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로 오다

추석 때 미리 내려오지 않은 게 후회되는 건 아니고. 그냥 드라마틱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거겠지.

천천히 둘러보기로 하고 선유도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섬 하나를 설렁 돌고 돌아오니 엄마가 전화를 했다. 아빠가 복수가 많이 차서 응급실로 왔는데 이거 인턴이 뽑아도 되는 거냐고. 엄마는 병원이라는 공간에, 임상의학이라는 구조에 빨리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적당히 엄마를 안심시켜드리고 나니 갑자기 궁금해져서 아는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며칠 전  CT를 찍었다는데 결과를 좀 봐달라고.

간암이다.

막상 '암' 자가 들어간 진단을 듣고 나니 자연스럽게 비행기 시간을 알아보고 배시간을 챙기게 되더라.

조금 더 아는 게 영 불편한 날이다. 시도할 수 있는 치료방법도 별로 없고 좋지 않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치료를 시작하면 어떤 경과를 밟게 될 지, 몇 년이나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는지 전혀 모른다. 조바심나지는 않는다. 천천히 듣고 천천히 준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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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1 23:13 2005/09/21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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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다소녀 2005/09/22 00:3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강한 따님을 두셨나봅니다.
    힘내세요.

  2. 미류 2005/09/22 19:0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네. 얼마나 강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씩씩하려구요.

  3. 미갱 2005/09/22 23:5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흐흠...미류님의 글에서 떨림이 느껴져서 저까지 핑햇네..
    아픈사람없는 세상은 없을까? 몸이건 맘이건말야..

  4. 해미 2005/09/23 11:4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너무... 억지로 씩씩하진 않았음 좋겠다. 내 어깨, 내 시간 빌려줄께.

  5. ptemail 2005/09/23 15:1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맞아요.감정을 다스리는 것 만큼, 감정을 풀어 낼 줄 아는게 여러모로 좋아요. 주위에 좋은 분들도 많은테니까요...힘내요!

  6. 미류 2005/09/23 16:2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갱, 저는 아파도 아프지 않은 세상, 그 정도면 좋겠어요.

    해미, 빌려주는 게 아니라 통째로 내줘야 할 떄가 올 수도 있으니 하루에 아령 10번씩 들고 있어라~ ^^

    ptemail, 술술 풀리지는 않겠지만 잘 풀어야죠. 힘낼께요!

  7. 무위 2005/09/26 15:0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지난번에 이 글 보고 뭐라 할 말이 없어 그냥 갔습니다. 지금이라고 딱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지만요. 우리 아버지도 암이지만 뇌쪽이라 돌아가실 때까지 통증은 없을 거라고 해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간암은 통증이 굉장히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치료가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무척 힘든 시간이 되겠네요. 이따금 숨 한 번 크게 들이 쉬고, 맘 모질게 먹고, 그리곤 겪어야죠. 어쩌겠습니까. 억지로 씩씩해질 것은 없지만 감정 흐르는데로 내버려두면 그게 더 힘들지도...

  8. 미류 2005/09/26 21:2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고마워요. 저도 소식 듣고 문득 무위 생각이 나더군요. 무위도 힘내세요~ ^^

  9. 알엠 2005/09/27 17:2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얼마 전에 남편이랑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가 엄마가 딱 한달만 앓다가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헤어질 준비도 하고 애틋함도 풀고그러고 싶다니까 남편이 "한달이라고 그게 되는 줄알아?"라고 해서 할말을 잃긴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하는 건 너무 슬퍼요.미류 얼굴이 떠올라요.

  10. 미류 2005/09/29 10:3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래요. 한달... 반년... 그게 몇 년이든 '남은 시간'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건 참 힘든 것 같아요.
    알엠도 어머니 때문에 걱정이 많죠? 서로 힘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