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버스타기

* 이 글은 간장 오타맨...님의 [‘교통카드’ 시스템 오류 무방비] 에 관련된 글입니다.

토큰이 그립다는 간장 오타맨의 말에 문득 옛날 기억 하나가 스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집 근처 학교에 입학을 햇는데 무슨 일인지, 이틀 후에 아빠가 근무하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아니, 입학을 새로 했다. 뒤늦게 짐작하는 바로는, 정식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뭔가를 조작하느라 아빠가 근무하는 학교로 갔던 것 같다.

 



버스로 30분 정도를 가야 하는 곳이다. 아침이면 엄마에게서 회수권(토큰이 아니라 아마 회수권이었던 듯)을 한 장 받고 아빠와 함께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갈 때는 아빠가 내 회수권까지 함께 냈었다. 

하루는, 건널목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학교로 가는 버스가 왔다. 아슬아슬한 시간이라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아빠와 나는 열심히 달렸는데 결국 버스는 혼자 타게 되었다. 얼떨결에 버스에 타기는 했지만 늘 아빠가 내던 회수권을 낼 수가 없는 상황이라, 순간 두려움이 번지면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버스는 탔는데 버스비를 낼 수가 없으니 큰 잘못을 하는 것 같았고 혹시 내가 모르는 이상한 곳에서 나를 쫓아낼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일었던 것 같다.

버스에 타자마자 울기 시작하는 꼬마를 보고 놀란, '안내양' 언니가 왜 우냐면서 당황하여 물어봤다. 나는 꺼이꺼이 울다가 눈물을 마구 삼키며 "저기 저 아저씨가 내 버스비 내줄 껀데..."그러고는 다시 꺼이꺼이 울었다. (분명히 '아빠'라고 말 못하고 '아저씨'라고 그랬다. 왜 그랬는지 아직까지 깊이 생각해보지를 못했다.) '안내양' 언니는 다소 허탈한 듯 괜찮다고, 어디서 내리냐고, 버스비 안 내도 괜찮으니 내려야 할 때 놓치지 말고 잘 내리라고 다독거려줬다. 언니의 말에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리면서 나는 울음을 뚝 그쳤다. 한창 울고난 뒤의 무색함이란... 만원버스였는데도 우는 꼬마에게 자리를 양보해준 누군가의 덕분에 고개를 푹 숙이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갔다.

 

수업이 끝나고 아빠가 교실로 찾아오셨다. 집에 갈 때 쓰라고 회수권을 한 장 주셨다.

"나한테 있는데?"

"아침엔 어떻게 했냐?"

"..."

 

그때 내 수중에 회수권이 한 장 있다는 걸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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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2 13:49 2005/01/1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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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njang_gongjang 2005/01/12 17:5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저도 미류처럼 외할머니가 서울에 올라왔을때(어린시절) 버스비를 내주었던 기억이 있답니다.
    저는 버스를 탈때 간혹 안내양 누나가 돈을 더 주어서 흐뭇한 기억이 있지만 토큰이 생기고 회수권을 내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그 재미도 없어졌어요.
    한번 천원짜리를 냈는데 9천 얼마를 거스름돈으로 받았던 기억... 그때는 그 안내양 누나 대해 생각치 않고 마냥 흐뭇하였던 기억만 납니다.

  2. 미류 2005/01/12 19:3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 저는 내가 왜 그렇게 단순했을까? 이런 생각만... ㅡ.ㅡ;

  3. 2005/01/12 20:3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회수권을 낼 수 없는 상황에서 울음을 터트릴 땐 영락없는 아이인데 '나한테 있는데..'라고 할 때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묻어나는 듯 해요..^^;; 아이땐 누구나 저런 기억들 한두 가지는 있나봐요..

  4. jaya 2005/01/12 22:0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애니까 단순하죠! // 나 어릴때 꿈이 버스안내양 언니였대요. 하얀 목장갑 찾아내서 끼구 문갑 문짝 열고 두둘기면서 오라이` 오라이~ 그랬다는.. ㅋ

  5. NeoScrum 2005/01/12 23:5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저는 국민학교 등교할 때 회수권 10장을 11장으로 잘라서 이용하기, 껌종이 접어서 회수권처럼 내기, '뒤에 애가 낼꺼에요'라고 하고 도망가기.. 그런 거 하고 살았었는데.. 아마도 안내양 누나들이 무지하게 싫어하는 꼬마 종류 였을듯..
    요즘 몇년간 문득문득 그때 그 안내양 누나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었어요. 혹시 그 고생했던 그들이 다시 청소용역 비정규 노동자들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서 무척 찹찹했던 기억이 나네요.

  6. 조커 2005/01/13 02:2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오오오, 회수권 경계 잘라서 11장 만들기.. 짱이죠 ㅠㅠ
    가끔은 지폐도 그런 게 가능.... 쿨럭..... (먼산)

  7. 미류 2005/01/14 20:0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갈, 그때는 뿌듯하다기보다는 정말 어리둥절했어요. 나한테 회수권이 있는 걸 알텐데 왜 물어보나 싶었죠. ^^;;
    자야, 어쩌냐, 이제는 버스에 안내양이라고는 사라졌는데~ ㅋ
    네오, 착잡... 그렇죠?
    조커, 저는 중학교 들어간 다음에야 그런 거 했는데~ 조숙했군요. ^^

  8. NeoScrum 2005/01/14 22:1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착찹...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