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거리

아빠의 옆 침대에 누워있던 아저씨는 폐암을 앓고 있었다. 자세히 알 길은 없지만 호흡보조장치를 이용하면서도 힘겹게 숨을 내고르는 것을 보면 역시 예후가 좋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마침 제주도에서 올라오신 분이라 병실에서 사투리로 말해도 되니 편하다고 엄마도 좋아하셨고 2주 가까이 지내면서 남같지만은 않은 아저씨, 아주머니였다.



아저씨, 아주머니 두 분만 계셨다. 아들, 딸이 항상 같이 병실에서 생활하던 터라 더욱 허전해보였다. 그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비어있는 느낌. 얼마 후에 의사 세 명이 와서 간단한 진찰을 마치고 아무 말 없이 아래입술만 살짝 깨물다가 아주머니를 데리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호흡을 돕기 위해 몸을 앞으로 숙인 자세로 기대앉았던 아저씨는 숨을 쉴 때마다 고개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아빠 침대 곁에서는 들리지 않는 숨소리가 눈으로 보인다. 그것은 사람의 힘겨운 몸부림이라기에는 너무나 규칙적이고 반복적이었다. 마치 인공호흡기의 펌프처럼 아저씨의 몸은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기 위해 마지막 본능의 명령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아주머니가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아저씨의 침묵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셨다. **아빠, 나 누구. 나 누구야. 아들 이름 뭐. **아빠, 나 누구. 나 누구냐고. 마침 병실 근처를 지나던 간호사가 주치의를 불러오겠다고 다급히 나섰고 아주머니는 아들, 딸을 전화로 불러 올리면서 끊임없이 아저씨에게 말을 부친다.

울먹거리는 모습을 커튼이 내려있는 침대 너머로 들으면서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음은 몇 번씩이나 아주머니 곁으로 가서 휴지라도 집어주며 말을 건네주고 싶었지만 텅빈 병실은 그만큼이나 멀었다. 괜시리 안절부절못하다가 그냥 조용히 일어나 한참을 오지 않는 주치의를 부르러 병동으로 나간 것이 전부.

섣부른 위로라도 도움이 되기에는 아주머니는 너무 가까이 있었고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위로를 건네기에는 아주머니가 너무 멀리 있었다. 사실, 나는 죽음에 대한 위로가 어떤 것인지 아직 모르겠다. 다만 언젠가 아주머니의 자리에 엄마가 서있기 전에 엄마와의 적당한 거리를, 아빠와의 적당한 거리를 내가 알고 있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을 뿐.

아빠는 책을 읽다가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만지작거리기만 하셨고 엄마는 주말에 늘 오던 동생들에게 내일은 병실에 오지 말라고 전화를 하셨다.

 

***

방금 들르고 온 병실에는 아빠 혼자 누워있었다. 시트가 벗겨져 무거운 회색 커버가 드러난 침대는, 오히려 평온해보였다. 아저씨는 아들과 딸이 모두 올라오고 나서 몇 시간을 더 힘겹게 숨을 내고르시다가 새벽녁 숨을 멈추셨다고 한다. 부디 가는 길은 새털처럼 가벼운 호흡으로 시원한 공기와 함께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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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8 18:38 2005/10/08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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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aya 2005/10/12 12:2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아멘..

  2. 현현 2005/10/18 04:1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곧 완쾌되시길

  3. firstlove 2005/10/23 18:5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치료 잘 받고 좋아지길 빌겠습니다.
    그나저나 수술을 받는 것인가요?
    병원에서 보면 embolization도 자주 하던데..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할 뿐입니다.

  4. 미류 2005/10/31 15:4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감사합니다, 모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