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비닐봉투를 위로 하나 아래로 하나 덮어쓰고 침낭 속으로 들어가 고개를 말아넣고 잠을 청했다. 낮부터 밖에서 돌아다니느라 추위에 익숙해졌는지 잠이 올 것도 같았다. 나는 여기서 왜 자고 있을까.
문득 널판지 종이박스로 잠자리를 만들어 하루밤 하루밤을 보내는 노숙인 아저씨들 모습이 생각났다. 인권이라는 말이 생소하고, 그냥 생소했다기보다는 왠지 내가 쓰게 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시절, 우연찮게 만나게 됐던 노숙인 분들과 '부랑인시설'의 사람들은, 지금 내가 여기 있게 해준 불씨기도 했다. 인권운동을 하면서 인권침해 당사자들과 함께 하는 운동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고민을 나눌 때에도 늘 한켠에 떠오르는 사람들은 노숙당사자모임 아저씨들이었다. 그 분들에게 이 싸움을 같이 하자고 말할 수 있을까.
사무실에 있다보면 자주 오는 전화 중 하나가 감옥인권시리즈를 받아볼 수 있냐는 문의 전화다. 감옥관련법령/판례/훈령예규를 모아놓은 세 권의 책은, 벌써 2006년 4월에 절판됐는데도 꾸준히 문의전화가 온다. 감옥인권팀이 없어진 지도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상담편지들이 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그 책은 절판돼서 볼 수가 없다, 관련 상담은 국가인권위원회로 연락해보시라는 이야기를 공손하게 하는 것뿐이다. 감옥인권팀은 내가 단체활동을 시작할 때 이미 사그라들기 시작한 팀이라 내가 잘 모르는 활동이다. 하지만 수감자들의 인권 문제를 빈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으로 넓게 보면서 운동을 더욱 벼리려던 노력은 신입활동가 교육을 받으며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다. 그걸 지금 우리가 못하고 있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그나마 하고 있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고마운가.
국가인권위원회가 '그래도' 갇힌 자들의, 억압받고 갈 데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쉼터일 수 있기에, 그/녀들에게 이 싸움을 같이 하자고는 못하겠다. '그래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있어서 의미있는, 국정방향과는 다른 목소리가 국가기구의 이름으로 나온 적도 있으니 고맙지 않냐고, 그/녀들에게 말할 수 없다. 나에게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기구이기 이전에 국가기구다.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안'에서 걸러내는 장치일 뿐이다. 오염된 물이 공장에서 강으로 흘러나올 때 정화장치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이 국가인권위원회다. 인권운동은 오염된 물을 공장에서 내보내지 않도록 물이 필요한 사람들과 싸우는 것을 제몫으로 한다. 비싸고 질좋은 정화장치를 구하기 위해 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홍보하는 일을 하려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이 싸움은 그저 인권위원회를 적절히 활용하려는 인권'활동가들만'의 싸움인 건가. 인권을 침해당하는 당사자들'을 위한' 싸움인 건가.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두겠다는 구상은, 인권 '따위'에 국정이 흔들릴 리는 없다는 이명박(정권)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인권실현의 의무를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았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국가기구/권력의 정당성 '따위'는 모두 허구임을 증명할 뿐이다. 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있어서, 독립성을 보장받아서, '국가'가 더욱 인권실현을 위해 정진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권은 억압의 실체를 구성하면서도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언어로 성장해온 것이기에, 그 안에 자신의 부정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래서 더 큰 긍정으로 나아가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오늘 또 영원히! 우리의 언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권활동가들이 조금 더 애써야 할 몫이 있다면 인권 자체를 걸고 넘어지는 싸움에서 절대 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싸움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같은 편인 것은 아니다.
한달 전쯤 국가인권위원회는 유럽인권재판소의 판사였던 이를 초청해 국제인권기준의 국내이행을 위한 강의를 열었다. 강의가 끝나고 나는 "사회권은 시장경제의 필수 요소입니다. 건강하고 충분한 구매력을 지닌 근로자가 모든 경제에 이익이 된다는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라는 문장에서 드러난 강연자의 인식에 대한 문제제기 혹은 질문을 던졌다. 진행을 맡았던 인권위 직원은 질문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정확하게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임의로(질문자에게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통역을 생략시켰다. 항의한 후 강연자에게 답변을 듣기는 했으나 중요한 것은 맞다, 틀리다 가 아니다. 실제로 인권은 자본주의체제의 필수 요소로 자리잡을 때 최대로 실현된다. 인권이 '기준'의 언어가 되면 그렇다. 인권운동이 지켜야 할 인권은 '저항'의 언어다. 한국보다는 선진적인 판례를 내놓고 있는 유럽인권재판소의 판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중요하지 않듯이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운동의 편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국가기구인 인권위원회를 지키기 위한 싸움과 저항의 언어로서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구분되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은 인권위원회가 제앞가림해서 지켜내야 할 목표다. 그것도 지킬 능력이 없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무엇을 더 지켜내겠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지금의 이 싸움은 국가인권위원회'와의' 싸움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권은 결국 우리가 지켜낼, 우리의 것임을 증명하는 싸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노숙당사자모임 아저씨들에게, 또다른 인권침해 당사자들에게, 시린 날씨에 맨몸으로 한강을 헤엄쳐 건너기도 했던 노동자들에게, 성소수자들에게, 장애인들에게, 같이 싸우자고 얘기할 수 있겠다. 당신들이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당신들이 아쉬울 지도 몰라서가 아니라, 바로 당신들의 언어를 이명박이 빼앗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들이 한여름 불볕거리를 달굴 때 간절하게 쫓아다니다가, 거리도 식고 소리도 잦아드는 겨울 농성장에는 한번밖에 가보지도 못했다. 어처구니없는 표적단속 강제추방에 항의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농성장을 옮겨가며 싸움을 이어갈 때 촛불집회 한번 나간 것이 전부다. 겨울밤에 노상노숙농성하려니 춥고 시리더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그냥 그런 게, 탄압당하고 빼앗기고 억울한 게, 낯익어져서 술 한 잔에 걱정 몇 마디에 인권운동한답시고 체면차렸던 내 모습이 무안하다. 어설프게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을 거다. 그냥, 나 이제 같이 싸워요, 당신들이 이미 오래동안 해왔던 싸움을 나 이제 쫓아가요, 이제 우리가 같이 싸/운/다/고 얘기합시다, 이명박 '따위'가 우리의 사람답게 살 권리를 짓밟지 못하도록, 이제 우리가 같이 싸/울/거/라/고 얘기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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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스 2008/01/26 00:4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이렇게 '일단 중얼거리'는 거 너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미류 파이터의 중얼거림에 리우스 한표!
miru 2008/01/26 21:3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구구절절 동감이에요
미류 2008/01/31 20:5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리우스, 한표 완전 감사! 열심히 중얼거리면서 길을 찾아갈게요 ^^
miru, 한발한발 걸어가면서 계속 같이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래요 ^^;;