야 의식하게 되었는지,

아님 그 노래가 내 무의식에 기입되어 그 글을 쓰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에서

앞선 글의 착상 중 하나가 그대로 담겨 있는 걸 발견했다.

 

 

우리는 이 긴긴 터널 길을 실려가는

희망없는 하나의 짐짝들이어서는 안 되지

 

우리는 이 평행선 궤도 위를 달려가는

끝끝내 지칠 줄 모르는 열차 그 자체는

결코 아니지 아니지 우리는

 

무거운 눈꺼풀이 잠시 감기고

깜빡 잠에 얼핏 꿈을 꾸지

열차가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찬란한 햇빛 세상으로

거기 사람들 얼굴마다 삶의 기쁨과 긍지가 충만한

살 만한 인생 그 아름다운 사람들

 

 

중간에 나오는 그 대목이다.

인간,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치적 주체는

'짐짝'(사물)도 아니고, '열차'(신)도 아니다.

그/녀는 피곤에 지친 유한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찬란한 햇빛과 살 만한 인생을 꿈꾸고 거기에 도착할 수 있는 이들이다.

물론 운이 좋아 제대로 된 열차를 타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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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8 11:05 2008/11/1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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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후배랑 얘기하면서 생각난 몇 가지

어제(오늘 새벽인가? TT) 한 후배랑 이야기하면서 생각한 것.

 

첫 번째는 결정과 책임, 선택과 정정에 관한 것이다.

나를 데리다의 정치 개념에 처음 입문시켜 준 리샤르 비어스워스는

데리다의 결정 개념이 'less violent'(말하자면 '차악')의 논리를 따른다고 본다.

그가 볼 때 모든 결정은 예외 없이 폭력과 배제를 포함한다.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려 하거나 벗어났다고 주장하는 결정이야말로

가장 폭력적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그렇다고 모든 폭력이 같진 않다.

폭력 안에는 정도(degree)가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최소화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등등.

 

내 생각에 이런 사고 이면에 깔려 있는 것은

결정과 선택을 요구하는 상황이란 결코 유쾌하지 않다는 견해다.

특히 선택이라는 관념은, '선택의 자유'라는 관념과 결부되어,

선택이 가능하지 않은 일괴암적인 상황에 비해 긍정적인 상황을 암시한다.

물론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여기서 데리다는

근원적이고 비극적인 '유한성'이라는 문제를 선택과 결정에 추가한다.

말하자면, 신은 선택할 필요가 없다.

선택한다는 것은 여러 갈래의 길을 동시에 가지 못하는 데서 비롯하는 것인데

정의상 전지전능하고, 만물에 편재(omnipresent)하는 신은

무언가를 버리면서 무언가를 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유한자인 인간은, 선택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어서 선택한다.

즉 모든 것을 다 취할 수 없고, 많은 것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선택한다.

이렇게 보면 선택은 필연적으로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한에서, 선택의 기준은 가장 덜 폭력적인 상황,

선택으로 인해 배제되는 가능성들을 최소화하고

그 배제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된다.

 

데리다가 선택/결정만큼이나 '책임'(responsibility)를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책임을 진다는 것이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한 '일관성' 쪽보다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에 대한 경청이고 응답인 것은,

선택과 결정이 열어놓은 것이 다름 아닌 끊임없는 '정정'의 시간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자신이 선택한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라진 길들의 소리를 듣고 곁에 눈길을 주는 것,

그게 내가 이해하는 데리다적인 책임이다.

 

이렇게 본다면

선택과 결정은 불가피한 갈라짐과 분기이지만

그/녀들이 책임을 행하는 한에서,

갈라진 길들의 실천적 거리는 의외로 가까울 수 있다.

모든 길들의 본질은 하나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수렴하게 되어 있다는 본질론/목적론이 아니라

이 모두가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며 누르고 쫓아낸 목소리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데서

비롯하는 마주침과 수렴의 가능성이 나온다.

공통적 본질은 이질성과 차이에 돌이킬 수 없이 자리를 내어 주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대화와 교통을 불가능하게 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는 정세의 객관성과 당파성이라는 난문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던져 준다.

정세는 객관적이지만, 각자의 관점과 당파성 없이 정세를 파악할 수도 없다는 역설.

내 생각에 '대중들'(the masses)이라는 개념이 입장하는 곳은 바로 여기다.

왜냐하면 대중들이란, 성층론적인 계층론을 비판하는 심지어 맑스적인(곧 관계론적인) '계급' 개념

으로도 약분할 수 없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실존하지 않는

동일성 형성/동일화의 복잡성과 불균등성을 묘사하고 또한 처방하는 개념

(더 정확히는 '비개념')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각자의 관점과 당파성을 가지고 정세를 파악한다.

그것이 객관적인지 여부는, 대중들과의 마주침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대중들 안 깊숙한 어딘가에 모종의 공통적 본질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애초에 취한 입장을 통해서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복잡성과 이질성들이

우리의 관점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해체함으로써 우리를 변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거대한 충돌과 긴장의 공간('주체'가 아니라)이 바로 대중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 곳은 막대한 폭력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점을 가장 탁월하게 묘사한 것은, 물론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다.)

그렇지만 이것과 대면하지 않는 한 어떤 진리도 만날 수 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발리바르와의 워크샵 정리문

(http://www.mcrg.ac.in/Report_Etienne.htm)에서

나는 발리바르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관련된 부분은 다음이다:

 

In the History of 20th C, Heidegger in his seminal work on Time and Being analysed the category of the ‘event’. Certain contemporary philosophers also contributed to the theory of the event. In Foucault and Althusser’s work the category of “event” was part of the critique of the teleological time. In this context he reminded us that philosophy of the “event” is also about philosophy of the “present”. This is explicit in Foucault’s later interest in Kant’s Essay “What is Enlightenment?” For the first time Philosophers were debating with their own ideas; i.e, what makes the time singular and specific and how the old and new are fighting together. The leanings of these ideas can be found on concrete analysis of “concrete” moment.

In this context Balibar highlighted that the concepts of “over determination” and “under determination” should be taken together. Concept of “conjecture” is some kind of trope. Althusser and Foucault break away from the conventional use of “event” and instead uses it in a radical sense. He recalled his conversation with one of his friends when he went to Algeria as a Peace Corps Volunteer. His friend was the leader of the Maoist Students organization who felt that he was obsessed with theory. Prof. Balibar reflected on what drives him to find the subject of the theory. One possibility could be divine intervention; the other possibility, and the relevant one is “masses”. Masses have been the center of Mao’s writings. For Balibar, this question obsessed him throughout his life. 

It is through encounter with masses, meeting people and institutions one can locate the spirit of the times. It is important to disentangle the “social” of social movements, to understand the differences and crystallize discourses, practices and institutions. His personal experience is that “differences” are never absolute which make communication and sharing of experiences inexplicable. This is why he is favour of “‘dialogic’ way of making philosophy” as it speaks of “plurality of voices”.> (강조는 나)

 

물론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후배와 대화하면서 생겨난 착상을 가지고

그가 얘기한 것을 나름대로 이해해 보려는 사고 실험을 한 것이다. 또는 역으로

그의 얘기가 활동가들의 고민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한 것이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알던 후배들 말고 전에 몰랐던 후배들을

이렇게 많이 본 게 참 오랜만인데,

문득 과학생회, 학회 시절이 생각났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한국 사회 그 어떤 공간에서도

그만큼 풍성한 대중운동을 경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후배들을 만나면서 그 시간과 다시 마주치는 듯했다.

그리고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렇듯 삶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을 열어 준다.

그래서 사는 게 재밌는 것이겠지.

많은 자극을 준 후배들께 건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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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8/11/16 19:51 2008/11/1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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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의 정치(적 행위)가 할 수 있는 일

말년에 알튀세르는 '우발성의 유물론'을 말한다.

거기서 그는 유물론(적 철학)자를, 열차에 몸을 싣는 여행자에 비유한다.

 

그의 주장을 나름대로 해석해 보자면,

주체는, '호기'의 뒷받침이 없다면, 결코 충분히 멀리까지 갈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것인가?

이로써 알튀세르는 정치(적 행위)의 문제를

거대한 필연성의 바다 안에 허무주의적으로 익사시키고 만 것인가?

 

우리는 아무리 뛰어도 열차처럼 빨리 갈 수 없다.

하지만 열차가 올 때 정거장에 도착해 있을 정도로는, 빨리 갈 수 있다.

역량이 적은 자와 많은 자의 차이는,

정거장에 10분 먼저 도착하느냐, 10분 늦게 도착하느냐 라는

참으로 미미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로 열차에 타느냐 마느냐가 좌우되고,

이로써 결코 작은 차이가 아니게 된다.

 

물론 사태는 훨씬 더 복잡하다.

일단 역사의 열차에겐 예정된 시간표 따위가 없다.

역량이 출중해 너무 일찍 도착한 사람은,

일찍 도착한 시간 + 역사의 열차가 연착한 시간만큼을 목놓아 기다리다가

불과 몇 분 있다 도착할 열차를 만나지 못한 채 지쳐 떠날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즉 오직 역량이 아주 출중한 사람만이 탈 수 있을 만큼

이른 시간에 열차가 도착할 수도 있다.)

반면 꼴찌나 다름 없이 늦게 온 이가 '때맞춰' 도착할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 열차가 '타이타닉'이 될 수도 있다...

열차를 타지 않은 것이 그/녀에게 비길 데 없는 행운이 될 수도 있고,

일찌감치 포기해 다른 곳으로 간 이가 제대로 된 열차를 탈 수도 있다.

너무 힘들어 쉬던 곳에 문득 (토토로에 나오는) '고양이 버스' 같은 게 도착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일어날 수 있었을', 그러나 '일어나지 않은',

그렇다고 해서 '일어날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는 수많은 사건들의

마주침과 엇갈림, 과잉결정과 과소결정 안에서 살아간다.

(내가 이해하기에, 데리다가 문학을 중시하는 것은

그것이 이 과소결정된 사건들을 과잉결정된 것으로 체험케 함으로써,

세계를 다른 식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운명 개념을 복잡화하고, 예정불가능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전제로,

그러나 앞서 말했던 것처럼 주체의 정치(적 행위)는

정거장에 당도하는, 단 몇 분에 불과한 미미한 차이,

심지어 그 순간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고

오직 그 순간 이후의 사후적 전개 속에서만 분화를 낳는

그런 '특이점'(singular point)에서의 '차이 없는 차이'

를 만들어 낼 수 있고, 그런 한에서 역사를 바꿀 수 있다.

 

역사의 열차가 울리는 우렁찬 기적 소리가 점점 더 분명히 들리기 시작하는 이 때,

(물론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 몸체보다 소리가 늦게 도착할 수도 있다.)

우리의 청력과 시력을 그러나 우리의 각력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설사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하더라도

저 변덕스러운 열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정거장을 지난다고 할 때

저 열차가 휘날리는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움켜쥘 악력,

설사 움켜쥐었다 하더라도

수많은 서부영화에서 나오듯 열차의 잔등에 타지 못하고

땅바닥에 질질 끌려갈 때 떨어져 나가지 않고 버틸 완력과 지구력,

그것이 우리에겐 여전히 부족하지 않은가?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그것을 갖추어 열차에 올라탄 결과, 빙산에 부딪쳐 침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로써 역사와 힘을 겨뤄 보기라도 하는 것이,

열차가 떠난 뒤에 스스로에 대한 온갖 자책에 휩싸이는 것보다는,

그 종착지 여부에 관계없이 훨씬 덜 후회스러운,

그리고 극한에서는 다만 아쉬울 뿐인 삶이라는 것이다.

선인들의 말대로,

주체의 정치(적 행위)의 영역은 '진인사'(盡人事)일 뿐이고,

그 다음은 '대천명'(待天命)일 것이다.

 

패는 분배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판돈을 마련하고, 판돈을 걸고,

만약 가능하다면, 아마도 손목을 걸어야 하겠지만,

밑장빼기라도 연습해 두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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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8/11/16 17:08 2008/11/1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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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에 관한 몇 가지 생각

깊이 읽지 못했지만

내게 가장 많은 관심과 흥미를 일으키는 철학자가 바로 데리다다.

 

최근까지 그의 작업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개념이

바로 '불가능성'(the impossible)이었다.

페넬로페 도이처가 쓴 'HOW To READ 데리다'(웅진 지식하우스)

(지나가는 김에 말하자면,

이 책 역자인 변성찬 씨가 역자 후기에서

들뢰즈와 데리다가 각각 유물론과 관념론 진영에 속한다

고 내린 평가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데리다를 얼마나 읽었는지 모르지만 그 용기가 부럽다.

이와 함께 'negotiation'을 '타협'이라고 번역한 것도 문제다.

통상 'compromise'를 타협이라 새기고, 'negotiation'은 교섭/협상으로 새긴다.

이 논리는 노조가 자본가와 '교섭/협상'하는 것이 곧 자본가와 '타협'하는 것이라는 얘기와 같다.

자신이 텍스트 '외부'에 주목하는 보다 혁명적인 진영에 속한다고 뽐내는 거야 본인 자유지만

그러려고 다른 이의 주장을, 그것도 역자가 이런 식으로 폄하하는 것은

내 상식으론 참 이해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페넬로페 도이처도 참 좋아하는 철학자인데

이 역자 후기 땜에 짜증이 확 났다.)

를 읽다가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물론 틀릴 가능성이 많겠지만...

 

칸트와 데리다 모두에게 불가능성은 '이상'(the ideal)의 문제와 관련된다.

하지만 칸트에게서 불가능성은 실재적/현실적 차원의 문제이지만,

데리다에게 불가능성은 상상적/상징적 차원의 문제가 아닐까?

즉 칸트에게 있어 불가능성이란 실재/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것이며,

다만 상상/상징계에서 규제적 이념(regulative idea)으로 역할할 수 있다.

반면 데리다에게 있어 불가능성이란 실재/현실에서는 (매양, 또는 드물게) 일어나는 것이지만,

기존 상상/상징계의 지평, 이 지평 안에서 우리가 '가능한 것'(the possible)으로 체험하는

'정상적인 것'(the normal)을 깨뜨리는 효과를 낸다.

 

예컨대 과거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것은

실재/현실적으로는, 또는 물리 법칙 면에서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사회적인 상상/상징계에 따라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 곧 불가능한 일이 된다.

예컨대 우리가 '말도 안 돼!(That's impossible!)'라고 외칠 때 우리가 체험하는 바로 그것을

데리다는 '불가능성'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이건 지젝이 이야기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사실 지젝이 데리다(또는 알튀세르)를 폄하하지 못해 안달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면서도,

그가 하는 모든 이야기가 결국 다른 누군가가 한 이야기라는 데서 오는 불안의 결과라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불가능성은 체험할 수 없는 것이기는커녕

우리가 (매양, 또는 드물게) 체험하는 것이다.

여기서 체험/경험의 문제가 나오는데

내가 데리다에 관해 가장 모르는, 그의 중요한 지적 원천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현상학

의 비판적 전유가 여기에서 중요한 것 같다.

좀 더 고민할 문제.

 

시간이 없어서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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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8/11/12 17:14 2008/11/1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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