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국

아빠가 곰국이 먹고 싶대서 엄마는 밖에 나가 포장해왔다. 뭐가 먹고 싶다는 얘기를 처음 했단다.

초등학교 4-5학년일 때 시외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류장 근처의 식당에서 외식을 했다. 그때 나는 곰탕이라는 음식 이름을 처음 보았고 실 한오라기만큼의 의심도 없이 곰고기로 끓인 탕이라고만 믿었다. 나는 특별한 혹은 이상한 음식도 두려움 없이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한 마디 묻지도 않고 가볍게 그릇을 비웠다. 그래놓고 집까지 가는 길에 다리가 아프다고 응석을 부리며 아빠 등에 업혔던 기억이 났다.

내딴에 보여주려던 '어른스러움'은 곰탕에 대한 착각 혹은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 장하다 생각하셨을 리 없고 '여전히' 응석부렸던 큰딸을 업은 아빠의 마음이 어땠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그리고.

곰국이 고아서 끓인 국이라는 것을 알고 물리적으로도 어른이라 불릴 만한 나를 보는 아빠의 지금 마음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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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6 20:00 2005/12/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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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지 2005/12/07 08:3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마음이 아리네... 그대의 마음이 많이 아리지 않기만을....
    힘내라는 말도 덧없겠지요... 그래도 할 수 있는 말이, 마음이 그것밖에 없네요.. 좋은 하루되길...

  2. 미류 2005/12/07 10:2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지지님, 고맙습니다. 힘내야지요. ^^

  3. 보라돌이 2005/12/08 21:4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여전히 '응석'을 부려봐요. 그게 필요할지도 몰라요.

  4. 미류 2005/12/10 11:0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ㅎㅎ 맞아요~

  5. 무위 2005/12/15 13:4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오랫만에 들어온 것 같네요. '곰고기' 얘기에 쓰러질 뻔!
    아버지 살아계실 때 찍어 놓은 비디오를 가끔 보거든요. 어머니와 같이 보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기도 하고요. 기분? 좀 그렇죠 뭐. 꼭 슬픈 건 아니고요. 어설프게나마 짜집기해서 다음달 아버지 생신 때 형제들 모이면 같이 보려고 합니다.

  6. 미류 2005/12/16 10:1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전에 무위 블로그에서 비디오 얘기 봤어요. 가끔씩 그런 생각해요. 지금이라도 아빠를 찍어둘까 하는. 근데 카메라도 없구 같이 지내는 것도 아니구... 무엇보다도, 그냥 마음 속에 남는 기억이 가장 편안할 것 같아서 생각을 접었어요. 그래두 부럽기는 해요. ^^
    '곰고기'는 제가 생각해두 참... 엄마가 집에서 곰탕을 끓여준 적이 한번도 없거든요. -.-;

  7. 슈아 2005/12/24 00:4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