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시외버스 터미널 앞 관광안내소에서 호미곶으로 가는 버스 시간까지 지도에 손수 적어주시던 아주머니. 무슨 일이든 자기가 좋아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인지 아닌지는 자기만 아는 것. 혹은 자기도 모르는 것.



구룡포 수혐 공판장 앞에서 붕어빵 파는 아주머니, 붕어빵 두 개로 끼니 때웠는데도 배가 불렀던 것은 버스 기다리는 동안 아주머니와 나눈 이런저런 이야기들 때문일 듯. 아주머니를 만난 후 왠지 마음 한구석이 편안해지면서 이번 여행에 자신감(?)이 생겼다.


포항 여객선 터미널 근처 항구다방에서 이야기 나누던 두 아주머니(라고 부르면 맘상하실까). 떠나고 들어가는 길목도 누군가에게는 언제나 삶의 터전이었다.

 

고바우 민박집 할머니, 할아버지, 하지만 걱정해주시는 마음이 지나치셔 조금은 답답하기도.

 

태하에서 열두굽이 고개 넘어 해안 따라 한참을 걸어 천부에 닿았을 때 어디 가시냐며 차를 태워주신 경찰 아저씨. 전날 내린 눈을 군인들이 열심히 치우는 중이라 중턱도 못 가 걸어올라가야 했지만 그만큼이라도 얼마나 고마웠던지. (그 눈 치우던 군인들이 부대 돌아가는 차를 다시 만나 나리분지에 겨우 닿았다.)

 

산마을 식당 아주머니, 아저씨. 이 눈길에 어떻게 걸어왔냐며 씩씩하다고 한 상 가득히 차려주셨다. 다음날 아침은 정식을 거저 차려주셨고 저녁까지 내주셨다. 한사코 사양하였으나(?) '나도 나그네 대접하는 즐거움이 있잖나' 하시며 내주시는 밥을 거뜬히 비웠다. 명이김치와 더덕무침, 직접 만드셨다는 청국장 맛이 잠들기 전까지 내내 입가를 떠나지 않았다. 다음날 떠나기 전에는 숭늉을 한사발 데워서 먹고 가라며 내주셨다. 음식 이야기만 하니까 조금 궁해보이기도 하지만 일단 손맛이 일품이고 방도 딱이고, 그냥 그런 거, 가만히 있어도 느껴지는 정.

 

버스가 모두 끊겨 걸어서라도 내려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다시 만난 경찰 아저씨. 근무가 없을 때면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데 오늘 같은 날은 울릉도 살아도 몇 년에 한 번 볼까말까 하다며 알봉까지 데려다 주셨다. 덕분에 대책없이 서성거리다가 하루를 알차게(두세시간 걷고 나머지는 방바닥에서 뒹굴었다) 보냈다. 눈 가득 쌓인 성인봉과 형제봉, 봉, 봉 들 가운데 옴팍하게 앉은 알봉.

 

등교하는 학생을 태운 트력을 얻어타고 천부까지 내려와 섬목으로 걷다가 걷다가, 차도, 사람도 흔적 없는 해안도로를 걷다가 걷다가, 삼선암 부근에서 만난 아저씨, 차를 세우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태워드릴까요?'!!! 묻는다. 나물을 캐러 가시는 길이라며 섬목 근처 여기저기를 소개해주셨다. 덕분에 힘을 얻어 죽암에서 내수전 약수터 넘어가는 길로 과감하게 발을 딛었다. 아마 섬목까지 걸어갔다가 나왔더라면 뭔가 지지부진한 느낌에 빠져 버스를 타고 말았거나, 괜히 태하령 넘는다고 걷기 시작했다가 폭설과 돌풍에 휩싸여 산중 미아가 되었을 지도.

 

내수전 가다가 석포마을로 갈리는 길에 자리한 집의 아저씨, 아주머니. 가르쳐주신 대로 가지 않고 석포가는 길로 잠시 다녀왔더니(사람을 빨아들이는 길이었다) 다시 돌아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도동 민박집(산마을 식당 아주머니 동생댁) 아주머니, 아저씨. 어머니 아버지 생각했다. 두 분이 말씀하시는 것도, 사는 모습도 닮았다. 방까지도.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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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4 21:25 2005/01/1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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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ivermi 2005/01/15 00:5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여행가고 싶네요~
    뭔가를 털어내거나 새로운 것들을 담아내기 위한 여행~ 모 그런것들을 위해 함 움직이면 좋을듯...
    울릉도도 아직 안가봤는뎅~ 안가본 곳은 또 어찌나 많은지~

  2. sanori 2005/01/15 10:5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울릉도 눈 많이 왔다던데,,, 함 가보고 싶다..

  3. 미류 2005/01/15 12:1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작년 3월 첫주에 다녀와서 다른 데 남겼던 메모예요. 무명씨님이 울릉도를 가신다길래 그냥 옮겨봤어요.
    리버미, 울릉도 꼭 가보세요. 사람 많은 여름보다 겨울이 더 좋을 것 같아요. ^^
    산오리, 눈이 많이 온 줄 몰랐어요. 올해 눈이 귀하다더니 그래도 울릉도는 역시 울릉도인가 봐요. 제가 다녀온 때가 대전지역에 폭설이 내려 고속도로가 막혔던 바로 그 때였는데 울릉도에도 눈이 엄청 왔거든요. 근데 늘 그런 곳이라 뉴스에는 충청도 얘기밖에 없더라구요. ^^;

  4. not 2005/01/16 14:0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오~ 감사합니다.

  5. not 2005/01/16 14:0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참, 울릉도 지도는 통 구할수가 없던데... 포항에 가면 구할수 있나요?

  6. 미류 2005/01/16 20:1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인터넷으로 지도를 확인하고 출발하세요. 포항에서 특별히 주는 데는 없을 꺼예요. 배타고 울릉도 들어가자마자 군청을 먼저 들러서 각종 안내책자를 받아 챙기세요. 꼬~옥! 유용한 정보들이 많아요. ^^

  7. 미류 2005/01/16 20:5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아마 포항 여객선 터미널에는 울릉도 관광안내도 있을 꺼예요.

  8. NeoScrum 2005/01/17 21:3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지난번 여행갈 때 강원도 노선을 고민하면서 울릉도도 잠시 떠올려봤었는데.. 다음 휴가때는 울릉도로 한번 가봐야겠네요.

  9. 미류 2005/01/18 11:1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넵 ^^ 적극 추천! 가게 되면 저두 지도랑 관광안내도 같은 거 드릴께요.

  10. 안티고네 2006/12/05 12:0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흑, 20년간 포항에서 살았던 저도 못가봤다구요, 가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