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건 싫다

일이 많아지면 일단 번잡스럽다. 알뜰살뜰하게 시간을 쪼개어 써도 알뜰살뜰하게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일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하다보면 못하고 손을 놓아버릴 수도 있고 은근히 미루면서 눈치볼 수도 있고 뜻하지 않은 도움을 받아 잘 해내게 되기도 한다. 뭐가 되든 어떠랴. 원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은 것이 일이고 놓쳐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 일이다.

 

하지만 마음이 허둥대느라 놓치는 것들은 영원히 흘러가버리고 만다. 바쁘면 너무 들떠있거나 너무 굳어있거나 둘 중의 하나라 눈을 맞출 수가 없다.

 

걷다가 재미난 생각이 떠올라 혼자 웃어본 지도 오래고 뜬금없이 오래된 친구에게 전화해 수다를 떨어본 지도 오래다. 제일 속상한 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것. 한숨 끝에 배어나오는 고된 마음들과 입가에 머문 섭섭함, 눈가를 스치는 외로움들을 그냥 지나치게 된다. 내일은 먼저 말을 건네야지 하다보면 오늘은 돌아오지 않더라. 힘겹고 지친 마음을 토닥거려주고 싶다가도, 자기만 힘든가, 하는 생각이 불쑥 치솟을 때가 있고 바람이라도 쐬러 다녀오자고 얘기하려다가 내가 먼저 살아야겠다는 짧은 생각에 멈칫하게 된다.

 

내 마음을 놓치는 것도 싫다. 차분히 마음을 헤아려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우울하다가도 한껏 부풀어오르고 즐거워 까르륵대다가도 한없이 가라앉는 마음들을 한올한올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데 잘 안되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투덜대기 전에, 누가 좀 도와주세요, 라고 이쁘게 말하고 싶고 어쩌라는 거냐고 인상쓰기 전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넉넉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엄마가 일러줬던 꽃이름들은 생각나지도 않고 폭탄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레바논의 사람들 얼굴도 그려지지 않는다.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포스코 노동자의 소식을 듣고, 아, 또, 아, 더이상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바쁘기 때문이 아님을 숨길 수가 없다. 바쁘다고 모두들 마음을 놓치고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바쁜 건 싫다. 적당한 핑계가 되어 게을러질 뿐이다. 바쁠수록 게을러지는 마음.

 

부대끼고 부대낀다. 시를 읽고 싶다. 마음이 부시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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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1 17:33 2006/08/0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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