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려는 배인지를 봐야지

이제 그만할 때 되지 않았나? 아니 뭐 꼭 그 글을 봐서 그런 건 아니구, 나도 여기저기 갖다붙인 얘기기는 하지만 너무 많이 써서 의미를 잃어가는 말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주택보급률이 100% 넘었는데 집없는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

 

그래서 절반의 사람들이 노숙을 하는 건 아니잖아. 어느 지붕 밑에선가 모두들 살아가고 있다구. 그 집들이 모두 최저주거기준 미달이거나 그렇지도 않아. 오히려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중에는 자가소유인 경우도 꽤 있다구. 그런 집들은 자기 집이니까 괜찮은 건가.

 

집없는 사람이라는 말은 집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거지. 그니까 저 말을 많이 할수록 우리도 어느샌가 모든 사람들이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셈이 되는 거 아닐까. 그런데 또 어떤 자리에서는 꼭 집을 '소유'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열심히 주장하잖아. 집을 재산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 말야.

 

문제의 핵심은, 그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만성적인 주거불안을 경험하게 된다는 거 아닐까. 임대주택이라고 집이 후지라는 법은 없지만 언제 임대료가 오를지 모르고 언젠가 원하지 않을 때 이사를 가야만 할 수도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지.

 

그러니 모두들 내집 내집 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내집을 바라는데 집을 재산으로 보지는 말라고 하면 그게 구분이 되나. 이왕지사 내집 마련하는데 뽀대나고 나중에 혹시라도 팔게 되면 돈 되는 집을 사고 싶어지지.

 

집없는 사람(집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 절반을 넘는 것을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그 절반의 사람들이 주거권(특히, 점유의 안정성과 적절한 주거비부담)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삼아 보자구. 어떻게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할 것인지, 임대료가 빌려주는 사람 마음대로가 아니라 적정수준에서 결정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이런 걸 고민하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약값은 약제비심사기구가 있어서 약가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절차가 있잖아? 어차피 제약회사가 부풀릴 대로 부풀린 가격에 팔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절차가 있다는 건 의약품을 그냥 상품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인 거 아닐까. 그나마 있으니 이레사(폐암환자들이 복용하는 항암제) 약값 인하도 가능했던 거구. 나는 꼭 책을 사서 읽어야 하지만 내 친구는 그냥 빌려서도 잘 읽지. 사는 거랑 빌리는 거랑 느끼고 배우는 데에 차이가 있지는 않아. 집도... 사든 빌리든 내가 사는 동안 맘편하게 발뻗을 수 있는 게 중요한 거지 않나.

 

여기저기서 부동산정책에 훈수를 두며 빠지지 않는 얘기는 시장에 맡겨라. 복잡하게 풀려고 하지 말고 단순하게 접근해라. 세금 올리는 건 원가 올리는 거니 하지 말아라. 공급을 늘려야 가격이 떨어지니 공급을 늘려라. 등등등. 그래야 집없는 사람들이 내집을 마련할 수 있다... 더냐? 아무리 시장에서 디벼봐도 주거불평등이 심해지면 심해졌지, 모든 사람이 내집을 갖게 되는 세상은 오지 않을 꺼다. 하긴 시장주의자들이 그런 세상을 바라지도 않기는 하지.

 

주택이 충분한지, 부족한지는 가격수준으로 평가할 문제가 아닌 거잖아. 사람들이 들어가 살 수 있는 만큼 충분한지를 따져봐야 공급량의 적정수준이 나오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게 정책일 테고. 충분하다면 그 집들을 어떻게 나눠서 점유할 것인지, 부족하다면 누구부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집들을 나눠받을 것인지를 고민하면 될 테구.

 

모두들 내집마련하시오 하면서 정작 저소득층이 내집마련할 수 있는 기회들은 막아가고 정 안되는 사람은 임대아파트 더 지어주겠다는 식으로는 주거/공간을 통한 불평등과 차별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지 않을까.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의 슬럼화가 문제라고 누구나 얘기하지만 그 차별과 불평등의 씨앗은 집을 소유해야 할 상품으로 시장 좌판에 늘어놓고 있는 데에 있는 거 아닐까.

 

주택을 상품으로, 재산으로만 본다면, 그래, 그건 산수로 풀 문제일 수도 있지. 주택보급률이 100% 넘었으면 된 거고, 가격이 좀 오르는 듯하니 좀더 공급을 늘이면 될 테고. 하지만 주거를 인권의 문제로 본다면, 산수는 아니어야지 않나? 우리도, 사람들이 내집을 살 수 없는 것을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내집이든 아니든 맘편하게 살 집을 나눠가질 방법을 궁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나면 임대가격에 영향을 미칠 부동산시세를 통제할 궁리도 해야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늘 고민고민...

 

답을 찾아야 하지만... 답이 금방 보일 리가 없지. 말하는 만큼 쉬운 거면 지금까지 못했을 리가 없겠지. 하지만 시작하는 때에 문제를 정확히 설정하는 건 너무나 중요한 것 같아. 쏟아지는 정책홍수에서 난파당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갈 길을 분명히 하는 게 먼저야. 이 배다, 저 배다, 떠들어대는데 막상 탔더니 엉뚱한 데로 돌아가는 배라면 안되잖아?

 

조금 더디더라도 차분히, 그러나 시선을 떼지 않고.

 

* 참, 투기꾼이랑 투자자, 그냥 집사는 사람을 너무 구분하는 것도 쫌 그래. 나는 사실 잘 모르겠어. 아주 투기할라고 부동산을 디비고 다니는 사람들이나 돈만 생기면 땅에 묻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집을 사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세차익을 기대하고 재산가치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걸 구분해서 투기꾼만 혼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집사는 사람들이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없게 하는 거, 재산으로서의 의미를 끊임없이 탈각시키는 거, 그리고 무엇보다도 맘편하게 자기집에 살고 싶은 사람들이 꼭 집을 사지 않아도 되도록 만드는 거, 그게 중요한 거 아닐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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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4 17:27 2007/01/0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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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맞아맞아

    2007/01/21 13:44

    미류님의 [어디로 가려는 배인지를 봐야지] 에 관련된 글. 트랙백도 필요없엉 스크랩 하고 싶은 글! 어제 빈활을 다녀온 나를 앉혀 놓고 우리 엄마는 농담이랍시고 벼룩은 안옮아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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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곰탱이 2007/01/04 17:5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 님 말씀에 백 퍼센트 찬성, 공감!!! 새해에 옳다고 생각되는 모든 일들이 잘 이루졌으면 좋겠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2. 리우스 2007/01/04 18:0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래가지고 임대라는 게 있어서 디게 싸요... 글치만 비싸지요.... 그것도 결국에는 여유가 있는 이들의 꺼라는.... 그러니까... (저는 그렇게 읽었지만)말씀 하셨듯... 그남들은 완전히 떠벌여서 뭐좀 어떻게 해보겠다는 수작이에요.... 주택보급률 100% 이상 된지는 벌써 몇년 되지 않았남요? 그거 다 허방이어요..... 중구난방에서 언제 주택문제 가지고 한번 이약좀 해볼까여??

  3. 행인 2007/01/04 18:0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강의 듣는 학생들에게 "내집"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지 않는 이상 여러분이 부모님께 상당한 유산을 상속받기 전에는 앞으로 집사기 어려울 거다라고 이야기했더니 수업분위기 아주 침울해지더군요... ㅜㅜ

    집은 사는(買) '것'이 아니라 사는(生) '곳'이라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미 사람들의 마음이 넘 팍팍해진 것 같더군요. 연말연시 사람 모인 곳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아파트를 어떻게 마련했네, 프리미엄이 얼마 올랐네 하는 등의 이야기 뿐이었구요. 이명박의 신혼부부 집한채 제공 공약이 안주거리가 되기도 하구요.

    집도 그렇죠. 아파트만 집인가, 뭐? 아무리 '내집마련 쉽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해봐야 본질은 건설자본의 배를 불려주는 것인데, 이 이야기만 중구장창 나오는 거 보면 열받기도 하구요.

    미래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박정한 이야기를 하고 만 행인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정작 그 친구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뭔가를 아직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게 더 불만이구요. 아,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암튼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봐서 주저리주저리 길게 떠들다 갑니다. 죄송~~ ^^;;;

  4. 에밀리오 2007/01/04 18:1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오! 그렇군요!! 이렇게 또 시각이 깨이다니.. 사실 '생존' 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은 문외한인지라 ^^; 이전에 작년 연말 오프 때도 집 문제 이야기 하시고 하는데 혼자 멍~ 해가지고 있었다지요. 저도 그런 쪽으로 공부 좀 많이 해봐야할듯;

  5. re 2007/01/04 19:2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추천 꾹!) 다같이 벼랑끝으로 우~달려가는것 같아요. 집 마련 못하면, 없는 살림에 또 전세금 올려줘가며 돌아댕겨야하는 '생존'의 문제에 닥치면..쩝. 알면서도 그 방향에 휩쓸려가버리죠.
    좋은 글 잘 읽었심다~

  6. ScanPlease 2007/01/04 23:4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쫓겨나게 되면서, 며칠동안 살 곳을 찾아 다니면서 느낀건데, 지금은 월세를 들어가지만, 내년에는 전세에 살고 싶고, 그 다음에는 내 집을 가지고 싶어지더라고요. 반대로 말하면, 그렇게 되도록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든다는 이야기죠. 생각해보면 꼭 그 집이 내 것은 아니어도 상관없고, 그냥 한 군데에 안정적으로 머물면서 내 공간을 가꿀 수만 있으면 되는 건데요. 제가 지금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여기서 보게 되어서 또 반갑네요. ㅎㅎ

  7. 산오리 2007/01/05 09:2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불가사의한 나라의 불가사의한 현실이죠..
    세금을 왕창왕창 걷어야 하는데, 그걸 안하니까 돈이 남게 되고 그걸뻥튀기려고 아파트로 몰리고 그런거 아닐까 싶어요. 양도소득세 90%, 상속세 90% 이정도로 때리면 아파트값 잡는건 문제도 아닐텐데요.ㅎ

  8. MIC 2007/01/05 13:4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주택이 충분한지, 부족한지는 가격수준으로 평가할 문제가 아닌 거잖아. 사람들이 들어가 살 수 있는 만큼 충분한지를 따져봐야 공급량의 적정수준이 나오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게 정책일 테고. 충분하다면 그 집들을 어떻게 나눠서 점유할 것인지, 부족하다면 누구부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집들을 나눠받을 것인지를 고민하면 될 테구. " 여기에 백배동감. 권력이 있다면 간단히 분배할 수 있을텐데 말이죠!

  9. 미류 2007/01/05 14:3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곰탱이, 새해에 소망하는 바, 공부하고 싶은 욕심 모두 꾹꾹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

    리우스, 그러게요. 공공임대라고 있는 것도 허벌나게 비싸다보니... 임대료를 못내서 쫓겨난 채 차에서 생활하다가 화재로 숨진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며칠전 기사로 나왔던 것 같은데... 참 어렵네요. 언제 같이 이야기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지요. ^^

  10. 미류 2007/01/05 14:3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행인, 아이구 죄송하다니요. 얘기 많이 해주시고 가서 전 고맙네요. 다들 집 얘기하면 씁쓸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게라도 자꾸 이야기를 끌어내고 집 문제가 혼자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재테크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를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문제의식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하다못해 같이 넋두리하는 자리라도 의미있을 것 같아요. 당 일로도 맘이 복작복작할 텐데 행인도 힘내요~ 새해에도 늘 꿋꿋한 모습 보여주세용~ ^^)/

  11. 미류 2007/01/05 14:4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에밀리오, 닥치면 알게 되는 문제~ 하지만 닥치기 전에 고민하면 좀더 쉬워지는 문제~ 인 것 같으니 힘내셈~ ^^ 연말오프 때도, 비폭력대화 워크샵 뒷풀이 때도 같이 얘기 못 나눠서 아쉬웠네용. 새해 건강하셈~ ^^

    re, 맞아요. 생존의 문제 앞에서도 지켜야 하는 원칙 같은 건 없는 것 같아요. 집을 사는 게 꼭 문제인 것도 아니구 중요한 건 임대냐 소유냐를 넘어서 그게 개인이 혼자 풀어야 하는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같이 얘기해요~ ^^;

  12. 미류 2007/01/05 14:4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ScanPlease, 나두 방가방가~ ^^ 대부분 그런 것 같아요. 어떻게 내가 사는 집을, 내 친구가 사는 집을 좀더 편안하고 좋게 만들지, 사회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하기보다는 혼자 좋은 집 사서 옮겨볼 지를 고민하게 되고. 내가 사는 동네를 좋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좋은' 동네로 이사가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그게 참 어렵네요.

    산오리, 상속세 90%? 상속 못하게 하는 건 어때요? 그냥 물려받아서 살더라도 그걸 개인적인 상속이 아니라 일단 사회에 환원하되 뭐 우선권을 주는 형식으루다가. ^^;

    MIC, 권력이 있다면 ^^; 근데 있어도 간단히 분배할 수 있을 지는 쪼끔 모르겠지만... 그런 걸 요구하는 투쟁들이 '권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가 모두에게. ^^

  13. achim 2007/01/05 23:3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난 정책보담도, 당장 내가 살집을 어떻게 구할까가 고민.. 그래서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미류가 참 고마워 ^^

  14. 미류 2007/01/06 16:2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헤헤, 내가 살 집을 어떻게 구할까 고민하다보면 친구가 살 집을 어떻게 구할까 고민하게 되는 거지 뭐. 구할 방도가 생기면 사람들한테도 널리널리 알려주라구~ ^^;;

  15. 무위 2007/01/21 23:0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오랫만에 들어왔더니 읽을 게 많네요.^^ 미류가 공식적인 문건에 주택문제 관련해서 쓴 글에 비해 머리속에 쏙쏙 들어오네요. 뭐 그렇다고 그런글이 안들어 왔단 말은 아니구요 ㅎㅎ 글 좀 퍼갈께요. 덧글까지 퍼가야쥐^^

  16. 미류 2007/01/23 18:1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러게요. 오랜만이예요. 제가 쓴 글이 몇 개 안되는데 어떻게 읽게 됐는지.. 부끄럽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