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공화국'이 외면한 진실

인권하루소식의 기자로 쓴 첫 기사.

* 나온 걸 보니 제목이 조금 바뀌어있는데 바뀐 제목이 더 나아보인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기사도 토론을 하며 많이 바뀌긴 했다. 기사를 놓고 함께 의견을 주고받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 기자회견장소가 변경된 줄 모르고 민주화기념사업회로 갔다가 급하게 택시를 타고 민주노총으로 쫓아갔다. 기자가 별로 없었다. 한겨레가 없었으면 독점취재였는데 ㅋ (한겨레에 기사가 어떻게 나왔는지 찾아보지를 못했군...)

* 기사 쓰게 되면 다 그런 건가. 삼성노동자들이 자신이 당한 인권탄압의 현실을 전하는데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몇 번 이야기됐던 사례라 그랬을 수도 있지만... 기사를 쓰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함께하기 위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좀더 깊이 새길 필요가 있겠다.

* 준비해야 할 다른 일이 있어서 대략 한 시간 간격으로 기사쓰기와 다른 일을 오갔다. 어쩔 수 없는 multitasking이기는 하지만 둘 다에 충실하기 힘들다는 걸 기억할 것.



-  삼성노동자 인권침해 사례발표대회 열려  
  
 
사건은 간단했다. 지난 2일 고려대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으려던 삼성 이건희 회장은 학생들의 저지로 겨우 학위수여식을 마치고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사태는 놀라웠다. 총장의 사과문과 처장단의 이례적인 사퇴서 제출, 학생들의 ‘철없는 행동’에 대한 비난. 이 사건에 대한 한국사회의 반응은 ‘삼성공화국’의 거대한 힘을 여실히 보여줬다.

 

400억 기부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명예박사학위를 건네는 대학과 “노조가 없다고 해서 문제되는 건 아니”라고 말하는 장관, “지성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예의가 없”다고 다그치는 언론 덕분에 이건희 회장은 자신의 “부덕의 소치”며 “젊은 사람들의 열정으로 이해”한다는 ‘너그러움’까지 보일 수 있었다. 삼성노동자들이 당해온 인권 탄압의 진실은 또 한번 잊혀졌다.

 

그동안 삼성의 노동탄압은 간간히 도마 위에 오르곤 했다. 그러나 삼성을 고발하는 목소리는 이내 잊혀져 이건희 회장의 얼굴에는 여유만만한 웃음이 사라질 날이 없었다. 얼마 전 휴대폰 불법 위치추적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삼성은 검찰의 기소중지로 사실상 면죄부를 부여받았고, 그렇게 삼성의 ‘세련된 비열함’은 진실 저 너머로 사라졌다.

 

9일, 고려대 사태를 계기로 삼성노동자들과 인권단체들이 ‘삼성노동자 인권침해 사례 발표대회’를 열었으나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 이날 참석한 삼성의 해고노동자들은 미행감시, 강제사직, 가족협박, 회유와 매수는 기본이고 납치, 감금, 폭행까지 시도하는 삼성 노동자관리의 실상을 전했다. SDI 수원공장에 근무하던 박경렬 씨는 삼성의 납치와 협박을 참을 수 없어 자해까지 시도했다고 한다. 같은 공장에서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에 반대하는 투쟁을 준비하다 결국 해고된 김갑수 씨는 “현장에서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주기를 바란다”며 오히려 현장의 동료들을 걱정했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애써준 고려대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한 삼성 해고노동자들은 “박사학위보다 중요한 것이 노동자들의 미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알아서 모시는’ 사람들 덕분에 삼성이 스스로 잘못을 깨닫기를 바라는 것은 난망해 보인다. 그래서 ‘삼성 노동탄압 분쇄와 대책을 위한 경기지역 공동대책위원회’는 3sung.org를 통해 직접 “삼성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르치”겠다고 나섰다. ‘삼성 제자리 찾아주기 운동’이 그것.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농담은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이다. 이건희 회장이 겸손한 듯 ‘부덕의 소치’를 거론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탄압에 눈을 돌리고 입을 다물어왔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노동자의 고통스런 기억을 더 이상 혼자만의 것으로 묻어두지 않겠다는 삼성 해고노동자들과 인권사회단체들의 목소리는 삼성공화국 시대의 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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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0 21:04 2005/05/10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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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njang_gongjang 2005/05/11 01:0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삼성의 무노조 신화와 삼성이 갖고 있는 사회적 사안에 대한 다양한 수법들에 대한 분노를 자아네게 하는 글이면 더 좋았으련만.... 그 기자회견의 내용을 모르겠지만 삼성공화국의 단면을 전체적으로 알리는 기사였으면 좋았을텐데... 전화나 즉선 인터뷰 내용들을 첨삭하여서 말이죠.
    삼성의 신비를 벗겨 대응하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네요. 문제의 중심엔 늘 삼성이 있더군요, 수청동도 그렇구... 한원 문제도 그렇구요....

  2. 미류 2005/05/11 09:2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좀더 준비를 했더라면 삼성공화국의 단면을 전체적으로 알릴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간장의 말을 들으니 부족함이 느껴지네요. 근데 기사라는 형식의 한계도 있는 것 같아요. ㅡ.ㅡ;;

  3. hi 2005/05/11 10:5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고생하셨습니다. 하기사 뭐 이병철 있을 때부터 "내 눈에 흙들어가기 전까지는 노조 안 된다"고 했는데, 그 눈에 흙들어간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노조는 안 되네요... 좋은 기사 감사하구요, 행인도 조만간 삼성 관련되서 기사거리 하나 만들어봐야겠군요 ㅎㅎ

  4. 미류 2005/05/11 13:0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오홋, 기사거리라~ 기대되는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