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놓고서

#1.

가끔 '괜히' 보고싶은 사람들 있다. 그러다가 전화를 걸기도 한다. 안부묻기도 생뚱맞을 정도로 오래동안 못 본 사람도 있고 종종 보는데 갑자기 전화걸고 싶은 사람도 있다. 전화번호를 꾹꾹 눌러(이건 뻥이다. 대부분 단축버튼 눌러서 통화한다. ^^;;) 전화를 걸다가 막상 목소리가 들리면 대략 난감해진다.

 



#2.

한 후배가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학생 때 알기 시작한 후배다. 지방에 있어서 같이 일하거나 놀아본 적 별로 없지만 믿음직한, 좋아하는 후배다. 그는 이제 막 의사가 되어, 이런저런 일들을 궁리하고 있고 나는 이제 막 사랑방 상임활동가가 되어 이런저런 일들에 부딪치고 있다. 어느 자리에 서있든 함께 나눌 수 있는 고민들과 꿈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지만 당장 발딛고 서있는 자리가 다르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벽은 아니다.

서울 올라올 예정인데 한번 보자길래 그러자고 해놓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블로그 주소를 알려주고 와보라고 했다. 블로그를 꽁꽁 숨겨놓는 것은 아니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블로그 와보라는 얘기 별로 안한다. 어쩌다 얘기한 사람도 있지만 누구에게든 절실한 마음을 담아 주소를 말해준 적은 없는 것 같다.

사람마다 인터넷에 대한 친밀도가 다르기도 하고 이런 공간을 다니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 역시 -지금은 불로그의 마력에 빠져 꽤 기웃거리고 다니기는 하지만- 인터넷을 친숙하게 사용하지도 않고 여기저기 열심히 찾아다니지도 않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블로그는 블로거가 하고 싶은 얘기를 중심으로 꾸려지지, 특정한 누군가가 듣고 싶은 얘기, 들어주었으면 싶은 얘기를 중심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블로그 와보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오며가며 만나게 될 사람들은 만나게 되기도 할 테고. (그래도 은근히 누군가 들어와주기를 바랄 때가 분명히 있다. 오락가락하는군. ㅡ.ㅡ 쨌든 말을 선뜻 건네지는 못한다.)

 

그런데 또 불렀네... 불러놓고서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3.

얼마전 사랑방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나 했다. 원래 다른 장소에서 하기로 되어있었고 나는 기사를 쓰느라 회의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고 이미 연락해놓기도 했다. 그런데 기사가 아주 늦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아 회의장소를 옮길 수 있겠냐고 연락을 했다. 음, 내가 직접 연락한 것도 아니다. 주로 모임의 연락을 맡는 친구에게 물어보았고 그 친구가 연락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미안했던 것보다 더 미안해지는군. -_-; ) 그렇게 회의장소를 옮겼다.

사람들이 사랑방으로 왔는데 그때까지 기사를 끝내지 못했다. 회의장소로 가는 이동시간을 벌어서 기사를 쓰고 회의 끝나는 대로 마무리를 하려던 건데 불가능한 계획이 되고 말았다. 회의는 그리 길지 않았다. 늘 길었던 회의인데 간만에 짧게 끝나 뒷풀이를 할 수도 있는 기회였다. 사람들이 뒷풀이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쨌든.

사람들이 가고 나서 사무실에 있던 한 사람이 "뒷풀이 안가? 사무실까지 사람들 불렀는데..." 라고 물었다.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서 나름 애썼다고 생각했는데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사람들을 부른 거구나... 불러놓고 그냥 보낸 거구나...

 

 

불러놓고서 ...

어떻게 책임져야 할 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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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31 17:26 2005/05/3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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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혜찐 2005/06/01 19:1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나는 그룹메일 만들러 진보넷 들어와, 너를 만나고 왜 그럴까, 가슴이 갑자기 두근거려.. 몇 개의 글을 읽다, 너인가, 너일 것인가, 너여야 하는가 하다. 화면을 닫아 버렸다. 그리곤 내가 미쳤나 하곤 담배 한 개피를 물고 다시 들어와 본다. 너의 글을. 잘 지내는지, 안부도 못 물었네. 며칠 전에 말이지. 워낙 지친 상태라.. 경황이 없었나보다. 요즘은 사람들 대하는 걸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생짜로 배우는 것처럼 어리버리하다...
    종종.. 보면 종종 잘 지내고 있구나 할 수 있겠구나... 생각보다, 부..지..런.. 하네 키~

  2. 미류 2005/06/01 20:0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앗, 언니 반가워요. 언니의 두근거림이 어떤 느낌인지 충분히 짐작되지는 않지만 조금 오래동안 서로 마음을 나누지 못했다는 게, 새삼 아쉬워지네요. 언니도 잘 지내죠? 어리버리하다고 하면서도 잘 해내잖아요, 언니는... ^^
    근데 생각보다 부지런한 건 또 뭐야?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